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홍장(紅粧)의 애모(哀慕)의 시

醉月 2011. 7. 20. 00:12

이조 사회에서의 기생은 직업이 기녀여서 그렇지 우리가 생각하는 기생과는 엄청나게 거리감이 있는 여인도 있었다.
본래 기녀들은 동기(童妓)로 기적에 입적이 되면서부터 교방에서 가무와 음률, 시서를 비롯하여 모든 예졀을 배운 여인들이다.
그들 중에는 풍류를 알며 멋을 알고, 사회적인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사람들을 알아볼 줄 알고, 사랑을 알아, 마음 주고픈 사람에게는 사랑의 정염으로 온 몸을 불태워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돈도 명예도 버리고 기꺼이 수절할 줄 아는 슬기로움을 지닌 여인들도 많았다.

 

때로는 권세 앞에 육체를 유린당하면서도 정신적인 지조를 끝내 지키면서 끊임없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산 여인들도 많았다.
때로는 분별없는 바람둥이 사내들을 골탕먹이고, 그들의 버릇을 따끔하게 고쳐 주기도 하는 슬기로운 여인들이다.
진랑(眞娘)(황진이)이 그랬고, 금춘(今春)이 그랬으며, 한우(寒雨)가 그랬고, 매창(梅窓)이 그랬다.

여기 기생이라 부르기 민망한 여인이 있으니, 그 이름 홍장(紅粧)이다.
강릉 고을의 기적에 올라있는 기생은 무려 200여 명에 가까웠으나, 그 중 홍장이 출중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녀에 대한 행장이 없는 일이다.
[해동가요],[가곡원류],[여창유취] 등에 '강릉명기'라고만 기록되어 전한다.
왕손(王孫) 박신과의 애절한 사연을 남긴 여인이다.

 

한송정(寒松亭) 달 밝은 밤에
경포대의 물결 잔 제
유신한 백구는
오락가락 하건만은
어떠타 우리의 왕손은
가고 아니 오느니

때는 초가을. 기망(旣望)의 둥근 달이 정자 위에 둥실 떴다. 한송정 정자 위엔 주연이 무르익어 갔다. 강원감사 박신이 만기가 되어 서울로 떠나는 것을 축하하러 모인 송별연이다. 강릉부사 조운흘은 술잔을 들어 박신에게 권한다. 술잔을 받아든 감사는 물끄러미 술잔을 들여다 본다. 얼굴이 밝지 못하다. 강릉 부사 조운흘은 그런 감사의 심정을 알고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너희들은 떠나는 감사님을 위해 권주가나 한곡 부르라."
조부사의 말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농월(弄月)이 가야금을 뜯는다. 청아한 소리가 정자를 공중에 둥실 띄운다. 멀리 여울지며 동해로 퍼진다.
"한 잔 먹사이다. 또 한 잔 먹사이다. 꽃 꺾어 수를 세며 무진무진 먹사이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묶어 매어 가나, 아름답게 꾸민 상여에 실려 수많은 사람이 울면서 뒤따르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백양나무 숲 우거진 곳에 가기곳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발 내리는 속에, 슬픔을 자아내는 쓸쓸한 바람 불 제 누가 한 잔 먹자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가 쓸쓸할 때에 뉘우친들 어찌하겠는가."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將進酒辭)]가 여흥을 돋운다.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한다. 술잔을 높이 든다. 그러나 박신은 여전히 말이 없이 술잔만 들여다본다.
빈 산엔 나뭇잎 지고
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옛 사람의 풍류가
이제는 적막쿠나
슬프다 한 잔 술을
다시 권키 어려운 것을
아! 옛 노래의 곡조가
오늘 새삼 새롭구나

그래도 박신의 얼굴은 펴지지 않는다. "감사는 무얼 그리 물끄러미 보시는 게요?" "아, 아니오. 술잔에 뜬 달을 보는 중이오." 박신은 엉겹결에 둘러댄다. 옆에 있던 선옥이 토를 단다. "감사님, 이 한송정에서는 동시에 달을 다섯 개를 볼 수 있답니다." "아니, 달이 하나지 어찌 다섯씩이나 되느냐?" "모르사와요?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그래라. 어서 가르쳐 다오." "그러나 그냥은 안됩니다. 가르쳐 드린 값을 내셔야 합니다." "허허, 무엇으로 값을 낼꼬? 내가 너의 머리를 얹어 주랴?" "저는 그런 자격은 없구요. 가르쳐 드리면 그 값으로 노래하나 부르세요." "그래라, 네가 내 노래 듣는 게 소원인게로구나!" "한송정에 오르면 달이 여섯인데요.

