스크랩

‘비밀’ 가득한 경이로운 세계

醉月 2008. 12. 11. 11:53

새로 문을 연 국립과천과학관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학적 이론과 상식이 가득하다. 4203점의 전시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카오스 이론에서부터 전통 도량형 토리까지 알게 된다.

   
ⓒ시사IN 한향란
우주정거장 등에서 사용하는 우주 조정 장치를 체험하는 여고생. 실제 장치는 뒤에서 가스가 분사된다.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외모의 국립과천과학관(왼쪽 그림은 국립과천과학관 심벌)에는 여러 의미 있는 숫자가 따라다닌다. 설립비 4500억원, 전시 공간 2만여㎡, 전시물 4203점, 연간 관람 인원 240만명(예상), 체험형 전시물 52%….

물론 중요한 것은 숫자나 규모가 아니다. 무엇을 소장하고, 무엇을 보여주느냐이다. 1층의 첨단기술관1·명예의전당·기초과학관·어린이탐구관과 2층의 자연사관·첨단기술관2·전통과학관 등을 더 꼼꼼히 들여다본 것도 그 차원에서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초과학관의 피타고라스 음계 코너, 파스칼의 삼각형 코너 등과 첨단기술관의 핵융합 코너, 융합기술 코너 등에서는 한참을 서성거려도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았다(참고로 기자는 물리학·화학 등을 싫어하는 인문계 출신이다). 다행히 아물아물 잊고 지냈던 과학 이론을 일깨우고, 미처 몰랐던 ‘생활의 지혜 급’ 과학 지식을 전달해주는 코너가 더 많았다.

과학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몇몇 과학 이론과 성과물을 더 눈여겨보았다. 그 중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을 소개한다. 이해력이 높거나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현장에서 더 많은 즐거움과 지적 충족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첨단기술관

‘범인을 잡아라’
코너에서는 유전자 감식의 뛰어난 효과와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첫 유전자 감식이 범인 체포 목적이 아니라, 범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1983년 11월. 영국 레스터 지방의 한 마을에서 열다섯 살 소녀가 강간 뒤 살해된다. 그로부터 약 3년 뒤, 사건 현장과 가까운 마을에서 또다시 열다섯 살 소녀가 희생된다.

영국 법의학자들은 두 사체로부터 정액을 채취해 분석했다. 그 결과 두 정액에서 동일한 PGM 단백질과 A형의 혈액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사건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국 남성 10%가 여기에 속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용의자로 체포된다. 법의학자들은 서둘러 1985년 새롭게 고안된 법의학 수사법(유전자 감식)을 이 청년에게 적용해보았다. 그 결과 청년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 뒤 경찰은 1년 동안 범행 발생 지역 인근에 거주하는 남성 4583명의 유전자를 감식했고, 마침내 꼭꼭 숨어 있던 범인을 찾아냈다.

눈으로 보면 마치 먼지 같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보면 분명히 형상이 있는 물체다. 나노 로봇 가상 체험 코너에 전시된 나노 물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만약 나노 물질을 이용해서 기계를 세포만 하게 만들고, 그것을 인체 내에 이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사IN 한향란
인간의 유전자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1나노미터(10억 분의 1m)는 머리카락 1개를 1만 번 자른 크기. 그처럼 작은 나노 로봇은 인류와 달리 겨우 몇십 년 만에 급속히 진화했다. 2004년, 미국 뉴욕 대학 연구팀은 분자 크기의 보행 로봇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연구진은 2008년 3월 인체 내에서 암세포를 파괴하는 초소형 의료 로봇 시제품을 공개했다. 작은 딱정벌레 모양인 이 로봇은 자신의 몸속에 약물을 저장하고 인체로 들어간다. 그리고 머리에 부착된 마이크로 카메라로 환부를 확인한 뒤 약물을 투입해 암세포를 공격한다. 이스라엘 오뎃 솔로몬 박사(팀테크니온 공대) 연구팀도 최근 마술 같은 로봇을 개발했다. 혈관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름 1mm의 초소형 로봇을 개발한 것. 이 로봇은 12만5000km에 이르는 혈관 속을 누비며 혈전 등을 제거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항공·우주 코너
의 스페이스 캠프에서는 우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자이로코프와 유인우주조정장치(MMU)를 통해 무중력과 우주유영의 스릴과 재미를 맛보는 것. 상하좌우로 정신없이 사람을 360도 회전시키는 자이로코프는 우주 평형감각 훈련 장비로, 무중력 상태 및 로켓·귀환체 탑승 때 발생할 수 있는 평형감각 상실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옆의 유인 우주조정장치는 우주정거장이나 스페이스 셔틀 밖에서 우주인이 작업할 때 사용하던 장치. 원래는 가스를 발생시키는 배낭 형태이나, 이것을 메고 우주로 나가 가스를 내뿜으면 전후좌우로 조금씩 이동한다. 방향·속도 등은 우주인이 조종간으로 조종한다.

