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낀 영매 아저씨
여름철의 상징품-선글라스. 나는 유독 선글라스 끼는 것을 즐긴다. 즐기기에 앞서 나는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갖고 있다. 물론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것도, 여성분들처럼 멋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다. 선탠을 즐기는 여성들의 몸매를 몰래 훔쳐보기 위한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영능력자이기 때문이다. 영능력자랑 선글라스랑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른다. 하기야 겉보기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짐작조차 힘들지만, 사실 영능력자에게 선글라스는 방탄조끼 같은 것으로, 방탄조끼가 총알을 막아내듯, 햇빛을 차단해 줌으로써 밤에 익숙한 나의 눈의 피로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실 선글라스를 끼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내가 영능력자이기 때문에 여러분들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인데…만약 길을 걷고 있다가 보통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자 영가가 내 눈앞에 나타나 사라졌다 해보자. 그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닥칠 땐 아마 내 가슴은 놀란 토끼마냥 벌렁벌렁 뛰어 지금쯤이면 간이 콩알만해졌을 것이다. 나도 평범하게 길을 걷고 싶다. 이 나이에 바람난 아저씨(?)처럼 색색깔의 선글라스를 끼고 걷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의 운명인걸. 처음엔 왠지 겉멋든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애써 선글라스를 거부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맨눈으로 당한 봉변들이 지속되자 어쩔 수 없이 선글라스를 끼게 되었고, 이제는 달가운 마음으로 선글라스의 유행을 선두하는 멋쟁이 아저씨로 변신, 본의아니게 길가는 아줌마들의 시선을 받는 것에도 익숙해지게 되었다.
선글라스를 낄 수밖에 없는 별난 고백과 더불어 또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전국 도로망 곳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운전을 못 한다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라. 돌발상황 때문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다니는 내가 어떻게 운전을 하겠는가. 만약 운전 중 갑자기 무언가를 보는 날이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운전을 못 한다고 운전면허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뉴저지에 있었을 때, ‘운전면허=신용’인 미국사회에서 운전면허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힘들게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해 운전면허를 딴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눈물의 산물인 운전면허가 지금은 장롱면허가 되어 신주단지 마냥 집에 모셔놓은 신세가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은 ‘장롱면허’가 참으로 고맙기까지 하다.
1985년 어느 겨울날의 일이다. 명일동 모 아파트에 아는 분의 초대로 오랜만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얘기중에 번쩍-하고 화면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너무 놀라 “안돼! 봉철아, 힘을 내! 힘을!”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당연히 주위 분들은 나의 외침에 상당히 놀라셨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내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던 ‘봉철’씨가 나를 찾아와, “큰일날 뻔했어요. 어머니를 모시고 팔당에 다녀오던 길에 맞은편서 달려오는 차를 피하다가 그만 절벽에 떨어질 뻔했지 뭐예요. 브레이크를 아무리 밟아도 멈추질 않기에 전 죽는구나 했는데요.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차가 절벽 앞에서 딱! 멈춰서는 거예요! 정말 겨우 겨우 살았습니다.” 바로 내가 소리를 지른 그 순간, 그에게 내가 본 장면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다행히 염력으로 차를 멈춰보려 했던 것이 성공했던지, 무사히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선글라스를 낀 채,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것이다. 이젠 선글라스도,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도 모두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주 나쁜 것만도 아니지 않는가. 혹시 길을 가다가 최신 유행하는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를 보면, 한번쯤 뒤를 돌아보심이 어떨지. 그게 나일지 또 누가 알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
