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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헌의 영지 순례 ]줄타기꾼 부부의 비극이... 경기도 연천 재인폭포의 기운

醉月 2023. 2. 7. 12:04

무협지나 도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폭포가 나온다. 물이 떨어지는 폭포는 영험한 장소로 여겨진다. 특히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폭포는 적당한 장소였다. 떨어지는 폭포 밑에 앉아 머리 위로 물을 맞는 자세,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하는 자세는 정신통일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여겨져 왔다.

왜 폭포 밑이 영험한가? 우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머리 위로 상기되었던 열기가 아래로 내려간다. 수기가 화기를 제압하는 구조이다. 신경을 많이 쓰고 걱정 근심으로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폭포 밑에서 머리 위로 물을 맞으면 효과가 있다.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물소리이다. ‘콰-아’ 하고 떨어지는 물소리는 잡념을 씻어 주는 효과가 있다. 세상의 소리 가운데 물소리는 인간의 걱정, 근심을 씻어주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아울러 생각을 집중시킨다. 물소리밖에 안 들리는 것이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생각을 집중시키고 정신통일을 시켜주는 데 가장 효험이 있는 소리가 물소리이다.

 
정신통일에 최적의 장소

그래서 불교 사찰의 건물 가운데에도 침계루(枕溪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계곡을 베개로 삼는 누각이다. 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겠다는 의도이다. 계곡 물소리의 명상적 효과를 이미 알고 이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이름이다. 폭포의 물소리는 계곡 물소리보다 훨씬 강하다. 자기의 에고를 잊을 수 있는 망아(忘我)의 장소가 폭포이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재인폭포’는 이러한 폭포가 가지고 있는 명상적 효과가 큰 폭포로 보였다. 그런데 이름이 ‘재인(才人)’이었다. 왜 재인? 폭포 이름에 깃들어 있는 전설은 비극적이었다. 재인의 마누라가 미인이었다. 그 미모를 탐낸 사또가 남편을 죽이기 위해서 폭포 위쪽에다 줄을 걸어 놓고 줄타기를 시켰다는 것이다. 줄타기를 하다가 그 남편인 재인이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사또 측에서 그 줄을 몰래 끊어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재인은 광대, 남사당패와 같은 밑바닥 계층의 아티스트를 가리킨다. 사또의 수청을 들게 된 부인은 사또의 코를 물어뜯어 버리고 자신도 죽어 버린다. 코를 물어 버렸다고 해서 ‘코문리’라는 지명이 생겼고, 코문리가 변해서 현재의 ‘고문리’가 되었다고 안내판에 써 있다.

지금은 휴전선이 가까운 동네가 되어서 비교적 한산한 지역인 연천. 과거에는 금강산 가는 길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길목이었다. 거기에다가 들판도 넓어서 먹고살기 좋은 동네였던 것 같다. 들판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다. 들판에서 쌀이 나와야 떠돌이 광대 집단을 부를 수 있다. 먹을 것을 주어야 오기 때문이다. 들판이 없으면 광대 집단이 머무를 수 없다. 10~20명의 재인 집단이 공연을 하려면 적어도 1~2주는 먹을 것을 제공해 줘야 한다. 먹고살기 어려운 동네에서는 광대 공연도 열릴 수 없다.

연천은 주변에 철원평야도 있다. 먹고살 만한 동네였다. 거기에다가 재인폭포의 위치도 좋다. 한탄강에서 300m쯤 떨어진 지점이다. 배를 타고 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재인폭포에 도착한다. 배로 닿을 수 있으면 걸어서 오는 것보다 훨씬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한탄강은 지형이 특이하다. 강의 양쪽으로 바위 암벽이 둘러싸고 있는 지형이다. 한반도의 다른 강하고는 지형이 다르다. 재인폭포도 주변이 암벽으로 둘러싸고 있다. 마치 커다란 항아리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폭포의 높이는 30~40m쯤 될까. 비교적 높다. 이와 유사한 환경을 가진 폭포가 전남 구례와 남원의 경계에 있는 산동지역의 ‘수락폭포’이다. 수락폭포도 작은 항아리 속에 있는 폭포이다. 재인폭포는 수락폭포보다 사이즈가 훨씬 크다. 공통점은 항아리같이 속에 움푹 들어가 있어서 판소리 연습을 하기에 좋은 구조라는 점이다. 소리꾼이 판소리 연습을 하려면 내뱉는 소리가 밖으로 안 나가야 한다. 항아리 지형은 서라운드 효과가 있다. 그래서 수락폭포에서 전라도의 수많은 소리꾼들이 연습을 했던 것이다. 전라도 판소리의 성지가 수락폭포이다. 그런데 재인폭포는 수락폭포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더 효과적인 곳이라는 얘기다. 재인은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러니 판소리 연습이 필수적이다. 소리 연습에 있어서 애로사항은 목이 쉰다는 점이다. 목젖이 혹사를 당하게 된다. 명창이 되려면 목에서 피가 몇 번 넘어오는 경지를 겪어야 한다고 한다. 목이 과도하게 쉰다. 목이 쉬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습도가 높은 장소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 폭포에서 분사되는 습기가 목젖을 부드럽게 해준다. 그래서 판소리꾼은 폭포를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소리꾼의 득음(得音)이란 무엇이냐? 도대체 소리를 얻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폭포수 떨어지는 지점에서 소리를 질렀을 때 물소리는 안 들리고 자기 소리만 듣게 되는 경지가 득음이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도 안 들리고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에만 몰입하는 경지가 득음이다. 그래서 소리를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재인들의 소리 연습 장소로서는 폭포가 최적이다. 항아리같이 움푹하게 들어간 장소에 있는 폭포. 재인폭포는 크기가 크다. 높이가 높다는 뜻이다. 30~40m 높이에다가 줄을 걸어 놓고 줄타는 연습을 하기에도 좋은 장소였다. 사또가 줄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평소에 여기에서 재인들이 줄타는 연습을 했다는 방증이 된다. 줄 타기 연습 장소였다는 점이다. 줄에서 떨어져도 물로 떨어지면 안전하다. 재인이 떨어져서 죽었다는 전설은 낙하 지점을 위험한 곳에다 설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이 아니고 땅바닥에 떨어지도록 줄을 설치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의심이다. 
 

소리꾼의 득음과 재인들의 공연장

재인폭포가 재인들이 모여서 연습하고 합숙훈련하기에 적당한 장소였다는 증거는 공연무대와 바위굴이다. 폭포 앞쪽의 양 옆에 공연무대처럼 평평한 공간이 있다. 아마 여기에서 공연을 하지 않았을까. 여름철에 모를 심어 놓고 나서 시원한 폭포가 떨어지는 곳에서 공연을 하면 안성맞춤이다. 330㎡(100평) 이상의 공간이 폭포 앞쪽에 조성되어 있다. 아주 이상적인 무대장치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굴이다. 공연장 반대쪽으로 바위 절벽 밑에 자연굴이 있다. 여기는 재인 집단이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다. 10~20명의 재인들이 비를 피해서 숙박을 할 수 있다. 공연을 하거나 연습을 하거나 재인들이 일반 가정집에서는 수용이 안 되었을 것이다. 폭포 앞의 자연동굴이 최적의 장소이다. 송도의 박연폭포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연천의 재인폭포는 경기도 북쪽 재인들이 머무르며 공연연습을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보인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