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차길진_못다한 영혼이야기_09

醉月 2011. 1. 14. 08:48

복(福)통장

학교 동창회에 가면 참 신기합니다. 같이 벌거벗고 미역 감던 친구들이 누구는 고위공직에 올랐는가하면 누구는 아직도 변변한 일자리도 없고, 누구는 고급승용차 몰지만 누구는 반지하 전세를 못 면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글도 제대로 못 읽던 코흘리개가 2차는 자기가 산다고 큰소리치는 걸 보면 부자는 성적순은 아닐 것입니다. 잘 살고 못사는 차이의 연유는 다름 아니라 저마다 다른 ‘복(福)통장’ 때문입니다.

누구나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합니다. 다들 억만장자를 꿈꿉니다. 돈 버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가까운 은행에 가서 복면을 쓰고 은행 직원을 위협하고 돈을 자루에 담으면 됩니다. 잠시나마 거액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체포되면 돈을 반납해야하고 죄과를 톡톡히 치러야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돈 버는 방법이냐며 야유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단지 쉽게 벌어 쉽게 나갔을 뿐입니다. 자기 복은 없으면서 무리하게 돈을 벌고 싶어 한다면 강도질과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복 없이 돈 욕심으로만 번 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반대로, 복이 있는 사람은 길가다 업어져도 돈을 줍습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복을 내린다, 돕다, 제사에 쓰이는 고기와 음식’이라는 뜻으로 ‘조상에게 정성껏 제사를 차려 올리면 복을 받는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이 뜻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현재 처지에 대한 ‘마음가짐’이 복(福)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福)은 자신이 전생에 지은 카르마와 현생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 지은 마음가짐(=전생의 카르마)과 현생의 마음가짐이 지금의 자기 복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 누구나 전생의 마음가짐에서 오는 ‘복(福)통장’을 쥐고 태어납니다. 누구는 복통장에 평생 쓸 금액이 저금되어있고 누구는 마이너스 통장일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이면서 여전히 전생의 마음가짐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곤궁할 것이고, 통장 잔액이 엄청났다고 하더라도 현생의 마음가짐이 무분별하고 교만했다면 말년에 어렵다는 소식을 동창회에서 듣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복(福)통장 잔액은 얼마입니까?

10년만에 태어난 아이

잘 아는 이를 통해 T 선생을 만난 것은 작년초였다. T 선생은 30대 후반의 중학교 여교사였다. 몹시 차분하고 조용조용한 분으로,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은 평온한 분위기지만 가슴속에 고이 접어둔 오랜 소망이 있었다.
결혼한 지 10여년. 대학교수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직도 아기가 없는 것이었다. 인텔리요, 좋은 직장에 남부러울 것 없는 이들 부부에게 그보다 더 간절한 소원은 없었다.
불임클리닉에 가서 아이를 가져 보려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10년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 가서도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제는 거의 포기하는 마음이었다. ‘부부 금실이 워낙 좋다보니 아이가 안 생긴다’는 옛말대로 부부는 그저 ‘언젠가는 생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에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필자와 친분이 있는 교육계 선배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필자의 책을 읽어보니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났다고 했다. T 선생 부부는 필자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던 중 드디어 이뤄진 것이었다.
그들 부부의 첫 인상은 ‘참으로 선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이구나’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부부에게 자손이 있을 것이라는 영감이 뇌리를 스쳤다. 서둘러 구명시식 날짜를 잡고 의식을 거행했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어떤 친척 영가가 나타났다. 지면으로 이유를 밝힐 수는 없다. 다만, 그 영가는 자신의 목숨대로 산 영가가 아니라는 점만 일러두겠다.
어쨌든 그 친척 영가의 천도를 지극정성으로 빌어주면서 착한 후손에게 자손 주시기를 간청했다. 친척 영혼은 자신을 위해 정성을 올리는 후손에게 ‘고맙다’고 하며 ‘딸이 곧 생길 것’이라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부부는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2개월 후, T 선생이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친척 영혼의 예언대로 아이를 갖게 됐다는 기별이었다. 올해 2월 T선생은 건강한 여자아기를 출산했다. 그리고 석달 뒤 방긋방긋 웃는 딸을 안은 부부가 법당을 방문했다. 모든 이들이 더불어 즐거워했다.
영혼의 세계는 신비롭기만 하다. 아울러
조상영혼의 음덕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돌아오는 법이기도 하다.

