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땅의 구수한 향기
밍밍한 별미 올챙이국수·얼큰한 칡국수·동치미 맛이 일품인 막국수
강원도의 음식은 맛을 즐기는 음식이 아닌 배고픔을 견디는 음식이었다. 옛 맛을 간직한 강원도 정선시장.
“생명 앞에 맛은 무의미하다. 평야에서 대지의 축복 속에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한 사람들은 높고 깊은 땅의 척박한 맛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괴리감은 올챙이국수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혀에서 전달되는 미각으로 올챙이국수 맛을 평가하는 건 정선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에 대한 무례이다.”(<식객> 19권 중에서)
콧등치기국수, 멸치 육수에 말아 후루룩
지역을 떠올리면 풍경보다 음식이 먼저일 때가 있다. 각종 나물과 약재를 파는 5일장이 들어서는 강원도 정선도 그런 곳이다. 외진 곳에 자리잡아 찾아가기 쉽지 않은 이곳은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가 유명하다. 이 두 가지 음식을 먹지 않곤 정선을 다녀왔다 말할 수 없다. 올챙이국수를 파는 식당이 늘어선 골목에서 5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아리랑맛집 윤금화 사장은 “장이 설 때면 앉을 자리도 없이 사람들이 들어차 국수를 먹고 간다”고 말했다.
강원도 정선은 산골이 깊다. 쌀이 없어 퍽퍽한 감자나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고, 메밀가루를 이용해 찰기 없이 툭툭 끊어지는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자연을 닮아 생활력이 강한 사람들이 만들어 먹은 음식은 ‘즐기는 음식’이 아닌 ‘견디는 음식’이었다. 올챙이국수도 그런 음식이다.
정선을 비롯해 평창·홍천·인제 등지에서 주로 먹는 올챙이국수는 만드는 방법이 간단치 않다. 옥수수를 5시간 이상 끓는 물에 삶은 뒤 녹말을 헝겊으로 걸러내 무쇠솥에서 다시 끓인다. 제법 걸쭉해지면 불을 끄고 4시간 이상 뜸을 들인다. 그다음 구멍이 숭숭 난 체에 내리면 올챙이 모양의 국수가 뚝뚝 떨어진다. 이때 찬물로 받아 담가야 붇지 않는다. 이렇게 뽑은 올챙이국수를 식초맛이 느껴지지 않는 오이냉국에 말고 양념간장을 뿌려 숟가락으로 뚝뚝 떠먹는다. 밍밍하고 미끈한 면도, 맹맹한 국물도 별맛 없이 싱겁다. 윤금화 사장은 “우리 어머니는 어릴 때 질리게 먹었다는데, 강원도 토박이인 나도 장사를 하면서 처음 맛을 봤다”며 “옛날 배고픈 시절에 허기를 달래던 강원도 음식이 이젠 외지 사람들에게 별미가 됐다”고 말했다.
콧등치기국수도 올챙이국수처럼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에 해먹던 메밀국수다. 면을 후루룩 먹다 보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멸치·다시마 육수에 멀겋게 된장을 풀어 끓인 뜨거운 육수를 부어 온국수로 먹거나 오이냉국을 말아 냉국수로 먹을 수 있다. 주로 먹는 방식은 온국수다.
콧등치기국수의 원조집으로 알려진 정선 아우라지역 앞 청원식당은 정선시장에서 맛본 콧등치기국수와 육수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는 된장을 풀지 않은 멸치·다시마 육수에 말아준다.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한 방순옥 할머니의 며느리는 “손님들이 된장을 풀어달라고 하면 그렇게도 끓여준다”며 정선시장과 다른 맛을 설명했다.
‘꼴도 보기 싫은’ 꼴두국수
산이 주위를 둥그렇게 에워싼 산중마을인 영월에도 정선의 콧등치기국수와 비슷한 메밀국수가 있다. ‘질리게 먹어 꼴도 보기 싫은 국수’라는 의미의 ‘꼴뚜국수’다. 콧등치기국수와 맛과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맛이 아닌 향수로 먹는 음식이다. 영월엔 이런 국수가 하나 더 있다. 칡국수다.
산이 많은 영월 지역도 정선처럼 흉년이 지면 도토리·칡·산채 등으로 허기를 달래야 했다. 그중 가장 흔한 칡을 가루로 내 칡국수를 해먹었다. 칡으로 만든 국수는 약간 쌉쌀하면서 달짝지근해 심심한 메밀면보다 맛이 좋았다. 고씨동굴 앞에서 칡국수를 파는 성숙자(62) 할머니는 “동굴 앞길로 흐르던 동강에서 기념품과 닭곰탕을 함께 팔다 집에서 먹던 칡국수를 내놓았더니 반응이 좋아 칡국수 전문점을 낸 게 벌써 30년이 됐다”고 했다. 칡국수를 먹기 위해 일부러 할머니의 가게를 찾으러 오는 손님이 늘면서 할머니 식당 주변으로 칡국수 전문점이 하나둘 늘어났다. 칡국수는 할머니가 어릴 때 먹던 방식 그대로 만든다. “우리 어릴 땐 국수를 아침저녁으로 매일 먹었어. 밀가루에 칡가루나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어 칼국수를 해먹었지. 다들 못사니까 국수를 많이 해먹었어.”
할머니네 칡국수는 쫄깃쫄깃한 면발이 특징이다. 칡가루와 밀가루를 반반씩 섞어 손반죽해 1인분씩 면을 나누어 쟁반에 담고 옥수수 전분을 뿌려 들러붙지 않게 놔둔다. 준비된 면은 냉장고에 넣어 저온숙성시키는데, 칡의 특성상 잘 굳고 부서져 그날그날 뽑아 써야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할머니가 하루에 뽑는 국수량은 약 800인분. 지금은 가업을 잇겠다며 장성한 두 아들 내외가 일을 돕고 있어도 물 농도가 중요한 반죽 배합은 늘 할머니 손을 거쳐야 한다. 할머니와 함께 가게를 돌보는 할아버지는 “우리 할매가 면 뽑다가 허리가 다 꼬부라졌어”라며 칡국수가 까다롭고 힘든 음식이란 설명을 길게 뽑았다.
