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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10년 선배의 충고

醉月 2011. 9. 7. 06:48

 

700만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제2의 인생’ ‘인생 2모작’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은퇴 후 설계와 노후 대비는 이제 우리 사회의 본격적인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리 은퇴를 경험한 선배들은 은퇴를 맞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마침 50~70대 은퇴자 세 명이 후배 은퇴자를 위한 조언과 고언, 자신의 은퇴 후 경험을 담은 신간을 내놓았다. 앞서 고민하고 겪은 선배 은퇴자들을 만나보았다.
   
   
   | ‘세계는 한 권의 책…’ 저자 이해욱 전 KT 사장 |
   
   192개국 여행… ‘이상적 은퇴생활 롤 모델’ 1위
   “다음 여행지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라”

   
   박란희 자유기고가 rhpark48@gmail.com
   
서울 강남역 근처의 한 오피스텔 9층. 초인종을 누르자 이해욱(73)·김성심(72) 부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양쪽 벽은 책들로 빼곡했고, 바닥 구석구석에는 복사한 서류 뭉치들이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는 빨간색과 검은색 펜으로 메모한 큼지막한 세계지도가 놓여있었다. 지구본과 함께.
   
   이해욱 전 KT 사장은 전 세계 192개국 여행기를 엮은 책 ‘세계는 한 권의 책,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고 싶다’(두베)를 최근 펴냈다. 지난해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전 세계 192개국을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이란 인증서를 받았다. 치안이 좋지 않은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제외한 145개국은 아내 김성심씨와 함께 다녔다. 그는 최근 하나HSBC생명에서 조사한 한국 직장인들이 꼽은 ‘이상적인 은퇴생활의 롤 모델’ 1위를 차지했다.
   
   
   은퇴 3개월 만에 배낭 메고 유럽 여행
   
   그는 1993년 3월 KT 사장직을 끝으로 30년 공무원 생활을 끝냈다. 쉰여섯이었다. 웬만한 기업체의 고문이나 감사로 이직하는 ‘현역 프리미엄’을 누릴 만도 했건만 다른 선택을 했다. 부부 동반 25일 코스 유럽 배낭여행이었다. “은퇴하면 바로 여행을 떠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여권조차 없던 아내 김씨에겐 첫 해외여행이었다. 그녀는 35년간 해오던 산부인과 병원 문을 닫고 남편과 함께 배낭을 멨다. 유레일패스는 어떻게 끊는지, 역에서 내리면 호텔은 어떻게 정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났다.
   
   “CEO(최고경영자) 시절 해외여행을 해봤지만, 그건 그냥 따라만 가면 되는 것이었거든요. ‘타십시오’ 하면 차 타면 되고. 하지만 저는 현역 때도 미리 연습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직원들 안 시키고 제가 직접 했어요. 그랬던 게 도움이 됐지요. 용지도 직접 써보고, 직원들에게 ‘예약은 어떻게 하는 거지’ 물어보면서….”
   은퇴 후 첫 여행에서 호흡을 맞춘 후 이해욱·김성심 부부는 이후 18년 동안 여행 동반자로서 함께 세계를 다녔다. 여행을 통해 얻은 수익은 많았다. 우선 눈높이가 낮아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은퇴한 이들 중에서 현역 시절 습관을 못 버리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특히 다른 것은 다 참아도, 혼자 대중교통 타는 것을 못 참아 해요. 우리 부부는 지금 차가 없어요.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돈을 아껴야 하니까 지하철 타고 다닐 수밖에 없었거든요. 거기선 나를 아는 사람도 없으니, 둘이서 손 잡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다녀도 상관없었어요. 여행을 통해 그런 자연스러움을 배운 것 같아요.”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삶에 활력이 넘쳤다. “대개 은퇴하면 친구들끼리 같이 식사하거나, 등산가거나, 바둑 두는 게 끝이에요. 잡담하는 내용도 대부분 옛날 현역 시절 이야기뿐이죠. 하지만 저는 여행 끝나면 사진자료를 정리하고, 또 다음 여행지 공부하느라 하루가 짧아요.”
   
