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제천 월악산-금수산 '극한산행'

醉月 2021. 7. 22. 19:39

보덕암에서 출발한 산행객들이 암봉을 넘어 중봉으로 향하고 있다. 보덕암에서 하봉, 중봉을 거쳐 정상인 영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대부분 숨이 턱까지 차는 가파른 경사구간이라 월악산에서 가장 악명 높은 코스다. 폭염 속에서 이 코스를 오르다 보면 수행의 기분마저 든다.



맥이 탁 풀립니다.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으로 끝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휴가를 목전에 두고 또다시 어둡고 긴 터널로 들어서고야 말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녀오려던 여름휴가도 없던 일이 돼버렸습니다. 무리해서 떠난다 해도 노심초사 다녀오는 여행이 즐거울 리 없습니다. 무엇보다 곤란해진 건 휴가철을 앞두고서 여행지를 고르고, 권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시원한 계곡과 바다를 말해서도, 여행을 충동질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니 난감할 따름입니다.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혹독한 여행’을 생각한 건 그래서입니다. 모든 걸 다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불판 같은 더위 속에서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파르고 어려운 코스를 골랐습니다. 우선 수도권에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충북 제천. 그곳에 거대한 바위로 솟은 월악산, 그리고 머리를 치켜든 사자 형상의 금수산이 있습니다. 둘 다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산입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연이틀 이 두 개의 산에 올랐습니다. 탈진 작전까지 가는 고행과 같은 산행이었습니다. 몸 안의 기운을 남김없이 소진하고 나니 오랫동안 고여 있던 것들을 비워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대상 없는 분노, 소외감과 외로움, 낙심과 무기력. 감염병의 창궐 이후로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쌓여 있었던 이런 것들이 싹 씻겨 내려간 듯했습니다. 몸을 혹사하니 생각이 가벼워지더군요. 다소 무모한 듯 보이는극한의 목표를 세우고서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휴식을 통해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을 얻는 것이 휴가의 효능이라면, 이거야말로 나무랄 데 없이 휴가를 보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참, 그리고 연이은 폭염에 산을 찾는 이가 거의 없어 산행 내내 ‘거리 두기’가 저절로 지켜졌다는 얘기를 덧붙입니다.


# 제천, 유배와 유폐의 공간

충북 제천은 수도권에서 가깝다.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 교통도 편리하다. 충북선, 태백선, 중앙선이 제천 땅을 지나고 중앙고속도로가 도시를 관통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제천이,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였다는 것이다. 보통 유배 장소는 머나먼 심심산골이거나 외딴 섬인 경우가 많다. 유배 형벌의 준엄함은 그곳이 얼마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인지로 가늠한다. 그런데 왜 가까운 데다 교통의 요지이기까지 한 제천이 유배지였을까.

두 가지 주장이 있다. 먼저 제천에 강이 땅을 가둔 오지가 많았다는 주장. 충주호가 들어서기 전에 제천에는, 단종 유배지 영월의 청령포처럼 굽이치는 물과 산이 가둔 섬 같은 땅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좀 더 설득력 있는 두 번째 주장은, 제천이 유배의 종착지가 아니라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는 추정이다. 제천이 유배지이긴 하지만, 더 먼 곳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이거나 정확한 판결을 기다리는 대기장소였다는 뜻이다. 실제로 제천으로 유배 온 이들은 머잖아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데, 이들 중에는 ‘혐의없음’ 판결을 받아 유배에서 풀려난 경우도 있다. 억울함이 풀려 자유의 몸이 될지, 아니면 죄상이 낱낱이 드러나 더 먼 곳으로 가게 될지. 죄인들은 유배지 제천에서 그 결과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제천이 유배지가 되기 한참 전에 제천의 월악산에 유폐됐던 이가 있었다. 마의태자, 그리고 덕주공주다. 월악산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딸 덕주공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신라 멸망 후 나라를 잃고 월악산으로 찾아든 태자와 공주의 이야기는, 제천 땅에 전설로 전해진다. 내용인즉 이렇다.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 왕건은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를 제천 월악산 아래 덕주사에, 아들 마의태자를 하늘재 아래 충주 땅인 미륵대원지에 가둔다. 왕건은 공주를 가두기 위해 덕주사에 세 겹으로 성을 쌓았으며 병사 2만 명을 주둔시켰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던 공주는 동생 마의태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남향으로 마애불을 새겼고, 마의태자는 북쪽의 공주 모습을 그리며 북향으로 미륵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버전 중의 하나다. 오대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에 풀을 뜯어 먹으며 살았다는 마의태자가, 실은 덕주공주와 함께 자발적으로 월악산에 은거했으며 공주는 덕주사의 마애불이 됐고, 태자는 미륵대원지의 미륵불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공주와 태자가 함께 미륵대원지에서 8년을 머물며 불법을 닦다가 미륵불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전설은 전설일 뿐. 덕주공주는 경순왕 기록에서 확인되지 않는, 오로지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태자와 공주가 아니다. 전설의 진짜 주인공은 망한 나라의 태자와 공주를 월악산이 받아줬다고 믿었던, 그래서 그 산에 깃들여 살며 망국의 한에 얽힌 전설을 입에서 입으로 옮겼던 이들이다.


