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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토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醉月 2009. 2. 5. 09:00

빚에는 엄하고 기술에는 강하다

교토식 기업의 성공 비결 / 기술 모듈화·고객 분산·수익 위주 조직 구성 등으로 위기 대비

[1007호] 2009년 02월 04일 (수) 교토·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 한 일본 소비자가 닌텐도 소프트웨어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교토식 기업 사전에     ‘재무 레버리지 효과’라는 단어는 없다

기업은 전략 사업이나 수익성 높은 부문에 투자하기 위해 돈을 빌린다. 부채가 지렛대 역할을 해 이익을 늘리는 재무 레버리지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경기 확장기에는 레버리지 효과가 작용해 차입금이 많은 기업의 실적이 좋다. 하지만 레버리지 비율이 높을수록 위험은 커진다. 교토식 기업은 빚을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하나같이 자기자본비율이 높다. 교세라는 75.1%(1월29일 기준)나 된다. 유동자산이 9천7백억 엔이 넘고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4천6백억 엔이나 된다. 무라타와 롬의 자기자본비율은 각각 83.4%와 86%이다. 무라타와 롬은 3천2백억 엔이 넘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소규모 벤처기업인 삼코의 자기자본비율도 73%가 넘는다. 니치콘은 30년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하다. 최근 자기자본비율이 77.2%나 된다. 

자기자본비율이 높다 보니 자기 돈으로 신규 투자를 벌인다. 경쟁 업체보다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앞서 나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교토식 기업은 경기 변동에 따라 영업 실적이 주춤하더라도 파산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 닌텐도는 ‘생산과 판매가 3년 동안 중단되어도 살 수 있다’라고 장담한다. 무라타는 ‘엔화 환율이 1달러당 40엔까지 내려가도 생존할 수 있다’라고 평가받는다.

▒  경영 최우선 과제는 ‘리스크 분산’

   
▲ 일에 몰두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소재 제조 업체 삼코의 직원.

교토에서는 한 번 사업에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힘들다. 교토 내 기업들은 지역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파산이라도 하면 공동체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 파산 위험을 무릎쓰고 고도 성장을 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 경영의 최우선 과제는 리스크 분산이다. 교토식 기업은 기술, 고객, 조직 운영 측면에서 철저하게 리스크를 분산한다.

전기전자 산업에서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에 대한 수요가 생기기 시작하면 기존 제품은 시장에서 빠르게 철수한다. 고객의 취향이 변하거나 새 시장이 형성되면 최종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는 바로 타격을 받는다. 이와 달리 최종 제품 제작에 필요한 요소 기술을 가진 업체에는 경기 변동에 따른 피해가 없다. 새 제품이 나오더라도 요소 기술이나 부품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롬의 사토 겐이치로 사장은 “최종 제품은 시대에 따라 판매량이 변하지만 전자부품은 최종 제품이 무엇이든 간에 사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교토식 기업은 가급적 최종 제품 시장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교세라가 지난해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 산요와 레이저프린터 제조업체 미타를 인수한 것은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텔레비전, 비디오, 휴대전화 같은 최종 제품의 판매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고정 비용이 많이 든다. 그만큼 기업은 리스크에 노출된다.

기술은 철저하게 모듈화한다. 모듈을 조합해 새 부품이나 장치를 공급해 수요 변화에 대응한다. 신제품 개발에 늘 새 방식으로 대응하거나 개별 처리하다 보면 제품 개발 속도가 늦어지고 중복 비용이 발생한다. 모듈화는 작은 단위로 세분화한 여러 가지 조형물을 마련해두고 조합하는 기술 경영 방식이다. 사용 빈도가 높고 가장 기초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모듈을 축적하고 개별 모듈을 선택적으로 조합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

조직도 잘게 쪼개 수익 위주로 운영한다.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이나 무라타의 3차원 매트릭스 조직이 이에 해당한다. 교세라는 8~9명 단위로 묶어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무성 생식하는 아메바처럼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쪼개고 합칠 수 있어 아메바 경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교세라의 창업자 이와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발상이다. 무라타는 3천개 매트릭스 단위 조직으로 세분해 조직을 운영한다. 개별 단위 조직은 공정별로 비용을 관리하고 설비 투자의 경제성을 평가한다. 단위 조직 사이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할 때도 내부 가격을 책정해 단위 조직별로 실적을 평가한다. 옴론은 회사를 5개 컴퍼니로 나누었다. 다테이시 요시오 옴론 사장은 ‘속도와 혁신이라는 벤처기업의 강점과 경영 자원이 풍부한 대기업의 장점을 조합하고자 컴퍼니 제도를 도입했다’라고 밝혔다. 

