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2009 히트상품 막걸리

醉月 2010. 2. 3. 08:42
수입쌀이 3배 더 값싼 탓… 국산쌀 쓰면 150원 올라
막걸리 폭발적 열풍도 국내 농가엔 도움 안돼

최근 '국민 술' 대접을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의 90% 이상이 국산쌀이 아닌 수입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걸리 시장의 확대가 우리 쌀 농가에는 정작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가 '전통 한국술' 이미지를 띠고 버젓이 수출까지 해왔다.

특히, 막걸리는 주세(酒稅)가 5%밖에 안돼, 약주(주세 30%), 소주(72%), 맥주(72%) 등 다른 술에 비해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입쌀이 국산의 3분의 1 가격'이라는 이유로 막걸리업체 대부분이 국산 쌀을 외면해왔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수입쌀 막걸리에 왜 열광했을까? 수입쌀로 만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 병의 성분 표시란에는 '원산지 표시'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수입쌀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막걸리 원료에도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오랫동안 소외받았다가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부활한 막걸리. 그러나 시중에 팔리는 막걸리에는 원료 원산지 표시가 없다. 그래서 국산 막걸리를 외국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유통 막걸리, '전통술' 인정 못받아

막걸리는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술이다. 그러나 정작 시중에 나와있는 막걸리의 99% 이상은 정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지 못했다.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으려면 100% 국산쌀(이 중 50%는 직접생산)로 만들어야 하지만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킨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통술 인정을 받을 경우 현행 주세(5%)의 절반(2.5%)을 감면해 준다. 농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실 김종실 서기관은 "현재 전국에 780여개 막걸리 제조업체(면허취득 기준)들이 있지만, 이중 정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은 업체는 15개 업체뿐"이라고 말했다. 전통술로 인정 받은 막걸리가 전체 중 1% 안팎이라는 설명이다.

농식품부는 작년 한 해 동안 막걸리용으로 쓰인 쌀과 밀이 3만5000t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쌀 2만5000t 중 수입쌀은 1만8000t, 국산쌀이 7000t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작년 한 해 막걸리 원료로 쓰인 쌀이 약 6만t에 달하며, 이 중 수입 쌀이 9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군소 막걸리 양조업체가 500개가 훨씬 넘어 정부에서도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막걸리 업체들이 사용하는 수입쌀은 정부가 쌀시장의 전면개방을 유예하기 위해 1995년부터 미국 중국 등으로부터 들여오고 있는 의무수입물량(MMA) 쌀이다. 막걸리 업체들이 수입쌀을 직접 수입해온 것은 아니지만, 수입쌀 막걸리 시장의 확대는 결과적으로 외국 쌀농가에 보탬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국산쌀로 만들어도 제조원가 큰 차이 없다

막걸리 업체들이 그동안 우리 쌀을 외면해온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수입쌀이 훨씬 싸다. 실제로 작년 기준으로 수입쌀(공급가 기준)과 국산쌀 가격 차이는 약 3배에 달했다. 그러나 막걸리 한 병에 드는 생산원가 중 원재료인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 정도밖에 안된다. 국산쌀로 대체하더라도 생산원가 상승분은 병당(750mL, 알코올 6도 기준) 15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의 원가상승은 현재의 이윤에서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가격을 올리더라도 병당 생산원가 상승분(150원 안팎) 정도만 반영할 경우 소비자들의 가격저항도 거세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산쌀을 사용하면 우리 농가에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간다. 수입쌀 대신 우리 쌀로 막걸리를 만들 경우 병당 200원 정도를 쌀농가에게 안겨주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쌀 막걸리는 90% 이상이 수입쌀로 만들지만 막걸리 회사들은 대부분 원산지 표 시를 하지 않는다. 국내 한 유명 탁주의 원료표시도‘백미 90%’라고만 되어 있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국산쌀 막걸리, 시동 걸렸다

전통술인 막걸리만큼은 국산쌀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다. 국내 막걸리 시장의 절반 정도 점유율을 갖고 있는 서울탁주협회(장수막걸리, 월매막걸리)는 지난해 12월 8일부터 '월매 막걸리' 원료를 수입쌀에서 100% 국산쌀로 대체했다. 농식품부와 손잡고 서울탁주를 비롯해 34개 업체들이 같은 시기에 한시적으로 국산쌀 막걸리(막걸리 누보)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

서울탁주협회 이동수 회장은 "처음엔 3개월만 국산쌀을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월매 막걸리는 계속 국산쌀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탁주는 충청도 진천에 대규모 막걸리 공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만드는 월매 막걸리의 경우 100% 국산쌀을 쓰기로 했다. 월매막걸리는 수입쌀에서 국산쌀로 원료를 바꾸면서 출고가가 200원 정도 올렸다. 생산원가 상승분만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 셈이다.

이동수 회장은 "시장의 반응을 지켜본 뒤 장수 막걸리도 국산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오는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는 우리 쌀로 만든 장수막걸리를 공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산사춘 등 약주로 유명한 배상면주가 역시 이달부터 기존 수입쌀 막걸리보다 '150원' 비싼 국산쌀 막걸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국산쌀 사용 생산원가만큼만 가격을 올린 것이다.

막걸리 폭탄주 대유행! 막걸리도 섞어 마셔야 '제 맛'

막걸리에 소주와 사이다를 섞은 ‘막걸리 폭탄주’가 대유행이다. 또 다른 한쪽에선 막걸리에 생과일주스를 부은 ‘막걸리 칵테일’도 인기절정이다. 아저씨 술인 막걸리가 젊은이, 특히 젊은 여성의 술로 탈바꿈되고 있다.

술이 있는 곳에 으레 등장하는 폭탄주는 막걸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4일 오후 7시 현대아산 관광영업부의 회식자리. 메인 술자리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막걸리다. 회식자리에 폭탄주가 빠질 리 없다. 샐러리맨들의 대표적인 음주 방식이 이른바 ‘폭탄주’다. 폭탄주란 어느 한 종류의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맥주, 소주, 양주, 심지어는 포도주까지 섞어 만드는 술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을 심하게 취하게 만든다.

사진: 안호성

달콤하고 부드러워 ‘술술’

“제대로 한번 만들어 보라”는 권기섭(46) 부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전재영(34) 대리가 막걸리를 부은 유리잔과 잔 사이에 소주와 사이다를 절반씩 넣은 소주잔을 올렸다. 첫 번째 소주잔을 쓰러뜨리자 도미노처럼 소주잔이 막걸리잔 속에 빠졌다. 일명 도미노주. 소주잔이 막걸리잔에 빠지면서 넘친 막걸리로 상위가 지저분해졌다. 마침 안주를 내오던 식당 아줌마가 “그렇게 막걸리 폭탄주를 만들어 먹는 건 처음 본다”며 “뭘 좀 깔아 놓고 하지”라며 눈을 흘겼다.

폭탄주는 보통 양주에다 맥주를 섞는다. 반면 막걸리 폭탄주는 막걸리에 소주를 붓고 사이다를 약간 가미한다는 것이 다르다. 제조법은 이렇다. 먼저 맥주컵에 막걸리를 반쯤 따른다. 그런 뒤 소주와 사이다를 소주잔에 각각 반 잔 정도 따라 맥주컵에 부으면 된다. 막걸리를 즐겼던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양주를 먹고 마지막에 막걸리와 사이다를 섞어 마셨다고 전해진다. 폭탄주에 대한 품평은 나이와 경험, 추억에 따라 달랐다.

“막걸리의 알싸한 맛에, 사이다의 달달한 맛이 더해져 달콤해요. 굉장히 부드러워서 ‘술술’ 넘어가는데요. 여자 친구랑 마시면 딱이겠어요.” 처음으로 막걸리 폭탄주를 마신다는 전재영 대리는 “과일을 갈아 넣으면 더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셨다.

임상우(37) 과장은 좀 싱겁다며 전 대리의 막걸리 폭탄주 예찬론에 딴죽을 걸었다. 양주 폭탄주에 입맛이 길들여진 임 과장은 “사이다를 줄이고, 막걸리나 소주의 양을 더 늘리라”고 폭탄주 제조를 주문했다. 다시 막걸리 폭탄주가 한 순배 돌았다.

권기섭 부장은 “처음 만난 여자랑 막걸리 먹었을 때가 기억난다”며 옛 추억을 더듬었다. 그는 “군 복무 시절 천리행군을 하다 농부들이 건넨 막걸리 한잔은 피로를 잊게 한 마취제였고, 피로회복제였다”며 “얼마나 맛있던지 그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막걸리 폭탄주는 ‘혼돈주’로 불린다. 18세기 문인인 정철조(1730~1781)가 소주와 막걸리를 섞은 뒤 ‘혼돈주’라 부르며 마셨다는 데서 유래한다. 정철조는 박지원, 홍대용, 유득공 등 조선시대 실학자들과 긴밀히 교류했던 인물로 돌의 모양과 재질을 따지지 않고 벼루를 만들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어 석치(石癡)란 호로 불렸다.

최근 유명디자이너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가 ‘혼돈주’에 대한 상표 등록을 출원해 그 심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영세 대표가 상표 등록을 요청한 혼돈주의 비율은 막걸리 6, 소주 3, 사이다 1이다. 또 상표 사용 범위로는 소주, 약주, 인삼주, 청주, 탁주, 합성청주, 쌀로 빚은 술 등 7가지 주류로 정했다. 혼돈주 애호가로는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이 꼽힌다. 홍석우 청장은 혼돈주가 주로 중소기업이 만드는 막걸리가 주재료인데다 ‘맥주 + 양주’로 제조하는 폭탄주에 비해 건강에도 좋다며 즐겨 마시고, 주위에도 권하고 있다.

막걸리 폭탄주 칵테일로 진화

‘막걸리 폭탄주’는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막걸리 칵테일’로 재탄생했다. 여성들이 즐겨 찾는 막걸리 칵테일의 제조 방법은 간단하다. 막걸리에 일정량의 생과일주스를 붓고 잘 섞어주면 된다. 딸기·키위·복숭아·파인애플 등 생과일 외에 쌀·콩·보리 등을 섞기도 하고, 수삼을 갈아 넣기도 한다. 또 딸기요구르트 또는 곡물요구르트와 탄산음료를 섞기도 한다. 섞는 재료에 따라 빨강, 노랑, 보라 등 형형색색의 빛깔을 낸다. 막걸리 칵테일은 사발이 아니라 유리 칵테일 잔에 담겨 나온다. 1990년대 초반 소주에 각종 과일주스를 섞어 먹든 ‘소주 칵테일’에 비견된다.