마지막 외출

작년 봄, 예술의 전당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던 대중가극 <눈물의 여왕> 마지막 회를 보고 있었다. 이윤택씨가 각색한 이 연극의 원작자로서 많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막을 내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인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이 연극이 예술의 전당서 그 웅장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연일 이어지는 관객들의 행렬과 매스컴의 찬사속에 필자도 나름대로 느긋한 심정으로 연극을 관람하는 중이었다.
필자 바로 옆자리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바로 G였다. 미국에서 20년간 열심히 산 여성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그녀는 그 날 병원으로부터 ‘마지막 외출’을 허락받은 상태였다. 가슴이 아려왔다. 마지막 외출과 눈물의 여왕. 필자도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그녀가 필자를 찾아온 것은 작년이었다. 친한 친구(그녀도 미국서 20년간 공부하고 온 이였다)의 소개로 필자를 만난 G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20년 전 미국에 간 G와 그녀의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다. G는 미국은행(Bank of America)에, 친구는 계속 공부해 자기 분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제는 고국으로 돌아가 커리어 우먼으로 멋지게 살려던 그녀는 필자를 만날 즈음 매우 위험한 상태의 암환자였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그녀의 생명은 3개월 남짓이었다. 그러나 G는 더 오래 살고 싶어 했다. 그 후 그녀는 시한부 삶 3개월을 훨씬 넘긴 올해 3월까지도 살아있었다. 병원서 그녀는 다시 3개월의 생명을 선고받고 ‘마지막 외출’을 허락 받아 마치 이웃집에라도 가듯 조국에 다시 온 것이었다. 그 날이 바로 지난 3월 연극 마지막 날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며칠 한국에 머물던 G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추석이 지난 며칠 후였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G는 ‘낙엽과 함께’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몇 개월 건강하던 G는 여름이 지나면서 급속도로 백혈병이 악화돼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재기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녀는 3개월 시한부 목숨을 1년 넘게 연장한 생을 살았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는 충분히 하고 떠나갔다. 조용히 낙엽지듯이….

부자 되는 법, 망하는 법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높은 자리, 높은 학력, 재테크 등 방법은 천차만별이어도 결국 부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부자가 되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조상의 음덕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생각이 단순하고 아이처럼 천진해야 합니다.
셋째, 작은 인연도 큰 인연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뒤집으면 망하는 방법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자기 힘만으로 자수성가했다고 자부한다.
둘째, 뒷셈에 능하고 경제, 법, 교리 등 사리분별을 내세운다.
셋째, 중요한 사람, 중요한 일, 중요한 시간이 따로 있다.

지방에 사업장을 둔 식품업계의 거목이 있었습니다. 그가 국내 손꼽히는 재벌이 된 원천은 돌아가신 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선친은 죽을 때 빈털터리였습니다. 오백 석 부자였던 집안이 망하고 유명을 달리하면서 선친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저금을 많이 해두었으니 분명 나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다.”

