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정재승_사랑학 실험실

醉月 2009. 10. 16. 08:59

첫 만남에선 자이로드롭을 함께 타라

육체적인 흥분을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인식하는 과정

 

사랑만큼 사적이고 내밀한 체험이 또 있을까? 우리를 평생 동안 깨어 있게 하는 것. 남의 얘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으며, 내 얘기는 묻지 않아도 들려주고 싶은 것.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물어보지만, 사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제각기 다른 것. 그래서 2007년 5월10일 지구상에는 65억9956만6300개의 사랑 이론이 존재한다.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을 남들도 비슷하게 경험했을까? 남들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소설이나 에세이, 유행가 가사나 영화는 우리에게 각양각색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들 사이를 관통하는 보편적 원리를 들려주는 ‘사랑의 과학’은 쉽게 만나지 못한다. 이 칼럼이 시작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칼럼은 생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랑의 실험실’에서 수행했던 실험과 통계 결과를 소개하면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이 우리 삶과 인류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사랑에서 가장 불필요한 질문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이고, 가장 어리석은 질문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지만, 이 칼럼은 독자들에게 이 쓸데없고 어리석은 질문들을 계속 떠올리게 할 것이다. 사랑이 과학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기대하시라. 과학자에게 ‘사랑’만큼 흥미로운 연구 주제도 없다.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떨리고 긴장하게 마련이다. 교감신경 말단에서 갑자기 아드레날린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심장 박동수는 1분에 85회 이상으로 늘어나고, 몸에 열이 가볍게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손에는 땀이 찬다. 긴장감이 고조되어 말이 잘 나오지 않거나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떨리는 첫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이런 육체적인 각성은 만남 초기에 남녀 간의 호감으로 인해 유발되는 반응일 뿐 아니라, 심지어 사랑을 촉발하는 ‘사랑의 묘약’이라고 주장한다. 〈LOVE: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저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아얄라 파인스는 수천 쌍의 남녀 커플들을 인터뷰한 결과, 극적인 사건을 겪은 뒤 몹시 흥분된 상황에서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경우가 무려 20%에 달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이나 유학, 혹은 해외여행과 같은 새로운 상황에서 쉽게 연애에 빠지며, 부모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결별 같은 상실을 경험한 뒤에도 이성 친구에게 쉽게 끌리게 된다고 한다.

» 사람은 흥분된 상태에서 만난 사람과 쉽게 연애에 빠진다. 서울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
카필라노 실험, 흔들다리와 나무다리의 차이

1991년 중동에서 벌어진 걸프전 때 이스라엘에서는 이른바 ‘전시사랑’(war love)이라 불리는 현상이 나타나 수많은 남녀들이 사랑에 빠졌다. 전쟁이라는 극적인 사태를 함께 경험하면서 남녀가 쉽게 사랑에 빠지게 됐고, 심지어 이혼을 했거나 별거를 하고 있던 부부들도 대피소 생활을 함께 하면서 다시 결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월드컵의 광분이 이어준 커플이 꽤 되리라.

이러한 현상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지심리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각성과 꼬리표’(arousal and label)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첫 만남의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는 동안 두 단계를 체험하게 되는데, 먼저 찾아오는 것이 ‘신체적인 각성’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이 각성 상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사랑이나 분노, 공포, 질투와 같은 ‘심리적인 꼬리표’를 여기에 붙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슷한 각성 상태가 유발되더라도, 그것이 멋진 남자가 질문을 건네와 생긴 것이라면 ‘사랑’이라고 해석하고, 어두운 거리에서 누군가 다가와서 생긴 것이라면 ‘불안’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는 것이다.

‘좋아해서 흥분하는 게 아니라, 흥분하는 걸 보니 좋아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대학 아서 아론과 도널드 더튼 박사의 ‘카필라노 실험’도 그중 하나다. 캐나다 밴쿠버 근처에 있는 카필라노강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절벽들을 가로지르는 길이 135m의 흔들다리이고, 다른 하나는 좀더 상류에 있는 나무로 견고하게 지은 다리이다. ‘흔들다리’는 늘 심하게 흔들리는데다 케이블로 된 양옆의 난간도 높지 않아 오가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나무다리’는 난간도 높고 다리 밑 얕은 개울과는 겨우 3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안정감을 준다.

아론과 더튼 박사는 매력적인 젊은 여자를 실험 도우미로 고용해 다리를 건너는 남자들에게 설문을 받아오게 했다. 실험 도우미에게는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을 알려주지 않았고, 단지 남자들이 다리를 건너고 있으면 다가가 실험에 참가해줄 것을 요청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창조적인 표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중이라고 설명하게 했다. 그리고 남자 실험 참가자들이 질문지를 모두 작성하면, 설문지 귀퉁이를 찢어서 실험 도우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설문에 감사하며 설문 결과가 궁금하면 연락 달라’고 말하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흔들다리를 건너면서 각성 상태에 있던 남자들 중에서 실험 결과가 궁금하다며 전화를 해온 사람의 수가 나무다리 위에서 같은 실험을 수행했을 때보다 무려 8배나 더 많았다! 흔들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이 실험 도우미에게 훨씬 더 이성적인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실험 도우미에게 호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정말로 설문 결과가 궁금해서 전화를 한 거 아니냐고? 똑같은 실험을 남자 실험 도우미로 반복해보면, 실험에 참가한 남자들 중에서 설문 결과가 궁금하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소재)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는 1966년 성격사회심리학회지에 제출한 논문에서 더욱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밸린스 교수는 남자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겠다고 말한 다음, 여성 나체 사진 10장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듣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미리 녹음해둔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주었다. 실험 참가자의 신체 반응과는 아무 상관없이 엉뚱한 사진들에서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도록 조작해놓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심장박동이 특정 사진에 반응해 더 빨라졌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 참가자들에게 좀전에 본 여자 사진 10장을 매력적인 순서대로 나열해보라고 하면, 실험 참가자들이 자신의 심장박동을 빨라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여성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한 달 뒤, 동일한 사진 10장을 다시 보여주면서 같은 질문을 해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했다고 믿는 여자를 가장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이 연구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놀랍게도 ‘사람들은 사랑해서 흥분하는 게 아니라, 흥분을 하면 사랑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맘에 드는 이성과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면, 그를 제일 먼저 놀이동산으로 데려가 자이로드롭에 태워라. 그와 함께 100m 상공으로 올라가서 내려올 때 함께 눈을 맞추라. 그러면 상대는 당신 때문에 흥분된 줄 알고 다음날 당신에게 곧바로 전화할 것이다.

 

‘비호감’ 도 증폭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체적으로 흥분시키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각성은 상대방이 어느 정도 매력적인 경우에만 호감을 키워준다. 상대방이 매력적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반대 결과가 나타난다.

이번 학기부터 한국과학기술원 학부생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사랑학’ 수업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았다. 남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에게는 각성상태를 만들어주기 위해 제자리뛰기를 2분간 시키고, 다른 집단에게는 가볍게 15초간만 시켰다. 그런 뒤 곧바로 여러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호감도를 표시하라고 했더니, ‘2분간 제자리뛰기를 한 집단’은 매력적인 여성에겐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그렇지 않은 여성에겐 거의 0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었다. 다시 말해 신체적 각성상태는 그 사람의 지배적인 감정을 증폭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것이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간에 모두.

프랑스의 작가 라로슈푸코는 자신의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마음이 흥분했을 때 인간은 자칫 잘못하면 사랑을 하게 된다. 진정으로 사랑을 하고 싶다면 냉정한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떨리고 긴장하는 것. 이 당연한 현상에 대해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사랑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앞에서 매번 긴장하고 자꾸 실수하고 있다면, 내 몸이 들려주는 소리에 곰곰이 귀기울여보시길.

 

시선 교환이 마음을 얻는 비결, 벼락같은 사랑은 상대의 큰 동공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물어보면, 한결같이 ‘첫 만남의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첫인상이 안 좋았다가 나중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첫눈에 반하진 않더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초두효과(primacy effect)로 설명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대해 판단할 때,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첫인상이 좋으면 나중에 다소 부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눈 맞출수록 높은 애정 지수

그렇다면 첫 만남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첫눈에 상대를 반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사실은 우리 코 위에 있다. 사랑이 어디에서 오냐고? 사랑은 심장이나 생식기가 아니라 바로 눈에서 시작된다. 눈과 눈의 만남을 통해 사랑은 마음을 얻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서관계가 만들어질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시각기관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헤어질 때 “다음에 또 봐요”라고 인사하지, “다음에 또 냄새를 맡아요”라고 하지 않는다. 영국의 한 과학자가 몰래카메라를 이용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화를 하는 동안 평균 30%에서 60%에 해당하는 시간만 상대방을 쳐다본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사랑의 엔진을 힘차게 돌리려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심리학자 자크 루빈은 말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자크 루빈 교수는 미시간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사랑을 측정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무모할 정도로 낭만적이었던 이 젊은 연구자는 나중에 하버드대학교로 옮기면서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 애정 정도를 측정하는, 이른바 ‘루빈의 저울’이라는 것을 최초로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의 측정’이라는 논문에서 그가 제안한 방법은 간단하다. 대화를 하는 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의 눈을 쳐다보는가를 재보면, 사랑하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빈 교수는 연인들을 모집해 그들의 애정 정도를 묻는 일련의 긴 설문을 했다. 대기실에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연인들이 설문을 하기 전 기다리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는지를 측정했더니, 오랫동안 눈을 쳐다보는 커플일수록 애정 설문에서 높은 수치가 나왔다. 상대방의 혈관에서 ‘사랑의 호르몬’ 페닐에틸아민이 솟구치길 원한다면, 대화 시간의 75% 이상 눈을 맞추라고 심리학자들은 권한다.

‘술은 입에서 오고 사랑은 눈에서 온다’고 예이츠는 자신의 시에서 노래했던가? 시인이 시를 쓴 지 10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은 그것이 사실임을 과학으로 증명하고 있다. 1989년 미국의 심리학자 캘러먼과 루이스 박사는 생면부지의 남녀 48명을 큰 실험실에 들어오게 한 뒤 그중 한 그룹에게는 상대방의 눈을 2분 동안 보도록 지시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2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낯선 상대를 쳐다봐야만 했던 남녀는 ‘실험 후 서로에 대해 호감이 늘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시선 교환이 왜 이처럼 뜨거운 결과를 가져오는 걸까?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그것을 ‘인간의 원시적 본능’으로 설명한다. 즉 눈과 눈이 마주치면 인간의 두뇌 가운데 원시적인 영역이 자극을 받아 두 가지 기본 감정, 접근하느냐 후퇴하느냐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헬렌 피셔의 주장이 맞다면, 첫 만남에서 상대방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사냥감(?)과 거의 위협에 가까울 만큼 강렬한 눈빛을 교환하시라. 느끼해서 여자가 도망갈 것 같다고? 한번 해보시라. 의외로 반응 좋다.

 

이탈리아의 특별한 안약

그렇다면 빤히 쳐다보기만 해도 상대방이 내게 호감을 가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상대방이 호감가는 상대인지, 충분히 믿을 만한지를 알아내는 신호가 따로 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바로 ‘동공의 크기’다. 호감이 가는 상대방을 만나면 눈동자의 동공이 팽창된다. 강한 자극을 느꼈다는 얘기다. 반면 동공이 수축했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이 풀렸다는 뜻이다.

여성들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기 사진을 보면 동공이 커진다. 그러나 남자들은 자식이 있는 경우에만 이같은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싱글맘을 꼬이려는 선수들이 공원을 배회하다가 유모차에서 버둥대며 우는 아기를 보며 자지러지곤 하는 모습을 본다면(미국에선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기의 엄마를 어떻게 한번 꼬여볼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보면 된다.

영국에선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점잖은 신사들에게 신인 여배우의 사진과 영국 화가 휘슬러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을 보여주며 비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사들은 위엄 있는 노부인의 모습에 온갖 찬사를 쏟아냈지만, 막상 동공의 변화를 관찰해보니 이런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신인 여배우 사진에서 동공이 훨씬 더 팽창했다.

‘동공의 팽창’이 나타내는 신호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동공계측학(pupillometrics)라는 엽기적인 분야를 창시한 에크하르트 헤스 박사가 했던 독창적인 실험의 결과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똑같이 인쇄한 두 장의 매혹적인 젊은 영국 여성의 사진을 남자들에게 보여주되, 한쪽 사진만 연필로 눈동자가 좀더 커 보이도록 조작했다. ‘이 두 장의 여자 사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남성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동공이 크게 팽창된 여자의 사진이었다. 벼락같은 사랑은 평소보다 몇mm 늘어난 동공에서 시작된다. 섹시하면서도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고 싶다면, 당신의 동공을 넓혀라.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냐고? 연필로 사진의 동공을 크게 그리듯 마음대로 조작할 순 없지만, 동공의 크기도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선 르네상스 시절 이미 동공이 크면 더 섹시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아가씨들이 동공을 확대하기 위해 특별한 안약을 넣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이 안약은 아트로핀 제제를 주성분으로 했는데, 아트로핀은 원래 동공을 키울 뿐만 아니라 심장박동을 가속화하고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하며 가볍게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에 빠졌을 때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약의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벨라 도나(Bella Donna),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부인’이란 뜻이다.

명대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좀 느끼하지만, 과학자들이 권하는 ‘눈빛으로 유혹하는 기술’은 끈적끈적한 눈빛을 보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화할 때 문장이 끝나거나 침묵이 흐르면 어색해서 잠시 시선을 딴 데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화 사이사이 짧은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상대방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말고 쳐다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함을 느낄 것이다. 소설에서 흔히 상대방에게 마음을 뺏겼을 때 ‘그는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표현하지만, 눈을 떼지 않는다면 마음을 뺏기는 쪽은 상대방이라고 과학자들을 지적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모로코를 무대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만 했던 연인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그린 <카사블랑카>의 명대사를 기억하는가?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가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잉그리드 버그먼을 응시하며 했던 한마디, “당신의 눈동자를 위해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 이 명대사가 얼마나 명번역인지, 과학자는 지난 30년간의 연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랑은 왼쪽 귀에 속삭이세요

사랑에 빠진 남자는 왜 여자의 왼쪽에서 걸어갈까

 

노랫말도 쓰고 곡도 만드는 가수 심현보의 노래 중 <사랑은 그런 것>이란 노래가 있다. 이 감미로운 발라드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둘이 걸을 땐 언제나 너의 오른쪽에 서는 게 좋아. 내 심장에 니가 좀더 가까워지는 이런 기분 모를 거야.” 이 인상적인 가사는 실제로 심현보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가 여자친구와 걸을 때 주로 오른쪽에서 걷는 습관이 있어서, 그것을 ‘내 심장에 니가 좀더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함’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그러나 가수 심현보의 ‘연인과의 걷기 습관’은 일반적인 남자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도시인류학적 관찰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은 여자의 왼쪽에서 걷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필리프 튀르셰는 길거리를 걷는 남녀 2만여 커플의 좌우 위치를 조사해본 결과, 걸을 때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애정 정도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난 지 오래 되지 않은 연인처럼, 남자와 여자가 몸을 별로 접촉하지 않은 채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유롭게 걸을 때 남자가 여자의 왼편에 서는 비율은 53%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가 포옹하듯 두 손으로 여자의 몸을 감싸안은 자세로 걷는 경우에는 남자가 여자의 왼쪽에서 걸을 확률이 73%로 올라간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서로를 감싸안은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은 외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친밀함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 경우 남자는 여성의 왼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차도 에티켓? 속옷이론?

더 놀라운 것은, 유모차를 밀고 있는 부부를 관찰한 결과다. 아내가 유모차를 미는 경우 남편은 아내에게서 약간 떨어져 옆에서 걷게 되는데, 이때 84%의 남자가 여자의 왼쪽에 선다고 한다. 남편이 유모차를 미는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에게서 약간 떨어져 걷게 되는데, 이때에도 81%의 남편이 아내의 왼쪽에서 유모차를 민다고 한다. 도대체 남녀와 좌우 걷기 행동은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제로 서울 한복판에서 거리를 걷는 연인들을 관찰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흔히들 남자와 여자가 길을 걸을 때에는 여자를 자동차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차도에 가까운 바깥쪽에서 남자가 걸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밀착된 연인일수록 ‘차도 에티켓’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요즘이야 자동차가 인도로 질주할 가능성이나, 간판이 떨어져 다칠 가능성이나 비슷하지 않은가?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들이 있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에는 이 문제에 대한 ‘속옷이론’이 등장한다. 옷의 단추를 여미는 방식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여자가 왼쪽에 서게 되면 남자가 고개를 돌리면 단추 사이로 여자의 브래지어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오른편에 서면 서로 속옷이 안 보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의 왼편에 주로 서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해석이지만, 실제로는 남자가 여자의 왼쪽에 있을 때 속옷이 더 잘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리진 않는다(그리고 애정이 깊을수록 연인들에겐 속옷이 힐끔 보이는 게 덜 중요해지지 않을까?).

얼마 전 미국 샘휴스턴주립대 심 터우충 박사는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는 왼쪽 귀에 하는 것이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감성을 자극하는 말을 녹음해 100명의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 들려준 결과, 왼쪽 귀로 들었을 때 더 정확히 기억했다는 것이다. 들려준 말을 정확히 기억한 수는 왼쪽 귀에 들려준 경우 70명, 오른쪽 귀에 들려준 경우 약 58명이었다. 12%포인트의 차이이긴 하지만, 사랑을 속삭일 땐 연인의 왼편에 서야 한다는 것을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왼쪽 귀와 연결된 우뇌가 감정 조절에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속삭이는 사랑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왼편에서 걷는 걸까?

필리프 튀르셰는 자신의 저서 <남자는 왜 여자의 왼쪽에서 걸을까>(에코리브르, 2005)에서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무의식적 감정의 표출 장소로서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아무런 얘기도 없이 그저 몸을 접촉한 채로 길거리를 걷는 부부의 모습에서 진정한 소유관계의 현주소가 나타난다고 얘기하면서, 이 현상을 ‘통제하고자 하는 뇌의 욕구’가 표출된 것으로 해석한다.

 

왼쪽에서 경계하고 감시하라

애착은 때론 상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두 사람을 묶어주는 이 애정상태를 지속시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동반한다. 이 두려움에 맞서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으로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좀더 서로를 통제하기 위해, 길을 걸을 때조차도 좌우 상대적인 관계를 재정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대뇌 작용과 관련이 깊다고 말한다.

왼편에 선 남성이 앞 공간의 오른쪽 시야, 그러니까 여성을 바라보게 되는 곳은 대뇌의 왼쪽 반구가 관장한다. 그런데 왼쪽 반구는 지배와 질서 유지의 기능을 주요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오른쪽 반구가 좀더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한편, 왼쪽 반구는 인간의 모든 명령을 세부적으로 관리한다. 필리프 튀르셰에 따르면, 남자는 행복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자신의 통제 아래 여성을 두기 위한 경계와 감시를 주목적으로 여성의 왼편에 선다는 것이다. 이 통제 의지에 의해 결정된 무의식적 전략이자 행동방식이 바로 왼쪽 반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남성들의 왼쪽 반구가 그들을 여성의 왼쪽에서 걷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상대의 오른쪽에 서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상대의 감정에 귀기울이는 상태에 위치시키게 된다. 오른쪽 반구가 그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자신이 관계를 리드하지 않겠다는 것을 남자에게 보여주면서 남자의 오른쪽에 선다고 한다. 여자는 자신이 왼쪽에 선 남자의 보호를 받아들이기로 기꺼이 작정하고 통제 아래 놓인 상태에서 그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우리 둘의 관계는 서로 독립적이며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분이라면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리프 튀르셰의 주장일 뿐이다. 다만, 오늘부터라도 애인과 길을 걸을 때 고정된 좌우 구도가 있는지만 관찰해보시라. 만약 고정된 자리가 있다면, 그것이 ‘그저 편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학자들의 주장을 한 번 더 상기해주시길!

