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물을 안고 물은 산을 담고
남을 비추어 자기를 드러내는 산수결연(山水結緣)의 명풍경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을 처음 본 것이 언제였을까. 월악나루에서 충주호를 회유하는 유람선을 타면서 생각했다. 그곳은 엉뚱하게도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포구의 이발소였다. 그곳은 이발의자 두 개와 세면대 하나, 그리고 갯바람이 가득 차 있었다. 호수의 풍경은 그 이발소 거울 위에 걸려 있었다.
▲ 충주호에서 본 월악산.수면이라고 하는 수평면 위에 수직적인 산이 우뚝 솟아 있는 이런 풍경을 풍경학에서는 '수평과 수직의 분극'이라고 한다.이 풍경현상이에서는 산이든 나무든 우리 앞에 수직의 자세로 서 있는 사물이 역시 서 있는 우리와 같은 정신적인 존재로 곧잘 지각된다.이것을 일본의 경관공학자 나카무라 요시오는 애니미즘지각이라고 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로 잰 듯한 삼각형의 산용이 화면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이었다. 산머리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덮여 있었고, 전경에는 거울 같은 물이 산기슭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그래서 산은 물 속에서 솟아오른 듯이 보였다.
수면에는 그 물의 잔잔함을 웅변하듯이 반영(反映)의 산이 그려져 있었다. 침엽수 두어 그루가 화면의 가장자리에 수직으로 서 있었다. 아름다움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 그림이 호수를 풍경으로 의식한 첫 경험일 것이다.
풍경의 힘(風景力)
월악나루를 떠난 유람선은 직선으로 주행했다. 호수의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넓은 수면이 펼쳐졌다. 배가 잔잔한 수면을 가르고 지나가자, 호면(湖面)은 팽팽하게 당긴 옷감이 잘리듯이 길게 갈라지고 있었다. 그 위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져 물위에서 산란하고 있었다.
▲ '물은 산을 담고'(충주호와 도담삼봉),무엇보다도 산호(山湖)의 아름다움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고요하고 맑은 수면 위에 아낌없이 반영되는 그 광경이다.
물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만경창해(萬頃滄海)의 바다 풍경도,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흐르는 강물의 풍경도 그저 아름답다. 계곡에 고인 맑은 웅덩이도 아름답고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류도 아름답다.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있을 리야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물이 연출하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이 무조건적인 아름다움의 원천을 말해보라면 그 대답이 궁해진다. 그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나 원시의 인간이 정착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언제나 물과 가까이 지냈다고 하는 원형적 추억이 미적 체험으로 치환된다’고 하는 설명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런 심층 무의식적 해석은 이해는 가지만 납득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흐르는 물에서는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의 무의미를, 고요한 물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가라앉은 마음을, 그리고 일렁이는 물에서는 번뇌하는 자기를 보는 것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추상적인 심정을 눈앞에 펼쳐지는 구체적인 풍경으로 대응하는 순간 그 추상의 원천과 깊이와 내역이 확실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촌철살인의 설명력이 풍경의 힘(風景力)이다. 나는 풍경의 미적 체험을 상징론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이런 풍경의 힘을 믿는 편이다.
산은 물을 안고
▲ 만추의 충주호,아홉 겹으로 껴입은 치마폭을 하나 하나 들추듯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마다 산자락 속에 숨은 속살을 드러냈다. 복잡한 수제선과 중첩된 산능선,그리고 시점이 이동하면 이를 따라 산자락도 함께 드러나고 숨는 풍경호 산호에서만 맛보는 각별한 눈맛이다. 장정곡포란 이런 풍경이다.
배는 늦가을의 수면 위를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미끄러지듯이 호심(湖心)으로 나아갔다. 물은 산기슭까지 차올라 있었다. 올해는 비가 많았던 탓이다. 선창(船窓)으로 물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산이 내다보인다.
호수는 평야에 있는 평야호(平野湖)와 바닷가 모래가 물을 막아 이루어진 석호(潟湖), 그리고 화산이나 단층의 함몰, 빙하의 흔적 등으로 산 속에 만들어진 산호(山湖)가 있다. 충주호는 충주댐으로 이루어진 인공호이지만, 이 분류에 따르면 산호다. 호수 주위를 산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산이 물을 안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 산호의 풍경적 특징이다.
배가 진행하면서 수면으로 길게 늘어뜨린 산자락들이 하나 둘씩 벗겨지듯이 드러났다. 산호는 산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물이 들어차 있으므로 평야호나 석호와 달리 물가의 선(水際線)이 복잡하다. 충주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월악산과 같이 높은 곳에서는 그저 완만한 곡선으로 보이던 이 물가의 선은 물이 들어찬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나 유람선과 같은 낮은 시점에서 보면 심하게 왜곡되어 보인다. 심지어 그 곡선은 산모롱이 저 뒤로 숨어 버리고 물로 내리뻗은 산자락만이 율동적으로 도열하고 있다.