택시를 타면 으레 붙어 있는 말이 있다. “오늘도 무사히…” 작은 소녀가 간절히 기도하며 올리는 이 말 한마디가 바로 인생이 아닐까. 사실, 인생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도사라 할지라도 바로 5분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정확히 예상할 순 없는법. 그렇기에, 산 넘고 바다 건너 영능력자인 내게까지 찾아와 위험천만인 인생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구하러 오시는 분들의 수도 당연히 많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나 역시 100%의 확률로까지 보장할 순 없다. 단지, 나에게 느껴지는 영적인 감(感)으로 그분들게 가장 좋은 방법을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바로 그 찾아오시는 분들께서 내 얘기를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어떤 분은 너무나 진지하게 얘기를 들으면서 “꼭 법사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고 고개숙여 인사까지 하고 가선, 언제 그랬냐는 듯 제 고집대로 일을 처리, 낭패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노력은 해보겠습니다”고 건성으로 대답하더니, 후에 모든 일을 나의 충고대로 처리, 뜻밖의 좋은 결과를 보셨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전자의 예가 바로 몇 년 전 이 경우. 당시 모 그룹 회장님이셨던 분께서 내게 ‘특수강분야’의 사업을 하고 싶으시다며 은근히 나의 어드바이스를 구하시기에 나는 “그 분야의 사업은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습니다”고 말씀드렸더니, 회장님께선 고개를 끄덕이시며 “알았다”라고 말씀하셔 놓고선, 얼마 후 신문을 보니 바로 그 기업이 특수강분야에 진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있는 게 아닌가. 나는 ‘큰일났구나’ 싶어 회장님을 만나 극구 말렸지만, 이를 듣지 않으셨고, 마침내 그 기업은 ‘도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섬유합섬으로 몇십 년 외길을 걸어온 튼튼한 기업의 회장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 회장님께 “제2금융권의 돈은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모두 정리하시지요”라고 말씀드리자, 그분 왈 “무슨 말씀이신가요? 지금 그 돈은 은행보다 조건도 월등히 좋단 말입니다. 그런 돈을 빨리 갚으라니요?” 하시며 붉으락 푸르락하시더니 며칠 뒤, “그 돈을 거의 다 갚았다”며 전화하셨고… 그리고 곧바로 IMF가 터지자, 그 회장님은 허겁지겁 나를 찾아오셔선 “차법사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망했을 겁니다”며 두손을 꼭 잡으시며 ‘껄껄’하고 웃으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늘상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는 법. 신혼 초, 만행을 핑계삼아 집안을 거의 돌보지 않았던 나 대신, 아내 능인각 보살이 부산 남포동에서 장사를 하던 무렵의 일이다. 어느날은 아내의 일을 도와주시던 빙장어른께서 갑자기 친구분께서 돌아가셨다며 초상집에 다녀오겠다고 하시기에 얼른 나가 “절대로 그 집에 가지 말라”고 말씀드렸더니, 빙장어른은 물론이거니와, 아내가지 역정내며 “당신 말이 100% 다 맞나요? 당신 때문에 아버님께서 친구 초상집에도 가지 말라는 건가요?”라고 말해, 나는 별수없다는 생각에 빙장어른께 “가시게 되면 각별히 몸조심 하십시오”라고 말씀드렸고, 빙장어른은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신 듯, 서둘러 초상집에 가셨는데….
그런데 그렇게 가신 빙장어른께서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으시더니, 5일째 되는 날 중풍에 걸려 돌아오시는 게 아닌가. 그때 아내와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빙장어른을 원상태로 돌려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듯, 그 뒤 100일 후에 그만 유명을 달리하시고 말았다.
이렇듯 나의 영능력 때문에 인간적으로 괴로웠던 순간만도 수만번. 그럴 때마다 영능력자의 길은 타인과 정을 쌓지 않고, 그저 영능력자로서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밤새 잠못 이루고 뒤척이는 날만 늘어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젠 그럴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인생 살아가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물리적인 큰 사고가 아닌, 인간에 의한 ‘마음의 사고’란 생각에, 그저 오늘도 영능력자란 이유로 마음의 사고를 당하는 일 없이 무사히 하루를 보냈으면 하는 게 요즘들어 드는 솔직한 내 바람이다.
염력으로 구한 친구
<슈퍼맨>류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서글픈 생각이 들곤한다. ‘영화속 남자주인공들은 미녀들을 위험속에서 구하는 황금같은 기회(?)를 잘 만나곤 하는데, 왜 같은 초능력자인 나에겐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나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사건이 있다. 그것도 100명의 미녀를 구한 것보다 더 뿌듯한(!) 한 명의 남자를 구한 사건이 있다.
며칠전, 추석 연휴때의 일이다. 그동안 바쁘단 궁색한 변명으로 못 만났던 나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 세화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너 그때 니가 날 살려준 거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라니?” 영문 몰라하는 내게, 세화는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오늘은 꼭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야겠다. 너 기억 안나? 우리 고등학교 1학년때 가을 소풍에서.”
그랬다. 행주산성으로 가을 소풍갔을 때, 정말 참혹한 사건이 발생할 뻔했더랬다. 그 당시 행주산성 주변엔 교외선 열차가 다니곤 했는데, 마침, 우리가 소풍갔던 그 근처에 두 개의 철로가 지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친구들과 동그란 원을 만들어 당시 유행하는 팝송을 친구들 앞에서 멋들어지게 부르며 한참 흥을 돋우고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위험해!”하는 소리와 함께, 멀리서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소풍갔던 삼백여 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철길 쪽으로 몰려들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내 눈앞에 벌어지는 것이었다. 같은 학년 한 친구가, 두 개의 철로 중 한 레인으로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그 친구 뒤쪽의 멀지않은 곳에서 기차가 기적소리를 힘차게 내며 돌진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삼백여 명이 “조심해! 피해!”라며 일제히 소리쳐도 그 친구는 무언가에 흘린 듯, 계속 레일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이었다.
