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의 보석 같은 물빛은 뒤로 물러서 보는 것만으로 황홀합니다. 각기 다른 푸른 색깔의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라고나 할까요. 채도가 다른 수십 가지의 푸른 빛이 뒤섞여 오묘한 빛깔로 반짝입니다. 색과 빛이 너무 찬란해서일까요. 제주의 바다는 여행자들에게 ‘보는 바다’의 이미지로 새겨져 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는 누구나 다 알지만 정작 ‘노는 바다’를 잘 모르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 휴가철 피서 여행의 목적지를 제주로 정하고 나면 과연 어느 해안으로 가야할지 망설이게 됩니다. 물색이 아름다운 협재나 함덕의 해변이 떠오르긴 합니다만, 이 두 곳을 빼고 나면 정작 아는 데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해안을 샅샅이 돌면서 제주의 ‘노는 바다’ 를 찾아봤습니다. 제주에는 절벽에서 장쾌한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천연 바다 수영장도 있었고, 하루종일 독차지할 수 있는 자그마한 해변도 있었습니다. 화산암 사이로 솟는 용천수를 받아다 아예 무료 풀장을 만든 곳도 있고, 투박한 제주 사투리의 주민들과 섞여 모래 찜질을 할 수 있는 해변도 있었습니다. 육지의 해수욕장들은 거개가 다 비슷하지만, 제주의 ‘노는 바다’는 놀랄 만큼 서로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휴가 피크시즌을 목전에 둔 이번 주에 LIFE & STYLE이 들려 드릴 이야기는 ‘노는 바다’ 혹은 ‘노는 제주’에 대한 것들입니다.
제주 해안의 첫 번째 풍경. 해안가의 검은 화산암 직벽에 몸을 붙여 기어오르던 푸른 셔츠의 청년이 10m는 족히 넘어보이는 절벽 위에 올랐다. 잘 다듬어진 몸매의 푸른 셔츠 청년이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서더니 이내 탄력있게 몸을 솟구쳐 허공을 그으며 바다 위로 떨어졌다. 초록의 보석 같은 바다 위에 흰 포말이 일었다. 해안가에 몰려있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순 ‘와∼’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여기는 제주 서귀포의 황우지 해안. 황우지는 화산석의 바위들이 물을 막아 만들어 낸 자연 해수 풀장이다. 화산석 갯바위들이 가둬놓은 황우지의 바다는 다이빙을 받아들일 만큼 수심이 깊다. 제주는 물론이고 전국의 해안을 다 뒤진대도 자연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장쾌한 다이빙을 받아낼 수 있는 바다가 여기 말고 또 있을까. 황우지는 제주 올레 8코스가 지나가는 해안의 명소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 길을 걸어본 이라면 갯바위가 가둬둔 황우지의 맑고 투명한 바다를 기억하고 있으리라. 다른 계절에 황우지를 누리는 방법은 보석 같은 물빛을 고요하게 감상하는 것이 전부지만, 여름 피서 시즌의 황우지는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가득찬다. 황우지 해안이 ‘보는 바다’가 아니라 여름 한철에 ‘노는 바다’가 되는 셈이다. 황우지의 수정 같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거나,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젊은이들은 뜨거운 피를 식힌다. 이번엔 제주 해안의 두 번째 풍경. 썰물에 바다가 멀리 밀려나가면서 미처 따라가지 못한 물이 백사장에 거울처럼 고이자 바다에 가까운 모래밭이 봉긋한 섬처럼 떠올랐다. 밀려나간 바다는 푸른색이 겹겹이 겹쳐지면서 세상의 모든 파란색을 빚어낸다. 눈부신 태양 아래 해변에는 느린 시간이 흘러간다. 더러는 백사장에 눕고, 더러는 파도를 따라 걷기도 한다. 저 멀리 흰 돛을 단 날렵한 요트 한 대가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이쪽에서 요트를 봐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데, 저쪽 요트에서 이쪽의 해안을 보는 풍경은 또 어떨까.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되는 해변. 여기가 바로 제주 성산항 북쪽의 김녕성세기 해변이다. 제주의 해변은 이렇듯 저마다 다른 빛으로 빛난다. 황우지나 하도해변 말고도 제주의 해변은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저마다 ‘완벽하게’ 다른 제주의 해변 제주 해안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보면서 느낀 건 비슷한 느낌의 해변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륙의 동해안이며 서해안의 해수욕장은 바다색깔이나 모래의 빛깔, 파도의 크기와 분위기까지 모두 다 닮은 꼴이지만, 제주의 해변은 저마다 ‘완벽하게’ 달랐다. 