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3월호부터 중국 오악(五岳)을 연재한다. 오악은 동악 태산, 남악 형산, 서악 화산, 중악 숭산, 북악 항산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산악국가다. 고대로부터 산신숭배사상을 믿어 왔다. 신앙의 원천이 산이었다. 이를 산악신앙이라 부른다. 샤머니즘과 관련된 산악신앙은 이후 국가안위와 영토보존으로까지 개념이 확장된다. 국가를 통일한 황제들은 오악에 올라 자기존재를 만천하에 과시하는 동시에 옥황상제한테 제례를 올리는 봉선(封禪)의식으로까지 발전했다.
단순한 오악의 개념이 아니라 국가통치와 국민안녕이라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오악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은 한국에도 미쳤다. 이에 한국의 대표적인 동양학자인 조용헌 박사와 풍수학자인 최원석 경상대 교수와 함께 중국 오악이 어떤 산이고, 어떤 황제가 오갔고, 어떤 역사와 신화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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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자연유산구역인 장가계 무릉원의 봉우리가 마치 하늘을 찌르는 듯 우뚝 솟구쳐 있다. 자연풍화작용으로 생긴 봉우리들로 무릉원의 자연경관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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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악 형산(衡山·1,300.2m). 도가에서는 제3 소동천(小洞天)이라 부른다.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그만큼 신비하고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물론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구역이다. 중국 국가중점풍경명승구, 국가5A급 관광구, 국가자연보호구 등으로 지정된 곳이다. 자연만으로도 세계와 중국이 인정했다는 의미다. 주변엔 수많은 명승과 고찰이 있어 사계절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방문일정은 4박5일. 일정상 차로 2시간 거리인 장가계(長家界)를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장가계도 오악 못지않은 명승지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이드는 “일본 방문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에 조용헌 박사는 “역시 한국 사람들이 산을 좋아한다. 일본 사람들은 중국의 산보다는 역사나 신화가 있는 유럽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일본 사람들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조금 깨끗하지 못한 중국을 별로 찾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의 관광지에 한글 안내 브로슈어가 있는 곳이 많다. 반면 일본 브로슈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3년 중국관광국에서 발표한 중국방문객도 한국이 407만 명(2012년 기준)으로 일본보다 많았다고 한다.
장가계는 중국 최초 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세계 최초의 세계지질공원이기도 하며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마치 조물주가 심어놓은 듯한 각 봉우리들은 신선이 살고 있는 듯 지상의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관광안내책자에는 무릉원(武陵源)이라고 표시돼 있다. 오악보다 방문객이 더 많다고 가이드가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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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하제일교의 한쪽 봉우리에서 반대쪽 봉우리를 바라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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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다지역서 융기된 카르스트 지형
장가계는 장가계국가삼림공원과 양가계자연보호구, 천자산자연보호구, 무릉원의 4개 구역으로 나뉜다. 원가계, 양가계, 천자산·천문산도 이곳에 포함되어 있다. 무한한 자연의 신비를 자아내는 영화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이곳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영화에 동양적 사상이 물씬 풍긴다.
장가계의 원래 이름은 대용(大庸)이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훨씬 전 조그만 남방국가로 있을 때의 이름이 용국(庸國)이었다. 대용은 용국의 주요 소재지였다. 현대 들어서까지 대용이란 지명을 쓰다가 등소평이 집권 후 행정개편을 하면서 장(長)씨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1994년 장가계로 바꿨다고 한다. 원가계는 원씨, 양가계는 양씨들이 많이 산다.
장가계로 들어서자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도저히 다닐 수 없는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카메론 감독이 이곳에서 충분히 영감을 얻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다.
풍수학자이지만 지리학을 전공한 최원석 교수는 “이곳은 원래 바다였습니다. 지각변동에 의해 융기된 지역이죠.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입니다. 장가계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에서 바다화석이나 조개껍질과 같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조금 올라가다가 돌계단이 나온다. 가이드는 168개라고 한다. 조금 가파르긴 하지만 태산이나 황산을 오르는 수천 개의 계단에 비하면 가소롭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입이 쩍 벌어질 산정호수가 나온다. 협곡을 막아서 만든 인공호수, 보봉호(寶峰湖)다. 정말 중국인들의 스케일은 상상을 불허한다. 안내도에 나와 있는 보봉호의 크기는 장가계 전체와 맞먹을 정도다. 길이는 2.5km, 면적은 274ha에 달한다고 소개돼 있다. 산꼭대기에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의 호수를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상상해 보라. 깊이는 무려 72m.