불과 3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의 부부들은 어땠나? 나란히 걷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 남편이 앞장서서 걸어가면 아내는 아이 손을 잡고 말없이 뒤따라가는 모습을 길거리에서 늘 보며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랐다. 가부장적인 부부 관계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는 이 ‘저만치 앞서가는 임 그림자’ 구도가 줄어든 것에서 대한민국 부부 관계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면 그것도 지나친 해석일까? ‘연인들은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관계를 자연스레 드러낸다’는 튀르셰의 주장은 약속 장소에서 반갑게 맞이하는 내 남자친구의 팔짱을 어떤 손으로 낄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내 반쪽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감정의 이성 납치 현상’이 높은 사람에게 일어나… 유전적 기억과 본능일 수도

 

평생을 함께할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우리는 첫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이몽룡이 성춘향을 보고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듯이, 줄리엣이 로미오를 본 순간 온통 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듯이,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첫눈에 반한 사랑’(love at first sight)이 과연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현상일까?

» 너, 나한테 반했지? 사랑학 연구자들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바람둥이들도 의외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신봉한다.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바람둥이로 분한 주드 로.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

사랑학 전문가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사랑과 관련해서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로 바로 이 질문을 꼽았다고 한다.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한 커플 중에서 ‘첫눈에 반한 사례’는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그들은 그렇지 않았던 커플들보다 결혼 뒤에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미혼 남녀들이 ‘내가 과연 잃어버린 내 반쪽을 만났을 때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첫눈에 반한 사랑’ 옹호론자인 얼 나우만 박사는 1970년대 미국인 1495명(남자 547명, 여자 948명)을 대상으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보면 첫눈에 반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응답자의 무려 64.1%나 되었다. 남녀의 차이도 별로 없었다(남자 65.2%, 여자 63.6%). 다시 말해 성별에 상관없이 전체 응답자 중 3분의 2가 첫눈에 반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강력히 믿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아시아나 태평양계 민족에서는 다른 민족들보다 그 수치가 월등히 높아 무려 80%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우리 주변에도 운명적 사랑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첫눈에 반할 수 있다고 믿는 958명 가운데 558명, 즉 60%의 사람들은 첫눈에 반한 사랑에 ‘실제로 빠진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즉 전체 응답자 1495명 중 38% 정도가 첫눈에 반한 사랑을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들 중 결혼에까지 성공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첫눈에 반한 커플은 뭔가 다를까? 통계에 따르면 ‘그렇다’! 첫눈에 반한 커플들 중에서 55%가 결혼에 성공했다. 미국의 경우 결혼 전 연애 경험이 5회를 넘는 것에 비추어보면, 첫눈에 반한 경우 결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혼 뒤에 더 행복하게 살까? 결혼에 골인한 첫눈에 반한 커플들 가운데 75.9%가 평균보다 더 오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평균 이혼율이 50%를 웃도는 상황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져서 결혼한 사람들 중 4분의 3이 아직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의 이혼율은 불과 15.9%. 나머지 8.2%는 사별을 한 경우다. 결국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결혼 뒤에 좀더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얘기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자신의 시 ‘첫눈에 반한 사랑’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을 ‘이미 결정된 운명적인 관계’라고 해석한다. 사람들은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주었고,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갑작스런 열정’에 더욱 확신을 갖지만, 사실 그들은 예전에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을 수도 있고, 잘못 건 전화로 잠시 목소리를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을 친 것은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 그러다가 때가 되어 두 사람이 마주 보게 됐다는 것이 심보르스카의 주장이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1970년대와 1990년대, 사랑이 이렇게 변하니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실제로 ‘첫눈에 빠진 사랑’은 소설 속 얘기만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은(최소한 38%는) 운명처럼 정해진 제 짝이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반쪽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설문조사에서는 그 결과가 많이 다르게 나왔다. 사랑을 연구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아얄라 파인스가 1990년대 미국인 커플 10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들 중 약 11%만이 ‘자신의 파트너에 첫눈에 반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10명 중 한 사람만이 “나는 이 사람을 본 순간 ‘바로 이 사람이다’ 싶었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1970~80년대,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수치다. 첫눈에 반한 커플들의 이혼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0년대 커플들은 ‘우리의 운명은 여기까지!’라고 쉽게 선언하고, 다른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을 찾아 미련 없이 떠난다는 것이다.

사실 결혼이 계약관계 중 하나였던 중세에서부터 20세기 이전까지 낭만적 사랑은 결코 결혼의 전제조건이 아니었으며, 한두 번 서로 얼굴 보고 결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결혼이라는 ‘집안과 집안의 계약관계’를 벗어나 ‘첫눈에 반한 이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생물학적 욕정과 크게 다르지 않게 해석되곤 했다.

20세기 들어 ‘낭만적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고 그 가치가 높게 평가받는 시대가 되면서, ‘첫눈에 반한 사랑’은 현대인의 ‘결혼에 대한 낭만적 신화’로 자리잡게 된다. ‘운명적 사랑의 완성이 바로 결혼’이라는 이 신화에는 결혼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결혼에 대해 다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첫눈에 반한 운명적 사랑에 대한 신화가 무너진 것은 아닌가 싶다. 결혼이 다시 경제적 거래요, 정치적·권력적 결연이 돼버린 오늘날, 첫눈에 반한 사랑을 믿는 것은 ‘아직 어리다’는 증거와 다름없는 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사랑학 연구자들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첫눈에 반한 사람 앞에서 왠지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리고 기분이 들뜨면서 행복해지는 것은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같은 화학물질의 작용 때문이다. 대개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활동적인 뇌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감정의 폭도 훨씬 넓고 깊다. 잠재 감성지수도 높기 때문에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감정의 이성 납치 현상’에 걸려들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이상적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잘 나타나며, 그 사랑에 감전될 때 느끼는 감정의 폭과 깊이가 워낙 커서 여러 번 일어나기는 어렵다. 흔히 느낌은 근거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쩌면 이성을 앞서는 유전적 기억과 본능이라는 것이 사랑학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사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자연계에선 흔한 일이다. 대부분의 암컷들에게는 생리적으로 성숙하는 주기가 따로 있고 새끼를 낳는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다. 그들에게는 수컷의 씨를 받고 새끼를 낳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시간이 단 몇 주, 혹은 며칠밖에 없다. 그러니 모든 수컷 구애자들의 이력서를 검토하느라 몇 달씩 허비할 수가 없다. 시각과 청각, 후각 등 자신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단번에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도 얼굴 인상만으로 ‘함께 가정을 꾸릴 경우 이 남자가 가족을 잘 보살필 만한 사람인가’를 굉장히 빠른 시간에 간파한다고 한다. 특히 그러한 능력은 가임기 때 현저히 늘어난다는 사실이 심리학 저널에 보고된 바 있다.

 

때론 핑계 또는 작업 수단

‘첫눈에 반한 사랑’에 궁금증이 조금은 풀리셨는지. 마지막으로 할리우드의 유명한 바람둥이이자 매력남 조지 클루니에 대해 한마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는 첫눈에 반한 사랑을 믿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미 4년간의 결혼생활을 한 바 있고, 러네이 젤위거에서 크리스타 앨런, 리사 스노든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린 그는 매번 헤어진 이유에 대해 ‘운명적 사랑이 아닌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다. 자신의 부모는 첫눈에 반해 결혼해 아직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며 그도 그런 사랑을 지금도 꿈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매번 새로운 사람을 쉽게 만나고 새로운 운명적 사랑을 찾아 쉽게 떠난다. 조지 클루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첫눈에 반한 운명적 사랑’은 때론 바람둥이에게 ‘헤어짐의 핑계’ 또는 ‘작업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하라, 사랑이 깊어지리니

술집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모두 예뻐 보이고, 홈쇼핑 ‘마감 임박’이 우리를 현혹하듯이…

 

미국의 컨트리 가수 미키 길리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아가씨들이 모두 예뻐 보여요. 제게는 모두 영화배우처럼 보여요.”(All the girls get prettier at closing time, they all get to look like movie stars) 술집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면 혼자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술집에 있는 모든 여성이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 부모의 반대나 주위의 장애가 연인들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부른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 박사가 현대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효과는 실제로 존재한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96).


어렵게 성취한 것이 더 가치 있어 보여

이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로 실험을 해본 심리학자가 있다. 텍사스주립대(오스틴 소재) 심리학과 제임스 페너베이커 교수는 1979년 어느 날, 대학 근처에 있는 술집 세 곳을 실험 장소로 정하고 그곳에 혼자 온 손님들에게 다가가 술집에 있는 이성에 대한 호감도를 점수로 매겨달라고 부탁했다. 이러한 평가를 밤 9시, 10시30분, 12시에 세 번 반복했더니, 남녀 모두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성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술집에 있는 이성들이 더 멋있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것이다. 술을 얼마나 먹었느냐와 상관없이 남녀 모두 다!

술집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면 왜 여자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그 해답을 유도저항이론에서 찾는다. 사람들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위협받으면 그것을 원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더 강하게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질 수 없거나 잃어버린 물건에 더 집착하고, 하지 말라는 일에 더 매달리게 된다.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면 이제 곧 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그 안에 있는 이성과 사귈 시간적 확률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더 소중하고 예뻐 보이게 한다는 얘기다. 홈쇼핑 광고에서 ‘한정 판매’나 ‘마감 임박’이라는 단어가 우리를 현혹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그렇다면, 부모의 반대에 목숨 걸고 저항하다 끝내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도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흔히 경험하듯, 역경은 사랑의 불꽃을 더 세게 피어오르게 한다. 가족이 반대하고,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사회적인 장벽이 있을수록 낭만적 열정은 더욱 뜨거워진다. 역경과 장벽은 연인들을 현실에 저항하게 만들고 상대에게 더 집중하게 만든다. 16세기 베로나의 젊은 연인이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듯이.

이처럼 부모의 반대나 주위의 장애가 연인들의 사랑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Romeo and Juliet effec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과연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일까? 미국 뉴저지주립대학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 박사가 현대인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자의 73%, 남자의 65%가 ‘역경이 있더라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낭만적 사랑을 위해 기꺼이 부모와 가족, 사회에 저항할 준비가 돼 있다는 얘기다.

 

동성애 연인들도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리처드 드리스콜 박사가 콜로라도대학 박사과정 재학 시절 동료들과 함께 했던 설문조사는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의 존재를 더욱 잘 보여준다. 그들은 280명의 콜로라도주 남녀 커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부모의 간섭과 개입이 심할수록 두 사람의 사랑이 더 깊어졌다는 대답을 들었다. 반대로,

부모의 간섭이 처음보다 줄어들자 서로의 사랑 강도가 점차 약해지더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런 특징은 동성애 연인들에게도 발견된다. 동성애 커플들은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불면증과 식욕 상실 등을 동반한 심한 정서적 혼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가족의 반대와 사회적 편견이 그들 사이의 정서적 결합을 때론 강화하고 더욱 갈망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는 현실에도 존재하는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술집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올수록 여성들이 예뻐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를 위협받으면 그것을 원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 더 강하게 저항하게 되는데, 그 저항 심리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고, 금지된 장난이 더 달콤하다. 시험 기간이 되면 소설책이 더 읽고 싶어지고, 만나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다. 사람들은 어렵게 성취한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어렵게 성취한 것이 더 소중한 이유는 자신의 자유를 속박하려는 것에 맞서 싸워 얻은 것이라서 그렇다.

게다가 부모들은 대개 결혼을 가문 간의 경제적 거래, 정치적 결연으로 보는 경향이 많아서, 그들의 반대 사유가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모들의 반대 사유는 연인들에게 매우 세속적이고 속물적이며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힌 것으로 여겨지기 쉽기 때문에, 연인들로서는 마땅히 싸울 용기와 명분이 생긴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은 자신들의 사랑할 권리를 얻고자 ‘자살’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자유의지까지 행사하면서 가문의 반대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심리학자 아론슨과 밀스는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독서토론 클럽의 신입회원 가입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더니(황당하게도, 여학생들에게 노골적인 포르노 소설을 사람들 앞에서 크게 읽도록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클럽에 들어온 여학생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모임에 가입한 여학생들보다 모임을 훨씬 더 좋아하고 모임에 대한 자부심도 높더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애가 호감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실험이다.

얼마 전 이탈리아 고고학 발굴팀은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5천 년 전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 젊은 남녀 한 쌍의 유골을 발견했다. 치아 상태가 거의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젊은 나이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며 포옹한 상태로 묻혀 있었다. 더군다나 이 유골이 발견된 곳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베로나에서 약 35km 떨어진 곳이어서 더욱더 ‘낭만적인 상상’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혹시 이들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다가 동반자살로 끝내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신석기 시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니었을까? 5천 년 전 신석기 시대에는 과연 두 연인의 사랑을 막는 가장 큰 장애가 무엇이었을까?

 

외쳐라,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사랑은 종종 가장 힘든 환경에서 가장 무성한 성장을 한다”고 했다. 자식의 사랑에 불을 지피고 싶으면, 부모여 반대하라. 만나지 못하게 하라. TV 드라마 속 부모들처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안 된다’고 외쳐라. 그러면 당신의 자식들은 당신이 원하는 사람과 ‘사랑의 불꽃’을 피울 것이다.

 

돈보다 꽃미남!

미팅 ‘완소남’은 누구…‘경제적 부’중요하지만 경제적 자립도 높은 여성일수록 외모를 따지네

 

얼마 전 영국에선 남자의 키가 1인치(2.54cm) 클수록 스피드 데이트에서 성공을 거둘 확률이 5%씩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스피드 데이트란 참가비를 낸 많은 수의 남녀가 10분 정도씩 대화를 나누면서 이상적인 파트너를 찾는 서구형 집단 미팅을 말한다. 영국 에식스대학의 연구자들이 남녀 3600명이 참가한 스피드 데이트 84회를 분석한 결과, 남자는 키가 클수록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참가자가 전체 평균 나이보다 한 살씩 많아질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4%씩 감소한다는 사실도 찾아냈다. 젊은 남성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몸무게가 늘어날수록 선택받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남성들에겐 과체중이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더라는 것도 중요한 결과였다.

» 성이 평등해질수록 여성들도 짝을 선택할 때 남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듯하다. 외모를 선호하는 것이다. ‘꽃미남’이 서빙을 하는 카페가 배경인 문화방송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젊은 여성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 문화방송 제공)


한 살 많아지면 매력은 4& 감소

이처럼 매력남과 매력녀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은 사회심리학자들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매력남(혹은 매력녀)의 조건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낭만적 사랑의 실체’를 파헤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여성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은 남성의 무엇일까? 여성들은 그다지 남성의 외모를 따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남성만큼은 아니더라도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85%가 여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은 60% 정도가 남성의 외모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설문을 거짓말 탐지기를 설치한 상황에서 하겠다고 일러주면 그 수치가 80% 가까이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도 남성의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적절하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판단해서 설문에서 거짓 대답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성의 외모는 단연 키다. 위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처럼 키가 크면 소개팅에서 인기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 178∼185cm의 남성들이 가장 선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 중에는 남성의 얼굴보다 키가 더 중요하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여전히 매력남의 조건이다. 특히 여성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 요즘, 그런 경향은 전세계적으로 점점 두드러지고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의 심리학자 피오나 무어는 18∼35살의 여성 1851명에게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친절함, 유머감각, 관계에 대한 헌신도, 육체적 매력 등 13개 특징을 제시하면서 어떤 속성을 지닌 남성을 선호하는지 물었다. 동시에 여성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도 표기하라고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영국의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적 능력보다 외모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다고 평가한 여성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이 결과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했던 많은 설문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경제적 능력’을 가장 중요한 매력 포인트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연구자인 피오나 무어는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그것이 장기적 파트너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성 평등이 강화될수록 여성들도 짝을 선택할 때 남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꽃미남’ 현상도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적 자립도나 성공 욕구가 낮은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경제적 부를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가 좋아

인기가 많다는 것도 남성에게 큰 매력 포인트다. 영국 애버딘대학의 심리학자 벤 존스과 그 동료들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호감을 갖는 남성을 좋아한다고 한다. 벤 존스 박사팀은 여성들(28명, 평균연령 24살)에게 비슷한 수준의 외모를 가진 네 명의 남성 사진을 보여준 뒤, 매력 정도에 따른 ‘평점’을 매기도록 했다. 그 다음 같은 남성들이 다른 여성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는데, 영상 속의 여성들은 세 가지 표정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 지루한 표정, 무표정한 얼굴이 그것. 비디오를 본 뒤에는 여성들의 평가가 달라졌다. 웃는 여성들의 시선을 받았던 남성들에게 선호도가 15%가량 높아졌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이 좋아하는, 말하자면 ‘인기남’에게 더욱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그저 잘생긴 외모의 인기남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미시간대학 공중위생학 연구팀은 ‘여성은 결혼 상대로 남성적 외모보다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남자다운’ 인상을 풍기는 남성은 데이트에서 여성에게 결혼 상대라는 인상을 주기 힘들다는 사실을 설문을 통해 알아냈다.

연구팀은 미국 남녀 대학생 약 850명을 상대로 컴퓨터로 다양한 외모의 남녀 합성사진을 보여주었다. 설문 결과 여성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턱이 각져서 튼튼하게 보이는 남성 얼굴에 대해 ‘이런 남성은 주로 단기간 교제하기 적합한 상대이며 결혼하면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반면 얼굴이 둥글어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입술이 약간 두터운 ‘여성적’ 얼굴의 남성은 결혼 뒤 ‘좋은 아버지’나 ‘좋은 남편’이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장기적 배우자감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여성이 단기적으로 남성을 만날 때는 남성적 외모 같은 유전적 잠재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결혼 등 협력이 중요한 관계에서는 상대방의 육아 능력까지 고려해 여성적 얼굴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완벽한 외모에 사회적 지위까지 높은 남자들이 의외로 신랑감으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센트럴 랭카셔대 연구진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신랑감 자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가짜 소개팅 광고를 냈는데, 이때 참가한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평가를 받은 남자와 보통 남자, 매력 없는 남자 등 세 부류였고, 영국 국립통계청의 직업 분류상 상(기업 이사, 건축가)·중(교사, 여행사 직원)·하(웨이터, 우편집배원)로 구분되는 각종 직업을 내걸었다. 이 광고를 186명의 여성에게 보여주고 장기적인 파트너로 누가 매력이 있느냐고 물은 결과, 잘생긴 남성은 모든 직업군에서 못생긴 남성보다 선호됐지만,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용모도 뛰어난 남성들은 예상과 달리 가장 가난한 남성들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놀랍게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그룹은 보통의 외모와 수수한 직업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때론 키보다 중요한 유머감각

연구진은 ‘여성이 매력적이면서도 성공한 남성을 피하는 것은 이들이 장차 바람을 피우거나 둘 사이의 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가족을 위해 그다지 헌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여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잘난 남자를 피하고, 바람을 피우거나 자신을 떠날 가능성이 적은 남자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며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성이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남성의 매력 포인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감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필립주립대와 캐나다 온타리오 맥마스터대의 공동 연구팀은 <진화와 인간 행동> 최근호에서 여성은 농담을 잘하는 남성을 파트너로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머감각은 때론 외모나 키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유머감각이 그 사람의 정신적 능력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사회적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간접적인 신호로 파악되기 때문인 것 같다. 늘 유머를 잃지 않으며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발휘할 줄 아는 남성만큼 매력적인 남성도 없다.

요약하자면, 현대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남성은 큰 키에 멋진 외모,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가정적이고 유머감각을 겸비한 사람이다. 나도 그런 남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

 

어떻게 윤은혜와 죄민수는 사랑에 빠지는가

하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이유… 1차 관문은 ‘사진’ 2차 관문은 성격 테스트

 

“너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해?” “그 여자의 어떤 점이 좋아?” 대한민국에선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을 듣기가 쉽지 않다. 우리 학교 ‘사랑학’ 수업 시간에도 사랑에 빠진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의 답변은 한결같다.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요, 그냥 다 좋아요.”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어요.”