바다의 색감이 달랐고, 파도의 크기와 해안의 느낌도 모두 달랐다. 차가운 지하수가 솟아나는 해안도 있었고, 이 물로 근사한 무료 풀장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해변 전체를 하루종일 독차지할 수 있는 고요한 해변도 있었으며, 파도에 몸을 싣고 서핑을 즐길 수 있는 해안도 따로 있었다. 제주를 수없이 들락거리면서도 이런 걸 왜 몰랐을까. 그건 아마도 제주의 이름난 한두 곳 해안의 물빛에 홀려서 다른 곳을 쳐다볼 여유가 없었거나, 바다 말고도 제주가 품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였을 것이다. 여행자들도 다르지 않을 터. 그래서 여름 휴가 목적지를 제주로 정하고는 예외없이 물맑기로 이름난 협재 해변이나 함덕서우봉 해변만 줄기차게 찾아갔던 게 아닐까. 저마다 다른 매력을 지닌, 이루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의 해변이 제주에 있음에도 말이다. 제주 해안을 따라 매혹적인 해변을 찾아가는 길. 먼저 제주의 크고 작은 해수욕장 중에서 모두 열 여섯 곳을 추렸다. 이걸 지역에 따라 다섯 구역으로 나눠봤다. 먼저 제주 서쪽. 협재해변을 중심으로 곽지과물해변을 하나로 묶고, 두 번째는 산방산의 이쪽 저쪽에 있는 하모와 사계, 화순 금모래해변을 묶었다. 제주 남쪽의 서귀포 일대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황우지해안 딱 하나밖에 없다. 여기다가 중문의 중문색달해변과 조른모살을 보탰다. 동쪽에서는 하도와 김녕성세기를 묶었다. 제주 북쪽에서는 함덕서우봉과 삼양검은모래 해변을 합쳐봤다. #용천수 맑은 물에 몸을 담그다… 곽지과물해변 먼저 제주 서쪽 이야기부터. 제주 서쪽에서 바다색이 아름답기로는 협재를 최고로 치지만 곽지과물해변도 이 못지않은 물빛을 자랑한다. 이쪽에서는 바다가 유독 아름다운 곳이니 한눈 팔지 말고 해변에 집중하는 편이 좋겠다. 협재 물색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알려진 대로다. 그런데 명성만 듣곤 가서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밀물 때 협재를 찾은 경우다. 협재의 바다는 밀물 때보다 바다가 멀리 나간 썰물 때 몇 배나 더 아름답다. 눈부신 흰빛의 백사장이 드넓어지고 바다색도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난다. 썰물의 협재와 밀물의 협재는 같은 바다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반면 곽지과물해변은 썰물 때나 밀물 때나 거의 풍경의 차이가 없다. 물색도 나무랄 데 없지만, 굳이 협재와 비교한다면 반 뼘쯤 못미친다. 그렇다면 ‘협재를 놔두고 왜 곽지과물해변을 가야 하느냐’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 간명하다. 용천수. 곽지과물해변에는 용천수가 나온다. 용천수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땅 속을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민물을 말한다. 일종의 지하수인 셈인데, 한여름에도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물이 차다. 곽지과물해변에는 용천수를 그득 담아놓은 탕이 있다. 풀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고,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돼 있긴 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이쪽 저쪽을 남녀가 함께 드나 드니 목욕탕도 아니다. 해수욕을 즐기다가 바다의 짠물을 씻어내며 첨벙거리며 노는 공간이자, 일종의 샤워시설이라고 보면 딱 맞다. 용천수는 거저 솟아나는 물이니 이용요금도 따로 없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찬물로 몸을 씻어내면 날아갈 듯 상쾌하다.
곽지과물해변에서 협재해변으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바다에 딱 붙여 지어진 처마 낮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 몇 집이 바다 쪽 담을 작게 헐어내서 시멘트 계단을 놓았다. 집 마당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을 놓은 것이다. 바다로 가는 계단이 있는 집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집은 허술하고 계단 아래 바다의 백사장도 손바닥만 하지만 그래도 집 마당을 통하지 않고는 접근할 수 없는 ‘프라이빗 비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디 이뿐일까. 협재해변의 북쪽 끝에는 처마 너머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고, 가장 아름다운 마당을 가진 수타 우동집도 있다. 우동집의 이름은 ‘협재 수’. 