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과 기다림
필자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일 년에도 몇 차례씩 전국의 산을 찾곤 했다.
봄의 북한산은 마음을 풋풋하게 돋구어 주곤 한다.
여름의 치악산은 청량감, 그 자체이다.
가을의 설악산은 그대로 불붙고 있었다.
겨울의 지리산은 내 영혼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계룡산, 내장산, 주왕산, 속리산 등 내 마음을 온통 빼앗아 갔던 전국 명산의 준봉(峻峰)과 계곡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렇듯 산을 좋아하다 보니 갖가지 경험도 많이 겪게 되었다.
갑자기 나빠진 기후 때문에 조난의 위험도 여러 번 겪었고 산속에서 혼자 야영하다 흉폭한 맹수를 만났던 아찔한 고비도 여러차례 있었다. 악천후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우쭐한 마음에 이리저리 산속을 헤매다 길을 잃어 엄청난 고생을 한 적도 있다.
산은 나에게 엄청난 가르침을 주었다.
산에서 만난 대덕 은사님들로부터, 야영 천막을 찾아온 많은 영혼들에게서도 계속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만 산이라는 자연 속에서 얻은 가르침도 그에 못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속에서 악천후를 만나 길을 잃게 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폭우가 쏟아지고 사위가 컴컴해지는 순간이면 공교롭게도 식량이며 장비가 불충분할 때이다.
때문에 더 당황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기력을 소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욱 공포가 밀려오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다치게 되면서 몸의 온기를 잃게 되고 급기야는 익숙하다고 자부했던 산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현명한 행동은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떠나갈 듯 한 폭우와 눈보라라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는 법이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노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파란 하늘이, 높은 나무, 흰바위 위로 떠오르기 마련이다.
악천후가 밤에 찾아왔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심한 폭풍우라도 산 위의 나무와 바위를 송두리째 앗아가지는 못한다. 떠내려가지 않을 만큼의 공간 속에서 기다려 주면 밝은 날은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인간은 일부러 기력을 소진하지 않고 차분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닷새는 거뜬히 버티고, 물과 소금만 있으면 보름 이상도 버틸 수 있다. 닷새나 계속되는 폭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순간이 닥쳐오면 더 기승을 부리고 오기를 부려 더욱 일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가만히 참고 기다리면 저절로 일이 풀려 매사가 순조롭게 될 수도 있으련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길길이 화를 내다 보면 일은 더 복잡하게 꼬인다.
인생은 어차피 기다림과 만남의 연속이다.
어떤 만남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그 만남에는 적당한 기다림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산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다.
조금 늦게 찾아갔다고 그것 때문에 화를 내는 법은 없다. 다만 산속에서 우리가 행하는 나쁜 행동을 불쾌하게 여길 뿐이다.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서구 등반인 에드몬드 히라리경이 한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본다.
“거기 산이 있어 나는 올랐을 뿐이다.”
한 가지(一枝) 위의 산새
우리는 흔히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실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불교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구산 방장 스님이 주장자를 법상에 내려치며 일갈하신 말씀이 있다.
“견(見) 하지 말고 관(觀) 하라.”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읽으라는 말씀이다.
인생의 천만사(千萬事)는
봄눈처럼 허무한 것이나
산새는 한마음으로 살기에
나무 한 가지만 있어도 마음 편하다
초의 선사가 자신의 토굴을 일지암(一枝庵)으로 명명하면서 읊조린 시구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이 손금 안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다. 운세가 얼굴의 상(相) 안에 들어 있는 줄 착각하고 있다. 자신의 권세가 사주 안에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손금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행복은 거기서 나오지 않는다. 잘생긴 관상을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봐 아무리 거울 속에 남기려 한들 몸을 움직이면 거울 속의 그 얼굴은 사라질 뿐이다.
행복과 운세는 눈으로 확인되는 잘빠진 관상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복잡하기만 한 사주 팔자 짚어보는 손가락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것들을 통해 인간을 알고 세상사의 도(道)와 술(術)을 마음으로 읽는 여유 속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그 여유있는 마음,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이 세상 모든 행복을 한 가슴에, 한 손에 쥔 도인의 마음인 것이다.
