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양푼에 비빈 보리밥, 그 맛!
가난한 시절의 구수한 추억 ‘향긋’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심호택의 시다. 1992년에 나온 시집 <하늘밥도둑>에 실려 있다. 그때 이 시집을 받아들고 읽다가 필이 팍 꽂혔다. 심호택이 1947년생이니 나보다 10여 년 앞서 살았으나 시에 나오는 심호택의 그날은 내게도 친숙한 것이다. 전쟁 후 빈곤의 시대를 심호택은 오롯이 살았고 나는 그 빈곤의 마지막을 잠시 보았다.
심호택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때의 내 집 마당을 떠올렸다. 여름이었고, 바닷가에서 실컷 놀았을 때였다. 어느 날 심호택처럼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왔다. 신나게 놀았으니 배가 고팠고 여기저기 먹을 것을 찾던 모습도 그와 나는 같았다. 그 다음의 내 기억은 심호택의 시와 다른데, 내게는 보리개떡이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던 그때의 그 어린 기억이 이 시로 인해 어찌 그리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뒷골이 섬뜩했다.
보리개떡의 추억은 내 나이 즈음에 있는 독자들이면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름날 오후 부엌문이나 창에 걸린 보리밥 소쿠리에서 발견하는 보리개떡의 추억 말이다.
잠자리 나는 여름, 해가 서쪽으로 슬쩍 기울 즈음 점심에 먹은 보리밥은 방귀 몇 번으로 다 소화되고 뱃속에선 꼴꼴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식구들은 논일 밭일 나가 집이 텅 비었다. 대청에 앉아 먹을거리가 있을 만한 장소를 생각해본다. 가을이 아직 멀었으니 고광에 가봤자 배고픈 쥐나 볼 것이다. 부엌을 탐색하러 나선다. 가마솥도 열어보고 찬장도 뒤적인다. 마침내 부엌문 높은 곳에 매달린 보리밥 소쿠리를 발견한다. 저 속에 보리밥 외에 무엇이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한데, 손이 닿질 않는다. 양동이를 엎어놓고 오른다. 소쿠리 뚜껑을 열고 손을 넣어보니 동그란 보리개떡이 잡힌다. 세어본다. 둘, 셋…. 형의 노여움과 동생의 징징거림이 눈앞을 스친다. 하나 이상 꺼내지 못한다. 대청에 앉아 보리개떡을 먹는다. 가장자리부터 둥글게 돌려가며 야금야금 아끼고 아껴 먹는다.
보리개떡을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보리개떡은 보릿가루를 반죽해 납작하게 해서 찐 음식이다.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한다. 솥에 겅그레를 놓고 찌는데, 보통은 굳이 겅그레를 놓지 않고 밥이 뜸들 즈음에 반죽을 올리고 찐다. 봄에는 여기에다 쑥을 넣기도 한다.
눈물이 날 정도로 크게 한 입
①청보리 축제를 여는 고창의 보리밭. ② 노란색이 도는 보리가 찰쌀보리이고 거무스레해 보이는 것이 겉보리다. ⓒ 황교익 제공
한민족 궁핍의 시대 말미에 나는 태어났다. 그래서 어린 시절 보리밥을 꽤나 먹었다. 보통은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에 대해 강한 기호도를 나타내는 것이 정상인데, 보리밥은 그렇지가 않다.
가난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도 있었겠지만 미끌미끌하고 거칠거칠한 촉감이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런데 사람이란 참 묘하다. 요즘은 보리밥이 당긴다. 그 야릇한 촉감조차 좋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유독 보리밥을 즐기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보리밥은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흰쌀밥 먹듯이 밥 먹고 반찬 먹고 하는 식으로 먹으면 그 특유의 촉감과 냄새로 인해 반 공기도 들기 어렵다. 보리밥은 비벼야 한다. 고추장도 좋고 강된장이나 청국장도 좋다. 여기에 여러 나물들을 섞을 수 있는데 나물 가짓수가 많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익은 열무김치, 콩나물·고사리 등 기본적인 나물만 있어도 충분히 맛이 난다. 또 하나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참기름이다.
