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물로 보지 마라
동자를 거느린 두 선비가 너럭바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본다. 가운데 바위 사이로 두 갈래 물길이 터졌는데, 물살은 물거품이 일 만큼 세차다. 때는 여름이다. 승경(勝景)은 아니지만 볼수록 눈이 시원해지는 그림이다. 그린 이는 이한철. 추사 김정희와 대원군 이하응의 초상을 그리고 고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한 화원이다.
옛 선비들의 피서는 점잖다. 웃통 벗어 젖힌 채 맨살로 물에 뛰어들면 채신머리없다. 그저 발만 물에 담그는 탁족을 즐겼다. 그보다 담담한 쪽은 물 바라보기다. 물 보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 흐르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는다고 했다. 옛날 성철현달(聖哲賢達)과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은 물에 자신을 비춰 봤다. 인류 최초의 거울이 물 아닌가.
공자는 물을 보고 깨달았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노자는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으니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는다.” 주자는 읊었다. “땅의 모양은 동쪽 서쪽이 있지만, 흐르는 물은 이쪽저쪽이 없도다.” 송강 정철도 보탠다. “물은 나뉘어 흘러도 뿌리는 하나다.” 더위를 쫓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좇는 게 물이다.
이 그림은 물소리 콸콸 넘친다. 물소리는 어떠한가. 처마 끝의 빗소리는 번뇌를 끊어주고, 산자락의 물굽이는 속기를 씻어준다. 세상 시비에 귀 닫게 해주는 것도 물소리다. 오죽하면 최치원이 ‘옳다 그르다 따지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가두어 버렸네’라고 읊었을까. 물을 물로 보면 안 된다.
화가는 그림대로 사는가
메추라기는 못생긴 새다. 작아도 앙증맞기는커녕 꽁지가 짧아 흉한 몸매다. 한자로 메추라기 ‘순(?)’은 ‘옷이 해지다’라는 뜻도 있다. 터럭이 얼룩덜룩한 꼴이 남루한 옷처럼 보인다. 메추라기는 또 정처 없이 돌아다닌다. 누더기 옷차림으로 떠도는 나그네와 닮았다. 메추라기 두 마리가 조 이삭 밑에서 거닌다. 한 마리는 촘촘한 이삭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고, 한 마리는 땅에 떨어진 낟알을 부리로 쪼고 있다. 모처럼 먹을거리 푸진 곳을 찾아다닌 까닭인지 한결 통통하게 살이 오른 놈들이다. 조는 기장처럼 알곡이 작다. 하도 작아서 조와 기장은 가끔 ‘소득 없는 짓’에 비유된다. ‘순자’에 이르기를 ‘예(禮)와 의(義)에 기대지 않고 시서(詩書)를 읽는 것은 창으로 기장을 찧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래도 조는 어엿한 오곡이다. 조밥은 차지고 알을 톡톡 씹는 맛이 있다. 메추라기 구이도 별미다. 냉면 웃기로 달걀 대신 메추리알을 올리는 식당도 있다. 메추라기는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한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메추라기로 배고픔을 이겼다. 최북은 메추라기 그림에 으뜸인 화가다. 별명이 ‘최 메추라기’였다. 그림 속에 명나라 화가 문징명의 그림을 본떠서 그렸다는 글이 보이지만 그의 메추라기는 오롯이 조선풍이다. 다만 그의 삶이 쓸쓸했다. 애꾸눈에다 해진 옷을 입고 유리걸식을 일삼아 사람들은 그를 ‘거지 화가’로 조롱했다. 메추라기를 그리다 메추라기 꼴이 됐으니 최북에게 그림은 운명이었다. |
발 담그고 세상 떠올리니
시원한 여름나기에 묘수랄 게 없던 시절, 물은 참 고마운 싼거리였다. 산지사방에 냇가, 강가, 바닷가가 지천이라 여기 덤벙 저기 풍덩하는 새 여름이 갔다. 미역이 마땅찮은 산골은 물맞이가 제격이다. 폭포수가 뒤통수로 떨어져 더위 먹은 정신이 깬다.
목물도 버금간다. 찬 우물물 한 바가지가 등짝에 쏟아지면 뼈가 시리고 멀쩡한 아랫것이 자라자지마냥 오그라든다. 푹푹 삶고 물쿠는 삼복인데, 양반인들 틀거지 따질까. 우선 벗고 볼 일이다. 벗되 다 벗을 순 없는 노릇이고, 바지자락 둥개둥개 무릎까지 걷어 올려 흐르는 물에 발만 담근다. 이게 탁족(濯足)이다.
