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물결은 누마루로 밀려오고
‘봄은 바람 난간을 의지했으니 무한강산은 다투어 발 아래에서 달리고, 눈은 하늘 가 넓고 넓은 건곤을 따라 저 복중에 다 거두어들임이니 가람의 승경은 이와 같은 곳이 없더라.’('무량수전 및 제전각 중수기'에서)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려면 안양루 기둥 아래 누마루 밑을 몸을 숙여 걸어 올라야 한다. 몸 하나 빠져나갈 정도만 열어놓은 마루바닥 위로 마치 2층 다락방에 오르듯이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화강석 계단과 마루 바닥 사이로 손수건 크기 만한 풍경이 보였다. 나는 그 풍경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순간 밝은 빛이 쏟아졌다. 시야 가득히 그 무량수전이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 산물결이 만추의 부석사 누마루로 밀려온다. 마음은 바다와 같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 속에 있으며 만물을 비춘다고 한다. 진실한 세계가 마음 속에 드리우려면 먼저 파도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안양루에서 좀처럼 마음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푸른 산하가 무한정으로 일렁이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사진 임현찬hclim@chosun.com =편집국 사진부 차장)
그러나 정작 아아, 하고 작은 소리로 탄식한 것은 안양루의 난간 너머에서 누마루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백산 연봉을 보았을 때였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고졸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은 새삼 더할 것이 없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무량수전보다는 그곳의 앞마당에서 보는 산야의 풍경이 더 좋다. 의상도 1300년 전에 이곳에서 이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 서서 출렁이는 산하를 보았을 것이다.
의상은 중국에서 돌아와 동해 낙산사에서는 관음을 친견한 후, 조국의 산천을 5년간이나 배회하였다. 부석사는 그 때 산하를 뒤져 찾아낸 화엄의 도량이었다. 그가 낙산사 관음굴에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할 때 보았던 바다를 등지고 소백산이 지척에 보이는 태백산의 지맥인 봉황산을 화엄 근본의 도량처로 삼았던 것은 이곳이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않는 전쟁의 화를 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하지만 산하를 샅샅이 뒤진 그는 좁은 이 땅에서 전화를 피할 곳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화엄사상을 전수하는 일이었다. 관음을 친견하려는 기도 행위는 그 작심을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하기 위함이었다. 번뇌의 바람이 자고 고요해진 바다 속에서 관음을 친견한 그에게는 바다라고 하는 풍경이 도량의 입지 선정에 중요한 동기가 된 것은 아닐까.
나는 130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의상이 서 있었던 바로 그곳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마치 넘실대는 푸른 바다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소백 연봉은 먼바다였다. 잔잔한 물결처럼 굴곡 없는 능선이 하늘금을 긋고 있었다. 그 앞으로 국망봉, 형제봉, 비로봉, 연화봉이 솟아올라 잔물결이 되었고, 이윽고 해안에 다가오면서 높은 파도가 되듯이 안양루 기둥 아래로 오면서 서서히 솟구치고 있었다.
의상이 이 풍경을 처음 본 것은 고국의 산하를 떠돌던 때 태백산의 가풀막을 오르다가 가쁜 숨을 달래려고 돌아섰을 바로 그 때였다. 숲 사이로 길을 만들면서 진행하던 그가 본 것은 소백산릉의 물결치는 산봉우리들이었지만, 그는 관음을 기다리던 낙산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바다를 연상했을 것이다. 이곳을 화엄도량의 근본처로 삼았던 것도 실은 산이 물결치는 이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
나는 의상이 올랐던 그 가파른 경사를 걸어 올랐다. 일주문을 지나 은행나무 길을 걸었다. 이 길은 가을 단풍이 일품이다. 이윽고 눈앞을 가로막는 것이 이른바 대석단(大石檀)이라고 하는 석축이다.