말로 못하겠다고? 그건 ‘동물적 이끌림’이야


» ‘미녀와 야수’커플은 오랫동안 같이 지내는 상황이 될 경우 많이 만들어진다. 여자가 처음엔 외모로 남자를 제외했다가도 상대의 매력적인 성격 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위 사진은 ‘합성’입니다).

학생들이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문화적인 압력도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선 이유를 댈 수 있는 사랑을 ‘낮은 수위의 사랑’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절대적인 사랑은 사랑에 빠진 이유를 댈 수 없어야 한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체가 그냥 좋은 ‘운명적 사랑’을 최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를 댈 수 없는 것은 그 사랑이 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생물학적 이끌림’ 때문이라는 고백과 다름없다.

한편에선 ‘사랑이 생물학적 이끌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고귀한 사랑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삭막한 사랑관’이라며 비판하지만,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사랑이 시작된다고 해서 사랑의 가치를 훼손하진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만큼 사랑을 ‘생물학적 이끌림’으로 간주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 생물학적 이끌림에 반하는 동성애를 우리가 얼마나 터부시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왜 <커피프린스 1호점>에 열광하는가? 이 드라마야말로 ‘사랑이란 내가 아무리 의식적으로·문화적으로 남자라고 믿어도 몸이 이끄는 대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생물학적 사랑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며 사람들이 여기에 크게 공감하기 때문 아닌가!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에선 “너는 왜 그 남자를 사랑해?”라고 물으면 연인들은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쉬지 않고 얘기한다. 사소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으며 한두 가지 이유론 내 사랑을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인터뷰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에겐 닭살 돋는 얘기를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인들이 ‘이유가 너무 많아서’ 아예 말하지 않는 거라고?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나라 연인들과 인터뷰를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유를 대는 순간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할 듯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만 30분 동안 반복한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그럼 그건 ‘동물적인 이끌림’인 거야!

미국에서 수행된 ‘연인들과의 인터뷰’에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입에서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다정다감해서’ ‘유머가 있어서’ ‘사려 깊어서’ ‘잘생겨서’ ‘예쁘고 섹시해서’ 등이다. 이 중 90%가 배우자의 ‘성격’에 관한 묘사였으며 이는 남녀 모두 비슷했다. 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매력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다.

물론 외모도 중요하다. 남자의 경우는 약 81%, 여자의 경우엔 약 44%가 외모에서도 사랑의 이유를 찾았다(역시 남자들이 더 외모를 따진다!). 지난호에서 지적했듯이, 거짓말 탐지기를 대면 여자의 수치는 44%에서 65%로 올라간다. 여자들에게도 남자의 외모는 중요하다.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미녀의 조건, 어린 나이와 매력적인 얼굴

사회심리학자들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미모는 ‘스크리닝’ 구실을 한다.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면 제일 먼저 외모로 ‘사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외모가 맘에 안 들면 사귈 가능성이 있는 대상에서 제일 먼저 제외해버린다. 이때 제외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 성격까지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주위에서 ‘미녀와 야수’ 커플을 종종 보게 되는 것일까? 명동이나 압구정동에 나가보시라. 다섯에 하나는 ‘여자는 윤은혜요, 남자는 죄민수’ 커플이다. 왜 우리는 그토록 자주 ‘미녀와 야수’ 커플을 보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여자가 처음엔 외모로 남자를 제외했다가 (같은 학교를 다닌다거나 같은 회사를 다니는 등) 어쩔 수 없이 계속 봐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의 매력적인 성격이나 지적·경제적 능력에 빠지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설문조사 결과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경우가 겨우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첫눈에 반한 사랑이 대세였다면 나오기 힘든 것이 바로 ‘미녀와 야수’ 커플이다.

야수에게 기대되는 것이 매력적인 성격과 경제적 능력이라면, 미녀의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녀의 기본 조건은 어린 나이와 매력적인 얼굴, 그리고 몸매다. 남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성의 나이는 23∼26살. 그래서 남자 중·고등학생들은 옆집 대학생 누나나 교생 선생님에게 열광하며, 대학생들은 또래 이성 친구들과의 미팅에 열중하고, 아저씨들은 제 나이는 잊은 채 채팅방에서 20대 초반 여성을 찾아 헤매는 모양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남자들의 ‘어린 나이 선호’를 여성의 출산 능력과 연결해 설명하려 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수만 명의 남성에게 수천 장의 여성 사진을 보여주며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남자들이 선호하는 여성의 얼굴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귀여운 타입(baby face)과 섹시한 타입(sexy face). 다시 말해 드루 배리모어형과 앤젤리나 졸리형이다. 전자는 눈이 크고 턱과 코가 작으며 어린이를 연상시키는 해맑은 미소의 소유자인 반면, 후자는 입술이 도톰하고 눈썹이 진하고 웃음이 시원한 여성이다. 서민정이나 심은하, 윤은혜 같은 타입이 전자에 속한다면, 김혜수나 한채영 같은 얼굴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몸매. 1986년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케 박사는 희한한 질문들로 남성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얼굴은 예쁘나 몸매가 예쁘지 않은 여성과 몸매는 예쁘나 얼굴이 예쁘지 않은 여성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누굴 택하겠느냐?’ 설문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은 ‘얼굴은 예쁘지 않더라도 몸매가 예쁜 여성’을 더 선호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예쁜 몸매의 기준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남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날씬한가 혹은 다리가 긴가가 아니라, 적당한 키와 적당한 크기의 가슴, 그리고 황금비율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이었다. 1980년대 심리학자들이 미인의 기준을 찾으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온 결과, 남자들이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는 뚜렷한 징후를 찾진 못했지만 키가 너무 작거나 큰 경우에는 뚜렷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에게도 키는 중요한 매력 포인트라는 얘기다. 여성들은 큰 키의 남자를 선호하는 반면, 남성들은 적당한 키의 여성을 선호했다.

가슴 크기도 마찬가지다. 남자는 너무 작거나 큰 가슴보다는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은 여배우들에게선 좀더 큰 가슴을 끊임없이 찾지만, 자신의 배우자에게는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기대하는 모양이다.

 

엉덩이 대 허리가 0.7인 여자

‘허리 대 엉덩이 크기 비율’(waist-to-hip ratio)이 작은 여성을 남성들은 선호했다.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상대적으로 큰 여성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그 비율이 0.7 정도 될 때 남자들은 한목소리로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미스 아메리카나 플레이보이지 선정 ‘이달의 버니’들의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 0.7 정도 되었으며 그 비율은 지난 6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여성의 S라인을 선호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왜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의 외모 조건을 중시하는 것일까? 왜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외모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얼굴· 몸매 착하다고 마음도 착할까

당연한 듯하면서 어려운 질문, 남성들은 왜 아름다운 여성에 끌리는가

 

지난호에서 우리는 남성들이 매력적으로 여기는 여성들의 공통적인 미적 조건 몇 가지를 알아보았다. 정리해보자면, 남성들은 드루 배리모어처럼 귀엽거나 앤젤리나 졸리처럼 섹시한 얼굴을 선호하며, 적당한 크기의 키와 가슴, 그리고 허리 대 엉덩이 비율이 7 대 10인 S라인 여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60년간 서구 세계를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이 위의 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왜 아름다운 여성에 끌리는가? 얼핏 들으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는 이 질문에 과학자들은 아직 적절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여성의 외적 아름다움이 갖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이점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기됐던 가설들 중에 눈여겨볼 만한 것들은 몇 가지 있다.

» 현대사회에서 미의 사회적 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점점 높아진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가수를 꿈꾸는 주인공이 전신 성형수술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
우선 사람들은 ‘아름다우면 선하고 좋은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디온이 1972년에 자신의 동료들과 했던 흥미로운 실험이 그 근거를 제공한다.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에게 여러 여성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성격을 추정하게 했는데, 피험자들은 예쁜 여성은 성격도 좋을 것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됐다. 피험자들은 아름다운 여성에게 지적이고 겸손하며 따뜻하고 열정적인 성격들을 부여하는 한편, 예쁘지 않은 여성들에겐 멍청하고 냉정하며 부정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래서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도 이런 말을 남겼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성격 속에, 정열 한가운데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성격에서 나타나며, 육체는 그 모습을 담는 틀이다”라고.

 

인식의 부조화를 거부한다

잘생긴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이 결혼한 경우, 그렇지 않은 커플들보다 그들이 더 행복하게 살 거라고 예측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만약 멋지게 생긴 남녀 커플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일러주면 더욱 놀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종종 ‘내가 좋아하는 남녀 연예인들이 서로 결혼했으면’ 하고 턱없이 바랄 때가 있었다. 왠지 내가 좋아하는 두 예쁜 남녀 연예인이 결혼을 한다면 멋지게 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맘대로식 ‘짝짓기 심정’이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다. 또 연예인 커플의 파경과 이혼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도 (요즘은 너무 많아서 그다지 놀라지 않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이런 선입견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디온이 했던 실험에 따르면, 충격적이게도 이런 현상은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발견된다. 예쁜 어린이는 그렇지 않은 어린이들에 비해 친구들 사이에 평판이 좋을 뿐 아니라, 유치원 선생님도 예쁜 어린이를 성격적인 측면에서도 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진리가 강물처럼 흘러야 할 법정에서조차, 예쁜 여성 범죄자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다른 여성들에 비해 형량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조사만 보더라도,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너그러움을 넘어 이젠 폭력적인 선입견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가 고우면 심성도 고울 것’이라는 가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사람들은 대개 인식의 부조화를 거부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인식하는 대상을 일관되게 하나로 인식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는 얘기인데, 예를 들어 외모가 예쁘면 심성 또한 예뻐야 우리가 상대를 조화롭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예쁘게 꾸며진 요리가 더 맛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비슷한 원리다). 그러니 예쁜 여성들에게 그런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때론 여기에 종교적인 원인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불교 국가에서는 ‘뿌린 만큼 거둔다’는 가정하에 외모가 예쁘면 전생에 선한 일을 많이 베풀어서 다음 생애에 그런 외모를 타고났다고 해석한다. 즉, 미는 곧 선을 표상하게 된 것이다. 뛰어난 미모를 얻은 것은 뛰어난 성품을 가진 데 대한 업보라고나 할까?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보면, 교통사고 현장에서 이범수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도 김아중의 외모에 빠져 상대의 과실을 너그러이 이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미는 곧 선이다’는 가설이 드러난 예다.

그렇다면 실제로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더 좋은 성격을 가졌을까? 외모와 성격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1986년 하트펠트와 그 동료들이 했던 대규모 조사에 따르면, 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외모와 성격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었다. 매력적인 얼굴과 섹시한 몸매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업무 능력은 어떠한가? 직장 내에서 수행하는 업무 능력 또한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직원을 뽑을 때 인사과 직원들은 이 점 유의하시라. 외모가 뛰어나다고 해서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에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로 ‘외모가 뛰어나면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 또한 뛰어날 것’이고 그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의 이런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외모를 중시한다는 가설이 있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인간관계를 맺는 데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일 것이라는 추측은 설문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매력적인 여성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회적 기술 또한 더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들이 여성의 미모에 집착하는 원인이라는 설명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외모가 훌륭하면 능력도 뛰어나다?

‘여성의 미’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에 대해, 과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점은 진화론적 주장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은 그동안 성 선택에서 항상 우위를 점유해왔다. 남성들에게 더 쉽게 선택되어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한 가능성이 늘 높아왔을 것이다. 멋진 공작의 날개처럼, 여성의 아름다움 또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부스는 낭만적 사랑 또한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수만 년의 진화 과정 속에서 멋진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은 더 쉽게 짝짓기 상대를 찾고 임신과 출산을 해서 자손을 건강하게 낳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 자식 또한 아름다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테니, 그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가능성이 계속 높을 것이다. 영국 속담에 ‘미인이 끄는 힘은 황소보다 세다’고 했던가? 그 힘은 바로 유전자가 끄는 힘이었던 것이다.

 

미인은 황소보다 세다, 그게 유전자의 힘

아름다운 외모가 건강을 표상한다는 주장도 있다. 뽀얀 피부와 발그레한 볼, 적당한 크기의 가슴과 키 등은 여성의 건강을 상징한다. 적당한 비율의 허리와 엉덩이는 무난한 출산을 보장할 것이다. 한편, 건장한 체격과 큰 키, 운동선수를 연상시키는 딱 벌어진 어깨는 남성의 건강성을 상징하리라. 아마도 진화학자들에겐 이런 남성들의 미의 조건이 ‘훌륭한 사냥꾼의 신체조건’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미는 때론 사회적 자원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생존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미인이란 처음에 볼 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안에서 상대해보면 더 보고 싶지 않게 된다”라고 했지만, 이건 미인 아내를 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드름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가 “결백한 자와 미인에겐 시간 외엔 적이 없다”고 했듯이, 우리 모두는 미인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거기에 너무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겉이 아름답다고 해서 속까지 그럴 거라고 잘못 넘겨짚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얘기다.

 

넌 또 다른 나인걸

성격과 외모 닮은 사람끼리 결혼하는 경향 높아…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해”

 

사랑에 대해 관심은 많으나 경험은 많지 않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할까?’ 하는 것이다. 정반대끼리 결혼해야 잘 산다는 얘기를 어른들은 종종 하는데, 비슷해야 호감이 가는 것이 사실 아닌가? 깨끗하고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면 과연 행복할까?

» 부부는 닮는다? 같이 살다 보면 생활습관이 비슷해져 닮아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몸무게와 신체조건 역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페르난도 보데로의 <연인>(왼쪽)과 <가족>.


과연 결혼한 커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유사한가 혹은 그렇지 않을까? 아얄라 파인스가 쓴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따르면, 커플 사이의 유사성을 처음으로 분석한 연구는 19세기 말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부부 사이에 나이, 인종, 종교,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와 같은 문화적인 변수들이 서로 유사한지 다른지를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덧붙여 키나 눈동자의 색깔, 심지어 지능과 같은 육체적인 특성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19세기 영국의 부부들 사이에는 육체적인 특성이나 문화적인 배경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됐다. 비슷한 성격과 문화적 배경,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더라는 것이다.

 

정신병도 공유한다

100년이 지난 뒤 영국에서 다시 실시된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미국에서 1499쌍의 부부를 조사한 결과, 남녀 사이에 성격적인 특성이나 일반적인 인식적 특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특히 내향성·외향성, 논리성과 같은 특성에 대해서도 부부들은 서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시 말해,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더 좋아해서 결혼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커플들은 키나 몸무게, 몸집과 같은 신체적인 특징도 유사하다고 한다. 대개 키가 큰 여자는 키 큰 남자와 결혼하고, 키가 작은 남자는 (그렇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결국 키 작은 여자와 결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부부 330쌍의 몸무게를 조사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나왔다.

물론 같이 살다 보니 생활 습관이 비슷해져서 함께 살이 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은퇴를 앞둔 부부들의 경우에는 신체적으로 서로 많이 닮는다는 연구 결과는 여러 번 확인되기도 했으니까.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보면 가족이 모두 하나같이 뚱뚱하게 생겼는데(심지어 그 집에서 기르는 개도 뚱뚱하다), 같은 집에 살면서 생활 습관을 공유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누군가? 그들은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몸무게와 신체 조건을 조사해보았는데, 그 역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커플들은 서로 정신병을 공유하기도 한다는, 좀 기괴한 커플 유사성 연구도 있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여자들의 경우 남편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같은 우울한 이성에게 끌린다는 증거도 있다. 성격이 활발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에게 끌린다는 증거는 더욱 많다. 그들은 함께 살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공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특별한 성격에 끌리게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진술이다.

그렇다면 이미 함께 살고 있는 부부들이 아니라, 서로 처음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는 동안에도 ‘유사한 성격’이 사랑에 빠지는 데 도움이 될까? 당연히 그렇다! 아얄라 파인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인들의 3분의 1은 처음 호감을 갖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유사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응답했다. 성격이나 사고방식, 목표나 관심거리, 혹은 취미가 비슷하면, 처음 느꼈던 호감이 더욱 증가되고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소중한 것을 이야기하라

그렇다면 어떤 점이 유사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장 매력을 느끼는 걸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나이와 교육 수준, 인종이나 종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꼽는다. 이 요인들은 평소 인간관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결혼을 위해 맞선이나 소개팅 자리의 상대방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이 맞지 않으면 우선 대상에서 제외한다. 예를 들어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거나, 교육 수준이 너무 다르다거나, 민족적·종교적 배경이 다르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서로 비슷하면 호감을 느끼고 유사한 성격의 사람과 함께 살 때 만족을 느끼는 것일까? 사실 서로의 생각이나 성격에 차이가 있으면 종종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고통스럽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이 늘 답답하게 느껴지며, 느긋한 사람은 성격이 급한 사람과 지내는 것이 형벌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태도와 기질, 행동양식이 비슷한 커플들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식이나 생각을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친구를 얻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이란 책을 써서 전세계 수천만 명의 독자를 사로잡은 데일 카네기는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에 주목하며 “상대방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최고의 방법은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그의 이 처세술과 인간관계학에 탄복한다. 그의 말은 현실에서 효력이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도 사람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가재는 게 편이고 찌르레기는 까마귀 편이겠는가?(‘찌르레기는 까마귀 편이다’는 탈무드의 격언이다.) 우리는 평생 어떤 순간에도 자신과 한편이 되어줄 반려자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와 왕자의 위대한 사랑, 호텔 재벌의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처녀의 사랑, 아름다운 창녀와 백만장자의 결혼은 모두 동화나 한국의 TV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선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동화와 드라마, 통속소설에서 이루려는 것 아닐까?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은 원래 마지막에 서로 헤어지면서 끝을 맺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이 이야기가 영화화됐을 때 시사회에서 관객이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관객은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을 것을 요구했고, 영화감독은 마지막에 결말을 바꾸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로맨스는 영화에서나 가능하며 대개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설령 드물게 결혼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들이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짐작되진 않는다.

연인들의 행복은 ‘공감’에서 나온다.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과 함께라서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사랑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64%와 여자의 76%는 ‘내 연인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고 그가 슬플 때 나도 슬픔을 느낀다’라고 대답했다. 시인 E. 커밍스가 자신의 시에서 ‘그녀는 그의 기쁨을 웃었고, 그의 비탄을 울었다’라고 노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귀여운 여인, 결혼 뒤로도 행복했을까?

연인들에게 사랑의 전략을 소개하는 레일 라운즈는 그의 저서 <누구라도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 법>이란 책에서, 처음 만나서 상대를 사로잡고 싶다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보이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며 상대와 유사한 말투를 쓰라고까지 주문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언을 평생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면, 혹은 평생 노력해볼 사랑의 힘이 없다면 아예 시도하지 마시라. 결국 들통날 것이니까. 다음호에선 ‘왜 우리는 때론 나와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어릴수록 성격 다른 이에게 끌린다?

비슷하기에 사랑하는 81%의 사람들, 나머지 19%의 수수께끼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레일 라운즈는 자신의 책 <누구라도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 법>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한다. “엄마는 아빠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어?”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자장가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잭 스프래트는 기름기 많은 고기를 못 먹고요/ 그의 아내는 살코기를 못 먹는대요/ 그래서 둘은 접시를 사이에 두고/ 깨끗이 핥아먹었대요.

 

N극과 S극이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면 매력을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사하면 서로 공감하며 사랑을 싹틔운다. 우리가 ‘천생연분’이라고 부르는 커플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사랑을 일반화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서로 달라서 잘사는 부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남녀처럼 성격이 다른 커플은 많지 않다. 아주 다른 남녀의 만남은 심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신의 태도에 불만이 많거나 미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사실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상반되는 사람끼리 끌리는 경우도 많다. 사색적인 남자는 감성적인 여자에게 끌리고, 순종적인 사람은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부드럽고 신사적인 남자는 밝고 활달한 여성이 예뻐 보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성은 남들이 수다스럽다고 여기는 여성에게도 남모를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격이나 삶의 방식, 세계관 등의 관점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과 굉장히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사람들은 누구를 더 선호할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81%의 사람들이 나와 유사한 사람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과 살고 있었다. 연인들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에는 삶의 태도나 생활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관계가 진전되면서부터는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 성격이 비슷한 부부가 성격이 다른 부부보다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이다.