막걸리 칵테일 열풍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 ‘마코리’로 불리는 막걸리가 웰빙 음식으로 뜨면서 일본 여성들이 ‘마코리 칵테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일본 여성들 사이에 막걸리 칵테일이 유행한다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막걸리 칵테일 주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촌 등을 중심으로 번성하고 있다. 부드러움에 달콤함과 고소함을 더해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조선일보 DB
조선일보 DB

tip 막걸리 폭탄주 원조는 고 박정희 대통령

막걸리의 참맛을 아는 이로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천상병 시인이 꼽힌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막걸리는 국민과의 소통로였고, 천상병 시인에게는 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권농일이면 반드시 농촌에 나가 모내기를 하고, 벼 베기 돕기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일을 하고 나서 논두렁에서 농부들과 마시는 걸쭉한 막걸리를 최고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마신 막걸리는 경기도 고양시 배다리 술도가에서 만든 ‘고양 막걸리’다. 처음 맛을 본 뒤 매주 한두 말씩 시켜먹다 1966년부터 14년 동안 마셨다. 그래서 고양 막걸리는 지금도 ‘박정희 막걸리’로 불린다. 박 대통령은 대구에 가면 팔공산 자락의 천연수로 빚은 ‘불로 막걸리’에 취했으며, 부산에선 금정산 산성마을의 ‘산성 막걸리’를 즐겼다고.

고양 막걸리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찾았다고 한다. 지난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이 ‘박정희 대통령이 마신 막걸리를 마셔보고 싶다’며 고양 막걸리를 주문했던 것. 당시 방북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막걸리 이야기를 했고, 김정일 위원장이 주문한 것이다. 정주영 회장을 통해 고양 막걸리가 공개적으로 북한에 보내졌다.

시인 천상병(사진 오른쪽)은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막걸리를 예찬했다. 그에게 막걸리는 한마디로 밥이었다. 천 시인은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500원, 1000원씩 받아 막걸리를 사먹었다. 그는 이 때문에 큰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대학친구에게서 막걸리 값을 받아썼던 게 빌미가 돼 6개월간 고문을 받고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와인 못지 않은 전통주 비타민 등 생리 활성성분 '풍부'

요즘 막걸리가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특히 일본에서 대유행이라고 한다. 일본 여성들이 맛이 부드럽고 독하지 않은 한국산 막걸리로 만든 칵테일에 매료돼 있다고 한다. 흔히 막걸리를 마시면 뱃속이 부글거리고 악취가 나서 여성들이 특히 싫어하는데 어쩐 일일까. 살균 막걸리가 그 해답이다.

막걸리는 삶은 쌀(고두밥)이나 곡물에 누룩을 혼합해 충분한 양의 물과 함께 발효시켜 알코올을 생산한 음료다. 흔히 쌀(고두밥), 누룩, 물의 비율을 25:3:72 정도로 혼합해 따뜻한 곳에 두면 빠르면 2~3일 후, 대개 4~5일 후에 발효가 완료된다.

누룩에 여러 가지 곰팡이가 자라 강력한 당화효소를 내면 곡물의 전분을 분해해 포도당을 만들고, 효모가 자라서 알코올을 생산한다. 원래 발효가 끝난 독에 용수(여과틀)를 박아 맑은 술(청주)을 떠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더 넣어 휘휘 저은 후 체로 막 걸러낸 것이 막걸리다. 그래서 청주는 알코올 농도가 12% 이상이 되나 막걸리(탁주)는 6~7% 밖에 되지 않는다. 알코올 농도가 4~5%인 맥주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살균 처리 하면서 수출길 열려

이렇게 막 걸러놓은 막걸리는 발효되지 않은 곡물의 찌꺼기와 알코올을 생산하는 미생물(효모)이 섞여있어 유백색의 탁한 음료이므로 탁주라고도 부른다. 부분 발효된 곡물의 찌꺼기와 효모를 대량 섭취하면 뱃속에서 발효가 일어나 배가 부글거리고 몸에서 악취가 나온다.

그뿐이 아니다. 막걸리를 병에 담아 밀봉하면 계속 발효돼 발생하는 탄산가스로 인해 병이 폭발하게 된다. 샴페인을 능가하는 압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재래식 막걸리는 밀봉되지 않은 병에 담아 유통했다. 또 계속 발효되면 주로 유기산이 생성돼 막걸리가 시어버려 먹을 수 없게 된다.

요즘같이 슈퍼마켓 시대를 지나 대형마트가 주도하는 유통체계에서 밀봉되지 않아 술이 줄줄 흐르고 2~3일이 지나면 시어버리는 상품을 판매해줄 곳은 없다. 더구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 놓은 면단위 양조 판매 허가제가 해방이 된 지 4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유지돼, 독을 몇 개 놓고 동네 판매에 그쳤던 막걸리 양조장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TV 광고를 하는 맥주와는 게임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1980~1990년대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막걸리는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민족사학, 막걸리 대학을 자처하는 고려대학교에서 1990년대 초에 막걸리를 살리기 위한 연구가 시작됐다. 막걸리를 먹은 후 뱃속에서 부글거리고 악취가 나는 것을 막고 유통 중에 시어지지 않고 병을 밀봉해 유통시키려면, 발효를 주도하는 미생물을 사멸시켜야 한다.

가장 안전하고 실용적인 미생물 사멸 방법이 가열 살균인데 막걸리는 가열하면 쓴맛과 화독 냄새가 심해 먹을 수 없게 된다. 연구결과 맛을 크게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미생물을 사멸하는 최적의 가열 조건이 수립됐고, 고온단시간(HTST) 열처리 장치로 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이 인천탁주의 팩막걸리 ‘농주’다.

팩막걸리가 만들어지면서 막걸리의 저장 수명이 6개월 이상으로 연장됐고 일본·미국 등지로 수출길이 열렸다. 국내의 면단위 양조 판매 허가제도 폐지됐다. 막걸리 양조장의 무한 경쟁시대가 열린 것이다.

막걸리를 수출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쌀 소비가 줄고 국내 생산은 과잉상태여서 여러 해 동안 창고에 보관해둔 고미를 막걸리 제조에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밥을 지어 먹을 수 없는 저급 쌀을 가공해 고가의 알코올음료를 만들어 세계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다.

국가 경제를 기울게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포도주와 위스키를 수입해 마시는 오늘의 우리 모습에서 막걸리의 수출은 실낱같은 희망이라고 할만하다. 우리 음식을 수출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것을 좋아하고 널리 애용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를 수출하는 것처럼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 법을 개발 보급해야 수출도 할 수 있다.

와인 못지 않은 전통주 비타민 등 생리 활성성분 '풍부'

팩막걸리 칵테일 기술 발전시켜야

팩막걸리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살아있는 막걸리의 신선미가 없다. 가열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날아가 버리므로 청량감이 없다. 최적 가열 조건에서도 다소 쓴맛이 생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법이 막걸리 칵테일이다. 팩막걸리에 탄산음료나 과일주스 등을 적당히 조합하면 다양하고 개성 있는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

막걸리 칵테일은 알코올 농도가 높지 않아 맥주보다 더 가볍고 부드러운 음료로 즐길 수 있다. 막걸리에는 발효되지 않은 곡물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양성분이 있다. 막걸리는 사용한 원료와 제조 방법에 따라 성분이 크게 다르지만 맥주보다 고형분 함량이 높아 당분이 1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단백질 함량도 비교적 높아 리신, 로이신, 트립토판, 발린, 시스틴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각각 10~30mg 정도 들어 있다. 최근에는 삼해주 제조법으로 만든 양조곡주에서 항산화력이 있는 펩타이드가 분리 동정돼 우리 막걸리에 포도주 못지않은 생리 기능성이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 외에도 막걸리에는 발효 중에 형성된 비타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생리 활성 성분이 풍부하다.

팩막걸리 칵테일의 가장 큰 장점은 혼합되는 탄산음료와 과일주스에 따라 특색 있는 다양한 영양 기호음료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팩막걸리만 있으면 소위 말하는 영양가가 있는 몸에 좋은 술을 즉석에서 기호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대단히 저렴한 가격으로 언제나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료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21세기의 독창적인 한국의 술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제까지 막걸리의 약점으로 알려졌던 본질들이 훌륭한 강점으로 바뀐 것이다. 팩막걸리 칵테일 기술을 발전시켜 맥주와 포도주에 빼앗긴 우리 전통주 시장을 되찾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고급 상품 개발·유통 차별화 힘써야

막걸리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 지난해 출고량이 17만6398㎘로 2003년의 13만8162㎘에 비해 27.7%나 증가했다. 1990년대 중반에야 시작된 막걸리 수출은 조금씩 늘어나 2003년에는 1676㎘를 기록하더니 2008년에는 5457㎘로 225.6%나 되는 높은 성장을 하고 있다. 도대체 막걸리 산업에 무슨 일이 있어 추락하던 소비가 되살아나고 수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단 말인가.

막걸리는 백미와 잡곡, 밀가루 등 곡류를 주원료로 발효시킨 대표적인 우리 술로 옛날부터 농가에서 빚어 마셨기에 농주라고도 한다. 지역마다 물과 원료, 제조 방법이 제각기 달라 수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단순한 상품 구성, 보관 등의 문제로 소비가 크게 감소했다.

하지만 최근 소비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은 고급주를 선호하는 주류 소비 추세와 경기 악화에 따른 값싼 술 선호, 건강식품으로서 막걸리의 가치 재인식, 제조 및 보관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포장용기의 디자인 개발 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여기서 제품의 다양화와 고급화 그리고 시장 확대는 주류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규제 완화로 산업 활성화

주류는 오랫동안 중요한 세원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 엄격하게 통제를 해 왔다. 예를 들어 막걸리의 신규 제조면허는 아예 금지돼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을 가진 사람조차도 새롭게 사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든지 양조용 원료로 양곡 사용을 금지했으며, 막걸리를 ‘알코올 성분 6도 이상’으로 설정하는 등 제품 규격과 제조 방법을 획일적으로 규정했다.

