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이 관광사업체를 만들어 숙박, 식음, 여행, 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보이는 지역 고유 특색의 관광상품이 있다.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가는 대단위 여행의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여행상품들이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지역주민이 관광사업체를 창업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공동체 발굴부터 사업화 계획, 창업과 경영 개선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관광 두레’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85개 지역에서 발굴한 주민사업체만 600여 개에 이른다. 관광두레는 관광자원이 많은 강원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주민사업체와 상품을 골라봤다. 낙산해변 150m 서핑 전용 허용… 젊은이들 북적이며 지역에 활력 # 주민과 서퍼의 협업과 선순환 강원 양양에는 ‘서프시티’가 있다. 체험 관광객이나 입문자용 기초교육부터 안전요원 양성을 위한 고급 단계까지 사계절 서핑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주민사업체다. 서프시티의 사무실 겸 카페 겸 강의실은 낙산해수욕장 남쪽 끝에 있다. 사무실 앞 솔숲 너머 바다는 서프시티가 독점적으로 이용하는 이른바 ‘서핑 전용 해변’이다. 이 해변은 인근 주민들이 낙산해수욕장을 줄여서 뚝 떼어준 것이다. 해수욕장 마을 주민들이 낙산해수욕장의 과거 명성에 기대지 않고, 관광객과 체험객을 불러오기 위해 젊은이들의 힘을 빌리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낙산해수욕장을 끼고 전진리, 주청리, 조산리 등 세 개의 마을이 붙어있어요. 이 세 개 마을 이장님들이 협의해 아무런 조건 없이 조산리 쪽 해수욕장 150m쯤 해안을 해수욕객이 접근할 수 없는 서핑 전용 해변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그저 젊은이들의 서핑체험과 교육 명소로 만들어달라는 게 조건이었지요.” 이나리(41) 서프시티 대표의 설명. 낙산해수욕장은 오래전부터 양양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지만, 그 명성에 안주해온 탓에 오랫동안 별 변화 없이 정체돼있던 곳이다. 지역적으로는 고령화와 공동화, 일자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주민들이 해변 일부를 서프시티에 떼어 주기로 한 건, 서핑을 매개로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쇠락해가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였다. 서프시티 협동조합은 강원도로 귀촌한 서퍼 다섯 명이 모여 만들었다. 대표는 이 씨가 맡고 있지만, 협동조합의 주축은 남편 이승대(48) 씨다. 이 씨는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선수 출신. 그는 2007년 부산 해운대에서 서핑에 처음 입문했다. 똑같이 보드를 탄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금세 수준급 실력을 갖추게 됐다. 의류업을 하며 취미로 서핑을 즐기던 그가 서핑을 직업 삼아 바닷가 마을로 아예 생활터전을 옮기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2011년 스노보드 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에 갔던 그는 현장에서 후쿠시마(福島) 대지진을 겪었다. 사고 직후의 혼돈 속에서 나흘이 지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는 한동안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에 시달렸다. 사고의 참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 이상 도시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위로는 자연이었다. 양양을 오가며 서핑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했다. 개인적으로 서핑을 가르치다가 뜻이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해 서핑협회를 결성해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열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지역에서 강사를 구하는 것이었다. 지역에 거주하며 가르칠 강사가 아예 없었다. 서핑을 즐기는 이들은 늘었지만, 지역의 인프라는 미비하기 짝이 없었다. 그가 도시를 떠나 양양에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다. 