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제주의 시린 봄

醉月 2018. 3. 14. 18:34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의 동백군락지 돌담 틈에 누군가 붉은 동백꽃을 꽂아 놓았다. 꽃잎 하나 시들지 않은 절정의 순간에 모가지째 툭 떨어지는 동백꽃은, 70년 전 제주 4·3사건에서 희생된 넋을 상징한다. 위미리의 동백군락은 날품으로 사들인 손바닥만 한 밭에다 방풍림을 만들고자 한라산에서 따온 한 가마니의 동백 열매를 심은 한 할머니의 수고로 만들어졌다. 그 할머니도 4·3사건의 와중에 세상을 떠났다.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겠지요. ‘제주는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는 문장에는 말입니다. 더구나 그 섬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제주에는 봄의 훈김이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나가며 하루하루 만춘(滿春)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애초에 제주를 봄 여행의 목적지로 소개하기로 했던 건 봄꽃이 한창이라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주에 당도해 봄꽃과 마주하는 순간 꽃을 따라나선 마음은 이내 시들해졌습니다. 섬 여기저기에 꽃이 너무 흔전만전해서 그랬을까요. 만개한 매화며 산수유, 유채꽃이 아예 시내 도로변까지 나와 있으니, 어디를 봄꽃 명소로 골라 소개해야 할지 난감해졌습니다. 섬 전체에 꽃이 만발했는데 구태여 봄꽃을 찾아가자는 권유가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신 제주에 머무는 내내 마음을 붙잡았던 건 제주 4·3사건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좌우 대립의 공간 속에서 3만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던 처참한 현대사의 비극. 그 죽음의 사연들이 어찌나 처참하고 가슴 아팠던지요. 기념관과 기념비, 그리고 제주 섬 이곳저곳의 수많은 무덤 앞에서 아름다운 제주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뿌려졌는지를 생각합니다.

제주의 비극적인 역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비벼져 있습니다. 비극의 현장 중의 하나였던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서 멀지 않은 위미리와 신흥리에 동백 숲이 있습니다. 4·3사건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을 상징하듯 붉게 피어 절정의 순간에 모가지째 꽃을 떨군 토종 동백꽃이 융단을 이루는 곳입니다. 동백은 겨울꽃이라지만 제주 토종 동백의 제철은 봄입니다. 그 숲에 지금 붉은 동백이 후드득 지고 있습니다.

토벌대를 피해 들어간 동굴에서 죽임을 당한 11명의 유해가 발굴된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다랑쉬 동굴 인근에는 ‘오름의 여왕’으로 꼽히는 다랑쉬오름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다랑쉬오름이야말로 제주 동쪽에 밀집한 오름들이 저마다 그려내는 부드러운 선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곳입니다.

그동안 불편해서 정면으로 마주 보지 못했던 4·3사건의 현장 앞에서 ‘다크투어리즘’을 생각합니다. 다크투어리즘. 곧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 재해의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뜻하는 말입니다. 봄날 제주로 향하는 들뜬 여행의 여정을 이런 마음 불편한 곳들로만 채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제주의 관광지 딱 한 군데만 일정에서 빼고 대신 제주 4·3평화박물관 한 곳이라도 끼워 넣기를 권합니다. 비극의 현장에서 우리는 제주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게다가 올해는 4·3사건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흔히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을 찾은 이들이 분화구의 능선을 걷고 있다. 다랑쉬오름 아래 다랑쉬굴이 있다. 1992년 다랑쉬굴에서는 4·3사건 당시 희생된 유골 11구가 발견됐다. 학살을 피해 굴로 숨어든 이들은 군경토벌대가 굴 입구에 불을 피워도 나가지 않고 버티다 질식해 사망했다. 유골 11구 중에는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도 포함돼 있었다.




