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은 수달임금, 주몽은 산달 사냥꾼
‘獸祖’와 ‘유목’코드로 한민족 태반사 읽기… 조선·고구려는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 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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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몽골자치구 훌룬부이르시에 위치한 훌룬호. 훌룬-부이르 자매의 슬픈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
필자의 이번 역사 유적 답사길은 다른 대원들과 다른 구석이 있다. 특히 바이칼 호반과 훌룬부이르 몽골 초원 유목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미 1990년 초반부터 이제까지 십수 년을 오간 탐사 길이어서 그렇다. 어떤 부분은 초행길 독자들과 답사 현장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느낌마저 든다. 답사 일기를 되씹어가며 나름대로 재확인해 대원들과 더불어 정리하는 일이어서다. 역사를 쓰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여기저기 얽힌 절절한 추억들을 더듬어보는 계기도 되었다.
어쩌다 60대 중반을 넘긴 이 나이까지 사서 이 고생을 하고 다니나 하는 서러운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길을 오가노라면 의사로, 또는 전기공학도로, 생명공학도나 철학도로 이 험한 역사 탐험길을 내닫는 엉뚱한 이들을 종종 만난다. 필자는 그래도 명색이 사학도라 그런대로 자기를 달랠 제 이야기를 나름대로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쩌다 순록한테 홀려, 어이타 수달이나 산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너구리에게 이끌려 이 험로를 내가 이렇게 오래 헤매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문제를 잡으면 집요하게 놓지 못하는 고집스러움 때문일 뿐이었던가 보다.
‘너구리-맥’ ‘수달-예’라는 견해
어쩌다 60대 중반을 넘긴 이 나이까지 사서 이 고생을 하고 다니나 하는 서러운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 길을 오가노라면 의사로, 또는 전기공학도로, 생명공학도나 철학도로 이 험한 역사 탐험길을 내닫는 엉뚱한 이들을 종종 만난다. 필자는 그래도 명색이 사학도라 그런대로 자기를 달랠 제 이야기를 나름대로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쩌다 순록한테 홀려, 어이타 수달이나 산달이라는 별명을 가진 너구리에게 이끌려 이 험로를 내가 이렇게 오래 헤매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문제를 잡으면 집요하게 놓지 못하는 고집스러움 때문일 뿐이었던가 보다.
‘너구리-맥’ ‘수달-예’라는 견해
훌룬호 남쪽 몽골공화국 접경지대에 있는 부이르호. 훌룬은 암수달, 부이르는 숫수달을 뜻한다. <김문석 기자> |
코리안 루트 답사길에서는 7월 21일 부이르호반에서 부이르라는 남동생과 훌룬이라는 누이에 얽힌 전설을 현지 주민에게서 취재하면서 이야기가 비롯됐다. 훌룬호와 부이르호에 관한 이야기인데, 둘이 다 수달이지만 부이르는 숫수달이고 훌룬은 암수달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방은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앞 세종대 역사학과 연구실이지만, 실은 이는 28년 만의 복귀일 뿐 나는 그간 20여 년을 춘천에 귀양살이하듯 해직당해 내려가 살다가, 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맥국’이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산달(山獺)인 맥(貊)-너구리를 비롯한 각종 짐승들이 많았던 왕년의 산짐승 천국에서 숨쉬고 살면서 산달인 맥의 나라와 그리고 이와 상대되는 동해변 강릉의 수달(水獺)인 예(濊)의 나라와 첫 인연을 맺었다.