서핑교육과정에서 만난 이 대표와 결혼 후 이 씨는 부인과 함께 양양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가장 먼저 서핑 종목에 평생 스포츠의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단계별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수준에 따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짜고, 서핑 저변확대의 걸림돌인 해양안전 문제 보완을 위해 민간 서핑 인명구조 자격과정도 만들었다.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사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구조요원 자격을 딴 이들의 귀촌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서핑동호인의 확대에 따른 관광객 증가라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서프시티는 앞으로 낙산 해변을 서핑 교육의 거점으로 육성하는 한편 서핑과 연계한 카페나 식당 등을 열어 경력단절 여성들의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등의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주민이 이주해온 젊은이들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고, 젊은이들이 다양한 활동으로 주민들의 선의를 되갚는 선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양양의 서프보드에서 서핑을 체험하거나 배우는 건, 이런 선순환 구조에 한몫을 하는 셈이다. 지역 주민이 만드는 여행, 그리고 지역 주민들을 향하는 소비가 이루는 건 ‘연대’다. 서프보드에서 서핑의 기술 습득뿐만 아니라 소통과 연대의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주말 1박 6만원 新 차박 성지로… 음악회·미탄소풍 스탬프 투어도 # 육백마지기가 아니라 육십마지기 ‘와우미탄’은 강원 평창군 미탄면의 청년 농부 6명이 결성한 자립형 협동조합이다. 미탄면에서 농장 3곳과 체험마을 1곳을 운영하고 있는 청년 6명이 다양한 방식의 협업을 통해 지역의 명소화를 실현해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뭉쳤다. 어디든 그렇듯 미탄면도 공동화와 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산골 농촌이다. 인구가 1700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3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이다. 와우미탄의 청년 농부 6명은, 실은 미탄면 전체를 통틀어 40대 이하 농민 수의 전부다. 와우미탄은 단순한 경제적 이득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대를 이어 미탄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 더 고민하는 건 지역에서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다. 소외된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지속 가능한 관광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주민사업체의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행복감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이들의 이런 뿌리 깊은 지역에 대한 애정이 와우미탄을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와우미탄 구성원이 운영하는 사업장은 대규모 펜션 시설을 갖추고 백룡동굴 탐방, 래프팅, 집라인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동강 어름치마을, 이른바 ‘차박’ 캠핑의 명소로 손꼽히는 흑염소 목장 산너미목장, 은행나무 2000여 그루가 빽빽이 자라는 청옥산 농원 등이다. 이 중에서 요즘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임성남(34)·성환(31) 형제가 운영하고 있는 산너미목장이다. 산너미목장은 4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흑염소목장이다. 청옥산 자락의 20만여 평의 목장에서 흑염소를 방목하고 고랭지 배추와 무, 감자 등을 심어 기른다. 임 씨 형제는 이곳 목장에서 나고 자랐는데, 형 성남 씨는 서울로 대학을 진학했다가 군대를 다녀온 뒤 직장생활을 5년 정도 하다가 목장 운영이 힘에 부친 아버지를 돕다가 아예 귀향했다. 대학에서 보건복지학을 전공한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임 씨 형제는 와우미탄 회원들과 함께 목장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미탄소풍’이란 이름으로 스탬프 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찾아든 관광객을 대상으로 농산물도 팔고, 다양한 체험행사도 진행했다. 