하나는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달, 또 하나는 경포대에 비친 달, 다른 하나는 지금 감사님께서 보고 계신 술잔에 뜬 달, 다른 하나는 앞에 앉아 있는 제 눈에 비친 달, 그리고 마지막 달은 뭔지 맞춰 보세요." "허허, 넌 참 유식한 애로구나. 나는 짐작도 못하겠다." "마지막 달은요, 감사님 마음에 떠 있는 달이에요." "하하하..." 좌중이 박장대소한다. "아, 그러니까 감사님의 기분이 우울한 것은 그 '마음의 달'이 보이지 않아 그러시는 게로구려." 조부사가 술잔을 들어 권한다. "아아니, 조부산 무슨 말을 하는게요?"

 

박신은 마음 속을 보인 것 같아 황급히 손을 저었다. 술이 몇 순배 더 돌았다. 취기가 점점 흥을 돋우었다. 구름속에 가렸던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경포호의 수면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옛부터 '경포영월(鏡浦迎月)'은 관동팔경 중에 으뜸으로 꼽는다. 멀리 둘러선 울창한 장송들이 환히 보일 만큼 달은 밝았다.

 

그때 그림배 하나가 소리없이 호수에 떴다. 정자 위의 시선들이 모두 배에 쏠린다. 배 위에는 한 미인이 거문고를 뜯고 있지 않은가! 박신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자 위에서 뛰어 내려간다. 배를 타고 그림배를 따른다. 그림배를 따라 잡았다.
놀란 것은 박신. 배 위에서 거문고를 타는 여인은 홍장이 아닌가! 조부사가 죽었다던 홍장이었다. 죽은 홍장이 다시 살아났다니. 취기가 가셨다. 박신은 홍장을 끌어 안았다. 볼을 비벼본다. 분명히 산 사람. 그것도 그렇게 보고 싶었던 홍장 바로 그녀였다. 이때 다른 배를 타고 따르던 조부사 일행의 웃음 소리가 호수의 수면에 번졌다.

 

서거정의 [동인시화]에 이런 기록이 있다.
[고려 우왕 때 강원 감사 박신이 강릉 기생 홍장을 사랑하였는데, 박신이 만기가 되어 떠나려 할 때, 강릉 부사 조운걸이 짐짓 홍장이 죽었다고 하였더니 박신이 몹시 슬퍼하였다. 하루는 조부사가 박감사를 초청하여 경포대로 뱃놀이를 나갔다. 문득 그림배 한 척이 앞에 나타났는데, 그 속에선 미인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는지라, 박감사는 '이는 진정 신선이로다'하고 감탄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홍장이라. 배에 탔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와 같은 박신과 홍장과의 관계를 정송강은 [관동별곡]에서 이렇게 읊었다.
[석양무렵에 현산의 철쭉꽃을 밟으면서 경포호로 내려가니, 십 리까지 뻗은 잔잔한 수면을 당기고 다시 끌어 당겨서, 낙락장송이 울창한 속에 마음껏 펼쳐져 있으니,물결도 잔잔하기도 잔잔하구나. 호수 속의 모래를 헤아리겠구나. 외로운 배를 매어 놓고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넘어 그 옆이 동해로구나. 조용하구나 경포호의 수면이여, 멀리 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여! 여기보다 경치가 더 잘 갖춰진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옛날 박신과 홍장의 고사가 야단스럽기도 하구나!]

 

박신은 자(字)를 경부(敬夫), 호를 설봉(雪峰)이라 하는 데 본관은 설봉으로 공민왕 11년에 나서 세종 26년까지 산 사람이다. 포은 정몽주 밑에서 수학하였다. 1385년 문과에 급제, 사헌부 규정을 거쳐 예조, 형조 정랑을 역임하였다. 1400년 태종이 즉위하자 승추부좌승지로 발탁되어 관로가 트이기 시작하였다. 1404년 개성유후, 한성부윤을 역임하였다. 한때 대사헌이 되어 언사로써 왕의 비위를 거슬려 아주현에 귀양가기도 하였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다시 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선공감 제조로 있을 때 선공감 관리가 저지른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13년 동안이나 통지현에 유배되었다가 1432년 풀려났다.