보트를 타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데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물에 비쳐 마치 신선놀음 하는 것 같다. 봉우리를 하나 돌자 여자가 나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방문객을 맞는다. 또 다른 봉우리를 하나 돌자 묵직한 바리톤의 남자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가히 명불허전 장가계다. 초반부터 방문객의 기를 꺾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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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봉우리 사이를 막아 산정호수를 만들었다. 보봉호라 불리는 산정호수는 깊이가 무려 72m나 되고, 길이도 2.7km에 달한다. 2 최원석 교수가 출발하기에 앞서 지형과 풍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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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조화 이룬 보봉호 보며 조박사·최교수 해설
조 박사와 최 교수가 이를 보고 가만있을 리 없다. 먼저 조 박사가 운을 뗀다.
“바위와 물은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관계입니다. 산에 있는 바위에서 화기가 나오고 물은 그 화기를 감쌉니다. 물은 여자, 바위는 남자인 셈이죠. 물이 없는 산은 홀아비 산입니다. 이런 깊은 산에 인공이지만 물을 조성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물이 때로는 비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어 최 교수도 풍수적으로 해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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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는 고래로 산수가 조화를 이뤄야 명당입니다. 산수란 개념도 아시아적 개념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말 자체가 없습니다. 자연명당도 중요하지만 가꾸는 비보명당도 중요합니다. 여기 보봉호가 없는 산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 삭막한 봉우리 틈을 막아 호수를 만드니 이렇게 운치가 있지 않습니다. 애초에 풍수를 고려하지 않았겠지만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런 게 바로 비보입니다. 비보는 경관을 살리는 풍수입니다.”
조 박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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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가서 ‘물 좋다’고 하면 예쁜 여자들 많이 온다는 건데, 물이 좋으니 나이트클럽도 좋아진다는 의미와 같은 겁니다.”
두 전문가가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설명하니 참가자들은 듣다가 질문하기 여념이 없다. 호수에는 선녀봉, 공작봉, 두꺼비봉과 같은 온갖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비치색의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봉우리와 호수의 조화에 신선이 된 듯 자연의 감흥에 겨워 감동을 안은 채 내려왔다. GPS로 고도를 확인하니 불과 395m밖에 되지 않았다. 수직벽 봉우리를 막아 호수로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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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수렴동의 환상적인 모습과 손오공이 무술을 하는 모습이 잘 어울린다. 4 보봉호 올라가는 길에 원숭이공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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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무릉원(武陵源)으로 향한다. “무릉원은 중국의 유토피아”라고 조 박사가 말한다. 한국의 유토피아는 십승지다. 조 박사는 이름으로 무릉을 풀이한다.
“武(무)는 무예나 전쟁을 뜻합니다. 전쟁이 났을 때 陵(능)으로써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능이 막고 있으니 외부에서 아예 볼 수 없죠. 평화롭게 보이는 겁니다. 옛날부터 전염병, 가뭄, 전쟁 삼재(三災)를 막는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릉이고 승지입니다.”
외부에서 평화롭게 보이는 장가계는 예로부터 도적소굴이었다고 한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깎아지른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으니 외부인들이 감히 들어올 수 없었다. 외부인들은 마음 놓고 가다가 장가계 부근에서 도적떼를 만나 전부 털리곤 했다고 한다.
그 장가계의 무릉원은 과연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들어서자마자 골바람이 세차게 분다. 최 교수는 “이런 세찬 골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바람맞은 이빨이 풍치고, 사람도 이런 골바람을 맞으면 병이 든다” 강조하고, “풍수에서 골바람을 피하라고 한다. 경치는 아름답지만 사람 살 곳은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골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전부 사람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의 피뢰침 같은 봉우리들로만 산이 구성돼 있다. 그 봉우리 중에 정상 부근이 평평한 봉우리를 케이블카로 연결시켜 사람들이 올라올 수 있게 만들었다. 걸어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봉우리들이다. 수직벽과 같은 봉우리들이 족히 수백 개는 돼 보인다.