지역의 토박이 청년들이 산촌마을을 일으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주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성남 씨는 “각계의 다양한 조언과 관심이야말로 와우미탄을 지탱해온 동력이었다”고 했다. 산너미목장이 차박의 명소로 이름나게 된 건 ‘청옥산 육백마지기’가 닫히면서다. 이른바 ‘차박의 성지’로 일컬어졌던 육백마지기 일대가 무분별한 차박과 캠핑 등으로 훼손되면서 평창군이 2019년 9월부터 차박 금지 조치를 취하자 산너미목장이 그 대체지로 떠올랐던 것. 육백마지기에서 차박의 정취를 아쉬워하는 이들을 위해 처음에는 목장 한쪽을 무료로 내줬다. 마을 홍보를 위해 무료로 공간을 제공한 것이었는데, 주말이면 새벽부터 몰려든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쓰레기와 소음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차박 캠핑에 요금을 받기 시작한 건 ‘인원 통제와 질서를 위해 돈을 받아달라’는 이용자들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평일 2인 기준 차박 가격은 4만5000원. 목장에서 나눠 먹는 아침밥을 포함한 가격이다. 주말에는 목장에서 나는 고구마와 감자, 라면, 즉석밥, 흑염소 진액 등을 제공하는 1박 패키지 상품이 6만 원이다. 산너미목장을 갔다면 꼭 봐야 할 곳이 초지로 이뤄진 목장의 정상 부근이다. 잘 생긴 소나무 한그루와 평상이 놓인 초지의 부드러운 구릉 위에 서면 일대의 산자락들이 파도치듯 일렁이는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목장을 다녀가는 이들은 이곳을 두고 ‘작은 육백마지기’라는 뜻으로 ‘육십마지기’라고 부른다.
오색약수로 만든 쫀득쫀득한 떡… 계곡 캠핑장·바다 전망대 명소 # 좌판으로 시작해 마을 회사를 일구다 강원 양양에 떡으로 이름난 마을이 있다. 양양군 서면 송천리다. 마을은 송천리란 지명보다 ‘떡마을’로 더 알려졌다. 마을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떡이다. 마을 주소의 도로명도 ‘떡마을길’이고, 주민들을 구성원으로 한 마을회의나 영농조합, 협동조합의 중심은 모두 떡이다. 47가구 139명의 송천리 주민은, 떡을 중심으로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돌아간다. 마을 대부분의 가구 주민이 함께 떡을 만들고, 떡을 팔아 생긴 이윤의 일부를 적립해서 마을의 모든 가구에 배당금으로 나눠주며 자연스럽게 마을기업의 면모를 갖게 된 것이다. 송천리의 관광두레를 이끄는 마을 협동조합장 겸 마을회대표이자 9년째 마을 이장직을 맡아보고 있는 김성완(50) 대표는 “굳이 ‘관광두레’라 이름을 붙일 것도 없이, 송천마을은 진작 ‘두레’의 형태로 마을이 굴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설악 주전골의 흘러내린 오색천 물길을 끼고 있는 송천리는 사실 떡으로 이름날 까닭이 별로 없다. 쌀농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떡을 만드는 다른 부재료의 재배가 성한 것도 아니다. 송천리는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지름길인 소동라령 길가의 작은 산촌 마을이었다. 구룡령을 넘자면 70리 길이었고, 한계령도 50리였는데, 소동라령은 30리였으니 예부터 대간을 넘는 길손들의 발길이 잦았다. 땅뙈기도 변변치 않은 산중의 마을이었으니 생업이라고 해도 나물이나 뜯어다가 장에 내다 파는 게 고작인 가난한 마을이었다. 마을에 변화가 온 계기는 1972년 설악을 넘는 한계령 고갯길 개통이었다. 한계령이 뚫리고 흘림골이며 오색약수 등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주민들은 콩이나 팥, 호두 등을 이고 가서 관광객을 상대로 좌판을 펼쳤다. 그러다가 주민 하나가 농산물보다 가공제품이 이문이 더 많다는데 착안해 떡을 빚어서 함지박에 이고 나가 팔았는데, 이게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 오색약수의 알싸한 탄산에 떡이 더없이 잘 어울렸던 것. 관광객들 사이에서 떡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송천리의 30가구 중 20가구 주민이 너도나도 떡을 빚어 이고 나가 팔았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이뤄졌던 서슬 퍼렇던 노점상 일제 단속으로, 송천리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생업을 잃게 됐다.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던 동네 주민 11명은 궁리 끝에 100만 원을 모아 마을 앞에 판매장을 세우고 공동으로 만든 떡을 팔기 시작했다. 관광지에서 좌판을 펴지 못하니, 관광객을 마을로 불러들이자는 궁여지책이었는데, 긴가민가했던 이런 시도가 지금의 떡마을을 만들었다. 전화위복. 당시에 좌판 단속이 없었다면 그때 당장이야 수입이 좋았겠지만, 관광객들이 그 떡을 어느 마을에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마을 전체가 떡마을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 송천 떡마을은 지금 관광두레 사업지원을 받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우선 지원금으로 마을 앞 계곡에다 주민들이 관리하는 근사한 캠핑장을 만들었다. 