“뿌-뿌우-” 기차의 기적소리가 귀를 찢듯 선명하게 들려오자, 같이 있던 친구들은 차마 못보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등을 향해 소리친 것이었다. “안돼! 비켜!” 그러자, 그 친구는 갑자기 뒤를 돌아다봤고, 그것과 동시에 기차는 ‘끼익-’하는 강력한 브레이크 소리를 내지르며 그 친구를 스치고 지나 저 만치서 멈췄다.
순간, 흐르는 무서운 정적. 기차에 깔린 채 레일 위에 시체가 됐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친구는 논두렁 저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죽었으리라’는 예상도 깬 채, 그 친구는 부시럭거리더니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었다. 기차에서 놀라 내린 기관사도, 함께 사태를 지켜보던 선생님들도, 그리고 친구들도 아무 말할 수 없었다. 그저 그 친구가 ‘살아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친구의 시선이었다. 하필 그 순간, 삼백여명 가까운 1학년생 무리속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선지 얼마 후, 우린 단짝 친구가 되고 말았지만.
“그때, 난 정말 죽을뻔했지. 철로가 두 개라, 다른 길로 기차가 오고 있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갑자기 어떤 강력한 힘이 내 등을 팍! 밀쳐내는데… 난 그 힘을 지금까지 잊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힘의 정체가 바로 너의 ‘염력’같단 말이야.” 그러면서 덧붙이는 세화의 한 마디. “니가 벽돌깨고, 놋그릇 찢고, 의자를 한손으로 부쉈을 때 진작 알아봤어야 했는데….”
지금 문득문득 그 사건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세화를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만약 그게 세화가 아니라, 예쁜 여고생이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란 생각도 곁들여서 말이다.
바르게 돈 쓰는 법
최근, TV에서 민심을 현혹시킨 사이비 무속인들을 고발한 시사프로그램이 나오기에 뭔가 싶어 채널을 맞춰놓고 한참동안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까 점점 화가 나는 게 아닌가. 음성변조에 모자이크 처리까지 하고 나온 그 무속인들은 하나같이 돈에 눈먼 사이비 무속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네들은 멀쩡한 사람을 보고 귀신이 씌었다면서 몇백에서 최고 몇천까지 굿값을 부르는 것은 물론, 경제사정이 안 좋은 사람이 찾아오면 무속인들의 수입이 짭짤하다면서 돈을 받고 내림굿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이거 말세다!’ 싶어, 계속 보는데, 부적값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니, 사이비 무속인들 때문에 전통굿을 하는 진정한 무속인들의 설자리가 좁아질까 걱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엉터리 굿에 몇백만원을 받아 챙기는 무속인들의 앞날이었다. 그렇게 돈만 알고 돈만 챙기는 무속인들에겐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응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당은 영에 의존해, 영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인데, 영을 모실 생각보다 돈을 모실 생각이 우선시 된다면, 그네들의 운명은 자신들이 모신 영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영을 모시는 무속인들이 번 돈은 반드시 영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은 무계의 철칙이다. 이를 어긴 무속인들에겐 ‘죽음’보다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함묵적으로 내려온 불문법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법칙을 잘 알기에 내가 번 돈은 반드시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쓴다. 굳이 말한다면, 무계의 법칙 때문만은 아니다. 참으로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영과 오랫동안 함께하다 보니, 나 역시 맑고 깨끗한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어느덧 순수와 청백을 사랑하는 ‘자연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래선지 내 주머니에 돈이 좀 있다 싶으면, 그게 많은 돈이 아닐지라도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찾아주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런데, 최근 내 돈에게 더 좋은 주인을 찾아주는 아주 좋은 일이 있어 지금까지 가슴 한켠이 훈훈한데…. 그 훈훈함의 시작은 1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년전, 나는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 고(故) 차일혁 총경께서 충주경찰서에 서장으로 재임 중, 사비를 털어 갈곳없는 노숙자들의 재활을 위해 직업훈련학교를 세우셨단 사실을 듣곤 적잖이 놀라게 되었다. 너무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그 훈련학교를 추적하게 되었다.