   그는 요즘도 오전 10시쯤 이 오피스텔에 나와 하루 종일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한다. 잠깐 일어서서 바닥에 깔린 서아프리카 말리에 대한 자료집을 보여주는데, 족히 200쪽은 돼 보였다. 국내에는 자료가 별로 없어 일본 구글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료도 뽑고, 영문 자료까지 뽑는다고 한다. 자료엔 각종 형광펜이 여러 차례 그어져 있었다. 그는 “집중보다 더한 몰입의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9년에는 아프리카 오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모아 서울 광화문 KT갤러리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전시를 열었다. 여행을 통해 ‘사진작가’로까지 데뷔한 셈이다.
   
   
   돈·건강·시간보다 중요한 건 열정
   
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면 묻는다. “세계 일주하느라 돈이 얼마나 들었느냐”고. 혹자는 “돈이 많으니 여행하면서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 전 사장의 대답은 달랐다.
   
   “여행을 하려면 돈, 건강, 시간, 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이 세 개의 다리 위에 ‘열정’이 있어야 해요. 거꾸로 물어볼게요. 돈이 있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여행을 하겠느냐는 거죠. 휴양지에 가서 쉬든지, 쇼핑을 하든지 하죠. 꿈을 키우기 위한 호기심의 상승작용이라고 할까요? 자료 찾고 몰입하고, 그게 습관화되고…. 가만히 있는데 열정이 저절로 생기진 않아요.”(이 부부는 별 1개 혹은 2개짜리 싸구려 호텔에 묵는다. 고급 레스토랑은 가지 않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햄버거로 대충 때운다. 비행기도 이코노미클래스를 탄다.)
   
   재차 “그래도 돈이 얼마나 많으시기에…”라고 묻자, 그는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던 건 다 아내 덕분”이라고 파안대소했다. 아내가 35년 동안 개업했던 병원을 그만두고 3층짜리 병원 건물을 임대했는데, 그 지역이 번화가가 되면서 매달 일정한 임대 수익금이 나온단다. 그는 “은퇴자에게는 매달 일정한 수입이 생기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나 또한 그것 없으면 해외여행도 끝”이라며 웃었다.
   
   여행을 위해 돈만큼 중요한 건 건강이다. 아내 김성심씨는 “막상 해외에 나가 보니 남편이 그토록 열심히 건강을 챙긴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았다”며 “독일에서 하루에 무려 네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녔는데, 정말 다리에 쥐가 나는 걸 주무르면서 쫓아다녔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매일 2시간 남짓 서울 양재천을 걷는다. 이들 부부에게 이제 몇 시간 동안 평지를 걷는 것쯤은 ‘가벼운(?)’ 축에 속한다.
   
   
   금지 국가 3개국 가는 것이 목표
   
이들 부부는 은퇴를 고민하거나 이미 은퇴한 분들에게 “자신만의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시니어에게 중요한 건 여생을 어떻게 즐겁게 살 수 있느냐를 개발하는 겁니다. 부부가 공동취미를 가지면 좋지요. 사람이 오래 산다고 좋나요? 살아 있는 동안 감동적인 순간을 얼마나 많이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죠. 특히 저희 세대는 모든 걸 희생하고 직장에 올인해서, 은퇴한 후에는 금전적 여건도, 건강도 나쁜 데다 제대로 즐기지도 못합니다. 골프든, 등산이든, 사진이든, 여행이든 거기에 몰입해 보세요.”
   
   그는 연말까지 어린이용 여행 스토리를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그의 바람은 현재 정부에서 여행을 금지한 3국(이라크·아프가니스탄·소말리아)에 한번 가보는 것이다. 아내를 바라보며 한 마지막 멘트.
   
   “자금줄이 막히면 못 가는 거죠!”
   
   
   | ‘100세 시대, 50대의 선택’ 저자 함광남씨 |
   
   “화려한 과거 잊어라… 창업보다는 재취업
   옛 직장 동료보다 새 친구 사귀어야”

   
   박란희 자유기고가 rhpark48@gmail.com
   
고학→30대 강제퇴직 2회→처음 창업한 무역회사 실패→40대 중반 88서울올림픽 당시 옥외광고 회사로 성공→50대 IMF 외환위기로 사업 부도→60대 이후 기업 컨설팅으로 재기 성공.
   
