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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2009 ‘격세지감’ 사전

醉月 2009. 3. 28. 06:45

 

 

<한겨레21> 창간 15돌을 맞아 가나다순으로 뽑아본 ‘15년 변화’의 상징 열쇳말들

15년 전을 생각해보면, 까마득하다. 그땐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흔하지 않았고, 동방신기도 소녀시대도 없었다. 스타벅스도 버스카드도 없었다. 와, 15년 사이에 많이 변했구나. 한데 정신 차려보니 꼭 그렇지도 않다. 15년 동안 고집스럽게도 변하지 않은 것들 눈에 밟힌다. 우리 일상이 변화의 급물살을 타는 사이, 정치·경제·남북관계 등 ‘거대한 것들’은 좀처럼 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최근엔 ‘인권 시계가 거꾸로 도는’ 모습까지 보이니 그야말로 ‘안습’이다. 아, ‘안습’ 역시 ‘20세기 소년’은 모르는 단어다. ‘상전벽해’면서 ‘고정불변’인 세상, <한겨레21>이 창간 15돌을 맞아 지난 15년을 추적해봤다. ‘15년 뒤’ 2024년의 세상 이야기는 덤이다. 편집자

왔어요, 왔어. ‘15년 상전벽해 사전’이 왔어요. ㄱ·ㄴ·ㄷ 순으로 한 단어씩 준비했습니다. 이 사전이 이래 봬도 ‘위키피디아식 사전’(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입니다. 오프라인 사전인데 무슨 말이냐고요? 일단 읽어보세요. 봐요, 벌써 “김건모의 <핑계>? 와, 나도 이 음반 있는데…” “통키! 아침 해가 빛나는~♬” “내가 언제부터 마트에 가게 됐지?”와 같은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날 겁니다. 딱딱한 사전에 여러분의 추억으로 살을 붙여 읽어주세요. 그게 바로 위키피디아!

ㄱ 김건모

“내게 그런 핑계 대지 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웃을 수가 없다. 15년 사이 음반 시장은 아찔하게 변했다. 1994년은 ‘김건모의 해’였다. <핑계>가 수록된 김건모 2집은 당시 2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갔고 방송 3사 가요대상을 휩쓸었다. 김건모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너무 바빠 인기를 제대로 실감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994년에는 김건모의 <핑계> 외에 신승훈의 <그 후로 오랫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등이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했다. 김학선 <한겨레> 대중문화팀 객원기자는 “판매만으로는 1994년이 최절정기였다. 당시 ‘길보드’라 불린 불법 복제 테이프도 공식 판매량만큼 팔렸다고 하니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좋았던 한때’인 셈”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다운로드를 통한 불법 음원 유출이 시작됐다. 음반을 팔아선 도저히 돈을 벌 수 없다는 불평이 터져나왔다. 갈등은 ‘소리바다’로 표출됐다. 2000년 5월 문을 연 뒤 음악 파일을 교환하는 P2P 프로그램으로 빠르게 성장한 소리바다는 저작권자들과 긴 공방 끝에 2006년 7월부터 전면 유료화 서비스로 전환했다. 김학선 객원기자는 “현재는 전체 음악 시장의 매출 규모가 CD 위주이던 97년 수준까지 거의 따라잡았다. 하지만 온라인 음원 수익이 뮤지션에게 돌아가지 않는 현재의 수익 배분이 지속되면 음악시장이 불황이란 얘기는 계속 나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15년 전 2집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김건모는 2009년 12집을 들고 돌아왔다. 전국투어 콘서트를 준비 중인 그는 “15년 전 멤버들과 함께 늙어가니 같이 음악하기는 더 좋다”며 “불법 다운로드 문제만 해결되면 음반 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ㄴ 노래방

“2차는 노래방으로!”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말에 익숙해졌을까? 1994년에 동네를 둘러보면 하나씩 생기던 노래방. 2009년엔 3만5천 개가 됐다. TJ미디어는 국내 노래방 역사를 19년으로 본다. 노래방의 시작은 1980년대 후반 부산 중심의 ‘일본식 가라오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모양새가 지금의 노래방과는 달랐다.

