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며칠 동안 강원 철원은 말 그대로 ‘혹한의 동토(凍土)’였습니다. 철원 땅의 공식 기온을 재는 지역대표 관측소가 있는 갈말읍이 영하 26.8도. 김화읍의 수은주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날이었습니다. 차체 아래쪽에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차들은 여간해선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겨우 시동은 건 차들도 짐승처럼 흰 김을 뿜으며 조심조심 얼어붙은 도로를 오갔습니다. 전날 밤까지도 불을 켰던 포장마차는 바퀴가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고, 추녀에 고드름이 커튼처럼 매달린 가게의 소주병은 얼어 터졌습니다. 큰(漢) 여울(灘)이란 이름의 한탄강이 소리를 다 버리고 적막하게 꽝꽝 얼어붙은 날. 그 단단한 얼음장 위에 올라서 강 위를 걸어봤습니다. # 가장 뜨거웠던 물길이 차게 얼어붙다 지금은 꽝꽝 얼어붙은 물길이지만, 한탄강은 한때 시뻘건 불길과 함께 끓어 넘치는 용암이 흘렀던 자리였다. 그게 27만 년 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경원선 철로가 북한 땅으로 접어들어서 다섯 번째 역이 견불량역. 여기서 북동쪽 4㎞쯤에서 처음 화산이 폭발했다. 뒤이어 북한 땅인 평강 서남쪽 3㎞ 지점의 오리산에서도 화산이 불을 뿜었다. 백두산과 한라산, 울릉도 성인봉이 일제히 폭발했던 이른바 한반도의 제4계 화산활동의 시기였다. 견불량역 쪽에서 폭발한 화산의 용암은 금세 식어서 굳어버렸지만, 오리산이 뿜어낸 시뻘건 용암이 불바다와 함께 끓어 넘치면서 추가령 계곡을 넘고, 한탄강의 물길 자리를 타고 흘러 임진강 하류까지 무려 90㎞를 달렸다. 화산이 분출한 용암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이때 솟은 용암은 서울의 면적보다 더 넓은 650㎢(1억9600여만 평)의 땅을 뒤덮었다. 용암이 식으면서 한탄강은 막혔지만, 강물은 화산석의 틈새를 가르고 침식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지금의 한탄강 협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탄강의 풍경은 생겨난 이력만큼이나 첫눈에도 독특하다. 한탄강은 철원 평야의 너른 들판 아래 깎아지른 벼랑을 이루며 푹 꺼진 자리에 있다. 그러니 한탄강을 보려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평야의 땅 아래 갈라진 계곡 사이로 강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곡을 이룬 강 아래로 내려설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고, 거친 협곡에다 곳곳에 바위가 있어 배를 띄우기도 쉽지 않으니 한탄강은 주로 ‘내려다보는’ 풍경으로만 익숙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혹한에는 사정이 다르다. 얼어붙은 강의 수면 위로 내려설 수 있고, 언 강물 위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걸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탄강이 겨울 혹한기에만 잠깐 허락하는 여정. 언 강의 수면 위로 치솟은 주상절리 협곡의 직벽 아래를 걷는 길. 이름 하여 한탄강의 물길을 따라가는 ‘얼음 트레킹’이다. # 얼음폭포의 근육과 석벽의 뼈대 한탄강 얼음 트레킹 코스는 보통 직탕폭포 아래에서 시작해 송대소를 지나 승일교까지다. 다 걷자면 두어 시간 남짓이 걸리는 짧지 않은 길. 더러는 겨우내 혹한이 몰아쳐도 얼지 않는 승일교 아래쯤에서 발길을 멈추고 다시 고석정에서 시작해 순담계곡까지 발을 딛는 이들도 있지만, 웬만하면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게 좋겠다. 한탄강 수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화강석 기암으로 이뤄진 순담계곡의 절경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급류를 이루는 이쪽은 수면 위에 얼음이 얇아진 곳들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그러니 사정에 밝은 현지 주민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승일교쯤에서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낫다. 트레킹 코스의 출발지점인 직탕폭포는 곳곳에 거대한 고드름 기둥을 세우고도 그 틈으로 찬물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린다. 