조선과 고구려는 '뿔'을 상징으로 하는 순록과 '날개-깃털'을 상징으로 하는 새의 결합형 순록유목 생태생업 문화권의 소산이다. 대흥안령 지역 선비족이 사용했던 머리 장식. <김문석 기자> |
전공이 몽골사인 데다가 마침 1990년대에 들어 북방 사회주의권이 개방되고 이어서 비행기가 오가고 인터넷망이 연결되면서 틈만 나면 수시로 지금까지 특히 바이칼-몽골-훌룬부이르 일대를 드나들거나 또는 한두 해 체류하며 더 머나먼 시베리아 귀양지에서 모든 잡념을 끊고 그 뿌리를 캐는 데만 전념하게 됐다. 1980년 해직교수의 색다른 기구한 인생유전이 맺어낸 결실이랄까. 나는 지금 다시 세종대 사학과에 복직해 정년 9개월을 남겨두고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
시베리아-만주지대에서 고원지대를 대표하는 짐승이 산달인 너구리-‘맥’이라면 저습지대를 상징하는 짐승은 수달인 부이르-‘예’라는 것이 내몽골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아르다자브 교수의 견해다. 지금 부이르 호반에서 현지인에게 다시 확인하고 있지만 부이르는 전설상으로 숫수달의 뜻을 갖는 이름이다. 숫수달이 암수달보다 더 모피(Fur)가 좋아서 사냥감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Buir’의 ‘B’와 ‘R’자가 탈락하면서 ‘예(濊)’자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정월에 실제로 눈이 내리는 춘천 맥국 유허비 언저리를 현지 답사한 다음에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예’계와 ‘맥’계는 역사적으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왔다며 실례를 들어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예컨대 맥계인 거란(遼)이 서니 예계인 여진(金)이 일어나 이를 멸망시키고, 이 여진을 다시 맥계인 몽골(元)이 정복해 지배하다가 결국은 예계인 만주(淸)제국에게 아주 거의 철저히 멸망당했다는 것이지요. 저습지대 종족 예족과 고원지대 종족 맥계가 치열하게 공방사를 펼쳐온 오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변 강릉의 예국 유적과 산중의 짐승왕국 춘천의 맥국 유적이 상존한다는 시각의, 집요한 천착이 이제 아주 긴박하게 요청되고 있는 셈이지요. ‘예’라는 수달(水獺)과 ‘맥’이라는 산달(山獺)이 통일되면 ‘예맥’(濊貊)=달달(獺獺: Tatar)이 된다고 보는 이도 있어요.”
“단군조선의 단(檀)이 예맥국”
나는 이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달달=타타르는 단단(檀檀)으로 한문으로 음사(音寫)되기도 해서 실은 단군조선의 단(檀)이 수달과 산달, 곧 예와 맥이 통합된 예맥국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문명화한 백(白)타타르가 ‘배달’로 불렸음직도 하지만, 선비족 단석괴(檀石槐)라는 칸도 있고 중국인명사전에는 단씨 성을 가진 인물이 십수 명이나 등재돼 있어요. 실은 동북아 고대사에 이름을 남긴 맥궁(貊弓)이나 단궁(檀弓)이 모두 맥족이나 단족이 만든 명궁이지, 근래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에서 해모수가 아들 주몽에게 ‘이는 박달나무로 만든 활인데…’ 하고 비장한 어조로 말하며 남겨주는 박달나무 활이 전혀 아니지요. 맥궁이 맥나무로 만든 활이 아니듯이 단궁 또한 결코 단나무로 만든 활이 아닙니다. 맥나무란 본래 없고 박달나무로 좋은 활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단궁이나 맥궁이 실은 모두 예맥=달달=타타르=단단족이 만들어낸 명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맥은 별명이 산달이니까요. 맥적은 물론 맥족이 만들어 먹던 적(炙)=불고기지요. 맥은 산달이라 시베리아 고원지대 타이가에서 나무들이 거센 바람에 시달리다가 자연 발화로 만들어진 산짐승의 불고기에서 비롯한 듯하고요. 저습지대 예는 불씨가 구하기 힘들고 추워서 날고기를 주로 먹다 보니 육회나 물고기 회(膾)를 후세에 전해내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맥국 유적지가 있는 춘천의 불고기가 맛이 있고 예국 유적지가 있는 강릉의 회가 별미로 손꼽힙니다. 둘을 합하면 회자(膾炙)지요. 인구(人口)에 회자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는 동북아 고대의 별미 중의 별미인 특별 요리로 유명했지요. 본래 중국에서 비롯된 라면을 일본이 위생적으로 가공해 근래에 수출했고, 여기에 한국인의 맛내기 솜씨가 가미돼 한국 라면이 되었는데, 이 한국 라면이 베이징, 울란바토르, 시베리아와 모스크바는 물론 미국 식당가까지 들어가 라면 맛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역시 전통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실감하게 됐어요. 수달과 산달 사냥꾼들인 조선과 맥족 고구려가 창조해낸 맛의 천국인 셈이지요. 이런 맥락으로 미루어 저는 ‘단군(檀君)은 수달임금, 주몽(朱蒙)은 너구리 사냥꾼’이라고 강변하고 있지요!”