할머니가 만드는 칡국수는 메밀면처럼 색이 거무튀튀하고 넓다. 이 면을 따로 육수를 내지 않고 감자채를 끓인 물에 함께 삶아 그릇에 담고 고명을 얹어 낸다. 김, 다진 김치, 부추, 감자채, 달걀지단, 참깻가루, 다진 양념 등이 고명으로 올라가 먹음직스런 색을 낸다. 옥수수전분이 녹아 진득해진 국물은 다진 양념과 섞여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고기 한 점 올라가지 않아도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뱃속에 기름기가 도는 듯 든든하다. 할머니는 “멸치 육수의 비린 맛 없이 감자채를 삶은 물에 간장과 소금으로 밑간을 한 육수를 쓰는 게 우리 집 비법”이라고 했다.
» 콧등치기국수(왼쪽), 동치미막국수(오른쪽).
칡국수가 배고픈 시절을 달래준 든든한 식사였다면 기나긴 겨울밤 배가 출출해질 때 먹는 ‘동치미막국수’는 겨울 입맛을 돋워주는 별미였다. 인제를 지나 고성으로 올라가면 이북 방식 그대로 동치미막국수를 만들어 파는 백촌막국수가 있다. 이북 출신 시아버지의 손맛을 따라 며느리가 25년 전통을 지키고 있는 집이다.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북 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했던 지역의 솜씨 좋은 국숫집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동치미 국물을 세 단계로 즐기는 법
이 집의 막국수는 100% 메밀가루만 이용해 면을 뽑는다. 이 때문에 툭툭 잘 끊기고 시간이 지나면 쉽게 불어터진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사진 찍으며 수다 떨지 말고 동치미국물을 말아 후다닥 먹어야 한다. 얼음이 떠 있어 보기에도 시원한 동치미 국물은 양푼에 따로 넉넉히 담아 내놓는다. 같은 강원도라도 춘천 막국수가 닭 육수를 섞어 쓰는 것과 달리 이곳에선 순순한 동치미 국물만 쓴다. 면과 동치미 육수를 따로 내놓는 건 입맛에 따라 국물을 즐기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국물엔 들기름, 식초, 설탕, 다진 양념, 겨자를 넣어 먹으면 맛있다는데, 더욱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따로 있다. 세 단계로 나눠 국물을 즐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릇에 동치미 국물을 붓고 추가 양념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 시원하게 마신다. 사이다를 넣은 듯 새콤달콤하고 톡 쏘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입안에서 뱃속으로 미끄러지며 더위를 싹 식힌다. 두 번째는 들기름과 식초만 넣어 먹는다. 면 위에 올린 김가루와 깨가 어울려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진다. 마지막으로 겨자와 다진 양념을 넣으면 알싸한 맛이 혀를 톡톡 건드린다.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물 대신 동치미 국물로 입가심을 해도 입안이 개운하다.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이 집 며느리는 “그릇에 담을 무와 국수를 말 국물용 동치미를 따로 만드는 게 비법”이라며 “동치미막국수가 원래 겨울 음식이었듯 동치미는 여름에 담근 것보다 겨울에 담근 것이 맛이 훨씬 좋다”고 했다. 국물 맛에 반한 이들이 국물 포장을 원해도 말리는 이유가 발효식품인 동치미의 맛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인제 가면 언제 오냐고 할 만큼 멀다던 인제보다 더 먼 고성까지 가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오는 이유는 하나다. 잘 익은 김칫국에 만 찰기 없는 메밀국수 한 그릇이면 매끄러운 쌀밥 열 그릇이 부럽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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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전병 | |||
맛보다 향수로 먹는 음식이라지만 강원도 정선의 콧등치기국수와 올챙이국수는 솔직히 너무 맹맹하다. 정선의 맛에 살짝 실망하려고 할 때 점수를 만회하는 건 메밀전병과 메밀전이다. 메밀전병은 들기름으로 부쳐낸 얇은 메밀전에 다진 배추김치를 속으로 넣어 둘둘 만 음식이다. 김치 맛이 짭조름해 간장을 찍어 먹을 필요가 없다. 메밀은 부드럽고, 김치는 아삭하게 씹힌다. 메밀전은 역시 얇게 부쳐낸 메밀전에 배춧잎 두 개를 얹어주는 전이다. 전 부치는 시간이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시간만큼 빠르다. 사치스럽지 않게 뱃속을 채우는 소박한 맛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메밀전병과 메밀전 모두 한 접시에 2천원이다.
칡국수를 파는 강원도 영월 강원토속식당에서 사이드 메뉴가 많다. 사람들이 주로 찾는 건 도토리묵과 감자전, 감자송편이다. 여느 산자락 아래서 즐길 수 있는 술안주와 간식거리를 다 먹을 수 있다. 감자송편은 그냥 감자떡인데 쫀득하고 고소하다.
막국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역시 돼지고기 편육이다. 고성 막국수로 불리는 백촌막국수에서도 편육을 한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두께의 고기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게 씹힌다. 고기는 명태식해를 싸서 먹으면 맛있는데 이 명태식해가 별미다. 고추장 양념에 무친 새콤달콤한 명태포가 고기와 어울려 색다른 맛을 낸다. 백김치에 싸먹으면 시원하고 달큼하다. 보통 국숫집은 반찬이 없지만 백촌막국수는 국수 한 그릇에도 백김치·열무김치·명태식해를 기본 반찬으로 준다. 편육과 같이 나오는 반찬인데 한 번 맛을 본 이들이 계속 찾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한반도의 면식 문화는 3천 년의 국수 역사를 가진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중국과 맞닿은 이북지방에선 평양이나 함흥뿐만 아니라 냉면 없는 고장이 없다고 할 만큼 지역마다 다양한 국수를 즐겼다. 냉면도 국수라고 부르며 즐기던 이북 사람들에게 국수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음식이었다.
옥천냉면, 황해도의 맛 그대로
실향민은 새롭게 뿌리내린 지역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이용해 고향에서 먹던 국수 맛을 재현했다. 평안도의 평양냉면과 함경도의 함흥냉면이 서울에서 터를 잡는 사이 황해도식 냉면은 경기 양평 옥천면에서 실향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40년 전통 옥천냉면집의 사장 이인숙씨는 “황해도에서 냉면집을 하시던 할아버지가 1952년에 옥천으로 피난 와 냉면집을 낸 뒤 이 일대에 옥천냉면집이 하나둘 늘어나 마을을 형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해도식 옥천냉면은 쇠고기 국물에 닭이나 꿩, 돼지 육수를 섞는 평양식 냉면과 달리 돼지고기로만 국물을 낸다. 3대째 옥천냉면집을 하고 있는 이 집도 처음 할아버지가 재현한 옛 맛 그대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평양냉면보다 달짝지근한 육수는 삼삼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이인숙씨는 “지명에 내천(川)자가 들어간 곳은 물이 좋다는데 옥천 지역의 좋은 물로 담근 간장이 육수 맛을 살려준다”고 했다.