잔디가 심어진 뒷마당 너머로 청옥빛 바다와 비양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우동 맛이 보통이 넘긴 하지만, 바다를 향한 창 앞 테이블에서 국수 한그릇을 놓고 보는 경치를 감히 따를 수는 없다. 이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한림항에서 가까운 웅포천 주변의 카페 ‘엔트러사이트’다. 일제강점기 공출을 위해 돌로 지었다는 전분공장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카페를 들였다. 웅포천은 물맛이 좋아 제주에서 유일한 공장이라는 ‘한라산소주’ 공장도 이 물을 받아쓴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무렵 웅포천 주위로 공장들이 몰려들었단다. 카페는 무너진 공장을 개조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미가 넘친다. 지붕에는 투명 아크릴을 대 빛을 끌어들였고, 일제강점기 공장설비를 그대로 놔뒀다. 공장 안 이곳 저곳에 흩어놓듯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놓아 분위기는 느슨하고 또 편안하다. 카페는 여행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들이면서 일약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서핑보드를 타고 파도를 가른다… 사계해변 이번에는 제주 서남쪽 산방산 부근. 여기에는 하모해변과 소금막, 사계해변, 화순 금모래해변 등이 몰려있다. 하모해변은 지역 주민들이 주로 찾는 곳. 한여름에도 인적이 드물 정도로 한적하긴 하지만 바다는 영 기대에 못미친다. 소금막은 호젓하면서도 바다 빛깔도 좋고 놀기도 괜찮지만, 인근을 질주하는 사륜바이크의 소음 탓에 추천하기가 망설여진다. 사계해변에서는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젊은이들이 환성을 지르며 파도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해수욕을 즐겨도 좋지만, 직접 서핑을 체험해 보는 게 훨씬 더 즐겁다. 하루 7만 원에 슈트 대여료 1만 원을 더 내면 서핑 강습을 받고 종일 해변에서 파도를 즐길 수 있다. 파도를 가르며 멋지게 활강하는 실력이 없다 해도 어떠랴. 서핑보드에 배를 깔고 파도를 타는 재미가 그만이다. 다만 밀물 때면 떠내려온 부유물로 해안이 좀 지저분하고, 편의시설이 거의 없다는 점이 단점이다. 화순 금모래 해변의 첫인상은 실망스럽다. ‘금모래’라고 해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를 상상했다면 그 실망이 더 크겠다. 모래는 육지에서 보는 그냥 보통 모래다. 화순 금모래 해변을 빛나게 하는 건 근사한 용천수 풀장이다. 두 개의 풀에다 미끄럼을 즐길 수 있는 슬라이드까지 설치해 두었는데, 큰 풀은 웬만한 수영장보다 더 크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풀장 이용료가 무료라는 점. 파라솔이나 그늘막은 따로 사용료가 책정돼 있지만, ‘움직이면 돈이 드는’ 제주에서 이 정도라면 황송할 따름이다. 이쪽 해변에 휴가의 베이스캠프를 차렸다면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에 지질트레일 코스를 따라 걷는 트레킹을 권한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트레일 코스 중에서 압권은 단연 용머리해안이다. 땅 속에서 올라오던 마그마가 지하수를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며 분출된 화산재의 흔적인데 바다를 끼고 있는 지층이 물결치듯 펼쳐지는 형상에 입이 딱 벌어진다. 용머리해안은 밀물 때나 파도가 높을 때는 출입이 통제되니 미리 체크해야 한다. #낭만적인 풀에서 즐기는 리조트 라이프 서귀포 일대에는 해수욕을 즐길 해변이 황우지해안밖에는 없다. 중문 쪽까지 사정권에 넣으면 중문색달해변과 조른모살을 보탤 수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황우지해안은 화산암 갯바위가 물을 가둬 만든 천연 수영장이다. 여기는 ‘행동파’ 휴가객들에게 딱 맞다. 갯바위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거나 물안경을 끼고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황우지해변 일대는 수심이 깊어 아이들에게는 좀 위험한 편이다. 도로에서 황우지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옆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어 손님들에 한해 간이시설에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중문색달해변은 중문에 즐비한 호텔을 숙소로 잡은 피서객들에게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백사장도 다른 제주의 해수욕장보다 훨씬 길다. 하지만 수심이 완만하지 않고 파도가 세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피서철에 휴가객들로 붐빈다는 것도 단점이다. 