   함광남(70)씨의 짤막한 인생 여정이다. 그의 현 직함은 C&A Expert/한국광고연구원 회장. 광고나 커뮤니케이션 등에 관한 기업체 위탁 교육을 하는 회사다. 그는 ‘경영 컨설턴트’라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을 포함한 200여 회사에 경영 컨설팅을 해왔다. 50대에 쓰디쓴 경험과 재기를 경험한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 땅의 50대를 위해 최근 ‘100세 시대, 50대의 선택’(이지출판)이란 책을 냈다.
   
   
   샐러던트(샐러리맨+학생)의 시대
   
‘왜 50대인가’라며 책 이야기부터 꺼냈다.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712만명입니다. 전체 인구의 14.6%예요. 이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지 통계를 찾아봤어요. 평균 자녀 1.9명, 부모 생존율이 61.2%. 평균 연간 소득은 4779만원이에요. 월 400만원이 안 되죠. 반면 월 지출은 283만원이에요. 갖고 있는 순자산이 3억원 미만이에요. 놀랍게도 83.4%가 노후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실에 급급한 삶을 사는 거죠. 이들이 잘못되면 삶의 낙오자가 되고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예요. 제가 나침반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자신에게 상담을 신청하는 많은 50대들의 고민은 세 가지라고 한다. 경제적 문제(돈), 건강, 노후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다. “노후에는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다들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상 봉사의 길이 다양하지 못해요. 교장 출신이 남이섬에서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데, 그분은 눈높이를 완전히 낮춘 거예요. 그보다는 은행 부행장으로 퇴직한 분이 복잡한 서민금융 절차를 대행해줘서 돈을 버는 게 전문성을 살리는 길이죠.”
   
   그는 “전문성만 가지면 노후 생활에도 길이 열린다”며 “지구상에 2만2500개의 직업 종류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 전문성을 가지면 ‘내 일자리’는 있다”고 했다.
   
   함씨 또한 이 같은 경험이 있다. 30대 때 회사에 다니면서 틈틈이 ‘국가경영지도사’ 시험 준비를 했는데, 그 자격증이 사업 실패 후 재기의 발판이 될 줄은 당시엔 미처 몰랐다고 한다. 한때 국내 최고의 옥외광고 업체로 승승장구하며 일본과 옛 소련, 중국과도 합작회사를 설립했던 함씨의 회사는 IMF 환란과 함께 그대로 주저앉았다. 거래하던 대기업 제과회사는 부도가 나서 광고료를 주지 않았고, 광고 대행을 해줬던 중국 TV 회사에는 수백만달러를 줘야 했다. 200명의 국내 직원뿐 아니라 일본, 중국, 베트남 자회사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회사는 부도처리 됐고, 이후 그를 먹여살린 게 바로 ‘국가경영지도사’ 자격증이었다. 낮에는 기업 컨설팅, 저녁에는 학원 강사, 밤 11시부터는 기관에서 발행하는 잡지나 인쇄물의 교정을 보는 일을 해가며 생활을 꾸려갔다고 한다.
   
   “요즘 샐러던트(salaryman과 student의 합성어)란 말이 생겼잖아요. 지금 직장에서 잘나간다고 방심하지 말고, 자격증이나 전문 지식을 배워놓으면 큰 자산이 됩니다.”
   
   
   눈을 낮춰라
   
그는 또 “창업보다는 재취업이나 취업 연장에 노력을 기울이라”고 충고했다.
   
   “절대로 손대면 안 되는 세 가지가 뭔지 아세요? 잠자는 사자의 코털, TV 드라마 보는 아내의 리모컨, 그리고 자신의 퇴직금입니다. 퇴직금을 갖고 창업하는 분들의 99%는 실패합니다. 직장생활을 오래한 뒤 창업한 분들을 보면 ‘올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창업자는 염색체가 달라요.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합니다. 잘못하면 빚쟁이에 쫓기고 멱살도 잡히고 도망도 가야 하니까, 자기의 모든 걸 겁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던 분들은 ‘내가 왕년에 이랬는데’ 하면서 올인을 못하고 결국은 실패합니다.”
   