1988년 컴퓨터 음악연주기를 개발한 주식회사 ‘아싸’는 이후 부산 로얄전자와 함께 자막·영상 재생 등의 기능을 덧붙여 컴퓨터 노래반주기를 개발했다. 1991년 4월 동아대 앞 로얄전자 오락실 한쪽에서 시범운영을 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줬고 지금은 영상을 CD에 담아주거나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90년대 한 곡당 동전 500원을 넣고 노래를 부르던 ‘코인식 반주기’는 이제 오락실 한켠에서나 볼 수 있다. 이젠 반주기의 브랜드나 노래방 시설을 봐가며 노래방을 선택하곤 한다. 웹 노래방, 모바일 노래방 등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도 인기다.

ㄷ 다운로드

본방 사수, CD 구매, 영화관 관람의 공통점은? ‘불법 다운로드’의 반대말이라는 것. 영화든 드라마든 음악이든 디지털 파일을 인터넷으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된 세상, 콘텐츠 판매 시장엔 구멍이 뚫렸다. 그 아픈 가슴은 위의 ‘김건모’편, 아래 ‘통키’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운로드를 가능케 한 것은 초고속 인터넷이었다.

아무리 콘텐츠가 인터넷에 넘쳐도 전송 속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1547만4931명이 인터넷에 가입한 ‘정보기술(IT) 인프라 강국’ 한국. 인터넷 상용 서비스(KORNET)가 바로 1994년 6월에 56Kbps 속도로 시작됐다. 당시 인터넷 가입자는 13만8천 명 수준. 1996년 1월부터는 전국에 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제공됐다. 현재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다운로드 때 평균 46Mbps, 업로드 때 평균 40Mbps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ㄹ 라디오

텔레비전이 보급될 때도 죽는다 했다. 인터넷까지 쓰게 되면 진짜 죽겠다 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다 못해 진화했다. 그 이름, 라디오. 이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사연을 받는다. ‘보이는 라디오’도 도입했다.

라디오 방송이 디지털화하면서 오디오뿐만 아니라 영상도 실시간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2006년 3월2일 인터넷 라디오 플레이어인 문화방송 ‘미니’(mini)가 국내 최초로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를 오픈했다. 2007년 6월에는 ‘미니’ 다운로드가 500만 건을 돌파했다. 어느새 ‘쌍방향 매체’의 선두주자가 된 라디오는 계속 진화 중이다.

ㅁ 모바일

휴대전화 가입자 수 4300만명 시대. 1994년만 해도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볼 정도로 극소수만 누리던 사치였는데, 이제는 밤늦게 연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아버지가 받아 끊었다는 얘기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멀게 느껴진다.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게 1962년, 카드와 동전을 겸용하는 전화기가 나온 것이 1995년이다. ‘삐삐’가 보편화됐던 1990년대 말은 호출받고 달려온 이들 덕분에 ‘공중전화 절정기’가 형성됐다. 전국에 설치된 공중전화는 1999년 56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08년 말 16만1천 대까지 떨어졌다.

현재 유선전화 가입자 수는 2100만 가구. 1988년 10월에 전국 전화 1천만 가입자를 돌파했고 당시는 100만여 회선씩 늘려가는 기세였다. 하지만 이제는 전화를 ‘못’ 설치하기보다 ‘안’ 설치하는 시대. 업계는 값싼 인터넷 전화, 영상 전화 등을 내놓는 한편 초고속 인터넷과 요금을 묶어 할인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집전화 잡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려서부터 휴대전화를 쓴 10대들은 문자를 빛의 속도로 보내는 ‘엄지족’이 됐다.