# 기초과학관

플라스마
를 보여주는 코너는 환상적이다. 무심코 둥근 플라스마 방전구(放電球)에 손을 갖다대자 마치 번개 같은 빛이 손끝에 달라붙는다. 원리가 무엇일까. 비밀은 구 속에 든 플라스마에 있다. 진공 구 속의 플라스마가 네온이나 아르곤 같은 비활성 기체와 충돌해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더 놀랍고 신기한 것은 플라스마의 정체. 얼음에다 열을 가하면 물이 되고, 물에 열을 가하면 수증기로 변한다. 이처럼 세상 물질은 에너지를 포함하는 양이 증가함에 따라 입자들 사이의 결합력이 느슨해지며 고체·액체·기체 상태로 변한다. 그런데 기체를 구성하는 입자(분자·원자)를 더욱 가열하면 입자 내부의 전자가 떨어져 나와 양전하를 띤 전자로 갈라진다. 이같은 입자들이 기체처럼 섞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플라스마이다.

   
ⓒ시사IN 한향란
30m/s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 체험관.
놀랍게도 우주의 물질 99.9%가 플라스마로 이루어져 있다. 번개·오로라·태양·별 등도 여기에 속한다(지구에 흔한 고체·액체·기체는 우주에서는 보기 힘든 물질이다). 플라스마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플라스마를 이용해 인공 다이아몬드를 합성하고,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한 금속 유물을 플라스마로 코팅 처리해 마모와 부식을 방지하는 것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PDP TV도 플라스마를 응용했다.

태풍 체험실에서는 돌풍·회오리·태풍의 정체에 접근할 수 있다. 일단 옷과 장화를 신고 체험실에 들어서면 30m/s의 바람과 700mm/h의 세기의 비가 몰아친다. 이같이 우악스러운 비바람에도 우리가 미처 몰랐던 과학이 숨어 있다. 우리 몸을 휘뚝거리게 만드는 초속 30m의 강풍은 중급 태풍(25m/s 이상 33m/s 미만)에 속한다. 반면, 44m/s 이상의 초강풍을 동반하면 가장 강한 태풍.

   
ⓒ시사IN 한향란
30m/s 비바람이 몰아치는 태풍 체험관.
태풍은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17m 이상의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저기압을 뜻한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연평균 80개 정도. 이름은 발생 해역별로 다르다. 태풍(연평균 30개), 허리케인(연평균 23개), 사이클론(27개)이 그것이다.

풍차처럼 생긴 막대기에 컵 여덟 개가 매달려 있는 카오스 수차는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카오스 이론을 직접 보여준다. 일단 수차 위쪽 중간에서 물이 흘러나와 컵에 물을 채운다. 그러면 수차는 물이 많이 찬 컵 쪽으로 회전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반대쪽 컵에 물이 더 많이 차면 수차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수차는 그렇게 한참을 갈팡질팡하다가 급기야 카오스(혼돈) 상태에 빠진다. 

