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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승호의 약초 이야기_04

醉月 2011. 8. 26. 06:35

 

주요 생필품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MB물가지수가 오르고, ‘바구니물가’도 팍팍 올랐다. 석유값이 오르면서 공공요금의 상승세가 피부로 느껴진다. Y씨의 살림도 내리막이다. 올해만 지나가면 좀 나아지려나 한 게 벌써 몇 년째다. 정권 바뀌며 기대가 컸는데 몇몇 대기업은 대박이어도 자영업자 Y씨의 가계경제는 쪽박이 분명했다. ‘부자 되세요’ 광고문구에 덩달아 곧 부자 될 것 같던 허망한 마음을 조금씩 비우기 시작하면서 Y씨는 주말마다 산행을 했다. 몇몇 지인이 함께 했다.

Y씨 일행은 7월 산행에서 등산가방 절반이 차도록 다래를 땄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처럼 마음이 즐거웠다. 충만감. 여느 등산객들처럼 죽자고 산자락만 오르던 이들이 얼마 전부터 이른바 ‘약초산행’을 하면서 생긴 마음의 변화다. 꾼들처럼 산삼 같은 걸 캐서 재미 보자는 취지는 아니었고, 취미 삼아 풀이름도 알아보고 야생화도 좀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아다니다보니 지천에 널린 게 다 약초였다. 등산도 하고 약초지식도 쌓고 집으로 들고 가는 ‘부수입’도 생기는 ‘일석삼조’가 됐다.

 

박새(여로)

 

목적지에 도착한 K씨 일행은 잠시 회포를 풀고 계곡을 따라 산을 올랐다. 바디나물이 보라색꽃을 피우고 있고 여름꽃인 주홍색 동자꽃도 아름답다. 국화과의 절굿대도 둥근 공 모양의 꽃을 피웠다. 절굿대 뿌리의 생약명은 누로다. 열을 내리고 젖이 안 나올 때 주로 쓴다. 꽃은 추골풍이라 해 피를 잘 돌게 하는 약이 된다.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는다.

박새(여로)도 흰꽃을 활짝 열었다. 꽃은 관상용으로 심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뿌리를 잘못 먹었다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수 있는 독초다. 옛날에 사약을 만들 때 천남성 초오 등의 독초를 함께 넣었다고 한다. 그 독성 때문에 적당히 쓰면 중풍 황달 종창 등에 효능이 있다. 구토를 다스릴 때나 살충제의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뿌리에서 멜라닌 생성과 관련되는 효소인 티로시나아제의 활성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피부미백 화장품 원료로서 그 가치를 시험받고 있다.

발이 푹신할 정도로 토질이 좋아서 산삼이 꽤 나온다는 산인데 아직까지 K씨 일행은 운이 없다. 병조희풀 군락과 능선 뒤편의 참당귀군락을 지나쳐 K씨 일행은 드디어 수줍게 분홍빛 꽃을 피운 솔나리와 만났다. 이파리가 솔잎을 닮았다고 해서 솔나리라 불리는 이 풀은 개체수가 해마다 줄어들어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정됐다. 강원도의 깊은 산속에서 주로 자란다. 한약명은 백합이다. 해수 기침 폐결핵 각혈 등에 사용한다. 구황기엔 식용하기도 했다. 모두들 연분홍의 그 소박한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느라 몰아지경이다.

K씨는 6년째 블로그를 운영하며 약초에 대한 글과 산행기를 올리고 있다. 그의 약초 관련 글은 전문적이다. 약물의 특허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그의 블로그엔 생약을 이용한 각종 특허정보로 가득하다. 약초 사진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전문가 수준의 사진들을 올린다. 얼마 전에는 출판사로부터 블로그의 글과 사진을 모아서 출판을 한번 해보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다.