# 동백꽃, 비장하게 지다

제주를 상징하는 꽃 하나만 꼽으라면 누구든 첫 손으로 유채꽃을 꼽으리라. 노랗게 핀 유채꽃이야말로 봄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섬, 제주의 강력한 상징이었다. 수년 전부터 남해안 일대를 비롯해 내륙 곳곳에 유채를 많이 심으면서 상징의 위력이 힘을 잃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제주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꽃은 무엇일까. 헤아려 본 건 아니지만 동백꽃이 아닐까. 한라산 중산간은 물론이고 해안마을의 난대림에도 동백나무 숲이 많고 마을 어귀나 담장 주변에도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도로 옆에 가로수로 심어둔 곳들도 많다. 모여서 한꺼번에 피지 않아서 그렇지, 유채꽃 대신 제주를 상징하는 꽃으로의 자격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동백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지는 겹꽃의 동백도 있고, 절정 순간 꽃잎 하나 다치지 않았을 때 비장하게 모가지가 툭 떨어지는 토종 동백도 있다. 같은 토종 동백이라도 제주의 것은 느낌이 좀 다르다. 색이 더 짙고 비장감도 더하다. 우선 겨울에도 잃지 않는 제주의 초록과 검은 화산암 돌담이 어우러져 선홍빛 꽃 색깔이 더욱 도드라진다. 여기다가 처연하게 꽃 모가지를 떨구며 지는 모습에서는 비극적 죽음이 연상되기도 한다. 동백꽃은 제주에서 4·3사건을 상징한다. 제주 출신 강요배 화백이 4·3사건 당시 희생당한 이들을 선홍빛 동백꽃으로 그려내면서 동백꽃은 4·3사건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제주 4·3사건의 설명은 잠깐 뒤로 미뤄두고 우선 제주의 동백부터 보러 가자. 관광지 조성을 위해 일부러 심어 기르는 곳을 빼고, 토종 동백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군락지는 서귀포시 남원읍의 위미리와 신흥리에 있다. 위미리의 동백군락은 열일곱의 나이에 이곳으로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가 가꿔 기른 것이다. 현 할머니는 품팔이로 번 돈 35냥으로 ‘버둑’이라 불리던 황무지를 사들여 농사를 짓다 바닷바람 때문에 농사를 망치자 한라산에서 동백 씨앗 한 섬을 따다 여기에 심었고, 그게 자라서 지금의 거대한 숲이 됐다는 것이다. 현 할머니는 제주가 4·3사건의 와중이던 1953년 세상을 떠났다. 마을 한가운데 있어 찾기 쉽다.

신흥리의 동백숲은 기왕의 오래된 숲에다 지난 2005년부터 마을 곳곳에 3000여 그루의 나무를 더 심어 조성했다. 신흥리의 동백 명소는 딱 두 곳. 한 곳은 경흥농원 들머리의 동백숲이고, 다른 한 곳은 신흥리 체육공원 인근의 난대림 숲이다. 두 곳 중 경흥농원의 숲이 규모도 크고 꽃도 좋다. 농원 안쪽의 숲터널은 점입가경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백조일손 묘역. 인근 섯알오름에서 집단 학살된 132명의 유해가 모셔진 곳이다. 수습과정에서 시신의 구별이 어려워 뼈대를 대충 맞춰 안장하면서 유가족들이 묘역에 ‘100명의 할아버지에 한 자손(百祖一孫)’이란 이름을 붙였다.


# 4·3사건, 이렇게 시작되다

제주 4·3사건은 역사의 격랑 앞에서 입을 딱 벌린 거대한 소용돌이였다. 해방 이후 제주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비극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을 현대사의 비극. 3만 명에 달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엄청난 비극의 출발은 터무니없이 작은 오해였다. 오해는 탄압을, 탄압은 복수를, 복수는 다시 응징으로 이어지면서 피가 튀는 끔찍한 살육전이 계속됐다.

1947년 3월 1일. 해방 후 두 번째 맞는 제주의 3·1절 기념식에서 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어린아이가 차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가 차였는데도 기마 경찰은 무심히 지나갔고, 이를 본 군중들이 돌을 던지면서 경찰을 쫓아가자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한 군정 경찰이 발포해 6명이 사망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등 뒤에서 총을 맞았다. 사망자 중에는 열한 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경찰 발포에 격분한 주민들은 항의의 의미로 민관 합동 총파업에 돌입했다. 제주 관공서와 직장인 95%에 해당하는 4만여 명이 파업에 참가했다. 제주 경찰의 20%도 파업에 가담했다. 집단저항의 움직임을 보이자 미 군정은 미군대령을 제주로 파견해 사태파악에 나섰다. 미군의 조사 보고서 분석결과는 이랬다. ‘경찰 발포로 도민 반감이 고조된 것을 남로당 제주조직이 선동해 증폭시켰다.’ 보고서 말미에는 이렇게 덧붙여졌다. ‘제주도 인구의 70%가 좌익 동조자다.’ 이로써 제주는 ‘빨갱이의 섬’이란 굴레를 뒤집어쓰게 됐다.