오백 석 재산이 없어진 연유는 이랬습니다. 오백 석은 호남 부자치곤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 분의 선친은 동네 밥 굶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을을 돌보았습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이 죽으면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이 죽으면 관 한 짝과 상목 한필을 부의로 보내기로 스스로 평생을 약조했습니다. 범위가 넓어져 출산 때도 상목을 주기 시작했고, 이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출산과 상을 알리는 전갈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은 선심이 눈 덩이처럼 커져 결국 집안이 거덜 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선친은 후손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이자까지 새끼 친 ‘복(福)통장’을 물려준 것입니다. 만약 빈털터리 선친을 원망하고 혼자 힘으로 이룬 자수성가라고 교만했다면 이 재벌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많은 후손들이 있었지만 조상을 섬기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하는 마음가짐을 가진 이 재벌이 조상 덕을 볼 자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운(運)은 대출통장

복(福)은 전생과 현생의 자기 마음가짐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남이 빼앗아갈 수도, 남에게 꾸어올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도 대출이 있듯이 인생 통장에도 대출이라는 게 있습니다. ‘운(運)’이 바로 대출통장입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차압이 들어와 파산하듯이 운도 제때 갚지 못하면 패가망신합니다.

구명시식은 복을 주는 게 아니라 운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한 젊은이가 찾아와 아무리 고시공부를 해도 매번 아깝게 떨어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할 팔자가 아닌 것 같아서 취직자리를 알선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취업은 당신 운이 아니니, 매월 월급 받으면 일정액은 항상 불사를 하십시오.”

그 청년은 취업을 해서 첫 달만 불사를 하더니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수억 원의 빚을 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복권(福券)은 ‘복(福)’자가 들어가서 오해하기 쉽지만 엄연히 ‘운권(運拳)’입니다. 복을 받은 게 아니라 운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해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당첨된 후 수년이 지난 수십 명을 추적했지만 복권 당첨 전보다 잘 사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거액이 당첨되자 대부분 다니던 직장부터 그만두었고, 분배문제로 이혼을 하고, 큰 집과 새 차를 사고 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도박으로 날린 사람을 비롯해 몇 해, 빠르게는 몇 달 만에 거액을 모두 탕진하고 노숙자로 전락했습니다. 일확천금의 달콤했던 기억 때문에 정상적인 취업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망하지 않은 단 한사람의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거액을 받아 세금만 내고 고스란히 통장에 넣고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평상시대로 자기 다니던 직장을 그대로 다니고 집만 조금 수리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생활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고 인터뷰했습니다.

큰 운을 받더라도 이를 받쳐줄 자신의 마음가짐, 즉 복이 없다면 대출받은 운은 재앙이 됩니다.

위대한 유산이란

자식에게 3일도 못가서 썩는 생선을 물려줄 생각 말고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어 평생 먹을 수 있게 하라는 교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자식에게 오직 재산을 물려주고 학력을 만들어 주려는 풍토가 만연합니다.

아무리 부자(富者)라 해도 3대를 못간다(부불삼세,富不三世)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富)가 무려 13대째 3백년이 넘게 내려오는 놀라운 가문이 있습니다. 경주 법주로 유명한 경주 최 부잣집입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에서 그 비결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십리 안에 밥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옛날 가훈이라 요즘 말로 새겨 읽어야하지만 깊이 음미해보면 시대를 넘어 전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절제, 겸손, 사람 존중 하라는 마음가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젠가 이 최씨 가문에 천재소리를 듣고 자란 자손이 꼬박 10년이 넘게 사법고시를 준비했는데 매번 낙방해서 저를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증조부 영가께서 ‘절대 진사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벼슬길에 오르려 한다’고 노발대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손이 검사는 하지 않고 변호사를 한다고 하자, 증조부 영가는 합격 대가로 재산의 1/10을 가져간다고 하셔서 타협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식을 품에 두려하지만 숲 속의 초목들은 자식을 멀리 보내려합니다. 고기 잡는 법,
마음 쓰는 법이 위대한 유산입니다. 아무리 ‘고기 잡는 유산’이란 교훈을 많이 들어봤어도 본인이 마음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서 자식에게 제대로 물려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돈버는 목적

왜 돈을 벌려고 하시나요?