교토식 기업은 고객도 분산한다. 특정 고객에 의존하는 것을 꺼린다. 가능한 한 많은 고객과 거래하면서 개방적인 관계를 형성하려 애쓴다. 도쿄에 본사를 둔 일본 대기업은 경쟁 업체에 자사 정보가 새는 것을 꺼려 믿을 수 있는 하청 기업과만 거래하려는 성향이 있다. 대기업은 주문 물량이 많고 신용도가 높아 일본 내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 기업이 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교토식 기업은 그 유혹을 뿌리쳤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고객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찾아다닌다. 도세는 닌텐도와 거래하는 게임 개발업체로는 드물게 닌텐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 국내외 70여 개 업체로부터 게임 개발 의뢰를 받는다. 도세는 오히려 제휴 업체들을 규합해 새 사업 모델을 만들기도 한다. 코플록의 고객은 기업, 연구소, 대학을 비롯해 국내외 6천3백개가 넘는다. 최대 고객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다. 고지마 히사토시 콜플록 사장이 세운 영업 방침이다. 특정 고객과 거래에서 매출액의 10% 이상이 발생하면 고지마 사장이 직접 관리한다. 고지마 사장은 “경영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특정 거래처에 대한 의존은 피한다”라고 말했다. 

   
▲ 삼코는 박막성형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특허 기술만 100여 건에 달한다.

▒  일본은 좁다. 세계 시장을 공략하라

교토에는 도쿄와 달리 내수 시장이 없다. 교토 인구는 1백50만명을 넘지 못한다. 도쿄에 본사를 둔 대기업이 교토식 기업 제품을 사지 않으면 내수 판매는 포기해야 한다. 교토식 기업은 도쿄 기업이 쌓은 시장 진입 장벽을 뚫기보다 일찌감치 해외 시장에 눈을 돌렸다. 또, 내수 시장을 기웃거리다가 도쿄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했다. 역사나 문화 측면에서 도쿄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교토인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교토식 기업 다수는 해외 거래처와 거래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창업 초기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로부터 세라믹축전기 제작 주문을 받아오면서 도약하기 시작했다. 나가모리 시게노부 니혼덴산 사장도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3M 수주에 성공했다. IBM과의 계약까지 성사되면서 니혼덴산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무라타는 1960년 일본 기업으로는 최초로 모토로라 및 제너럴일렉트릭과 계약에 성공했다. 롬은 1961년 미국 실리콘벨리에 반도체 개발업체를 설립했다. 다케타 잇페이 니치콘 사장은 입사 4년차에 미국 시장 개척에 나서 니치콘을 전해축전지 시장 1위에 올려놓았다. 다케타 사장은 “일본 국내만 상대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교토식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 시장을 공략했다. 세계 시장에서 제품 경쟁력을 인정받았으므로 일본 기업들도 교토식 기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교토식 기업은 전세계 시장을 일본·미국·유럽·아시아로 구분한다. 개별 시장의 실적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비슷하다. 특정 시장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일본 내 판매 실적이 무라타의 영업이익에 기여하는 비율은 18%를 넘지 않는다. 미국·유럽·아시아 시장 실적이 10% 안팎을 기록한다. 호리바의 매출도 미국 18.1%, 유럽 31%, 아시아 14.4%로 분산되어 있다. 니혼덴산이 지난 1월29일 발표한 2008년 회계연도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영업 실적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8.7%나 되었다. 일본 국내 시장 매출은 31.3%에 불과했다. 

▒  잘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라

교토식 기업은 자신 있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갖추려 한다. 경쟁 업체보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미련을 두지 않는다. 신규 사업에 진출할 때에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기술에 기초한다. 기존 기술을 조합하거나 확장하는 수준에서 진입할 수 있으면 신규 시장 진출을 고려한다. 일단 시장에 진입하면 경쟁 업체를 압도한다. 기술, 제품 경쟁력, 연구·개발, 시장 점유율 면에서 경쟁 업체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다 보니 교토식 기업은 핵심 부품의 표준을 정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설정한 표준은 경쟁 우위 요소로 작용해 교토식 기업의 시장 지위를 강화한다. 

