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합천 "色이 있는 풍경"

醉月 2018. 10. 24. 20:42

경남 합천의 해인사로 이어지는 가야산 홍류동(紅流洞) 계곡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1959년 한국에 부임했던 초대 프랑스 대사 로제 샹바르의 유해가 이 계곡에 뿌려졌다. 10년 동안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홍류동과 해인사를 잊지 못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푸른 눈의 이방인이 60년 전쯤 경남 합천 가야산의 홍류동 계곡과 해인사를 찾았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죽은 뒤의 마지막 안식처’로 이곳을 지목합니다. 고국으로 돌아간 그가 세상을 뜬 뒤에 소망대로 유해는 이곳에 뿌려졌습니다. 가야산을 찾아 홍류동 계곡을 따라 해인사까지 걸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그가 걸었을 청량한 숲길입니다. 풀무로 달궈진 듯 붉게 물든 단풍이 계곡 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치∼익. 뜨거운 쇠를 찬물에 담글 때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그는 왜 하필 ‘마지막 자리’로 이곳을 택했을까요. 지는 낙엽으로 하루하루 가을이 깊어가는 가야산을 걸으며 내려놓을 것들을 생각합니다.


#홍류동을 사랑했던 푸른 눈의 이방인

경남 합천의 가야산 계곡을 걷는다. 가야산 계곡의 다른 이름은 ‘홍류동(紅流洞)’. 핏빛 가을 단풍으로 계곡 물까지 붉게 물든 지금, 그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었다. 가야의 마지막 왕자 월광 태자가 나라를 잃고 이 길을 걸어 들어갔고, 신라 애장왕이 신하를 이끌고 이 길을 걸었다. 신라의 최치원은 이 길 끝에 갓과 지팡이를 걸어놓고 가야산 신선이 됐고,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이 길을 걸어 다시 불법을 닦는 스님으로 되돌아갔다. 누더기 장삼에 나무 지팡이를 짚었던 성철 스님도 이 길로 산에 들어 깨침을 얻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뜻밖의 한 사람이 더 있었다. 푸른 눈의 이방인. 지금부터는 한국을 사랑했던, 그리고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가을을 사랑했던 한 이방인의 얘기다.

프랑스인 로제 샹바르. 그는 해방 후 초대 주한 프랑스 대사였다. 전란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던 1959년 4월 14일 서울에 부임했다. 파리 법과대학 출신의 고고학자이자 언어학자였던 그는 한국을 사랑했다. 문화적 소양이 충만했던 그는 한국에 머물며 전국을 여행했다. 도시보다는 지방의 시골 마을을 즐겨 찾았다. 한국에 머문 시간이 10년이나 됐으니, 아마도 나라 안의 웬만한 명소는 다 들렀을 것이었다. 물론 합천의 해인사에도 다녀갔다. 해인사가 가야산 홍류동 계곡 끝에 있으니, 그도 이 계곡을 걸었을 것이다. 그때가 가을이었을까. 그는 가을날 붉게 물든 홍류동 계곡을 보았을까.

1970년 대사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간 그는 투병 중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한국의 합천 해인사에 뿌려달라’는 얘기였다. 1982년 5월 7일, 그는 일흔여덟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리고 꼭 108일 뒤인 8월 22일에 그의 유골은 한국으로 옮겨졌고, 이튿날 합천의 홍류동 계곡에 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에 근무하면서 한불 관계 실무를 다뤘던 한 공무원의 기록으로 알려졌다.

샹바르 대사는 해인사와 홍류동의 무엇에 감동했던 것일까. 그의 마음이 가닿은 곳은 가야산의 자연과 풍경이었을까, 아니면 가야산에 깃든 종교의 정신이었을까. 당시만 해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 푸른 눈의 이방인은 왜 그곳을 자신의 마지막을 의탁할 곳으로 지목했던 것일까. 가을이 붉게 물든 홍류동을, 그리고 독경 소리 은은한 해인사를 찾아가는 길에 소매를 붙들었던 것은 그런 질문이었다.


해인사의 부속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백련암 마당의 바위. 백련암은 성철 스님이 수행하던 곳이다.