어느 두 노인의 대화입니다.
어느 바닷가 휴양지에서 노부부가 파라솔 그늘 아래서 음료수를 마시며 의자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서는 한 노인이 고깃배와 그물을 열심히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파라솔에 있던 영감이 땀을 닦으며 그물을 손질하는 노인에게 음료수를 한잔 건네며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젊었을 때 밤잠도 안자고 열심히 일해서 이제 노년이 되어 이렇게 휴양지를 찾았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습니까?”
“돈을 벌어 좋은 차와 큰 집을 사야 예쁜 여자와 결혼할 수 있지 않소.”
“그럼 결혼을 위해 일하셨습니까?”
“아니오. 돈을 벌어야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지 않소.”
“그럼 아이를 위해 일하셨습니까?”
“아니오. 돈을 벌고 힘겹게 일했던 것은 이렇게 노년에 휴양지에서 즐기기 위한 것이니,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해서였소.”
“그럼 처음부터 여기 휴양지로 직접 오시지 그랬어요. 행복은 돈으로 사거나 힘겹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부자가 되려는 목적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시류를 추종한다면 자칫 ‘돈의 노예, 소비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난에 한이 맺혀서 한풀이를 위해서 또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짓지 않고 욕망을 소원하여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크게 보면 그런 이유 때문에 현재 부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는 있어도 맛은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는 있어도 단란한 가정의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에 맞추어 살지 말고 자기 생활수준을 나름대로 정해서 돈을 벌고 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다

일류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의 임원이 된 M씨. 회사서 인정받고 집에서도 모범가장인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굳이 한 가지 꼽자면, 장인이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 있다는 것 정도다.
그 탓에 아내의 얼굴에는 늘 수심이 깃들여 있었다. 처음에는 다리만 못 쓰더니 이제는 상반신까지 꼼짝 못하는 장인. 평소 건강하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병석에 누웠고 의사들도 그 이유를 밝혀내지 못했다.
처가에 다녀오는 아내의 표정에는 근심이 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친정어머니 고생은 물론, 친정 할머니도 몸져누운 아들의 모습을 10년씩이나 봐야 하니 맘고생이 극심했다. 애처가인 M씨는 처가의 고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모든 병원이 포기한 장인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청해왔다.
구명시식 결과, 상상도 못 할 사연이 드러났다. 그 근엄하고 점잖은 장인에게는 젊은 시절 몹시도 사랑한 첩이 있었던 것이다. 애첩에게는 돌이 막 지난 아기가 있었다. 외아들이 첩에게 빠져 집안일을 돌보지 않자 어머니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기의 입을 틀어막아 숨지게 했다. 어머니의 투기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기를 잃고 시름시름 앓는 첩에게 밥을 주지 않은 것이다. 첩은 굶어 죽고 말았다.
수십 년 전 이 참극을 아는 이는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친정 할머니뿐이었다. 즉, 두 목숨을 앗아간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 있으면서 자신의 외아들 몸이 썩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것이다. 스스로 지은 업(業)이었다.
모든 사연을 알게 된 M씨와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그저 가시는 길 편안하게, 더 이상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고통없이 가시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구명시식 후 M씨는 “세상은 그저 보이는 대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조상이 잘못하면 3대가 망한다’는 옛말이 있다. 선대의 잘못이 3대후까지 여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 말은 ‘조상의 잘못은 즉시 당대에 업으로 나타난다’고 수정해야 옳을 듯하다. 자신의 악업과 선업은 곧바로 생전 자신의 업으로 나타난다. 한 세상 살아가면서 항상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인과응보라는 말처럼 구명시식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없다. 구명시식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진리이다. 하지만 이번 구명시식에서처럼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만병통치란 없다

