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탱화 같은 소백 준봉을 지나다
벌서듯 수행하듯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묘적·도솔·연화·비로 등 속세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듯한 봉우리 올라 | |||||||||||||||||||||||||||||||||||
앞선 이의 발자국에 뒤선 이의 발자국이 더해져 만들어진 길은 아름답다. 그 길은 꼭 필요한 만큼의 넓이를 가진다. 땅과 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힘에 부친 비탈을 만나면 갈지자로 휘어 힘을 아끼고 풍광 좋은 곳에서는 마당을 만들어 오가는 이를 쉬게 한다. 삼매의 세계의 묘적을 지나고 미륵정토 도솔을 지나 ‘살터’를 품은 소백산으로 가는 길. 벌재에서 숲으로 들어 만나는 길이 아름답다.
그 길에서 장수를 만났다. 가을은 이미 깃들어 초록들은 여름을 지낸 초록을 벗을 준비를 하는데 보랏빛 투구꽃은 길을 따라 피었다. 장수의 투구를 닮아 투구꽃은 지는 싸움에도 등을 돌리지 않는 장수처럼 당당하다. 이미 까맣게 잎사귀를 잃어가는 놈들도, 이미 다른 가지에는 열매를 맺은 놈들도 일전을 준비하는 장수처럼 늠름하다. 윤회의 업보가 존재한다면 투구꽃은 분명 그 어느 옛날 장수였을 것이고 투구꽃 사이를 오가는 벌은 전령이었을 것이다.
도토리가 지천이고 야생 오미자가 한창인 숲길
월악산 바윗길을 끝내고 넉넉한 살터를 품은 흙산 소백산으로 가는 길. 삼매의 경지가 펼쳐지는 묘적과 훗날 인간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올 미래불 미륵이 거하는 도솔의 세계를 지나야 한다. 어쩌면 투구꽃은 그 세계를 지키는 사대천왕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신갈나무 숲길에는 이미 익어 스스로 떨어진 도토리가 지천이고, 낙엽송 빼곡한 숲에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 오미자는 꼿꼿하게 자란다. 비탈을 내려서 붉은 금강소나무와 한 아름 넘게 자란 신갈나무가 지키는 안부로 내려섰다. 신갈나무에 매달린 큰 표지기에는 ‘들목재’라 적혀 있다. 돌목재의 오기다. 벌재의 내력을 알아내지 못했듯, 돌목재의 내력도 알 길이 없었다.
이름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 민족의 생활과 지식 세계를 간직한 문화 원형이다. 헤아려보면 고개를 이르는 명칭도 -치, -티, -재, -고개, -현, -영 등 부지기수다. 마을을 이르는 말도 -곡, -실, -동, -둔 등 다양하다. 이름만 갖고도 지형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귀한 자산들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백두대간은 돌목재를 지나 다시 비탈을 타 1천m급 봉우리들의 연봉으로 하늘금을 긋는다. 옥녀봉을 지나 오르고 오르는 길이 지겨워 질 때쯤 불쑥 튀어나오는 앙증맞은 돌에 문복대(1074m)라고 새긴 표지석과 만난다. 잘 자라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 사이로 문경시 동로면의 들과 산들이 조망된다. 본래의 이름은 운장산이었는데 2001년 표지석이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굳어져가고 있다. 본래의 문복대는 북으로 더 올라가 수리봉, 황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작되는 곳을 이르는 이름이었다. 지금의 문복대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백두대간이 문경 땅에서 처음으로 올려세운 봉우리라서 표지석을 그곳에 세웠다고 한다. 본래의 문복대에서는 단양으로 이어지는 수리산과 황정산이 조망된다. 마루금은 이어지지만 행정구역이 달라졌다. 백두대간이 경계짓는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을 연결하는 저수령에 닿는다. 서쪽 단양으로 가는 길은 느리게 경사를 타지만 예천을 잇는 길은 심하게 경사를 탄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는 오르기 힘들 정도로 된비알이어서 ‘머리 낮은 고개’라는 저수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이 저수령을 넘지 못하고 목이 잘려나가 저수령이라고 한다는 유래도 함께 전한다.