무라타는 세라믹필터 시장 80%와 세라믹 축전지 시장 50%를 장악하고 있다. 무라타가 제품 출하를 중단하면 전세계 컴퓨터 70%가 멈춘다. 니혼덴산은 하드드라이브 스핀들모터, 초정밀 모터, 팬용 모터 부문 시장 세계 1위이다. 스핀들모터 시장 점유율은 70%나 된다.

니혼덴산이 공장 가동을 멈추면 전세계 휴대전화 10억대의 조립이 중단된다. 롬은 플로피디스크용 주문형 대규모 집적회로(LSI) 시장 67%를 차지한다. 호리바는 엔진 배기가스 계측기 시장 80%를 장악하고 있다. 전세계 공장은 교토식 기업이 납품한 자동화 설비로 교토식 기업이 생산한 부품을 조립해 최종 제품을 완성하고 있다. 

▒  잘나갈 때 다음을 준비하라 

   
▲ 교토의 역사. 일본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일컬어지는 교토는 경제의 노른자위이기도 하다.
ⓒ일본관광청

교세라는 친환경 에너지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일찌감치 태양 에너지 발전 시장에 진입했다. 마코토 카와무라 교세라 사장은 지난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엄혹한 경제 환경에서도 대체 에너지 자원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태양 에너지 발전 사업에 주력해 주문을 늘리겠다”라고 말했다.

무라타도 2015년 매출액 1조 엔 돌파를 목표로 삼고 에너지·전력·바이오·환경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화석 연료 의존도가 줄면서 연료전지와 변환장치 수요가 늘어나는 점에 착안해 그에 맞게 제품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오염원을 탐지하는 환경 보호 기술을 개발하는가 하면 바이오테크놀로지까지 넘보고 있다. 호리바는 태양전지 제조 장비에 들어가는 매스플로우 제어기를 생산하고 있다. 교토식 기업은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산업 판도를 바꿀 기술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보다 차세대 기술을 앞서 개발해 미래 기술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다.

사사 히로시 씨(28)는 도요타 시로 유명한 아이치 출신으로 교토식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교토로 이사했다. 그는 “교토인은 일본인답지 않다”라고 말했다. 교토식 기업인은 주변과 조화를 꾀하기보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직 구성원 전체가 개인 비전을 회사 발전에 연동시킨다.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사원들은 활력이 넘치고, 고된 업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거둔 성취는 교토식 기업인의 자신감으로 표출된다. 자신감은 전세계 어느 기업과도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사 씨는 “교토식 기업이 자랑하는 기술력과 경쟁력의 비밀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교토인의 개성에 숨겨져 있다”라고 말했다.

 

“위기를 일상화하라”
<교토식 기업> 저자 스에마쓰 지히로 교수 인터뷰
[1007호] 2009년 02월 04일 (수) 교토·이철현 경제전문기자 lee@sisapress.com

   

스에마쓰 지히로 일본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구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자가 아니다. 그는 일본 교토에 산재한 교토식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세계 최고 제조업체들의 경쟁력과 경영 전략을 연구했다. 그 연구의 성과물을 저서 <교토식 기업>에 담았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토식 경영’과 ‘일본 교토와 실리콘밸리’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지난 1월28일 방학이라 다소 한적한 교토 대학 경제학부 건물을 찾았을 때 스에마쓰 교수는 교토 기업들과 함께 ‘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관한 비밀 프로젝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라 일컬어지는 장기 불황에 빠져 있을 때도 교토식 기업은 성장을 거듭했다. 현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교토식 기업의 경영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가?

교토식 기업은 체질적으로 위기에 강하다. 교토식 기업은 탁월한 위기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1990년대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을 때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을 키웠다고 보아야 한다. 교토식 기업은 늘 위기를 상정해놓고 경영 전략을 짠다. 도쿄에 본사를 둔 일본 업체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사업부를 정리하거나 인원을 줄이는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한다. 이와 달리 교토식 기업은 오히려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거나 차세대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위기가 지나고 경제가 다시 성장할 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교토식 기업은 위기를 경영 혁신의 호기로 삼는다. 평상시라면 사원 반발로 실행할 수 없는 혁신 과제라도 위기 상황이라면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세계 1위 모터 제조업체이자 대표적 교토식 기업인 니혼덴산의 예를 들어보자. 니혼덴산은 청결과 정리 정돈을 강조한다. 시게노부 나가모리 니혼덴산 창업주는 위기에 처한 기업을 인수한 뒤 해당 기업의 종업원들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바꿔 정신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이다. 교토식 기업은 이번 경제 기회를 활용해 호황기에 미루었던 개혁과 개선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혁신 활동이 축적되어 그 성과가 임계점에 이르면 새 기회와 성장동력을 찾을 것이다.