카오스는 컴컴한 텅 빈 공간, 곧 혼돈(混沌)을 뜻하며, 물리학에서는 불규칙 결정론적 운동을 지칭한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가 기상 모델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나비효과’를 발표해 이론적 발판을 마련했다. 나비효과는 쉽게 말해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즉, 작은 변화가 엄청나게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증권시장의 주식 가격 변화, 나뭇잎의 낙하 현상, 물의 난류 현상, 회오리바람, 태풍이나 지진의 메커니즘도 카오스 이론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 자연사관


우주는 왜 어두울까
코너에서는 질문과 궁금증이 많아진다. ‘우주는 왜 어두울까?’라는 질문도 그 중 하나. 우주 이론에 따르면,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을 보면 한밤에도 대낮처럼 환해야 한다. 그런데 밤하늘은 깜깜하기 이를 데 없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1823년 독일인 아마추어 천문학자 올버스가 처음 그 비밀에 다가선다. ‘올버스 역설’에 따르면,  우주 공간에 있는 먼지가 별빛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버스는 “먼지가 별빛을 흡수하면 먼지의 온도가 올라가 결국 밝게 빛나게 된다”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버린다. 최근 또 다른 이론이 등장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는 유한하다. 따라서 멀리 있는 별의 빛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우주 팽창에 의한 은하의 후퇴운동 때문에 빛의 파장이 길어져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이다.

수수께끼 운석
코너에서는 다양한 운석 정보를 만날 수 있다. 그 중 기본적인 정보 몇 가지.  운석은 모체 소행성이 용융(고체가 열에 녹아 액체가 되는 것)된 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미분화 운석과 분화 운석으로 구분된다. 분화 운석은 소행성의 핵 부분에서 떨어져나온 철질 운석과 바깥 부분에서 떨어져 나온 석질  운석, 중간 부분에서 떨어져 나온 석철 운석으로 세분된다. 반면, 미분화 운석은 대부분이 석질 운석이다(지구에서 발견되는 운석의 92.8%가 석질 운석이다). 지구상의 운석은 대부분 남극에서 발견되며, 우리나라도 2007년 남극의 티엘 산맥 부근에서 미분화 석질 운석과 대형 분화 운석 등 13개를 발견했다.

   
ⓒ시사IN 한향란
한반도의 중생대를 상상해볼 수 있는 자연사관.
백악기 한반도
코너에서는 백악기 중생대(1억4400만~6500만년)의 한반도를 상상해볼 수 있다. 당시 지구의 곤드와나와 로라시아 대륙은 지금의 대륙과 비슷한 모양으로 갈라졌다. 기후는 여전히 따뜻하고 습기가 많았으며, 계절의 변화가 좀더 뚜렷해졌다. 이때 공룡들은 여러 종류로 진화하거나 분화한다.

한반도도 사정이 비슷했다. 일단 요즘도 공룡의 화석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남해안 쪽에는 익룡과 목이 긴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 등이 활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육식 공룡 메갈로사우루스와 드로마에오사우루스도 들판을 거닐며 호시탐탐 다른 공룡의 피와 살점을 노렸을지 모른다.

# 전통과학관

기리고차? 마차에 매달린 희한한 태엽과 마주하니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했다. 설명서를 읽고 나니 이번에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끄덕. 세종 시대의 대표 발명품인 기리고차는 쉽게 말해, 자동 거리 측정 수레이다. 말에 기구를 달아 가동시키면, 일정한 거리에서 북 또는 징이 소리를 낸다. 전시장의 기리고차는 반리를 가면 종이 한 번, 1리를 가면 종이 두 번 울리게 되어 있었다. 수레가 더 먼 거리, 예컨대 5리를 가면 북이 한 번 울리고, 10리를 가면 북이 두 번 울렸다. 결국 북소리·징소리만 세면 지나온 거리가 측정되는 것이다. 

   
ⓒ시사IN 한향란
조선시대 때 거리를 측정했던 기리고차 모형.
작동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수레바퀴가 일정 횟수를 구르면 수레 내부의 중간 바퀴가 돌아가면서 북을 치고, 그 중간 바퀴가 또 일정 횟수만큼 회전하면 또 다른 바퀴가 작동하며 징을 치는 것이다. 택시의 미터기도 이같은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시사IN 한향란
성덕대왕신종(위)에도 많은 과학이 숨어 있다.