탁족은 혈액순환을 돕는 족욕(足浴)과 다르다. 더위 쫓기와 처신 살피기를 겸한, 두 벌 몫을 하는 게 탁족이다. 더위는 쫓는다 치고, 무슨 몸가짐을 살피란 말인가. ‘초사’에 나온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닦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물은 늘 맑거나 노상 흐린 법이 없다. 남 탓, 이웃 핑계는 그만두고 세태에 맞춰 처신하라는 얘기다.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서 탁족하는 이 노인, 다부진 생김새가 도인이나 선비풍은 아니다. 승적에 있는 몸일 텐데, 골상이 옹글고 장딴지가 알배기인 모습이 빼닮은 듯 실감난다. 뛰어난 사생 능력을 지닌 조영석의 솜씨다. 이 그림은 탁족을 유유자적하는 양반 놀음으로 보지 않는다. 주인공의 낯빛에서 도리어 오불관언하는 낌새가 엿보인다. 조금 벗고도 한껏 시원한 피서, 탁족의 즐거움이다.
수박은 먹는 놈이 임자?
정선은 ‘진경산수의 대가’다. 참다운 풍경은 있는 풍경이다. 그는 실재하는 것을 존중했고, 예술의 아우라가 현실에서 태어남을 믿었다. 그는 또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성(聖)의 반열에 오른 그는 속(俗)에서 답을 찾았다. 하늘을 나는 학과 들판을 쏘다니는 쥐를 함께 그렸다.
달개비 꽃 싱그러운 시골 텃밭. 쥐들이 사람 눈에 들킬세라 잽싸게 수박을 갉아먹는다. 짙푸른 덩굴 아래 수박은 방구리만 한데 아뿔싸, 밑동에 벌써 파먹은 자국과 분홍빛 속살이 드러났다. 한 놈이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살피는 사이, 다른 놈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살까지 죄 먹어치운다. 이런 경을 칠 놈들, 농부가 알면 길길이 뛰겠다.
수박은 씨가 많고 쥐는 새끼가 많다. 둘 다 다산을 상징하는 소재다. 이 그림에서 자식 복을 들먹이면 욕먹는다. 애써 가꾼 과실 채소를 망치는 음충맞은 쥐새끼들 아닌가. 정선의 그림은 깔축없는 풍자화다. 간신과 탐관오리를 흔히 쥐에 빗댄다. 집쥐 들쥐 얄미워도 관청에 숨어사는 쥐는 아예 공공의 적이다. 당나라 조업이 지은 시에도 나온다. ‘양곡 창고 늙은 쥐 크기가 됫박만 한데/ 사람이 창고를 열어도 달아나지 않네/ 병사는 양식 없고 백성은 굶주리는데/ 누가 아침마다 너에게 먹을 것 바치는가’
수박과 쥐는 16세기 신사임당도 그리고 18세기 정선도 그렸다. 그 쥐가 살아서 지금도 도둑질한다. 나라의 혈세를 빼먹고 시민의 지갑을 턴다. 쥐가 얼마나 지독한지 꼼꼼히 보면 안다. 이 그림은 비단 위에 그렸다. 그 비단마저 어귀어귀 파먹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려면
가장(家長)은 존엄하다. ‘장’은 어른이자 맏이다. 노련한 기량, 관후한 성정, 웅숭깊은 배려가 어른의 자질이다. 그 덕목에서 가장의 권위가 나온다. 아버지, 아들, 손자가 함께 등장하는 옛 그림은 드문데, 김득신의 풍속화를 보면 가장의 본색이 드러난다.
얼기설기 엮은 시골집 바자울에 박꽃이 피었다. 더위에 혀를 빼문 검둥개 옆에 삿자리를 깔고 앉은 아들이 짚신을 삼는다. 아들의 몸꼴은 사내답다. 장년의 기세가 뼈와 살에서 꿈틀거린다. 허리에 새끼를 두르고 꼬아놓은 끈을 발에 걸친 채 힘껏 잡아당긴다. 우악한 손아귀와 허벅다리의 실한 살, 장딴지의 빳빳한 힘줄은 오로지 노동으로 가사를 일군 자의 이력을 알려준다.
노인은 아들을 미더운 눈으로 지켜본다. 그는 골골하지 않다. 머리가 벗겨지고 몸통이 깡말랐지만 병치레할 신세는 아니다. 손자의 응석을 받고 쌈지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줄 자애로움이 그에게는 있다. 저 뒤편 벼가 자라는 논농사도 옛날에는 노인의 몫이었다. 장성한 아들이 김매고 추수할 때, 그는 노년의 경험을 보탰을 터. 이 집안 가장은 엄연히 그다.
힘꼴깨나 쓰고 자식 있다고 가장인가. 곳간이 허술해도 식구들 끼니를 거르지 않고 비단옷 아니라도 철 따라 입을 옷을 마련하며 고단한 몸 누일 삼간초가나마 장만하면서 모진 애를 다 삼켜야 가장이 된다. 장성한 아들의 살림살이를 감독하는 노인의 마음은 든든하다. 불고 쓴 듯 가난하지만 육친에 대한 가없는 믿음이 있어 가족은 화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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