▲ 석단에 의한 시야의 개방과 폐쇄의 율동적인 변이는 비탈면을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안으로 깊숙이 진입하고 있다는 공간감각을 동반한다.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있는 정토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실감나게 한다. 의상이 의도한 공간 의장(意匠)이다.(사진=임현찬 hclim@chosun.com)
의상은 비탈면을 세 개의 대석단과 그 위로 각각 두 개씩 작은 석단을 세워 도합 아홉 개의 석단을 쌓았다. 그리고는 아홉 번째 석단 위에 무량수전을 세웠다. 그곳은 극락정토였다. 석단을 오르는 길은 극락정토로 오르는 길이다. 아마 의상이 이곳에 화엄 도량을 세우기로 맘먹었을 때부터 무량수전에 이르는 이 가풀막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석단은 총 12개다. 나중에 작은 비탈을 막아 계단을 더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석단은 숲길 저 끝에 벽처럼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석 자나 되는 큰 돌을 평평하게 다듬어 반듯하게 세우고, 그 사이에 작은 돌을 역시 반반하게 채워 넣었다. 그리고 머리 선을 일자로 맞추고 각을 세워 완만한 비탈에 서 있었다. 담쟁이 넝쿨이 돌틈에서 자라 나와 석단을 푸르게 메우고 있다.
석단과 그 위에 건축된 천왕문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이다. 어두운 문안에 들어서자 지금과는 전혀 다는 풍경이 문틀 속으로 들어온다. 성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석단의 끄트머리에 문을 달아둔 것은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을 극적으로 체험하게 하려는 의도다.
천왕문을 지나 너른 마당을 곧장 가면 두 번째 대석단이 막고 서 있다. 석단에 붙은 계단의 끝은 낙엽수 가지에 가려 있고 그 뒤는 푸른 하늘이다. 석단의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계단에 다가서자 석단은 다시 넘어야 할 벽처럼 다가온다. 석단을 조망할 때 넓게 트였던 시야가 석단에 다가가면서 다시 좁아진다.
석단에 의한 시야의 개방과 폐쇄의 율동적인 변이는 비탈면을 연속적으로 상승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안으로 깊숙이 진입하고 있다는 공간감각을 동반한다.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있는 정토로 진입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의상이 의도한 공간 의장(意匠)이다.
두 번째 대석단을 올라서자 비로소 전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끝에 범종각이 서 있다. 범종각은 석단 바로 앞에 붙어 있다. 2층 종루의 마루바닥 아래로 길이 나 있다. 마루 바닥은 석단보다 약간 높다. 그래서 범종각 바닥에서 보면 석단과 마루바닥이 사각형의 시각틀이 된다. 계단으로 오르기 직전 어두운 마루바닥 아래에서 그 시각틀로 안양문을 올려다보았다. 그 뒤로 무량수전의 용마루와 지붕이 보였다.
나는 훔쳐보듯이 안양루를 바라보았다. 안양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남서 20도의 방향이다. 범종각 바닥에서 보면 안양문과 시선은 75도 각도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범종각에서는 안양루를 정면이 아니라 약간 비켜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셈이다. 푸른 하늘과 짙은 숲을 배경으로 높은 석대 위에 서서 저 멀리 서쪽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는 안양루는 무변의 바다를 그리운 듯 응시하고 있었다.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은 맞이하고 있는 듯한 인사감각을 준다. 그 때문에 시선에 직각으로 서 있으면서 정면을 보여주고 있는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누군가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듯한 의인적인 풍모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 문으로 스스럼없이 진입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간 저쪽으로 비켜선 안양루를 범종각 마루 바닥에 있는 우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안양루는 성현의 기운이 감돌아 섣불리 다가갈 수 없을 듯이 보인다. 정토란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일까. 다가설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마루바닥 틈 사이로 안양루를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무량수전보다 범종각 바닥에서 숨죽이며 보는 이 안양루의 모습이 더 좋다.
산 물결 위에
안양루에 올라서서 천천히 풍경을 바라보았다. 넘실대는 산줄기는 이윽고 파도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크고 작은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 물결 위에 푸른 물안개가 짙게 드리웠다. 산 물결은 크고 작은 파랑을 일으키며 죽령고개를 넘어 순흥 벌판을 지나 안양루 아래의 석벽에서 바스러지고 있었다. 안양루는 겹쳐오는 파도에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은 바다와 같다고 했다. 모든 것이 그 속에 있으며 만물을 비춘다고 한다. 진실한 세계가 마음 속에 드리우려면 먼저 파도를 잠재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안양루에서 좀처럼 마음을 잠재울 수 없었다. 푸른 산하가 무한정으로 일렁이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떠 있는 것은 부석만이 아니었다. 밀려오는 푸른 산 물결 위에 나도 떠 있었다.
ㆍ기고자: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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