오래전에 폐교됐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 학교는 숭덕재활원이라는 곳과 합쳐져 지금까지 사회에서 소외된 장애자, 노숙자 분들을 위해 선행을 지속해 오고 있었다. 참으로 반갑고 다행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 길로, 충주경찰서 관계자분들과 상의해 숭덕재활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경찰서측도 흔쾌히 나의 뜻을 수락, 마침내 지난 4월 16일에 충주경찰서에서 조촐한 장학금 전달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SBS, 충주 MBC, YTN 등 많은 언론기관에서 관심을 갖고 취재까지 와주시는 바람에, 국민여러분께도 훈훈함의 열기를 전해드릴 수 있게 되어 그 기쁨은 배가된 듯하다.
이렇게 돈주인 찾아주는 일을 즐겨하다 보니, 자연, ‘부자’란 말과는 담을 쌓고 살 수밖에 없었던 나. 건실한 벤처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으면서도, 돈버는 것보다 돈주는 것에 관심이 많았으니, 솔직히 가정에선 평범한 가장일 수 밖에 없는 내게 아내의 바가지도 처음에는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내가 먼저 좋은 일을 찾아다니니, 내가 영에 의해 자연인이 된 것처럼 아내도 영과 함께하는 나 때문에 자연인이 된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기만 하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주는 것을 즐기는 나의 ‘돈철학’. 지금 여러분의 주머니에 불편한 돈이 있다면 꺼내 보라. 그리고 생각해 보라, 그 돈이 과연 내 것인지, 혹시 나보다 그 돈이 절실한 사람은 없는지…. 만약 있다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겨보는 게 어떨까. 돈이란, 적시적소에 쓸수록 빛나는 법이니 말이다.
차이는 두되, 차별하지 말라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했다면 사장이나 종업원이나 사례방법과 금액의 차이는 두더라도 빼먹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차이’를 제대로 두지 않아, 본의 아니게 사람 ‘차별’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상대방에게 차이에 맞는 대우를 함으로써 인간 차별을 말아야겠습니다. 대접을 받는 상대방 또한 왜 남과 똑같은 대우를 하지 않느냐고 노여워하기 전에 자신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차별 속에서 평등하게 메우려 투쟁하지만, 제가 보기엔 평등속에 차이가 있습니다.
지인 중에 한 명이 잘 아는 음식집이 있다며 저를 초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음식점 주인과 종업원과도 친한 사이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모두 좋았으나 제가 보기에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음식점 주인에게는 좋은 식단에 감사하다는 말도 했지만, 지인은 한 사람을 빠뜨렸던 것입니다. 홀에서 서빙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사례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인이 생각하기엔 식대를 지불하므로 써 모든 계산이 끝난 것 같지만 사람 대 사람의 계산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사장과 종업원이란 타이틀만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하게 대했다면 사장이나 종업원이나 사례방법과 금액의 차이는 두더라도 빼먹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못내 아쉬웠습니다. ‘차이’를 제대로 두지 않아, 본의 아니게 사람 ‘차별’을 하게 된 경우입니다.
사람은 많은 차이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능력의 차이, 학력의 차이, 재물의 차이, 미모의 차이, 나이의 차이, 성적의 차이 등등 차이를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차이'가 있기에'존재'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하는 마음자세가 그 사람의 앞날을 좌우합니다. 콤플렉스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학대하면 평생을 주눅 들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차이에 무심하다면 숙명으로 안주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발전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차이를 무시하면서 차이를 초월한냥 착각하기 쉽습니다. ‘차이’야말로 세상을 발전시키고 개인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동기입니다.
차이를 원망하며 상대방을 저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주의 시원과 최종점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현재의 차이는 전생에서부터 누적된 자신의 카르마, 즉 쌓여온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차이입니다. 애당초부터 누구를 탓하고 누구와 비교할 사안이 아닙니다. 남과 비교하되 자신을 원인으로 삼지 않고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차이의‘빈익빈 부익부’는 더 심하게 됩니다. 바람직한 자세는 차이를 인정하고 본인 안에서 차이가 벌어지게 했던 마음을 성찰하려 애쓰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참초제근하여 고치는 것입니다. 차이에 원(怨)을 품지 말고 한(恨)을 품어 다음의 에너지로 삼아야합니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부자와 가난한자, 미인과 추남, 우등생과 열등생, 노인과 젊은이 모두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무시하지 말아야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자기 인생의 과제이므로 차이를 뻔뻔하게 남에게 내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차이에 맞는 대우를 함으로써 인간 차별을 말아야겠습니다. 대접을 받는 상대방 또한 왜 남과 똑같은 대우를 하지 않느냐고 노여워하기 전에 자신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아야하겠습니다. '차이'가 곧 '존재'입니다. 일반적으로 차별 속에서 평등하게 메우려 투쟁하지만, 제가 보기엔 평등속에 차이가 있습니다.
