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와 손의 감각이 실증實證하는 덖음차의 완성
좋은 차의 구성
한국 전통차의 대표적인 가공 과정이 덖음이기 때문에 예부터 통칭 덖음차라 했다. 4세기 때 이 땅에 처음 차가 들어와 1,600여 년 동안 꾸준히 고유한 특성을 유지해온 차가 덖음차이기 때문에, 한국의 차는 덖음차이다.
차 덖기
덖음차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말할 여지없이 찻잎 덖기이다. 차밭으로부터 그물포대에 담겨온 찻잎을 멍석에 널어 식히고 찻잎을 고른다. 오전에 딴 찻잎은 오후에 반드시 덖어야 하고, 오후에 딴 찻잎은 그날 밤에 덖어야 한다. 찻잎이 채취된 시점에서 한 나절만 지나도 좋은 차가 되지 않는다. 찻잎의 생동하는 에너지가 중지되어 발효되기 때문이다.
찻잎 덖기에는 적어도 세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람은 솥에서 고정적으로 덖기에 전념하고, 한 사람은 솥에서 나온 찻잎을 멍석에 가져다 비비고 털고 널어 식힌 후 다시 솥 덖는 사람에게 갖다 줘야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부엌의 장작불 담당이다.
덖음차 만들기의 필수 3인 중에 수장은 부엌의 불 지피기 담당이다. 차 부엌지기는 비수기에도 늘 차 덖기에 알맞은 장작을 준비해 두어야 하고, 초벌덖기부터 마지막 끝내기 볶음까지 알맞은 격조의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또한 덖는 담당이나 멍석의 비비는 담당과도 잠시도 빠짐없는 유기적인 의사소
통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차 부엌지기는 덖음차의 달인이 아니면 안 된다.
덖는다는 것은 일창이기一槍二旗의 찻잎을 고루 익히기 위해 뒤집고 흩뿌리는 솥 안의 행위를 말한다. 찻잎을 솥에 넣기 전에 미리 장작불을 지펴 가마솥에 열을 세게 가하고, 솥이 점차 달궈지면 젖은 수건을 솥바닥에 깔아 열을 고루 분산시킨다. 그 다음 손으로 물을 한 움큼 솥에 떨어뜨렸을 때 즉시 물방울이 증발하면 첫 번째 찻잎을 넣고 덖기 시작한다.
이때 솥의 온도는 200~300℃로 짐작된다. 그때 찻잎의 양은 솥의 크기에 알맞아야 한다. 보통 가마솥이라면 대야 크기의 바구니로 하나쯤 된다. 찻잎을 비빌 때 손에 힘을 강하게 하면 찻잎이 뭉그러지고 약하게 하면 말리지 않는다. 고열의 솥에서 나온 찻잎을 맨손으로 비비거나 두 손으로 멍석 위의 찻잎
을 비빌 때, 강하면서도 부드러워야 차의 형태가 잘 갖춰지고 향색미를 발휘하는 데 큰 영향을 준다. 밀때는 은근하면서 강하게 밀고, 싸안아올 때는 부드럽고 자상해야 한다. 이와 같이 유강겸비柔强兼備의 덕으로 찻잎을 수용함으로써, 찻잎은 자체로 지닌 천혜의 본질을 드러내어 좋은 차가 되고 싶은 저들의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다. 유강을 겸비한 손길로 멍석 위에서 차를 밀고 끌어당기고를 반복하여, 손바닥에 약간의 끈적거림 상태가 되면 찻잎을 고루
털어서 널고 식힌다.
두 번째 덖을 때는 부엌의 장작을 한두 개쯤 들어내어 불길을 낮춘다. 한 번 덖고 비빈 찻잎을 다시 가마솥 안에서 덖다가 조금 말아진 찻잎이 뜨겁다 싶으면 꺼내서 멍석 위에 놓고 비비는 과정의 반복이다. 이때 역시 비비다가 끈적거림의 감각이 손바닥에 오면 털어서 널고 식힌다.
세 번째 덖을 때는 솥의 온도를 더 낮춘다. 솥안에서 뒤집고 털어 흩는 것은 같지만, 멍석에 널어 비빌 때는 그 강도를 더 낮게 하여 마치 모시 빨래하듯 부드럽게 해야 한다. 멍석에 널 때 찻잎의 수분이 많이 증발하여 찻잎에서 나온 진으로 인해 찻잎이 서로 유착이 심하게 된다. 이때 찻잎을 낱낱이 떼어 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두세 잎이라도 멍울이 되어 풀리지 않으면 그 부분만 습기가 머물러 변질을 가져오고 차맛을 도태시키는 원인이 된다.