온실 속의 난초보다 산야의 잡초가 되리
정법(正法)은 이미 여여(如如)하게 그 자리에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취직을 하지 못해 애쓴 청년의 이야기와 같을지도 모른다.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취직을 못해 안달을 하다가 어떤 사람의 권유로 그가 하는 일을 따라 콩나물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는 콩나물 단지들을 손수레에 싣고 그 사람을 따라 장사에 나섰지만 장사가 처음인 데다가 파는 방법을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그는 어디를 가야 잘 팔리는지 그리고 파는 요령도 몰랐다. 그래서 그 청년은 오랫동안 콩나물 장사를 한 사람을 따라 그가 가는 곳을 뒤쫓아 다니며 그가 ‘콩나물 사려’하고 외치면 그 청년은 뒤에서 ‘나도, 나도’하면서 골목골목을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다. 내가 하는 말이나 진여(眞如)에 대한 얘기들도 이미 부처님과 옛 조사(祖師)와 선사(禪師)들이며 많은 성인(聖人)들이 이미 그 줄거리를 밝혀 놓은 것을 콩나물 장사하는 청년처럼 ‘나도, 나도’하며 뒤따라가는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콩나물과 채소 따위의 생활 용품도 옛날같이 지게나 손수레를 갖고 다니며 파는 것이 아니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확성기로 물건을 사라고 외치듯이 그 근본은 변함이 없으나 파는 방법이나 내용물은 시대의 발전에 따라 달라야 한다.
똑같은 진리의 가르침이라도 옛과 오늘날의 방편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불교는 천육백 년의 오랜 전통을 지켜왔고 산속에서 고고하게 수도하여 정진 가운데 깨달음을 얻고자 각고(刻苦) 면고(勉勵)하고 있다. 심산 속에서 옛 법도를 지키고 오도(悟道)를 위해 결가부좌로 선(禪)에 몰두하는 많은 옛 사찰의 눈 푸른 납자(衲子)들은 그로서 또한 커다란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세파에 시달리며 현실의 삶에 곤비(困憊)한 저자의 사람들을 위해서는 우리와 같이 생활 속의 정법을 추구하는 자들도 있어야 한다.
북적대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오염된 수돗물을 마시며 나날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신선한 광천수를 비싼 돈을 주고 사 마시고 있다.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이 80%이고 광천수를 사 먹는 사람이 20%라고 가정하더라도 과연 광천수를 마시는 그 사람들은 어떤 오염도 없이 장수하겠는가?
자연 식품을 주문 생산하여 먹고 사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지구촌 전체가 갖가지 나쁜 가스와 공장 폐수, 비료, 농약 따위로 복합 오염되어 있는 이 시대에 정녕 그들만은 아무런 공해 없는 물과 식품들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런 것들만을 상용(常用)함으로써 오히려 여행이나 직장 일 등으로 피치 못하게 보통의 수돗물과 음식을 먹었을 때 잘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배탈과 알레르기성 반응 따위로 더욱 건강이 악화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광천수와 무공해 식품들만 먹음으로써 몸 속에 공해에 대한 그 어떤 면역성도 예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병할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삼조 승찬 선자(三祖 僧璨 禪師)의 『신심명(信心銘)』에도 있지 않는가.
완전한 도(道) 자체에 어려움이 없거니와,
다만 분별과 선택을 피해야만 한다.
우리가 애증(愛憎)에서 벗어날 때, ‘도’는 밝은 대낮처럼 뚜렷하고 환하니라.
분별심을 내지 마시오. 불과 식품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으나 어찌 수돗물은 오염된 물이고 광천수만 신선한 물이겠는가?
물론 승찬 선사의 신심명에서 가르치는 것이 수돗물과 광천수의 차이와 같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간택하고 구별하는 어지러운 산란심(散亂心)으로 일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우리 후암회 사람들은 온실 속의 아름다운 난초보다도 차라리 산야에 핀 패랭이와 질경이 같은 잡초의 강인함과 신선한 야생의 꽃을 사랑하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의 작은 기쁨과 아픔을 소중히 여긴다.
내가 살펴보건대 교회의 목사는 기독교적인 유머와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서구의 철학과 불가(佛家)의 법문을 들어보면 서양 철학은 논리적 실증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불가의 승려들은 오성(悟性)의 세계에 얽매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현대 기술 문명은 사람들을 전체적인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기계의 부속품이나 전문가라는 면모에서 부분적으로 대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성과 감성 또는 오성의 어떤 일면에 치중된 도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회원각자의 안정된 정서를 위해 심성에 공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전인(全人)으로 파악한다.
