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필름시대 극장, 폐쇄앞둔 기차역… ‘레트로 감성’ 빠져볼까

醉月 2024. 1. 30. 16:52

옛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단관극장인 동두천 동광극장.



■ 관광공사 추천 ‘2월 여행지’

경기 동두천 ‘동광극장’
60년대 분위기로 현재까지 운영

강원 태백 ‘철암탄광역사촌’
석탄 중흥기 생활상 그대로 복원

충남 부여 ‘규암마을’
공예인 모여 한옥·양조장 새단장

대구 군위 ‘화본역’
‘유물급’ 증기기관차 급수탑 보존

‘우리 동네 레트로(Retro)’. 한국관광공사가 ‘2월의 추천여행지’ 주제를 이렇게 잡았다. 레트로는 회상이나 추억 등을 뜻하는 영어 Retrospect의 줄임말. 과거의 추억이나 전통을 그리워하면서 모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겨울은 지겹고, 봄은 아직 먼 2월. 추억에 빠져보는 여행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권하는 옛 감성을 간직한 풍경이 있는 여행지 네 곳을 소개한다.



# 극장과 그라피티…동두천 보산동

1959년 개관한 경기 동두천의 동광극장은 아직도 ‘현역’이다. 동광극장은 요즘 보기 드문 단관극장이다. 지난해 극장으로는 유일하게 ‘경기 대표 오래된 가게 12선’에 들었다. 극장은 한눈에도 ‘연식’이 느껴져서 1960∼1970년대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극장 장면도 여기서 찍었다.

한창때는 영화기사부터 간판 화가까지 직원이 10명이 넘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간판 포스터는 이제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 걸린다. 극장 휴게실에는 2009년 디지털 영사기 도입 전까지 썼던 영사기가 있다. 상영관 내부는 반전이다. 좌석이 모두 갈색 가죽 의자다. 멀티플렉스 특별관에 있는 리클라이너도 있다. 일부 좌석은 테이블과 보조받침대까지 있다.

동광극장과 함께 둘러볼 곳은 보산동 관광특구다. 보산동은 외국인 전용 클럽과 빅사이즈 의류매장이 늘어서 있어 ‘작은 이태원’이라 불린다. 보산동에서는 그라피티가 볼거리다. 경기문화재단에서 지난 2015년부터 4년간 진행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이탈리아, 러시아, 태국, 덴마크 등 다양한 나라 작가들이 수도권 전철 1호선 보산역 지하철 교각과 거리에 그라피티를 그려 넣었다.

태백 철암의 ‘광부 아버지의 출근길’ 조형물.



# 까치발로 서다…태백 철암탄광역사촌

강원 태백 철암역 주변에 있는 철암탄광역사촌은 옛 탄광촌 주거시설을 복원·보존한 생활사 박물관이다. 1940년 영업을 시작한 철암역은 무연탄을 전국으로 실어냈던 역이라 위세가 대단했다. 1980년 무렵 강릉역 역무원이 28명이던 시절, 여기 철암역 역무원이 300명이나 됐단다. 탄광역사촌에는 태백이 대한민국 석탄 산업의 중추 역할을 했던 1970∼1980년대의 풍경이 그대로 박제돼 있다.

철암탄광역사촌은 천변에 늘어선 11개 건물 중 6개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꾸며 조성한 곳. 이들 건물은 천변에 기둥을 세우고 바닥 면적을 최대한 늘린 탓에 ‘까치발 건물’로 불린다. 상점은 모두 폐업했지만, 건물에는 업소 간판이 그대로 붙어 있다. 상점 간판을 그대로 둔 채 다양한 전시품을 진열해 놓았다.

기획전시실에는 탄광에서 쓰던 각종 장부와 철암 지역 학생들의 성적표 등을 전시해 놨다. 당시 탄광촌의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도 있다. 월급날 탄광촌 풍경을 담은 사진이 특히 인상적이다. 철암의 유래와 역사 관련 전시 공간도 있고, 관광객 쉼터와 복합 문화 공간, 철암 다큐멘터리 공간도 있다.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선술집과 가정집, 마을 골목도 재현해 뒀다.

부여 규암마을의 레트로 공간인 ‘책방세간’.



# 공예가 레트로 마을…부여 규암마을

규암마을은 부여읍 중심에서 백제교 너머에 있다. 과거 나루터와 오일장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마을은 다리가 놓이면서 쇠퇴했다. 마을에 머물지 않고 단숨에 다리를 건너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던 마을에 최근 몇 년 사이에 공예가들이 모여들면서 매력적인 레트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규암마을의 대표 명소는 2018년 문을 연 서점 ‘책방세간’. 공예디자이너 출신의 눈 밝은 이가 80년 된 담배 가게를 사들여 만든 공간이다. 책방 안에서 눈에 띄는 건 ‘본래 있던 것’을 활용한 소품들. 담배 가게 주인 이름이 새겨진 문패와 금고를 그대로 전시했고, 책 진열장도 기왕에 있던 담배 가게 진열장을 손봐서 만들었다. 책방세간의 주인은 인근에 가게를 잇달아 냈다. 카페 ‘수월옥’, 음식점 ‘자온양조장’, 숙소 ‘작은 한옥’이 말하자면 ‘계열사’인 셈이다. 모두 오래된 한옥과 양조장을 매입해 꾸민 곳이다. 네 개의 영업 공간을 연결해 ‘자온길’이라 이름 붙였다.

책방세간 옆에 ‘부여서고’가 있다. 상호만 보면 서점 같지만, 염색장인이 다양한 소품을 전시하고 파는 편집숍이다. 베트남에서 제작한 수제 소쿠리와 가방을 비롯해 고대 목조건축에 쓰이던 장식기와 ‘치미’ 디자인을 접목한 문구류, 도자기, 패브릭 제품도 있다.

민간 투자로 조성된 규암마을에서 부여군은 민간의 12개 공방을 지원하는 ‘123사비공예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사비창작센터와 사비레지던스를 만들어 청년 공예인들에게 작업실과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

대구 군위의 화본역.



#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군위 화본역

지난해 7월 대구에 편입된 군위에는 1938년 중앙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화본역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완공돼 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역이다. 화본역에는 유물급 시설이 있다.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1930년대 말쯤 열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높이 25m·지름 4m의 급수탑이다. 급수탑 내부 벽면에는 건축 당시 인부들이 남긴 듯한 ‘석탄 절약’ ‘석탄 정돈’ 등 낙서가 새겨져 있다. 화본역은 현역 기차역이면서 입장료 1000원을 받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화본역 열차여행의 낭만을 즐기겠다면 서둘러야 한다. 화본역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서다. 오는 12월 중앙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끝나고 철로가 이설되면 화본역은 폐역이 된다. 여객열차가 정차하는 역의 기능은 의흥면에 들어선 군위역으로 이전된다.

화본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전시 공간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가 있다. 1954년 4월 개교해 2009년 3월 폐교한 옛 산성중학교 건물을 활용해 조성한 문화체험장인데, 1960∼1970년대 화본마을 생활상을 전시해 뒀다. 풍금이 있는 그 시절 교실과 문방구와 만화방, 이발소, 구멍가게, 연탄 가게, 사진관, 전파상 등을 재현해 놓았다. 옛날 교복 입기와 사륜 자전거 타기, 추억의 도시락과 달고나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