네 번째 덖을 때는 솥의 온도를 세 번째보다 더 낮게 조절한다. 솥 안에서 덖기는 손으로 하지 않고 차 주걱을 써서 모아 뒤집기를 한다. 그리고 찻잎 몸에 열이 더워지면 찻잎을 모아 멍석 위에 놓고 찻잎의 상태를 본다. 이때 한 번 더 비빌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만약 한 번 더 비빈다면 아주 약하고 부드럽게 비벼서 세 번째처럼 찻잎이 서로 엉키지 않게 손질을 잘해 널어야 한다. 비빔이 필요치 않다면 멍석 위에서 찻잎의 몸만 식히고 다시 솥으로 간다. 다섯 번째 덖음부터는 차 주걱으로 솥 안에서 뒤집고 바닥에 고루 흩는다. 솥의 열이 찻잎에 더워지면 멍석 위에 깨끗한 보자기를 깔고 헤쳐서 식힌
다. 다섯 번째 덖어 수분이 50~60% 증발된 찻잎을 말아 멍석에 널면 짜인 요철 속으로 차가 유실될 뿐 아니라 찻잎 모양에 손상이 오기 때문에, 깨끗한 보자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부터는 솥에서 찻잎에 몸을 데우고 멍석 위 보자기에 다시 털어 식히는 것의 반복이다. 이를 3~4회 하면서 찻잎 속의 미세한 수분을 완전히 제거해야 변질을 막고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한약漢藥에 쓰는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말을 덖음차에 쓰는데, 이는 매우 맞지 않는 말이다. 구증구포는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는 뜻이다. 덖음차는 덖음으로 완성되는 것이지 한 차례라도 찌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솥에서 덖는 횟수를 합하면 차 몸을 익히고 데우는 횟수는 9~12번까지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손의 감각으로 찻잎의 수분기가 미세하게나마 느껴지면 솥에 넣었다가 꺼내 식히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찻잎 덖기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쌓이고 쌓여서 손에 감각이 생긴다.
찻잎 딸 시기의 날씨가 가물거나, 차밭에 활엽수가 없거나, 차밭 차나무의 섭생이 그늘 70%와 햇볕 30%의 균형을 벗어난 양지의 찻잎이면 7~8회 덖는 것으로 만족한다. 활엽수의 그늘 균형이 7대 3으로 적당한 차밭의 찻잎이면 9~10회의 덖음이 적당하다. 채취시기에 비가 자주 왔거나, 그늘이 있어 축축한 차나무 환경이거나, 대밭 속의 차나무 찻잎은 12회까지 솥 안을 드나들어야 차가 완성된 뒤의 변질을 막을 수 있다.
완성시킨 차속에 미세한 수분이 남아 있으면, 특히 여름장마철의 수분 공세에 변질을 막을 길이 없다.
한국 전통 자생 덖음차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은, 좋은 자생 찻잎이라 해도 그 과정이 마치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아야 돌아가는 것과 같이 섬세하고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찻잎 덖기 횟수를 더하고 덜하는 결정은 찻잎의 분별로 이루어진다. 이는 법이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나타남도 없어서 육안으로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손의 감각으로 느껴, 이를 전해 받은 마음이 알 뿐이다.
차 볶기
덖음차의 마지막 종료 과정은 차 볶기다. 기와집 짓기로 말하면 상량이고, 교향곡 같으면 제 4악장이며, 영화라면 클라이막스다. 찻잎을 7~12회 덖는 것은 수분의 완전증발을 위한 것이고, 볶기는 차 맛을 내는 완성의 장이다. 솥에 열을 가하고 뒤적여서 맛내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차를 마지막으로 덖어서 일정 기간 동안 잘 담아두었다가 볶는 것이 원칙이다. 당장 두고 마실 차라면 한 일주일 뒤에 차를 볶고, 3~4개월 또는 1년 걸려 마실 차는 3~4개월 뒤에 볶는 것이 좋다. 마지막 덖기에서 볶기까지 시간을 두는 이유는 아무리 생 찻잎에서 점진적인 수분 증발과 다소의 점진적인 함축을 위하여 7~12회나 덖었어도 찻잎에서 차로 이어지는 것은 큰 변화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잠정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차 볶기는 가마솥 바닥에 손을 대었을 때 뜨겁다 할 정도에서 두 시간 이상 차 주걱으로 차를 천천히 뒤집어 흩뿌려야 한다. 참선수행으로 말하자면 찻잎 따기와 덖기가 움직임의 참선이라 할 수 있고, 볶기는 한적한 좌선이라 할 수 있다.
솥의 온도가 높거나 짧은 시간에 볶아내면 탄 차가 되고, 적정한 열에서 오래 볶으면 고소하고 맛이 깊음과 동시에 맑고 서늘해진다. 볶은 차는 온돌방에 한지를 깔고 한두 시간 널어두었다 봉지에 담아 완성된 차가 된다.
차 볶는 날은 차의 설날이다. 절이라면 온 도량이 차향으로 가득하다. 큰절의 노스님들이 1년중 가장 조바심을 내는 날은 언제 이 새차를 마실 수 있을지를기대하는 날이다. 가마솥에서 볶기가 완성되면 ‘댓잎에 첫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솥 안은 한겨울에 따스한 햇빛이 숲에 비칠 때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하며, 손에 만져지는 감촉은 밤꽃이 지고 한두 달 지난 밤나무 가지에 매달린 여린 밤송이를 만지는 듯하다. 이와 같이 눈과 귀와 손의 감각이 덖음차의 완성을 실증實證해야 참다운 차의 법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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