면은 메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을 섞어 뽑는다. 쫄면처럼 두툼하나 질기지 않다. 매콤한 함흥냉면에 견주면 옥천식 비빔냉면의 매운맛은 혀가 조금 알알할 정도로 그친다. 심심한 것 같지만 메밀의 맛을 침범하지 않는 은은한 양념 맛이 적당하다. 평안도나 함경도 냉면과 비슷하면서 다른 맛을 내는 게 황해도식 냉면, 옥천냉면이다.
서울 사람들이 강원도를 여행할 때 들르는 길목이던 경기 여주 천서리엔 강원도의 맛을 닮은 천서리막국수가 있다. 평북 강계가 고향인 강진형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메밀묵 장사를 하다 이곳으로 옮겨 1975년에 막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고향 지명과 아들 이름을 따 강계봉진막국수라고 가게 이름을 지었다. 향년 85살로 재작년에 별세한 그를 대신해 아들 강봉진(40)씨가 가게를 맡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면을 뽑았다”는 그는 군 제대 뒤 본격적으로 가업을 물려받을 결심으로 일을 배웠다고 했다. 지금은 어머니 유영필(70)씨와 함께 옛 맛을 이어간다.
대를 이어 성업 중인 가게엔 공개하지 않는 음식 비법이 있다. 천서리막국수 역시 동치미 국물이 국수 맛의 90%를 좌우한다. 지하수로 담근 동치미는 땅에 묻은 빨간 ‘고무 다라이’에서 숙성시켜 국물로 사용한다.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에 방해될까봐 국수 고명으로 흔히 나오는 김가루도 쓰지 않는다. 국물 맛에 반한 이들이 문턱이 닳도록 가게를 드나드니 날마다 두 다라이의 동치미가 뚝딱 사라진다. 비빔막국수는 청양고추를 이용한 다진 양념을 써 매큼하다. 물을 먹어도 진정되지 않는 혀의 얼얼함은 쇠고기 사골과 양지, 황태를 끓여낸 육수가 달래준다. 기름기 없이 깔끔한 육수를 내는 방법은 비밀이다.
중국산 식재료, 음식문화를 흔들다
강원도 춘천·봉평·고성처럼 여주 천서리막국수가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 강 사장은 근처 군부대 영향이었다고 설명한다. “대중음식점이 별로 없고 군대에서 먹지 못하는 별미다 보니 군인 손님이 많았어요. 군인은 직업상 여러 지역을 옮겨다니니까 이들의 입소문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군인 외에도 천서리막국수에 반한 이들은 실향민이다. 면의 식감이나 동치미 국물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귀신같이 알아냈다. 옛 맛을 변함없이 지키는 일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사하는 강 사장의 숙제다. “원주에서 수확한 메밀가루를 사용하는데 값싼 중국산 메밀에 밀려 메밀 농사를 짓는 곳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 밀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우리 밀을 써야 맛이 나는데 말이죠.”
값싼 중국산 식재료의 유입은 이미 향토 음식문화를 흔들고 있다. 해당 지역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해 맛을 내던 국수도 예외가 아니다.
갯벌이 풍부해 조개류가 많이 나는 서해안에서는 바지락을 이용해 칼국수를 끓였다. 지금은 어느 집에서나 흔하게 해먹는 바지락칼국수다. 특히 경기 안산·화성의 대부도와 제부도에 가면 집에서 먹던 방식대로 바지락을 푸짐하게 넣어 끓이는 바지락칼국수를 파는 상가들이 마을을 형성해 성업 중이다. 물길 끊어지는 시간을 알고 가야 하는 제부도보다 지금은 연륙도가 된 대부도가 더 손쉽게 오갈 수 있는 곳이다.
대부도에선 바지락칼국수를 대야만 한 그릇에 푸짐하게 끓여 내온다. 각자 자기 양만큼 국자로 퍼서 먹는데, 여느 칼국숫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방식은 대부도에서 유행시킨 것이라고 한다. 별다른 채소나 고명도 없이 바지락 하나로 국물 맛을 낸 칼국수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바지락은 해감이 중요하다. 개흙이 국물에 들어가면 국물 맛을 망친다. 또 바지락은 오래 끓이면 조갯살이 질겨진다. 따라서 육수를 낸 바지락은 걸러내 해물파전에 사용한다. 다 끓여 나온 칼국수 그릇에 담긴 바지락은 면을 삶을 때 다시 넣은 새 바지락이다. 천일염으로 간을 하면 국물은 더욱 깔끔해진다. 미끄덩한 하얀 밀가루 면발은 국물 따라 후루룩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26호 까치할머니네 칼국수가 특히 유명하다.
“북한산 바지락도 끊겨서 어려워”
하지만 ‘장사꾼’ 아닌 ‘장사치’도 섞여, 거리를 이룬 식당 중엔 지역 특산물인 국산 바지락 대신 수입 바지락을 쓰는 곳도 있다. 바지락 수확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외국산 저가 바지락과의 단가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인천 옹진군 선재 어촌계의 한 간사는 “하루 바지락 수확량을 5천t으로 조절해 채취하는 만큼 연간 바지락 생산량이 크게 줄거나 늘진 않는다”면서 “단가 경쟁 때문에 서해 바지락은 내수보다 수출용으로 일본으로 많이 나가고, 저가의 북한산과 중국산 바지락이 내수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대부도의 한 식당 종업원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산 바지락을 수입하는 업체에서 해감까지 시킨 상태로 받는데 이제 교역이 끊겨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재료에 들이는 정성이 없으면 맛이 좋을 리 없다. 바지락 육수의 시원한 맛은 온데간데없이 텁텁한 조미료 맛으로 육수를 낸 칼국수라면 푸짐한 양이 무슨 소용일까. 윤정진 한식요리사는 “바지락칼국수가 의외로 재료 맛 살리기가 어려운 음식이어서 원재료 선택부터 양심껏 하지 않으면 제맛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맛이 변하면 풍경도 변하게 마련이다.