교토식 기업은 전세계 시장을 공략한다. 특정 시장이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아 한 지역 경제가 침체하더라도 그로부터 받는 악영향은 제한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세계가 동반 침체되어 있다. 교토식 기업에게도 위기 상황이 아닌가?

교토식 기업도 실적 악화를 피할 수 없다. 일본이 장기 불황으로 침체되어 있을 때 교토식 기업은 미국·유럽·아시아 시장을 공략했다. 지금처럼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상황에서는 유효할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교토식 기업은 경제 위기나 불황이 닥쳤을 때 핵심 역량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토식 기업은 ‘선택과 집중’에 탁월하다. 자기가 선택한 시장에서는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과 기술력에서 경쟁 업체를 압도한다. 경영 효율도 세계 최고이다. 기업 규모를 키우거나 매출을 늘리기보다 경상이익률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 그러다 보니 내부 유보금이 많고 빚은 거의 쓰지 않는다. 무라타는 2~3년 동안 영업을 중단하더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내부 유보금이 많다. 기술은 모듈화한다. 최종 소비재를 생산하지 않고 그 소비재 제작에 필요한 부문 기술이나 제품을 모듈화해 다른 제품 개발에 원용할 수 있게 한다. 갖가지 제품 개발에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 단위를 갖고 있으면 수요 변화나 기술 혁신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사업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절대 우위라는 시장 지위에도 안주하지 않는다. 다음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차세대 제품을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교세라는 2010년 매출 2조 엔 달성이라는 비전을 발표하는가 하면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인 산요를 인수했다. 무라타는 2015년 매출 1조 엔 달성이라는 경영 목표를 발표했다. 니혼덴산은 인수·합병(M&A)을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다. 매출보다는 수익, 덩치 키우기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던 교토식 기업의 경영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주가 상승을 바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 교토식 기업은 세계 최고의 모듈 기술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최종 소비재 제조업체로 변신하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제품 구성 전략이나 기술을 수직 통합하면 부가가치를 기업 내부에 쌓을 수 있다. 그런 탓에 경영자는 수직 통합에 대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수직 통합 전략은 최종 소비재를 만드는 업체로 가는 수익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 일 수 있어 얼핏 좋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안정 성장과 위기 관리 같은 장기 전략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경영 효율이 떨어져 교토식 기업이 지금까지 누렸던 이점이 사라진다. 지금 사상 초유의 경기 침체라는 위기가 닥쳤다. 그동안 덩치 키우기에 매진하던 기업들은 후회하고 있다고 본다.

교토식 기업의 주력 제품군은 축전지, 세라믹, 모터, 반도체 부품이나 소재이다. 전자제품 부품 시장에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교토식 기업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심해지면 교토식 기업도 본질적인 위기에 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교토식 기업은 경쟁 업체가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따라서 산업 판도를 바꿀 만한 신소재나 신기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기술 흐름과 산업 정보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이에 대한 전략도 세우고 있다고 본다. 자사가 보유한 기술이나 제품 경쟁력에 기초해 수익성 높은 시장이나 기회를 끊임없이 엿본다. 그렇다고 생소한 영역으로 진입하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자사가 보유한 기술을 확장·변형하거나 보유 기술을 모듈 단위로 구성해 새 제품 개발에 투입한다.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교토식 기업이 전세계 대기업이나 연구 기관과 경쟁할 수 없다. 기업 규모나 연구·개발비 금액에서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신 교토식 기업은 앞선 기술을 응용해 제품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앞으로 시장 판도를 뒤엎을 기술이나 소재가 나오면 이를 활용해 가장 경쟁력 있는 제품을 출시하는 곳은 교토식 기업이 될 것이다. 교토식 기업이 지닌 모듈 기술은 전자 산업이나 반도체 산업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응용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이나 신규 사업 기회에 대응하는 데 전세계 어느 나라 기업보다 한 발짝 앞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위기에 강한 회사로 거듭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 가지 처방으로 병을 낫게 하는 특효약은 없다. 기업 스스로 경영 전략과 문화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해도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지 못할까 걱정한다든지, 고객군을 다변화하다가 기존 고객까지 놓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서는 안 된다. 과감하게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내수 시장 공략에 치중하고 특정 고객에 의존하다 보면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구성원 전체가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평상시 위기에 대비하고 있어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조처를 마련하려 하려면 늦다. 교토식 기업은 항상 위기에 대비했다. 차입금은 줄이고 현금은 충분히 보유한다. 신기술이나 신제품 개발 투자도 내부 유보금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감수할 수 있다. 잦은 시행착오 끝에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경영 효율이 성장보다 중요”
반도체업체 ‘삼코’ 쓰지 오사무 대표이사
[1007호] 2009년 02월 04일 (수) 교토·이철현 경제 전문기자 lee@sisapress.com

