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의 백운산. 섬진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와 남해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해무가 둘러싸는 산. 그래서 백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싶었다. 도선국사는 이 안개와 해무를 사랑하였나! 인생 후반부 전부를 백운산에서 머물렀으니까 말이다. 어떤 점이 명당이기에 한국 풍수의 비조는 이 산을 사랑했는가!
자료를 조사해 보니 백운산의 과거 이름은 닭 계(鷄) 자를 써서 백계산(白鷄山)이라고 불렀음을 알게 되었다. ‘흰 닭산’이라는 뜻이 된다. 흰 닭이라! 요즘 감각으로는 특이한 산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마도 ‘백계산’이라는 이름은 도선국사가 직접 붙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풍수지리의 원조가 직접 머물렀던 산이니까 도선국사가 작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조선 팔도의 명당 자리에다가 직접 이름을 붙여서 비결록에 남긴 최초의 인물도 도선국사이다. 그렇다면 왜 산이름을 백계산이라고 하였을까?
닭이라는 동물 형상에 단초가 있다고 본다. 백계산 정상에는 바위들이 돌출되어 있고, 현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산 정상의 바위들을 닭의 벼슬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닭의 특징은 벼슬에 있다. 우리가 보통 벼슬을 한다고 했을 때 이 벼슬의 원조는 닭이다. 닭의 특징은 벼슬이다. 서울 관악산의 연주암이 있는데, 이 연주암의 주특기는 벼슬이다. 여기서 기도를 하면 고시합격이나 공무원시험에 잘 붙는다고 소문이 나 있다. 왜 시험에 잘 붙냐. 시험 합격은 벼슬길이기도 하다. 바로 닭의 벼슬 위에 암자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닭의 벼슬 백계산의 발은 어디에?
마찬가지로 백계산 상봉에서 신선대까지 약 500m 길이의 돌출된 바위들은 연주암의 벼슬처럼 닭의 벼슬로 볼 수 있고, 백계산의 벼슬은 관악산의 벼슬보다 훨씬 더 사이즈가 큰 셈이다. 백계산을 커다란 닭으로 보았을 경우에 닭발이 어디에 있나를 찾아보아야 한다. 닭은 발에 힘이 실린다. 닭발로 땅을 헤집으면서 먹이를 찾는다. 닭발은 두 군데에 있다. 계족산(鷄足山)이라는 이름이다. 구례군 문척면에 계족산이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광양시 봉강면에 있다. 두 군데에 계족산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계족산은 ‘닭의 발’이라는 뜻 아닌가! 이 두 군데 계족산은 모두 백계산에서 뻗어 나간 자락에 해당한다. 백계산에서 보면 양쪽 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계족산이 불교적 맥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산 이름이라는 점이다. 계족산은 마하가섭이 머물렀던 인도의 산 이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꾸꾸따(鷄) 빠따(足) 지리(山)’라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가 죽고 그다음 부처인 미륵불이 나타나기 전까지 중간 시기에 마하가섭이 머물렀던 산을 인도에서 계족산이라고 불렀다. 닭발처럼 산자락이 세 가닥으로 생겼던 산이었던 모양이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세상에 출현하기 전까지 마하가섭이 수행정진하면서 기다렸던 산이 계족산이다. 그런데 마하가섭은 석가모니 부처의 도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불교의 선종은 이 마하가섭으로부터 선(禪)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선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가 대략 9~10세기 무렵이다. 전국의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이 시기에 성립되었다. 도선국사는 827년에서 898년까지 살았다. 선종이 전래되던 시기와 겹친다. 말하자면 ‘계족산’은 기존의 불교적 작명이 아니라 새로 유입되기 시작한 선종식(禪宗式) 지명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계산도 새로 전래된 한국 선종의 중심 내지는 본부사찰이라는 의미를 띠고 작명된 것이 아닌가 싶다. 두 개의 계족산이 닭발로 버티고 있는 백계산은 그 몸통인 셈이다. 거대한 백계산이 알을 낳으면 그 알에서 선종의 수행방식으로 깨달은 인물인 선사(禪師)들이 배출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선종의 선사를 배출하는 어미 닭과 같은 산이 백계산이 되는 것이다. 흰 백이 들어가는 것은 구름과 안개가 많다는 의미도 있고, 흰색은 정신세계의 높은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흰색은 정신세계 고단자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이다. 검정색은 차원이 낮지만 파워는 강하다. 흰색은 아주 정화된 기운을 상징한다.
닭이 계란을 낳는 것처럼 실용적인 땅
백계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필자가 또 한 가지 영감을 얻은 부분은 지리산과의 대칭성이다. 지리산과 백계산(백운산)은 서로 붙어 있다시피 하다. 중간에 섬진강이 흐르지만 지맥으로 보면 서로 같은 맥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리산은 청학동이 유명하다. 전통적으로 지리산은 청학(靑鶴)으로 보았다. 백계(白鷄)는 같은 날짐승인데 닭이다. 청과 백의 대구(對句)이다. 학과 닭의 대칭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청학과 백계는 같으면서도 서로 컬러가 다르다. 도선국사는 청학에 있지 않고 왜 백계에서 평생 살았을까? 필자의 해석은 이렇다. 청학은 은둔과 피안의 세계를 상징한다. 지긋지긋한 속세를 떠나고 싶은 사람에게 어필하는 산 이름이다. 반대로 백계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닭은 계란을 낳는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날짐승이다. 도선국사는 닭이 지닌 이러한 현세 참여적인 측면에다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은둔불교가 아닌 ‘참여불교’의 노선에 비중을 두었던 셈이다.
참여의 방식은 제자 양성도 포함된다. 제자를 길렀다. 도선이 풍수를 공부했던 암자는 구례역 앞에서 바라다보이는 사성암(四聖庵)이고, 사성암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구례 사도리(沙圖里)가 나오고 이 모래사장에서 산천지세를 공부했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기도를 했던 터가 현재의 백운사이고, 기도를 끝내고 보림을 하면서 제자를 양성했던 터는 옥룡사지이다. 현재 옥룡사는 폐사되고 그 터만 남아 있다.
옥룡사 터의 특징은 부드럽다는 점이다. 주변에 바위나 암벽이 없다. 특히 절의 배산(背山)에 해당하는 지맥이 아주 낮고 평범하다. 그야말로 편안하게 쉬는 터라는 느낌이 든다. 보통 뒷산에 바위 절벽이 있어야 기도발이 짱짱하게 들어오는데 옥룡사지는 그런 짱짱한 터가 아니다. 옥룡사지의 또 하나 특징은 앞쪽의 안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부분이다. 절터의 앞이 트여 있지 않다. 도선은 그 터의 앞산이 적당하게 가로막아 가려주는 터를 선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안산(案山)이 있나 없나를 중요시했던 것이다. 뒤쪽의 배산보다 앞쪽의 안산 비중이 훨씬 큰 터가 한국 풍수의 비조가 사랑했던 옥룡사 터이다. 또 한 가지는 비보(裨補)이다. 절 터의 좌측 청룡자락의 맥이 좀 약하다. 이걸 보완하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어서 그 동백의 나무 기운으로 지맥의 약점을 보강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빽빽하게 남아 있는 동백은 도선국사 당대에 터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하여 일부러 심어 놓은 인공림이다. 그것도 동백(冬栢)으로 보강하였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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