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로 시작하는 중국 산둥(山東)성의 타이산(泰山). 그 산이 우리 소백산보다 더 낮다는 걸 말입니다. 그럼에도 왜 그 산이 중국인들에게는 ‘하늘과 맞닿은 산’이 되는지, 그 높이의 아득함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파르고 긴 돌계단을 밟고 올라간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떠들썩하고 혼잡스러운 항구도시로만 알고 있었던 칭다오(靑島)가 실은 중국의 다른 대도시와는 다른 차분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칭다오의 라오산(山)이 그토록 장엄한 암봉들을 거느리고 있는지도, 그 암봉에 올라 바라보는 황해의 풍경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도 이번의 여정을 통해서 알게 됐습니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만난 중국이 그 넓은 땅의 전부일 리 없습니다. 휴가시즌을 앞두고 산둥성의 타이산과 라오산에서, 칭다오와 지난(濟南)을 둘러봤습니다. 비행기로 건너가면 고작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 손을 내밀면 곧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더 매혹적인 그곳으로 찾아갑니다. # 타이산에서 고행이 곧 희망이 되는 모습을 보다 중국의 타이산. 조선조 문인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에 나오는, 그 태산이다. ‘걱정이 태산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말할 때의 태산 말이다. 그 산에서 만난 풍경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 하나. 웃통을 벗어젖힌 한 아버지가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잠든 아들을 안은 채 타이산 정상의 관문인 난톈먼(南天門)으로 이어지는 까마득한 계단을 걸어서 올라오고 있었다. 달궈진 양철 지붕 같은 뜨거운 날씨였다. 산 아래 대묘에서 타이산 정상까지의 돌계단 숫자는 무려 7000개가 넘는다. 가파르기도 만만찮다. 남자는 과연 어디서부터 아이를 안고 올라온 것일까. 막 샤워라도 마친 것처럼 남자의 온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건 등산이 아니라 마치 고행과도 같아 보였다. 고행은 그 아버지만 하는 게 아니었다. 2위안(약 320원) 남짓 하는 나무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해 한 발 한 발 어렵게 계단을 오르는 노인들이 적지 않았다. 타이산에는 정상의 턱밑까지 오르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하지만 케이블카를 놔두고 걸어서 정상에 오르는 이들의 비율이 절반쯤 된다. 처음에는 우리 돈 2만 원이 넘는 ‘턱없이 비싼 케이블카 요금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이산 풍경구(風景區) 담당 공무원의 설명. “열 명 중에 다섯 명은 케이블카를 타고, 나머지 다섯 명은 걸어서 올라온다. 걸어서 오르는 것은 첫째 ‘산에 정성을 바친다’는 생각 때문이고, 두 번째가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이산에 오른 중국인들은 누구나 정상의 사원에서 ‘타이산 할머니’에게 기도를 올린다.” 타이산을 오르는 중국인들의 모습에서 설악산 봉정암까지 고무신을 신고 허덕허덕 오르는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우리 할머니들이 봉정암에 오르는 목적이 어디 ‘등산’이나 ‘유람’이었을까. 그들에게 힘겨운 산길이란 ‘자식을 향한 기도’에 바치는 고행이었다. 기도가 간절할수록 길은 더 어려워야 했다. 극한의 고통이란 정성을 바쳐야만 그 덕이 자식에게 돌아갈 것으로 믿었다. 케이블카를 버리고 두 발로 타이산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중국인들의 마음도, 잠든 아들을 안고 오르는 아버지의 마음도 아마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타이산(泰山)의 높이는 1545m. 우리의 태백산(1567m)이나 오대산(1563m)보다 낮다.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위시한 수천m 급 거봉들을 거느린 중국에서 2000m 이하의 산은 그야말로 ‘산 축에도 못 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이산은 다르다. 타이산은 예부터 중국이 숭상해왔던 이른바 ‘오악(五岳)’중의 하나다. 다섯의 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혔다. 