그렇다면 중문색달해변 곁에 숨어있는 해변, 조른모살이 있다. ‘조른’은 제주 사투리로 ‘짧은’이라는 뜻. ‘모살’은 모래를 말한다. 짧은 백사장이 있는 해수욕장이란 뜻이다. 서귀포나 중문 쪽에서 즐길거리라면 단연 ‘리조트 라이프’다. 중문 쪽에 늘어선 특급호텔들은 저마다 낭만적인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지난해 문을 연 켄싱턴 제주호텔이다. 켄싱턴 제주는 휴양지의 콘셉트에 맞춰 올인클루시브형 호텔을 지향하고 있다. 맥주와 음료수, 스낵 등이 그득 담긴 객실 내 미니 바가 무료다. 호텔 옥상층에 인피니티 풀을 갖춘 수영장도 인상적이다. 인피니티 풀이란 수영장 안에서 주변의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담을 모두 없앤 풀을 말한다. 시야를 열어둔 것만으로도 수영장의 느낌은 환상적이다. 호텔이 언덕 위에 세워진데다 호텔의 루프톱 공간에 풀이 있어 여기서 중문 바다와 한라산 등이 360도로 다 내려다 보인다. 루프톱에는 수영장을 비롯해 태닝존, 이탈리안레스토랑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켄싱턴 제주의 루프톱 수영장은 밤의 정취가 가장 빼어나다. 은은한 조명에 옥색으로 빛나는 수영장에 몸을 담그거나 풀사이드 비치체어에 앉아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루프톱 바에서는 칵테일 ‘모히토’를 5만 원에 무제한 즐길 수 있는 해피아워도 운영하는데, 투숙객이 아니라도 이용할 수 있다. #지중해의 풍경을 만나다… 김녕성세기 이번에는 제주의 동쪽 성산 일대다. 이쪽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은 하도해변과 김녕성세기 해변이다. 이쪽에서는 김녕성세기 해변이 단연 압권이다. 순백의 백사장도 그렇고, 바다색도 아름답다. 제주의 다른 해안은 백사장이 활처럼 곡선을 그리는데 김녕 백사장은 썰물 때면 물이 자로 그은 듯 똑바로 밀려나간다. 미처 나가지 못한 맑은 물이 곳곳에 맑은 소(沼)를 만들어 수면에 하늘을 찍어낸다. 김녕 앞바다에는 흰 돛을 단 호화 요트가 관광객을 태우고 자주 출몰한다. 코발트빛 바다 위에 요트 한 척이 떠있는 모습은 마치 지중해의 어디쯤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하도해변은 파도가 겹겹이 몰려드는 곳이다. 겹쳐지는 파도마다 젊은이들이 서핑보드를 얹어놓고 즐기고 있다. 물색도 그만하면 괜찮고, 무엇보다 다른 이름난 해변에 비해 덜 붐벼서 호젓한 피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대안이 될 듯 싶다. 제주 북쪽에는 함덕 서우봉해변과 삼양검은모래 해변이 있다. 함덕이야 청록색 물빛으로 일찍이 이름난 곳. 제주의 다른 바다와 다르게 함덕의 바다는 밀물 때 가야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함덕은 리조트와 호텔들이 몰려있어 피서객들로 가득 차는 곳이다. 함덕의 해변은 한참을 나가도 수심이 허리춤밖에 안 찰 정도로 바다가 완만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피서객들에게는 최고의 바다다. 워낙 피서객들이 많이 몰려 제주의 해변 중에서 편의시설이 잘 돼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제주시 중심에서 멀지 않은 삼양검은모래 해변은 ‘관광객용’이 아니라 ‘제주시민용’이라 할 수 있겠다. 육지 사람들이 가볍게 마트에 다녀오듯 제주시민들은 이 바다를 찾아온다. 학교가 일찍 파한 날이면 아이들은 이 바다로 와서 종일 논다. 검은 빛깔의 모래는 찜질에 좋다지만 어찌 보면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빛도 가슴뛰게 하는 제주의 것이라기보다 육지의 여느 바다 같다. 그럼에도 제주시민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 도심과 가깝다는 점 때문이겠지만, 왠지 푸근하고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 때문인 듯도 하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백숙 한그릇을 평상에 놓고 앉는 ‘옛날식 피서’를 원한다면 이쪽이 딱이다. 해수욕장 한편의 가건물에 들어선 식당은 바가지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바가지가 있다면 주민들이 누가 찾아올까. 음식 가격은 다른 곳과 비슷하지만 담겨오는 음식의 양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제주 동쪽의 바다를 찾았다면 오전 일찍이나 오후 늦게 제주 동부에 밀집한 오름을 찾아 트레킹을 즐기는 게 제격이겠고, 제주 북쪽의 해변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면 볕 뜨거운 한낮에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다 가리는 사려니숲길이나, 절물휴양림 등을 함께 찾아볼 것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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