보리밥이 비벼졌으면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안 가득 채워 씹어야 한다. 우걱우걱.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미끌하고 거친 촉감은 나물들로 인해 감추어지고 특유의 냄새는 고추장이나 된장, 청국장 또는 참기름 향에 묻히면서 구수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입안의 보리밥을 다 넘겼으면 곧장 다시 한 숟갈 밀어넣어 중간에 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입안에서 쉼 없는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숭늉 한 사발 들이키면서 빵빵해져 있는 배를 확인하는 재미, 이게 보리밥의 진짜 맛이다.
그 가난의 보리밥을 요즘은 건강식이라며 판다. 세월이 확실히 바뀐 것이다. 그래도 보리밥은 여전히 허름한 곳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시골 장터 같은 곳에서 장바닥에 퍼질러 앉아 먹는 보리밥이 꿀맛이다. 초여름 쨍~한 햇볕 받으며 먹으면 더 좋고.
햇보리는 맛이 다르다
보리밥은 푸성귀 대충 썰어 넣고 고추장이나 된장국을 더해 비비면 된다. 여기에 시원한 국 하나 있으면. 여름을 나는 데 이만한 음식이 없다. ⓒ 황교익 제공
보리는 가을에 벼를 거두고 난 다음에 파종을 해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을 한다. 지금의 보리가 햇보리다. 보리 맛이 그게 그것일 것 같지만 햇것과 묵은 것은 많이 다르다. 햇보리에는 신선한 곡물의 구수한 향이 있다. 묵으면 퀴퀴한 냄새를 풍긴다. 이건 정말 맛이 없다. 보리를 거둔 후 바로 장마와 더위가 이어지니 신선한 보리로 버티는 시간이 길지 않다. 보리밥 제대로 먹자면 지금 먹어야 하는 것이다.
보리는 크게 겉보리와 쌀보리로 나뉜다. 껍질이 보리알에 달라붙어 분리되지 않는 것을 겉보리, 껍질이 쉽게 분리되는 것을 쌀보리라고 한다. 보리는 아밀로스 함량에 따라 그 찰기가 달라지는데 찰기가 많은 보리는 찰보리, 찰기가 적은 보리는 메보리라 한다. 그런데 겉보리에도 찰보리와 메보리가 있으며, 쌀보리에도 찰보리와 메보리가 있다. 보통 쌀에 섞어서 밥을 하는 보리는 찰보리인데 찰겉보리와 찰쌀보리, 두 종류라고 보면 된다. 시중에서는 찰겉보리는 그냥 찰보리라 하고 찰쌀보리는 그 이름대로 찰쌀보리라고 부른다. 흰찰쌀보리라는 품종이 인기인데 이름에 ‘흰-’이 붙어 있지만 약간 노란색을 띤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노랑찰보리, 노랑보리라고도 한다.
보리의 거친 질감이 싫다면 찰쌀보리를 섞어 밥을 지으면 된다. 보리가 들었나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찰기가 있다. 그러나 보리 특유의 구수한 맛은 기대하기 어렵다. 옛날 그 구수한 보리밥을 먹겠다 하면 겉보리로 밥을 해야 한다. 약간 미끄덩하고 거칠게 느껴져도 곡물의 향은 확실히 강하다. 그 옛날의 보리차를 마시겠다 해도 이 겉보리를 써야 한다.
요즘 겉보리 재배 면적이 적다. 전북 고창의 학원농장에서 겉보리를 많이 보았다. 봄에 청보리 축제를 하는 농장인데, 겉보리가 청보리일 때 때깔이 좋고 키가 커 관상용 겸해서 심는다. 그 덕에 학원농장의 보리에는 찰쌀보리에 겉보리가 조금씩 섞여 있다. 보기 좋자고 겉보리를 심어 그렇게 된 것인데, 나는 보리밥 맛있게 지으라고 그래 놓은 것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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