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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_15

醉月 2012. 9. 24. 07:33

어혈 풀고 굳은 것 깨뜨리다

장자의 나무 옻

충북 단양군 가곡면 말금마을 `옻나무 샘`. 수령 90이 넘은 옻나무가 옆에 서 있다. 샘물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경전의 숲’ 모임 시즌 1이 끝났다. 시즌 1에는 ‘장자(莊子)’내편을 읽었다. 시골 목사, 방송국 PD, 치과 의사, 혈액 암 전공 의대 교수와 개원 한의사 등 7명이 모여 각자의 분량을 맡아서 원문을 강독했다. 다들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고 자기 몫의 삶이 바쁘고 힘들다. 그런데도 끄떡없이 해냈으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시중에 나온 번역본들을 참조해서 지난겨울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우리 한의원에 모여 공부한 끝에 거의 반 년이 걸려 끝났다. 이렇게 일부를 독해만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를 번역해 꼼꼼히 각주를 달고 해설하신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장자의 국내 번역본과 해설서는 거의 다 참조했는데, 개인적으로 캐나다 리자이나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시는 오강남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단연 돋보였다. 신학을 하셔서 그러리라. 통찰의 깊이가 있다.

 

장자에 의하면 선택의 여지없이 특정한 국가체제에 태어나서 사는 동안 먹고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노심초사해야 하는 일들이 모두 ‘부득이(不得已)’한 일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세간(世間)에서 사는 일 모두가 부득이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속에서 이로운 것만 취하려 하고 이롭지 못한 것은 피하려 하니 괴롭고 고통스럽다.

 

옻 관리였던 장자

하지만 저것은 이래서 나에게 좋고 이것은 그러지 못해 나쁘다는 따위의 분별심만 거둔다면 사뭇 달라진다. 나와 타자(他者) 모두에게 두렵고 힘든 세상의 뭇 파도가 남태평양의 짙푸른 해변에서 서핑이라도 하듯 올라탈 만한 일이 된다. 그것이 내편 ‘인간세(人間世)’에 나오는 장자의 ‘승물이유심(乘物而遊心)’이다. 누구나 어쩔 수 없이 파도(物)를 탄다. 부득이한 일이 아닌가. 그 파도에 대한 분별을 버리고 파도의 흐름을 타고 마음을 자유롭게 노닐도록 하라는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불안과 절망의 시대를 살았던 장자의 얘기다. 크다 작다, 좋다 싫다, 쉽다 어렵다, 있다 없다 하는 분별을 여의면 된다. 왜 인간은 이것을 못하는가. 왜 파도에 호오(好惡)가 있는가. 일미(一味) 아닌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그의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인간세’에 나오는 글 한토막이다. 마치 선시(禪詩) 같다.

“저 빈 것을 보라(瞻彼·#53462;者).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虛室生白). 행복은 분별을 여읜 고요함에 머무르는 것(吉祥止止). 머무르지 못하면 몸은 앉아 있어도 마음은 달리는 것이니라(夫且不止 是之謂坐馳).”

나를 잊는 좌망(坐忘)과 마음을 굶기는 심재(心齋)를 말하던 장자도 역시 세간에서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부득이하게 직업을 가졌다. ‘칠원리(漆園吏)’라는 관직이다. 하는 일이 우습게도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거였다. 그런데 장자의 시대에는 생각 외로 이 칠원리가 상당한 직책이었다. 기원전 4세기 장자가 살았던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옻나무 밭, 곧 칠원(漆園)을 나라에서 직접 관리했다. 왜냐하면 먹이 발명되기 전에는 옻칠이 왕실이나 관청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옻이 없으면 문서를 만들 수 없었다. 당시엔 죽간(竹簡)이나 갑골에 이 옻칠액으로 글을 썼는데, 죽정(竹挺)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옻나무 액을 찍어 썼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서를 죽간칠서(竹簡漆書)라고 한다. 공자나 맹자 시대의 문서 대부분이 죽간칠서였다. 국가 행정에서 문서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옻의 안정적인 조달은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칠원리가 옻나무 밭을 잘못 관리하면 일국의 행정이 큰 차질을 빚게 되므로 자칫 잘못하면 그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벌도 받았다.

 

노장사상의 태두인 장자는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칠원리(漆園吏)’였다.

 

옻나무가 그냥 내버려두어도 아무 데서나 잘 크고 쉽게 죽지 않는 나무였으면 굳이 나라에서 옻나무 밭을 만들어 관리할 것까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옻은 생육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다른 나무보다 씨앗의 발아율이 낮아서 번식시키기 어렵다. 또 씨앗이 발아한 후 잔뿌리가 제자리를 잡는 데 3년 정도가 걸린다. 잘 자라지 못하고 죽는 게 많다는 얘기다. 그러니 옻액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옻나무 밭을 두고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옻나무 씨앗의 발아율을 높이기 위해 씨앗을 짚불에 살짝 볶아서 심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자연 상태에서보다 발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 홍만선의 ‘산림경제’에도 실려 있다. 아무튼 옻나무는 관리를 잘해야 했다.