 

그가 강원 감사로 있던 기간은 비록 짧은 것이었으나, 그 동안에 사귄 홍장과의 관계는 실로 깊은 애정 그것이었다. 하루라도 만나지 못하면 그리워지고 오지 않으면 기다려지는 사랑이었다. 서울로 떠나려 할 즈음, 조부사가 일부러 홍장이 죽었다고 말했을 때의 그 충격은 실로 컸다. 자신에게 향한 홍장의 사랑이 눈물겨웠다. 한 여인을 죽게 한 자신의 행동이 가슴 아팠다. 자기와 헤어지는 슬픔을 차라리 죽음으로 택한 그 애정이, 그 곧은 정절이 고마웠다. 조부사의 송별연에서도 침울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모든 것이 귀찮고, 홍장의 웃음 띤 모습만이 술잔에 어른거렸다.

 

떠나려던 박신이 홍장과 더불어 경포대에서 며칠을 더 머물면서 정염을 불태웠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었다. 서로가 떨어지기 어려웠던 사이였다. 그러나 박신은 기어이 떠났다. 보내지 않을 수 없는 홍장이었다.

 

울며불며 잡은 소맷자락을
무정하게 떨치고 가지 마시오.
풀빛 푸른 긴 뚝에는
해도 이미 저물었다오.
객창에서 꺼져 가는
등불의 심지를 돋우고,
밤을 세워 보면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아시리다.]
울며 잡은 소매 떨치고 가질 마소
초원 장제에 해 다 져 저물었네.
객창에 잔등을 돋우고 새워보면 알리라.)
이렇게 보낸 박신이었다. 그를 보낸 홍장은 하루 이틀 박신으로부터 음신(音信)을 기다리는 것이 일과였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소식이 없어 가자 홍장은 초조했다. 그가 원망스러웠다. 기녀란 자신의 위치가 새삼 뼈아프게 아팠다. 한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용납 못하는 사회의 제도적인 모순이 역겨웠다. 홍장은 고려 때의 명기 '동인홍(動人紅)'이 기생의 신세를 한탄한 시를 뇌어 본다. 자신의 처지가 새삼 서러워졌다.

 

창녀여양가(娼女與良家)
기생과 양갓집 규수 사이에
기심문기하(其心問幾何) 묻노니 그 마음 다를 게 있오.
가연백주절(可憐栢舟絶) 슬프다 송백같이 굳은 절개로
자서시미타(自誓矢靡他) 두 마음 안 먹고자 맹세한다오.

얼마나 고매한 정신 자세인가. 실상 자기 스스로도 이런 자세로 살아 왔고, 또 살아 가려는 결심이 섰던 홍장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홍장은 이런 자신을 조소한다. 차라리 한 남자에게 깊은 정을 주지 말 것을, 기녀의 생활에 충실하며 세속적인 행복이나 추구했던들 하는 회한이 머리를 들곤 했다. 박신에게로 향하는 그리움은 걷잡을 길 없었다. 그런 그리움을 잘 나타낸 매창(梅窓)의 시가 있다.

 

{상사도재불언리(相思都在不言裏) 그리워 말 못하는 애타는 심정
일야심회발반사(一夜心懷髮半絲) 하룻밤 괴로움에 머리가 센다오.
욕지시첩상사고(欲知是妾相思苦) 얼마나 그리웠나 알고 싶거든
수시금환감구위(須試金環減舊圍) 금가락지 헐거워진 손가락 보오.

잠 오지 않는 불면의 밤. 전전반측 잠 못 드는 밤을 눈물로 고독을 달래는 날이 많아졌다. 달밝은 밤, 두견이 피를 토하며 울어대는 장장추야, 잠 못 들어 뜰을 거닐 때 복받쳐오르는 하소연은 탄식이 되고 시가 된다. 이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단장의 하소연이다.

 

한송정 정자 위에 달밝은 밤에
경포호의 물결은 잔잔도 한데,
신의가 있는 갈매기는 왔다갔다 하건마는
(때를 따라 날아 갔다가 다시 돌아오건마는)
어찌하여 우리의 왕손(박신)은
한 번 가고는 다시 오지 않는가!

 

끝내 박신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잊으려 한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인가! 의식적으로는 미워해 보아도 미워지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홍장은 그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돌아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그 큰 그리움을, 그 못 견딜 고독을 참자고 마음 다진다. 그러나 참자고 마음을 다질수록 그리움은 더한다.