월악산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월악산 하봉 턱밑의 높은 전망대가 단연 최고다. 여기에 서면 청풍호 일대의 전경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중봉과 정상인 영봉이 해발고도는 더 높긴 하지만, 거기서 내려다보면 하봉이 청풍호를 살짝 가려 풍경의 규모감이 덜하다.



# 악명 높은 코스로 월악산을 오르다

월악산의 정상은 ‘영봉(靈峰·1094m)’이다. 둘레가 4㎞쯤 되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통째로 정상을 이루고 있으니 ‘영묘한(靈) 봉우리(峰)’란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월악(月岳)’이란 산 이름도 여기 영봉에 달이 걸린다 해서 지어졌다. 영봉을 다녀오는 가장 보편적인 코스는 덕주골로 해서 덕주사와 마애불을 거쳐 능선을 타고 영봉에 올랐다가, 신륵사 혹은 동창교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월악산을 찾는 가장 많은 등산객이 이 코스를 택한다. 덕주골에서 영봉까지 거리는 5㎞ 남짓. 다녀오는 데 대략 4시간 30분쯤 걸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길을 택하지 않는다. 월악산에서 가장 악명 높은 코스는 제천 수산리에서 보덕암을 거쳐 하봉, 중봉, 영봉을 차례로 밟아 오르는 보덕암 코스다. 출발지점부터 정상까지 거의 전체 코스가 가파른 오르막과 철계단의 연속이다. 과거에는 낙석과 실족사고 우려가 있을 정도로 험했으나, 2013년 대대적인 위험지구 정비공사를 벌이면서 일반인들도 다닐 수 있는 코스가 됐다. 그래도 가파르고 힘들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산행은 월악산 아래 작은 암자 보덕암에서 시작한다. 보덕암까지는 차를 타고 수산리 마을을 관통해 농로를 따라가야 하는데, 차 한 대 겨우 지날 만큼 길이 좁다. 보덕암 아래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승용차 10대 남짓 세울 공간밖에 없다. 산행객이 많은 봄가을에는 도리없이 수산리 마을에서 보덕암까지 40분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요즘 같은 날씨에 누가 이쪽 코스를 택할까 싶었는데, 그래도 차를 타고 들어오는 산행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보덕암 들머리에서 신발 끈을 묶는다. 마음이 바쁘니 암자는 산행을 마친 뒤에 둘러보기로 한다. 첫걸음부터 오르막이다. 서론 없이 곧바로 본론이다. 시작하자마자 숨이 턱까지 찬다. 숲 그늘이 볕을 가리긴 했지만, 뜨거운 공기는 어쩔 수 없었다. 습도까지 차오르니 땀에 젖은 바지가 다리에 척척 감겼다. 길은 오를수록 가팔라졌다. 사선으로 쭉 그른 직선처럼 끝없는 오르막이 쉴 틈 없이 계속됐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숨은 턱턱 막혔다.


# 고행 같은 산행, 인생을 은유하다

▲ 사진 위는 옥순대교 근처에 설치한 출렁다리. 오는 10월쯤 개방된다. 사진 아래는 월악산 영봉 코스 산행의 출발점이 되는 암자 보덕암. 신라 때 왕리조사가 수행한 보덕굴이 근처에 있다.