인삼이나 대추 등 식물성 물재의 첨가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제조 용기조차 엄격하게 제한했으니 다양한 고급 막걸리를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룰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더구나 생산된 막걸리는 양조장이 있는 시·군 지역 밖으로는 반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전국을 대상으로 한 유통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막걸리를 포함한 주류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규제는 산업으로서 상품의 품질을 관리하거나 시장 개척을 촉진하기보다는 규제 대상인 세원으로만 인식한 나머지 징세 편의를 위한 관리를 해 왔던 것이다. 결국 고을마다 생활문화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던 우리 술은 사라지고 몇몇 대기업이 수입 원료로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 심지어 양주에 의존하는 왜곡된 주류 산업 구조로 재편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술의 산업적 발전을 촉발한 것은 무엇보다 제조 및 유통 규제의 완화다. 주류의 제조는 국세청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데, 허가 요건으로 시설의 종류와 규모를 제한했다. 즉, 막걸리의 경우 제조장의 시설 기준을 보면 담금 및 제성 시 용기의 재질을 알루미늄 탱크 등으로 한정하고, 용기의 크기를 밑술조는 60ℓ, 발효조는 6000ℓ, 제성조는 7200ℓ 이상으로 용기의 크기를 제한했다.

이밖에 시설 용량을 6㎘(연생산량 72㎘) 이상으로 한정하고, 심지어 수급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면허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막걸리 산업의 신규 진입과 자율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1998년 막걸리 신규제조 면허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용기의 재질을 다양화 하는가하면 시설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또 1962년부터 막걸리의 유통은 해당 시·군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제한해 왔다. 뿐만 아니라 유통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설과 자본금을 확보하도록 의무화하고, 주류상표에 표시하는 글자의 크기까지 획일적으로 규정해 왔다. 막걸리 유통의 활성화를 위해 1998년 시설 및 자본금 규모를 완화하고, 2000년부터는 공급 구역 제한을 폐지해 전국적 유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막걸리의 생산과 품질 고급화를 위해 원료 사용과 제조 방법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동안 막걸리는 ‘발효시킨 술덧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제성한 것’으로 ‘알코올 성분 6도’, 원료는 ‘곡류(전분)와 국(麴)’으로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1965년 양곡관리법에 의해 양조용 원료로 쌀 사용을 금지한 이후 1990년 다시 허용할 때까지 25년 동안 쌀막걸리를 맛볼 수 없었다. 또 1998년에는 막걸리의 규격을 알코올 6도에서 3도 이상으로 조정하고, 참가물료로 인삼이나 잣, 대추 등 식물성 물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가 하면, 최근 막걸리 제조 시 일정량 이하의 과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다양한 고급 막걸리의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

막걸리 산업 활성화로 농촌 경제 살려야


규제 완화와 더불어 사업체의 연구개발과 홍보·판촉 등 시장 개척 노력에 힘입어 최근 막걸리 소비가 다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막걸리가 건강에도 좋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보관 및 유통 기술이 뒷받침되면서 수출까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막걸리 출고량은 지난 1990년의 31%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갈 길도 멀다. 쌀막걸리 한 병(1200㎖)을 만들기 위해서는 쌀 200g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막걸리를 만들 때는 계절별로 생산되는 여러 가지 과일도 원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국산 농산물을 소비하는 데 이만한 것이 별로 없다. 더구나 저도주로 여성들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고, 건강에도 매우 좋다고 알려져 향후 시장 개척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다양한 특산막걸리의 생산과 차별적 유통, 이를 향토음식 등과 결합한 문화상품으로 개발해야 막걸리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막걸리 산업의 활성화는 원료 농산물의 소비와 도농교류 촉진, 수출 증대 등으로 농가 소득을 증대하고 농촌 경제를 활성화하며, 나아가 국민 건강 유지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의 막걸리 업체가 어떻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생산,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다른 향토음식이나 전통식품과 마찬가지로 막걸리 산업도 결국 그 지역의 고유한 원료와 물 맛 그리고 제조기술을 가지고 고급 상품을 개발하여 어떻게 차별적으로 유통할 것이냐에 달려있다. 

지역의 기후나 풍토에 따라 좌우되는 프랑스 와인이나 일본의 사께처럼 지역의 고유한 원부재료와 그 고장의 물을 이용해서 다양한 특산 막걸리를 생산하고, 이를 정확하게 표시하여 소비자에게 알리는 이른바 지역특산 막걸리의 생산과 차별적 유통, 그리고 이를 향토음식이나 농촌체험과 결합한 문화상품으로 개발하는 것만이 모쪼록 불어 온 막걸리 열풍을 산업 발전과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막걸리 무한 변신! '농부의 술' 이미지 훌훌 털고 여성·젊은 층 기호 맞춰 '팔색조 변신'

막걸리의 무한 변신에 대중이 놀라고 있다. 막걸리의 종류를 비롯해 제조기술, 용기 등이 모두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날’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막걸리하면 떠오르는 구세대의 구닥다리 같던 이미지도 훌훌 털어냈다.

포도, 복분자, 청매실 등 과일을 활용한 다양한 색깔의 막걸리가 나오고 있다.

순 우리말인 ‘막걸리’라는 이름은 쌀과 누룩으로 막 걸러낸 술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막걸리에는 이름이 많다. 희다 해서 백주(白酒),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해 탁주(濁酒), 집집마다 담가 먹지 않는 집이 없다 해서 가주(家主), 백성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신다고 해서 향주(鄕酒),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 해서 국주(國酒), 식량 대용 또는 갈증 해소로 농부들이 애용해 왔으므로 농주(農酒)라고도 불렸다.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에 만든다고 해 이화주(梨花酒)라는 낭만적인 이름도 있다.

이중 대중화된 이름은 탁주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탁한 술이 아니기 때문에 탁주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웰빙 막걸리로 불리는 생막걸리는 좋은 쌀을 사용해 맑고 깨끗하다. 웰빙 막걸리의 핵심은 효모다. 막걸리의 원료인 효모는 인체에 유익한 역할을 한다. 막걸리에 살아 있는 효모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아미노산, 비타민, 무기질 등이 포함돼 젊음을 유지하고 장수를 돕는다.

막걸리 제조는 크게 일반과 살균 방식으로 나뉜다. 일반막걸리는 살균막걸리와는 달리 효모균이 살아있으나 보존기간이 매우 짧다. 반면 살균막걸리는 효모균의 진균을 열처리하여 활동할 수 없도록 해 보존성이 좋다. 막걸리 인기의 밑바탕은 바로 맛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제조공정의 일신이었다. 원래 전통적 제조 방법은 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감자 등을 쪄서 건조시킨 다음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청주를 떠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걸러 짜내는 것이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이었던 제조공정이 현대화되면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우선 위생화, 규격화됐다. 발효기술도 표준화됐다. 특히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쓴 결과 막걸리의 맛이 확 달라졌다. 먹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맛도 좋아지고 후유증도 없다보니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이었던 제조공정이 현대화되면서 위생화, 규격화됐다.

전국 시장 50%, 서울 지역 9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장수막걸리 제조업체인 서울탁주는 이미 1992년부터 자동제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서울장수막걸리가 소비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바로 예전과 달라진 맛에 있다고 회사 측은 말한다. 성기욱 서울탁주 전무는 “막걸리 맛은 물, 기술(온도, 원료의 배합), 만드는 사람의 정성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결정된다”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제조자의 정성”이라고 했다. 물과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정성이 부족하면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06년 하반기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막걸리 프랜차이즈 전문점도 맛의 차별화와 고급화에 일조하고 있다. 막걸리 전문점인 탁사발 가맹점 관계자는 “막걸리라고 다 똑같은 막걸리가 아니다”며 “조금씩 맛의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탁사발은 검은콩 막걸리로 유명한 막걸리 전문점이다. 전국적으로 막걸리 프랜차이즈 본사만도 30개가 넘는다.

현재 막걸리 종류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막걸리 = 쌀’이라는 등식이 깨지고 별의별 막걸리가 출시됐다.

생막걸리를 비롯해 복분자, 매실, 배, 잣, 딸기, 인삼, 구기자, 키위, 포도, 복숭아 등 지역 특산물과 과일을 활용한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한 막걸리가 있다. 특허 막걸리도 많다. 지난해에만 17개 브랜드 막걸리가 특허 출원했다. 과실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에 비해 20%가량 비싸지만 소비자들부터 호평 받고 있다.

글로벌식품외식사업단이 운영하는 전통문화주점 브랜드인 ‘뚝탁’이 출시한 ‘막걸리 칵테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 막걸리다. 딸기·키위·복숭아·포도·파인애플·유자·블루베리 등 생과일뿐 아니라 쌀·콩·보리 등을 섞은 오곡, 수삼 등 모두 15가지 종류의 막걸리 칵테일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낸다.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막걸리를 연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색이 곱다. 생과일을 갈아 넣은 과일 막걸리 칵테일은 텁텁한 맛을 싫어하는 젊은 여심을 사로잡으며 막걸리 소비층을 넓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상식 파괴가 성공한 경우다. 제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막걸리에 일정량의 생과일주스 등을 넣고 잘 섞어주면 끝이다. 주류 전문가들은 “웰빙 바람을 타고 맛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막걸리의 등장이 막걸리 부활에 큰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칵테일을 지향한 만큼 고급스런 유리 칵테일잔에 마신다. 막걸리는 대포잔에 마셔야 제격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용기의 진화도 막걸리 인기에 큰 역할을 했다. 기존 막걸리병은 여름철이면 쉽게 변질될 뿐 아니라 다른 술에 비해 유통기한이 짧아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우유에 주로 사용되던 팩 포장의 도입과 캔 형태의 용기 개발, 페트병 사용 등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국산 과일을 첨가한 과실 막걸리의 색을 잘 보여주기 위해 투명 용기도 등장했다.

캔이나 팩에 담은 살균 막걸리가 출시되면서 유통기간이 길어지고 수출까지 가능해졌다. 디자인도 깔끔해졌다. 캔막걸리는 휴대가 간편하고 상온에서 1년간 장기 보존이 가능해 신세대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페트병도 유통기한이 8개월 이상이다.