그렇다면 자기와 상반되는 이성에게 이끌리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해왔을까? 실제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평소 가치관이 같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때에는 의견이 같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때에는 의견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상반된 사람과의 사랑을 좀더 가치 있는 사랑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게 보이는가!

미국의 심리치료사 머리 보웬은 나와 달라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에서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심리적 성숙도라 정의하면서, 심리적 성숙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신과 비슷한 이성에게 끌린다고 주장했다. 연인들에게 심리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설문조사와 성격 테스트를 해보니, 어리거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더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심리적 성숙도가 낮은 사람이 서로 다른 측면을 갖는 이성에게 끌리는 이유를 머리 보웬은 이렇게 설명한다. 심리적인 불안에 대응하는 자신의 방어기제와 매우 상반되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이 일반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에겐 시원하게 소리도 지르고 제대로 대응하는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태도에 불만이 많거나 미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보웬의 주장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작곡자이면서 가수였던 로드 매쿠언의 노래집 <스탠얀 거리와 다른 슬픔들>(Stanyan Street and Other Sorrows)에는 아주 감미로운 노랫말이 담겨 있다.

나는 당신을 원했지/ 그날 해변에서 당신이 나와 달랐기 때문에/ 당신이 날 보고 미소지었기 때문에/ 당신의 세상이 나와 달랐기 때문에…/ 사랑이란 당신이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무조건 똑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부분에 한해서만 다르길 원한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생활을 방해받을 정도로 다른 점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흥미롭게’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르길 원한다. 레일 라운즈의 지적대로, 사람들은 내 연인이 저녁식사 자리에게 내게 새로운 경험을 들려주고,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열어주길 바란다. 나의 부족한 생활방식을 끌어올려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연인을 갖길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비로소 완성되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특징을 추구하는 경향과 함께 자신도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연인은 기대만 하진 않는다.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연인들은 완벽을 기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항상 찾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의 신화 중 하나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다름이나 차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다름이 서로를 보완해주는 경우에만 그렇다는 사실이다.

 

만남 초기 ‘닮은 점 부각 법칙’은 불변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종종 즐겨보는 ‘연애의 기술’류의 책들은 이 점을 잘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상대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필요한 성격, 혹은 그가 갖지 못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잘 활용해 점수를 따라는 것이다. 손재주가 있어서 못 고치는 게 없다면 기계치인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절호의 찬스가 생길 수 있으며, 늘 신문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데 밝은 여성이라면 우직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런 특징을 너무 빨리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오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슷한 점을 먼저 확인하고 서로에게 편해진 뒤에야 서로 상호 보완적인 성격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 너무 닮았어요!’라는 신호를 열심히 보낸 뒤에, ‘게다가 이런 점이 달라서 더 좋아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좀더 유용한 전략이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전언이다.

 

키스할 때 코는 어디다 두죠?

기원에서 생리학까지 키스 앞에서도 심각한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

 

저명한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키스에 관해 유명한 명언을 두 개나 남긴 바 있다. 대중 강연이 끝난 뒤 한 청년이 그에게 다가와 “아인슈타인 박사님, 상대성 이론이 도대체 뭔가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했는데, 이에 아인슈타인은 “사랑하는 여인과 키스를 하면 3분도 3초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난로 위에 손을 얹어놓으면 3초도 3분처럼 길다”라는 말로 시간의 상대성을 명료하게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하나는 그가 ‘키스를 하며 운전을 하는 연인’을 보자 혀를 차며 했다고 전해지는 말인데 다음과 같다. “예쁜 여성과 키스를 하며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것은 키스에 온당히 바쳐야 할 예의를 다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아인슈타인은 종종 ‘키스의 황홀함’을 빗대 과학을 설명하길 좋아했는데, 흥미롭게도 키스의 본질과 특성을 파헤치기 위해 인생을 건 과학자들이 있다. ‘키스학’(Philematology)이라 불리는 이 분야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내용은 키스의 기원에서부터 키스의 생리학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도 다양하다.


»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은 게리 쿠퍼에게 키스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한다. 키스는 90% 본능, 생각 전에 입술이 닿는다. 코를 어디에 둘지는 오래된 연인들의 관심사항이다. 영화 <시네마천국> 라스트신의 ‘키스 모음집’

인류 조상의 10%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랑의 도장’이라고 불렀던 ‘키스’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키스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까, 문화를 통해 형성된 것일까? 키스의 기원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1992년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168개의 민족과 문화 중 약 87%에서 ‘낭만적 사랑’의 증거를 발견했으며, 약 90%에서 키스를 했다는 흔적을 찾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문화에서 입을 맞춘 행동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오히려 놀라운 것은 그것이 100%가 아니라 90%라는 사실일지 모른다. 10%의 인류 문화에서 키스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키스가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 학습된 문화 행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키스가 모성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치아가 없는 어린 아기를 위해 음식을 씹은 뒤 입으로 건네 먹이던 어머니의 행동이 아이의 치아가 자란 뒤에도 비슷하게 반복하면서 친밀감과 사랑의 표현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성애 입맞춤이 이성 간 사랑의 입맞춤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에스키모인들이나 시베리아 지방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입을 맞추는 키스 대신 코를 비비는 것으로 인사나 애정 표현을 대신해왔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모성애 입맞춤’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옛날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우리의 숨결에 자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키스나 코를 비비는 행위를 통해 숨결을 공유함으로써 영혼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과학자도 있다.

이에 반해, 키스가 타고난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은 동물들도 애정 표현의 하나로 인간의 키스와 유사한 행동을 한다는 데 그 근거를 둔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친밀감의 표현으로 코를 비비거나 서로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는 등 유사 입맞춤 행위를 보인다. 특히 보노보의 경우에는 싸운 뒤 화해의 표시나 유대감을 높이기 위해 (혹은 인간들이 그렇듯 ‘별 이유 없이’) 키스를 한다. 동물들의 이러한 행동과 인간의 키스가 유사한 기원을 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그들의 조심스런 주장이다.

 

일요일 키스는 안 돼! 아니 무조건 안 돼!

진화론적인 관점에선 키스를 ‘배우자의 적합성을 탐색하는 수단’으로 해석한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페로몬)를 맡으면 상대가 강한 자녀를 갖게 할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는지 아닌지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쾌한 냄새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신호로 인식될 테니, 이런 탐색 과정을 통해 더욱 튼튼한 자녀를 갖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집단 생존의 가능성도 높아졌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편, 키스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판별하는 데 도움을 주며 때론 ‘방금 누구와 은밀한 시간을 보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교묘한 행동이어서, 배우자끼리 서로 상대방의 부정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방식으로 키스가 시작됐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종교적인 기원을 찾는 인류학자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평화의 상징이자 종교의식의 한 과정으로 키스를 시작했다는 설이다. 널리 알려진 이론은 아니지만, 인간이 동굴에서 거주하던 원시 시절, 소금이 부족해 남녀가 서로의 입가에 묻어 있는 바닷물 소금기를 핥아먹은 데서 키스가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가설은 없으니, 너무 믿지는 마시라.

오늘날 키스는 ‘낭만적 사랑의 징표’지만, 키스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 핀란드 사람들은 키스를 매우 불결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서, 심지어 발가벗고 섹스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키스만은 하지 않았다. 16세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는 키스를 매우 공격적인 행위라고 생각해 남들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하면 사형을 언도할 정도였다.

지금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폭력 행위로 간주해 체포한다. 또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이 아내에게 일요일에 키스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기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이집트 카이로의 소아과 의사인 아델 애셔 박사는 최근 키스반대연합(anti-kissing association)이라는 국제시민단체를 조직해 ‘키스 안 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모토는 ‘더 이상 키스는 안 돼!’(No kisses after today). 이유는 단 하나. 키스가 조류독감을 옮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키스공포증(philephobe)이란 것이 있다. 그들은 키스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 그것이 사회생활을 하거나 연애를 하는 데 심각한 장애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키스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고 상상해보라! 사실 그들이 키스를 꺼리는 이유는 상대방이 싫어서가 아니라 키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전세계적으로 아주 소수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에게 했던 명대사. “저는 키스하는 법을 잘 몰라요. 잘 알았다면 당신에게 키스를 했을 텐데…. 키스할 때 코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요?” 잉그리드 버그만이 던진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2년 반 동안 실험을 한 과학자가 한 명 있다. 독일 보훔에 있는 루르대학 교수 오누르 군투르쿤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야는 동물과 사람의 ‘인체 좌우대칭’. 어느 날 그는 미국 시카고를 방문했다가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5시간이나 꼼짝없이 갇혀야 하는 신세에 처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던 그는 한 커플이 서로 키스를 할 때 얼굴을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모든 사람들이 그럴까?’ ‘오른손잡이라서 키스를 할 때도 코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걸까?’ 그는 공항이야말로 키스를 연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독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키스를 할 때 머리 기울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다. 공항이나 기차역, 해변과 공원 등지를 돌며 짐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입술을 맞닿아 키스를 하는 124쌍의 커플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들이 키스를 하는 동안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는지 모두 상세히 기록했던 것이다.

 

공항은 키스를 관찰하기에 좋았네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3분의 2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며, 출산하기 바로 전 며칠 동안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가 본능적으로 좀더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두 연인이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사랑하는 연인과 첫 키스를 준비하는 분이라면, 군투르쿤 교수의 연구 결과를 명심하시라. 사랑하는 ‘자기’가 갑자기 당신의 오른쪽으로 코를 들이댈 가능성이 3분의 2라는 사실을.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라면, ‘내 배우자는 어느 방향으로 키스를 하는지’ 무심코 지나친 이 문제에 대해 이 칼럼을 읽자마자 한번 확인해보시라. 아침에 아내와 키스를 하고 나오는 남편의 평균 연봉이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30% 가까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으니, 확인해본다고 해서 별로 손해볼 것도 없다.

 

키스는 번지점프처럼

‘입을 청결하게 하기’보다 효과적인 황홀한 키스를 나누는 비결

 

‘성애의 표현으로 상대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추는 행위’인 키스를 미국에선 ‘혀들이 벌이는 하키’라고 부른다. 우리 뇌의 감각영역 중 가장 넓은 부위를 차지하는 혀와 입술의 격렬한 접촉을 통해 키스는 평소 0.3%에 불과한 쾌락의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을 마구 분비하게 만드는 연인들의 은밀한 축제다. 이 축제를 위해 우리는 70년 인생 중 약 12만 초, 꼬박 2주일을 보낸다.


충치와 구강 질병을 예방한다

낭만적 사랑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키스가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에 관한 의학자들의 연구 기사를 종종 신문에서 보게 된다. 그들의 결론은 키스를 많이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 키스의 의학적 효과를 연구하고 있는 미국의 버넌 박사에 따르면, 사랑하는 이와의 열정적인 키스는 한 번에 3.8kcal, 1분에 약 26kcal를 소모하게 만든다는 것. 가벼운 키스는 두 개의 근육을 움직이지만, 격렬한 키스는 얼굴 근육 34개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 키스에 관한 기네스들! 2004년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4400명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여 키스를 했다. 미국인 보비 셜록과 레이 블라지나가 1978년 130시간2분을 쉬지 않고 키스한 것이 최장 시간 기록이다. (사진/ REUTERS/ MAX MONTECINOS)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는 핏속의 백혈구 활동을 활성화해 면역 기능을 강화하고, 체내의 엔도르핀의 분비를 증가시키며,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때의 쾌감은 우리가 번지점프를 할 때 느끼는 쾌감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것이 호르몬 수치 비교를 했던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또 키스는 침 분비를 증가시키는데, 교감신경이 침샘 근육을 자극해 고여 있는 침을 짜내고, 부교감신경이 아드레날린 분비를 활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입 안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주고, 충치나 다른 구강 질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키스 연구자들은 감정을 한껏 낸 분위기 있는 키스가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한 바 있는데, 분위기 있는 키스를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5년은 장수한다는 주장을 폈다. 물론 설문으로 얻은 결과이니, ‘분위기 있는 키스’의 정의도 모호하고 수명 연장의 구체적인 메커니즘도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믿어서 손해볼 것 없는 주장이니 즉시 실천해보길 모든 연인들과 부부들에게 권한다. 잉그리드 버그먼도 말하지 않았던가? “키스는 연인의 입에서 쓸데없는 말이 나올 때 그것을 막는 가장 사랑스런 방법”이라고. 앞으로 여자친구가 너무 잔소리를 하면 키스로 그 입을 막으시길.

키스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키스에 관한 갖가지 기록들이 매년 쏟아져나오고 있다. 1990년 미국 미네소타 르네상스 축제에서는 뉴브라이튼에서 온 알프레드 울프람이란 사람이 무려 8시간 동안 8001명과 키스를 한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시간적으로 따져보면, 1분에 16명과 키스를 했다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키스를 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미국인 보비 셜록과 레이 블라지나인데, 1978년 5월1일부터 6일 동안 무려 130시간2분을 쉬지 않고 키스를 했다고 한다. 그보다 더 오래 키스를 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분은 빨리 세상에 고백하시라. 그러나 반드시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기네스북 기록 보유자는 신고하시라

영화에서 처음 키스를 한 커플은 1896년 존 라이스와 메이 어윈. 그들은 〈The Kiss〉라는 영화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처음으로 촬영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키스를 한 기록으로는 1941년 제인 웨이먼과 레이 투니가 <당신은 지금 군대에 있어요>(You’re in the Army Now)라는 영화에서 3분30초간 했던 키스라고 하는데, 아마도 포르노는 뺀 기록이리라 생각된다(포르노에선 오히려 키스를 잘 안 하던가?). 칠레에선 키스 기네스북에 대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2004년 산티아고라는 도시에서 무려 4400명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여 키스를 하는 광경을 펼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이 기록을 깨기 위해 범국민적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키스학에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연구 주제는 ‘황홀한 키스를 하는 법’에 관한 연구다. 키스에 관한 전문서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랑의 바이블’인, 인도의 <카마수트라>에는 연인들에게 권하는 키스의 종류가 무려 30가지가 넘는다. 인도 사람들은 하루 종일 키스와 섹스를 즐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1936년 휴 모리스가 쓴 <키스의 기술>이란 책도 연인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만한데, 우리나라에는 예전에 잠시 해적판으로 번역돼 나왔다가 지금은 절판된 상태라 구해볼 순 없다. 이 책은 키스에 관해 당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에는 다양한 크기의 입과 다양한 입술 모양의 여성들과 근사하게 키스하는 법에 관해 여러 챕터가 할애돼 있다.

최고의 키스꾼이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 ‘사랑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 대답은 말초적이기 짝이 없다. 우선 입냄새가 없어야 하고,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매우 많다. 흥미로운 것은 키스 경험이 없는 학생들일수록 청결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물론 입냄새는 최고의 키스꾼에게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요소임이 틀림없다. 영화사 책에 따르면, 비비안 리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을 때 클라크 게이블과 키스하는 장면을 매우 찍기 싫어했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 클라크 게이블의 입냄새 때문.

여학생들은 낭만적인 분위기 조성과 풍부한 감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능숙하고 부드러운 혀놀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학생들은 키스를 하는 순간의 자연스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여학생들은 키스를 한 뒤의 어색함에 더 신경을 썼다.

 

키스 남녀의 동상이몽

서양에서는 훌륭한 키스는 ‘때론 부드럽고 갑자기 격렬하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는 혀놀림’을 매우 강조했는데, 여학생들은 친구들끼리 고등학교 때 키스하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혀와 입술을 주기적으로 자극하는 사람’을 최고의 키스꾼으로 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혀와 입술이 가장 민감한 감각기관이므로, 키스를 하는 동안 최대의 자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극이 일정하게 유지돼서도 안 되고 너무 약한 자극만 지속돼도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18세기까지 서양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키스를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아무도 일본 사람들이 키스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이 실제로 키스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아시아에서는 남성들이 키스를 섹스를 하기 전에 하는 ‘전희’로 생각해왔다. 그러니 그들의 섹스 광경을 엿보지 않는 이상, 키스하는 모습을 볼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특히나 남성들 사이에서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남성들은 격렬한 키스를 좋아하며 그것을 ‘섹스로 가는 길목’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여성보다 강하다. 한 예로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광범위하게 행해진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키스는 ‘프렌치 키스’인 데 반해, 여성들은 가벼운 키스를 더 자주 하길 원한다고 한다. 설문조사에서 여성은 그들의 관계가 처음 만났을 때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을 때 키스를 원한다고 답했고, 남성들은 그들의 관계가 앞으로 더 전진하고 싶을 때 키스를 하고자 했다.

이 결과를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황홀한 키스를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남성은 키스가 섹스로 가는 길목이자 전희로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의 기대치보다 더 수위가 높은 키스를 할 가능성이 높다. 하키를 하듯 휘두르는 혀나 깨물듯 빨아대는 입술의 움직임은 남성들에겐 아주 자연스런 행위이지만, 여성들에겐 때론 ‘배려 없는 동물적인 키스’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최고의 키스는 상대가 기대하는 키스를 해주는 것, 바로 ‘배려의 키스’가 아닐까 싶다.

 

사랑은 겨드랑이를 타고

‘인간 페르몬 효과’ 새로운 사람을 끌지는 않지만 애인과의 사랑은 깊어지네

 

하루에도 30~40통씩 오는 스팸메일 중에 한때 ‘러브 포션 #9을 팝니다’류의 광고메일이 있었다. 이 한 병만 먹으면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솔깃한 얘기가 들어 있는 이 스팸메일은 한때 비아그라 스팸을 능가하기도 했는데, 효과를 봤다는 사람은 아직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 ‘동물에게는 페로몬이 있어서 이성을 유혹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과연 인간에게도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인간들 사이의 낭만적 사랑도 결국 겨드랑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화학적 반응에 지나지 않다는 걸까?


페르몬, 냄새는 없어요~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연구한 과학자들이 있으니,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심리학과의 노마 매코이와 리사 피티노 박사다. 이들은 원래 ‘사랑의 내분비학’에 관심이 깊은 심리학자로서, 사람들 사이의 낭만적 사랑을 매개하는 화학물질을 찾는 데 오랜 연구를 해왔다. 그들이 최근에 했던 실험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 연구가 바로 우리가 꼭 하고 싶었던 ‘이성을 유혹할 수 있는 페로몬이 인간에게도 나오는가?’였다.

» 인간에게도 페로몬이 분비될까? 페로몬 향수로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 <향수>의 주인공 바티스트가 사람을 끄는 향수를 제조하고 있다.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 광고를 내고 36명의 여성을 실험에 참가하게 했다. ‘당신의 인생을 로맨틱하기 만들어줄 약’이라고 사전에 홍보하고 상용화된 ‘사랑의 묘약’인 페로몬이 들어 있는 액체를 나눠준 뒤 각자 뿌리게 했다. 그리고 3주 뒤에 이 페로몬으로 인해 이성교제에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 관찰했다.

이 경우 과학적인 검증을 위해 36명의 피험자 가운데 절반에게는 플라세보, 즉 페로몬이 들어 있지 않은 위약을 나눠줬다. 만일 ‘이 약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해 성적 활동이 늘어났다면, 이 위약을 받은 여성들이나 페로몬이 들어 있는 액체를 받은 여성들이나 만족도가 비슷할 것이다. 정말 페로몬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런 플라세보 실험은 필수 코스!

이 실험에 사용된 ‘사랑의 묘약’인 인간 페로몬은 젊은 여성의 겨드랑이에서 분비되는 물질을 솜에 묻혀서 모은 것이다. 겨드랑이에서 모았으니 이상한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페로몬은 원래 무취다. 이 분비물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들의 주성분을 분석해 알아낸 뒤 그것을 한 종류씩 합성해서 만든 약을 상용화한 것인데, 이 약을 실험에 사용한 것이다. 이 약을 만든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위니프레드 커틀러 박사. 그는 이 인간 페로몬의 제조법에 대해 특허 신청을 해놓은 상태라 아무도 그 구체적인 성분을 알지 못한다.