보덕암에서 오르면 하봉과 중봉을 거쳐 월악산 정상 영봉에 오르게 된다. ‘계단을 딛듯’이라고 썼다가 지운다. 하봉, 중봉, 영봉은 계단처럼 올라가는 봉우리가 아니다. 하봉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다시 중봉을, 중봉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다시 영봉을 올라야 한다. ‘계단식’이 아니라 봉우리를 하나하나 오르고 내려야 하는, 말하자면 ‘낙타 등’이다. 정상인 영봉을 포함한 봉우리의 이름은 셋이지만, 실은 오르내려야 하는 봉우리가 다섯 개쯤 된다.

산을 탈 때 가장 힘이 드는 구간이 있다. 가야 할 정상이 저 위에 보이는데, 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갈 때다. 저 위의 정상에 당도하자면, 지금 내려가는 만큼 고스란히 다시 올라와야 할 텐데…. 게다가 지금의 내리막길은 돌아올 때 고스란히 오르막길이 되는데…. 아직 다 오르지 않았는데, 내리막길이 나타나면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그게 어디, 산만 그럴 것인가. 지치고 힘들 때면 뒤를 돌아다봐야 한다는 것이 산에 오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등을 돌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는 것이다. 늘 앞을 보고 걷는 게 아니라 이렇게 뒤돌아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오를 수 있다. 뜨거운 여름날의 고행 같은 산행이 삶을 은유한다.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들이 벗겨지고 바위무더기가 나타나면 이내 하봉이다. 월악산에서 보는 경관의 중심은 단연 ‘내륙의 바다’라고 일컬어지는 청풍호다. 청풍호를 앞에 두고 하봉이 맨 앞에, 중봉이 중간에, 영봉이 가장 뒤에 줄 서듯 솟아 있다. 청풍호 일대의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관은 가장 낮은 하봉에서 볼 수 있다. 중간과 뒷줄의 중봉과 영봉이 시야의 고도가 훨씬 높지만, 결정적으로 맨 앞줄의 하봉이 극장의 앞자리 키 큰 관객처럼 청풍호를 살짝 가린다.

하봉 바로 아래 전망대가 보여주는 경관은 이 염천의 더위에 거기까지 오르는 길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폭염이긴 했지만, 요 며칠 대기는 얼마나 청명했던가.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아래 선명하게 펼쳐지는 청풍호 일대의 경관이 마치 엽서 속 사진 같았다. 하봉에서부터는 자주 뒤를 돌아보며 산을 올랐다. 햇볕은 뜨거워졌고, 길은 더욱 가팔라졌다. 중봉을 지나자 축축한 안개가 밀려들었다. 영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300m는 ‘지독하다’고 적어도 될 만큼 급경사다. 해탈로 가는 마지막 관문. 정수리가 쪼개질 듯한 강렬한 뙤약볕 아래서 헐떡이며 가파른 철계단을 다 오르면 거기 영봉이 있다. 영봉에 오르면 소백산과 주흘산, 포암산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는데, 정상은 온통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 이튿날 다시 금수산을 오르다

무더위에 거의 탈진하다시피 해서 보덕암으로 내려왔다. 36년째 보덕암을 홀로 지키고 있는 적인 스님이 지친 기색을 보곤 걱정이 됐던지 서둘러 풋복숭아 두 알을 씻어서 건넸다. 스님은 ‘어제, 탈진한 등산객이 암자 쪽으로 내려와 119에 전화해 구급차를 불렀다”고 했다. 양 어금니로 파고드는 덜 익은 복숭아의 신맛에 겨우 기운을 차렸다. 스님은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며 등을 떠밀었다. 암자를 돌아 나오는 길. 여전히 구름에 잠긴 영봉 쪽에서 천둥소리가 으르렁거리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여기까지가 뜨거운 여름날, 월악산에 올랐던 이야기다.

그리고 여전히 폭염이 이어진 이튿날, 다시 산에 올랐다. 제천의 금수산(1016m). 산 이름으로 ‘비단 금(錦)’에다 ‘수놓을 수(繡)’를 쓴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이전까지는 백운산으로 불렸는데, 단양 군수를 지낸 퇴계가 단풍 든 경관을 보고 감격해 붙여준 이름이라고 전한다. 퇴계는 단풍색에 반해 비단에 비유했다지만, 비단의 이름에 더 잘 어울리는 건 층층이 쏟아지며 절경을 이루는 금수산의 용담폭포다. 벼랑을 이룬 흰 바위 위에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내 만든 것 같은 세 개의 연못(潭)을 차례로 넘쳐 마지막 연못(선녀탕)에서 쏟아진 물줄기가 30m 높이로 허공에 걸리니, 그게 바로 용담폭포다.