   

삼코는 반도체 장비와 소재 제조업체이다. 삼코(SAMCO)라는 회사명은 ‘반도체(Semiconductor)와 소재(Material) 기업(Company)’의 약자이다. 삼코는 세계 최고의 박막성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박막성형 분야 특허 기술이 100여 건이 있다. 2008년 7월 말 결산일 기준으로 매출 52억7천만 엔, 영업이익 8억7천만 엔을 기록했다. 임직원은 1백54명. 전형적인 교토식 기술 벤처기업이다. 창업주 쓰지 오사무 대표이사는 미국 우주항공연구소(NASA) 산하 에임스연구소에서 플라즈마를 연구한 공학도 출신이다. 교토 후시미구 타케다 지역에 있는 삼코 본사로 쓰지 대표이사를 찾았다. 그는 본사 회의실에 프로젝터까지 설치해 교토식 기업의 위기 관리에 대해 설명했다.

삼코는 이번 경제 위기로 인해 얼마나 타격을 받고 있는가?

매출과 수익이 30%가량 줄어들고 있다. 금융 불안으로 신용이 위축되고 기업이 설비 투자를 꺼리고 있어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삼코가 겪은 불황은 국지적이었다. 미국 시장이 침체하면 유럽과 일본 시장을 공략하면 되었다. 일본 시장이 위축되면 미국에 팔면 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전세계 시장이 위축되고 있어 경기 회복까지는 오래 걸릴 듯하다.

위기 극복 전략은 무엇인가?

삼코는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2~3년 영업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호황일 때 주주를 설득해 배당하지 않고 내부 유보금을 쌓았던 것이 주효했다. 언젠가 지금과 같은 위기가 닥치리라 예상했다. 미국에서는 주주가 기업에게 높은 배당률을 요구한다. 경영자는 수백만 달러가 넘는 성과급을 받는다. 교토식 기업에서는 그런 관행을 찾아보기 힘들다. 삼코는 올해부터 내부 유보금을 풀어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우수 인재를 확보하려고 한다. 과잉 투자 부문과 유휴 인력은 미세 조정하겠지만 사업부 정리나 인원 해고 계획은 없다. 엔화 강세와 불황은 삼코에게 이점도 있다. 원가가 크게 줄어든다. 엔화 가치가 높다 보니 외국에서 들여오는 부품의 매입 단가가 많이 떨어졌다. 한국이나 영국 업체의 부품 값이 절반까지 떨어졌다. 지난 1월20일 한국에서 열린 세미콘 전시회에 참석해 한국 업체와 구매 상담을 벌였다.

삼코의 성장 전략은 무엇인가?

삼코는 과대 성장을 원하지 않는다. (매출과 경상이익률의 역비례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보여주며) 경영 효율은 기업 규모와 반비례한다. 매출 5천억 엔까지는 경영 효율과 기업 규모가 균형을 이룰 수 있으나 그 이상을 넘어가면 위기 대응 능력과 경영 효율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덩치가 아니라 효율이다. 매출액이 1조 엔이 넘을 것 같으면 새 회사를 차리는 것이 낫다. 교토에는 매출 5천억 엔 안팎의 기업이 많다. 크지 않지만 경영 효율이 우수한 기업이 많은 나라가 경쟁력이 높다고 본다. 또, 삼코는 범용 기술에 주목한다. 최종 제품을 제조하기보다는 갖가지 전자제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시장 판도를 바꿀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그 안에는 삼코의 박막기술이 들어간다. 