순록치기가 기마양치기로 발전
예맥족의 예는 숫수달(아래) <한국수달연구센터 한성용 소장 제공> 맥은 너구리에서 유래했다.<우르몽골훌룬부이르대학 황학문 교수 제공> |
실은 나는 1999년 가을부터 대흥안령 북부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에 한 해 동안 상주하며 이런 사실을 현지에서 직접 조사 연구해 국내에 보고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학자가 한 명도 없었다. 맥에 관한 이런 답사 보고가 주목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2005년 3월 23일에 서울대 수의과대학에 객원교수로 와 있는 흑룡강성 동물자원연구소의 박인주(朴仁珠) 조선족 교수가 “대·소흥안령에 별명이 산달(山獺)인 맥(貊)이라고 불리는 ‘너구리’-내몽골어 ‘엘벵쿠’가 지금도 적지 않이 뛰어 놀고 있다”고 관계 학회에 공식 보고를 하고 나서다. 그러나 그래도 언론은 꿈쩍도 않다가 2007년 봄에 내 책 ‘순록치기가 본 조선·고구려·몽골’에 이 내용이 등재되어 서울발 연합뉴스를 타고서야 다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지 답사길 가기보다 더 어려운 험로였다.
마침 국내 유일의 수달 전문가인 한성용 교수를 소장으로 세계적인 차원의 ‘수달연구센터’가 춘천 언저리에 있는 화천에 세워졌는데, 이를 계기로 자잘한 밥그릇 겨루기식 연구를 지양하고 역사 정보가 전파를 타고 빛의 속도로 세계 각지를 오가는 IT지구 마을시대답게 과감히 시베리아-몽골에 그 문호를 열어 예맥의 맥=너구리 연구도 동물학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베리아라는 세계 최대의 숲의 바다를 태반으로 그 창세기를 써온 종족들이 짐승을 조상으로 삼는 수조(獸祖)전설을 거의 100%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예(숫수달:Buir=夫餘)-맥(너구리:Elbenku)-조선(순록치기:Chaatang)-고[구]려(순록:Qori)-발해(渤海:늑대의 토템語: Booqai)-솔롱고스(黃 :누렁 족제비:Solongo의 복수형)라는 종족 또는 나라 이름이 이미 한민족 스키토·시베리안 기원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조선과 고구려-몽골 국명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순록치기가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의 기마 양치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기틀을 마련하는 것 같다.
조선과 고구려는 ‘뿔’을 상징으로 하는 순록과 ‘날개-깃털’을 상징으로 하는 새의 결합형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의 소산이다. 말은 그 이후의 후래적인 요소다. 그래서 스키타이인들은 뿔이 없는 말에게까지 황금 순록의 뿔 탈을 씌우려 한 것이다. 황소(뿔)와 백조(깃털)의 결혼 이야기로 내용이 구성된 순록치기 코리족 시조 탄생 설화가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적시(摘示)하고 있다. 역사 드라마로 동북아가 온통 술렁이는 듯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그것들을 번갈아보면서 내가 아주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
툰드라, 타이가, 스텝과 농경지대를 두루 오갈 수 있는 힘센 동물이 각력(角力)을 자랑하는 황소였을 것이다. 순록치기 붉은 악마 치우(蚩尤)는 그걸 타고 툰드라-타이가-스텝-농경지대를 누볐으리라. 대규모 양치기 수단으로 철제 재갈을 말에게 물려 말을 타기 이전까지는 순록치기가 순록유목권을 벗어나면 힘센 황소를 주로 탔음은 물론이다. 한인(漢人)들의 그것과 다른 조선-고구려의 문무관복의 장식 치장들이 이를 잘 입증한다고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씨름도 뿔힘 겨루기인 각저(角抵)요, 우두(牛頭)머리도 ‘뿔의 칸’인 각간(角干)-이벌찬(伊伐:Eber飡)이다. 뿔 달린 도깨비의 요술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많다. 솟대는 새의 깃털로 상징된다. 기마 양유목의 모태인 순록유목태반에서 조선-고구려가 이미 배태됐다는 것이다. 그 호칭 자체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상상과 추리의 나래를 펼치는 나날들을 탐사길에서 보내면서 7월 말엔 어느새 답사의 종착역, 몽골 스텝의 바람이 거센 스텝인 대흥안령 남부 홍산 문화권에 들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침 국내 유일의 수달 전문가인 한성용 교수를 소장으로 세계적인 차원의 ‘수달연구센터’가 춘천 언저리에 있는 화천에 세워졌는데, 이를 계기로 자잘한 밥그릇 겨루기식 연구를 지양하고 역사 정보가 전파를 타고 빛의 속도로 세계 각지를 오가는 IT지구 마을시대답게 과감히 시베리아-몽골에 그 문호를 열어 예맥의 맥=너구리 연구도 동물학적인 접근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베리아라는 세계 최대의 숲의 바다를 태반으로 그 창세기를 써온 종족들이 짐승을 조상으로 삼는 수조(獸祖)전설을 거의 100%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예(숫수달:Buir=夫餘)-맥(너구리:Elbenku)-조선(순록치기:Chaatang)-고[구]려(순록:Qori)-발해(渤海:늑대의 토템語: Booqai)-솔롱고스(黃 :누렁 족제비:Solongo의 복수형)라는 종족 또는 나라 이름이 이미 한민족 스키토·시베리안 기원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조선과 고구려-몽골 국명이 그러하듯이 이들은 순록치기가 훌룬부이르 몽골 스텝의 기마 양치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기틀을 마련하는 것 같다.