 

장자가 칠원리 직책을 얼마나 유지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행적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길이 없다. 장자가 죽은 뒤 200년쯤 뒤에 쓴 사마천의 ‘사기(史記)’ 장주열전에 초나라 위왕(魏王)이 사자를 보내 재상이 돼주기를 청했으나 가볍게 거절했다는 것으로 보아 옻나무 밭을 계속 지키며 지내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아무튼 그는 극히 궁핍한 생활을 했으나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잡편의 열어구(列禦寇)에는 그런 장자의 모습이 잠깐 비친다. 그 앞에서 자신의 영달을 뽐내는 조상(曺商)이라는 세객(說客)에게 장자는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항문에 난 치질을 빨아 얻은 것과 같다”고 일갈한다. 언젠가는 다 떨어진 신발에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위왕을 만났다. 위왕이 “선생은 왜 그리 지쳐보이는가”하고 비웃자, 장자는 “지친 것이 아니라 단지 가난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지금같이 어리석은 군주와 못난 신하가 있는 곳에서는 어느 누가 병들고 지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가 있겠는가”라며 한마디 덧붙인다. 가난과 궁핍이라는 파도를 타고도 자유로웠다.

 

우리나라 역시 왕실에서 많은 양의 옻을 필요로 해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옻나무 심기를 권장한 기록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칠기를 비롯해 가구, 제기, 병기, 미술공예품 등 고급스러운 생활용품의 제작에 옻은 필수적이었다. 흔히 무언가를 표면에 바를 때 칠을 한다고 하는데 옻나무를 가리키는 칠(漆)에서 나왔다. 옻칠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게 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옻 생산을 독려했는데 관청에서 무리하게 징수하는 통에 백성의 원성을 사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옻의 항암작용

그런데 이 옻나무는 옻칠을 하는 도료로만 쓰임새가 한정되지 않는다. 약이다. 그것도 암과 같은 불치의 질환을 치료하는 영약이다. 옻 속의 후스틴과 피세틴 등 몇 가지 성분이 항암작용을 한다. 항간에 인산의학으로 유명한 김일훈 옹은 옻을 난치병 치료의 기본 약재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유방암을 비롯한 여러 가지 난치성 질환에 이 옻을 오리나 닭과 함께 넣고 조리해 복용하면 효험이 크다고 했다.

실제로 옻은 항암제로 쓰여서 혁혁한 성과를 보였다. 옻나무 진액에서 독성을 제거해 만든 ‘넥시아’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말기 암 환자들을 10년 이상 생존시켰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의 한의사 최원철 씨가 이뤄낸 쾌거다. 이 바닥이 워낙 말만 많은 곳인데, 그의 성과는 말로만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과학적인 데이터, 논문자료 다 있다. 어쨌든 이 시대는 과학적이라고 해야 통하는 세상이니까. 덕분에 한동안 그는 갖가지 딴죽걸기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야 했다. 개인적인 고초도 컸던 것 같다. 주류 의학인 양의학계에서 이런 일을 해냈다면 반응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옻은 한약재로 쓰일 때는 건칠(乾漆)이라고 한다. 맨 처음 옻나무에서 얻어진 진은 우윳빛이다. 고운 모시나 명주 등으로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이를 생칠(生漆)이라 한다. 이 생칠은 수분이 많으므로 햇빛이나 숯불로 수분을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렇게 하면 투명한 옻액이 된다. 이를 투명칠(透明漆)이라 한다. 한약재로 쓰이는 건칠은 흑갈색의 수지 덩어리인데, 생칠 속의 우루시올 성분이 공기 중에서 산화해 색이 변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건칠이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맵고 독이 있다”고 했다. 흔히 어혈(瘀血)을 삭히고 몸속의 궂은 덩어리를 깨뜨리며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것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썼다. 활혈거어(活血祛瘀)하는 약재다. 요샛말로 전립선염이라고 할 수 있는 산가(疝痂)를 치료하고, 회충 등 배 속의 기생충을 없애는 데에도 썼다. 중국 금나라 때의 저명한 의가인 장원소(張元素)는 “오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적체를 삭혀내고, 응결된 어혈 덩어리를 깨뜨린다(削年深堅結之積滯, 破日久凝結之瘀血)”고 했다.

건칠은 뜨겁고 매운, 신온(辛溫)한 약이다. 역시 아무에게나 좋은 약은 아니다. 몸이 차고 냉랭한 사람에게 쓴다. 이런 이들에게서 생긴 적체와 어혈에 쓴다. 염증이 많거나 몸이 더운 사람에겐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옻에는 독이 있다. 자칫 잘못 쓰면 부작용이 극심하다. 이른바 옻독이다. 한의학에선 칠창(漆瘡)이라고 한다. 옻액의 우루시올 성분이 이 옻독을 일으키는 물질인데, 옻에 예민한 사람은 1μg(마이크로그램)의 우루시올에도 피부염이 생긴다.