천년의 신비로운 소리, 성덕대왕신종 코너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잦다. 잘 알다시피 성덕대왕신종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본떠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과연 성덕대왕신종의 웅웅거림은 아기의 ‘원혼’ 탓일까. 현대 과학이 그 비밀을 밝혀냈다.

성덕대왕신종은 타종 직후 첫소리 안에는 다양한 낱소리가 공존하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고주파 소리는 다 사라지고 저주파의 소리만 남게 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숨소리를 닮은 64㎐의 음과 아이 울음소리와 비슷한 168㎐의 음이 비교적 또렷이 들리는데,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168㎐의 음으로 이것이 바로 성덕대왕신종 소리의 대표음이 된다. 결국 아이 울음 같은 웅웅거림은 우연이 아니라, 신라 시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물리학 현상인 것이다.

자와 저울 그리고 미터법이 없던 시대에는 거리·무게·크기 등을 어떻게 쟀을까. 생활과학 도량형 코너에 가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간단하다. 온몸을 이용했다. 한 치(3.3cm)는 손가락 하나의 굵기를 뜻하고, 한 부(약 12cm)는 엄지손가락을 뺀 네 손가락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한 아름은 두 팔을 둥글게 모았을 때의 둘레.

그렇다면 길과 낱과 뭇은 무엇일까. ‘길’은 어른 한 사람의 키 높이를 나타내는 단위이며, ‘낱’은 한 개 두 개 할 때 개의 우리말 단위이다(예를 들면 빗자루 한 낱, 두 낱). ‘뭇’은 물고기를 세는 단위로 10마리가 한 뭇이다(명태 한 뭇, 조기 두 뭇…). 쾌나 토리도 사라져가는 옛 도량형이다. ‘쾌’는 북어를 세는 단위로 20마리를 뜻하며, ‘토리’는 동그랗게 감아놓은 실뭉치를 세는 단위이다. 이쯤에서 돌발 퀴즈 하나. 우리가 냉면집에서 시켜 먹는 사리는 무슨 뜻일까? 정답은 헝클어지지 않게 돌돌 감아놓은 가늘고 긴 물건을 세는 단위. 그러니까 “사리 더 주세요”라고 하지 말고 “냉면 한 사리 더 주세요” 해야 맞다.

 

당신을 별나라로 초대합니다

   
ⓒ시사IN 한향란
천체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찰하는 사람들.

국립 과천과학관의 천체관측소에서 태양이나 별을 관측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는데, 1~2분 만에 ‘자리’가 동나기 때문이다. 관측은 평일에는 14시~15시30분, 16시~17시30분, 19시30분~21시30분에 한다(주말과 방학 때는 14시에 시작하는 일정이 13시30분으로 앞당겨진다). “개장한 이래 매일 40~50명씩 관람자가 몰려온다”라고 오퍼레이터 하상현씨는 말했다.

12월3일에도 부지런한 네 그룹이 천체 관측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태양의 흑점 등을 관측했다. 또 지름 10cm짜리 태양 망원경으로 태양 표면의 ‘황홀한 변화’를 직접 목도하기도 했다.

한밤의 하늘은 더 변화무쌍하다. 지름 12~25 cm짜리 중소형 망원경으로 우주를 관조하면 달의 분화구, 금성의 환한 빛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망원경(지름 1m)에 눈을 대고 초점을 맞추면 화성 남북극의 극간(이산화탄소 얼음), 목성 표면의 줄무늬,  토성의 고리, 별이 수만 개 모인 성단과 그 너머 안드로메다 은하(지구와의 거리 약 230만 광년:빛의 속도로 230만년을 달려야 도달하는 거리)까지 눈에 들어온다.

천체관측소에서는 별만 관측하는 것이 아니다. 앞쪽의 천체투영관에서 별의 탄생과 죽음, 블랙홀의 생성 과정과 원리, 가상 우주여행 등을 광활한 영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