그 브랜드 자체는 구입할 수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 스프링스의 ‘아테나 연구소’(Athena Institute)에서 인간 페로몬 포뮬러 ‘아테나 페로몬 10:13’이란 상표로 이미 팔고 있다. 27달러(2만5천원)에서부터 100달러(9만원)까지 가격도 다양하다. 남성용·여성용 등 성별에 따라 페로몬 제품이 따로 나와 있으며, 그중 ‘ALter Ego’라는 제품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3주 뒤 결과는 어땠을까? 그들은 상용화된 페로몬을 뿌린 3주 동안, 애인과의 애무, 키스, 애인과의 섹스, 미리 약속한 데이트, 갑작스런 데이트, 남성의 접근, 자위 행위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갑작스런 데이트는 늘어나지 않았고, 남성이 접근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자위 행위에 몰두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애인과의 애무와 키스, 섹스 그리고 미리 약속한 데이트는 현저히 늘어났다. 다시 말해 상용화된 페로몬 제품을 뿌리면 낯선 남성들이 줄줄이 따라오는 효과는 없었지만, 이미 사귀고 있던 남성이 있다면 그와의 관계는 한층 더 깊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와 오빠 냄새는 싫어

인간의 페로몬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그 존재조차 확신하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꾸준히 관심이 깊어지고 있으며 이제는 그 존재를 증명할 만한 증거도 꽤 쌓인 편이다. 일본의 저명한 행동유전학자인 야마모토 다이스케가 쓴 <남자와 여자는 왜 끌리는가>에 따르면, 페로몬(pheromone)이란 ‘흥분을 옮기는 것’이란 뜻으로, 그 존재는 누에나방 암컷이 수컷을 유혹할 때 봄비콜(Bombykol)이란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낸 <네이처>에 발표한 것이 세계 최초였다고 한다.

현재 아테나 연구소에서 팔고 있는 남성용 페로몬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암퇘지에게 뿌리면 곧바로 교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페로몬을 이용한 유명한 실험이 하나 있는데, 치과 대기실 의자에 남성용 페로몬을 뿌려두고 남성과 여성 내방객들의 반응을 관찰한 보고가 바로 그것이다. 연구 결과 여성 내방객들이 남성용 페로몬을 뿌리지 않은 의자보다 페로몬을 뿌린 의자에 훨씬 더 많이 앉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냄새는 거의 없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해 남성의 겨드랑이에서 추출한 남성용 페로몬은 남성에게는 잘 인지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는 이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 사이의 사랑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페로몬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아직 그에 관한 연구는 미약하기 짝이 없지만, 1995년 베른대학의 클라우스 웨더킨트 박사가 했던 독특한 실험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44명의 남자에게 면 티셔츠를 이틀 동안 입게 했다가 벗긴 뒤에, 얼굴을 모르는 49명의 여성들에게 44벌의 티셔츠 냄새를 맡게 했다. 그리고 호감이 가는 냄새를 조사했다. 이 엽기적인 실험은 실험 자체로 과학계에서 단번에 유명해졌는데, 그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여성들은 자신과 유전자형이 다른 남자의 땀 냄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좋아하는 이 셔츠의 냄새는 지금의 내 남자친구 (혹은 예전의 남자친구)를 생각나게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관심이 없는 티셔츠에 대해서는 아버지나 오빠의 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들은 이 실험 결과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서로 다른 유전자가 섞여야 유전적인 결함이 줄어들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더 강한 후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물질을 땀을 통해 배출함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상대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은 자신과 유전자형이 다른 이성에게 끌리게 되고 이로 인해 유전자 교배가 활발해지고 유전적 결함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인상’이 화학물질의 결과?

사람들 중에는 크게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아도 왠지 호감이 가고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있다. ‘러브 포션’과 같은 인간의 페로몬을 연구하는 ‘어떤’ 과학자들은 이런 ‘좋은 인상’이 화학물질의 교류에 의한 생물학적인 반응일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사람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일에 이들 페로몬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페로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남 몰래 흐르는 눈물>로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약장수가 여자 주인공인 아디나에게 말하길 “그를 사랑하게 되었군! 당신도 내 약을 사시구려”. 그러자 그는 “저에게는 그 약이 필요치 않아요. 제 환한 미소와 웃음이 바로 사랑의 묘약이랍니다”. 과학자는 그녀의 웃음 뒤에 화학물질이 숨어 있다고 믿는 듯싶다.

 

5명, 2580번, 1290시간…

평생 섹스의 상대, 횟수, 시간… 내 마음대로 상대의 수를 정할 수 있다면 몇 명이 좋을까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섹스를 몇 번이나 할까? 사람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문화마다 그 수는 다르겠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인간은 일생 동안 평균 5명의 상대와 2580번의 섹스를 나눈다고 한다. 전희를 포함해서 한 번 섹스를 할 때마다 걸리는 시간을 30분만 잡아도 그 시간을 다 합치면 무려 1290시간. 우리가 인생에서 섹스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미국의 한 웹사이트가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섹스를 나눈 상대 5명 중에서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은 겨우 2명뿐이라고 한다. 3명은 단순한 성적 이끌림으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성관계를 나누게 됐다는 얘기다. 서양인의 설문조사를 근거로 얻은 통계 수치이니 너무 불편해하지는 마시라. 이 통계는 인간관계에서 섹스가 얼마나 복잡한 골칫거리를 안겨줄 수 있는지를 상기시켜준다.

» 무도회장이나 나이트클럽에는 하룻밤의 정사를 꿈꾸는 남성들이 득실거린다. 하지만 무도회장을 찾는 여자의 마음은 이와 크게 다르다. ‘찰나적 성관계’를 꿈꾸며 그곳을 찾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사진/ 한겨레 박미향 기자)


여자는 NO, 남자는 YES

미국의 심리학자 클라크와 햇필드는 1989년 미국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점잖지 않은 설문조사를 해 심리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들이 대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명료했다. 만약 매력적인 이성이 당신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얘기한다고 가정하자. “안녕하세요? 그동안 당신을 쭉 지켜보고 있었는데, 당신은 정말 매력적이세요. 오늘 밤 함께 잘 수 있을까요?” 당신이라면 이때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들의 설문 결과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실험에 참가한 144명의 남녀 대학생들 중에서 여학생들은 모두 단호하게 성관계 제의를 거절한 데 반해, 남학생들은 75%가 ‘좋다’라고 대답했다. 여성들은 이 난데없는 제의에 불쾌해하거나 모욕당한 기분을 느꼈으며, 남성들은 모두 이 매력적인 제의에 들떠 있었다.

200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피셔 교수와 그 동료들도 비슷한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비슷했다. 그들은 이 논문에서 여학생들 100%가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은 아니고 그중 6.1%는 성관계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며,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물어보느냐에 따라 여성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이 논문에서 하고 있다.

하여튼 이 실험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남자는 낯선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에 대해 여성보다 훨씬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무도회장이나 클럽에 가면 하룻밤의 정사를 꿈꾸는 수많은 남성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밤새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힐끗힐끗 곁눈질을 하고, 이리저리 찝쩍대고, 부킹과 술 공세로 유혹하려 하지만 하룻밤 정사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남자들이 다음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며 꿀꿀해하는 데에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무도회장을 찾는 남녀의 마음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찰나적 성관계’를 꿈꾸며 무도회장을 찾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무도회장에는 대학 캠퍼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하룻밤의 정사에 호의적인 여성이 있을 확률이 더 높고, 설문조사와는 달리 그들은 1~2시간 정도 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며, 술과 노래, 춤이라는 흥을 돋우는 환경도 조성돼 있으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커지겠지만, ‘여성은 기본적으로 찰나적 성관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잘 알아야 한다.

 

먼저 마음속으로 답해보시라

‘하룻밤의 정사’나 ‘혼외정사’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이다. 인간은 왜 결혼제도라는 것을 만들었는가가 중요한 연구 주제이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과의 하룻밤 정사가 다양한 문화권에서 폭넓게 발견되는가’ 또한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이런 원나이트 스탠드의 목적은 무엇이며, 인간은 왜 결혼생활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도 있는 이런 성관계를 호시탐탐 시도하는 것일까?

중요한 연구 주제임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별로 진행된 바가 없다. 이런 일시적인 성관계는 극도의 보안 속에서 은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하기 힘들다. 다들 속 시원하게 자신의 하룻밤 정사 경험과 당시 심리 상태 등을 말하기 꺼린다. 한 예로 성행동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의 경우, 혼외정사를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 자체를 송두리째 거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성관계와 항구적인 성관계(진화심리학자들은 ‘짝짓기’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사람들이 평생 몇 명의 성적 상대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 버스와 그의 동료 데이비드 슈미트는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 달부터 평생에 이르는 다양한 기간 동안 그들이 이상적으로 두고 싶어하는 섹스 상대의 수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는 흥미로웠다.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내 마음대로 섹스 상대의 수를 정할 수 있다면 얼마로 할 것인지’ 그 수를 생각해보시라.)

모든 기간에서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더 많은 섹스 상대를 희망했는데, 그것은 그리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1년 동안 남성들은 이상적인 평균 6명 이상의 섹스 상대를 두고 싶다고 답한 반면, 여성들은 평균 단 1명만 두고 싶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3년 동안의 경우 남성들은 10명의 섹스 상대를 희망한 반면, 여성들은 단 2명을 희망했다.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이상적으로 희망하는 섹스 상대의 수는 남녀 모두에서 늘어났는데, 점점 남녀의 숫자 차이는 커졌다. 남은 평생 몇 명의 섹스 상대를 원하는가에 대해 남자들이 대답한 수의 평균은 18명. 이에 반해 여성들은 4~5명이었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그의 저서 <욕망의 진화>에서 이 사실에 대해 이런 해석을 내리고 있다. 남성들은 그동안 자신이 상관계를 가진 여성의 수를 세고 때론 많다고 떠벌리고 다니거나 과장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모두 미성숙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찰나적 성관계에 대한 남녀의 태도 차이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1년 6월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릴제로스 박사와 그 동료들은 2810명의 스웨덴 사람들에게 던진 성에 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섹스로 얽힌 인간관계’를 조사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일생 동안 1~4명의 상대와 섹스를 나눈다. 그러나 더 많은 상대자와 섹스를 나누었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수도 의외로 많았다는 것이 이 연구 결과의 핵심이다. 설문지에서 섹스를 나눈 사람의 숫자를 높여가더라도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수가 천천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섹스를 한 사람을 통하면 서로 섹스로 연결된 인간 사회 네트워크를 그릴 수 있다는 얘기다(좀 민망한 일이긴 하겠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섹스 상대자 수 분포가 ‘상위 20%의 부자들이 80% 이상의 소득을 독점한다’는 파레토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릴제로스 박사팀은 성관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섹스로 얽힌 인간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적당히 규칙적으로 얽힌 거미줄에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중간중간 꼬여 있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이 현상을 ‘매력적인 사람에게 기회가 몰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상위 20%가 80% 이상을 독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룻밤의 정사, 원나이트 스탠드에 대한 환상을 꿈꾸는 것일까? 1만 년 전 우리 조상들도 우리와 비슷한 환상을 품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현대 사회에서 무려 30~50%에 육박한 혼외정사 통계는 과연 그 이유로 설명 가능할까? 이것이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품고 있는 주제이며, 다음회에서 다룰 주제이기도 하다.

 

일부일처 본능, 불륜 본능

내 유전자를 잘 보호할 것인가, 더 많이 퍼트릴 것인가, 혼외정사의 생리학

 

만프레트 타이젠의 저서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포유류의 97%는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늑대와 여우도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에 속한다. 하지만 포유류의 대부분은 섹스를 위해서, 혹은 자식 양육을 위해서 한동안 함께 지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


인간은 ‘사회적 일부일처제’

» 남성과 여성의 60% 이상이 결혼 뒤에 이따금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애정 행각’을 나눈다.
불륜이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게다가 짝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사실은 몰래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처럼 이혼을 한다고나 할까? 진화생태학적 가설이 맞다면,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수컷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목표이고 암컷은 건강한 새끼를 낳기 위해 최상의 상대를 고르는 데 전념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부일처제는 한 상대에게 생식에 관해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부담이 따르는 제도다.

진화생태학자들은 동물 세계의 ‘일부일처 습관’을 일정 시간대에 한 짝과만 짝짓기하는 ‘성적’ 일부일처제와 암수가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바람도 피우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그리고 한 암컷이 평생 한 수컷의 알만 낳는 ‘유전적’ 일부일처제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새들의 90%는 암수가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다른 상대와도 성적 관계를 갖는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많은 국가에서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지만, 혼외정사 빈도와 혼전 성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60% 이상이 결혼 뒤에 이따금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애정 행각’을 나눈다. 이른바 ‘감정적 부정’이란 걸 한다. 또 남녀의 35%가 결혼 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남편의 50%, 미국 아내의 26%가 혼외정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킨제이 보고서 이후 조사된 몇몇 연구들에서는 그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별반 차이가 없다. 8천명의 기혼 남녀를 조사한 한 연구는 남편의 40%와 아내의 36%가 적어도 한 번 이상 혼외정사를 했다고 보고했으며, 어떤 보고서는 최대 70%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외도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근 결과일수록 남녀 간의 혼외정사 수치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모든 연구에서 일관적으로 혼외정사의 발생률과 빈도에서 남성이 여성을 앞서고 있음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아내보다 남편이 더 자주 더 많은 상대와 혼외정사를 한다. 킨제이는 자신의 보고서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사회적 규제만 없다면, 남성들은 평생 아무 여자나 섹스 상대로 삼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명제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상대를 접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인간이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를 발전시키게 된 것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식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면서 안정적인 가정이 필요했고, 사유재산을 내 유전자를 가진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부일처제는 제 꼴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일부일처제라는 특징이 우리의 두뇌 작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순애보와 불륜은 호르몬 차이?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와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생활에 관한 한 완전히 상반된 특징을 보인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으며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 사는 그들의 동족은 정반대의 애정생활을 보인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와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비록 들쥐를 통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음에도 혼외정사를 꿈꾸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불륜적인 사랑’ 안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좀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랑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성전략이 그렇듯, ‘원나이트 스탠드’도 그에 다른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인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남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매독이나 에이즈 같은 성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바람둥이’라는 나쁜 평판을 얻을 수도 있으며, 여성들은 더욱 가혹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또 혼외정사나 하룻밤의 정사를 추구하는 미혼 여성은 때론 자신과 자식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해줄 남성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안정된 결혼생활이 한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질투심으로 가득 찬 ‘여성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여러 문화권에 걸쳐 살인 사건의 상당수가 (특히나 배우자 살인의 대부분이)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한, 그래서 질투심에 휩싸인 남편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원나이트 스탠드’에 따르는 손실

그럼에도 원나이트 스탠드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데에는 생물학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요소들이 많이 관여된다. 예를 들어 일시적인 성관계가 주는 손실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달라진 생활환경 덕분에 겪지 않아도 된다. 효과적인 피임법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원나이트 스탠드나 결혼과 상관없는 섹스를 늘리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도시생활의 상대적인 익명성은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평판의 하락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남성에게서 장기적 투자를 기대하지 않고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해주며, 부모로부터 독립,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의 증대 역시 혼외정사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손실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복잡한 성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로 현대생활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랍니다

뇌사진을 보면 감정 관장 영역이 아니라 ‘욕구나 동기’ 영역에서 처리돼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거나 애착을 느끼는 감정 상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사랑이 이렇게 정의돼 있다. 기원전 4000년,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 동굴벽화에 흐릿하게 그려진 이래로 인간은 변함없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왔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옥스퍼드 사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사랑은 상대가 필요하며 알 수 없는 매력에 끌려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깊은 애착을 느끼게 되는 감정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시인 존 키츠의 표현대로, 사랑이란 ‘온갖 자극과 감정이 뒤섞인 소란’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지어보라

그러나 최근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옥스퍼드 사전에 담긴 사랑의 정의를 조금 수정해야 하지 않냐고 주장한다. 더없이 간결한 옥스퍼드 사전적 ‘사랑’에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단어는 바로 마지막에 붙은 ‘감정’이란 단어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정이 있다면 ‘사랑의 사기꾼’은 쉽게 들켜버릴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표정의 정답은 어쩌면 ‘중독된 사람과 비슷한 표정’일지도 모른다. 영화 <용의주도 미스 신>의 한 장면.

과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과연 사랑을 감정의 한 종류로 보는 것이 타당할까? 이 질문에 대해 신경과학자들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랑이란 감정은…’이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사랑이 만약 감정이라면, 사랑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내보라고 주문한다.

우리는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즐거운 감정은 얼마든지 얼굴 표정을 통해 표현할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도) 남의 표정을 통해 상대의 그런 감정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설령 미국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찡그리는 미국인의 얼굴 표정을 통해 그가 화가 났다거나 슬프다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은 자신의 원초적인 감정을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으로 나타내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사랑에 대응되는 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사랑에 빠진 표정을 명확히 지을 순 없다(사랑에 빠진 표정을 지어본 뒤 옆 친구에게 알아맞혀보라고 주문해보시라). 우리는 내 친구나 동생에게 연인이 생기면 그 사실을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알아차릴 순 있지만, 사랑이라는 상태는 확실히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 상태와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사랑은 반드시 ‘행동’을 동반한다는 점에서도 여느 감정과 구별된다. 우리는 슬프거나 기쁜 감정 상태가 표현되지 않고 그저 마음 상태로만 오래 간직된다고 해서 감정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사랑은 다르다. 사랑이라는 상태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며 그와 함께하고, 그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수행하며, 일련의 행동에는 뚜렷한 목적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는 ‘욕구나 동기’에 더 가깝다.

결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뇌 활동사진을 찍어보면 사랑은 우리 뇌 안에서 감정을 관장하는 영역(편도체 등)에서 처리되지 않고 ‘욕구나 동기’를 관장하는 영역에서 처리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동정, 황홀경, 갈망, 두려움, 의심, 질투, 당혹, 집중 등 온갖 격정적인 반응을 동반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호머는 자신의 서사시 <일리아드>에서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뜨거움. 갈망의 돌진. 연인의 속삭임이여. 가장 성스런 사람까지 미쳐버리게 만드는 그 마력이여.”

 

히로뽕 중독 환자의 ‘보상 중추’처럼

사랑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다른 심리 상태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욕망도 뇌에 있는 특정한 화학물질과 신경회로로 인해 생겨나는 보편적인 마음 상태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기(fMRI)라는 뇌 영상장치 안에 집어넣고 그들의 뇌를 찍을 생각을 했던 최초의 연구자는 헬렌 피셔라는 미국 럿거스 뉴저지 주립대학 인류학과 연구교수였다. 그는 사랑에 빠진 수십 명의 커플에게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디로 피가 몰리고 에너지가 활발히 소모되는지 관찰했다. 놀랍게도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히로뽕 중독 환자들이 히로뽕을 복용했을 때 활성화되는 보상중추라는 영역에서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되는 것도 관찰됐다.

사랑이란 고귀한 마음 상태도 생물학적인 뇌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관찰한 것이다.

보통 뇌 속에 도파민 수치가 올라가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집중력을 보이기도 하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동기부여와 목적 지향적인 행동을 수행한다. 또 무엇보다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하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이 우리에게 극도의 쾌감을 주는 것은 연인과 함께 있으면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마구 분비되기 때문이다.

도파민과 함께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도 늘어나는데, 이 화학물질이 체내에서 늘어나면 사람은 혈기 왕성해진 신체, 신경과민, 불면, 식욕 상실, 떨림, 두근거리는 가슴, 가빠지는 호흡, 고민과 두려움 등을 경험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모든 증세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흔히 관찰되는 증세가 아니던가!