한때 사망선고를 받고 철저히 외면 받았던 막걸리의 부활은 바로 무한 변신에 있다. 지금의 막걸리의 인기는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세대층을 저변 확대한 피나는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막걸리의 변신은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 시키면 안주 '공짜'

빅뱅현장탐방 전주 삼청동 막걸리타운

전주 막걸리가 세계화에 본격 시동을 건 가운데 전주 시내의 유명한 양대 막걸리촌은 그야말로 주당들로 매일 밤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삼천동의 일명 우체국 골목에는 10여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삼천동 막걸리타운’이 형성돼 있다. 간판은 전통의 고장답게 멋들어진 한자다.

전주의 막걸리타운은 삼천동과 서신동이 양대 산맥이다. 또 평화동, 효자동, 송천동 등 신시가지와 구도심인 경원동 등지에 고루 퍼져 있다. 서민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형성된 막걸리집은 시내 일원만 어림잡아도 250여 개다.

전주 삼천동 막걸리타운에서

이중 원조격으로 통하는 삼천동 우체국 골목 인근에는 수십여 개의 막걸리집이 잇따라 생겨나 하나의 볼거리가 됐다. 1만2000원짜리 막걸리를 시키면 풍성한 전주 인심을 자랑하듯 안주는 공짜로 따라온다.

평균 막걸리 3병이 들어가는 주전자 하나를 시키면 봄나물부터 홍어 삭힌 삼합, 두부김치, 각종 해물과 밑반찬 등 15~20가지의 풍성한 반찬이 따라 나온다. 전주 막걸리집을 갈 때 따로 저녁식사를 하지 말고 가라는 말이 이해될 듯싶다. 여기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추가하면 본격적인 코스요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장어와 해삼, 전복, 새우구이, 산낙지가 잇따라 테이블에 나오면서 여기가 횟집인지, 막걸리집인지 헷갈릴 정도다.

삼천동 사랑채 막걸리 강정숙 사장은 “요즘같이 살기 힘들고 인심이 각박한 시대에 막걸리집은 단순한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장소”라며 “안주 값을 따로 받지 않아 이윤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손님들과 함께 부대끼며 정으로 사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건규(47·전주시 효자동)씨는 “주머니 사정이 나빠 비싼 술집은 못가지만 막걸리집에 오면 얼큰하게 먹고 사시사철 변하는 안주의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막걸리 예찬론을 펼쳤다.

예로부터 전주하면 비빔밥과 한정식, 콩나물국밥을 떠올리지만 전주 막걸리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미식가들의 자랑거리다. 막걸리의 맛과 가게의 멋에 푹 빠진 주당들은 아예 동네마다 단골가게를 하나씩 만들어놓고 막걸리타운 순회를 할 정도다. 대학생 이모(26·전주시 호성동)씨는 “처음에는 막걸리가 조금 거북했지만 먹을수록 달콤하고 깊은 향을 알게 된다"며 "친구들과의 미팅도 대학가 호프집보다 막걸리집에서 하는 횟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는 국내에서 쉽게 찾기 힘든 막걸리 도시다. 예로부터 땅이 비옥하고 인근에 바다와 산을 접하고 있어 풍부한 반찬거리가 넘쳤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전주 인심이 가미돼 막걸리타운이라는 명물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옥마을 인근 등 구도심 지역뿐만 아니라 신시가지 주변, 대단지 아파트촌 주변에 작은 구멍가게 수준의 막걸리집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고 수요층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무엇보다 값싼 술값, 한정식 못지않은 안주, 일명 주모로 통하는 여사장들의 후끈한 인심 등이 어우러지면서 전주 막걸리타운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밤마다 선술집 간판은 불이 꺼질지 모르고 날을 하얗게 밝힌다.

막걸리는 막술? 이젠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맛술!

'싸구려 술'은 이젠 옛말 와인·사케보다 잘 팔려
소비층 20~60대 다양 웰빙 바람도 '큰 몫'

8일 오후 7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100석 규모의 주점 '무이무이'는 유럽 카페처럼 널찍한 야외 테라스에 앉아 웃고 떠드는 20~30대 고객들로 북적거렸다. 직원들이 분주한 걸음으로 유리병에 담은 술을 각 테이블에 놓고 갔다. 메뉴판에 '한국 와인'(Korean wine)이라고 써 있는 이 술은 다름아닌 막걸리. 900mL에 1만원이다.

손님 김진형(여·33·학원강사·서울 압구정동)씨는 뽀얀 먹걸리를 유리잔에 따라 마시며 "톡 쏘는 뒷맛이 상큼해서 요즘 남편과 함께 즐겨 마신다"고 했다.

지배인 송석우(31)씨가 "경북 모처의 오래된 술도가에서 받아오는 옛날식 쌀 막걸리"라며 "요즘 서울 강남의 젊은 손님들이 막걸리를 많이 찾는데, 없어서 못 판다"고 했다. 제대로 된 '물건'(막걸리)만 구하면 와인이나 사케보다 훨씬 잘 팔린다는 것이다.

'싸구려 술'로 신세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던 막걸리가 기사회생했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 강남의 고급 식당, 골프장 등 막걸리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장소에서 막걸리가 '최신 트렌드'로 각광받고 있다. 소비자도 다양해졌다. 대학생 박보람(여·23)씨는 "피부 미용에 좋다 길래", 게임 디자이너 황상훈(32)씨는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이 좋아서", 자영업자 이동국(67)씨는 "소화가 잘 되고 뒤끝이 깔끔해서" 막걸리를 즐긴다고 했다.

경기도 하남시 캐슬렉스 골프장은 지난달 중순부터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가격은 240mL 캔 1개에 5000원이다. 골프장 관계자는 "같은 용량 맥주보다 50%쯤 비싼데도, 맥주보다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이미 많은 골프장들이 막걸리를 그늘집 메뉴에 올려놓고 있다.

8일 오후 강남구 신사동의 주점 ‘무이무이’에서 20대 여자 손님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서민의 술로만 여겨졌던 막걸리가 호텔과 골프장까지 진출할 정도로 ‘막걸리 열풍’이 불고 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도 지난 4월부터 한식당에서 일본인 관광객을 겨냥해 막걸리를 팔기 시작했다. 750mL에 2만원이란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지만, '골든위크(일본의 연휴)'였던 5월 3~6일 동안에만 100만원 이상 매출을 올렸다.

이들에게 막걸리는 돈이 없어서 마시는 막술이 아니다. 중견 건설업체 상무 김모(50)씨는 "80년대에 먹던 막걸리는 마시고 난 뒤 머리가 지끈지끈했는데, 요즘 막걸리는 다음날도 깔끔하다"며 "동년배 친구들끼리 '건강 챙기려면 막걸리가 제일 낫다'고 한다"고 했다. 출하량으로 따지면 막걸리는 여전히 3등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생산된 막걸리는 총 17만5398kL로, 1등인 맥주(205만8550kL)의 10분의 1이 채 안된다. 2등인 소주(100만3568kL)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체 상태에 놓인 맥주나 소주와 달리 막걸리는 국내외 수요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막걸리 수출량은 2004년에 비해 2배 넘게 늘었고, 같은 기간 국내 소비량도 9% 상승했다.

올해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서울지역 막걸리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탁주의 경우 올해 들어 막걸리 판매가 23%가량 늘었다. 특히 '장수 막걸리'는 3월에만 852만여 병이 출고돼 지난해 같은 기간(679만병)보다 26%가량이나 증가했다. 국순당도 4월 한 달간 막걸리 판매가 지난해 상반기 전체 판매보다 4배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막걸리 인기의 배경에는 '웰빙' 바람이 있다"고 했다. 부산 신라대 식품영양학과 배송자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막걸리의 단백질과 섬유질은 항암효과와 고혈압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류 열풍도 막걸리 인기가 되살아난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맛집 안내서 '일본에 먹으러 가자'의 저자 강지현(32)씨는 "막걸리가 젊은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다양한 칵테일이 개발됐고, 이것이 다시 한국으로 역수입되면서 '막걸리는 고루한 술'이라는 선입견이 깨졌다"고 했다.

술 평론가 허시명(48)씨는 "막걸리의 인기는 웰빙과 한류에 의해 생긴 일시적인 유행"이라며 "와인처럼 다양하고 품질 좋은 브랜드가 여럿 나와야 막걸리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압구정동 '무이무이'라는 퓨전 막걸리점에 젊은이들이 모여, 막걸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막걸리가 ‘화려한’ 부활을 하고 있다. 불경기에 어김없이 뜨는 술이 저렴한 막걸리이지만 이번엔 그것만이 주요인은 아니다. 막걸리는 웰빙바람에다 여성, 특히 ‘마코리(막걸리의 일본발음) 찬가’를 부르는 일본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로 판매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폼 나게 ‘신분 상승’ 중인 막걸리의 세계를 알아봤다.

막걸리가 불황을 즐기고 있다. 관련 기업들의 매출이 급상승하고 있는 까닭이다. 막걸리 매출 1위의 서울탁주는 올 1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23% 늘어난 매출실적을 기록했다. 전통주 대표기업 국순당은 막걸리를 지난 2월 6만 병, 3월 10만 병을 팔다가 4월 대폭 증가한 22만 병을 팔아치웠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할 때 4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막걸리의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 제조 및 보관기술의 과학화로 전년 대비 무려 26.6%가 증가한 5457㎘를 수출했다. 이 중 90%(4892㎘)를 일본으로 수출했다.

이동주조㈜는 작년 한 해 동안 막걸리를 일본에 34억원어치 팔았다. 이 회사의 일본 매출은 몇 년째 20~25%씩 증가하고 있다. 참살이탁주도 최근 일본 유통업체와 100만달러 수출 계약을 맺었다. 국순당의 ‘고시레 막걸리’는 지난 4월초 야후재팬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 개시 8분 만에 한정판 패키지 300세트(6병 묶음)가 매진됐으며, 한 달 만에 3만 병이나 팔렸다. 배상면 주가의 ‘대포막걸리’도 한 달 만에 2만5000병이 판매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으로의 막걸리 수출은 402만달러(4891t, 25.4% 증가)로 전년보다 무려 53% 늘어났다. 올해도 40% 이상 증가가 기대된다. 이에 따라 일부 대기업들이 막걸리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걸리 붐이 일어난 이유는 주류 트렌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경기로 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막걸리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통 매장에서 막걸리 1병 가격은 600~1750원, 주점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1.2ℓ)의 값은 3000원을 넘지 않는다. 1만원이면 서너 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때문에 홈플러스의 막걸리 판매량은 지난 3월 한 달 동안 60%나 증가했고, 이마트·롯데마트의 막걸리 판매 상승 폭도 45% 이상 치솟았다.