옛날 인도의 맹인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제각기 기둥 같다느니 벽 같다느니 하면서 각각 일면적인 정의만을 내렸다는 고사가 있듯이, 사람들은 대개 어떤 부분적인 면에만 매달려 진리의 체성(體性), 또는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내게 얘기 했다. 차를 몰다가 사고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것은 차를 운전하면서 순간의 생각이 차와 분리되어 엉뚱한 망상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운전을 할 때는 차와 일체가 되도록 한다.
차를 모는 나와 자동차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차와 운전하는 사람은 차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두 개의 별다른 개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차와 운전 기사는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염불할 때마다 마지막에 가서 자타일시성불도(자타일시성불도) 하듯이 차와 인간이 하나가 될 때 결코 어떤 사고도 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우정
만해 선사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라고 하셨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나를 기르고 있지 않는 것은 없다.
부모야 말할 것도 없이 나에게 육신과 생명을 주셨고, 가족은 나에게 생활을 영위하게 하면서 나를 기르고 있다. 또 주위의 사물들도 어떠한 형태나, 어떠한 방식으로도 나를 기르고 있다.
그것이 현상적으로 화를 내게 하고 때론 섭섭하게 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 나의 정신과 육신을 키우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때문에 모든 것이 다 나의 님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냉정히 말해서 내 주위,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은 모두 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현상적으로 좋은 친구, 유익한 친구, 즐거운 친구, 그리고 나쁜 친구, 보기 싫은 친구, 얄미운 친구로 구분지어져 나뉘어지겠지만…….
평생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한 사람만 사귈 수 있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에서도 진정으로 도반(道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수도의 길은 반쯤 성공한 길이라고 말한다.
좋은 도반은 서로 힘을 주면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등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생활인에게 있어서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바로 수도인 셈이다. 이 생활의 수도에서 필요한 도반이 바로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평생의 지기(知己)가 아닐까?
‘평생의 지기’라는 말을 하면 필자에게는 생각나는 친구가 한 명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느 유명호텔 카지노에서 20년 가까이 말단 딜러 노릇을 하고 있다.
명색이 불법을 전하는 법사라는 위인의 도반이라고 내 세우기에는 어딘지 어색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든,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 친구는 나에게 있어 그 어떤 도반보다도 힘을 주고 위안을 주는 인물이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뿌듯하고 든든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곤 한다. 나와는 고교 동창인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부터도 공부는 나보다 못했지만 때론 그 어떤 선생님보다 나에게 세상의 이치며 인간이 사는 모습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곤 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사정에 의해 대학 진학을 못하고 군에 입대한 그 친구는 제대 후 경찰 고위직에 있던 친척 아저씨가 힘을 써줘 호텔 카지노에 어렵사리 취직할 수 있었다.
그 직장은 그의 품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검은 돈, 눈먼 돈, 이상하게 굴러 들어온 돈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열심히 일했다. 1년쯤 지났을 때 취직하는 데에 힘을 써준 경찰 인사가 그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다.
그곳에 굴러다니는 돈의 정체, 내국인들의 출입상황, 공공연한 큰 손의 정체, 말하자면 직장의 비밀을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직장인데 그 직장을 배신하라고 한다면 저는 아저씨 말에 따르지 않고 사표를 내겠어요.”
그러자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잘못했네, 없던 일로 해두세. 자네의 그 정신 높이 삼세.”
그 친구는 그곳에 입사한지 20년이 다 되어가건만 아직도 플로어에서 카드를 돌리는 말단 노릇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정직하기 때문에 그 사람 아니면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가 새파란 30대 과장들에게 굽실대야 하는 광경은 정말 가슴 아프다. 정직한 게 병이 되는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언제나 맑고 넓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꿀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에게 대부분 예우하지만 그 녀석은 그렇지 않다. 그 주제(?)에 만나면 노상 나를 걱정해 주곤 한다.
“야, 길진아. 난 너만 보면 걱정이야. 어째 위태위태하거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준다고 설치던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가 물에 빠져 죽는 게 세상 이치거든. 너도 영혼 만난다는 법사 노릇은 부업으로 하고 목수나 전기 기술자라도 되어라. 응? 부탁이다.”