그런 봉우리들을 옆에서 내려다보니 한편으로 아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도저히 신이 아니면 빚을 수 없는 환상적인 자연이다. 정상 봉우리에서 걸어 다니는 코스도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잔도(棧道)가 대부분이다. 길 아래로는 천 길 낭떠러지다. 쳐다만 봐도 오금이 저리고 아찔하다. 이런 곳에 길을 내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상상하기 힘들다.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시킨 그 유명한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가 눈앞에 있다. 인간이 연결시킨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다리고, 하늘 아래 첫 다리라고 해서 ‘천하제일교’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폭은 2m, 두께는 5m. 지상 400m 위에 형성된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시킨 천연다리다. 정말 절묘하다.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사람들은 잘도 걸어 다닌다. 꼬불꼬불한 길과 아슬아슬한 잔도를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로 3시간 남짓 걷고 원점회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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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날 도적소굴이었던 장가계의 명성에 걸맞게 외부에서는 전혀 보지 못할 정도의 봉우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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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최고봉 축융봉은 장수와 축복을 의미
마지막 날 일정이 남악 형산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다리다 형산으로 향한다. 형산 아래 남악묘(南岳廟)에 형산을 소개한 글이 있다.
‘후난성(湖南省) 남쪽 중앙에 위치한 형산(난유산라고도 부른다)은 중국에서 유명한 오악 중의 하나다. ‘오악독수(五岳獨秀·The Ranking Mount of Big Five)’ ‘문명오구(文明奧區·Cultural Mecca’ ‘중화수악(中華壽岳·Mount Longevity)’ ‘종교성지(宗敎聖地·Religious Sanctum)’ 등으로 유명한 산이다. 모두 72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그중 44개가 난유성에 있다. 난유산의 주요 봉우리는 주롱봉(Zhurong Peak·축융봉)인데, 해발 1,290m다.
형산은 긴 역사와 찬란한 문화, 엄청난 유적지와 황홀한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불교와 도교의 공동성지(co-shrine)이며, 후시앙학파(Huxiang School of Thought·湖湘學派, 과거 유학의 경전을 통해 인간 심성의 원리를 깨닫고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찾고자 했던 주희 이전의 유학의 큰 흐름으로 창시자는 호굉胡宏, 성性을 가장 중요한 만물의 이치이자 천하의 근본이며 理와 氣의 근원으로 파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경관은 계절마다 화려하면서 경탄스럽고, 심오하면서도 우아하게 변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로 흘러 다니는 구름은 환상적이다. 중국 국가5A경관지구와 국가 주요명승지로 지정돼 있다.’
남악묘에는 중국 불교와 도교, 유교 등 모든 종교의 성자와 산악숭배의 대상인 산신을 봉안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의 정원까지 조성돼 있다. 남악묘 주변에는 향을 파는 상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향 파는 가게가 전체의 70~80%를 차지한다. 이들은 남악묘에 절을 하고 형산에 올라가 다시 기도를 하는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이드는 소원을 빌러 형산에 올라가는 중국 관광객만 연 30여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2010년 외국인 방문객은 420만 명을 훌쩍 넘겼고, 이들로부터 거둔 수익은 4,760억 원(27억7,500위안)이나 된다고 중국 관광 홈페이지에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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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조용헌 박사가 남악묘를 바라보고 있다. 3 우뚝 솟은 봉우리가 신기한 듯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모습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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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형산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장가계는 카르스트 지형이고, 무릉원은 석회석 지형인데 반해 형산은 화강암 지형”이라고 말한다. 조 박사는 “화강암 지형에서 강한 기운이 나온다”고 덧붙인다.
현지 가이드는 “황제가 100여 차례 이상 가장 많이 방문한 산”이라고 소개한다. 옆에 있던 조 박사는 “수도 북경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반란이 많이 일어나 이를 다스리기 위해 황제가 자주 왔을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형산에 올라가기 위해서 또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가이드가 설명한다.
“정상 축융봉(祝融峰)은 높이 1,300.2m이고, 1,000~1,100m 봉우리가 20여 개, 1,100m 이상 되는 봉우리가 17개에 달합니다. 그리고 72개의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어 장관입니다. 정상 축융봉은 장수를 축복하는 봉우리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향을 들고 가서 소원을 빌며 기도합니다. 축융봉은 도교의 신이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장가계 천문산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중국 오악 중에 남악입니다.”
조 박사가 다시 나선다.