진시황 때부터 청나라의 건륭황제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황제들은 신하들을 이끌고 타이산에 올라 성대하게 재를 올렸다. 하늘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인정받는 장중한 의식이었다. 황제라고 아무나 타이산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신하를 다 데리고 황제가 한 달쯤 수도를 비워도 끄떡없을 만큼 나라가 안정돼있어야 했다. 황제로서 합당한 덕과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지 않은 황제가 타이산에 오르겠다고 나서면 신하들이 목을 내걸고 반대하며 일어섰다. 황제조차 선택된 이들만 무릎을 꿇고서 빌었던 산이니, 일반 국민들에게 타이산이 주는 그 영험함의 크기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타이산이 그 높이와 규모와는 무관하게 ‘거대한 산’으로 인정받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황제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세상을 굽어보고 있는 산. 중국 사람들은 누구나 생전에 한 번은 타이산에 오르기를 꿈꾼다. 타이산을 끼고 있는 작은 도시 타이안(泰安)의 밤거리에는 나무로 깎은 지팡이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들이 그득했다. 똑같아 보이는 지팡이를 고르고 또 고르는 중국인들의 얼굴에서 들뜬 표정이 읽혔다. 아마도 ‘평생 소원’이라는 타이산에 오르기 위해 소원 몇 가지를 소중하게 품고 온 이들이었으리라. # 타이산, 황제가 머리를 조아린 하늘과 닿는 산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이산의 산세는 너무나 익숙했다. 무협지에나 나오는 선경(仙境)은 거기 없었다. 골짜기마다 구름이 피어오르지도 않았고, 수묵화 같은 폭포도 없었다. 산은 기기묘묘한 대신 육중하고 묵직했다. 암봉은 우리 산의 그것과 흡사했다. 다만 산정에 도교 사원과 송나라 때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종루, 여관, 찻집, 음식점들이 하나의 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독특했다. 이름하여 하늘의 길,‘천가(天街)’다. 그것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이 산 곳곳에 세워지거나 새겨진 글귀들이었다. 비석 글귀에는 진시황과 공자의 행로가 담겨 있었고, 한나라·수나라·당나라·청나라의 황제와 문사들이 남긴 흔적들이 돌부리처럼 발끝에 차였다. 산이 품고 있는 건 2000년이 넘는 시간들이었다. 그 산을 오른다는 건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대업을 꿈꾸며 이 산을 올랐던 일흔두 명의 황제와 그 황제를 뒤따르던 신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고, 소박한 소망을 품고 지금도 힘겹게 그 산을 오르는 중국인들과 나란히 발자국을 찍어보는 일이기도 했다.
대묘는 타이산의 들머리인 ‘홍문’을 거쳐 타이산 정상과 직선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타이산에 오르려거든 대묘를 거쳐 홍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택하는 게 황제의 길을 따라가는 바른 순서다. 한데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톈와이톈(天外天)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중턱까지 오른 뒤에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타이산의 9분 능선까지 단숨에 오른다. 홍문으로 오르면 정상까지는 꼬박 4시간, 케이블카 승강장까지 2시간 남짓 끝없이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을 딛고 오르는 수고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산에 오른 한국인 관광객들 중에서 ‘생각보다 산이 낮고 시시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이들이었다. 반면 홍문 코스를 택해 제 발로 거의 수직에 가깝게 일어선 돌계단을 딛고 오른 이들은 협곡의 계단을 오르며 중국인들이 믿었던 ‘하늘의 세상’에 감탄했다. 중국인들은 세상을 ‘하늘 아래’, 즉 천하(天下)로 보았고,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로 등극하는 것은 곧 하늘의 명(命)을 받은 것이었다. 그 명을 내린 하늘에 이르는 길이 바로 타이산으로 오르는 길이었으니 그 길이 쉬울 리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계단길 옆으로는 도교 사원 벽하사와 불교 사찰, 유교의 정신이 서로 몸을 섞고 있었다. 바위마다 새겨진 석각들은 마치 두루마리 화첩을 풀어놓은 듯 펼쳐졌다. 