조선과 고구려는 ‘뿔’을 상징으로 하는 순록과 ‘날개-깃털’을 상징으로 하는 새의 결합형 순록유목 생태생업문화권의 소산이다. 말은 그 이후의 후래적인 요소다. 그래서 스키타이인들은 뿔이 없는 말에게까지 황금 순록의 뿔 탈을 씌우려 한 것이다. 황소(뿔)와 백조(깃털)의 결혼 이야기로 내용이 구성된 순록치기 코리족 시조 탄생 설화가 이를 단도직입적으로 적시(摘示)하고 있다. 역사 드라마로 동북아가 온통 술렁이는 듯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한국과 중국의 그것들을 번갈아보면서 내가 아주 최근에 깨달은 사실이다.
툰드라, 타이가, 스텝과 농경지대를 두루 오갈 수 있는 힘센 동물이 각력(角力)을 자랑하는 황소였을 것이다. 순록치기 붉은 악마 치우(蚩尤)는 그걸 타고 툰드라-타이가-스텝-농경지대를 누볐으리라. 대규모 양치기 수단으로 철제 재갈을 말에게 물려 말을 타기 이전까지는 순록치기가 순록유목권을 벗어나면 힘센 황소를 주로 탔음은 물론이다. 한인(漢人)들의 그것과 다른 조선-고구려의 문무관복의 장식 치장들이 이를 잘 입증한다고 달리는 차 속에서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씨름도 뿔힘 겨루기인 각저(角抵)요, 우두(牛頭)머리도 ‘뿔의 칸’인 각간(角干)-이벌찬(伊伐:Eber飡)이다. 뿔 달린 도깨비의 요술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많다. 솟대는 새의 깃털로 상징된다. 기마 양유목의 모태인 순록유목태반에서 조선-고구려가 이미 배태됐다는 것이다. 그 호칭 자체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러저러한 상상과 추리의 나래를 펼치는 나날들을 탐사길에서 보내면서 7월 말엔 어느새 답사의 종착역, 몽골 스텝의 바람이 거센 스텝인 대흥안령 남부 홍산 문화권에 들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주채혁 :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몽골사>
한국어의 유전자를 찾아서
어웡크족·다구르족 언어에서 고대 한국어와 고구려 언어 흔적 발견
소수종족 언어와 문화 존폐 위기
다음 날인 24일 우리는 다우얼(達斡爾, Dawoer, 혹은 다구르, 다후르) 민족 문화 공원과 박물관을 방문했다. 모리다와 다우얼 자치구(Molidawa Dawoer Autono-mous County)의 장이라는 한 노인이 나에게 다우얼어 숫자 1~10을 말해주었다. 그는 숫자 세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으며, 중간에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 10 이상의 숫자를 셌다.
현장에서 이런 자료들을 분석해보다가 나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몽골어와 퉁구스어 양자의 원래 파열음 체제(plosive systems)에서 유성/무성 대응(the voiced/voiceless contrast)은 대체로 북부 중국어 파열음 체제의 대기음/비대기음 대응(the aspirated/non-aspirated contrast)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몽골어에서 d:t 대응을 가진 4 dorb: 5 tap가 다우얼어에서는 t:th 대응을 가진
이런 변화가 그 80대 노인이 말하는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므로, 지난 100년에 걸쳐 채집한 모든 언어학적 자료들은 비교 자료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주의 깊게 다시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현대 중국은 다수 민족의 합중국
이제 에벵키족이나 다구르족 아이들이 자기들 언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외국 학자들이 쓴 책과 논문들을 찾아봐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 만일 이 민족 언어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면, 민족 집단과 그 문화는 곧 사라질 것이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다구르족 노인 아르다합씨는 다구르어로 1~10까지 어렵지 않게 말했다. |
이 언어들에는 먼 옛날 고대 한국어에서 차용해온 흔적과 고구려 제국 언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역시 모두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나는 26살 때 내가 자란 곳을 떠나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의 밤은 어두웠지만, 검은 아프리카인들은 어두운 밤보다 검었고, 오로지 눈의 흰자위와 웃을 때 보이는 이만 하얄 뿐이었다. 과거 500년 간의 아프리카 역사는 그보다 더 어두운 것으로 노예 무역과 식민 통치로 파괴됐다.