알코올 도수가 6도 정도로 낮아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데다 비소화성 탄수화물인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변비를 예방하는 등, 웰빙바람을 타고 최근 젊은 여성층에서 막걸리 마니아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촌스러운 뒷골목 술로만 치부되던 막걸리는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 대학가 등에서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 국순당 직영주점인 백세주 마을의 강남점, 선릉점, 삼성점에는 막걸리가 판매 1위 상품으로 올랐다.

국내 경기 침체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난 것도 막걸리 호조의 한 원인이다. 막걸리가 웰빙술로 알려지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마코리집’을 여행코스로 소개하는 여행사가 늘고 있다. 롯데호텔은 막걸리를 찾는 일본관광객이 늘어남에 따라 4월말부터 한식당 ‘무궁화’에서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전통주 전문가들은 최근 ‘막걸리의 부활’이 지속되기 위해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막걸리, 건강하게 마시는 법

막걸리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각종 언론을 통해 막걸리 속 비타민 B군이 피로회복과 피부재생, 시력증진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과일 막걸리에서부터 막걸리 셔벗, 막걸리 칵테일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막걸리도 술'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건강에 좋은 막걸리를 맛있고 건강하게 마시는 법을 소개한다.

첫째, 막걸리는 종이컵 3잔정도가 가장 적절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주나 맥주의 경우 남성은 하루에 2잔, 여성은 하루에 1잔 이하로 마실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소주나 맥주와 달리 막걸리는 통일된 잔이 없어 과음하기 쉽다. 막걸리를 마실 때에는 종이컵 3잔 정도인 남성은 360ml, 여성은 180ml이하로 마시는 것이 좋다.

둘째, 안주는 콩류가 좋다. 술을 마실 때 좋은 안주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면 알코올로 인한 간 손상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막걸리와 궁합이 좋은 안주는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이다. 콩, 두부, 해산물, 채소, 과일 등을 재료로 한 음식이 좋다.

셋째, 막걸리로 과음한 다음 날에는 수분이 많은 과일을 먹는다. 과음한 다음날 술 깨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는 콩나물국, 조갯국, 북어국 등 맑은 국이 좋지만 귤, 오이와 같은 수분이 많은 과일이나 채소도 숙취에 도움이 된다. 과음 다음날 사우나에 가거나 커피, 탄산음료 등을 마시면 탈수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하고, 푹 자면서 쉬는 것이 숙취해소에 가장 좋다.

막걸리 마시면 살이 '술술' 빠진다고? 요즘 인기라는 ‘막걸리 다이어트’에 관한 3가지 의문점

막걸리 속 트립토판과 메티오닌이라는 필수 아미노산 성분이 지방이 저장되는 것을 막는다고 알려지면서 막걸리가 이어트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막걸리도 술이다. 정말 막걸리를 마시면 살이 ‘술술’ 빠질까?
 
Q1. 밥 대신 막걸리만 마시면 배고프지 않을까?

막걸리는 주원료가 쌀, 밀이기 때문에 다른 술과 비교해 포만감이 많다. 순간적인 배고픔은 막걸리 한 사발로 견딜 수 있다. 문제는 막걸리를 마시고 난 다음날이다. 술을 마시면 우리 몸은 지방 대신 알코올을 연소시키지만 탄수화물은 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용된다. 때문에 우리 몸은 부족한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급히 음식을 찾게 된다.

평상시에 밥을 굶어도 이런 욕구는 잘 일어나지 않건만 왜 하필 술 마신 다음날에 심해지는 걸까? 이유는 바로 알코올의 대사 과정에 있다. 평상시 간은 저장된 탄수화물이 떨어지면 지방이나 단백질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들고 탄수화물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알코올이 들어가면 간이 포도당을 합성 하지 못해 유독 단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결국 살을 빼기 위해 막걸리를 밥 대신 마실 경우 배고픔은 참을 수 있겠지만 다음날 몸이 그만큼의 음식을 원하는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Q2. 막걸리를 밥 대신 마시면 건강에 이상은 없을까?

막걸리는 80%가 물이며 나머지 10% 정도는 식이섬유, 비타민B, 그리고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각각 2%, 0.8%로 한 끼를 대신하기에는 부족한 양이다. 만약 다른 음식 없이 막걸리로만 한 끼를 때운다면 영향학적으로 불균형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영양보다 더 걱정되는 건 중독성이다. 막걸리의 도수는 6~8°로 다른 술에 비해 순하지만 같은 양을 매일 마실 경우 중독 가능성에 노출된다. 막걸리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되도록 짧은 기간 안에,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 다른 영양소를 조금씩 섭취하면서 실시해야 한다.
 
Q3. 막걸리로 살을 뺀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 술을 마시면 체중이 증가한다고 한다. 알코올의 열량은 7kcal. 이는 탄수화물 4kcal, 단백질4kcal에 비해서도 높다. 그러나 알코올은 다른 영양소보다 먼저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므로 살찔 염려가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밖에도 막걸리에는 아미노산과 식이섬유가 많아 몸 속 노폐물의 체외 배출을 돕고 지방이 축척 되는 것을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음주와 체중과의 연관성에는 다양한 이견이 있다. 실제 알코올이 체중에 미치는 영향은 성별, 유전인자, 체지방량, 음주량, 횟수, 음주 방법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안주 없이 과음을 하면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발열 반응이 증가해 체중이 줄어든다. 알코올 중독자들 중 뚱뚱한 사람이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술을 많이 마시면 간이 나빠지고 중독에 빠질 수 있으므로 막걸리 다이어트, 절제할 자신이 없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적당히 마시면 '藥' 과하게 마시면 '毒'

막걸리의 건강 효과
하루 1~2잔 정도가 적당 콜레스테롤 수치 낮아져
당뇨약 복용 중 마시면 저혈당 초래… 반주 금물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8도로 맥주와 비슷하다. 막걸리도 너무 많이 마시면 알코올성 지방간이나 간경화를 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적당하게만 마시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루 1~2잔의 술은 특히 혈관에 '보약'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더욱이 막걸리는 발효식품으로 효모, 단백질, 당질, 비타민B2, 콜린 등 기능성 성분들까지 풍부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막걸리도 분명히 술이기 때문에 과음은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 중독 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며 "다만 막걸리를 한 두잔 정도 마신다면 효모와 비타민 등이 풍부하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막걸리의 건강 효과에 대한 연구는 와인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동물실험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부 실험결과가 있을 뿐이다.

▲ 여러 종류의 막걸리 칵테일(막걸리에 복분자·키위·딸기 등 생과일즙을 섞은 것)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당뇨병 있는 사람이 마셔도 되나

술은 혈당 상승을 억제한다. 알코올이 식후 인슐린 분비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간에 저장된 포도당이 혈액 속으로 방출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외국 연구에 따르면 식후 혈당 상승 억제 효과는 와인이 가장 크고, 양주, 맥주 순이다. 막걸리도 맥주와 비슷한 혈당 상승 억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막걸리는 맥주보다 단백질 등의 함량이 높아 혈당 상승억제 효과가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뇨병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은 반주가 금물이다.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박철영 교수는 "당뇨병 약이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데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저혈당이 초래될 수 있으므로 공복 시 막걸리를 포함해 술을 절대 마셔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

하루 1~2잔 정도의 술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춰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입증돼 있다.

이런 효과는 와인뿐 아니라 막걸리에도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신라대 식품영양학과 배송자 교수팀이 실험 쥐 42마리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쪽은 막걸리 농축액을 투여하고, 다른 쪽은 같은 양의 생리 식염수를 투여했다. 시간대별로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사한 결과 막걸리 농축액을 투여한 그룹에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

배 교수는 "알코올을 많이 섭취하면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져 동맥경화증, 고혈압 등의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막걸리는 정반대로 나왔다"며 "왜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낮아졌는지는 더 연구해봐야 하겠지만 막걸리 발효 성분들이 알코올의 작용을 억제하고 약리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 교수팀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막걸리를 거르고 남은 찌꺼기(지게미)에는 고혈압 치료제와 비슷한 정도로 혈압을 낮추는 물질인 펩타이드가 함유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혈압 치료제의 혈압 강하 효과를 90으로 할 때 막걸리 지게미의 효과는 80쯤 된다는 것. 고혈압 예방효과를 얻으려면 막걸리를 잘 흔들어서 마셔야 한다.

항암, 면역력 증강 효과

막걸리의 식이섬유와 단백질 성분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2008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이 농축시킨 막걸리를 유방암, 간암, 대장암, 피부암 세포에 주입한 결과 암 세포 성장억제 효과가 나타났다.

한경대 생명공학부 이학교 교수는 "막걸리는 효모 등이 장 속에서 발효돼 유해 세균을 억제하고 유익한 세균을 활성화시켜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사상체질과 김달래 교수는 "막걸리는 소화가 잘 안되거나, 손발이 찬 소음인에게 좋은 술"이라며 "한 잔(200~250cc)정도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숙취·트림' 줄이고 '유통기한' 길게

▲ 신지호 헬스조선기자
숙취

막걸리의 대표적인 약점은 숙취. 원인은 '카바이트'라는 인공첨가물이다. 국순당연구소 신우창 박사는 "과거 고두밥을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쓴 카바이트가 숙취의 주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카바이트 사용을 금지, 쓰이지 않는다.

발효가 충분치 않아도 숙취가 생긴다. 배상면주가연구소 정창민 소장은 "30℃ 이상에서 발효시키면 메탄올, 프로파놀, 이소부틸 알코올 등이 5~35% 가량 많이 나온다"며 "요즘은 대부분 25℃ 또는 그 이하의 온도에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이런 물질이 적다"고 말했다.

미생물도 숙취의 원인이다. 신우창 박사는 "발효 과정에서 누룩과 효모를 제외한 다른 미생물이 들어가면 이물질이 생겨 숙취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트림

트림도 줄였다. 서울탁주 성기욱 전무(연구원)는 "높은 온도에서 너무 빨리 발효시키면 탄산가스가 많이 생겨 트림을 일으키는데, 요즘은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키기 때문에 탄산가스가 훨씬 줄었다"고 말했다.

생막걸리는 유통 과정에서 효모가 계속 발효 작용을 해 탄산가스를 많이 발생시키지만 살균막걸리는 유통과정에서 탄산가스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짧은 유통기한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짧은 것이 치명적인 약점.