그 어떤 관포지교(管鮑之交)가 부럽지 않은 그 친구의 각별한 우정에 나는 힘을 얻는다.
최고의 진수 성찬은 바로 시장기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다.
배가 고프면 꼭 진수 성찬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맛있는 법이다. 오히려 배가 부를 때 진수 성찬이 부담스럽고 역겨운 것이 되곤 한다.
필자에게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최고의 진수 성찬이 있다.
20여 년 전 한참 혈기 방자할 무렵 지리산 일대를 혼자 쏘다닌 적이 있었다.
구례 화엄사 뒤쪽의 등반로를 오르기 시작해 임걸령을 거쳐 천왕봉을 오른 뒤 뱀사골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고 산행에 나섰었다.
쉬엄쉬엄 이곳저곳 누비며 뱀사골에 당도했을 무렵 마침 야영 식량도 다 떨어지고 기후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친 김에 싸리골로 해서 연곡사가 있는 곳까지 한나절에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고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며칠간의 부실한 음식이며 산행에 지쳤던지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음식이 떨어진 싹을 봐서 그랬는지 왜 또 그렇게 시장기가 몰려오는지 몰랐다. 눈에 보이는 먹을 만한 산 열매며 하다 못 해 솔잎 새순까지 씹었지만 시장기는 더 몰려올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한달음에 갈 수 있다고 장담했던 뱀사골에서 연곡사까지의 거리가 그처럼 긴 줄은 처음 알았다.
아침 일찍 내려오기 시작했는데도 연곡사에 당도한 시각은 그곳 점심 공양이 진작에 끝난 오후 2시 무렵이었다.
하긴 예전에 꽤 컸었다는 연곡사는 그 무렵 무던히도 쇠락해 있어 주지를 맡은 스님과 다른 학승 한 분, 그리고 공양주 보살, 이렇게 세 사람의 대중만이 기거하는 작은 암자였으니 대중 공양 시간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부처님께 인사를 올리는 것은 뒷전이었고 다짜고짜 정지간으로 찾아 들어가 공양주 보살께 찬밥이라도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후덕하게 생긴 중년의 보살은 딱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마침 밥이 다 떨어졌다는 것이다.
새밥을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엊저녁 누룽지가 조금 있기는 한데 끓여줄까요 하고 묻는 얼굴은 바로 비로자나 보살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채 끓기도 전에 한 바가지 퍼담아 준 누룽지와 오이 장아찌는 이 세상 어떤 진수 성찬보다 더 맛있었다.
부뚜막에 앉아 콧물 땀물을 뚝뚝 떨구며 한 방울의 국물, 한 가루의 고춧가루까지 남기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내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는 보살의 표정은 이번엔 미륵 보살의 모습이었다.
이 세상 최고의 공양을 대접받고 필자는 그 답례로 인근을 뒤져 잔솔가지며 마른 풀 등 불쏘시개 거리를 한 지게 해다가 드렸다.
그날 저녁도 그곳에서 먹었는데 아욱 된장국이 무척 맛있어 고봉사발로 두 그릇을 먹었지만 그 맛은 아까의 누룽지만 못했다는 기억이 난다.
그 뒤 필자는 눌은 밥과 오이 장아찌만 보면 그때의 생각이 나 혀를 다시곤 하는데 아무래도 그때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그때만큼 절실하게 배가 고프고, 지쳐 있고, 음식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영혼을 찾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절실하고 진실되게 정성을 다해 영혼을 찾을 때에 비로소 영혼도 진실되게 응답하는 법이다.
필자가 매주말 집전하는 구명시식도 마찬가지이다.
시식을 올리는 제주의 정성이 얼마나 절절한가에 따라 영혼의 응답이며 나타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된다.
어떤 제주는 시주를 많이 했으니 구명시식이 잘될 것이라고 믿기도 하며 어떤 제주는 식구 동원을 많이 했으니 조상 영혼의 감응이 높을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타나는 모습과 결과는 결코 시주의 다과(多寡)나 참석한 자손들의 숫자에 좌우되지 않는다.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로 아주 작은 돈을 불단에 시주했어도 정성이 담겨 있으며, 타종교를 가진 가족들의 반대 때문에 몰래 자신 혼자 참석했어도 간절한 효심과 절절한 염원을 지니고 있으면 조상의 영혼은 크게 감응하는 것이다.