소동라령 옛길을 복원한 생태 트레킹 코스를 놓거나 산불로 드러난 마을 옆의 산 능선에다가는 멀리 양양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를 놓을 계획도 있다. 이미 마을에는 떡만들기 체험시설과 팜스테이 등이 잘 갖춰져 있으니, 이번 관광두레 사업으로 마을이 또 한 번 업그레이드 되는 셈이다. ④ 정선 나전역 카페 열차 지나가는 현역 驛에 카페… 곤드레 라테·아란치니 등 특색 # ‘선한 영향력’을 꿈꾸는 협업의 공간 2015년 초에 144석의 꼬마열차로 운행하던 정선선이 여객열차 운행을 중단하고, 이어 관광열차 A트레인이 꼬마열차를 대신해 운행하기 시작했을 때도 쇠락한 간이역인 나전역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오래된 대합실 의자와 난로 등을 가져다 놓고 추억을 회고하는 조형물을 설치해 관광지로의 변신을 꾀했으나,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나전역이 젊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됐다. 간이역이 레트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감각적인 카페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퇴역한 폐역을 카페로 만든 경우는 있지만, 아직도 열차가 지나가는 현역의 역이 카페로 단장된 건 나전역이 처음이다. 나전역을 살려낸 건 정현인(52) 목사다. 나전역에서 멀지 않은 외딴 산골의 북평리 성산전원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정 목사는, 나전역을 카페로 만들어낸 나전카니발농업회사법인의 대표이기도 하다. 더불어 북평면 주민자치회와 번영회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정 목사가 있는 성산전원교회의 신도는 모두 8명. 그것도 정 목사까지 포함한 숫자가 그렇다. 목사님이 목회 일보다 지역 경제나 관광사업에 더 관심이 많은 게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법하다. 정 목사는 “신분은 목사지만 목회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에둘러 설명했다. 이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가 주도하는 사업이 정선의 지역으로서의 가치를 중심에 세우고 있으며 주민들의 협업과 소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전역 카페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주재료로 한 독특한 메뉴를 낸다. 특히 정선의 곤드레를 이용한 메뉴가 많다. 곤드레 떡, 곤드레 파이, 곤드레 크림커피, 곤드레 라테…. 심지어 곤드레를 넣어 튀겨낸 아란치니 메뉴도 있다. 곤드레와 전혀 어울릴 법하지 않은 메뉴인데도, 의외로 쌉쌀한 곤드레 향이 맛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카페가 자랑하는 대표 메뉴는 단연 곤드레 떡. 곤드레 떡은 정선에서 방앗간 경력만 50년이 넘는 박산옥(83) 씨가 맡았다. 꽃차소믈리에이자 바리스타, 그리고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있는 손희숙 씨는 음료를 책임지고 있다. 정 목사의 소망은 이곳 나전역 카페를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해 명실상부한 정선관광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지역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콘텐츠를 정선을 찾은 관광객에게 제공하고, 이를 통해 지역관광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주민소득 증대 등의 목표를 이뤄나겠다는 것이다. 지역 주민이나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모두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것. 정 목사는 그게 바로 사람들을 선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 듯하다. ■ 관광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주민사업체를 육성하는 ‘관광두레’ 지원사업은 관광을 통해 지역적 가치를 살리고 지역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다. 관광두레가 선보이는 관광프로그램에는 일반 여행사의 여행상품이나, 개별 여행으로는 얻을 수 없는 ‘관계와 소통’이 바탕에 깔려있다. 관광두레의 여행상품은 ‘관광두레 주만지 페스타 홈페이지(www.joomanji.kr)’의 온라인전시장에서 골라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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