효모를 그대로 살린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지금도 10일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균막걸리는 유통기한이 6개월~1년으로 훨씬 길다. 효모가 살아 있지만 특수 제작된 용기에 담으면 유통기한을 30일까지 늘릴 수 있다.
 
[막걸리 기행] 살기 좋은 곳은 취하기도 좋은 곳
술 평론가가 뽑은 '막걸리 명당'
허시명 술평론가·여행작가
 
▲ 영양 양조장 /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허시명씨는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다. 술을 찾아 방방곡곡을 떠도는 여행작가이자 술(酒)평론가다. 정작 자신은 집안 내력으로 한 잔이면 얼굴이 벌겋게 타오를 정도로 술이 약하긴 하지만 말이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찾아낸 맛 좋은 막걸리를 소개한다. 그의 말마따나 "술 좋은 곳은 물이 좋고, 물 좋은 곳은 산이 좋고, 산 좋은 곳은 경치도 좋으니" 여행지로도 빠지지 않는 동네들이다.

● 태인 막걸리_ 전북 태인, 1000년 전 최치원이 올랐던 피향정 누각에서 200m 떨어진 곳에 태인양조장이 있다. 송영승(1917~1979)씨가 일제시대 때부터 운영해왔고, 1975년부터는 그의 아들 송명섭씨가 운영하고 있다. 술은 그가 직접 농사지은 쌀로 빚는다. 찹쌀농사를 몇 해 짓다 보니 그의 막걸리는 졸지에 찹쌀 막걸리(어떤 원료가 30% 이상 포함되면 술에 그 원료 이름을 붙일 수 있다)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는 특별히 찹쌀로 막걸리를 빚는다고 내세우지도 않는다. 희한한 일이다. 그는 2003년 호남의 명주 죽력고(대나무진액으로 만든 술·竹瀝膏)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 막걸리와 죽력고를 함께 빚고 있다.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 395. 택배 안 됨. (063)534-4018

● 부산 산성막걸리_ 막걸리를 이야기할 때 부산 산성마을의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산성막걸리는 전통 막걸리의 원형을 가장 잘 지켜내고 있다. 직접 만든 전통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매우 드문 곳이다. 누룩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마을도 대한민국에 이 마을밖에 없다. 통밀을 빻아서 만든 누룩은 정확하게 라지(large) 피자 형태를 닮았다. 산성막걸리는 알코올 8%로 일반 막걸리 6%보다 도수가 높다. 막걸리가 막 익었을 때면 누룩향이 구수하고 향긋하다. 민속주 1호로 지정된 술이다. '금정산성 토산주'라고도 부른다. 택배 가능. 750mL 10병 1만9000원(택배비 포함). 부산 금정구 금성동 554-1. (051)517-6552

● 인월 탁주_ 지리산 아래 인월 5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린다. 인월장에는 30년 된 '짐빨' 자전거로 장터를 누비며 막걸리를 배달하는 아저씨가 있다. 장터의 끄트머리쯤에 자리잡은 인월양조장 주인인 송준수(60)씨다. 그는 14세부터 막걸리를 빚기 시작하여 남원시 아영양조장, 경남 거창양조장을 거쳐 1978년경에 인월양조장으로 와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인월 그 깊은 지리산 산간마을에도 막걸리는 흘러간 유행가가 되었지만, 송씨는 그 유행가를 부르는 명가수다. 택배 가능. 20L 2만원(택배비 별도). 전북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 265-4. (063)636-2020

● 참살이 탁주_ 본디 막걸리는 밀가루가 아니라 쌀로 빚었으니, 쌀막걸리로 돌아가자는 주의인데, 참살이 탁주는 아예 친환경쌀로 돌아갔다. 술 빚는 이는 남한산성 소주로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강석필(75)씨다. 소주는 긴 호흡에 팔리는 술이라, 2005년부터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쌀누룩에 쌀고두밥을 넣어서 빚는다. 참살이 탁주는 유기농 매장 신시에서 팔고 있고, 음식체인점 뚝탁에서도 팔고 있다. 네티즌들이 참살이 탁주를 진탕 먹고 다음 날 숙취 반응을 살피었더니 모두 무사하고 기분 좋았다는 극찬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택배 가능. 1.2L 3000원(택배비 별도). 경기도 광주시 실촌읍 연곡리 51. (031)769-1100

● 주문진 탁주_ 강원도 강릉에서 알아주는 막걸리가 주문진 탁주다. 주문진 양조장에서는 강릉단오제 때에 사용하는 단오신주를 8년째 빚어오고 있다. 단오신주는 단오제를 앞두고 강릉 사람들이 헌납한 쌀을 모아 양조장에 제공하고, 그 쌀로 빚은 술이다. 주문진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박용덕씨는 1962년 군대를 제대하고 잠깐 술을 빚다가,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 그는 막걸리에서 한 단계 향상된 동동주를 빚고 있다. 알코올 도수는 8%로 일반 막걸리보다 세다. 1993년부터 쌀누룩에 쌀고두밥을 넣어서 빚고 있는데, 술맛은 쌀로 빚어 뻑뻑하지 않고 부드럽다. 택배 가능. 750mL 20병 2만원(택배비 별도부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교항리 71-4. (033)662-3073

● 송정리 금천 탁주_ 목포와 광주로 갈리는 열차역이 있는 송정리의 명물이 금천 주조장 막걸리다. 장날에 국밥에 금천 막걸리 한 잔 걸쳐야, 장날 기분에 제대로 몸을 실을 수 있다. 하지만 술 나가는 양이 줄어, 금천 주조장도 옛날을 아련하게 그리워하는 신세가 되었다. 금천 주조장에 딸려 있던 송학곡자 제조장은 분가하여 광산구 삼거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지만 금천 주조장은 예나 이제나 아침 일찍 새 막걸리를 배달하고, 진열장에 남은 전날 막걸리를 수거해온다. 아침 일찍 일 나가는 인부들의 간식용 막걸리를 제공하기 위해서고, 늘 신선한 막걸리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택배 안 됨. 광주 광산구 송정동 567-38, (062)944-0018. 송학곡자 (062)942-8447

[막걸리 기행] 이 집에서 찾았다, 막걸리의 원형 

술 따라 마음 따라 잔 채우고
우리 鄕愁<향수>의 香水<향수>에 취하고

촌스럽다, 머리 아프다 무시당하던 막걸리가 화려하게 돌아왔습니다. 서울탁주제조협회에 따르면, 2003년 4918만3000L이던 막걸리 출고량은 매년 10만L가량 늘더니 지난해 7168만9000L를 기록했습니다. 전국적으로도 매년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쌀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전반적으로 막걸리 품질이 좋아졌다고 하고, 건강을 생각해 도수 낮은 술을 찾는 트렌드와도 연관이 있다고도 합니다. 경기가 나빠져 술안주가 크게 필요 없는 술이 인기라는 설도 있고, 산행인구가 늘어나면서 '산꾼들의 음료' 막걸리 소비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막걸리가 사랑받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이번주 주말매거진은 막걸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우선 옛 술도가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경북 영양막걸리를 만나보시죠.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도가 경북 영양막걸리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지긴 했지만 '영양양조장' 건물은 아직 강건하다. 83년 전 세운 건물이라지만 벽에 금 하나 없다. "일본 사람들이 워낙 꼼꼼하고 튼튼하게 지어놓아서 그렇습니다. 이 기둥은 압록강 적송이라는데 요즘 보긴 드문 목재라고 하고요. 지붕은 지진도 견디도록 트러스 구조이고, 나무못만 쓴 것도 특이합니다."

경북 영양에 있는 영양양조장은 살아있는 '술 박물관'이다. 현존하는 막걸리 양조장 중 가장 오래됐다. 1926년 일제시대 청주양조장으로 지어졌다가 해방 후부터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누룩을 띄우는 건물은 벽과 천장이 두겹에다 폭이 1m쯤 된다. 벽 사이에 왕겨를 채워 건물 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했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칠 벗겨진 주판이 놓인 낡은 책상, 비스듬하게 쌓인 국함(누룩 담는 상자), 삐걱대는 미닫이문까지 옛것 그대로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6년 이 양조장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겠다고 예고했다.

▲ 1926년 세워진 영양막걸리 양조장. 한창때는 창문 앞 자전거 대기소가 언제나 막걸리를 받아가려는 '짐빨' 자전거로 만원이었다고 한다.

양조장 현관문 위에 '전화6'이라는 작은 나무 푯말이 붙어있다. "일제시절 영양에 전화가 열대뿐이었어요. 그 열대 중에서 이 양조장에 여섯번째 전화기가 설치됐다는 뜻입니다. 관공서가 1번, 경찰서가 2번 등 관공서가 1번부터 5번까지 차지했고, 민간에서는 이 양조장이 첫번째였죠. 영양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았다는 뜻입니다." 영양군 문화재관리담당 김동걸씨 말이다.

'서열 6위'를 공식 인정받았을 만큼 술을 많이 팔았고 돈도 많이 벌어들였다. '영양탁주합동' 권시복(62) 대표는 "이렇게 서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현관 옆 창문 앞에 자전거가 꽉 서 있었지. 세우면 (막걸리 실어서) 나가고 세우면 나가고. 술통을 달고 싣고 배달했죠."

영양은 예부터 막걸리 생산량이 많았다. 면마다 동마다 양조장이 있었다. "담배와 고추의 고장이라 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봄부터 가을 농번기에는 막걸리 판매가 절정이었죠. 목마를 때 막걸리가 최고거든요. 사이다 맥주는 (마시고) 돌아서면 목마르지만, 막걸리는 그렇지 않잖습니까."

▲ (왼쪽 사진)막걸리는 만드는 과정에서 정성껏 휘저어야 한다. (오른쪽 사진) 비스듬히 쌓인 옛 국함(누룩상자). 플라스틱 국함에 밀려 이제는‘퇴역’했다. / 유창우 기자

1960~70년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이 빠져 나갔고, 막걸리 인기도 시들해졌다. 양조장도 하나씩 문 닫았다. 이제 영양에 남은 술도가는 이곳 하나다. '영양생(生)막걸리'란 이름으로 팔리는 이 양조장 막걸리는 원료나 생산방식에서 옛 방식 그대로는 아니다. 쌀과 밀가루를 절반씩 섞는다. 1961년 정부의 주세법 시행령 개정과 1966년 쌀 사용 전면 금지 이후 밀가루로만 만들다가, 1990년 금지가 풀리고 쌀값이 떨어지면서 차츰 쌀 비중이 높아졌다. 요즘 대부분의 막걸리가 그렇듯이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섞기도 한다. 그런데 병에는 원료를 '밀 100%'로 표기하고 있다. 권 대표는 "인쇄 바꾸기가 힘들어서…"라고 했다.