좌익색출을 위해 제주도로 들어간 서북청년회와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벌어졌다. 끔찍한 고문과 집요한 색출작업이 이뤄졌다. 이에 맞선 남로당 제주도당은 4월 3일 새벽 한라산 기슭 오름마다 붉은 봉화를 올렸고 무장대는 17개 경찰서 습격 등을 감행했다. 4·3사건의 무력충돌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무장대의 습격을 계기로 토벌대의 본격적인 진압작전이 벌어졌다. 급기야 ‘해안선에서 5㎞ 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총살한다’는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면서 제주 섬은 아비규환의 학살 공간이 됐다. 초토화 작전이 시작된 지 4개월 만에 제주의 중산간 마을 95%가 초토화됐다. 증오는 갈수록 깊어졌고, 그에 비례해 복수는 더 잔혹해졌다. 토벌대에서 희생자가 발생하면 흥분한 군인들은 마을로 쳐들어가서 양민들을 모조리 학살했다. 토벌대뿐만 아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도 군·경을 비롯해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했다. 4·3사건은 7년 7개월 만인 1954년 무력충돌과 진압작전으로 마무리됐다. 4·3사건의 성격규정을 놓고 논란을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희생된 3만 명 중에서 좌든 우든 정치적 신념을 가졌던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 억울한 죽음을 추념하는 공간

▲ 제주 4·3평화공원의 야외공간에 마련된 조형물 비설(飛雪). 4·3사건 당시 제주 중산간에서 희생돼 눈더미에서 발견된 두 살배기 딸과 스물다섯의 어머니 모습을 형상화했다.
제주 4·3사건의 전모를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은 제주 4·3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이다. 기념관은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8년 4·3사건 60주년을 맞아 개관했다. 달팽이 집처럼 만들어진 전시관을 따라 들어가면 4·3 사건의 전말과 기록, 증언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4·3 평화공원에는 위령탑과 위패를 모신 재단, 1만4000여 명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행방불명인 표석이었다. 공원 한쪽에 4·3 희생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를 위해 3800여 기의 표석을 설치해 놓았다. 이렇게도 많은 사람이…. 줄 맞춰 끝없이 늘어선 표석 앞에 서면 숫자로 표기된 죽음의 수치가 비로소 현실이 돼 가슴으로 다가온다. 처참한 살육의 와중에 행방조차 찾지 못한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자 아비나 어미였을 것이었다. 줄 맞춰 세워진 표석 뒤로 잔설이 뒤덮인 병풍처럼 펼쳐진 한라산이 마치 위로하듯 이쪽을 굽어보는 듯했다.

공원 한쪽에는 ‘비설(飛雪)’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조형물이 있다. 달팽이 집처럼 둥글게 쌓아놓고 자장가를 새겨넣은 돌담을 돌아 들어가면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자상이 있다. 사연을 모르고 봐도 가슴이 먹먹하다. 모자상의 주인공은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1월 6일, 두 살배기 딸과 거친오름 북동쪽에서 피신 도중 희생된, 당시 스물다섯의 변병옥. 아이를 끌어안고 숨진 모녀의 시신은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발견됐는데, 조형물은 희생된 두 생명의 넋을 달래고자 그 장면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규모는 훨씬 작지만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에도 4·3사건 당시 300여 명이 집단학살됐던 사건을 추념하는 기념관이 있다. ‘너븐숭이 기념관’이다. 북촌리에서 벌어진 학살은 4·3사건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 희생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무장대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숨지자 격분한 군인들은 마을로 들이닥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결시킨 뒤 ‘빨갱이 가족’을 색출하다가 여의치 않자 무차별 사격으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증오와 복수. 제주의 해안 마을에서 있었던 대부분의 학살은 이런 식이었다. 기념관에는 당시 사건의 경위를 비롯해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에는 이 사건으로 남자들이 다 죽어 북촌에서 후손이 끊긴 집안도 적잖았다는 얘기며, 해마다 섣달 열 여드렛날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얘기 등도 적어두었다. 가족이 이처럼 억울한 죽임을 당했음에도 쉬쉬할 수밖에 없었던, 눈물마저 죄가 되던 시절의 사연도 소개돼 있다.