침묵은 금!
“안녕하세요. 저는 영능력자입니다”라는 소개는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물론, 영능력자가 보편화된 직업(?)이 아니라서 그런다지만, ‘영능력자’를 보는 사회의 시각 역시, 진지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내가 미국 뉴저지 후암정사에 있을 땐, 영능력에 대해 학술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관심있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와 영능력에 대한 깊고 광범위한 얘기들을 두루두루 나누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영능력’ 자체에 관심있어 오신 분들은 거의 없어 참으로 서운했다. 왜 영능력자를 ‘미래’나 알아보러 만나는 점쟁이 취급을 하는지….
그 이유를 나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아무래도 ‘영능력자’를 제대로 알고 계신 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냐, 분명 영능력자는 일개 점쟁이와는 확연히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그 사실조차 모르고 오신 분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영능력자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성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범부에 불과했다. 그러던 베드로가 초영능력의 소유자셨던 예수님을 만나서 어떻게 변화했는가! 그의 인생은 하루를 사이에 두고 180도, 아니 그 이상으로 ‘의미있게’ 변화되지 않았는가. 이렇듯, 영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주는 능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많은 분들께선 나와 같은 영능력자를 만났을 때, 모든 것을 ‘말로써’ 해결하시려고 든다. 그 정도로 영능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분들을 뵙고 있으면 참으로 안타깝다. 왜냐하면, 말을 안 하시면 영능력의 120%를 만나실 수 있을 텐데, 말을 많이 하시는 바람에 50%도 채 못 만나고 가시기 때문이다. 물론 속시원히 말로 해결 보려고 자꾸 여러 말을 물어오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말’만 듣고 가면, 정말로 원하는 것들은 후두둑 놓치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는 계시는지.
얼마전, 평소 친분이 있는 분들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간 일이 있었다. 그것도 새벽 6시라는 이른 시간에 말이다. 사실 그날 나는 구명시식을 올린 직후였기에 한숨도 잠을 청하지 못한 상태라, 별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만남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골프장으로 나갔는데.
“차법사님, 오늘은 욕심없이 싱글(핸디 80이하)을 한번 쳐봤으면 좋겠습니다!” 15년동안 주말 골프를 즐기셨던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그럼, 저는 언더라도 쳐봤으면 좋겠는데요”라고 옆에 계신 분도 한 말씀 던졌고, 두분의 얘길 듣던 다른 분께선, “저는 그냥 보통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하며 웃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세분들의 말씀을 빼놓지 않고 듣고선 그 분들을 향해 “힘내십시오! 오늘은 잘 풀리실 겁니다”“라고 말하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게임이 끝나자, 그분들은 서로 믿을 수 없다며 좋아하시는게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싱글을 쳐보고 싶다고 하신 분은, 15년 골프역사상 처음으로 싱글을 치게 되셨고, 언더라도 치고 싶다 하신 분은 투언더를 기록하셨으며, 보통이라도 쳤으면 하셨던 분은 말 그대로, 보통치기를 하셨던 것이다.
영능력이란 이런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 공은 어떻게 해서, 어떻게 치십시오! 그러면 잘 들어갈 것입니다!’라는 말 없이도, 그분들은 각기 원하는 플레이를 맘껏 하셨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듯 영능력자는 최악의 컨디션에서도 소망하는 이에게 에너지를 뿜어내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능력자의 언어는 ‘침묵’이다.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침묵’이라는 언어가 있기에 영능력자에겐 많은 말이 필요없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나에게 오실땐 하고 싶었던 많은 말들을 훌훌-털어버리고 오시길 부탁드린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 ‘침묵’은 여러분께 도 하나의 힘이 되어드릴테니 말이다.
나의 고독
최근 미국에서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 <식스센스>가 한창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고 있다 한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영화 예고편을 보고 있자니, 이건 완전히 내 얘기가 아닌가.
영가를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한 꼬마 남자아이가 스토리의 중심이 되어, 때로는 긴박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펼쳐지는 영화 내용이, 꼭 어렸을 때 나를 보는 것 같아 묘한 느낌을 감출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보기 싫어도 볼 수 밖에 없었던 영가들… 어린 나이에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을 볼 수 있단 사실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법사님은, 영능력이 있어 참 좋겠어요”라고 말이다. 그럴 때면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그럼, 공짜로 줄 테니, 내 영능력 좀 가져가 주십시오”라고….
자신들에게 없는 능력이 내게 있으니 영능력이란 놈이 ‘축복의 선물’이라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능력의 실상을 알고 나면 ‘축복’이란 말은 절대 못할 듯.