그래도 술맛만큼은 옛 시골 막걸리 맛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한다는 평가다. 누르스름한 빛깔의 영양막걸리는 단맛이 그리 세지 않고 톡 쏘는 탄산이 별로 없고 묽은 편이다. 첫 입에 확 끌어당기는 '섹시함'은 없지만, 뙤약볕에서 일한 다음 벌컥벌컥 들이켜며 갈증을 해소하기 알맞을, '농부의 막걸리'이다. 여행작가이자 술평론가인 허시명씨는 "서울을 공략하는 야심찬 술도가들이 도회지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해 단맛을 강조하고 있지만, 영양막걸리를 마시는 주 소비자가 60~70대로 옛 막걸리에 대한 향수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영양막걸리 사려면_ 양조장에 오면 1병(750mL)을 750원에 살 수 있다. 영양군 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1병 900원에 살 수도 있다. 택배 주문 가능하다. 20L들이 사각형 통에 담아 보내준다. 택배비 따로 부담. 영양탁주합동 (054)682-1501~2,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 550-6.

● 맛보려면_ 영양군 내 식당에서 대개 1주전자에 1500원 받는다. 양조장 맞은편 '부일식당'은 영양군청 직원들이 입맛을 다시며 "매운탕, 추어탕이 사람 반 쥑인다"며 적극 추천한 식당이다. 매운탕·추어탕 1만5000~2만원. 바삭하면서도 느끼하지 않게 지진 파전(5000원)이 막걸리와 찰떡궁합. (054)682-2414

● 다른 먹거리_ 영양은 고추의 고장. 영양고추유통공사(080-680-9704· www.yyrptc.or.kr·경북 영양군 일월면 가곡리 162-1)에 예약하면 공장 견학하고 그 유명한 영양고추도 속지 않고 살 수 있다. 영양한우도 꽤 유명하다. 영양군청 주변 '맘포식당(054-683-2339)' '실비식당(054-683-2463)' 등 한우집 20여 곳이 몰렸다. 쇠고기·쇠고기주물럭 2만1000원(200g)

● 볼거리_ '한국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瑞石池·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394-1)가 아름답다. 영양군 문화관광과에 미리 전화하면 해설해준다. 재령 이씨 집성촌 두들마을(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www.dudle.co.k·017-533-8154)에는 전통가옥 30채가 남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을 300여 년 전 여기 살던 정부인 장씨가 썼다. 정부인장씨예절관(054-680-6055)에 예약하면 디미방에 나오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중앙고속도로-서안동IC-영덕 방향-진보-영양

영양군 문화관광과 (054)680-6067, www.tour.yyg.go.kr

[막걸리 기행] 왕의 귀환…벨벳 감촉 막걸리, 이화주
고려 왕실·조선 반가에서 마시던 술
입가에 막걸리 자국이 자리잡더니 흘러내리지 않는다. 막걸리가 떠먹는 요구르트처럼 걸쭉하다. 국순당 연구소 김계원(52) 소장은 "조선시대 문헌에 '이화주(梨花酒)'를 떠먹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말했다.

이화주. 배꽃(梨花)처럼 뽀얗다는 뜻이거나 배꽃이 필 무렵 빚었다고 붙인 이름으로 짐작한다. 조선시대 반가에서 담가 마시던 고급 탁주다. 역사가 고려까지 올라간다. '한림별곡'의 '이화주를 사발 가득 부어 마신다'는 구절이 근거다. 김계원 소장은 "고려 때에는 궁중에서 마시던 술"이라며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 겪은 일들을 적은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탁주는 아마도 이화주였을 것"이라고 했다.

이화주는 쌀로 빚은 누룩으로 만든다. 밀누룩을 쓰는 일반 막걸리와 가장 큰 차이다. 조선시대 귀한 쌀로 누룩까지 빚어 만들 만한 여력을 가진 건 사대부 가문들이었다. 김 소장은 "조선시대 양반과 서민이 마시는 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막걸리와 탁주를 같이 쓰죠.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예전엔 둘을 구분했다는 말이 있어요. 이화주처럼 쌀로 빚은 고급 술을 탁주, 약주를 뜨고 남은 것에 물을 타면 막걸리라고 했다는 거죠."
▲ ◀크림처럼 신선하면서도 농축된 흰 빛을 띠는 이화주. 벨벳처럼 매끄럽게 입안을 감싼다.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배꽃처럼 하얀 빛깔은 쌀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밀누룩을 쓰면 누르스름한 흰색이 된다. 누룩 모양도 특이하다. 쌀을 물에 담갔다가 물을 빼고 가루를 내서 달걀 모양으로 뭉친다. 달걀 모양 누룩을 솔잎을 깐 바닥에 놓고 1주일 정도 발효시킨다. 누룩이 만들어지면 쌀을 물에 불려 가루를 내 떡을 찐다. 떡을 풀면서 누룩도 풀어 섞는다. 때때로 저어가며 3주 발효시키면 이화주가 완성된다.

일반 막걸리와 달리 물을 타지 않는다는 점도 독특하다. 재료가 삭으면서 생기는 수분이 전부다. 그래서 걸쭉하다. 알코올 도수가 14~15도로 6~8도인 일반 막걸리보다 훨씬 높다.

일제시대와 쌀로 술 빚기를 금한 1960년대를 거치면서 이화주 만드는 노하우를 아는 사람이 사라졌다. 문헌에 이름만 남아 있던 이화주를 지난해 국순당 연구소에서 되살려냈다. 김 소장은 "이화주가 어떤 맛이라야 한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화주에 관해 남은 조선시대 기록이 대여섯개 됩니다. 그런데 기록마다 이화주 만드는 법이 다 달라요. 떡처럼 쪄서 만들어야 한다는 문헌도, 죽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헌도 있어요. 다 해봤죠. 아, 정말 힘들었어요."

3년여 연구 끝에 지난해 이화주를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 아직 완전 대량 생산은 하지 못한다. 12월부터 국순당에서 운영하는 '백세주마을'에서 조금씩 선보였다. 이화주를 한달만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치운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마니아층이 생겼다. 요구르트처럼 새콤한 향, 걸쭉하면서도 벨벳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이 독특한 이화주를 달라는 주문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화주를 찾는 손님도 늘었다. 올 1월에는 아예 고정 메뉴로 자리잡았다.

여자 손님들은 사이다에 이화주를 섞어 마시기를 즐긴다. 김 소장은 "빈대떡이나 생선전, 파전 따위 저냐와 궁합이 좋다"면서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고기와도 썩 어울릴 듯하다"고 했다. 300mL 1병 6000원. 술술 넘어가지만 14~15도로 생각보다 훨씬 독하니 조심조심 마셔야 한다. 백세주마을 매장은 국순당 홈페이지(www.ksdb.co.kr)에서 찾을 수 있다. 종각점 (02)720-0055, 서울 종로구 관철동 256 2층
[막걸리 기행] 만원 한장이면 배 두드리며 취한다
애호가가 추천한 저렴한 막걸리 집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라던 천상병 시인, 막걸리 '곱빼기'를 들이켜자 '찌르르 하고 창자에 퍼지며 화끈하였다'('운수 좋은 날')던 소설가 현진건…. 한국인치고 막걸리에 대해 '할 말' 하나쯤 없는 이가 있을까. 지갑에 만원짜리 딱 한장 있는 날도 부담 없이 친구 한명 불러낼 수 있는 서울 시내 저렴한 막걸리 주점을 막걸리 애호가들이 추천했다.

▲ 김치전 부추전 부침두부 동그랑땡 산적 호박전 생선 전 고추전 등이 푸짐하게 나 오는 모둠전 소(小)가 아현 동‘늘푸른식당’에선 6000 원이다 / 좌석 10개에 불과한 신촌역 다주쇼핑센터 지하‘지지고 볶고 순대곱창볶음’은 ‘충청도 어머니 인심’으로 입소문이 났다. 철판 가득 순 대·곱창 볶음 1인분 7000원

● 늘푸른식당

아현동 시장 골목에서 16년째 장사 중인 유미자씨가 가게 앞에서 지지는 고소한 전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2일 오후 3시. 월요일인데도 4인용 식탁 8개 중 7개가 '한잔' 하는 사람들로 차 있다. 식탁 위마다 달콤하고 시원한 서울장수막걸리 초록색 병이 놓였다. 이 식당을 추천한 우리테마투어 이승원 사장은 "처음에 셋이 와서 모둠전 대(大)를 시켰다가 접시 위에 산처럼 쌓인 전을 보고 경악했다"고 했다. 6000원짜리 '모둠전 소(小)'를 시켰더니 김치전 부추전 부침두부 동그랑땡 산적 호박전 생선전 고추전이 각각 두세개씩, 접시 가득 나왔다. 막걸리 두병 곁들이면 딱 만원이다. 낮 12시~오후 11시(2·4주 일요일 휴뮤). 2호선 아현역 3·4번 출구로 나와 '한세사이버보안고등학교' 방향으로 걷다 오른쪽에 보이는 아현시장 입구로 들어가 '아현종로약국' 맞은편. 마포구 아현2동 327-2·(02)362-9604


● 지지고 볶고 순대곱창볶음

'백악관나이트' 간판이 크게 붙은 '신촌 다주 쇼핑' 지하 시장 한쪽에 자리잡은 25년 역사 '지지고 볶고 순대곱창볶음'은 사장 박춘자씨의 '충청도 어머니 인심'으로 입소문이 났다. 가게 안쪽 식탁 두개엔 약 6석, 주인 아주머니가 순대를 볶는 좌판 앞에 '바(bar)'처럼 앉을 수 있는 동그란 의자 네개가 고작인 '초미니 가게'지만 단골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순대와 곱창을 깻잎 양배추 당면 양파 등과 함께 맵지 않게 넉넉히 볶아 고추장 양념에 찍어 후후 불며 먹는다. 바로 옆 일신정육점(02-336-9043)에서 삼겹살(300g 5500원)을 사오면 5000원 정도 받고 양파 송송 썰어 넣고 볶아 준다. 서울장수막걸리를 섞다가 자꾸 터뜨려 흘리자 주인 아주머니가 '비법'을 가르쳐줬다. "막걸리를 뒤집어서유 막 흔들지 말고 몸통을 비벼서 섞으셔유. 다시 뒤집어서 여기 '장수'라고 쓰인 데를 서너 번 꾹 누르는 거유." 순대·곱창볶음(보통 '반반'을 주문한다) 7000원, 막걸리 한병 2000원. 오후 1시~오후 9시30분(1·3주 일요일 휴무). 신촌 지하철역 8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면 왼편 '신촌다주쇼핑' 지하 1층. 마포구 노고산동 49-55·(02)3422- 5989·010-3124-5989

▲ 포장마차 분위기인 망원동 ‘할머니빈대떡’. 아삭아삭 고소한 녹두빈대떡이 3000 원, 막걸리 두 병 곁들이면 딱 만원이다./직접 만드는 고소한 손두 부와 자극적이지 않은 볶음 김치 하나면 누룩막걸리 한 뚝배기가 금세 사라진다. 천 호동‘할매집'.