#한 생애의 마지막이 고른 자리

‘해인사’를 말할 때면 그 앞에 ‘합천’이란 지명이 저절로 입에 딱 달라붙는다. 합천에 해인사가 있고, 해인사는 가야산에 있다. 그러니까 가야산도 합천 땅인 것인데, 가야산에서는 합천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야산은 사실 절반쯤이 걸쳐진 경북 성주의 것이나 진배없다. 지난 2010년에 개방한, 성주에서 가야산을 오르는 ‘만물상 코스’ 때문이다. 내내 탄성을 자아내는 기암괴석의 절경이 펼쳐지는 만물상 코스는 가야산의 다른 등반 코스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반면 합천 쪽에서 가야산을 오르는 건 ‘운동이 된다’는 것 외에는 다른 매력이 없다. 합천 쪽 등산로에는 훌륭한 숲도, 빼어난 조망도 없다. 그저 발밑만 보고 걸어야 하는 힘만 드는 길이다.

하지만 가야산의 소유권을 성주에 순순히 넘겨줄 수 없는 것은 합천 쪽 가야산에 홍류동이 있기 때문이다. 홍류동은 붉게 물든 단풍으로 물까지 붉은색으로 적셔지는 계곡이다. 성주의 가야산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합천 가야산의 명소다. 홍류동 계곡에는 ‘소리길’이 있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6㎞ 남짓의 걷기 길이다. 2시간 30분이면 넉넉히 걷는 이 길은 부드러운 흙길과 나무 덱으로 이어져 있다. 길 끝에 해인사가 있다. 그러니 홍류동 계곡의 소리길은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고, 해인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소리길이 지나는 홍류동 일대는 지금 붉은 단풍이 한창이다. 산이 많은 합천은 남쪽이지만 단풍이 이르다. 홍류동 중에서도 계곡 옆에 세워진 정자, 농산정 주변의 단풍이 가장 이르게 물든다. 불어난 계곡 물의 청아한 물소리에다 단풍의 붉은색과 소나무의 청량한 초록이 한데 어우러지니 선경이다.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여기서 풍류를 즐겼다는데, 과연 그럴 법했다.

가야산에는 ‘가야산 19경’이 있다. 최치원이 처음 이름 붙인 명소에다 1918년 당시 해인사 주지의 부탁을 받은 최동식 거사가 시를 적어 붙인 곳이다. 19경 중 16경이 홍류동에 있다. 경치마다 모두 풍류 넘치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비 갠 뒤의 달빛이 잠긴 연못’을 뜻하는 제월담(霽月潭)도 있고, 신선이 모이는 자리라는 회선대(會仙臺)도 있다. 빼어난 경관을 꼽자면 ‘꽃이 연못으로 떨어진다’는 낙화담(落花潭)을 빼놓을 수 없다. 해인사 퇴설당 주변에는 홍류동을 노래한 경허 선사의 시가 걸려 있다. 그중 한 구절. 정청어독월(靜聽魚讀月), “너무 고요하여 물고기의 달빛 읽는 소리가 들리더라.” 저문 뒤 늦게까지 해인사에 머물렀던 것은 오로지 그 한 구절 때문이었다.

로제 샹바르 초대 주한 프랑스 대사의 유해는 소리길에 있는 낙화담에 뿌려졌다고 전한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떠올리지만 소리길의 ‘소리(蘇利)’란 불교에서 이상향 혹은 피안을 뜻한다. 홍류동의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그의 영혼은 피안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곳은 지구 반대편에서 나고 자랐던 한 생애가 마지막으로 고른 자리였다.


경남 합천 황매산은 지금 가을 억새가 만발했다. 황매산 배내봉 아래 억새 군락이 오후의 비낀 햇살의 따스한 빛으로 빛나고 있다.




#배내봉에 물결치는 가을 억새

가야산을 성주에 넘겨주고 나서 ‘합천의 산’은 가야산이 아니라 황매산이 됐다. 봄이면 철쭉으로 물들고, 가을이면 억새로 반짝이는 산. 황매산은 산 자체의 형상도 좋지만, 계절에 따라 산 정상에 군락을 이뤄 피는 꽃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곳이다. 가을 억새는 황매산 해발 1000m의 배내봉 주변 능선을 온통 다 뒤덮는다.