경기도 국수와 함께 먹는 요리
편육·고기완자·해물파전으로 든든하게
먹고 돌아서면 꺼지는 게 국수라고 했던가. 국숫집에선 국수 외에도 함께 먹을 다양한 요리가 있다. 편육, 만두, 부침개, 도토리묵 따위다.
천서리막국수를 만드는 경기 여주 강계봉진막국수에서는 돼지고기 편육이 나온다. 한약재를 넣어 담백하게 삶아낸 편육은 잡냄새가 없고 쫄깃하다. 새우젓과 다진 양념, 겨자를 3 대 2 대 2로 섞은 장에 찍어 먹으면 술 한 잔과 어울리는 훌륭한 안주가 된다. 제주산 고랭지 무로 담근 새콤달콤한 무김치도 잘 어울린다. 비빔막국수와 먹어도 맛있다. 고기 한 점을 올려 메밀면으로 싸서 먹으면 씹을 것도 없이 목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청양고추가 들어간 다진 양념으로 비빈 매콤한 국수와 고기가 어울려 맛이 달금하다.
경기 양평 옥천냉면집에선 편육과 고기완자를 함께 판다. 특히 고기완자는 주변 스키장을 찾는 이들이 들러 포장해갈 정도로 인기다. 크기는 주먹만한데, 동그랑땡은 여기에 견주면 우습다. 이북식은 만두도, 고기완자도 크게 만들어 하나를 먹어도 든든하게 대접한다. 고기완자를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돼지고기를 양파와 함께 곱게 다져 뭉친다. 밀가루를 살짝 묻히고 달걀물을 묻혀 프라이팬에 부쳐내면 끝. 적당한 기름기가 돌아 부드럽고 촉촉하다.
경기 안성의 대부도, 화성의 제부도에선 바지락칼국수에 해물파전을 곁들이면 든든한 식사가 된다. 해물파전은 밀가루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징어와 각종 조갯살이 듬뿍 들어간다. 뚝뚝 손으로 끊어 넣은 듯한 쪽파가 어울려 제법 먹음직스럽다. 그런데 식감이 좋지 않다. 이유는 바지락칼국수용 육수를 내고 버리는 바지락 조갯살을 파전에 쓰기 때문. 조갯살은 오래 끓이면 질겨져서 육수를 끓인 뒤엔 버리는데, 이곳 식당가에서는 파전에 넣어 재활용한다. 먹어도 되는 조갯살이지만 조금 질기다. 파전을 먹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지 마시길.
대한민국 누들로드(상)…
고려 때 시작돼 한국전쟁 뒤 실향민들이 풍성하게 만든 국수문화, 그 한 그릇의 삶과 맛을 찾아서
“국수는 사람들의 욕망을 담아낸 음식이다.”
한국방송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의 말이다. 기원전 3천 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국수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과정을 짚으며 여행을 다닌 그는 국수가 “인류의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 중 하나”라고 했다. “빨리 만들어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서, 어느 지역이나 어느 식문화에 떨어져도 백지처럼 흡수돼 새롭게 태어나는 음식”이라는 게 덧붙인 설명이다.
북쪽은 메밀, 남쪽은 밀가루
중국에서 시작된 국수는 인접한 국가들에 영향을 주며 아시아의 부엌을 이어갔다. 우리나라에 국수가 들어온 것은 송나라 때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고려 승려들에 의해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1123)에 처음으로 면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는 게 그 방증이다.
국수는 우리의 식문화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각 지역에서 나는 재료와 특색 있는 조리법을 이용해 다양한 국수가 만들어졌다. 전국 팔도에 국수문화가 없는 지역이 없을 정도다. 국수 재료는 그 지역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흔한 건 메밀이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랐다.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경상도 지역에서는 이 메밀을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메밀묵, 메밀국수, 메밀전병, 메밀부침 따위다. 유학자 이시명의 부인 안동 장씨가 쓴 요리책 <음식디미방>(1670)은 메밀을 으뜸가는 국수 재료로 소개한다. 장씨는 이 책에서 “메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반죽한 후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썼다.
춥고 척박한 땅을 가진 북쪽 지방이 칡·옥수수·메밀을 주로 사용해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면, 남쪽 지방에선 밀가루와 전분을 섞어 국수 요리를 즐겼다. 민물고기가 많은 충청도에서는 생선국수를, 경북 안동이나 전북 익산 같은 내륙지방에선 콩이나 팥을 이용해 국수를 해먹었다. 모양도 맛도 천차만별, 지방에 따라 국수가 만들어지고 유명해진 사연도 제각각이다.
국수의 종류가 다양해진 건 이북 사람들의 영향이 크다. 한국전쟁은 비극이었지만 팔도에서 다양한 국수문화가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실향민은 전쟁 뒤 경기·강원·부산 등의 지역으로 흩어져 새로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이북에서 먹던 국수를 다시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시작은 꿈에서도 잊지 못한 고향의 맛을 다시 만드는 ‘옛 맛의 재현’이었다. 특히 국수문화가 발달한 경기·강원·경상도에서는 이북식 국수로 가업을 잇는 집이 많다. 경기도 양평 옥천냉면은 황해도에서 냉면집을 하던 이가 내려와 처음 문을 열었다. 평안냉면과 함흥냉면은 동네마다 있는 냉면집이 됐다. 경기도 여주 천서리막국수나 강원도 고성 동치미막국수도 메밀국수에 동치미 국물을 말아먹는 이북 방식 그대로다. 부산 밀면도 냉면을 먹고 싶은 실향민이 그 시절 흔하던 밀가루로 대신 면을 뽑아 만들어낸 음식이다. 옛 맛의 재현은 곧 ‘새 맛의 발견’이 됐다.
북쪽의 국수 문화가 끼친 영향 중 대표적인 게 면을 뽑는 방법이다. 그전 남쪽에서는 칼을 사용하는 칼국수가 대표적이었는데, 실향민이 내려와 면을 눌러서 뽑는 착면법을 전파시켜 다양한 면 요리가 가능해졌다. 같은 메밀로 만들어도 조리법에 따라 냉면·막국수·칼국수 등 다양한 굵기와 크기의 면 요리가 탄생했다.