기도, 치성, 구명시식은 시장서 물건을 사는 행위와는 달라야 한다. 상처가 완전히 곪았을 때 손만 대면 툭 터지듯 간절하고 절실한 그 마음이 바로 감응의 마음자리인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하는 자세, 바로 그 자세가 구도의 자세이며 득도의 자세가 아닐까.
기다리는 주전자와 향토 음식
미국 속담에 ‘쳐다보고 있는 주전자는 생전 끓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조급하게 서두르고 초조하게 생각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이국(異國)의 이민 생활이야말로, 조급하고 초조한 생활의 연속이다. 이곳 조국에 와서 생각해 보니 더욱 그렇다.
조국은 우리들 삶의 원천이다. 모든 인간은 고향의 정취와 정기를 받고 살아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아플 때 향토 음식을 먹게 되면 건강을 되찾곤 하는 현상도 이것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사람의 내면에 흐르는 정기에는 향토의 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또 꼭 신체적으로 아프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수시로 자기 고향의 향토 음식을 찾게 마련이다. 그 음식의 희소성이나 가격, 영양가를 떠나 자신의 정서와 정기가 그것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향토 음식은 신김치를 큼직하게 죽죽 찢어 넣은 김치찌개이다. 아무리 몸이 아프고 입맛이 없다가도 그것만 보면 침이 넘어가면서 밥 두 그릇을 거뜬히 비우곤 한다. 다른 매운 것을 먹게 도면 꼭 탈이 나는데 그것만은 그렇지 않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그래서 김치찌개는 나의 단방(單方) 비상약이기도 한다.
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고국의 땅을 밟게 되면 그 흙에서 나오는 정기가 자신의 지치고 피로했던 심신을 활기있게 해준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공해에 찌들고 복잡해진 땅이지만 조국의 땅에는 우리의 정기가 맥맥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조국을 찾았을 때 나의 기(氣)를 충전하곤 한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들이지만 조국 땅에서 지낸 며칠은 이국 땅에서 몇 년을 활기있게 보낼 수 있는 정기를 심어 주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처럼 자주 고국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행운을 주는 인연,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는 인연, 그 인연들의 숨겨진 뜻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좋은 얘기들을 교포들에게 들려줘 주위와 후대에 보답하라는 준엄한 인연의 역사라는 것을 …….
사람이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더욱이 그것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 큰 다행이 아닐까?
물론 아무리 좋아하는 향토 음식일지라도 삼시 세끼 줄창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때론 다소 싫증도 나고 짜증도 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짜증과 권태를 나름의 여유로 극복하는 지혜를 우리는 지녀야 한다.
우리들 모두는 지혜와 여유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옆에는 항상 조국과 고향이 있다.
정진하라.
그러나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인생은 앞으로도 무척 많이 남아 있다. 팔순을 넘긴 노인이라 할지라도, 이팔청춘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년 삼백예순 날의 길이가 사람마다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가 여삼추인 사람이 있고 십 년이 한나절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면 고향을 생각하라.
방과 후 둑방길을 무슨 까닭이었는지 혼자 쓸쓸히 걸어 귀가할 때 가을 들판을 날아다니던 고추잠자리, 그 고추잠자리를 조금은 처량한 마음으로 쳐다보던 그 시절, 내가 이만큼 성장해 있으리라는 것을 그때 상상이나 했겠는가.
두엄 내음 아련히 풍기는 어스름 저녁 무렵에 동구 안 동무네 집 울안에서 피어나는 구수한 밥 냄새, 우린 그때 우리가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다.
우리에겐 고향이 있다.
물론 고향의 두엄 냄새, 밥 짓는 냄새는 그 시절의 그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가슴속에 남아 있음으로 해서 영원히 같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다려 주는 곳이 있는 사람,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 사람은 결코 떨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힘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조금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이 말은 인연의 굴레 속에서 주변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중생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말이다.
석가 세존은 탄생 직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란 말씀을 일갈하셨다고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 세상에 혼자 있는 내가 가장 귀하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오늘 인연의 굴레 때문에 예기치 않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무수히 목도하고 있다.