   그보다는 직장생활에서 쌓은 생산이나 판매, 인사관리 등의 노하우를 이용해 이전 회사보다 한 등급 낮은 회사에 재취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는 “전직할 회사는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업 중에서 현재보다 한두 단계 정도 낮추면 좋다. 또 서울이 아닌 지방이 아직 미개척 분야가 많으므로 지방 기업으로 전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해외 파견근무나 법정관리인 등 새로운 분야 도전도 추천했다. “대기업의 임원 출신인 A씨는 퇴직 후에 플랜트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독일 풍력발전 회사에 고문으로 취직했어요. 연봉 10만달러씩 받으며 노후를 여유 있게 보내고 있지요. 건설회사 CEO(최고경영자) 출신인 제 친구는 법원에 법정관리인 후보자 등록을 해놓았는데, 파산한 회사의 법정관리인으로 임명됐고 그 회사가 회생을 하면서 지금은 어엿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지난해 지식경제부와 외교통상부가 실시한 해외파견사업은 100억원의 예산으로 총 100명을 지원했는데, 이 중 80% 이상이 베이비붐 세대였다. 기업이 파산하면 법원에서 관리인을 선임하는 ‘법정관리인’의 경우, 변호사를 통해 추천받기도 하고 서울과 지방의 각 법원에 예비 후보로 등록해 놓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재취업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에 대해 함씨는 “이전 회사의 습관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 있다 중소기업의 상임고문으로 재취업한 B씨는 회사 경영을 정신없이 뜯어고치려고 하다가 결국 따돌림만 당하더라고요. 자기는 책상에 앉아서 지시만 하니까 일체감이 없는 거죠. 군림하는 자세는 절대 안 됩니다. 보스형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하자’는 감성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인생 대차대조표를 만들라
   
   그는 50대에게 은퇴 이후의 삶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지금부터 인생 대차대조표를 만들라고 말한다. 도표의 왼쪽에는 플러스 요인(자산 내역, 자신의 장점과 권리, 건강 등)을 기록하고, 오른쪽에 마이너스 요인(부채, 자신의 약점, 의무 사항 등)을 기록한다. 자신의 브랜드 가치가 얼마인지도 파악해봐야 한다. 함씨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조건으로 ‘업무 능력(62.8%), 외국어 능력(32.7%), 폭넓은 인맥관리(30.8%), 다양한 지식 보유(28.6%), 업무 추진력(25.5%), 업무 경험(25.5%)’ 등을 소개했다. 이밖에도 그는 △전직이 여의치 않아 퇴직자로 머물 때 가정에서 지난날처럼 ‘스타플레이어’로 살려고 하지 말 것 △월지급식펀드 등 자산 운용을 공부하고 하우스푸어는 피할 것 △옛 직장 동료를 만나지 말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것(대학원 특수과정, 직종별 봉사단체, 등산이나 바둑의 취미 모임 등) 등을 덧붙였다.
   
   “인도의 간디는 ‘인간은 각자 자기 나름의 악보를 갖고 살아간다. 어떤 악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결국 정신력과 자세에 달려 있겠지요. 지금 힘드세요? 리셋 버튼을 누르고 들메끈을 고쳐 매보세요.”
   
   
   |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의 저자 함영준 서울문화연구원 대표 |
   
   “삶의 한가운데서 가장 갈등 많은 시기
   자신에 솔직해져야 시작의 출구 찾을 수 있다”

   
   박혁진 기자 phj@chosun.com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의 저자 함영준 서울문화연구원 대표는 쉰다섯이다. 그는 40대 후반에 2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직장을 박차고 나왔지만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후의 행보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그는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오랫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면을 가다듬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 대표가 최근 ‘마흔이 내게 준 선물’이란 책을 내고, 40대를 지나오며 자신이 느꼈던 생각과 경험들을 풀어냈다. 그는 책에서 “40대를 ‘불혹(不惑)’이라 불렀던 시대는 지나갔으며 이제는 ‘미혹(迷惑)’으로 가득찬 시기”라고 정의했다. 오늘날 4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보다 더 많은 갈등을 하고 혼란을 겪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재의 40대들에게 함 대표는 생각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시작을 더디게 하죠. 젊다면야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40대에 접어들었다면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저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뒤돌아보고 망설여본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으니 생각의 전환만이 살길이죠.”
   