하긴, 나 역시도 영능력이 ‘축복의 선물’로 착각했던 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엄연한 인간이기에,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춘기’시절이 다 그렇듯, 남들에게 없는 그 무엇이 내게 있다면 어깨부터 ‘으쓱!’ 해지지 않던가.
당시 나도 그랬었나 보다.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면서, 예쁜 여고생이 지나가면 괜히 말이나 한번 걸어볼까 싶어, “지금 ××색 속옷을 입고 있죠?”라고 정확히 맞히는 바람에 신나게 뺨을 맞은 기억도 있고, 호빵이 먹고 싶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놨는데, 한 친구가 돈없다며 빼길래 “너 얼마 있잖아!”라고 호주머니 사정을 맞히는 통에 맛있게 호빵을 먹은 기억도 갖고 있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멋모르게 ‘영능력’을 썼던 사춘기 때가 한편으론 그립기도 하다. 그땐, 나조차도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몰랐고, 친구들도 내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기에, 그 어떤 때보다도 ‘순수(?)하게’ 영능력을 사용했던 시기였으니까.
과연 지금도 나의 영능력을 순수하게 받아줄 친구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내가 ‘영능력자’ 혹은 ‘영매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순수한 의도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보다도 단순한 ‘호기심’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곧 나를 떠나겠지’라고 생각하면, 얼마 안가 백발백중 맞아떨어지곤 한다. 이럴 때면 나의 영능력이 원망스러워진다. 어쩌면 이런 것까지도 야속하게 맞히냔 말이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재미있는 사람,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내게 왜 ‘알 수 없는 의도’로 다가와 ‘호기심’만 채우곤 떠나는 것일까. 그들은 영능력에 대한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나와 친하게 지내려 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얄팍한 호기심에 상처입고 지금 이순간도 괴로워 잠못들고 있는데 말이다.
의사도 병원 안에서야 의사지, 밖에선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병원 안의 의사만 기억하고 밖에서도 ‘그 훌륭한 의사’를 기대한다면 실망밖에 더하겠는가. 나도 마찬가지다. ‘법당’안에선 영능력자지만, 법당 밖에선 그저 평범한, 인간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는 ‘친구’를 포기한 지 오래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지독히 ‘외롭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별을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절대 외롭지 않다. 왜냐하면 철저히 혼자인 사람은 이미 전체와 하나된 사람이기 때문에…’라고.
사랑해야 장점이 보인다
고집 세고 엉뚱한 에디슨을 문제아로 낙인찍을 수 있지만, 신념이 굳고 창의력이 왕성한 아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누구에게는 단점으로 누구에게는 장점으로 보일까요. ‘애정’때문입니다. ‘사랑’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장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하고 남의 장점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자신의 장점이 보일것입니다.
만약 학부모인 당신이 자녀의 학교에 불려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댁의 자녀는 바보입니다. 2+2가 4라는 대답을 못합니다. 오히려 선생님인 제게 왜 4가 되냐고 물어봅니다. 저번에는 불타는 게 신기하다고 헛간에 불을 지르지 않았습니까? 좀더 정확히 말하면 댁의 자녀는 학교에 입학한 이래 단 한번도 정신을 집중해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강아지의 코가 왜 항상 젖어있는지, 왜 개는 걸어가면서 오줌을 누는지 가끔 이상한 질문만 합니다. 바로잡아주려고 아무리 야단 치고 벌을 세워도 소용없습니다. 회초리를 들어도 묻는 말엔 대답조차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무척 속이 상할 것입니다. 남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의 귀여움도 받고 우등상장도 타오는데, 제 자식은 학교생활에 적응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하니 말입니다. 학교를 옮기는 것도 생각해보고, 개인교사도 붙여보고, 아동 성격장애 클리닉도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학교는 이제 그만두고 집에서 제가 가르쳐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간단한 글과 산수를 가르쳤습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책을 사주었고, 어린 나이에 야채장사를 한다고 하면 야채장사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최소한의 것만 가르치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했습니다. 오늘날의 에디슨은 이렇게 있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의 선생님과 어머니의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선생님은 단점만 본 것이고, 어머니는 장점만 본 것입니다. 고집 세고 엉뚱한 에디슨을 문제아로 낙인찍을 수 있지만, 신념이 굳고 창의력이 왕성한 아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누구에게는 단점으로 누구에게는 장점으로 보일까요. ‘애정’때문입니다. ‘사랑’때문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장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연애시절에는 상대방의 방귀냄새조차 감미롭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이치로’는 뛰어난 야구선수입니다. 그러나 그는 1992년 신인 드래프트로 일본 프로야구에 입단할 당시 유망주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야구는 기본기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이치로는 투구 동작이나 공 처리에 있어서 두세 번 꺾어서 동작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연습 시에 그는 코치의 눈 밖에 났고 늘 이군을 전전했습니다. 그러나 한 감독이 그의 방망이 휘두르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선수의 장점을 보라’며 코치진을 설득했습니다. 