한때는 남의 부러움을 샀던 부(富) 때문에 고초를 겪고 망신을 당하는 사람, 자식이라는 끊지 못할 인연때문에 자식을 위해 적법하지 않은 행동을 해야 했기에 엄청난 과보(果報)를 받고 있는 부모들.
세속의부와 명예, 권력이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복이 굴러 화가 되고, 화가 불러 복이 된다는 인연의 진리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남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 사람은 자신의 눈에서 눈물을 쏟게 된다는 것도 아울러 실감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선인선과(善因善果)의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그 보답을 받게 되고 악한 일은 그대로 과보로 받게 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악업이 자신의 대에서 소멸되지 못하면 이는 자신의 다음 세대인 자식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자신이 행한 나쁜 행동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자식들이 죄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하려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근기가 낮은 우리 중생들은 ‘설마’ ‘이 정도쯤이야’ ‘이까짓 정도야, 뭐’ ‘남들도 다 그러는데’하면서 악업을 짓곤 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 인연의 소치라고 돌려 버리면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철저히 혼자인 사람의 얘기를 하게 된다.
세상의 악업에는 모두 핑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 등 주위 친지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기 마련이다.
또 그렇게 해야만 얼마간이라도 떳떳해질 수 있고 잘못 됐을 때 주위의 눈총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주위를 핑계로 댈 수 없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언제까지라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섣부른 욕심을 낼 까닭이 없다.
주위에 대고 과시하며 떠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철저히 혼자인 사람이 이기적이며 반사회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여기서 철저히 혼자인 사람이라는 얘기는 인연의 진리를 확연하게 깨닫고 선인선과의 이치를 관조하고 있는 우리들 스스로의 불성(佛性)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청정하기 그지없고 귀하기 짝이 없는 우리 안의불성을 발현하는 일은 오로지 자신만의일이다. 누가 해줄 수 있는 것도 또 그렇다고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철저히 혼자라고 해서 주변을 생각지 않는 독선과 이기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철저한 자기 수행으로 자기 안의 불성을 발현하려 하는 사람은 이미 전체와 하나가 되어 있다.
누구나 지닌 깨끗함, 청정함, 지고함, 착함 또는 아름다움 등 이 세상 모든 좋은 것을 포괄하고 있는 자기 안의 진정한 자기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모두와 하나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남도 똑같이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철저히 혼자인 사람이 결코 외롭지 않다는 얘기의 진면목인 것이다.
때문에 한 생각,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 그 생각을 가졌을 때 우리는 이미 혼자가 아니다.
끝없는 영원한 출가(出家)
1910년 10월 27일,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북국의 추운 날이었다.
이날 러시아 북동부의 한 소읍인 아스나야 폴라나가에서는 82세나 된 노인이 새 인생을 시작하겠다면서 낡은 외투와 때가 낀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바로 레오 니콜라비치 톨스토이, 그였다.
그는 당시 이미 『전쟁과 평화』, 『부활』 등 세기적인 작품을 내놓아 세계의 영광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거목으로 추앙받고 있는 터였다. 일생을 인생의 정의와 진리를 추구해 오던 그가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영원한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출가의 정신이었다.
현실의 물질적 풍요에 안주하지 않고 정신의 사랑,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의 자세, 그것이었다.
그의 출가 정신은 방랑 초입 그의 딸인 알렉산드라(애칠 사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 영원한 생명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범한 진리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늘 사람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헤매고 있다.
내가 지금 떠나려는 길 역시 진리를 찾으려는 길이다.
지난 날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정처없는 발길을 옮긴다는 것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을 기어이 새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로서는 더 이상 값진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 가슴속에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은 인도와 정의 진리와 사랑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문학 작품 속에 엮어 넣어 독자들을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것이 내 인생의 길잡이였다.
내가 쓴 작품 중에 가장 부피가 많은 『전쟁과 평화』는 5년간에 걸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필한 것이다.
그것 역시 완성될 때까지는 수많은 정신적 고통이 있었으나 다만 세상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겠다는 사명감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귀여운 내 딸 사샤
슬퍼하지 말라. 너의 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그러나 내가 이렇게 떠나야만 내가 쓴 2백여 편의 작품들이 비로소 참다운 가치를 나타낼 것으로 믿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란다.