낭만적인 사랑의 또 다른 두드러진 징후는 애인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물밀듯이 밀려드는 연인에 대한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헬렌 피셔 박사가 쓴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에 따르면, 헬렌 피셔는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 자신의 연구실을 찾은 피험자이자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깨어 있는 시간 중에서 애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몇%나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90% 이상”이라고 대답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한시도 생각을 놓을 수 없다고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걸 뭘 물어보냐고?) 그래서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사랑이라는 현상을 “정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주목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에 사로잡힌 연인들의 행동은 강박관념에 빠져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탈리아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빠진 연인의 뇌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수치가 과도한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의 뇌에 존재하는 세로토닌의 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세로토닌이 적게 분비되면 우리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몸에서도 이런 증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바다보다 넓은 것은 하늘이고, 하늘보다 넓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라고 했지만,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하늘보다 넓은 인간의 마음을 뇌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지, “뇌는 하늘보다 더 넓도다”라는 신경과학자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시구를 남겼다.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기억하고 의식하는 모든 행동들은 생물학적인 뇌를 통해 설명될 수 있으며, 낭만적 사랑 또한 1.3kg에 지나지 않는 이 단백질 덩어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신경전달물질은 원인일까 결과일까

물론 사랑이 특정한 신경전달물질과 신경회로의 작동을 반드시 동반한다 해서, 그것으로 사랑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랑하는 동안 과도하게 분비되는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사랑의 원인인지 결과물인지, 혹은 그저 부산물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사랑을 하는 동안 우리가 보이는 많은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이 신경전달물질의 평소 역할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질투는 진화의 힘

“질투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연인은 왜 비극적 종말로 이끄는 질투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오! 왕이시어, 질투를 주의하옵소서.
이는 거짓을 행하는 녹색 눈의 괴물입니다.
그리고 고기를 먹고 살죠. 아내의 부정을 모르는 남편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자신의 운명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죠.
오, 하지만 시간이란 얼마나 야속한지!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 한구석 의심이 있고,
의혹을 가진 사람은 여전히 사랑을 불태우니!”


» 질투는 역설적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데 그것이 사랑을 비극적 종말로 이끌 수 있다. 뭉크의 그림 <질투>.

셰익스피어가 쓴 비극 <오셀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베니스의 용병장군 오셀로와 그를 사랑해 비밀 결혼식을 올리는 데스데모나,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파국으로 이끌 음모의 모략꾼 이아고. 이들의 질투와 배신, 그리고 살인과 파국을 그린 작품 <오셀로>는 사랑의 어두운 뒷면인 ‘질투’라는 열정이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jalousie’ 뒤에 숨어 지켜보다

과학자들은 질투를 ‘배우자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배우자가 제3자와 관계를 맺었거나 맺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표현되는 불편한 감정’이라고 건조하게 정의하는데, ‘사랑에서 비롯되어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야기되는 감정’이라고 소박하게 정의한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에 빠진 인간에겐 두 가지의 위험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는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성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성적 배신의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자를 의심하는 질투라는 욕망이다. 질투를 뜻하는 영어 ‘jealousy’는 라틴어 ‘zelosus’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뜻은 ‘열정과 강한 욕망’이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질투를 뜻하는 ‘jalousie’는 질투라는 뜻과 함께 커튼 대신 사용하는 창 가리개인 ‘베네치아 블라인드’라는 뜻이 포함돼 있는데, 그 해석이 흥미롭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정신과 의사인 닐스 레터스톨은 이것이 아내를 의심하게 된 남편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는 현장을 잡으려고 블라인드 뒤에서 몰래 훔쳐보는 상황에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발견되는 이 쌍둥이 열정은 ‘질투’라는 단어의 어원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진화심리학자 데이비스 버스가 수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거의 모든 남녀가 인생에서 최소한 한 번씩은 ‘격렬한 질투심’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전체의 31%는 ‘때로 질투심을 통제하기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으며, 현재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고 답한 사람들의 38%는 그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답하기도 했다. 질투가 얼마나 보편적이며 파괴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설문 결과다.

앞서 언급한 오셀로의 한 대목은 ‘질투가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잘 포착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6%는 ‘질투는 진정한 사랑에 필수적으로 수반된다’고 응답했다. 다시 말해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얘기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질투가 사랑의 깊이를 말해주는 표시라고 여기며, 사랑이 없다면 질투도 없다며 질투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아내를 죽인 혐의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도 “제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제가 아내를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이런 말은 의심과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다.

질투가 역설적인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를 하는데 그것이 사랑을 비극적 종말로 이끌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살인 사건의 13%는 배우자 살해이며, 그중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질투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 과도하게 보이는 배우자 의심 증세를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부부편집증이라고도 하는 이 병리적 상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게 발견된다. 실제로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오셀로 증후군 환자들은 정상적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질투와 의심’에 시달린다.

 

일단은 의심하는 게 진화에 유리해

흥미로운 것은 오셀로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 배우자로부터 얻는 불확실하고 애매한 단서들을 잘 포착해서 그들의 부정을 놀랍도록 잘 감지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오셀로 증후군 환자들의 병적인 의심이 항상 망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사랑하는 관계를 위협할 수 있을 만큼 파괴적인 ‘질투’라는 속성을 갖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그 원인을 자신의 책 <위험한 열정 질투>(추수밭 펴냄, 2006)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숲 속을 산책하다가 앞쪽 오솔길에서 무언가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것을 감지했다고 치자. 그것이 독을 품은 뱀일 수도 있고, 뱀이 아닌 다른 것을 뱀으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모호한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을 해야 하다 보니, 실제로 뱀 따위는 없는데 있다고 믿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고, 정말로 위험한 뱀이 버티고 있는데 없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오류가 치러야 할 대가는 매우 다르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 조상들은 이런 상황을 수십만 번 치렀을 텐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뱀이 존재한다’고 추론했던 조상들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이다. ‘뱀이 아니겠지’라고 의심하지 않았던 조상들은 여유롭게 산책을 즐겼겠지만,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불행으로 인해 우리를 태어나게 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을 과학자들은 ‘적응적 오류’라고 부른다.

바로 이렇게 질투는 ‘낮은 확률일지라도 일어날 수 있는 성적 배신의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유리하다. 무고한 배우자와 다투면 연인 관계가 깨질 수도 있기에 확실히 손해라고 볼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배우자가 내게 좀더 충실하게끔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작은 단서로도 배우자의 부정을 추론하게끔 적응적 해결책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이 질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내가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그렇다면 왜 사람마다 질투의 정도가 다를까’ 하는 것이다. 질투가 성적 배신을 막는 데 유용한 전략이라면 왜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른 것일까? 질투가 적은 사람은 성적 배신에 너그러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성적 배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인해 좀더 관대한 것일까?

질투는 성적 배신을 막으려는 이성적 전략이기도 하지만, 성적 배신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배우자의 바람기가 심각한 수준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할수록 질투심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롭네

롤랑 바르트는 자신의 에세이 <사랑의 단상>에서 질투하는 사람은 네 번 괴로워한다고 쓰고 있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롭고,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롭고,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봐 괴롭고, 또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돼서’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자신을 ‘초록 눈의 괴물’로 만드는 질투가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 기형도는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서 ‘질투는 나의 힘’이지만,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거울아, 내가 배란기 같니? 
화장은 24살처럼 보이기 위한,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 거울 앞 전쟁의 생물학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아름답지?” 동화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사악한 왕비는 늘 최고의 미인이 되길 꿈꾼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끊임없이 거울에 질문을 던지지만, 거울은 엉뚱하게도 ‘백설공주’ 이름만 댄다. 현대 사회에선 거울이 아니라 TV와 컴퓨터가 묻지 않아도 알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매일같이 보여주며 우리를 자극한다. “당신은 지구에서 3,328,345,923번째로 아름답습니다!”

» 사람들은 전형적인 얼굴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어떤 학자는 우리가 화장을 하는 이유를 ‘전형성 강화’에서 찾기도 한다. 동춘서커스의 한 단원이 분장을 하고 있다.


매력적인 여성이 한 명도 없었던 이유

그렇다고 대한민국과 할리우드 연예인들에게 모조리 독약이 들어 있는 사과를 먹일 순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을 해치려는 시도 대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신경을 쓴다. 근사한 옷을 입고, 화려한 귀고리를 하고, 예쁘게 화장을 한다. 그 결과, 전세계적으로 미용과 성형, 패션 비즈니스는 지난 50년간 어떤 산업보다도 각광받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한 예로, 인구가 2억5천만 명에 달하는 브라질에선 에이번(Avon)이라는 미국 화장품 브랜드의 뷰티 컨설턴트 집단이 군대보다 큰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거울 앞 각축전이 전세계적인 전쟁으로 변한 것이다.

좀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자기 연출’이나 자신의 ‘가치 표현’이라는 거부감 없는 표현으로 포장해 상업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화장은 미의 ‘기본 조건’이 되었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의 마르틴 그륀들 박사와 그 동료들은 ‘뷰티체크(Beautycheck)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이 어떤 외모에서 매력을 느끼는지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은 남성들에게 여러 여성 사진들을 제시하고 사진 속 인물들을 매력적인 순서대로 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남성들한테서 엉뚱한 질문이 날아왔다.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이 한 장도 없군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연구자들이 제시한 사진들 가운데는 모델 사진도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은 패션잡지와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적인 얼굴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들이 갖게 된 ‘미의 전형’도 화장이나 패션을 빼놓고선 생각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

이 연구에 관심 있는 <한겨레21> 독자라면 그들이 개설해놓은 뷰티체크 인터넷 사이트(http://www.beautycheck.de/)에 들어가 온라인 실험에 참여해볼 수 있다(요즘 한창 몸매에 관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사이트엔 한때 우마 서먼이나 캐서린 제타 존스 같은 스타들의 ‘화장 전후 사진’을 비교한 ‘before and after’ 코너가 큰 인기를 누렸는데, 그걸 보면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같은 간단한 화장술이 얼마나 우리를 기만해왔는지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다. 몇몇 여배우들은 도저히 우리가 아는 그 스타라곤 전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판이하게 달랐는데, 연예인의 고교 졸업사진이나 수술 전 사진에 익숙한 우리나라로선 그리 놀랄 만한 소식도 아니다.

인간이 화장을 시작한 것은 굉장히 오래된 일이다. 기원전 3000년에도 주검이나 동굴벽화에서 화장을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종교적인 제술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지만 배우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목적 또한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꺼비에게 두꺼비 닮은 사람이 최고

오늘날 화장은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평가받는데, 대부분 여성의 전유물로 간주되고 있다. <러브 사이언스>의 저자 만프레드 타이젠은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전형적인 얼굴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안간힘’에서 찾는다.

사람들 머릿속엔 전형적인 얼굴이 들어 있어 사람의 성별이나 정체성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취한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볼테르가 “두꺼비 수컷에게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꺼비 암컷이다”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얼핏 미인은 우리와는 매우 다른 얼굴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면밀한 조사 결과 ‘전형적인 얼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평균적 외모가 오히려 ‘미인’으로 평가되더라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꺼비 수컷에겐 김태희나 전지현보다 ‘두꺼비를 닮은 사람’이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진화심리학자들에게 여성이 화장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남성들에게 자신이 사춘기와 폐경기 사이에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화장술이 목표로 삼는 나이는 여성이 임신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아기를 정상적으로 낳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24살이다. 그보다 어린 여성이 화장을 하면 오히려 나이 들어 보인다. 광대뼈 아랫부분에 어두운 톤의 블러셔를 바르면 어린아이와 같은 통통한 볼이 가냘파지면서 성숙미를 풍기게 된다. 30살 넘은 여성들은 눈밑에 컨실러를 톡톡 두드려 바른 다음 완전히 펴서 눈가의 주름이나 다크 서클을 감춘다. 셰어나 카일리 미노그처럼 ‘나이를 잃어버린 연예인’들은 보톡스 주사로 주름을 펴고 박피로 깨끗한 피부를 얻었다고 해도 아이섀도와 컨실러로 눈가의 주름을 가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립스틱은 성적 매력을 배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보인다. 입술은 대화의 최전선에 있으며 성행위에 앞서 체액이 합류하는 최초의 장소이기도 하다. 풍만하고 매끄럽고 윤기 나는 입술은 모두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술인데, 이것은 오랫동안 다산의 상징으로 간주돼왔으며 원활한 난소 기능을 암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립스틱은 전세계에서 도난 비율이 가장 높은 물건 중 하나라고 한다.

 

립스틱, 세상에서 가장 많이 도둑맞는 물건

많은 사람들이 진화심리학자들의 이 야만적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분개할 것이다. 나 또한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진화심리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는 데에는 몇 가지 과학적인 근거들이 있는데, 그중 주목할 만한 하나가 뉴캐슬대학의 연구 결과다.

크레이그 로버츠 박사 연구팀은 배란 활동을 암시하는 징후들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여성들의 얼굴을 배란기 직전에 한 번 촬영하고 배란기가 끝난 뒤 다시 한 번 촬영해 이 사진을 남성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결과 많은 남성들이 배란기 직전의 얼굴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배란기가 시작되기 전에 여성들은 입술이 약간 두툼해지고 빨갛게 변하며 동공이 확장되고 피부색이 뽀얗게 바뀐다. 그런데 화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여성을 배란기 직전의 모습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현대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고, 화장의 의미는 5천 년 전 우리 조상이 화장을 하는 것과는 사회적 맥락이 많이 변했다. 화장의 본질은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해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한때 우리 미래가 별 속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안다. 그것이 우리 유전자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제임스 왓슨의 이 말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말인지, 아직 탐구는 끝나지 않았다.

 

중매는 과학입니다?

성황을 이루는 싱글 남녀 맺어주는 사이트… “그림 제목을 붙여주면 불붙을 상대방을 찾아드립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저서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을 보면 “1983년 8월14일 저녁 연례 국경일 연설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두 TV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최고의 시청률 상태에서 말이다. 나는 만일 대졸 남성이 자기 자식이 자신보다 잘되길 원한다면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거나 지능이 낮은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싱가포르, 대졸 싱글 중매에 나서다


»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은 결혼 비즈니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들은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남녀를 연결”하기 위해 ‘과학’을 내세운다. 결혼정보회사 주최로 열린 미팅 대축제.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1980년 싱가포르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도·말레이계 대졸 남성은 전통적으로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 여성을 선택하는 반면, 대졸 여성은 자신보다 높은 남성을 선호하거나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리콴유는 ‘인간 구조의 80%는 부모로부터 물려받고 나머지는 양육의 결과’라는 당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물론 사실이 아니다!), 심각한 사회적 반발이 예상됨에도 1984년 싱가포르 사회개발청소년체육부를 통해 ‘대졸 청춘 남녀 중매’, 이른바 사회개발단위(SDU·Social Development Unit) 사업이란 걸 하게 된다. 국가가 나서서 대졸 싱글들에게 중매를 서주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중매를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대졸 미혼 남녀들을 사랑의 크루즈인 ‘러브 보트’에 싣고 순항하면서 미팅 자리를 마련해주는 ‘희대의 코미디’ 이벤트를 마련하는데, 이 ‘러브 보트’는 이후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수많은 아류 보트들을 양산한다.

자존심이 강한 대졸 싱글들은 왜 국가가 우리의 연애와 결혼에 끼어드는지 냉소를 보였으며, 대졸 미만 학력의 자녀를 둔 부모나 당사자들은 위화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강한 사회적 반발을 보였다. 그럼에도 이 사업은 지난 20년간 무려 2만1400쌍을 결혼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으며, 싱가포르 대졸 남녀 간 결혼율도 1982년 38%에서 1997년에는 63%로 증가하게 됐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사회적 저항이 두려워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사업을 추진한 싱가포르가 이제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정부 주도의 중매사업을 앞으로는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는 현재 175개가 넘는 중매회사가 있으며, 이를 통해 미혼 남녀들이 제 짝을 찾는 비용도 매년 15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민간에 이양해도 잘 굴러갈 거라는 ‘정부의 판단’이다.

20년 전 싱가포르 정부가 했던 범국가적 중매사업을 지금은 수많은 민간 회사들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결혼 비즈니스가 활개를 치는 것은 전적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발달한 덕분이다. 미국에만도 매치닷컴(Match.com), 이하모니(eHarmony) 등 싱글 남녀를 연결해주는 회사가 무려 1천 개가 넘고, 이들의 연간 매출액은 7천억원을 육박한다고 한다.

자유연애와 개인주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국에서 처음에는 이런 소개알선 사업이 강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18살 이상 미혼 남녀 9200만 명 중에서 1600만 명이 이미 온라인 데이트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고객 수도 매년 10%씩 늘고 있는데, 이것도 그나마 사회 네트워크 사이트인 ‘페이스북’(우리의 ‘싸이월드’에 해당하는 사이트)이 무료로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상황에서 그들과 힘겹게 경쟁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한다.

 

인도에선 부모가 더 좋아해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글로벌 기업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단연 중국과 인도다. 중국과 인도는 오래전부터 중매 문화가 발달해 있어 중간에 중매자가 만남을 주선하고 결혼에 다리를 놓아주는 문화가 뿌리 깊은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다. ‘중매 한번 잘 서면 3년은 먹고살 수 있다’는 중국 속담이 있을 정도인데, 양복 한 벌 얻어입을 수 있다는 우리와는 스케일이 많이 다르다.

중국은 현재 35살 이하 남녀 중 아직 싱글인 경우가 무려 46%에 달하고(베이징에만 200만 명이 살고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6천만 명의 네티즌들 대부분이 결혼 적령기 남녀이기 때문에 글로벌 중매 회사의 최대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이미 2만 개도 넘는 중매회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인도도 만만치 않은데, 이곳에선 중매결혼이 90%에 달할 정도로 중매 문화가 보편화돼 있으며, 35살 이하 싱글이 6천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부터 인도에서는 이발사의 아내들이 일종의 ‘조합’을 형성해 멀리 떨어진 두 남녀를 연결해주는 일들을 해왔다고 한다. 인도의 젊은 남녀들도 사랑의 성공으로 결혼을 생각하기보다는 ‘성공한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71%에 이른다고 한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부모가 자식의 정보를 중매 사이트에 올려 중매에 적극 가담하는 양상도 보인다고 한다. 서구에서도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는 현재 온라인 데이트 신청자 220만 명이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중매 사이트가 인기라고 한다. 중매와 결혼 문화가 나라마다 얼마나 문화적으로 다른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인 것 같다.

결혼 비즈니스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고 중국과 인도가 이들의 최대 공략처로 지목되면서 글로벌 사업을 주도하는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회사들이 각 나라의 자체 중매회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중매의 과학’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딱히 과학이랄 것도 없지만, 수많은 지역 중매알선 회사와는 달리, 자신들은 과학적으로 결혼에 성공할 확률이 높은 남녀를 서로 연결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매알선 회사들은 비슷한 학력과 재산 정도, 원하는 외모 등 신청자가 원하는 조건들을 중심으로 소개팅을 알선해주지만, 매치닷컴이나 이하모니 같은 글로벌 회사들은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서로에게 맞는 타입을 찾아주겠다’는 전략이다.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않는가? 매년 ‘몸과 마음’을 주제로 특별호를 내고 있는 미국의 주간지 <타임>이 올해 특별호로 ‘로맨스의 과학’을 다루면서, ‘중매산업과 그 과학’에 대해 기사 하나를 따로 할당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치닷컴은 ‘사랑의 과학’으로 유명한 뉴저지주립대의 헬렌 피셔를 영입해 케미스트리닷컴(Chemistry.com)이란 걸 개발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56개의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사람들을 협상가형, 건축가형, 탐험가형, 연출가형 등 네 종류로 나누고 남녀를 주선할 때 서로 맞는 타입으로 소개해주겠다는 것이다(미혼 남녀분들은 직접 들어가서 해보시라. 나는 과연 어떤 타입일까?).