ㅂ 뷁

“읍ㅎF_しち흐ロっㅉヴ횾_≥∇≤☆” 볼이 발그레한 소녀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받은 남자, 한데 당최 뭔 말인지 모른다면? 안타깝게도 이 사랑, 이뤄지기 어렵겠다. 문자 내용은 다름 아닌 ‘오빠, 너무 멋져요’다. 이런 말들은 ‘외계어’라 불린다. 외계어에는 ‘*^^*’와 같은 이모티콘부터 ‘ㅋㅋㅋ’ 같은 간단한 축약어, ‘하이루’나 ‘읍ㅎF’ 같은 무국적 조어, ‘뷁’과 같이 뜻이 정확하지 않은 표현까지 포함된다. 현재는 ‘즐’ ‘얼짱’ ‘완소남’ 등 쉽고 개성 있는 인터넷 용어의 경우 일상생활을 넘어 활자 매체에까지 쓰일 정도로 보급된 상태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의 저자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시대에는 ‘구텐베르크적 문화’에서 컴퓨터와 디지털 코드로 대변되는 이른바 ‘텔레마틱적 문화’로 이행하면서 기존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직 ‘1994년 버전’으로 살고 계신 분을 위해 한 신문은 이런 ‘계몽’도 했으니 참고하시길. <동아일보>는 2008년 12월 ‘신조어의 달인 되자’라는 기사를 통해 외계어를 몇 개 가르친 뒤 “이 단어를 모두 숙지한 뒤에도 채팅창에 외계어가 나타난다면? ‘대체 이건 뭥미?’라고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참 쉽죠잉~?”

ㅅ 쇼핑

대형 할인점이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지 16년이 됐다. 1993년 이마트 1호점인 서울 창동점이 문을 열었다. <한겨레21>은 2006년 6월 615호 표지이야기로 ‘대한민국, 이마트에서 길을 잃다’ 기사를 통해 대형 할인점에 점령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발했다. 기사는 “1996년에서 2004년까지 할인점이 247개 늘어날 때 영세소매상 8만 곳이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고 기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2001년 인구 15만 명당 1개씩 있는 마트가 ‘포화 상태’라고 진단했다.

마트에 가지 않으면 ‘집에서 쇼핑’한다. 홈쇼핑을 보다가 전화로 간장게장을, 인터넷 쇼핑으로 치마를 주문한다. 최근에는 경제 침체로 기름값 들여 차 끌고 대형 할인점에 가기가 부담스러워 ‘생필품 인터넷 쇼핑’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겨레>는 3월18일 “온라인 오픈마켓인 지마켓의 전체 거래액 중 식품·생활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8.2%로 2006년에 비해 9.2% 늘었다”고 보도했다. 1994년 동네 슈퍼와 재래시장 중심에서 2009년 대형 할인점과 홈쇼핑, 인터넷 쇼핑으로 급변한 ‘장보기’는 지금도 변화 중이다.

ㅇ 어학연수

15년 전 젊은이들이 외국을 경험하는 건 막 바람이 일기 시작한 배낭여행을 통해서였다. 한 달짜리 배낭여행은 이제 1년짜리 어학연수로 대체됐다. 그 사이, 면접 질문도 바뀌었다. “해외에 나가본 경험 있나?”에서 “어학연수는 어디로 다녀왔나?”라고 묻는다는 얘긴, 우스개지만 웃긴 어렵다.

2008년 10월에 발간된 ‘2007년 국제인구이동통계연보’를 보자. 20~24살 출국자가 9만4320명, 25~29살이 3만528명이다. 출국 목적별로 살펴보면 일반 연수를 위한 출국이 1만4185명, 유학이 1만5272명이다. 관광비자로 단기 연수를 하고 오는 이들을 생각하면 관광 출국 2만1024명도 빼고 볼 순 없다. 1994년 10대 이상 국민 2천명을 대상으로 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향수 실태조사’에서는 해외에 나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총 293명이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 한 사람이 136명으로 가장 많았고, 2번은 57명, 3번은 29명이었다.

2008년 통계청의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10대들의 해외 연수도 눈에 띈다. 전국 초·중·고 273개 학교의 학부모 약 3만4천 명을 조사한 결과 어학연수 참여율은 0.8%로 나타났다. 이들 중 부모의 월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는 3.0%, 600만원대인 가구는 2.3%, 100만원 미만인 가구는 0.1%로 소득별 차이를 보였다.

ㅈ 전여옥

1959년 4월19일에 탄생한 그는 1994년에 한국방송 도쿄특파원이었다. 당시 그는 <일본은 없다>에 이어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를 내 수많은 여학생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자존감이 높아진 여학생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전여옥!”을 외치곤 했다.