“정상 축융봉에 가면 장수를 상징하는 하늘의 별자리 노인성이 잘 보인다고 합니다. 노인성을 3번만 보면 장수한다고 전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볼 수 없답니다. 그래서 장수를 축복하는 봉우리로 유래한 듯합니다. 주자 선생이 축융봉에 글을 남겼습니다. 형산은 화강암이니 아마 기가 셀 것입니다. 최고 좋은 바위는 맥반석입니다. 한국의 월출산이 이에 해당합니다. 맥반석 산은 세계 어느 곳에도 잘 없습니다.”
다시 최 교수가 거든다.
“우리나라의 금강산, 설악산, 북한산, 속리산, 관악산 같은 화강암 지대는 풍화가 돼서 꽃처럼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또한 물이 맑습니다. 화강암이 필터링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곡물도 좋습니다. 석간수를 마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대개 화강암 지대는 수려하고 맑은 기운이 감돌아 사찰 많고 수행도량으로 적당합니다. 형산의 72개 봉우리도 화강암 산지가 풍화돼서 형성됐으리라 봅니다. 지리산이 한반도의 남악이듯이 형산도 남악이라 산천제를 지냈습니다. 황제가 남쪽을 관리하기 위해서 남악에 산천제를 지내는 관리인을 두었습니다. 그 관리인이 주희 선생이었습니다. 주희 선생은 관리가 되면서 성리학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형산은 도교의 발상지이지 유교의 성지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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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보봉호에는 선녀봉, 공작봉, 두꺼비봉 등 여러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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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든 구름 때문에 정상 못 가
조 박사는 당시 정치적 배경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뭇 세력들이 오악을 차지하려는 다툼을 벌였을 것입니다. 오만 종교도 오악으로 모였습니다. 정치적 산의 공간적 점유를 위해 다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중국의 실질적 종교는 도교입니다. 50%가량 되고, 불교가 30%, 유교가 20% 정도 차지합니다. 물론 모택동 이후 모두 불태워지고 산산조각 납니다. 우리나라 TV 드라마 ‘별 그대’가 중국에서 크게 히트한 것은 한류붐보다는 그 내용이 300세까지 불로장생하는 도교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도교는 서민종교입니다. 도교는 중국 토착적 정서를 지녀 서민에게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반면 불교는 머리 깎고 수행하는 일종의 부르주아 종교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대응개념으로 불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기독교와 아편은 매우 금기사항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한 주범으로 여기고 있는 거죠. 중국의 승려들이 한국에 와서 교육받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부패가 만연한 지금 돈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라는 의미로 공자를 부흥시키고 유교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전략적 선택입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는데, 짙은 안개가 한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중국인들도 형산에 올라가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줄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다. 점심 먹고 꼬박 1시간을 기다렸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는 오후 3시쯤, 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내려올 시간과 대기시간을 감안해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다는 판단으로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형산을 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안타깝지만 남악 형산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사실 올라가도 안개가 너무 짙어 72개의 봉우리가 아니라 한 개의 봉우리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형산 정보
중국 중남부 후난성(湖南省) 형산시에 있다. 장사공항에서 버스로 약 5시간 걸리며, 인천공항에서 직항이 운행한다. 위도 27도 정도에 위치하고, 아열대 계절풍 기후에 속해 겨울은 건조하고 차고 비와 눈이 많으며, 봄과 가을은 따뜻하지만 역시 비가 많이 내린다. 연간 강수량이 1,600mm 정도 되지만, 4~9월에만 전체의 60% 이상인 900mm를 뿌린다. 2008년 중국 정부가 공식 집계한 결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10대 명승지’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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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릉원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이 나무 위에 무리를 지어 웅크리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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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오악은 무엇이며, 언제, 왜 생겼나?
산악신앙과 오행사상 합쳐져… 중국 통일 이후엔 통치권 확보용
중국 오악은 동악 태산, 남악 형산, 서악 화산, 중악 숭산, 북악 항산으로 동서남북과 중앙에 있는 5개의 명산을 가리킨다. 오악이 생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대로부터 존재한 샤머니즘과 산신숭배사상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중국 유교 경전 중의 하나인 <이아(爾雅)>에는 ‘전국시대(BC 4~3세기)에 오행사상의 영향으로 오악의 개념이 생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가 봉선제로서는 한(漢) 무제 들어서 시작하며, 한의 선제가 확정했다고 한다. 동악 태산에 가면 공자(BC 551~479)가 남긴 ‘동악 태산 제일’이라 쓴 비석이 있다. 공자는 전국시대보다 앞선 인물이다. 이를 볼 때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BC 259~210) 이전에 오악의 개념이 이미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정컨대 전국시대의 각 나라의 왕들이 산악신앙에 바탕을 두고 각각 산신숭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을 통일한 이후 오악의 성격과 대상도 조금씩 변한다. 한대(漢代)의 5악은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이름의 다른 산으로 조금씩 바뀌다가 지금의 오악으로 정착했다. 산 정상 또는 초입에 도교의 사묘(祀廟)가 있어 제사를 지낸다. 산 정상에는 어김없이 도교 최고의 신(神)인 옥황상제가 있다.