‘여기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이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같은, 얼핏 평범한 심리 테스트처럼 보이는 질문들이지만, 그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분비 정도를 알아볼 수 있는 행동 설문조사를 담은 것으로서, 되도록 첫 소개팅 자리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이 서로 반응하도록 도와주는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질문의 답으로 옥시토신 정도를 측정

이하모니의 중매 과학을 도와주는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 소재) 심리학과 카이핑 펭 교수는 ‘중매의 성공은 가장 비슷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라는 이론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원하지만, 정말 행복한 커플은 비슷한 구석이 많지만 서로 상호 보완이 되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어느 날 느닷없이 침대가 과학이 되었듯, 앞으로 ‘중매는 과학입니다’라는 모토가 한국에도 전파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들의 중매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검증이라는 절차도 함께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수천만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아닌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전화가 있었다면

현대인들의 사랑이 셰익스피어 시대와 달라졌다면 그 가장 큰 공로는 전화기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전화는 필수품이다. 극장이 없었다면 그들의 데이트가 길을 잃었을 것이 뻔하듯, 전화가 없다면 그들의 밤은 길고 지루했을 것이다. 하루라도 전화 통화가 안 되면 얼마나 애가 끓고 가슴을 졸이게 되던가! (물론 연애 초기에만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연인들은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 공중전화 박스는 한때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낭만적 유리 공간’이었다. 폭설이 내리는 일본 삿포르 시내 공중전화 부스에서 한 시민이 전화를 걸고 있다.


연인이여, 벨에게 경의를

그럼에도 ‘사랑과 전화’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흥미롭게도 아직 우리는 연애에서 전화기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과 전화’ 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은 ‘러브콜’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좀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유혹할 때 흔히들 쓰는 표현 말이다. 때론 러브콜이 백화점이나 명품숍에서 주요 고객들을 상대로 벌이는 편법 세일을 일컫기도 한다. 백화점에서는 흔히 바겐세일을 하기 전에 미리 단골 고객들에게 연락해 세일가로 물품을 구매하도록 한 뒤, 대금 결제는 세일 기간에 판매한 것처럼 편법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가리켜 러브콜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러브콜을 이런 식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에게 러브콜이라고 하면, 흔히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라는 뜻에 좀더 가깝다. 이상은의 간절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사랑해 사랑해>의 노랫말처럼 “오늘처럼 따사로운 아침엔/ 너의 목소리 들려오는 전화기에 대고/ 사랑해 사랑해 얘기하고 싶어”, 이런 게 러브콜인 것이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연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로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랑이 이뤄지려면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1932년 보사드와 그의 연구 동료들이 필라델피아에 사는 결혼한 남녀 5천명에게 결혼 상대가 얼마나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는지 물어봤더니,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이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다는 대답이 12%, 다섯 블록(반경 약 3km) 이내에 살고 있었다는 대답이 무려 33%에 달했다. 1952년 클라크와 그의 동료들이 431쌍의 결혼한 남녀를 인터뷰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34%가 다섯 블록 이내에 살고 있었고, 54%가 16블록 이내에 살고 있었다.

사회심리학 분야의 대가인 레온 페스팅거의 연구는 더욱 흥미롭다. 그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재직하고 있을 당시, MIT 학부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우관계를 조사해봤다. 그랬더니 같은 기숙사 안에서도 서로 가까운 방을 쓰고 있는 학생들끼리 친했으며,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우편함이나 계단 근처에 있는 방을 쓰는 학생들의 교우관계가 훨씬 폭넓었다. 다시 말해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자주 얼굴을 볼수록 사랑에 빠지거나 친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왜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수록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질까? 이들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러분도 충분히 예상했듯이, 과학자는 이를 ‘반복 노출 효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주 마주치고 얼굴을 여러 번 볼수록 그들에게 호감을 느낀다. 피험자들에게 여러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는 심리학 실험에서도 반복 노출된 사진에 대해 호감도는 크게 증가했다. 수업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2분간 그저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감도는 크게 증가했다. 반복 노출을 통해 상대가 내게 안전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게 되어 상대적인 호감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의 경우 반복 노출은 오히려 비호감 정도가 더욱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시 말해 반복 노출 효과도 사람 나름이라는 얘기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더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도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직장이나 학교가 멀리 떨어지게 되거나 군대에 입대하는 등 사회적 변수로 인해 연인들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하나같이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말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군대 3년 동안 고무신을 거꾸로 신게 된 커플이 많은 걸로 보아, 이런 효과는 3년 이내에 강하게 증폭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이제 복무 기간이 2년으로 줄었으니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특히나 교통수단이 거의 발달하지 않고 전화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멀리 떨어진 남녀가 만나는 일조차 불가능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기 전에는 이웃 마을을 벗어난 남녀가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을 하는 경우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물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자동차와 기차가 등장하고 전화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사랑의 반경은 매우 넓어졌다. 여전히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지속할 확률이 높긴 하지만, 멀리 떨어져 지내던 남녀가 만나는 일도 빈번해졌고,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멀리 떨어지게 되더라도 전화의 대중화는 그들의 사랑을 쉽게 갈라놓지 못한다. 미국에선 이렇게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커플을 ‘롱디’(long distant couple)라고 하는데, 자주 보고 싶고 만나기 힘들다는 어려움도 있지만 ‘늘 애틋해서 좋다’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전화는 그들 사랑의 필수품이 되었다. 스티비 원더의 노래처럼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라고 언제든지 외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퇴물이 되어버린 공중전화 박스는 한때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낭만적인 유리 공간’이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수화기를 붙들고 깔깔거리며 밀어를 속삭이거나 울면서 작별을 고한 연인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라는 공일오비의 <텅 빈 거리에서> 노랫말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휴대전화와 함께, 인터넷의 등장은 PC통신과 채팅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남녀를 만나게 해주고 다른 커플 못지않게 자주 대화하도록 연결해주는 ‘사랑의 결정타’이다. 커플요금제를 사용해 밤새 휴대전화가 뜨거워지고 배터리가 다 닳도록 통화를 하는 연인들은 이동통신사들의 주요 고객 중 하나다. 그 단적인 예가 첫눈 오는 날의 통신두절 사태다. 첫눈이 오는 날 연인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1시간에 무려 2천만 통이 송수신된다고 한다. 그로 인해 통신망에 과부하가 걸려 통신이 두절되는 것이다. 1997년 영화 <접속>이 PC통신을 통한 사랑을 이야기한 지 10년 만에, 사랑하는 연인들의 연애편지는 공중전화로 넘어가 호출기와 인터넷을 거쳐 휴대전화와 인터넷 메신저로 그 형태를 바꾸어갔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5분은 공중전화 박스에서

114 안내원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아니더라도, 전화는 이미 사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애 필수품’이 되었다. 요즘엔 문자만이 아니라 이미지도 보낼 수 있으니, 휴대전화는 ‘보고 싶은’ 마음을 더욱 절절히 전할 수 있는 연인들의 눈과 귀가 된 것이다.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휴대전화를 사용했더라면 그런 비극적인 파국을 맞이했을까? 만약 현대인들의 사랑이 셰익스피어 시대의 사랑과 크게 달라졌다면 그 가장 큰 공로는 전화기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크리스토퍼 몰리는 한 에세이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만일 우리 인생이 단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 모두는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말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오늘날 현대인들의 사랑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섹스가 없다면 예술이 있었을까

음악, 소설뿐이겠는가, 과학자들도 성적으로 왕성한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 펼쳐

 

문학과 예술, 과학을 잉태하는 원동력은 섹스다?

“그는 똑똑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어요, 호호.” 어느 인터뷰에서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인간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질문에 한 대답이다. 만약 이 말을 덴마크의 과학 저널리스트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들었다면, 그는 ‘남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며 그것이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라고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성적 억압을 투영하는 게 예술? 오, 노!

»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어떤 과학 저널리스트는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는 ‘섹스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딜리아니가 부인인 잔을 그린 <어깨를 드러낸 잔>.

그는 자신의 저서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에서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를 ‘섹스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단언한다. 1997년 영국의 전자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가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창작하지 않는 인간 무리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예술을 창작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러한 충동의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는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연의 진화는 인간에게 사치스러울 만큼 거대한 뇌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그림들과 서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소설들. 이 예술작품들의 대부분은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사랑에 절망한다. 극장과 전시장,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들이며(여기에는 결혼한 부부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음악회나 전시회의 주된 고객이 미혼의 커플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돈과 시간을 겸비한 노부부들이 더 많다), 흥미롭게도 예술작품을 왕성하게 창작하는 예술가들 역시 사랑과 섹스가 아니었다면 그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섹스 에너지가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100년 전,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승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예술과 과학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창조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성적 에너지가 왕성한 데 비해 그것을 발산하고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었거나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분의 에너지를 예술을 창조하고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자신의 책 <메이팅 마인드>에서 했던 주장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그는 인간이 억압된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예술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선택받고 섹스를 즐기기 위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그는 대부분의 문화적 표현은 성선택이 당면 과제인 시기에 가장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세상의 모든 화가와 재즈 연주자, 소설가들은 배우자 선택이 코앞에 닥친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초반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걸작을 남긴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가장 활력이 넘치고 놀라운 재주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섹스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밀러가 덧붙인 유머가 걸작이다. 밀러는 대중이 볼 수 있는 모든 공연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연자는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있는 젊은 남성입니다.’

 

평생 연구하려면 결혼하지 마라?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섹스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소설을 쓴다는 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예술가는 많지 않겠지만, 자신의 창작 에너지가 섹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이론의 문제는 여성의 창작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술적인 창조성이 여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주장에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텐데, 그렇다면 여성들이 걸작을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밀러의 이같은 주장이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280명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그들이 가장 왕성한 연구활동을 보인 시기가 언제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진화와 인간 행동>이란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의 결과를 여기까지만 본다면,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가 지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시기이며 또한 이 시기는 ‘박사후 연구원과 조교수’ 시기와 맞물려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 가장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니 섹스나 결혼과 결부시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더욱 놀랍게도 미혼인 경우에는 노년기까지 생산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나 기혼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수록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결혼을 한 뒤에는 더 이상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이유가 없어 과학자들이 굳이 열심히 연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첨언하자면, 사실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위대한 연구는 대부분 선행 연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노벨상을 탄 업적을 낸 연구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20대 젊은 나이에 이루어졌을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36~38살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결혼을 한 과학자들, 너무 상심 마시라.

 

가난한 예술가와 센스 없는 부자 중 고른다면

한편, 남성 예술가들의 뛰어난 창조성이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앤젤레스 소재)의 마티 해즐턴 박사는 사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데, 제프리 밀러와 함께 ‘창조성의 구애능력이론’을 검증한 바 있다. 이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다양한 남성상에 대한 설명을 들려준 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짝을 고르도록 했다. 개중에는 창조적인 예술가적 기질이 있지만 가난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돈은 많지만 예술적인 재능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성들은 돈이 아닌 예술가적 재능에서 매력을 찾았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 결과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든 비틀스의 예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비틀스 초기 공연 시절의 전기작가였던 마크 헤르츠가드의 글을 이렇게 전했다. “비틀스는 하룻밤에 예닐곱 명의 여자를 돌려가며 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존이 ‘다음!’이라고 외치면 각 멤버는 명령에 따라 파트너를 바꾸었다.” 우리의 위대한 비틀스가 그처럼 영감 어린 곡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진정 이런 이유 때문이란 말인가!

 

사랑을 잃고 나는… 분노하네

떠나는 사람은 담담한데 버림받은 사람은 왜 비탄-자조-격노 ‘비용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을 겪는가

 

“저는 도저히 지금 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입술은 바싹 타고 있어요. 오, 그대가 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오, 그 누가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2500년 전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가 쓴 이 시구는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한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류학자들의 고고학적 문헌 연구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에서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과 시베리아까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나 글귀가 발견됐다고 한다. 전 시대를 거쳐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인류는 사랑의 실패가 주는 아픔을 경험해왔다는 것이다.

» 실연당한 사람이 그토록 항의성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봄날은 간다>의 두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여자의 차를 긁는 ‘만행’을 저지른다.

뇌는 모르는 거니? 사랑의 시작과 끝을

물론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연구 주제이지만, 뉴저지주립대학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수행해 현대인에게 실연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인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3%의 대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95%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찬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대학생 90% 이상이 이미 누군가를 사랑했고 결국 사랑했던 연인을 버렸거나 그로부터 버림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35살 이하의 남녀에게 같은 설문을 해본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된다.

깊은 사랑 뒤에 찾아오는 이별의 고통은 지독하다. 사포의 표현대로, 밥을 먹을 수 없고 몸이 아프며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다. 마치 심한 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상실의 고통은 온몸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이별은 우리가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게 해준다.

“사랑이 깨졌나요? 그런데도 그 사랑을 그냥 보낼 수 없나요?” 헬렌 피셔는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스토니브룩에 위치한 뉴욕주립대학 심리학과 게시판에 붙였다. 실연당한 학생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촬영해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 공고문이 게시판에 올려지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고, 2005년 실험은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퇴짜를 놓은 애인들의 사진과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뇌영상을 찍게 되었다.

실연의 고통을 느끼는 동안 도대체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헬렌 피셔의 실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실연당한 자들의 뇌에선 사랑이 처음 시작됐을 때 관련되는 모든 신경회로와 신경전달물질이 다시금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이 시작되면 연인들에게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고 늘 함께 있고 싶고 갈망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을 흥분 상태로 만드는 ‘노르에피네프린’, 긴장하게 만들고 스트레스 상태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이 세 녀석이 실연당한 사람의 뇌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만족감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 역시 일치했다. 실연당한 사람의 뇌는 마치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안달이 난 ‘첫 만남의 뇌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뇌 상태였던 것이다.

 

쾌락이 사라졌을 때, ‘좌절-공격’ 가설

흥미롭게도, 이별 뒤에 과다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실연당한 자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기와 몸살을 선사한다. 낙심한 연인들이 고열에 시달리게 되거나 입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실연으로 앓아누운 연인들은 말 그대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 <봄날은 간다>

그러나 이것이 ‘실연당한 사람은 처음 사랑이 찾아올 때 감정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신과 의사 토머스 루이스와 리처드 래넌에 따르면, 우리가 이별할 때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느꼈던 홍역을 치러야 하는 것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이 강력한 ‘항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해 포유류는 상대가 자신의 사랑과 애착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통해 몸을 강한 흥분 상태로 만드는데, 낭만적 사랑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바로 그 화학물질들이 흠모의 열정과 이별 뒤의 두려움을 더욱 격정적으로 만들고, 이 부당한 이별에 대해 분노하고 신체적으로 항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때론 실연당한 자의 이런 항의 상태가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지만, 그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잦은 이별이 때론 오래된 연인에게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사랑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런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떠나본 뒤에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실연당한 사람이 그토록 항의성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떠나는 연인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상대에 대한 동정심과 추억을 간직한 채 연인 관계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은 비탄과 격노 사이를 오가며 격정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포도주가 가장 독한 식초로 바뀔 수 있듯이, 깊은 사랑도 한순간 가장 지독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는 영국의 시인 존 릴리의 오래된 시구처럼 말이다.

헬렌 피셔는 저서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생각의 나무·2005)에서, 이것을 좌절-공격 가설로 설명한다. 인간은 혐오와 분노를 느낄 때 편도체와 시상하부, 뇌섬엽 피질 등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 영역은 쾌락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중심부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자신이 기대했던 보상이 위험한 처지에 놓이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전전두엽 피질은 편도체에 신호를 보내어 분노를 촉발시킨다.

좌절-공격 이론에 따르면, 기대했던 기쁨이나 쾌락이 실현되지 못하면 곧바로 분노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고양이의 쾌락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고양이는 격렬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자극을 거둬들이면 고양이는 갑자기 난폭해지는 것이다. 쾌감을 박탈할 때마다 고양이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낭만적 사랑의 쾌감에서 한순간 거절당한 연인의 분노를 이 실험 결과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추론이다.

 

분노하라,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신체적으로 봤을 때, 분노는 ‘치러야 할 비용이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왜 버림받은 연인에게 그 자신이 흠모했던 사람을 쉽게 혐오하도록 만들었을까? 정신과 의사 존 볼비는 자신의 논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놓은 생물학적 설계’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많은 경우, 이별이 주는 분노를 표출할수록 연인을 되찾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에 대한 매몰찬 분노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준비해준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별의 분노를 충분히 토해내지 않을수록, 그래서 상대에 대한 미련과 애정의 앙금이 남아 있을수록,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연인들이여, 실연의 분노를 받아들이라.

 

연인이 떠나니 친구가 필요해

이별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수다’

 

우리 헤어져. 앞으로 연락하지 마. 그동안 즐거웠어.

사랑이 식은 뒤 이별을 통보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한 인터넷 사이트의 설문조사를 보면, 20대 남녀 7명 중 1명은 이처럼 문자메시지로 이별을 통보한 적이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가 곧 ‘나의 분신’인 시대이긴 하지만, 이별 통보라는 힘든 숙제를 한 통의 문자메시지로 대신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예의 없고 비정하며 무엇보다 무책임하다. 만나서 직접 말할 때의 난처함을 피하고 매달려 징징대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 다시 볼 사이가 아니라면 깔끔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별 통보를 문자메시지로 받는 순간 우리는 짐작해야 한다. 이 사람이 나와의 사랑을 소중히 곱씹을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 <이터널 선샤인>의 남자는 실연의 상처가 너무 커,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잊기 위해 기억을 없애준다는 회사를 찾아간다.


사랑은 불청객, 초대 없이 오고 가고

문자메시지로 차인 가장 유명한 스타는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 남편 케빈 페더라인이다. 그는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 브리트니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과시한 직후 방송 뒤풀이에서 문자메시지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이별 메시지를 확인할 당시 페더라인의 절망스러운 모습이 동영상으로 포착돼 한때 블로거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사랑은 초대받지 않아도 올 수 있는 불청객이듯, 떠날 때도 매몰차게 가버리는 매정한 방랑자다. 속수무책인 이별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실연의 고통 앞에 놓인 사람들은 식욕을 잃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모든 것에 낙담한다. 온통 자신을 거부한 애인에 대한 분노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미련으로 주체할 수 없는 상심과 우울 증세를 겪는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등장한 실연남 짐 캐리나 실연녀 케이트 윈즐릿처럼, 실연의 아픔은 사랑의 기억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대 제프리 로버바움 박사와 그 동료들은 미국정신의학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애인과 이별한 뒤 비통한 감정에 빠진 여성들의 뇌를 촬영한 결과를 보고했다. 6개월 이상 낭만적인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진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여성 9명에게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게 한 뒤 뇌를 관찰한 것이다. 그 결과, 감정과 관심, 동기를 추구하도록 하는 도파민 영역의 활동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걸 알아냈다. 실연이 가져다주는 깊은 비탄에 빠질 때, 감정·관심·동기를 관장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애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으며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고 호소했다. 여성들은 모두 이별 직후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나 대부분은 2주 뒤 이런 증세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로버바움 박사의 연구 결과는 왜 우리가 실연 뒤 식욕이 떨어지고 매사에 의기소침해지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지난 번 칼럼에서 소개했듯, 이별 직후 뇌는 사랑에 처음 빠졌을 때처럼 도파민 영역이 마구 활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시 말해, 이별 직후에는 관심과 동기를 관장하는 쾌락의 중추가 마구 요동치면서 잃어버린 사랑을 갈망하지만, 이내 이 영역은 현저히 활동을 멈추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는 ‘깊은 비탄’에 빠지게 된다. 이별의 아픔은 우리를 강하게 반발하고 ‘항의’하게 만들지만, 더 이상 사랑의 기쁨이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면서 무기력과 의기소침 단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실연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의 인류학자 헬렌 피셔 박사에 따르면, 이별의 아픔은 때론 실연 남녀에게 우울증 증세와 유사한 ‘낙담 반응’을 경험하게 한다. 심지어 40% 정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동안에도 ‘애인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우리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낙담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의기소침’은 절망을 내보이는 신호

남자와 여자는 실연의 아픔을 다스리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조심스럽게 일반화를 해보자면, 남자들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애인에게 더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사랑의 아픔이 찾아오면 친구나 가족의 도움으로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코올이나 무모한 운전 등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한편, 여성들은 친구나 선후배, 가족 등 다른 인간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들에게 조언을 얻고 속풀이 대화를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방식으로 실연의 슬픔을 극복하려 한다.