아프리카 민담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친절하게 대해도 불친절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지난 500년 동안 아시아 역시 어두운 역사를 가졌지만, 아프리카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조금 낫다고 볼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자족감(自足感)과 타인에 대한 친절함은 아시아인에게로 유전한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이래로 한국에는 조선이라는 하나의 왕조가 있어왔으며, 중국에는 명(明)과 청(淸)이라는 두 왕조가, 그리고 소아시아에는 투르크족의 오토만 제국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듣고 유럽의 지식 계층들은 놀라워 했다.
유럽인들이 침입해오기 전에 아프리카 역사는 밝고 평화로웠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시기는 이집트 문명으로 대표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미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했을 때 종말에 이르렀다. 이집트는 동방으로부터 힉소스(Hyksos)라고 불리는 기마민족의 침입을 받은 짧은 기간(BC 1670~1570) 외에는 거의 3000년 동안어두운 시기를 겪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 그리고 수메르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 집단이 셈어계(Semitic) 민족이었던 메소포타미아와 달리 중국에서는 한민족(漢民族)과 알타이어계 민족 집단들이 거의 교대로(송, 원, 명, 청) 지배해왔다.
커다란 혼란기(춘추전국시대)를 지나면 하나로 통일된 평화로운 시대(진, 한)가 이어졌다. 알타이어계, 한족(漢族)계, 그리고 다른 계열 문화들이 하나의 도가니 속으로 들어오고(5호16국),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그렇게 중국은 한족계(당, 송)나 아니면 알타이어계(요, 금, 원)에 의해서 다시 통합되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EU가 유럽인 국가들의 연합인 것처럼, 현대 중국은 56개 소수 민족 집단들을 갖고 있는 하나의 중국이 아니라 몽골로이드 여러 민족 집단의 합중국(合衆國)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동적인 알타이어계 민족들은 창조적이지만, 정적인 한족계 민족은 알타이어계의 모든 것을 부수어 삼켜버리고 있다. 한족들은 북동부 중국에 있는 고구려와 만주-퉁구스어계 역사가 한족 역사라는 잘못된 주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중국 전체의 역사는 몽골로이드 민족들의 역사인 것이다. 그래서 북동부 중국의 역사는 몽골로이드 합중국의 고구려와 만주-퉁구스어계의 역사다.
황하문명은 몽골로이드 문명
중국 문명의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그 문자 전통에 있다. 이집트 신성문자가 이집트 문명의 기초적 요소였듯이, 중국어 글자는 역시 중국 문명의 기본이다. 이 두 글자 모두 상형문자이므로, 일(日, sun), 구(口, mouth), 목(目, eye), 인(人, person) 같은 비슷한 형태의 문자가 많다.
그러나 상·하 이집트가 BC 2850년에 통일된 직후 이집트 신성문자가 만들어졌고, 반면에 가장 오래된 중국어 글자인 갑골문자는 BC 1300년쯤 이후에야 알려지기 시작했으므로, 이집트 신성문자는 중국어 글자보다 1500년 이상 오래 되었다. 이런 시간적인 차이는 이집트의 필기 체제나 그 기본구조가 중국이나 고조선을 포함한 기타 알타이어계 지역들에 도달하는 데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갑골문자를 최초로 만든 사람이 꼭 중국인이어야 할 당위성은 없다고 본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단계에서 우리는 연대가 BC 5000년대까지 올라가는 내몽골에 있는 홍산문화 지역과 기타 고고학 유적지들을 둘러보았다. 이런 연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오랜 연대와 비교되는 것으로, 우리는 우랄-알타이어계, 시노-티베트어계, 남아시아어계(베트남과 캄보디아를 포함한), 오스트로네시아어계, 그리고 몽골로이드들이 사용하는 기타 어족의 조상들이 모두 이 오랜 문화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은 또한 고조선의 영역이기도 하면서 발해만과 서해(황해)와 마주보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형구 교수와 함께 그곳 바다를 ‘고조선의 지중해’라고 부른다. 이것은 중국 본토 서쪽까지 포함하는 일명 황하 문명이 분명 순전한 중국인 문명이 아니라, 고조선인들을 포함한 알타이어계 민족들이 한족과 기타 몽골로이드 민족들과 함께 만든 몽골로이드 문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미즈 키요시 : 순천향대 초빙교수, 극동대 겸임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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