또한 황제들은 정상에 올라 만천하에 자신의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고, 옥황상제로부터 황제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식을 지낸다. 이는 자신이 관리하는 영토의 핵심지역에 오악을 지정함으로써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서도 기능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중세 들어서는 산 그 자체로서의 명성을 이어간다. 명나라 때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서하객(徐霞客)은 지금도 회자되는 5악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5악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볼 필요가 없고,
황산을 보고 나면 오악도 볼 필요가 없다.
(五岳歸來不看山·오악귀래불간산,
黃山歸來不看岳·황산귀래불간악)’
중국의 속담에 오악을 평가하는 말이 현재까지 전한다.
‘东岳泰山之雄(동악태산지웅),西岳华山之险(서악화산지험),中岳嵩山之峻(중악숭산지준),北岳恒山之幽(북악항산지유),南岳衡山之秀(남악형산지수)’
‘태산은 남성같이 웅장하고, 화산은 험하고 위태롭고, 숭산은 높고 길고, 항산은 깊어 숨기 좋고, 형산은 매우 빼어나다’는 의미 정도 되겠다.
청나라 위원(魏源)이 “恒山如行, 泰山如坐, 华山如立, 嵩山如臥, 唯有南岳獨如飛(항산여행, 태산여좌, 화산여립, 숭산여와, 유유남악독여비)”라고 했다. 항산은 마치 걷는 것과 같고, 태산은 앉은 듯하고, 화산은 서있는 듯하고, 숭산은 누운 듯하다. 오직 남악이 홀로 나는 듯하다. 마치 신선이 노는 듯한 표현으로 오악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오악에는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중국 방문객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소득수준이 점차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기복신앙, 즉 자식을 얻게 해주고, 건강하고 오래 살고, 자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출세하도록 기도하는 장으로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서유기> 발원지를 아시나요?
형산 봉우리서 발원한 물이 계곡 만든 ‘수렴동’…영화도 촬영
수렴동(水帘洞·Water Curtain Cave)은 중국의 4대 고전문학작품 중의 하나인 <서유기>의 발원지로 유명하다. 영화 ‘서유기’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남악 형산 72개 봉우리 중의 한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이 연중 폭포로 계속 흘러내린다. 이 물들이 여러 개의 호수를 조성하고 있다. 이 호수로 인해 환상적인 경관을 만든다.
수렴동은 또한 도교의 3대 성지(聖地·sacred land) 중의 한 곳이며, 불멸의 신선이 사는 지역으로 여겨진다. 도교의 26동천으로도 꼽힌다.
수렴동으로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호수가 나오면서 손오공 동상이 호수 중앙에서 무술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삼장법사가 아닌 신선이 나올 만한 곳으로 꾸며 놓았다. 이곳에서도 매화가 벌써 꽃을 피웠다. 홍매다.
가뭄인지 물이 별로 없다. 계곡 바위는 한국에서 보던 그대로다. 우리의 천불동계곡보다 못한 느낌이다. 이런 데서 신선이 산다면 천불동계곡은 신선소굴 정도 되겠다.
계곡 끝까지 올라간다. ‘취면동(醉眠洞)’이 나온다. 자연에 취해서 잠을 자는 동굴이란 의미다. 우리의 인수봉만 한 암벽 봉우리가 나오면서 그 앞에 손오공이 멀리 바라보는 듯 손을 눈 위에 올리고 있다. 그 앞은 호수, 취면호(醉眠湖)다.
제일 꼭대기에 다다랐다. 바위에 글자를 새겨 놓았다.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고. 그 옆에 ‘하거하래 불사주야(何去何來 不舍晝夜)’라고 써 있다. ‘인생이 어찌 가고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과 같이 밤낮 쉬지 않고 흐르는 것이리라’는 뜻 정도 되겠다. 공자의 말씀에서 나온 말이다. ‘쉬지 않고 공부하라’는 뜻이 담겼다고 최원석 교수가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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