봄이면 철쭉으로, 가을이면 억새로 출렁이는 황매산의 황매 평전 일대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황량한 목장지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목장이 문을 닫으면서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철쭉나무와 억새가 군락을 이뤄 지금의 광활한 경관을 갖게 됐다. 목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무를 베어낸 훼손이 철쭉과 억새의 자리를 마련해줬고, 목장을 만들며 숲을 밀어 놓은 길은 산정 바로 아래까지 닿는 편리한 찻길이 됐다.

황매산이 봄가을에 행락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건, 전적으로 접근의 편의성 때문이다. 황매산의 해발고도는 1108m.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배내봉은 1000m 정도다. 만만찮은 높이지만 배내봉까지는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쉽게 오를 수 있다. 황매산의 주차장이 정상 바로 아래 해발 850m에 있는데, 여기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걸어 산성 전망대와 배내봉을 둘러보고 되돌아오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배내봉에서 가파른 계단을 딛고 산 정상까지 다녀올 수도 있고, 아예 기암괴석이 있는 모산재 쪽에서 출발해 처음부터 끝까지 두 발로 황매산을 오를 수도 있지만, 차로 주차장까지 가서 배내봉까지만 가볍게 둘러보고 와도 좋다.

다만 유의할 점은 어떤 코스를 택하든, 억새를 역광으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코스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새는 빛의 방향에 따라 보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해와 마주 서서 역광으로 볼 때 억새꽃 솜털이 훨씬 더 밝고 화려하다. 코스를 정하려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해의 방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과소평가된 여행지 영상테마파크

▲ 수령 400년을 훌쩍 넘긴 화양리 소나무의 거북 등 같은 수피.
어떤 여행지는 과소평가된다. 국내 최대의 시대물 오픈세트장인 합천 영상테마파크가 그런 곳이다. 그곳에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서울이 있다.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 길게 줄을 서서 사는 영화 표, 튜너가 달린 TV, 교련복, 통기타…. 중년 이상의 세대들이라면 이곳을 빠뜨릴 수 없다. 영상테마파크에 재현된 시간은 가난하고 누추했어도, 그들에게 가장 빛났던 청춘의 시간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촬영 세트장은 대개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관광지로 개발되곤 하는데, 십중팔구는 반짝 인기를 누리다 문을 닫고 만다. 드라마나 영화가 잊히면서 발길이 뚝 끊기고, 부실한 세트장이 낡아가면서 폐허가 된다. 하지만 여기 합천의 영상테마파크는 다르다. 처음 시작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였던 것은 다른 촬영 세트장과 같지만, 세트장을 한 번 쓰고 허무는 날림 식의 가건물이 아니라 튼튼하게 지은 것이 달랐다. 애초부터 한번 짓고 허무는 세트장이 아니라 튼튼하게 지어 두고두고 쓰면서 관광명소로도 활용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줄을 이으면서 영상테마파크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여러 층위의 시간이 지층처럼 복원됐다. 그중에서도 감탄스러운 건 복원된 1980년쯤의 서울이다. 그 시절의 서울역과 한국은행, 남영동 뒷골목이 마치 흑백사진에서 꺼내진 것처럼 눈앞에 있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전의 서울 풍경이 딱 이랬다. 옛 건물과 오래된 물건을 둘러보다 보면 문득 자신이 건너온 과거의 시간과 마주치게 된다. 테마파크를 기웃거리다 때때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합천의 산중에 청와대를 지은 까닭

합천 영상테마파크는 사실 여행명소가 되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세트장에 재현된 시간을, 오로지 ‘서울사람’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시절의 서울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합천사람이 서울 남영동 뒷골목 풍경을 보고 무슨 감회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런데 2년 전쯤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무릎을 탁 칠 만한 해결책이 나왔다. 테마파크 뒤쪽의 산자락에다 청와대 세트장을 지은 것이다. 세트장은 실제 크기의 68%로 청와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서울의 옛 골목에는 심드렁했던 시골 사람의 청와대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청와대 세트장은 합천 영상테마파크 문을 나와서 언덕 위에 따로 들어섰는데 주차장 앞에는 대형버스가 속속 사람들을 부려놓고 있었다. 인근 지역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다. 관광객들이 너나없이 기념사진을 찍는 곳이 청와대 2층의 대통령 집무실이다. 기념촬영의 포즈는 거의 다 똑같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책상 위의 전화수화기를 다소 거만하게 들고 있는 자세다. 한 촌로가 먹통 전화기를 들고서 누군가에게 지시하듯 “놀러 갔다 올 테니 논의 나락을 다 베어놓으라”고 명령을 내리며 너스레를 떨자 폭소가 터졌다.