국수는 면뿐만 아니라 육수도 중요하다. 이북에선 냉면 육수로 동치미 국물과 꿩·쇠고기를 삶아낸 육수를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꿩고기를 구하기 어려운 남한에서는 소·닭·돼지를 이용해 육수를 냈다. 밀가루도 없어 칡·메밀·옥수수로 해먹던 강원도에서는 멸치로 육수를 내는 건 사치였다. 대신 멀겋게 끓인 된장국에 국수를 말아먹었다. 콧등치기국수다. 경북 안동에서는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로, 바닷가 지역에서는 바지락으로 육수를 내 먹었다.
잘 뽑은 면과 육수에는 늘 김가루, 다진 김치, 달걀지단, 누른 고기 등의 고명이 올라갔다. 육수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맛을 살리는 첨가물이었다. 국수는 그렇게 면과 육수, 고명의 삼박자가 맞아야 맛있는 국수로 탄생했다.
추억하고 싶어서 찾는 국수
‘모든 음식은 기억으로 먹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를 따라 이욱정 PD는 평안냉면을 하는 서울 우래옥을 자주 다녔다고 했다. 그의 어릴 적 기억 속에는 만주에서 살던 할머니가 들려준 냉면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는 뜨거운 온돌방에서 먹던 얼음 동동 띄운 냉면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윤정진 한식요리사는 국수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만들어준 시원한 열무국수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라고 기억했다.
사람들은 추억하고 싶어서, 또는 친근해서 국수를 찾았다. 겨울밤 뜨거운 온돌에 앉아 먹는 시원한 동치미막국수는 별미였고, 보릿고개 시절 배를 채울 수 있도록 국수의 흔한 재료가 돼준 메밀은 하늘의 선물이었다. 국수가 3천 년을 이어온 인간의 욕망을 담아낸 음식이라는 말은 전국 팔도에서 국수를 치대고 뽑고 삶았던 시간을 따라가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국수 한 그릇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보인다. ‘대한민국 누들로드’를 그려보는 이유다.
먼저 경기도와 강원도의 특색있는 국수들을 맛보고, 다음호에서는 충청·호남·영남과 제주도의 국수를 찾아간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참고 문헌: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김학민) <대한민국 대표음식 이야기>(한국관광공사) <누들로드>(한국방송 누들로드팀, 이욱정) <김항아의 팔도 밥상>(김항아)
슴슴한 한 그릇, 국수 먹는 밤 깊어가길
시절과 재료에 따라 변화하는 맛, 향토성 지켜낼 필요 있어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담백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에 곁들여 먹는 슴슴한 국수 한 그릇/ 군불을 때서 아랫목은 쩔쩔 끓어오르고 창호문 밖에선 하얀 눈이 펑펑 내릴 것이다/ 옹기종기 가족이 모여 국수를 먹는 밤이 깊어간다.”
맛을 ‘흉내’내기만 하는 외국산 재료
시인 백석의 시 ‘국수’를 읽는다. 전국 방방곡곡의 맛있는 국수를 먹고 와 읽으니 글에서도 맛이 난다. 지역별 향토 국수의 맛과 역사를 취재하기 위해 ‘원조’라고 알려진 전국의 국숫집을 7일간 찾아다녔다. 국수를 반죽하고 뽑느라 허리가 휘어진 할머니들과 대를 이어 옛 맛을 살리는 자손들을 만났다. 그중 가장 오래된 국숫집이 62년간 생선국수를 팔아온 충북 옥천의 선광집이었다.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향토 국수집의 역사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향토 국수를 지켜내는 국숫집도 대물림되면서 맛이 변하고 있다. 진주냉면 2대 전수자인 정운서씨는 “옛 맛만 고수해서는 노인들 외에 젊은 사람이 찾지 않는다”고 했다. 지역민이 즐겨 먹던 국수는 이제 외지인이 아니면 찾는 이 없는 별식이 됐다. “냉면 맛이 변했다”고 투덜거리는 지역 노인들보다 인터넷 맛집 정보를 보고 찾아오는 외지 젊은이들의 입맛이 중요해졌다. 젊은 취향에 맞추다 보니 면은 더 쫄깃해지고, 육수는 시고 달큼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지역 원조 국숫집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후대는 어디까지나 선대의 맛을 흉내내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전통의 맛 재현을 방해하는 건 달라진 재료도 한몫한다. 각 지역에서 흔한 재료로 만들어 먹던 게 국수인데, 자연환경이 변하면서 전통 국수의 맥도 끊기고 있다. 경북 안동에선 낙동강에 댐이 생기면서 은어가 잡히지 않아 은어 육수를 낸 건진국수를 더 이상 먹지 못한다. 시화호가 생겨 유속 변화가 생긴 서해안도 칼국수 재료인 바지락 수확량이 줄고 있다. 금강 상류에서 잡은 민물 생선으로만 생선국수를 끓이는 선광집 서금화 할머니는 “금강에서 민물고기가 더 이상 잡히지 않을 때가 가게 장사를 접는 때”라고 말한다. 저렴한 단가로 유혹하는 수입산 재료들의 유혹도 만만치 않다.
맛의 보존, 전통의 보존
전통의 맛을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향토 국수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참게를 넣어 국수를 끓였다는 경기도 파주의 참게국수, 대구를 넣어 끓인 강원도 대구장, 꽁치를 넣은 경북 포항의 꽁치국수 등은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국수다. 지역별로 꽃핀 다양한 국수를 향토 음식으로 지정해 맛을 보존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복선 식문화연구원장은 “옛날에는 팔도 음식이 제각각 특징이 있었다면 이제는 어느 지역이든 맛이 중화돼 비슷한 맛이 난다”며 “그나마 지역색을 담고 있는 각 지역의 국수문화를 각 지역사회나 국수 전수자들이 지키고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혀끝에 착 감기는 진한 국물맛
생선뼈 흐물거릴 정도로 끓여낸 국물이 보약
“천렵으로 잡은 붕어, 메기, 누치 등을 푹 곤 국물에 쌀을 끓여 어죽으로 먹다가 국수를 넣어 먹은 게 지금의 생선국수”라고 전하는 서금화(83) 할머니는 옥천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국수집인 선광집의 주인이다. 62년째 한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할머니는 생선국수로 팔남매를 키워냈다. 지금은 막내딸과 독일로 유학 갔던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며 주방에서 함께 일한다.