2000년대 후반, 그는 두 가지 모습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이 된 그 여학생들에게 보였다. 첫째, <일본은 없다>의 표절 시비다. 르포작가 유재순씨가 <일본은 없다>가 자신의 취재내용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오마이뉴스>가 보도하자 그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운현 당시 편집국장, 유재순씨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3년 뒤인 2007년 7월11일, 1심에서 전여옥 ‘의원’은 패소했다. 이 사건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행형’이다.

그 다음이 ‘전치 8주’ 사건이다. 지난 2월27일 국회에서 민가협 이정이(68) 대표에게 ‘테러’를 당해 뇌진탕, 왼쪽 눈 각막 손상,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마비성 상사시 등 9가지 병명으로 전치 8주의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에게 테러리스트가 되라고 바람을 넣으셨던 그 분은, 15년 뒤 테러를 당해 엉엉 울고 계셨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더는 묻지 마시라.

ㅊ 취직

“제가 ○○기업 서류전형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란 인터넷 게시물에 댓글이 달린다. “님 ‘스펙’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스펙’은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의 약어로 어떤 물건을 구성하는 부품과 성능을 뜻한다. 사람에 들이대면 토익 점수, 학점 등 점수화되는 조건을 뜻한다. 기업의 ‘간택’을 받아야 하는 ‘물건 같은’ 처지를 빗댄 셈이다.

15년 사이, ‘취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같은 회사에 다니는 1994년 입사자와 2009년도 입사자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현재 ‘국제전화 00700’ 서비스를 제공하는 SK텔링크에서 근무 중이다. 88학번인 최상욱 재무팀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94년 당시 한 정유회사에 입사했다가 이직했다. “94년엔 취업이 지금처럼 ‘전쟁’이 아니어서 솔직히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4학년 졸업 전에 취직이 됐고 이력서라고는 두 번 넣어봤습니다. 친구들의 경우 3곳 정도 넣어 비교해보고 입사하기도 했죠. 요즘 입사 경쟁을 보면 많이 힘들겠구나 싶습니다.”

이제 2009년 1월1일에 입사한 신규사업팀 김효준씨를 만나보자. “취업 준비는 2007년 가을부터니까, 1년 정도 했습니다. 지원할 회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영어 공부에도 비중을 뒀습니다. 이력서는 20곳 정도 냈습니다. 요즘엔 ‘낙타가 통과할 바늘구멍은 취업에 비하면 너무 크다’는 말도 돕니다. ‘서류 심사→인성·적성 시험(필기)→1차 면접(전공면접·집단토론)→2차 면접(인성면접)→최종 면접’의 전형을 거쳐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좋아서 현실감각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죠.” ‘바늘구멍보다 작은’ 취업 터널을 빠져나온 그는 덧붙였다. “갈수록 정규직 수요가 줄고, 인턴·시간제 같은 비정규직 채용만 많아져 안타깝습니다.”

ㅋ 카메라

지난 3월6일, 캐논의 보급형 일안렌즈반사식(DSLR) 카메라 ‘EOS 450D’가 국내 판매 10만 대를 돌파했다. 출시 11개월 만의 일이다. 한국인은 지금 ‘사진 찍는 중’이다. 고가의 카메라 장비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골목마다 사진 동호회가 출몰한다. DSLR은 2003~2004년 캐논과 니콘이 보급형인 300D와 D70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100만원대)에 내놓으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결국 고급 카메라의 보급형 출시와 인터넷에 사진 올리기, 홈페이지 꾸미기 붐 등이 서로 상승 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집에 카메라 있는 사람?”을 외쳐가며 사진기를 챙겨가야 했던 90년대 모꼬지 풍경과 한 무리 속에 2~3명 이상은 DSLR 카메라를 들고 있는 2009년의 현실은 이렇게나 다르다.