 

이 옻독을 없애기 위해 건칠을 쓸 때는 판판한 돌 위에 건칠을 올려놓고 불을 피워서 약재에서 연기가 올라올 때까지 가열한다. 그렇게 몇 차례 연기를 빼내면 웬만하면 옻독이 오르지 않는다. 요즘은 옻나무 진액이나 옻 껍질에 용매를 첨가하고 고열처리를 해서 독성을 제거하는 기술특허를 내 독성이 제거된 옻 진액을 대량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론 거의 옻이 오르지 않는다. 전남 화순에 사는 지인 한 분이 솜씨가 있으셔서 이 옻액을 만들어 보내주셨다. 한 달 넘게 음료수 마시듯 먹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옻나무는 흔히 참옻나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 붉나무 등으로 분류한다. 참옻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다. 우리나라 산야에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 밭에서 재배하는 것은 참옻나무이고 산야에 흔히 보이는 것이 개옻나무, 검양옻나무다. 약재나 칠의 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참옻나무다. 그런데 옻나무 종류가 아닌데 잎사귀의 생김새가 옻나무와 흡사한 나무가 많다. 어린 잎을 따다가 장조림을 하거나 맛있는 부각을 만드는 멀구슬나뭇과의 참죽나무도 옻나무와 잎이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얼마 전 일이다. 농가의 밭에 심어진 옻나무를 참죽나무로 잘못 알고 옻잎을 먹고 전신에 시뻘겋게 옻독이 오른 환자 한 분을 치료한 일이 있다. 참옻의 새순이나 어린 잎은 맛이 달아서 보양식품으로 식용하기도 하는데, 이분은 참죽나무 잎이 참 맛이 좋다며 많이 먹었다. 옻을 쉽게 타는 체질이기도 했다.

 

옻독의 양면성

옻 잎을 먹은 후 한나절 동안은 별다른 기미가 없었다. 단지 잇몸 주변이 좀 부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가 지나자 입 주변의 피부와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다. 곧 부기가 얼굴 전체로 번졌다. 작열감과 가려움이 너무 심해 민간처방으로 들기름을 바르고 꽃게를 끓여 국물을 마신 후 좀 완화됐다. 그렇게 괜찮아지나 했더니 다음 날 온몸으로 열이 퍼지고 전신의 피부가 성이 나서 살갗이 터지고 진물이 났다. 양방의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한의원에 내원한 환자를 살펴보니 등과 복부, 목 주변, 가슴, 손목과 다리, 허벅지까지 온통 시뻘겋게 옻독이 올랐다. 특히 항문과 고샅 주변 등 여린 피부조직의 발적(發赤)이 심하다. 가려움이 극심하다.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온몸에서 열이 나면서 가려움이 심해서 이를 긁어대느라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급히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침을 놓으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2~3일여가 지났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었다.

 

필자는 환자의 동의를 얻어 토종약재 전도사로 항간에 유명한 최 모 씨가 옻독의 특효약이라고 했던 ‘칠해목(까마귀밥여름나무)’을 구해서 투여했다. 이 까마귀밥여름나무의 줄기와 잎이 옻독에 신통한 효과가 있어서 이를 끓여 복용하면 첫날부터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등이 없어지고 부어오른 피부 표면이 꾸덕꾸덕하게 마른다는 것이다. 점차 모든 증상이 없어져서 3~7일 만에 완전히 좋아진다고 했다. 북한 동의학 자료를 많이 참조했지만 최 씨 본인의 경험도 덧붙였다. 이 나무 줄기와 잎을 끓여 복용시키면서 필자는 잔뜩 기대했다. 최 씨가 쓴 글을 보고는 왜 진작 이를 구해다 쓰지 않았을까 필자의 무지를 탓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약물 복용 후 옻독의 증상이 개선되기는커녕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작용이 튀어나왔다. 환자의 멀쩡했던 한쪽 팔이 손목에서 어깨까지 뽀빠이 팔처럼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만져보면 고무처럼 탱탱한 것이 아무래도 림프부종이었다. 옻독의 증상인 피부의 소양감과 발적, 작열감 어느 것 하나도 호전이 안 됐다. 3~4일을 속을 끓이며 지켜보았으나 차도는커녕 터무니없는 부작용만 생긴 것을 확인하고 모든 기대를 내렸다. 환자를 볼 낯이 없었다.

어찌됐든 수습을 해야 했다. 부기가 빠지지 않는 팔에 부항을 써서 사혈(瀉血)을 했다. 며칠 동안 필사적으로 사혈을 한 것이 주효했는지 다행히 팔의 부기가 빠지기 시작해, 부어오른 팔은 원상으로 돌릴 수 있었다. 다시 한약을 조제해 투여하고 소양감이 심한 피부를 사혈하고 침을 놓고 하여, 치료를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나자 옻독이 대부분 진정됐다. 국소적으로 소양감과 발적이 남아 있었지만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옻독으로 고생은 하지만 질병을 앓는 것과는 다르다. 혹시 고생한 만큼 몸이 더 좋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환자도 크게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치료를 받는 것보다 빨리 좋아졌다고 생각한 듯도 하다. 다행이다. 하여간 옻독을 잘못 처치한 탓에 필자도 교훈을 적잖이 얻었다. 옻독은 될 수 있는 한 빨리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치법(治法)이다. 신통한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는 것에 혹하지 말자 등등이다. 앞으로 칠해목만큼은 안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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