한국 중소기업이 현 위기를 타개하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세계 시장으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 그러려면 그에 상응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제조·판매·기술 거점을 전세계에 설치해야 한다. 삼코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제휴해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는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와 같은 연구 끝에 개발한 제품은 세계 시장에 팔아야 한다. 내수 시장에서 얼마 안 되는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위기에 대한 내성이 떨어진다. 지금 경제 위기는 한국 중소기업에게 과제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 과제를 풀어야 경기 변동에 휘둘리지 않고 안정 성장이 가능하다.

“최종 제품에는 손대지 않는다”
게임업체 ‘도세’ 사이토 시게루 대표이사
[1007호] 2009년 02월 04일 (수) 교토·이철현 경제 전문기자 lee@sisapress.com

   

도세는 게임 개발업체이다. 닌텐도나 일렉트릭아츠(EA) 같은 게임업체의 의뢰를 받아 가정용 콘솔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을 기획·개발한다. 지금까지 개발한 게임 타이틀이 1천6백점이 넘는다. 삼성전자, 소니, 도요타를 포함해 전세계 69개 업체가 도세의 고객이다. 도세는 업종만 특이할 뿐 전형적인 교토식 기업이다. 기업 규모를 키우기보다 내실 경영을 중시한다.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60억 엔과 3억 엔을 기록했다. 자기자본율은 77.7%이다. 창업 이래 30년 동안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도세는 최종 제품을 출시하지 않고 제휴 업체와 합작해 수익과 위험을 분산한다. 폐쇄적이라고 소문난 닌텐도도 도세와 손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도세의 사업 전략은 일본품질학회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교토 시모교 구 시조사가루에 위치한 도세 본사를 찾아 사이토 시게루 대표이사에게 부침이 심한 한국 게임 개발업계의 안정적 성장 전략에 관해 들어보았다.

세계 경제 위기가 도세의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가?

과거 경기 침체기에 게임 산업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이번 경제 위기에도 별 차이는 없다. 도세의 경우 올해 매출은 늘고 이익은 지난해와 비슷하리라 전망한다. 도세는 빚이 거의 없고,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재무구조가 우수한 기업은 불황이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도세처럼 전세계와 내수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기업은 경제 후퇴에 따른 충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도세는 오히려 현 위기를 기회라고 보고 많은 제품을 기획하고 있다.

도세의 수입 모델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한데? 

다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와 달리 도세는 최종 제품을 개발하지 않는다. 제휴 업체와 손잡고 게임을 기획·개발해 납품하는 업체이다. 그러다 보니 재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적도 경기 변동에 따라 영향을 덜 받는다. 기획·개발 사업으로 수수료 수입이 발생하고 게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면 추가 수입이 발생한다. 이미 출시된 게임 타이틀로부터 로열티 수입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도세는 제휴 업체와 철저하게 협력한다. 게임 업종이 아니라 전혀 다른 업종의 기업과도 협력해 제품군을 다변화한다. 최근 각기 다른 업종에 종사하는 7개 기업을 끌어들여 ‘조인사운드 위(Wii)’라는 가정용 노래방 기기를 공동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게임기 위(Wii) 제조업체 닌텐도, 노래방 기기업체 엑싱, 통신업체 NTT, 네트워크 서버관리업체 포넥스, 판매·마케팅업체 허드슨뿐 아니라 서버 임대사업자까지 이 사업에 참여한다. 보안 탓에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제품은 기존에 수백만 엔이 넘는 육중한 노래방 기기를 3만엔이 넘지 않는 소형 기기로 대체할 것이다. 혼자 하기보다 제휴 업체와 공동 추진해 위험은 줄이고 수익은 나누는 것이 도세의 사업 전략이다.

한국 게임업계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과 일본의 게임시장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네트워크 게임이 각광을 받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패키지 게임의 인기가 높다. 네트워크 게임시장은 한국과 중국으로 제한되지만 패키지 게임은 전세계 시장을 공략한다. 시장이 크다 보니 일본과 미국 게임업체들은 경기 변동에 따라 영향을 덜 받는다. 한국 게임업체에게 네트워크 시장은 일본 게임업체를 따돌릴 수 있는 틈새 시장이다. 네트워크 게임 개발 분야에서는 한국이 일본에 앞선다. 중국 업체도 네트워크 게임을 만들지만 품질이 한국 게임에 못 미친다. 한국 게임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포함해 세계 시장을 상대로 네트워크 게임을 보급하면 엄청난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본다. 좁은 내수 시장보다는 전세계 시장을 겨냥하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