그는 생각의 전환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보다 정직해져야 할 것도 주문하고 있다. “힘든 상황이 올수록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필요합니다.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시작의 출구를 찾을 수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함영준 대표가 40대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마흔의 나이는 어떤 시기였나. “나이 40을 공자는 ‘불혹’이라고 했다. 불혹은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 흔들림이 없는 나이라고 해석되는데, 그것은 평균 수명 40에 불과하던 시절의 옛말이다. 오늘날은 가장 갈등이 많은 시기가 바로 40대다. 오늘날 40대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청소년보다 더 ‘미혹’으로 가득 찬 시기다.”
   
   - 미혹으로 가득 찬 시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40대부터는 흔히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는 앞만 보고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틀을 마련할 여유조차도 없어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삶의 주기를 통틀어 한가운데에 선 40대, 당연히 이제까지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 정년퇴직의 개념이 사실상 사라진 마당에서 40대부터 퇴직의 위험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생존의 극한전선에 내몰리는 게 40대다. 어려움에 처한 40대 직장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나.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고, 가장 쉬운 일이 남을 비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탈레스의 말처럼 남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런데 남을 비판할 때 자기를 솔직하게 들여다보지 못하면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
   
   - 어쩔 수 없이 몸담았던 조직에서 나와야 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영화 ‘가을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버린다고 허탈해 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이 대사처럼 막다른 곳이야말로 출발선이라고 마음의 방향을 바꾼다면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전혀. 어차피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다. 스스로를 정면으로 보고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 홀로 서지 못한다면 자립적 인간이 아니다. 나는 혼자와의 싸움, 혼자의 시간을 통해 비로소 내 자신과 주변을 이해했고, 이후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홀로서기를 하다 보니 도리어 그전까기 그렇게 의식되던 ‘나’가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게 됐고, 홀로 있다 보니 무서움이 덜어졌다. 어차피 혼자인데 광장이든, 인적이 없는 산속이든, 광야든 무엇이 다른가.”
   
   - 광야란 말이 과거와 단절하란 의미처럼 들린다. “옛 고승들은 현실 세계와 내적 갈등을 빚어 아예 현실 세계와는 인연을 끊어버렸다. 산중 암자에서 또는 광야에서 수양을 했다. 내가 겪어본 광야는 현실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새 환경과 세계에서 자신을 이겨 내라는 것이다. 우리의 광야는 내 집일 수도 있고, 마음일 수도 있으며, 내가 잘 가는 산이나 새로운 직장, 새로 꾸린 사업일 수도 있다.”
   
   - 돌이켜보면 후회하는 일도 적지 않았을 것 같다. 다시 40대로 돌아가면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 같은 실수가 있었나. “사람들에게 까칠하게 대한 것. 나 자신과 불편하다 보니 타인들과도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 예컨대 업무적으로는 내가 스스로를 심하게 채찍질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특히 후배들에게도 너무 심하게 대한 것이 있다고 본다. 내가 여유로웠다면 보다 유연한 방법으로, 보다 스마트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접근하고 설득하지 않았겠나 싶다. 또한 다시 40대로 돌아가면 나를 보다 긍정적으로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 내 스스로 힘들게 외치는 소리나 피곤한 모습을 이해하고 잘 달래주었다면 상처받은 내 자아나 피곤한 육체도 다시 생기를 찾고 보다 긍정적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 50대를 더욱 풍성하게 보내기 위해 40대에 시작할 만한 일이 있을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선 육체적 운동을 권하고 싶다. 운동은 몸에 활력을 주고 그것이 신체를 통해 마음을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만든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3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자며 긴장된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새벽 30분 운동이었다. 운동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의욕과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함 대표는 현 정부에서 얼마전까지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다.)
   
   종교를 갖는 것도 권하고 싶다. 나도 교회나 성당, 사찰 가는 것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람이 힘든 경우를 당하면, 또한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를 향해 나갈 때는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종교가 가르치는 것은, 내가 열심히 살고 선하게 살면 ‘Don’t worry, Be happy(걱정하지 말라, 행복하라)’라는 것이다. 참말로 그런 것 같다. 그런 자세로 마음의 짐을 덜어놓으면 훨씬 활동하기가 편하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긍정적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말은 헤밍웨이의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다만 파괴될 뿐이다’였지만 마흔을 겪으면서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꿨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결국 승리한다.’ 저자는 끝으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긍정적이고 유쾌한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부정적이고 불쾌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