# 그 슬픔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위미리와 신흥리의 동백숲이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으로 되돌아간다. 제주에서 4·3사건의 흔적은 도처에 있다. 제주의 마을 가운데서 4·3사건 당시 학살의 현장 아니었던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남원읍의 의귀리를 찾아갔던 건 그곳에 주민들과 이른바 ‘산사람’이라고 불렸던 무장대의 죽음이 모두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너븐숭이에서도 그랬듯이 이곳 의귀리에서도 무장대에 의한 군인의 죽음이 먼저 있었고, 이어 마을 주민 집단학살의 보복이 뒤따랐다.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마구 죽였다. 이렇게 남원읍에서만 957명의 주민이 희생을 당했다. 의귀리에서는 무장대를 찾는다며 수색하는 과정에서 주민 80여 명을 한꺼번에 몰살시켜 3개의 구덩이에 던져 매장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죽은 이들의 후손 몇몇이 1964년 동친회를 조직해 토지를 매입하고 1968년 매장한 구덩이의 봉분을 단장하고 산담을 쌓고는 해마다 벌초를 하고 제례를 올렸다. 4·3사건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던 시절이었으니 유족끼리 동친회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고초를 당했지만 이들은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이던 1983년 묘 앞에다 ‘의로운 넋이 함께 묻힌 묘’라는 뜻의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란 글을 새긴 묘비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다 묘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2003년 합장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유해발굴작업이 이뤄졌다. 안타깝게도 39구 유골만 확인했을 뿐 나머지 유골은 모두 흙으로 되돌아간 뒤였다. 유골을 찾지 못한 유족들은 통곡 속에서 3개 봉분의 흙 한 줌씩을 담아 유골을 대신했다. 이렇게 모은 유골과 흙을 화장해서 합장묘를 옮긴 것이 지금의 현의합장묘다.

현의합장묘 인근의 송령이골에는 이른바 ‘산(山)사람들의 무덤’이 있다. 비석도 팻말도 없고 벌초도 하지 않으니 무덤이라기보다는 ‘방치 터’라는 게 더 맞겠다. 여기 묻힌 이들은 국군이 주둔해 있던 의귀국민학교를 피습하는 과정에서 숨진 무장대 51명의 죽음을 모아둔 곳이다. 나뒹굴며 썩어가던 무장대의 시신을 수년이 지난 뒤에 모아 여기 묻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덤불 속에서 방치됐던 무덤에 2004년 그곳에 유골이 묻혀있다는 표식을 담은 나무 팻말이 하나 섰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이곳을 지나면서 천도재를 지내고 세운 것이다. 팻말에는 “학살된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과 무장대 등 그 모두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내 형제며 내 부모였다”며 “이곳에서부터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적어두었다. 비뚤배뚤 손글씨로 쓴 나무 팻말 앞에서 제주 4·3평화기념관 입구에 뉘어진 ‘백비(白碑)’를 생각한다. 아무것도 새기지 않고 놓아둔 채 뉘어놓은 비석이다. 흰 비석에다 과연 우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적어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인가.


■ 여행정보

제주 4·3의 자취… 어떻게 찾아갈까 = 올해는 제주 4·3사건 70주년을 맞는 해이자 이를 계기로 정한 ‘제주 방문의 해’다. 4·3사건 70주기를 앞두고 제주에서는 동백 배지달기 등의 다양한 추념 이벤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4·3사건의 자취는 제주도의 거의 모든 읍면에 다 남아있으니 제주 여행 중 잠깐 짬을 내서 가까운 곳을 찾아봐도 좋겠다.

첫 번째로 추천하는 곳은 제주 4·3 평화공원이다. 공원 안에 4·3의 기록을 모아둔 기념관을 찾으면 4·3사건의 전모와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다. 대정읍의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 불리는 4·3 묘역도 찾아가 볼 만하다. 사계 공동묘지 한쪽에 들어선 백조일손 묘역은 1950년 인근 섯알오름에서 희생된 132명의 유해가 묻힌 곳이다. 여기 묻힌 이들을 학살했던 섯알오름에는 위령 공원이 조성돼 있다. 제주의 관문인 제주국제공항도 4·3사건 당시 최대 학살 터였다.

제주관광정보 공식 사이트(www.visitjeju.net)에는 제주 4·3사건 관련 여행지 등에 대한 정보가 실려있다.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에서 제작한 ‘4·3 길을 걷다’란 지도가 길잡이로 큰 도움이 된다. 4·3의 역사적 현장이 지도 위에 빽빽하게 기록돼 있다. 기념사업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4·3 평화기행 코스’를 추천하기도 했다. 제주시에서는 관덕정→화북곤을동→4·3평화공원→선흘 목시물굴→낙선동성터→북촌 너븐숭이기념관→다랑쉬굴을 돌아보는 여정이, 서귀포시에서는 동광 잃어버린 마을과 헛묘→동광 큰넓궤→대정 백조일손지묘→알뜨르→섯알오름 등을 둘러보는 여정이 대표적인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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