구명시식에 관해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구명시식은 만병통치약’이라는 인식이다. 몰론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기독교가 믿음의 종교라면, 불교는 인연의 종교다. 그만큼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부처도 인연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구명시식 또한 숱한 인연 끝에 이어진 귀중한 만남인 것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면 환자마다 처방이 다르다. 어떤 환자에게는 약만 주고 어떤 이에게는 주사를 놓기도 한다. 며칠간 입원하기도 하고 또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도 있다.
구명시식은 ‘수술 환자’에 해당하는 의식이다. 미용성형 수술이나 간단한 수술이 아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위급한 수술이다. 구명시식은 거듭된 인연 끝에 거행하는 절체절명 의식인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돈만 갖다 주면 구명시식을 해준다고 착각한다. 영능력자들은 마음을 깨끗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큰 화를 입는다.
남들의 길흉화복을 조언하는 이들이 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고 재물에 욕심을 부리면 자식이 패륜아가 되거나 가정이 깨지는 등 흉사가 빚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적은 돈일망정 영혼의 돈을 함부로 쓰면 안되기 때문이다. 부처도 불의(不義)한 돈은 불공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절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절의 신자인 정결치 못한 여성이 불공을 드린 뒤 큰돈을 내놓았다. 그러자 큰 스님은 그 돈을 땅에 묻으라고 했다. 더러운 돈이라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절의 상좌는 돈이 탐났다. 그래서 큰스님 몰래 돈을 파냈다. 그랬더니
돈에 고름이 가득 고여 있어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돈이 어디에나 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구명시식은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과 오랜 정성, 현생뿐 아니라 전생까지 포함한 필자와의 좋은 인연 등이 합치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의식이다.
얼마 전, 어느 고위 공무원을 구명시식한 적이 있다. 뇌사 판정을 받은 지 3년째인 사람이었다. 정을 가지고 해주려 했지만 잘 안 됐다. 역시 구명시식은 오묘한 인연으로 이뤄지는 최고의 정신집중 제의(祭儀)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다시 태어난 딸

지금은 나와 친하게 지내는 J 여사를 처음 만나던 날, 나의 가슴은 몹시 답답했다. 그녀가 마음 저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를 털어놓게 해야 하는 난감함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힘들게 과거를 털어놓았다.
남편이 술과 여자 문제로 J의 속을 썩인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남편의 상대는 대부분 화류계 여자들이었다. 가관인 것은 여자들의 질이 매우 좋지 않았고 이들로부터 돈을 뜯긴 것도 여러 번이었다.
J는 자식복도 없었다. 애지중지하던 외아들 녀석은 학생때부터 여자문제로 골치를 썩이더니 성인이 된 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말썽이었다. 아들은 제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J의 아들에 대한 집착은 유난스러웠다. 남편에 대한 기대감이 J에게 쏠린 이유도 있었지만 어쩐지 정도 이상인 것 같았다.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그 이유는 구명시식 현장에서 밝혀졌다.
구명시식을 해보니 웬 여자 아기의 영가가 나타났다. 나는 J에게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J는 대답을 못했다. 재차 다그치자 J는 겨우 대답했다.
“그애는 저의 셋째 딸이에요. 제가 죽인 아이예요!”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아기 영가는 그녀가 죽인 그녀의 셋째 딸이었다. 위로 두 딸을 낳은 J는 세 번째 임신을 했다. 그런데 아들일 줄 알고 낳은 아이는 또 딸이었다. 그녀는 아무도 몰래 아기를 엎어버렸다. 아기는 태어난지 며칠만에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금세 임신했고 그 아이가 바로 지금 속썩이는 외아들이었다.
아들이라고 주위에서 축복해 줄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자신이 죽인 아이 때문에 매우 아팠다. 그러나 아들 뒤치다꺼리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그녀는 그 사실을 점차 잊어버렸다. 그 아이, 딸을 굳이 죽여서까지 아들을 낳으려 한 그 아이가 이토록 속을 썩일 줄이야. 그러나 어찌하랴.
J의 이야기는 끝나고 다시 구명시식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속썩이는 아들이 바로 셋째 딸의 환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의 손에 목숨을 빼앗긴 아기 영가는 어머니에게 복수를 하며 존재를 알리려 한 것이었다.
나는 J씨 부부에게 참회하라고 당부했다. 남편은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며 참회했고 J는 눈물로써 회한의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갓난 아기 영가는 밝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 후 J 집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이로써
한 인간의 업이 바로 당대에 한으로 나타남이 증명되었다. 착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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