청와대 세트장 1층 충무실에는 역대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뒀는데, 문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딱 정면에다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뒀다. 역대 대통령 사진을 벽에 순서대로 걸자면 얼추 그렇게 배치되는 게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듯해 보였다. 합천은 어쨌든 이곳 출신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 ‘일해’를 여태 공원 이름으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합천에 갔다면 불꽃 같은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옛 절터인 영암사지도, 차로 단숨에 올라서 능선이 첩첩이 겹쳐지는 합천 일대의 산세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오도산 정상도 빠뜨릴 수 없는 일. 해인사와 가야산, 영상테마파크 얘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영암사지와 오도산 얘기는 한 줄로 끝내지만, 강조하건대 그렇게 대접할 곳은 아니다. 그리고 한 곳 더. 이곳들보다 더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구든 소매를 이끌어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 묘산면의 깊고 적막한 산중 마을로 한참을 들어가서 만나는 화양리 소나무다. 수령 400년을 훌쩍 넘긴 소나무는 ‘압도적’이라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이 나무는 공교롭게도 로제 샹바르의 유해가 가야산에 뿌려진 그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 여행정보

합천 가는 길 = 경남 합천 여행은 이동 거리가 길다. 합천 북쪽의 가야산과 해인사에서 서남쪽의 황매산까지는 차로 1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합천의 주요한 관광지는 서남쪽 합천호를 중심으로 몰려 있다. 그런데 또 합천읍은 합천 동쪽에 있다. 명소와 명소 사이 거리가 멀어 이동 전에 효율적인 동선을 먼저 짜야 한다. 해인사가 다른 관광지와 뚝 떨어져 있으니, 여행의 시작이나 끝에 놓고 동선을 짜는 게 좋겠다. 남쪽 끝에 있는 남명 조식 생가지도 마찬가지다.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합천은 숙소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해인사 인근에는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과 가야산관광호텔(054-931-3500)이 있다. 가야산관광호텔은 가야산 자락에 있지만 합천이 아니라 경북 성주 땅이다. 합천호를 끼고 다랑논이 그림처럼 펼쳐진 대병면 일대에는 펜션이 여럿 있다. 대병면 합천호반의 ‘문레이크호텔’(055-932-0200)은 요즈음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이른바 ‘무인텔’이지만, 그것만 빼면 추천할 만하다. 객실이 넓고 깨끗하다. 다랑논이 펼쳐지는 자리에는 아름다운 펜션(055-931-2343), 무지개펜션(070-8800-2345), 동화속 펜션(055-931-1080) 등이 있다. 민들레모텔(055-933-1279), 풍경좋은 돌담집(055-931-4900)도 괜찮다.

합천 삼가면에는 한우를 저렴하게 파는 식당들이 몰려 있는 ‘한우골목’이 있다. 면 소재지라지만 손바닥만 한 마을에 한우를 파는 식당이 30여 곳에 이른다. 그만큼 외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뜻이다. 식당 경쟁이 치열한 탓에 블로그 마케팅이 극성이다. 다들 가격이나 고기 질이 비슷하지만, 구태여 고르라면 한우 골목에서 유일하게 숯불을 내는 ‘해인축산’(055-933-4194)을 꼽을 수 있다. 1층은 축산물 판매장이고 2층이 식당이다. 합천읍에서 멀지 않은 대양면 정양리의 황강휴게소의 ‘황강식당’(055-931-0303)은 다양한 음식과 반찬을 낸다. 외지인들은 잘 모르는 곳이지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손맛 좋기로 이름났다. 가을에 캔 송이로 1년 내내 송잇국을 내는 해인사 상가지구의 ‘삼일식당’(055-932-7254)이나 합천초교 맞은편의 어신민물매운탕(055-931-1266)도 알아주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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