길흉화복에 대한 도교적 성찰과 명사들이 남긴 시문의 글귀를 하나하나 곱씹어가며 오르노라면 마치 오래 읽어 반질반질해진 책 한 권을 읽으며 걷는 듯한 느낌이다. 타이산은 무릇 이렇게 올라야 제 맛이다. 타이산은 높이와 경치로만 보는 산이 아니니 유람이나 등산의 개념만으로는 타이산의 깊이를 눈치 챌 수 없다. 하늘과 닿아 사라지는 듯한 계단 끝의 난톈먼을 숨이 턱에 닿은 채 들어서 옥황상제를 모시는 옥황전 정상에 올라봐야 왜 이리도 많은 중국인들이 평생 한 번이라도 타이산에 오르기를 꿈꾸는지, 현실세계에 구현된 도교의 믿음이 가닿은 하늘이 어떤 모습인지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 바다를 굽어보는 명산, 라오산에 오르다 타이산의 높은 명성에 뒤로 밀리긴 했지만, 타이산을 찾아간다면 라오산(山)을 먼저 오르는 게 순서다. 타이산은 산둥성의 성도(省都)인 지난(濟南)의 공항에서도 인천공항까지 항공기가 운항하지만, 항공편이 많고 겸사겸사 관광지도 들를 수 있는 칭다오(靑島)로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칭다오에서 타이산 자락의 도시 타이안까지는 고속열차로 3시간 남짓. 그러니 대개 타이산을 찾는 이들은 칭다오로 들어가게 된다. 칭다오 동북쪽에는 라오산이 있다. 도심에서 차로 40㎞ 정도 거리라 그다지 멀지 않다. 칭다오 시내의 라오산관광센터에서 등산로 초입까지 버스가 수시로 운행하고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라오산은 흔히 ‘해상제일명산(海上第一名山)’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에서 바다에 가장 가깝고 가장 높이 솟은 산이 바로 이곳 라오산이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는 1133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라오산은 먼 발치에서부터 범상찮은 자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산군들이 온통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남조시대 문인 심약은 ‘제기(齊記)’에서 ‘타이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라오산만 못하다’는 글을 남겼다. 역사나 의미를 다 걷어내고 산세와 기이한 경관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얘기다. 라오산은 북한산의 암봉에다 관악산을 잘 비벼 놓은 듯한 모습인데, 다만 대국답게 산의 규모가 커서 설악산의 1.2배에 달한다.
편안하게 라오산을 유람하겠다면 해안가의 너른 차밭을 지나 깎아지른 해안도로를 타고 도교 사원인 타이칭궁(太淸宮)을 둘러본 뒤 양커우(仰口) 유람구 쪽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랐다가 사자봉을 보고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먼저 들르는 타이칭궁은 도교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라오산은 후베이(湖北)성의 무당산과 함께 도교의 명산으로 꼽힌다. 그 전통이 자그마치 2150년이다. 딱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거목 한 그루가 타이칭궁의 경내에 있다. 마침 중국 무협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복장을 한 승려들이 타이칭궁의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고요한 사원의 비질 소리를 듣노라니 초록의 숲속에 들어선 사원이 마치 신선의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즈음 타이칭궁 뒤쪽에는 노자의 거대한 석상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라오산 풍경구의 한 직원은 “평생 은거를 꿈꾸던 노자가 만일 후손들이 자신의 석상을 세운다는 사실을 안다면 크게 화를 냈을 것”이라며 웃었다. 라오산 양커우 유람구 쪽에는 리프트를 운행하고 있는데 코스 중간쯤에서 한 번 리프트를 내리는 자리가 있다. 이곳의 리프트는 끝까지 오르는 것보다 중간에서 내려 사자봉을 찾았다가 내려오는 게 낫다. 리프트에서 내려 평탄한 산길로 10분쯤 가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한쪽으로 입을 딱 벌리고 있는데, 그 형상이 사자와 같다고 해서 사자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돌계단을 딛고 사자봉의 입 안에 서면 일대의 암봉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사자 머리 위쯤으로 올라서면 발 아래로 부드럽게 휘어진 해변과 주황색 지붕의 집들이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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