선광집은 금강에서 잡히는 자연산 민물고기만 사용한다. 어업면허를 가진 어부 3명이 민물고기를 대고 있다. 매일 새벽 4시30분부터 육수를 끓이는데, 오전 10시30분이 돼야 육수가 준비된다. 몇백 가지 생선을 곰탕 끓이듯 푹 고아내는 육수는 끓이는 시간만 족히 6~7시간이다. 이렇게 끓인 육수는 고추장 양념을 넣고 칼칼하게 만든다. 국수는 밀가루 면을 쓴다.
육수를 먹기 위해 만든 국수니 사람들은 국물을 남김없이 마신다. 비린내가 난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 비법이라면 생선 가시가 흐물거릴 정도로 오랜 시간 끓이는 것뿐이다. 서 할머니는 “오랫동안 끓이면 생선 가시에서도 구수한 맛이 우러나 비린내가 안 난다”고 했다.
생선국수 맛은 매운탕에 국수를 넣은 맛을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다르다. 밀가루 국수를 국물과 함께 삶아내 칼국수처럼 찐득하고 구수한 맛이 난다. 고추장 양념도 맵지 않다. 국물을 먹고 나서 속이 쓰리다는 사람이 없다. 손님들 모두 보약처럼 국물을 뱃속으로 들이붓는다.
충청도가 민물 생선으로 육수를 냈다면 전라도에서는 지천에 널린 팥으로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해 면식문화가 들어설 틈이 없던 전라도의 유일한 향토 국수다. 옛날 전라도에서 팥죽은 동짓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더운 날에도 뜨뜻미지근한 팥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가정에서 잘 해먹는 음식이니 팥칼국수를 파는 가게도 만나기 어렵다. 전북 군산 신가네해물칼국수는 해물칼국수집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팥칼국수가 잘 팔리는 집이다. 해물칼국수를 먹으러 온 손님들도 기본으로 새알팥죽이나 팥칼국수를 한 그릇씩 시켜 나눠먹는다. 팥칼국수 맛은 팥죽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물은 팥죽처럼 걸쭉하고 달착지근하다. 신숙 사장은 “팥칼국수 만들기가 생각보다 번잡해 메뉴에 넣는 식당이 많지 않다”고 했다.
일단 팥을 관리하기 힘들다. 중국산 팥은 방부제 처리가 돼 벌레가 먹지 않지만 국산 팥은 벌레가 쉽게 먹어 사용하기 어렵다. 중국산 팥은 단가도 싸고 관리도 쉽지만 쓴맛이 나 사용하지 않는다. 팥국물을 내기도 쉽지 않다. 팥칼국수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팥의 독성을 빼기 위해 애벌로 30분간 팥을 삶는다. 그 물을 버리고 다시 3시간 이상 솥에서 삶아 여러 번 체로 껍질을 걸러낸다. 그러면 팥이 앙금처럼 고와지는데 여기에 물을 붓고 국수를 넣어 끓인다. 하루를 준비해야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정성이 필요한 음식이다.
팥칼국수만으로 장사를 하는 날도 있다. 동짓날이다. 겨울 동안 해가 가장 짧다는 겨울의 최정점인 동짓날은 팥죽 먹는 날이다. 지금도 전라도에서는 이 전통이 오래 지켜지고 있다.
돈코쓰 라멘보다 맛있다
제주도의 국수 역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길지 않다. 대대로 먹던 음식이라기보다는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가 되면서 생겨난 음식이라는 설이 있다. 역사는 짧아도 제주 흑돼지, 제주 옥돔, 갈치회 등과 함께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불리는 국수가 있다. 고기국수다. 고기국수는 제주의 자랑, 돼지고기를 이용한다. 돼지뼈를 푹 고아 국물을 내는데, 이때 잡내 없이 우려내는 것이 기술이다. 소면보다 굵고 칼국수보다 가느다란 면발은 국물에 착 감긴다. 비계와 살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돼지 편육을 듬뿍 넣고 파·참깨·고춧가루를 살살 뿌려주면 국수가 완성된다. 돼지뼈를 이용해 만든 일본의 ‘돈코츠 라멘’이 떠오르는데, 그보다 더 깔끔하고 매력적인 맛이다.
고기국수는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경조사 때 손님에게 국수를 대접해온 전통이 낳은 향토 음식이다. 제주 사람들은 지금도 명절 때면 ‘괸당’(친인척을 뜻하는 제주말)을 찾아 마을을 돈다. 푸근하면서 보수적이다. 고기국수는 그러한 제주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제주의 돼지 맛, 제주의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면 고기국수를 추천한다. 제주시 연동의 올레국수가 제주 사람이 추천하는 식당이다.
충청·전라도 국수와 함께 먹는 요리
고소한 도리뱅뱅이·시원한 물김치·든든한 삼색만두
충북 옥천 선광집에서는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을 판다. 둘 다 피라미로 만든 음식이다. 도리뱅뱅이는 대멸치 크기의 피라미로 만든다. 프라이팬에 피라미를 동그랗게 뱅뱅 돌려놓았다고 해서 도리뱅뱅이다. 피라미는 일단 튀겨 프라이팬에 동그랗게 올려 준비해둔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튀긴 피라미에 고추장 양념을 바르고 기름을 살짝 둘러 한 번 더 구워낸다. 생선튀김은 도리뱅뱅이용보다 큰 피라미를 튀김옷을 두껍게 입혀 튀겨낸 것이다. 도리뱅뱅이와 생선튀김 모두 뼈째 그대로 씹어먹어도 입안에 가시가 걸리지 않는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고추장 양념이 된 도리뱅뱅이는 매콤달콤한 맛이 추가된다. 도리뱅뱅이 위에는 고추와 마늘, 채 썬 깻잎을 고명처럼 올려준다.
전북 군산 신가네해물칼국수집에서는 팥칼국수와 함께 전라도 말로 ‘신건지’라고 부르는 물김치를 낸다. 먹다 보면 다소 텁텁해지는 팥칼국수의 목넘김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삼색만두도 맛이 제대로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천마·당근·시금치로 고운 색을 내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돼지 등심 살코기와 두부로 만든 만두는 부드럽게 씹히면서 속을 든든하게 해준다.