솔나리를 뒤로하고 진교와 잔대(사삼)꽃도 신물나게 찍고 뱀차즈기 군락지를 지나서 산길을 헤매다보니 속단과 민백미꽃 군락지가 펼쳐진다. 5~7월에 흰 꽃이 피는 민백미꽃은 이제 열매를 달고 있다. 뿌리가 국수다발처럼 가늘고 희다 해서 백미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통 관절염 임병 신장염 부종 등에 쓴다. 청열작용이 강하므로 병증을 잘 파악해 써야 한다. 어린잎은 강장제로 효능이 있어서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는데 독성이 있어서 충분히 우려서 데친다.

아아, 지치와 시호도 있다. 일행 중 누군가가 결국 감흥을 이기지 못하고 이 산의 일급비밀을 발설하고 만다.

“여기는 푸른 숲 속의 약초 천국이다.”

 

꿀맛 약초 수제비

지치는 한약명이 자초(紫草)다. 볼품없는 흰색의 조그만 꽃이 핀다. 그러나 뿌리는 다르다. 지치는 그 뿌리가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색을 띠어서 자초라고 부른다. 지초라고도 한다. 뿌리에서 자주색 염료를 얻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우리 생활과 친숙하다. 진도의 유명한 홍주도 이 지치 뿌리를 재료로 해서 빚은 술이다. 예전에는 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는데 요즘은 깊은 산속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귀해졌다.

수십 년 동안 약초를 캐며 살아온 약초꾼들이나 시골 노인들 중에는 팔뚝만한 지치 뿌리를 캐 먹고 고질병이나 난치병을 고쳤다는 얘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혹자는 암 치료의 성약(聖藥)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효과가 산삼보다도 낫다는 설도 있다. 약성이 빼어나다는 말들이다.

전통적으로는 홍역이 유행할 때 해열을 위해 썼다. 피부에 습진이나 반진 등이 생겨 발열이나 혈열이 있을 때도 효과가 크다. 그래서 부스럼이나 종기가 났을 때나 태독(아토피) 건선 백납 등에도 쓴다.

면역을 억제시키는 물질인 시코닌 등을 함유하고 있어 면역기능이 항진되어 일어나는 건선이나 관절염, 담마진, 혈관염(자반증) 등에 뛰어난 효과를 보인다. 화농성 염증에도 그 효과가 탁월하다.

하지만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심장질환이나 뇌질환의 경우엔 조심해야한다. 지초는 혈액응고 효과가 있어 혈전의 형성이 문제가 되는 질환인 관상동맥경화나 뇌경색에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상선 기능항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시호는 상한(독감)으로 발열과 오한이 교대로 일어나는 증상, 유행성 열병으로 안팎의 열이 풀리지 않을 때 주로 쓴다. 학질에도 썼다. 이담작용이 강하고 독성은 약하다. 산형과의 식물로 우산살이 펼쳐진 것 같은 노란색 꽃이 핀다. 줄기는 푸르고 자줏빛이 나며 잎은 댓잎 같다. 시호 뿌리에 들어 있는 시호 사포닌은 만성 신장염이나 간염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치와 시호는 모두 석회암층에서 잘 자란다. 이곳이 석회암지대에 속하는 모양이다.

 

김승호
1960년 전남 해남 출생
現 광주 자연마을한의원 원장
前 동아일보 기자·송원대 교수

 

K씨 일행은 오늘 귀한 약초를 많이 만났다. 내려오는 길에 반하와 땃두릅, 둥근 이질풀, 마타리도 촬영하고 일정을 마감했다. 산에서 내려온 K씨 일행은 능이버섯과 좀싸리버섯, 표고버섯으로 도시에선 구경할 수 없는 특별한 맛의 수제비를 끓였다. 행복감이 밀려온다. 마침내 점잖은 K씨도 참을 수 없다. “수제비 끓인 아무개님은 능이 수제비집 개업하세요.” 아무개님의 말이다. “참나, 이런 재료를 아무데서나 구한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