아홉 겹으로 껴입은 치마폭을 하나 하나 들추듯이 배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마다 산자락 속에 숨은 속살을 드러냈다. 복잡한 수제선(水際線)과 중첩된 산능선, 그리고 시점이 이동하면 이를 따라 산자락도 함께 드러나고 숨는 풍경은 산호에서만 맛보는 각별한 눈맛이다. 장정곡포(長汀曲浦)란 이런 풍경이다. 물론 다도해를 횡단하는 배 위에서도 이와 같은 풍경을 맛볼 수는 있으나 이처럼 짧은 시간에 다 보여주지는 않을 뿐 아니라 변화도 적다.
▲ '산은 물을 안고',충주호와 같은 산호(山湖)의 풍경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강 풍경이나 바다 풍경 보다 어둡다.그러나 시각상을 분명히 지각하지 못하게 하는 이 어두움은 그것이 도리어 산하의 풍경을 유현하고 신비롭게 한다.물론 잦은 물안개로 인하여 쉽게 몽환적인 풍경이 생성되는 것도 산호가 다른 수경(水景)에 비하여 아름답하고 말해지는 이유다.
충주호와 같은 산호의 풍경은 강 풍경이나 바다 풍경보다 어둡다. 그것은 툭 트인 평야나 바다와 달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상을 분명하게 지각하지 못하게 하는 이 어두움은 그것이 도리어 산하의 풍경을 유현하고 신비롭게 보이게 한다. 물론 잦은 물안개로 인하여 쉽게 몽환적인 풍경이 생성되는 것도 산호가 다른 수경(水景)에 비하여 아름답다고 말해지는 이유다.
물은 산을 담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호의 아름다움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 고요하고 맑은 수면 위에 아낌없이 반영되는 그 광경이다.
호수의 수면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이나 일렁이는 바다의 그것과는 다르다. 고요한 물이다. 침착한 물이다. 물이 물을 덮고 그 위로 또 다른 물이 겹쳐지는 그런 물이 아니다. 다만 고요하게 차 오르고 또 가만히 가라앉는 물이다. 그래서 호수의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로 꼽는 동정추월(洞庭秋月)도 가을 달을 비추고 있는 거울처럼 차갑고 수은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동정호의 수면 풍경이다. 남을 비추어 자기를 드러낸다.
11월의 충주호는 산비탈에 서 있는 낙엽수들의 불타는 단풍을 수면에 비추고 있었다. 배가 진행하면서 일으키는 파문 위로 노랑과 붉은 색이 일렁이고 있었다.
배가 월악나루로 회유하기 위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월악나루가 보이고 그 뒤로 산이 우뚝 서 있는 광경이 보였다. 월악산이다. 그 산은 기슭에서부터 치솟아 올라 나무랄 데 없는 삼각형의 산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 충주호를 회유하는 유람선.
수면이라고 하는 수평면 위에 수직적인 산이 우뚝 솟아 있는 이 풍경을 풍경학에서는 ‘수평과 수직의 분극’이라고 한다. 제임스 깁슨이 말하듯이 우리는 우리 앞에 선 세계의 시각상을 수평과 수직 이 두 개의 면으로 수렴하려고 한다. 산비탈도 경사각 15도를 넘어서면 그때까지 평평한 면으로 지각되던 바닥이 갑자기 일어서서 우리를 가로막는 수직적인 면으로 지각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수평과 수직의 분극이라는 풍경현상에서는 당연히 수직적인 시각상이 인상에 남기 쉽다. 물론 이러한 세계지각의 심리는 중력장이라고 하는 생활환경의 물리적 성질로부터 학습된 것이다. 그래서 산이든 나무든 우리 앞에 수직의 자세로 서 있는 것은 역시 서 있는 우리와 같은 정신적인 존재로 곧잘 지각된다. 이것을 일본의 경관공학자 나카무라 요시오는 애니미즘 지각이라고 한다.
수평면 위에 우뚝 솟은 월악산은 거울 같은 충주호의 수면 위에 마치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듯이 서 있었다. 충주호에서 보는 월악산 주봉은 여인의 옆얼굴이다. 그래선지 월악산은 수면 위에 자기 얼굴을 비추고 있는 관능적인 여인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배가 월악나루로 접근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충주호에 담긴 월악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년 시절 이발 가위 소리가 유혹하는 졸음을 떨어내려고 눈에 힘을 주면서 바라본 그 호수 풍경에 필적하는 그림 같은 광경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 만든 것 중에 추한 것은 없다고 했다. 이런 산수합작의 명풍경이 태어난 것을 보면 제방을 막아 큰 물을 담은 충주호도 필사의 의지로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11월 초 어느 날 오후, 유람선 위에서 물과 산이 서로 만나서 이루는 이 산수결연(山水結緣)의 명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ㆍ기고자:강영조 동아대학교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 yjkang@mail.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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