어차피 영원한 방랑의 길을 떠난 바에야 가다가 산마루에서라도 죽게 된다면 그게 오히려 참다운 죽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지금까지 남에게 원망을 살 일이라면 그것이 출세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한결같이 피해 왔다. 이 세상에는 남을 모함하고 빈정대며, 인격을 무시하고 저 혼자만 잘난 듯 날뛰는 인간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인격을 빛낼 마음이 있거든 반드시 어진 일을 행하고자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도의 정의에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는 일은 하지 말도록 힘써야 하는 것이다.
너는 내가 집에 있을 때 투르게네프가 말년에 쓴 산문시집을 손에 들고 낭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겠지. 거기에는 인생의 불을 밝혀 주며 삶의 뜻을 깨닫게 하는 구절들이 많이 들어 있다.
네가 그것을 읽어본다면 내가 방랑의 길을 떠나는 참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믿는다.
인간 정신의 발전이란 오직 진실하고 풍부한 양서를 읽어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다. 내 서재에는 문학, 철학, 종교, 예술, 자연 과학에 관한 책들이 5천 권쯤 있다.
나는 내 책장에 있는 책들을 어느 것이나 열 번 이상 읽었다. 그중에 네가 읽어봐야 할 책들에 별표를 해두었는데 3백 권쯤 된다. 순서에 상관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골라서 읽으며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리라 믿는다.
사람으로 태어나 무슨 일에든 뜻 깊은 성과를 거두려면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좋은 책을 구해서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톨스토이, 그는 육체를 믿지 않고 정신을 믿었다.
그는 마지막 방랑의 객사에서 숨을 거둘 때,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
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그는 갔지만 그의 정신, 끝없는 출가의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끝없는 출가는 어떤 것일까?
달 영혼 그리고 사랑
많은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사막이 아무 쓸모없는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태양 빛이 강렬한 사막이 별로 인간에게 쓸모가 없는 땅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라고 샘물이 솟아야만 영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길 때 과학자들은 사막을 그러게 단순하게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사막은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가운 기후를 상대적으로 반복하므로써 구름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막은 곧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인류에게 귀중한 비를 내리는 은혜의 땅으로 톡톡히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도 갯벌이 펼쳐져 있다. 수억 년 동안 다지고 다져서 만들어진 엄청난 넓이의 갯벌이 있다.
최근 들어 너도 나도 앞 다퉈서 이러한 갯벌을 농토 등으로 바꾸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바다를 막고 갯벌을 흙으로 덮어 다진 땅을 만들어야만 땅덩어리가 넓어지고, 무엇인가 한 건 했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결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자연의 섭리는 우리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 쉽게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우리가 굳이 덮어 버리고자 하는 서해안의 갯벌은 곧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천연의 정화조 역할을 하고 있다.
동해안에는 갯벌이 없다. 서해안의 갯벌속에는 서해안에서 생긴 각종 유기물들이 엉켜 붙어 서로를 분해하고 해독하는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바로 우리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정화기인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해 자연이 우리에게 준 가장 은혜로운 보물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할 수만 있다면 몽땅 덮어 버리자’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식과 판단의 척도에 의해서 자연과 역사를 단정하고 파괴하고 꾸미는 일을 수없이 저질러 왔다.
나는 인류가 과학이라는 작은 지식을 이용하여 자연과 역사의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를 계속할 대, 그 대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것이며, 이러한 악의 결과를 우리들의 아들딸들이 모두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하고 싶다.
나는 영혼의 세계를 공부하며 사는 사람이다. 내 생애의절반 이상을 이 분야에 몰두하면서 살아왔다. 그 동안 많은 경험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진기한 체험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그러나 요새 들어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정말 아주 새로운 느낌이다.
그것은 바로 현생을 살고 있는 인간의 입장에서 전후생을 알며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지극히 불합리하고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생을 알고 후생을 아는 능력, 곧 보통 사람 이상의 영능력은 결코 인간이 쉽게 쓰고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노출시킨다면 성현들이나 조사, 선사(先師)들처럼 도에 통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 소란하고 난폭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전생의 원수를 갚겠다고 적을 찾아다닐 것이며 이 때문에 선한 인연으로 악연을 갚을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후생을 알면 세상은 더욱 가관이 될 것이다. 언제 사고를 당한다거나 또는 병을 얻어 죽을 것이라고 하는 후생을 보게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한강 철교로 향할 것이고 자신에게 해를 입힐 사람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한마디로 공상 과학소설과 같은 세상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영능력도 사실은 이러한 비정상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깊은 두려움을 지금 나는 느끼고 있다.