질기고도 부드럽게, 국수의 힘은 세다
냉면 사촌 밀면, 얼큰한 모리국수, 달큼한 메밀소바
경상도는 남한에서 국수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한국전쟁 뒤 미군의 원조물자로 밀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지역별로 다양한 국수가 만들어졌다. 해안지방에서는 생선을 넣은 국수를, 내륙지방에서는 채소를 넣은 국수를 해먹었다. 경북 안동 풍천면 저우리 마을 반장인 박재숙(66) 할머니는 “경상도에서는 여름이면 밥 대용으로 국수를 말아먹었다”고 했다.
쫄깃하고 고소한 안동국시의 참맛
안동 사람들은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로 육수를 낸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예전엔 낙동강에서 은어가 많이 잡혔대요. 은어는 석빙고에 저장했다가 임금님께 진상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댐이 생겨 자연산 은어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저우리 주민 김정희씨 얘기다. 어릴 때부터 먹어온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를 만들어주겠다며 나선 박 할머니도 은어로 낸 육수는 맛보지 못했다고 했다. 은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대신 닭이나 멸치로 육수를 만든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는 면과 육수, 고명이 모두 같다. 다만 면발의 굵기, 면을 삶는 법, 육수 온도 등이 다르다. 안동에서는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든다. 콩가루가 들어가면 면이 더 구수해진다.
“손국수는 얇아야 맛있지.” 박 할머니는 반죽을 소나무 밀판에 올려 30분이 넘게 박달나무 홍두깨로 밀었다. 밀가루를 고슬고슬 뿌려가며 밀어낸 반죽이 종잇장처럼 얇아지자 칼질이 시작됐다. 차갑게 먹는 건진국수용은 얇게, 따뜻하게 먹는 누름국수용은 굵게 썰어낸다. 건진국수는 면을 삶을 때 봄배추를 같이 넣는다. 봄배추, 호박, 콩나물 같은 채소를 같이 삶는 게 안동 지역의 특징이다. 찬물에 헹궈낸 면을 그릇에 담고 미리 차갑게 얼려둔 멸치 육수를 붓는다. 고명으로 깨소금, 달걀지단, 잘게 다져 볶은 쇠고기, 김가루를 올리면 완성이다. 누름국수는 멸치 육수에 면과 봄배추를 넣고 같이 끓인다. 멸치 육수에 채소의 시원함이 더해진다. 한소끔 끓여 면이 익으면 건진국수와 똑같이 고명을 올린다.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는 재료가 같아 온도 차만 있고 맛이 똑같을 것 같지만, 먹어보면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시원한 건진국수는 멸치 국물이 밍밍한 듯하면서 깔끔하다면, 면과 채소를 넣어 함께 끓인 누름국수 국물은 담백하면서 단맛이 난다. 두 국수 모두 콩가루가 들어간 면이 쫄깃하고 고소하다. 고유명사가 된 ‘안동국시’의 참맛은 안동에서 국수를 먹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교방문화가 꽃폈던 경남 진주에는 ‘진주냉면’이 있다. 당시 한양에서 내려온 한량들이 유곽의 기생들과 어울려 입가심으로 먹었던 대표적인 음식이다. 조선의 2대 냉면으로 평양냉면과 함께 꼽힐 만큼 유명하다.
진주냉면은 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평양냉면과 달리 멸치·홍합·문어·바지락 따위 해산물을 끓인 물과 조선간장으로 육수를 만든다. 간이 짭짜름해 식초나 겨자가 필요 없다. 국물 끝맛에선 가쓰오부시 향이 난다. 면은 고구마 전분을 사용해 평양냉면보다 쫄깃하다. 고명으로는 채 썬 육전을 쓴다. 육전은 쇠고기 양지머리와 등심에 달걀물을 입혀 부쳐낸 것이다. 면과 함께 씹으면 고소한 감칠맛이 난다. 애초 교방청(일종의 기생학교)에서 시작된 별식답게 예전에는 전복, 석이버섯 따위의 비싸고 귀한 재료가 고명으로 올랐다. 그러다 냉면이 서민 음식이 되면서 고명도 소박해졌다.
60여 년 전 진주의 나무전거리(지금의 중앙시장)에서 냉면 장사를 시작했던 황덕이(81) 할머니의 진주냉면집이 원조집으로 통한다. 1966년 중앙시장에 화재가 나면서 지금의 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3대째 운영 중인 진주냉면집은 사천·부산 등 6곳에 분점이 있다. 서부시장 본점은 황 할머니의 막내사위 정운서씨가 맡아 20여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남으로 내려온 냉면, 진화 혹은 변화
진주냉면의 내력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정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집이 진주냉면의 맥을 잇고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장인어른이 하던 대로 했는데, 대학교수나 음식연구가들이 와서 ‘이게 진주냉면’이라고 하면서 널리 알려졌다”고 했다.
진주냉면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만화에는 경상도 바닷가에서 구전으로 내려온 생선 비린내 없애는 방법이 그려져 있다. 뜨겁게 달군 무쇠를 끓는 멸치장국에 넣어 순간적으로 온도를 올려 비린내를 없애는 것인데, 정씨가 가게를 맡은 뒤부터는 쓰지 않는 방법이다. 지금은 항아리로 비린내를 잡는다. 육수를 항아리에 담았다가 보름이 지난 뒤 사용하면 잡내가 나지 않는다.
이북 음식인 냉면은 남하할수록 옛 맛 대신 새 맛을 찾아냈다. 부산에는 냉면의 사촌인 밀면이 있다. ‘부산밀면’도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만든 음식이다. 메밀가루 대신 보급품으로 흔해진 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섞어 면을 만들었다. ‘밀냉면’ ‘부산냉면’으로 불리다 ‘부산밀면’으로 이름이 굳어졌다.
밀면의 원조 격으로 꼽히는 집이 부산 우암동의 내호냉면이다. 함경도에서 냉면 장사를 하던 고 정한금 할머니가 부산으로 피난 와 문을 연 냉면집이다. 3대 사장인 이춘복(62·여)씨까지 벌써 57년째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이씨의 딸 유미옥(42)씨가 대를 이어 맛을 배우고 있다. 유씨는 “가게 문을 처음 열 때부터 밀면을 판 건 아니다”라고 했다.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밀면을 만들어 판 게 1959년이라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들어 팔던 음식이라고 했다.