ㅌ 통키

일요일 아침 해가 뜬다. TV를 켜면 노래가 터져나온다. “아침 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맑은 공기 마시며 자아, 힘차게 달려보자!” <피구왕 통키>는 1994년 4월24일~7월24일 매주 일요일 아침 8시20분에 방송됐다. 이는 1993년 방영에 이은 재방영이었는데 오히려 그 인기가 첫 방영을 넘어섰다. 1995년 일요일 오전에 2시간짜리 <만화잔치>가 편성되면서 통키는 그중 한 코너로도 자리잡았다. 1997년을 마지막 방송으로 그 뒤로는 지상파 TV에 방송되지 않았다. 1991년 일본에서 방영됐던 애니메이션으로 통키의 일본 이름은 ‘이치게키 단페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사이트 ‘베스트에니메’의 회원들은 이렇게 통키를 추억한다. “동네 담벼락에는 불꽃슛 마크가 새겨졌고 당시 ‘국민학생’들은 전부 피구를 하고 놀았다.”(eie311), “마지막 회에서 라이벌인 타이거가 번개슛 쏜 걸 통키가 발바닥으로 막고 하늘로 올린 다음 ‘난 지금 기분 최고야!’ 하면서 불꽃슛 쏠 때 밥 먹다가 나도 모르게 숟가락 잡고 일어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통키 끝나고 다음날인가 통키 특집으로 ‘국민학생’들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놈은 엉엉 울었다. 요즘 TV를 보면 만화는 전혀 안 하는 것 같아 아쉽다.”(cdr2000)

최근 일요일 오전 지상파 채널에선 왜 만화를 볼 수 없을까? SBS에서 만화·어린이 프로그램 편성을 담당하는 김재영 차장은 “이젠 케이블 전문 채널이나 각종 다운로드를 이용해 만화를 본다. 지상파에선 그 시간대에 <도전 1000곡 한 소절 노래방>이나 〈TV 동물농장〉 등 시청층이 두터운 프로그램을 편성한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에서 편성을 담당하는 목훈 PD 역시 “최근엔 ‘TV존 어린이 시간대’라고 해서 평일 오후 4시~5시30분에 만화를 편성한다. 국산 신규 어린이 만화를 전체 방송 시간의 1% 이상 편성해야 한다는 규정은 그 시간을 이용해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ㅍ 포인트 카드

2009년엔 우리나라 인구의 64%가 생활 전반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1994년엔 없었다. 정답은? ‘OK캐쉬백’이다. OK캐쉬백은 ‘포인트’라는 잡히지 않는 개념을 눈에 보이는 이득으로 돌려주면서 ‘포인트 시장’을 선도했다. 이제는 ‘포인트 제도’나 ‘제휴 서비스’가 없는 신용카드·이동통신사 카드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OK캐쉬백은 1999년 6월 주유·통신 기반의 ‘OK캐쉬백 서비스’를 론칭한 이후, 유통·외식·놀거리 등 산업 영역별 제휴를 확대해왔다. 2009년 현재 총 고객 수는 3200만 명.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제휴 가맹점은 4만5천여 곳에 이른다. 연계된 금융 제휴사는 20여 곳, 신용카드는 60개다. OK캐쉬백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한 누적 고객은 1400만 명이다.

ㅎ 항문

“그러니까… 비데를 작동시켰는데 뜨거운 물이 너무 세게 나와버린 거에요!” 지난해 강호동이 TV 예능 프로그램인 <야심만만>에서 자신의 ‘항문’ 얘기를 했을 때, 적잖은 사람들이 놀랐다. 모두 다 있으면서 없는 듯 표시 안내고 살아왔던 부분, 항문. 그 은밀한 곳의 이야기를 저렇게 큰 소리로 할 수 있다니. 이후 노홍철·유재석의 ‘치루’까지 폭로되면서 ‘항문병은 현대인의 국민병’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항문에 사회가 개방돼서인가, 항문 병원이 많아져서인가. 국민건강보험공단 ‘2007 주요 수술 통계’를 보면 2007년 한해동안 가장 많은 국민이 받은 수술은 항문 질환 중 하나인 치핵 수술이었다. 총 26만9천 명이다. 2001년에는 15만2천 명이던 것이 77%나 늘었다. 15년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항문외과란 이름의 전문 병원도 급속히 늘었다.

국내 최초 대장항문전문병원인 송도병원은 <대장항문 홈케어>란 책을 내 “최근 대장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다. 동물성 지방, 포화지방산, 육류 등을 제한하고, 식이섬유소와 충분한 물,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술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피해야 하는데 도시 직장인의 스트레스 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진다. ‘최악의 경제침체’ 운운하는 2009년,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똥꼬’가 아파올까? 열심히 살아가는 똥꼬에 경의를.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