커다란 자연의 질서와 위대한 절대자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바로 그거이다.
만약 인간이 영혼의 세계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하고 그들을 불러내어 진무(鎭撫)하고 조작(操作)하는 것이 천기를 거스르는 것이라면, 나 또한 천혜의 정화조인 서해안의 갯벌을 덮어 버리는 큰 잘못을 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수십 년간에 걸쳐 영혼에 대한 공부를 해오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서야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모르지만 번뜩 느끼게 되었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악령도 있어야 하고 그리고 선령도 있어야 한다.
세상에는 선한 인연, 악한 인연이 서로서로 뭉뚱그려지면서 하나의 큰 꽃처럼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내가 수십 년간 영혼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온갖 인연들의 고리를 따라 움직이는 영혼들의 세계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영혼의 선악 유무에 대해 단죄하지 않는다. 영혼의 세계는 결코 어떤 인간도 선악 분별을 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정의와 질서로 움직이고 있다. 구명시식은 그러한 영혼의세계가 가지고 있는 정의와 질서를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쉽게 풀어 현실화하는 작업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영혼의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그 영혼의 세계가 주는 메시지를 받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선한 인연으로 이것을 정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의 세계는 진정으로 위대하다.
그것은 곧 커다란 절대 의지가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완벽한 질서를 통해 절대자는 우리의 현실을 지극히 정의롭게 조화를 유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영가
내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있는 사형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많은 영가들과 눈이 마주쳤던 나는 그들의 한 섞인 목소리와 피맺힌 절규를 듣느라 앞에서 안내하는 분의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 곳을 들러 마침내 사형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은 그야말로 영가천지였다. 벌써 수십 년이 흘렀건만 영가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비통하게 죽은 사형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형장의 공기는 그야말로 스산했다. 천장에 매달린 밧줄의 둥근 매듭엔 사형수들의 목에서 흘러나온 기름때가 번드르르 묻어 있어 그때의 상황을 가히 짐작케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밑에 내려와 주십시오~ 밑에 내려와 주십시오!”
영가들의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체하지 않고 밑으로 향했다. 그렇게 내려간 사형장의 지하. 사형수들이 죽고 난 후 시신이 떨어지는 그 자리엔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영가들이 목을 감싸 쥐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리 영매라지만 한꺼번에 수백 명의 영가들과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당황스러워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쓰윽 닦아내는데, “법사님, 정말 오랜만에 뵙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저 조 군입니다. 2년 전에 법사님께서 구명시식을 해주셨던…….”
그랬다. 2년 전, 그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아들이 마음에 걸린다며 구명시식을 청하러 왔더랬다. 바로 그 문제의 아들을 여기서 또 다시 만날 줄이다.
“아, 오랜만일세! 그런데 자네 아직도 여길 못 떠나고 있는가?”
그러자 그는 쑥스러운 듯 히죽 웃으며, “사람 죽인 놈이 어찌 감히 천도되길 바라겠습니까? 다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요.”
나는 그를 보고 씁쓸했다. 사람을 죽인 업장은 그 누구도 대신 짊어질 수 없기 때문. 사람을 유인해 돈 500만 원을 뺏은 뒤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죄는 사형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사형보다 더 큰 형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법사님, 제 주제에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뭐합니다만…….”
그는 무슨 할 말이 있다는 듯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법사님 눈에는 여기 있는 많은 영가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 영가들이 사실 살아생전 극악의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당한 이들도 있지만,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사형당한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사형장 입구에 작은 분향소를 하나 세워 주셨으면 정말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사형수조모 영가는 눈물을 글썽였다. 죽어서야 비로소 ‘영계의 법칙’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의 말에 나는 그곳 관계자에게 분향소 설치를 건의했고, 지금쯤 분향소가 설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이야기를 읽고 혹시 그곳에 가실 분들이 계신다면 한 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내 생각에 그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가가 많은 곳 중의 한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하실 땐 반드시 경건한 마음자세로 임하셨으면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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