 

산중상송능(山中相送能) 산중에서 서로 보고 헤어진 당신
일모엄시비(日暮掩柴扉) 해는 져 사립 밖이 어둑하구려
춘초년년록(春草年年綠) 봄풀은 해마다 또다시 푸르건만,
왕손귀불귀(王孫歸不歸) 떠나간 당신은 다시 오지 않는구려.

당나라 때 시인 '방우(方于)'가 느꼈던 그리움도 이런 것이었을까?

원로동서욕문수(遠路東西欲聞誰) 임 가신 먼 곳을 뉘에게 물어 보랴.
한래무처기한의(寒來無處奇寒衣) 겨울이 와도 겨울 옷을 보낼 곳 없네.
거시초종정전수(去時初種庭前樹) 떠나실 때 뜰에 심은 어린 나무가
수이승소인미귀(樹已勝巢人未歸) 새가 집을 짓게 자랐어도 임은 안 오네.
 
위의 시는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 왕유의 '송별(送別)'이란 시지만, 홍장의 그리움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월백한송정(月白寒松亭) 한송정 정자 위에 달밝은 밤에
파안경포추(波安鏡浦秋) 경포호의 가을 물은 잔잔도 하네.
춘초년년록(春草年年綠) 슬피 울며 왔다가 날아가는 건
왕손귀불귀(王孫歸不歸) 모랫벌의 유신한 갈매기뿐이네.

이 시는 고려초 광종년간에 장정우가 중국 강남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이 물에서 건졌노라 하며 거문고 바닥에 새긴 글을 보이며 묻기로 보니, 우리 글자라 한시로 번역하여 주었더니, 그 사람들이 애닯아 했다는 기록이 전하는 시이나, 한역되어 그 그리움이 반감되었다 하겠다. 끝내 소식이 없어도 홍장은 굳게 절개를 지키면서 박신을 기다렸다. 치근대는 취한이 있을 때마다, 끈질기게 덤벼드는 한량들에게 홍장은 당나라 시인 장적의 '절귀음(絶歸吟)'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마음의 흔들림을 지켰다.

 

군지첩유부(君知妾有夫) 그대는 이 몸이 남편 있는 줄 알면서
증첩척명주(贈妾隻明珠) 어쩌라고 저에게 쌍구슬을 주시나요.
감군전금의(感君纏錦意) 알뜰한 그 사랑 고맙고 그윽하여서
계재기라유(繫在紀羅濡) 속치마 허리춤에 고이 고이 차 두오.

첩가고누연어원(妾家高樓連御苑) 저의 집은 누각 저편 어원(御苑) 저 뒤쪽
양인집극명광전(良人執戟明光殿) 제 남편은 명광전(明光殿)의 집극랑이오.
지군용심여일월(知君用心如日月) 그대만은 아시리 일월 같은 내 맘을
사부서인동생사(事夫誓人同生死) 생사로서 남편을 섬기자고 맹세했다오.
환군명주척누수(還君明珠隻淚垂) 구슬을 돌리자니 두 줄기 눈물
하불상봉미가전(何不相逢未嫁前) 시집 가기 이전에 왜 못 만났오.

이런 그리움의 1년이 지난 여름, 박신이 순찰사가 되어 강릉에 들르게 되었다. 홍장의 굳은 절개를 알고 온 박신이었다. 홍장을 한양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부실을 삼았다. 홍장의 염원은 이뤄졌다. 두사람은 행복했다.
박신과 조운흘은 동문수학하던 사이였고, 벼슬길에 오른 뒤에도 친교가 두터웠다. 박신은 경포대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었던가. 노경에 이루러 그때 일을 회상하는 시를 조운흘에게 보낸 것이 남아 있으니 곧 [증조석간운흘박혜숙신(贈趙石磵云屹朴惠肅信)]이 그것이다.

소년시절접관동(少年時節接關東) 내 일찍 젊어서 관동에 갔던 그 추억
경포청유입몽중(鏡浦淸遊入夢中) 경포호의 놀던 모습 꿈 속에도 완연타오.
대하란주사우폄(臺下蘭舟思又貶) 그곳에 배를 띄워 또 한 번 놀고 싶소만
각혐홍분소쇠옹(却嫌紅紛笑衰翁) 아가씨들이 늙은 나를 웃을까봐 두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