얼음 동동 띄운 차가운 밀면은 쇠고기 육수로 맛을 낸다.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 면은 메밀면보다 하얗고 쫄깃하다. 함흥냉면처럼 질기지 않지만 이로 끊어 먹을 정도론 질기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편육, 오이, 양념 무, 삶은 달걀, 다진 양념 등이 올라간다. 젓가락으로 사리를 살살 풀어 다진 양념까지 섞는 동안 매운 향이 올라와 입에 침이 고인다. 육수는 시거나 쏘는 맛이 없어 밍밍하다. 똑같은 육수를 써도 돼지고기 편육이 올라가는 밀면은 4천원, 쇠고기 편육이 올라가는 냉면은 6천원이다. 전쟁 뒤 시장통에서 먹던 피난민의 음식답게 맛도 가격도 소박하다.
경북 포항 구룡포항 앞에도 어부들이 먹던 소박한 국수가 있다. ‘모리국수’다. 커다란 양은냄비에 갓 잡은 생선과 콩나물,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푸짐하게 끓여낸 모리국수는 어민들의 뱃속을 채워주는 별미였다. 얼큰하고 시원해 해장용으로도 많이 찾았다.
42년 동안 구룡포 읍내에서 까꾸네 모리식당을 운영하는 이옥순(67) 할머니는 모리국수가 처음엔 이름도 없던 음식이라고 말한다.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을 판잣집으로 가져와 국수 넣고 끓여달라고 해서 만들어준 게 모리국수의 시작”이라고 했다. 싱싱한 생선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여러 사람이 ‘모디가 먹는다’고 해서 ‘모디국수’가 됐다는 설도 있고, 양이 푸짐하다는 뜻에서 일본어로 많다는 뜻의 ‘모디’가 붙었다는 설도 있다.
모리국수는 구룡포에서 잘 잡히는 대게와 다시마로 육수를 낸다. 옛날엔 명태·대구·삼식이·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을 넣고 끓였는데,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넣지 못한다. 어종이 고갈되고 값이 비싸져서다. 그래도 아귀, 물메기, 미더덕, 대게 등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면은 공장에서 주문해 싱겁게 만든 풍국면을 넣어 삶는다. 고춧가루 양념을 진하게 풀어낸 국물은 시원하고 얼큰해 먹는 내내 땀이 난다. 아삭하게 씹히는 콩나물도 국수와 잘 어울린다. 민물 생선을 죽처럼 담백하게 끓인 충북 옥천 생선국수와는 또 다른 맛이다. 아귀와 물메기 등 살이 통통한 생선을 그대로 먹으니 국수를 먹는 건지 매운탕을 먹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이 할머니는 “모리국수 때문에 포항 식당에선 매운탕을 먹고 나면 국수를 넣어 끓여주는 음식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장조림 국물과 멸치 육수의 황금비율
경남 의령의 ‘메밀소바’는 이름처럼 일본의 식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이 해방 뒤 고향으로 돌아올 무렵, 의령군 부림면 신반마을의 한 할머니가 일본에서 메밀소바를 배워와 이웃 사람들에게 대접했던 음식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좋아해 장터 골목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의령의 대표 국수로 자리매김했다. 쓰유(장국물)에 적셔 먹는 일본식 메밀소바와 달리 의령 메밀소바는 따뜻한 국물에 말아 먹는다. 온소바의 육수는 멸치 국물이다. 여기에 장조림 국물을 섞어 맛을 낸다. 이 장조림을 제대로 만들어야 육수 맛이 난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40년 넘게 메밀소바를 만들어온 제일식당 박시춘(55) 사장은 “쇠고기에서 기름기가 가장 없는 엉덩이살로 장조림을 한 뒤 여과지로 기름기를 걷어낸다”고 했다. 그렇게 만든 장조림 국물은 간장처럼 색이 진하고 기름이 전혀 뜨지 않는다. 중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장조림 간장 육수를 넣으면 맛이 고소하고 달곰하다. 고명으론 참기름으로 양념한 시금치를 올린다. 면과 같이 먹으면 아삭해서 식감이 좋다. 비빔 메밀소바도 맵지 않은 달큼한 맛이 난다. 고명으로 올린 장조림 고기와 잘 어울린다. 박씨는 “사계절 먹는 음식이라 요즘은 외지 사람들이 더 찾는 음식이 됐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가게 앞으로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줄을 선다. 땡볕도, 추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수 한 그릇의 힘은 그렇게 세다.
경상도 국수와 함께 먹는 요리
든든한 찐만두·향긋한 망개떡·맑고도 독한 집집이 동동주
국수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부침개, 편육, 보쌈, 만두 등이 있다. 국숫집 메뉴에 꼭 끼어 있는 조연들이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는 음식이 없다. 경상도에서 찾아간 국수 원조집 5곳에서는 모두 국수만 팔았다. 부산 내호냉면 정도만 찐만두를 판다.
하지만 메밀소바만 파는 경남 의령 제일식당은 5분 거리 시장으로 가면 디저트를 먹을 수 있다. 의령의 명물인 망개떡이다. 찹쌀가루를 쪄서 치대어 팥소를 넣고 반달이나 사각 모양으로 빚은 망개떡은 4개에 1천원이다. 망개나무라고 부르는 청미래덩굴잎 두 장으로 찹쌀떡이 서로 달라붙지 않게 해서 같이 찌는데, 이 나뭇잎 냄새가 떡에 배어 독특한 향이 난다. 찹쌀의 쫀득함과 팥소의 달콤함이 매력적이다.
경북 포항 모리국수는 술 생각이 나게 하는 독특한 국수다. 해장용으로도 좋지만, 아귀나 물메기같이 살이 많은 생선이 들어 있어 술을 찾는 손님이 많다. ‘까꾸네 집’ 근처 양조장에서 가져온 ‘집집이 동동주’는 서울에서 맛보기 어려운 포항 술이다. 술을 빚은 뒤 물을 전혀 넣지 않은 ‘전내기 기법’으로 만들었다. 공군 대위로 전역한 민속연구가인 양조장 주인이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만든 술이란다. 사케처럼 맑지만 색이 누르스름하고, 냄새는 찝찌름하다. 맛은 막걸리보다 독하다. 시원하게 한 사발 쭉 들이켜려 하니 까꾸네 모리식당의 이옥순 할머니가 큰 소리로 말린다. “취해.” 값은 6천원. 장수막걸리보다 4천원이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