행인 불러세워 소주 한 잔 건네는 산꾼들의 인심
저수령에 내려설 때부터 손짓하던 사람들이 또 불러세운다. 음식을 나누자는 것인데 더는 거부하지 못해 말석에 끼여 앉는다. 종이컵 하나 가득 소주를 부어주고 삶은 돼지고기를 한 움큼 건네며 얼른 마시라 재촉이다. 해거름이다.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낯선 이를 위해 소주 한 잔을 부어주는 정이 고맙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도 자리를 지키는 이를 만났다. 대구 사람이라고 했다. 지난 8월5일 진부령에서 출발해 백두대간을 따라 산에서 먹고, 산에서 자고, 산을 걸어 저수령까지 왔다는 그의 차림은 여전히 여름이었다. 그에게 백두대간은 의사였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오래도록 고생한 그는 마지막 치료를 백두대간에 의존한다고 했다. 애초에 힘이 부치니 기간을 정하지도 않았고 딱히 백두대간만을 고집하지 않아 이리저리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휴대전화는 가지지 않았고 시계는 풀었다고 한다. 해 지면 잠들고 새 울면 잠 깨고 힘이 남으면 걷고 힘에 부치면 쉰다고 했다. 그렇게 50여 일. 그의 각오와, 자세와, 속도로 짐작건대 그는 산에서 겨울을 나게 될 것이다. 그에게 바람막이 점퍼를 건넸다. 음식은 생식을 한다 하니 줄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사진은 물론이고 이름 석 자조차 알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산으로 드는 그의 성은 장씨였다. 장씨의 등 뒤로 어두워가는 백두대간의 긴 산 그림자는 그를 품어 안는 듯 보였다. 날이 바뀌었다. 하늘은 온갖 구름을 한데 모아 금방이라도 큰비를 쏟을 듯한 기세다. 가야 할 길이다. 지난해 늦은 봄, 이 길을 걸었다. 그날은 아예 비가 억수처럼 내렸다. 간혹 바람에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사람 사는 마을이 잠시 보이다 사라지고 나면 사방은 온통 회색이었다. 그 회색 사이로 차라리 백색에 가까운 흐린 분홍빛 철쭉은 나무에도 땅 위에도 만발해 다른 세상을 만들어주었다. 묘적과 도솔을 이어 비로의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배낭을 고쳐 메고 스틱을 잡았다. 촛대봉(1081m), 투구봉(1080m), 시루봉(1110m)… 산이 높다. 비는 내리지 않는데 숲에는 물기가 가득하다. 여위어가는 초록 사이로 앞서 물든 단풍잎 색이 유난히 붉다. 이미 노랗게 물든 놈들은 층층나무고 가래나무는 벌써 잎을 떨어낸 놈들도 보인다. 습기 가득한 산을 오르는 일은 더욱 힘들다. 이미 지쳐버린 몸은 여기저기서 고장 신호를 보낸다. 발걸음은 자꾸 돌에 걸리고 가지에 붙잡힌다. 맑은 날이라면 멀리 소백의 연화봉이 힘내라 응원을 보낼 텐데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다.
묘적으로 오르는 길. 구름으로 뻗은 계단에서 가슴은 터질 듯하고 다리 근육은 끊어질 듯하다. 부처가 삼매의 경지에 맞이하는 세계를 묘적이라 했으니 고통은 따를 것이다. 앉지도 못하고 서서 숨을 고른다. 산 아래 사동리에 묘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1965년까지 부도 몇 기와 주춧돌 등이 남아 있었지만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 사라졌다고 했다. 경내만 4천여 평에 이를 정도로 컸던 절도 빈대 때문에 폐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빈대를 잡으려고 절에 불을 질러 폐사가 됐다는 이야기는 살생을 금해야 하는 불자의 본분을 망각한 결과에 대한 경고다. 나라를 위한다는 장관과 국무총리 후보자가 저지른 불법들은 중이 빈대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구름 사이로 도솔봉 정상의 바위가 고개를 내밀어 얼른 오라고 손짓한다. 도솔은 불교에서 이르는 깨끗한 세계다. 그것도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하는…. 불교에는 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로 구분한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욕계인데 여기에는 6개의 하늘이 있다. 도솔은 그중 네 번째 세계로 장차 부처가 될 보살들이 머무는 미륵정토다. 도솔천에는 일곱 보석으로 지은 궁전에 하늘 사람들이 산다. 이들은 스스로 만족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꾸린다. 내외의 두개의 원(院)이 있는데 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은 내원에서 설법하며 인간세상에 하생할 때를 기다린다. 미륵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부처되기를 미룬 보살이다. 미륵이 도솔천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차고 넘침이 없어도 부족함을 모르는 하늘 사람들 때문이다.
구름 사이 도솔봉 바위가 얼른 오라 손짓하건만
도솔봉을 내려와 다시 형제봉으로 오르는 길 바위에 주저앉았다. 먹구름과 흰 뭉게구름, 파란 하늘까지 한꺼번에 드러낸 하늘은 후불탱화인 양 온갖 자태로 도솔을 옹위한다. 도솔봉 정상의 바위는 초록의 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빛난다. 발 아래 초록 세상과 능선 넘어 풍기와 단양의 사람 세상, 주저앉은 바위에 악착같이 핀 구절초와 벌개미취…. 살아 있는 것들의 고통과 살아 있는 것들이 지향해야 할 세계가 일순 펼쳐질 때 “쉐엑쉐엣” 바람 가르는 소리가 난다. 제비였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제비가 내는 소리는 마치 제트기의 소리를 닮았다. 제비들의 비행이 계속되는 이유는 매 때문이었다. 발 아래 절벽에 둥지가 있는지 제비는 매가 사라질 때까지 비행을 계속했다. 해는 이미 지기 시작했고 남은 길은 만만치 않다. 삼형제봉을 지났다. 저녁 햇살에 소백 연화봉의 천문대 건물이 빛을 발한다. 가야 할 길 연화봉(1394m)은 연꽃을 상징한다. 연꽃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부처가 세속에 펼친 진리의 세계를 상징한다. 북으로 오르는 대간의 정점에는 비로봉이 있다. 비로는 비로자나불의 줄인 말로서 부처님의 진신이자 지혜의 빛을 상징한다. 저수령~촛대봉~묘적봉~도솔봉~연화봉~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소백산의 백두대간은 산행을 넘어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문경·예천·단양=글·사진 윤승일 기획위원 nagne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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