이치로는 기본기 연습대신에 오직 배팅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치로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 감독이 단지 야구선수로 이치로를 보았다면 아마 남들처럼 단점만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조건 없는 애정의 눈으로 살폈기 때문에 그의 장점을 볼 수 있었고, 그 장점을 발휘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함께 있습니다. 장점이 아무리 많더라도 하나의 단점만 본다면 상대방은 단점 투성이가 됩니다. 세상은 단점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장점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는 장점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냄비근성이 있다’, ‘뭉치면 모래알 같다’, ‘강자한테 비겁하고, 약자에게 군림한다.’ 등등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단점을 비관한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6.25전쟁 후 반세기만에 세계 11위의 무역국이 되었고, 80달러도 안되던 국민소득이 이제 20,000달러를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 깊고 높은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이제 아시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제 한국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 있습니다. 남들이 인정한 장점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자신을 자학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당사자가 여덟 가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한두 개의 단점만을 노려보며 세상과 자신을 원망합니다. 돈이 없다, 가난하다, 학력이 없다, 몸이 약하다, 못생겼다.....그러나 센스가 있고, 손재주가 있고, 근면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기 않고, 성실하고, 꾸준하고, 겸손하고, 남에게 믿음을 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심지어 살아있는 사실조차도 얼마든지 장점이 되는데 말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하고 남의 장점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자신의 장점이 보일 것입니다.
흑인보스와의 한판 승부
1990년 말. 나는 뉴욕에서 발행중인 한국일보에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 수기>를 연재 중인 작가로서 초청받아 처음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습을 저지하기 위해 걸프만에 모든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어,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일정에 다라 뉴욕주재 한국일보사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나의 영능력에 대한 소문을 들은 지국장께선 언제쯤 전쟁이 일어나겠냐며 조심스레 물었고, 그때 나는 웃으며 “91년 1월 17일경에 발발하지 않을까 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1991년 1월 17일. 세계의 모든 신문의 톱뉴스는 단연 <걸프전 발발>이었다.
그날, 뉴욕 발행 한국일보는 걸프전 뉴스와 함께 나의 걸프전 예언 사실을 보도했고, 이쯤되자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내가 묶고 있던 스탠퍼드 호텔에는 연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중에서 마흔이 넘도록 자식이 없는 부부도 찾아와 자식갖기를 희망하길래 정성껏 기(氣)를 넣어주며 기도 올려드렸다.
그리고 4개월 후, 뉴욕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한 남자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그 불임부부의 남편되는 사람으로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게 아닌가. 얘기를 들어보니, 나의 기를 받은 후,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자리를 원해 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얘기인가. 그러나 진짜 얘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 남자는 할렘가에 피시마켓(Fish market), 즉 물고기 도매상을 내게 되었는데, 이 할렘가는 마이클 잭슨 등 유명한 흑인가수를 배출해 낸 할렘 중의 할렘으로,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보스의 허락없이는 가게를 오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스가 나를 만나게 해주면 가게 오픈을 승낙해 주겠다 했으니 제발 보스를 만나달라는게 아닌가. 아기까지 생겼는데 가게를 오픈하지 못하면 생계가 어려워질 게 뻔해, 그러자고 말한 뒤, 그의 차에 탔다.
잠시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국 최고의 우범지역인 바로 그 할렘이었다. 그는 내게 ‘몇 년전 일본기자가 취재차 이곳에 들어간 이후로 다신 나오지 못했다’며 조심스레 보스의 사무실로 나를 인도했다.
그와 함께 간 어둠침침한 사무실에는 거대한 몸집의 흑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액션영화에 나오는 흑인보스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 진짜배기랄까. 어떤 공포스런 힘까지 느껴졌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명상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다. 당신은 엄청난 염력을 갖고 있다는데 어디 여기서 한번 내 몸을 붕뜨게 해 보라. 그렇게 못할 경우, 당신은 이 곳을 나가기 힘들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적어도 그의 몸은 150킬로그램은 넘을 것 같았다. 아무리 염력이 강하다 할지라도 150킬로그램의 몸을 붕-뜨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염력 사용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데 이 더러운 할렘에서는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그 순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시계를 서게 하거나 거꾸로 돌리게 했던 것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장난치듯 사용했던 염력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 잘 보라. 내가 이 손목시계를 멈추게 하겠다!”고 말한 뒤, 온 힘을 다해 염력을 사용하자 시계는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이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겠다!”고 말하고 아까보다 더 강한 염력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렸더니, 그들은 슬슬 내 눈치만 살피는 게 아닌가.
