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만에 부활한 ‘허임 보사법’ 호흡기 질환·이명이 말끔~
갑산한의원 이상곤 박사의 천지인(天地人) 침법
조선시대 최고의 한의사라 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린다. 하지만 허준조차 인정한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鍼醫)는 따로 있다. 허임(1570~1647년 추정)이 바로 그다. 허임은 선조와 광해군 때 활약한 침의로 공식적인 직함은 종기를 치료하는 ‘치종교수’였다. ‘조선왕조실록’(선조 35년 6월12일)은 그에 대해 “의관 허임은 모든 침을 잘 놓는다. 일세를 울리는 사람으로 고향에 물러가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선조 37년 9월23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허준이 허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침을 잘 놓지 못합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어의였던 허준의 나이 58세, 허임은 34세. 허임의 침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침법을 ‘침구경험방’과 ‘동의문견방’에 남겨놓았다. 지금의 백과사전들도 ‘조선에서 으뜸가는 침의’로 인정하는 그의 ‘침법’은 그러나 경전과 혈(穴)자리, 오행(五行)이라는 유교적, 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의 풍토에서 대를 잇지 못한 채 사장됐다. 400년이 흐른 지금 허임의 침법인 ‘허임 보사법(補瀉法)’을 부활시킨 사람이 있다. 서울 강남의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박사가 그 주인공. 그는 경북 경주 안강에서 갑산한의원을 개업한 지 10여 년 만에 20만명에 이르는 전국의 콧병, 귓병 환자를 침과 한방으로 다스린 명성을 인정받아 대구한의대 교수로 스카우트된 특이한 이력의 한의사다. 양방이나 한방이나 개원가에만 있던 의사가 교수로 임명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박사는 교수 시절 알레르기성 비염에 관한 양·한방 퓨전 연구 프로젝트로 보건복지부로부터 14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은 경력도 있다. 갑산한의원은 서울 강남은 물론 경주 안강과 부산에도 있다. 이 박사가 주로 치료한 분야는 호흡기 질환과 이명을 포함한 귓병인데, 그가 구사하는 침법이 바로 허임의 보사법이다. “침구학파에는 경전을 연구하거나 경혈을 연구하고 정리한 분, 어떤 경혈을 선택해 치료할 것인지를 연구한 분, 침을 중시한 분, 뜸을 중시한 분, 침을 찌르고 피를 뽑는 자락방혈파였던 분 등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허임은 침을 놓는 기법을 중시한 수법파에 속합니다. 사실 그의 ‘침구경험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보사법이라고 하는 그의 침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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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가 허임 보사법 복원에 나선 이유는 그 이전까지 자신이 쓰던 침법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20만명 이상의 이비인후과 환자를 진료했지만, 자신의 침이 과연 치료에 효과적인지에 의문이 들었던 그는 10년 전 미국 뉴욕에 사는 지인에게서 “중국인 한의사가 침 한 방으로 알레르기 비염을 1년 동안 잠재운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일본에서도 1725년과 1778년 두 번이나 간행됐고,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으므로 중국 의사가 허임의 침법을 구사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허임의 보사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허임의 보사법은, 예를 들어 5푼 깊이로 침을 찌른다면 침을 먼저 2푼 찌르고 멈췄다 다시 2푼 찌르고 또 잠시 쉬다 1푼 찌르는 방식입니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한 뒤 침을 빼고 손가락으로 침구멍을 막습니다. 그럼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몸의 기가 보(補·가득 참)됩니다. 사법(瀉法)은 이와 반대로 5푼 깊이로 찌른 다음 2푼 빼고 다시 2푼 빼고 나머지를 들어올려 침구멍을 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기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박사는 허임의 보사법을 ‘천지인(天地人) 침법’이라 부르는데, 깊이에 따라 상·중·하로 찌르고 빼는 과정이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서 기를 얻고 빼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침법 위력 진료실 북새통 “천지인은 우리의 고유 정서입니다. 한글도 천지인에 의해 만들어졌고, ‘동의보감’의 핵심 정신인 정기신(精氣神)도 천지인을 의미하며, 가을에 감 한 알 남기는 것도 하늘로 보내기 위한 천지인의 섭리에서 비롯됐습니다. 심지어 결혼도 초행 재행 삼행을 하지 않습니까. 씨름도 삼세판이 기본이고요. 본래 침은 중국의 ‘황제내경’에도 동방에서 왔다고 쓰여 있습니다. 중국 침법의 원류가 우리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박사는 천지인 침법이 호흡기 질환, 알레르기 질환 같은 면역질환에 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침을 통해 기를 넣고 빼는 과정, 즉 보사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폐의 영역이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인 비염, 축농증, 기침, 천식 등의 치료에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또 사법을 쓰면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듯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는 귓속 유모세포의 비정상적 흔들림이 진정되면서 귀울림 현상, 즉 이명이 치료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천지인 침법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단 1회의 침 치료로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등 그의 진료실은 침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장간에서 풀무를 넣었다 뺐다 하는 과정에서 불길이 타오르듯, 천지인 침법도 몸 내부의 기를 침으로 풀무처럼 조작해 몸에 불길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겁니다. 실제 침을 놓으면 환자가 몸에 열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바로 느끼게 됩니다. 알레르기나 감기도 온도 조절의 실패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기에 걸리다’라는 말을 영어로 ‘캐치 어 콜드(catch a cold)’라 하고, 우리말로는 상한(傷寒·차가운 기운에 의해 상하다)이라고 합니다.” 갑산한의원에는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온 환자들도 많은데,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오모(25) 씨는 “심각한 이명 증상 때문에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침을 단 1회 맞고 이명 증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환자 이모(34) 씨는 “침을 맞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이명 증상이 서서히 사라진다”고 했다. 이 박사는 “침법 치료의 횟수는 증상에 따라,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급성인 경우는 2~3회로도 호전되지만 만성은 5~7회 치료해야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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