● 망원동 '할머니빈대떡'

낮부터 한잔 하는 주당(酒黨)들이 아지트 삼아 많이 찾는다. 녹두빈대떡 3000원, 해물파전·부추전·김치전 3000원, 술국 5000원…. 파격적인 가격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노릇노릇 구워 십(十)자 모양으로 사등분해주는, 지름 한뼘 반 정도의 녹두빈대떡이 막걸리 안주론 인기다. 안주가 싼 대신 서울장수막걸리는 한병 3000원을 받는다. 오전 10시~밤 12시.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에 보이는 농협 건물에서 시장 골목 안으로 20m 정도 들어가면 왼쪽. 마포구 망원동 57-287·(02)334-2577


● 천호동 '할매집'

고추장 양념해 볶은 얼큰한 '돼지껍데기(5000원)'는 두툼하게 썰어 쫄깃쫄길 씹는 맛이 일품이다. 입안에 넣고 씹으면 고소한 맛이 계속 배어 나온다. 따끈한 두부에 자극적이지 않은 김치볶음이 곁들여 나오는 두부김치도 막걸리와 '아삼륙'이다. '찹쌀로 빚은 옛날 누룩막걸리' 작은 뚝배기가 3000원. 고소해 입에 딱 붙는 '콩탕'(콩비지찌개와 비슷하다) 한 뚝배기가 기본 안주로 나온다. 식당 직원들이 두부와 막걸리를 직접 만든다. 오후 1시~오전 1시(일요일 휴무). 천호역 3번 출구로 나와 현대백화점 반대 쪽으로 직진하다 횡단보도 건너 천호공원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쭉 간다. 천일중학교 정문 맞은편.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361-38·(02)473-3753


식당 추천=서울탁주제조협회 이봉흠 상무, 류태현(다음 카페 '전통주 만들기' 회원), 우리테마투어 이승원 사장

새로운 주모 맞은 마지막 주막…경북 예천 '삼강주막'
바쁜 걸음 멈추고 여기서 목이나 축이고 가이소
주모로 뽑힌 비결? 이 술상에 담겨있지
경북 상주에 사는 한민광(57)씨가 지난 22일 오후 친구들과 '삼강주막(三江酒幕)'을 찾았다. "주막이 아직 있다고 해서 구경 왔어요. 진짜 그대로네요. 옛날에 여기 나루터에서 배도 타고 했거든요." 함께 온 친구들도 신이 났다. "옛날 서까래 그대로네. 불 때는 아궁이도 다 있어. 솥도 걸렸고. 잘 왔다, 야!"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이 내성천, 금천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삼강 나루터가 있다. 일제 때만해도 과거 물자와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던 교통 요지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 쌀을 실은 미곡선 상인들의 물물교환으로 분주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장사치와 물자로 북적거렸다. 장이 서는 날이면 하루에도 나룻배가 30여 차례 강 이쪽과 저쪽을 오갔다.

▲ 하루 일과를 마친 삼강주막 툇마루에 마을 주민들이 앉아 맛걸리를 마신다. 주막 뒤로 강물이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canyou@chosun.com

삼강리 주민들은 그 시절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사람들이 전부 일루 건너가. 소들도 전부 이리로 넘어갔지. 소장수들이 소를 댓 마리씩 사가지고 여기서 물을 건너 서울로 올라갔어요. 소마다 지가 신을 짚신을 한 짐씩 짊어지고 강을 건네. 그래 문경새재 넘어가지고 소한테 짚신 갈아 신겨가면서 서울까지 가는 거요. 과거 보는 사람들도 그래 다니고. 여기 주막도 손님이 그랬기 많았고. 소 일곱 마리를 실을 수 있는 나룻배와 사람 20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 그렇게 두 척이 항상 왔다갔다 했지."

삼강주막은 1900년쯤부터 삼강 나루터, 거대한 회나무 아래 자리 잡았다. 지난 2005년 90세로 사망한 '마지막 주모(酒母)' 유옥연 할머니가 삼강주막을 꾸리기 시작한 건 1930년대였다. 70년 가까이 손님을 받았다. 유 할머니 이전에도 주모가 둘쯤 더 있었다지만, 주민들은 "주모라고 하면 유 할머니만 떠오른다"고 했다.

삼강리 정재윤 이장은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몰랐지만 머리가 비상했다"고 했다. "외상을 주면 부엌 흙벽에 칼로 금을 그었어요.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이고,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뜻이에요. 외상값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지요." 부엌 흙벽에는 길고 짧은 금이 무수히 남아있다. 가로 긴 금이 없는 것도 많은 걸 보면, 주모의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번성하던 나루터와 주막은 1970년대부터 쇠락했다. 나루터 아래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인적이 끊겼다. 건설 붐으로 강 바닥에서 골재를 파내면서 그렇잖아도 줄어든 물이 더 말랐다. 회나무 뒤통수까지 차 오르던 강물은 이제 나루터 저 아래에서 골골 흐를 뿐이다.

손님은 끊겼지만 유 할머니는 주막을 유지했다. "그 할마시 아니면 벌써 없어졌지. 젊은 사람 같으면 접었을텐데. 마을 사람 오면 소주 한 병 팔고, 두 병 팔고 했지. 배 없어지고는 할마시 혼자 세월을 보냈어요."

▲ 새 주모 권태순씨와 그녀의 솜씨./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기자 canyou@chosun.com

유옥연 할머니는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돌볼 주모가 없어진 삼강주막은 허물어져갔다. "우리나라에 주막은 이것뿐인데, 없어져야 되겠느냐"며 삼강리 주민들이 주막 살리기에 나섰다.

2005년 12월 경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정재윤 이장은 "저 부엌 덕분에 문화재로 지정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일반 가정집 부엌과 다르게 문이 네 개나 있죠? 몸만 움직이면 사방 팔방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주막집은 작지만 옹골차다. "여자가 작아도 아는 낳는다고, 있을 건 다 있다"는 이장 말마따나, 16평에 불과하지만 부엌, 방 둘, 툇마루에 다락까지 있다.

경북도에서 1억5000만원을 지원 받아 훼손된 목재와 지붕을 걷어내고 초가집을 복원했다. 유 할머니가 금을 새긴 흙벽은 그대로 뜯어냈다가 고스란히 살렸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원두막 두 채도 세웠다. 1934년 '갑술년 대홍수'로 무너진 흙집 두 채도 주막 앞에 다시 들어선다. 한 채는 사공이, 다른 한 채는 보부상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지난해에는 새 주모를 '공모'했다. 그래 봤자 삼강리 마을 주민 대상이었지만. 선발 조건은 딱 세 가지였다. '술을 직접 담가야 한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 '주막을 비우면 안된다'. 주민 셋이 주모 선발경쟁에 나섰고, 권태순(70)씨가 유 할머니의 뒤를 이을 주모로 선발됐다. 나이도 적당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술을 잘 빚어서 남보다 높은 점수를 땄다.

'마지막 주막이 복원됐다'고 소문이 나면서 요즘 삼강주막에는 다시 손님이 몰린다. 예전 같지야 않겠지만 평일 70여 명, 주말이면 200여 명이 삼강주막을 찾는다. 나이 좀 있는 분들은 옛 주막이 남아있다는 게 반갑고, 젊은 사람들은 신기하다. 주막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맛도 꽤 근사하다. 권태순 주모가 스물한 살에 시집와서부터 빚은 막걸리는 옛날 맛 그대로다.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 두부와 묵도 공장에서 만든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안주 중에서 으뜸은 배추전. 물에다 밀가루 푼 묽은 반죽에 배춧잎을 잠깐 담갔다가 아무런 고명도 없이 그냥 프라이팬에 지져낸다. 심심하지만, 먹다 보면 희미한 단맛과 감칠맛이 배 나온다. 꾸밈 없고 투박한, 그야말로 '경상도스런' 음식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1되) 5000원, 배추전 3000원, 두부 2000원, 묵 2000원. 1만2000원짜리 '세트'로 시키면 막걸리부터 배추전, 두부, 묵, 김치가 한꺼번에 나온다.

권태순씨는 주모가 된 것이 영 탐탁잖은 척한다. "사람 꼬라지 안 되고 이게 뭐꼬?" 권 주모는 막걸리 자국이 확연한 바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삼강리 노인회장인 남편 정수영(71)씨가 주막 살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 중 하나니, 주모도 남편이 하자 해서 나섰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주모 일을 시작한 뒤부터 권씨는 새벽 두 시는 돼야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손님에게 낼 막걸리를 빚고, 묵을 쑤고, 두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그래도 자기가 만든 술이며 안주를 손님들이 잘 먹으니 기분 좋다. 여기저기 신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유 할머니를 생각하며 삼강주막을 오래 보존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짜로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 점촌·함창IC에서 빠져나온다. 문경시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산양면 소재지에서 59번 지방도를 만난다. 풍양 방면으로 10분쯤 가면 삼강교다. 다리를 건너면 삼강주막 이정표가 보인다. 주막은 다리 바로 옆에 있다.

예천군 문화관광과 (054)650-6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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