이때다 싶어 손가락으로 보스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당신의 심장을 멈추게 하겠다!”
그러자 위풍당당했던 흑인 보스는 ‘오! 노!’하고 사색이 되어 도망가고 말았다.
물론 나는 무사히 그곳을 나왔다. 뿐 아니라 받고 싶지 않은 수고비가지 받았다.
차를 타고 렉싱턴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구토와 현기증이 밀려와 걷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염력을 사용한 탓이었다. 걷다가 문득 허리춤이 허전해 자세히 살펴보니, 혁대의 버클이 반동강으로 잘려나가고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혁대 버클이 반동강으로 잘려나갔다고 한다. 물론 그 보스의 버클도 함께 말이다.
슬플 때
나를 만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소위 ‘예약’이란 것을 한다. 사실 예약을 한다 해도, 언제 만나게 될진 나조차 모르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예약’을 걸어놓았다는 것에 위안을 받곤 그렇게 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선 한달이건, 두달이건 마냥 기다리는데 정말 죄송스러울 따름이다. 그동안에 쌓여왔던 그 해결되지 못해 마냥 답답해해 왔던 문제거리들을 안고 또 나를 만나는 그날까지 얼마나 고생들을 하실까. 하지만, 워낙에 많은 분들이 상담날짜를 예약하고 계시기에 그저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이 ‘상담’시간에 발생하는 희비쌍곡선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며칠 전 상담시간에 발생한 사건. 안과의사인 30대 여성 모씨의 방문을 받은 나는 그녀와 함께 덩달아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까닭은 그녀가 7년만에 임신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구명시식 후에…. 그녀는 임신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기뻐 내게 아기이름을 지어달라며 한걸음에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녀가 내게 처음 찾아왔었을 땐, 7년동안의 불임클리닉으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듯, 매우 초췌하고 야윈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의 그녀에게선 예전의 모습이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던 것이다.
“임신하시더니, 얼굴이 더 좋아지셨네요?” 내 말에 그녀는 정말 편안하고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법사님 덕분에 임신에 성공했으니, 이제 법사님께서 애 이름도 지어주세요!”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정말 매일매일 이렇게 좋은 소식과 행복한 사연만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는 게 현실인 법.
지금으로부터 6년 전, 한 가장이 운전중 사고로 동승하고 있던 자신의 부인과 딸, 처제가 모두 생사를 달리하고 자산만이 목숨을 건지자, 6년동안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얼마전 내게 찾아온 일이 있었다.
6년만에 방문한 그는 몰라보게 야위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자신의 부인과 딸, 그리고 처제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괴로움에 찌들어 있었는데…
“법사님, 정말로 그 사고는 막을 수 없었습니까?”
축처진 어깨에, 생을 포기한 듯한 그의 질문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의 사고’. 물론 그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영매자’이기에, 그 사고를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말, 그 사고를 내가 막을 수 있었을까?
이 우주에는 우리의 판단 기준속에서 판단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분명 우리가 느끼기에 ‘저것은 나쁜 일’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판단기준이 존재해 두 일들을 저울질해 대지만, 사실 우주법칙에서는 ‘저울질’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우주에는 ‘가감’, 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잣대는 단 하나 ‘필연’이라는 이름의 저울 뿐. 바로 이 안에서 ‘업’이 결정되는 것이다. 즉, 그네들을 죽음의 길로 이르게 한 것 역시, ‘업’이라 할 수 있다.
6년전, 생전의 그네들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무서운 죽음의 기운을 느꼈었다. 그 남자의 아내가 딸만 셋이니 아들을 낳고 싶다했을 때도, 나는 죽음의 기운이 느껴져 아들을 낳지 말라고 부탁했을 정도였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로선 그네들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의 사신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기도를 하고, 몇 번씩이나 영적으로 그네들의 죽음을 막아보려 노력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 그들은 결국 교통사고로 이승과의 인연을 끝내고 저승으로 떠났고, 홀로 남은 남편만이 아내와 처제, 그리고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이 남기고 떠난 그늘 밑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상담시간이 끝나자, 쓸쓸히 걸어나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도 한번 영매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야 말았다. 죽음을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영매자로서의 한계. 그 한계를 누구보다 처절하게 깨달은 나이기에 그보다 먼저 간 그의 아내와 딸, 그리고 처제의 영혼을 위해 나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발 다음생에서는 정말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간절히 기원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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