다른 계절에 직탕폭포 앞에 서본 이들이라면 고작 5m 남짓에 불과한 폭포의 높이에 실망하기 십상이지만, 겨울철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힘찬 물살이 쏟아지면서 얼어붙은 형상이 마치 울끈불끈 근육질의 모양을 닮은 데다,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 사이로 쉼 없이 쏟아지는 진청색 물색을 바라보노라면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직탕폭포 아래서 강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밑과 신년에 걸쳐 언 강 위에 쏟아진 눈은 아무도 밟지 않은 채 순백으로 빛났다. 인근 주민들은 “강을 덮은 얼음장의 두께가 족히 80㎝는 넘을 것”이라며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했지만, 막상 한 발 두 발 깊은 강으로 걸음을 들여놓자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얼음장 저 아래쯤에서 ‘우지직’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내딛는 발이 급작스레 푹 꺼질 것도 같았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얼음판 한가운데 채 얼지 않은 몇 개의 ‘숨구멍’에서는 쿨럭쿨럭 푸른 물이 솟아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쌓인 눈 아래 푸르게 빛나는 얼음판을 가로질러서 딱 한 번 강을 건너가 보니 두려움은 금세 달아났다. 아무도 딛지 않은 눈 위에 홀로 발자국을 내면서 얼음장 위에서 미끄럼을 타기도 했고, 강 건너 직벽으로 다가서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형상의 육각형 바위 주상절리를 만져보기도 했다. 거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강의 한복판에 들어섰을 때, 강 밖에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 현무암 기암절벽 아래 강 위를 걷다 한탄강 얼음 트레킹에서 최고의 경관이 펼쳐지는 곳은 깎아지른 석벽을 끼고 있는 송대소 구간이다. 송대소란 개성 송도사람 삼형제가 와서 둘이 이무기에 물려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이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깃든 한탄강의 깊은 소(沼).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현무암 기암절벽에는 결대로 떨어져나간 주상절리들이 촘촘하다. 겨울철에 보여주는 직벽의 뼈대는 가히 장관이다. 반대편 직벽에는 바위틈으로 흘러내린 물이 샹들리에처럼 얼어붙어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깊은 곳의 수심이 무려 20m는 넘는다지만, 단단하게 얼어붙은 송대소 협곡을 걷노라면 안온한 느낌마저 든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송대소를 지나면 군데군데 급류로 얼지 않은 소들이 드러나 있는데, 위험구간에서는 줄을 매어두고 강변으로 우회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얼음판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길잡이 삼아 따라가도 안전에 문제가 없긴 하지만, 위험구간을 막은 끈과 얼음판 위에 박아둔 철심 몇 개로 적잖이 안심이 된다. # 다리 아래 물길 따라 흐르는 뜨거운 숨결 송대소를 지나면서부터 승일교까지는 강폭이 제법 넓어진다. 송대소 부근에서는 협곡에 눈길을 빼앗겼다면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눈 쌓인 강변과 얼지 않은 작은 소의 물빛을 즐기는 시간이다. 간혹 미끄러운 얼음판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하겠지만, 굳이 얼음판 위에서 아이젠을 챙겨 신을 필요는 없다. 빙판에 올라서보면 알겠지만 아이젠보다는 균형을 잡거나 디딜 얼음판을 두드려보는 데는 등산용 스틱이 훨씬 더 유용하다. 얼지 않은 물길과 소를 피해 강변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언 강 위로 올라서길 대여섯 번쯤 하다보면 곧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인 승일교 아래에 당도한다. 얼음 트레킹이 아니라고 해도 철원을 찾았다면 승일교는 따로 들러볼 만하다. 경관이 그다지 빼어나진 않지만 다리 하나에 새겨져 있는 의미 때문이다. 승일교는 6·25를 전후해 남북이 밀고 밀리면서 남측이 착공하고, 북측이 공사를 이어받았으며 미군 공병대가 완공하면서 아이러니한 ‘남북 합작’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 그래서 승일교란 이름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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