월악산 산행의 들머리가 보덕암이라면, 금수산 산행의 들머리는 조동종 소속의 절집 ‘보문정사’다. 보문정사는 수산면 상천리에 있다. 금수산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물길을 끼고 있는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용담폭포 전망대를 지나서 망덕봉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계곡을 따라 곧바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두 길은 정상에서 만난다. 어느 쪽으로 가든지 정상을 오른 후 제자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용담폭포의 비경을 충분히 감상하겠다면 더 가파르지만 왼쪽 길을 택하는 게 낫다. 산행 시간은 4시간 30분 남짓인데 요즘 같은 날씨라면 5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한 번 경험을 해서 그런가. 이튿날의 금수산 산행은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여차하면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자주 뒤를 돌아보면서 무리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하니 견딜 만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청풍호 풍경과 무협지 속 풍경 같은 용담폭포의 경관도 산행의 피로를 덜어주는 데 한몫했다. 가파른 암릉 구간을 오르면서 폭포의 경관을 감상하니 한결 힘이 덜 들었다. 눈과 마음이, 몸을 이끄는 경험이었다. 뜨거운 여름날 고행처럼 금수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마주친 등산객은 딱 한 명뿐이었다. 이 큰 산에서 오르막과 내리막, 철계단과 쇠 난간, 호수와 폭포를 모두 혼자서 누린 셈이었다.


■ 제천 ‘포레스트 리솜’

혹독한 산행 후 완벽휴식…원시림속 리조트서 ‘힐링’


휴가로 제안한 ‘혹독한 산행’은, 산행 이후의 ‘완벽한 휴식’과 결합해야 완성된다. 그런 휴식을 갖기 가장 좋은 곳이 제천의 리조트 포레스트 리솜이다.

우선 잡은 자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구학산과 주론산 자락의 원시림에 파묻혀 있다. 본래의 지형과 식생을 그대로 보존하고 가급적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식으로 리조트를 설계했다. 숲의 초록과 자연의 소리로 가득한 리조트는 자연에 몸을 의탁하고 휴식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숲과 어우러진 독립된 별장 스타일의 리조트도 훌륭하지만, 더 돋보이는 곳이 리조트의 중심시설인 ‘해브나인 스파’다. 공간도 넓은 뿐더러 바데풀, 짐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압도하는 건 인피니티 풀이다. 풀에 담긴 물의 경계가 맞은편 숲의 짙푸른 초록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시효과가 근사하다. 돌을 깎아 만든 스톤 스파에서 단둘이 몸을 담그고 숲 내음을 맡을 수 있는 밸리스파도 인상적이다.

포레스트 리솜은 바쁜 여행자의 숙소보다는, 느긋한 여유와 쉼이 훨씬 더 어울리는 곳이다. 포레스트 리솜이 3년 연속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웰니스 관광지’로 뽑힌 이유다.

포레스트 리솜에 단점이 있었다면 적은 객실 수였다. 200실의 단독형 빌라 객실이 전부여서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예약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2일 리조트 안에 호텔형 리조트 ‘레스트리 리솜’을 개관했다. 지하 5층∼지상 7층 규모로 250개 객실과 루프톱 스파 등을 갖췄다. 그동안에는 전체가 호젓한 별장형 리조트의 분위기였다면, 이제 한쪽은 조용한 별장형 리조트, 다른 한쪽은 편리한 호텔식 리조트로 나눠놓은 것이다. 양쪽 다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어 어느 한쪽을 택하기가 쉽지 않다.

이 정도 시설이라면 리조트 회원권이 욕심날 법하다. 리솜리조트는 레스트리 리솜 개관에 맞춰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다. 개인 기명 회원 20년 만기 시 반환을 기준으로 20평 원룸형은 2840만 원, 방 2개짜리 36평형이 6350만 원이다.


■ 청풍호에도 출렁다리

전국의 출렁다리는 166개. 충북에만 16개가 있다. 조만간 여기에 하나가 더해진다. 충남 예산 성공에 자극받아서일까. 제천시가 65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옥순대교 인근 청풍호에 길이 220m짜리 출렁다리를 설치한 것. 출렁다리 건설은 지난해 말에 끝났지만, 주차장 등 부대시설 공사가 늦어지면서 오는 10월 말쯤에나 개장할 예정이다. 출렁다리는 호수를 건너는데, 다리 위에서 보면 온통 초록의 숲과 호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