우울증에 대한 통계를 보면,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높으며, 여성이 우울증에 걸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실연이다. 실연한 남성들은 상대적으로 우울증 측정에서 수치가 낮게 나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실연의 고통에 덜 민감하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는 이별의 고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그 고통을 자신에게조차 효과적으로 감추고 있기 때문에 설문조사에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증거가 연애에 실패한 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70∼80%가 남성이라는 사실이다. ‘사는 것이 고통일 때는 죽는 것이 쾌락’이라는 시인 존 드라이든의 표현처럼, 남성에게도 실연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별 뒤에 다 같은 정도의 슬픔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별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제각각인데, 그 원인 중에는 자라온 환경도 포함된다. 어린 시절 애정 속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대체로 자존감이 강해 이별 뒤에도 비교적 쉽게 절망을 극복한다. 반면,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실연당한 뒤 존재의 근거 자체가 흔들리며 이별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가사처럼, 실제로 사람들이 이별에 그토록 절망하고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사랑하겠다는 절규를 한다면 그것은 애정결핍이자 정신질환에 가깝다.

실연 뒤에 연인들은 왜 의기소침해지는 걸까? 과학자들은 그들의 의기소침에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자 폴 왓슨과 그의 동료들은 의기소침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절망적일 정도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내보내는 믿을 만한 신호라는 설명이다. 친구나 친척에게 자신을 지원해달라는 뜻을 언어적으로 설득할 수 없을 때 보이는 무의식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로 가장 좋은 것은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속 깊은 수다’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까운, 그러면서도 인내심 있고 입이 무거운 친구를 찾아가 실패한 사랑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고 감정의 앙금을 털어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별 직후 나누는 대화일수록, 친구는 그저 들어주고 위로해주려고 노력해야지 실연당한 사람을 평가하고 질책해선 안 된다. 지나친 간섭과 질책은 오히려 역효과라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특히 부모님들은 명심하실 것). 영화 <미스터 로빈 꼬시기>에 나오는 명대사를 잊지 말자. “이별한 여자에게 필요한 건, 함께 울어줄 친구지 비평가가 아니다.”

 

사랑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평정심을 되찾거든, 다시 그 친구에게 가서 자신의 ‘사랑의 기술’에 대해 냉정한 조언을 구하라. 당신이 찼든 혹은 차였든, 실패할 사랑을 고르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사랑에도 ‘복기’가 필요하다. 버림받은 남자와 여자가 견뎌내야 하는 고통은 아마도 그로 하여금 장래에는 그와 비슷한 잘못된 선택을 피해가도록 하는 안내자가 될 것이다. 이때에도 여전히 좋은 말만 듣길 바란다면, 친구를 잃진 않겠지만 사랑을 다시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아름다움은 권력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뽀뽀를 많이 받더니, 권력도 부도 사랑도 모두 아름다운 자들에게로…

 

1975년 미국 조지아주립대 제임스 뎁스 주니어박사와 닐 스톡스 박사는 사회학 저널에 흥미로운 실험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그들은 두 사람이 좁은 인도에서 마주쳐 지나갈 때 어떤 사람이 먼저 피하는지, 또 얼마나 떨어져 지나가려고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보행자 470명을 관찰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보행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남자일 때 더 멀리 떨어져 피해주었으며(아마도 낯선 남자와 마주친 보행자들은 심리적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성을 마주쳤을 때 평범한 외모의 여성 때보다 더 멀리 피해서 상대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더라는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그들은 성별이나 외모에 따라 공간 지배력이 달라지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쓴 논문의 제목은 ‘아름다움은 힘이다’였다. 힘센 남성과 아름다운 여성은 세상을 살면서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한다는 얘기다.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여성이 다가오면 먼저 자리를 양보해주고 그가 편히 지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일까?

» 근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되는 데에도 유리하다. ‘노원의 얼짱’은 4·9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사진/ 연합)


예쁜 여성 앞에서 오버하는 남자들

아름다움은 때론 권력이 된다. 문화방송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면, 평소 지나치게 겁없이 행동하던 멤버들도 김태희나 이효리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주눅들고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땀을 줄기차게 흘리고 말도 제대로 못 건네다가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뒤집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시청자도 공감한다. 인기가 많고 적음을 떠나, 아름다움이 주는 강한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발산할 때 남자는 예외 없이 오버한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로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해 얼음물에 손을 담그게 한 뒤 얼마나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희한한 실험을 한 적이 있는데, 결과는 더욱 요상했다. 시간을 재는 실험자가 아름다운 여성일 경우 남자 피험자들은 두 배 가까이 더 길게 얼음물의 고통을 참아내더라는 것이다(어리석은 남자들이여!). 심한 경우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너무 ‘오버’해서 동상에 걸릴 때까지 참아낼 정도였다(여자들은 얼음물 속에서 무식하게 오래 참는 남자, 안 좋아해요!). 아름다움 앞에서 남성들은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헌신하며, 바보처럼 유치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좋은 것이며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행복한 꿈이지만, 때론 그 이상이다. 독일 정신과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울리히 렌츠 박사가 쓴 <아름다움의 과학>(프로네시스·2008)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인간을 그저 ‘아름다움에 한없이 종속된 존재’로만 그리고 있는 렌츠의 주장에 사람들은 불편해하겠지만, 그 어떤 권력도 아름다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그들을 각별히 우대하며 좋은 평가를 서슴없이 내린다는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예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대우가 다르다. 텍사스대 심리학과 주디 랭루와 교수에 따르면, 산부인과 병동이나 산후조리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임산부 144명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예쁜 아기를 낳은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많이 아기를 안아주고 키스를 했다. 예쁜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에게 받는 키스 횟수가 다르다니,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도 아름다움 앞에서는 공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성적 매길 때도 통하는 ‘미인계’

뉴욕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랜디와 해럴드 시걸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여고생들이 쓴 에세이에 점수를 매기게 했다. 에세이 앞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았을 때는 학생들이 에세이 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점수를 매겼으며, 10점 만점 중 6.6점에서부터 4.7점까지 좁은 점수 분포를 가졌다. 글 자체의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에세이 앞에 사진을 첨부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예쁜 여학생의 경우 평균 1.5점 이상 점수가 올랐으며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들은 오히려 0.7점 정도 점수가 떨어졌다. 심지어 2.7점이나 떨어진 학생도 있었다. 사진 때문에 학생들의 점수 분포가 훨씬 넓어진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지만, ‘선생님들이 성적을 매길 때 외모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는 불행히도 여러 번 반복 실험을 해도 일관되게 나왔다.

텍사스 휴스턴대 학자들이 텍사스 법원의 판결 2235건을 분석한 연구 결과는 좀더 알려진 예다. 같은 죄를 저질렀더라도 판사들은 피의자의 외모에 따라 많게는 벌금 400달러에서 1400달러까지 차이가 나는 판결을 했으며, 형량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특히 성범죄와 사기죄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서, 혐오감을 주는 외모를 지닌 남성 용의자들은 더 엄한 처벌을 받았으며, 같은 사기죄를 저질렀더라도 예쁜 외모를 가진 여성들은 형량이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근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국회위원이 되는 데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번 총선 때에도 확인한 바 있다. ‘중구의 얼짱’ ‘노원의 얼짱’ 같은 표현이 공공연히 사용될 정도로 외모는 사람들에게 깊은 호감과 신뢰를 준다. 캐나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의회선거에 입후보한 후보들의 매력을 세 등급으로 나눠 득표 수와 비교했을 때 잘생긴 외모의 후보들이 그렇지 않은 후보들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더 많은 표를 얻었다. ‘존 F. 케네디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은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은 권력’이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만든다.

잘생기고 예쁜 것도 타고난 자산이어서 그들은 상류층과 결혼할 확률이 높으며, 수입 또한 10% 이상 차이가 난다. 그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주목받고 선호되며 인기가 높다는 것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을 만큼 능력 면에서도 뛰어날까? 지적 능력이 더 뛰어나진 않더라도, 미남미녀들은 자신의 미모를 활용해 더 뛰어난 작업 능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여러 번 반복된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능력 면에서 외모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근사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신뢰감을 주고 뛰어난 능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됐지만(그래서 그들의 연봉은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 15% 이상 높았지만), 실제로 작업량이나 성과 면에서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

 

실력 차는 없지만 연봉은 15% 차이

이렇게 실제적인 차이가 별로 없음에도 아름다움이 선호와 동경의 대상을 넘어 인간 사회에서 권력으로 행사되는 현상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름다운 외모는 전생에 덕을 베푼 응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남들에게 미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이런 혜택을 받는다는 주장도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이라면 아름다움이 생존과 종족 번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 틀림없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다르지만, 진화생물학자들에겐 아름다움이 ‘건강하고 자기 관리가 확실하며 좋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신호로 보일 것이다. 반면 심리학자들이라면 타인을 판단할 때 성격이나 능력 등 내면과 외모를 조화롭게 인식하기 위해 ‘외모가 아름다우면 내면도 근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인지부조화 이론을 내세울 것이다.

아마도 진실은 여러 가설들 사이에 존재하겠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 뇌는 이런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기민하고 예민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의 외모를 단 0.15초 만에 판단한다. 다시 말해 0.15초의 시간을 주나,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주나 외모에 대한 판단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그 짧은 순간 사람들은 눈에서 시작해 코와 입, 얼굴 형태를 차례로 관찰하고, 심지어 동공 크기나 속눈썹 길이, 좌우 대칭까지 순식간에 파악한 뒤 결론을 내린다. “이 사람, 내 타입이야!”

버나드 쇼가 말했던가. “미인은 처음으로 볼 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안에서 상대해보면 더 보고 싶지가 않게 된다.” 이런 훌륭한 교훈은 미인과 사흘 이상 살아본 사람만이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그대 거짓말도 보여요

뻔히 알면서도 속고 속이는 연인들… 남자는 자존심을 위해, 여자는 배려하려고 많이 해

 

세상에서 제일 많이 하는 거짓말은 뭘까? 지난 2000년 미국의 한 여성잡지사가 네티즌을 상대로 했던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거짓말은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사랑해”.

»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샐리는 여자들이 대부분 오르가즘을 느끼기보다 흉내를 내는 거라고 말한다. 샐리는 식당에서 ‘절정의 연기’를 해 보인다.


60%가 거짓으로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사랑해’가 다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우리는 때로 연인의 몸을 얻기 위해,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기 위해, (혹은 비참하게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거짓으로 “사랑해”를 말하기도 한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심지어는 “네가 원하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수 있어” 같은, 전 우주적 스케일의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는 말이기에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거짓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60%가 넘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뻔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너뿐이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해” 같은 말에 연인들이 기꺼이 속는다는 것이다. ‘무뚝뚝한 곰보다 이런 거짓말이라도 하는 여우가 낫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선의의 거짓말’로 여자친구나 아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가끔은 이런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사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자기, 하루 종일 내 생각 많이 했어? 나 많이 보고 싶었어?”라고 애교스럽게 묻는 아내에게 “오늘 일이 많아서 네 생각 전혀 못했어. 미안해. 내일은 할게”라고 솔직히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남자가 얼마나 되겠는가?(아내들이여, 이런 ‘거짓말 조장 질문’ 제발 하지 마시라!)

그렇다면 남자들의 거짓말과 여자들의 거짓말은 어떻게 다를까?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심리학과의 모린 오설리번 박사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서로 어떤 거짓말을 많이 하는지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분석했다. 그의 연구결과를 보면 남자와 여자 모두 가끔씩 거짓말을 주고받지만 그들이 하는 거짓말의 내용은 확연히 달랐다.

대학생을 상대로 한 이 조사에서, 남자들은 연인에게 주로 자신의 경제적 능력에 대한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대답했으며, 결혼과 같은 장래 계획을 이야기할 때도 거짓말이 튀어나온다고 고백했다. 특히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말을 종종 했으며 여자가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거짓말로 얼버무렸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남자들은 자신이 여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 능력이 있으며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결혼과 같은 장기적인 관계를 맺기 원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거짓말을 활용하고 있었다.

반면 여성들이 자주 하는 거짓말은 남자들과 목적이 크게 달랐다. 여자들은 성관계 뒤 남자의 성적 능력에 대한 느낌을 말하거나 오르가슴을 얼마나 느꼈는지 말해야 할 때 솔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나 남편이 자신의 얼굴이나 몸매에 대해서 물어볼 때도 가끔 거짓말을 했다고 대답했으며(도저히 솔직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지적인지 물어보는 질문에도 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자신의 처녀성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미국에서도 여성의 처녀성이 중요한 이슈라는 점은 다소 놀랍다.

 

여성의 결혼생활이 더 행복한 이유

남자는 사랑하는 여성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며 나의 미래는 당신이 믿고 따를 만큼 밝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반면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이 자신감을 유지하고 자존감에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배려의 거짓말을 한다. 남자들은 돈이 많고 우리가 장기적인 관계를 갖길 바란다는 신호를 여자에게 주기 위해 과장된 언어를 사용하며, 여자들은 남자에게 정절과 임신 능력을 과시하고 사랑의 감정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과 여성이 상대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상대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이런 거짓말은 근사한 여자친구를 아내로 맞고 멋진 남자를 남편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을 것이다. 미국 드폴대 림 콜 박사가 2001년 <사회 및 인간관계 저널>에 제출한 논문에 따르면, 연인들이 서로 거짓말을 주고받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실제로 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가 128쌍의 연인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연인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난을 막고 화를 풀어주기 위해, 상대방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실제로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당시에 그것이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믿음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연인들도 그것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거짓말을 교묘히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사랑에 빠진 대부분의 연인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음에도, ‘나는 별로 거짓말을 안 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설리번의 조사에서, ‘모든 커플이 종종 거짓말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은 흔쾌히 인정하는 연인들이 “당신도 가끔 거짓말을 합니까?”라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게 한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신이 거짓말을 덜 하며 심지어 다른 여성에 비해서도 거짓말을 덜 한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이라고 볼 수 있는데, 때론 이런 자기 기만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기 기만 덕분에 결혼 뒤 ‘내가 선택한 상대가 가장 적합한 짝’이라고 스스로 확신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고민 끝에 확신 없이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결혼 뒤에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훨씬 상대에게 잘 적응하며 높은 만족도로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개 거짓말은 관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연인들의 기만: 남자가 거짓말을 할 때 나타나는 여섯 가지 징후>(Romantic Deception: The Six Signs He’s Lying)라는 책에서 저자 샐리 캐드웰은 선의의 거짓말을 넘어선 기만행위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진실이 상처가 될 때…

여성과 달리 남성은 종종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거짓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관계를 위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때론 둘의 관계를 기대와 실망 속에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과거의 결혼 경력, 교육, 직업, 경제적 능력 등에 대해서는 절대 속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렇다면 연인들은 언제 거짓말을 해야 하며 언제 하면 안 되는가? 놀랍게도 그 판단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대개의 경우, 진실이 거짓말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결혼을 위해 신뢰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해도 되는 유일한 예외는 “진실이 ‘상처를 주는 무기’가 될 때”이다. 오직 이때에만 거짓말이 용서받을 수 있다.

 

나는 바람둥이가 좋더라

카사노바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일까? 여성들은 왜 애인 있는 줄 알면서 그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진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휴먼앤북스·2005)은 그가 노년에 쓴 것으로, 사후 조카의 손에 넘겨졌다가 1820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출판됐다. 다소 과장되긴 했겠지만 믿을 만한 자료라고 평가받는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오랫동안 ‘섹스의 탐닉자’였다. 조반니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98)는 자매와의 더블섹스로 첫 경험을 시작해 19살 때 유부녀 루크레치아와 불륜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를 몰래 지켜보던 그녀의 동생과도 잇따라 정사를 갖는다.


» 그의 보헤미안적인 풍모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은 여성들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바람둥이들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이는 걸까. 2006년작 영화 <카사노바>.
 

아름답고 잔혹한 ‘양다리’의 달인들

36살의 카사노바는 한 아가씨를 유혹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아가씨는 루크레치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딸. 이 사랑은 끔찍한 근친상간이었던 것이다. 옛 애인을 찾아 수녀원에 간 카사노바는 수녀를 유혹해 정사를 벌이기도 하고, 처형장 앞에서 애정 행각도 서슴지 않는 등 호색한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문학에 심취해 늘 책에 빠져 있었으며 법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학문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럴수록 그의 지적인 면모는 그를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문헌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콘돔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카사노바가 살던 시대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부드러운 라텍스 재질의 콘돔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염소나 돼지의 맹장을 말려서 콘돔으로 사용했다. 콘돔 입구에는 리본을 달아 묶을 수 있게 만들어서, 착용을 했을 때 성기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요즘 콘돔과 다르다. 당시만 해도 콘돔은 귀한 물건인지라, 카사노바는 콘돔을 사용한 뒤에 물에 씻어서 다시 재활용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물론 콘돔의 거친 재질이나 재활용의 불편함도 그의 바람기를 잠재우진 못했지만 말이다.

카사노바와 함께 최고의 바람둥이로 손꼽히는 돈 주앙 역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중세 민간 전설에 처음 등장했던 이 바람둥이 귀족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으로 유명해졌는데, 여자를 유혹했다가 죽이는 엽기적인 행각을 거듭하다가 성직자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그의 보헤미안적인 풍모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은 여성들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카사노바나 돈 주앙처럼 역사를 뒤흔든 바람둥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바람기가 농후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으며 (반드시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를 가질 필요는 없다), 화술에 능하며, 쿨한 성격을 가졌고, 무엇보다 이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때론 지적이며, 유머가 풍부하고, 사소한 행동에서도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이들은 종종 남의 애인을 가로채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는 ‘양다리’의 달인들이다. 어떤 바람둥이는 ‘애인을 자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양다리는 절대 안 한다’며 요상한 상도덕(?)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퇴폐가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도 매력적인 이성이 나타나면 설령 애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로채는 데에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들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이고, 여성들은 왜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생물학자들이 몇 년 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태계에선 오히려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는 수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까지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진다

예를 들면,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서식하는 관상용 열대어인 거피(guppy)는 강물의 색깔에 따라 몸의 빛깔을 바꾼다. 암컷은 대개 밝은 오렌지 색깔을 지닌 수컷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몸 빛깔이 밝은 수컷일수록 암컷을 보호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다른 암컷이 덜 밝은 빛깔의 수컷을 선택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면, 덩달아서 그런 수컷을 짝으로 고르는 경향이 관찰됐다. 즉, 거피들은 다른 암컷들이 선호하는 수컷에 관심을 보이고 그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방 행동은 다른 암컷들의 판단을 활용해 자신에게 적합한 짝짓기 상대를 신속히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나름의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취향이 제각각이라서 이성을 고를 때 다른 동성의 선택 기준을 감안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도 거피처럼 남들이 선호하는 이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한 집단 안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그중 가장 능력 있는 이성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신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들도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는 것이다.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와 기꺼이 사귀는 것도 같은 이유다(‘바람둥이는 절대 싫다’고 이성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면 바로 뿌리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플레이보이나 팜므파탈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배웠거나 길들여진 것일까? 타고난 성향도 있을 수 있다. 매력적인 외모와 성격,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람기 성향까지 타고났다면, 그는 플레이보이나 팜므파탈의 길로 들어설 확률이 높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던,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과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들쥐 ‘불스’에 대한 실험은 이를 뒷받침한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불스는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보지만, 산에 사는 불스는 새끼를 낳아도 수컷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해 떠난다.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이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당신 옆에 사람이 그 사람일지도…

몇 년 전 한국방송 <과학카페-다빈치 프로젝트>팀의 의뢰를 받아,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의 뇌를 찍어 이성에 대한 반응을 살핀 적이 있었다. 제작진과 우리 연구실에서는 평소 바람기가 많다고 고민하는 지원자 6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실험을 실시했다. 결혼한 배우자나 사랑에 빠진 애인의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며 뇌 활성화 차이를 알아본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아내를 볼 때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던 쾌락의 중추가 처음 보는 이성의 사진이나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앞에서 마구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들의 뇌에선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마구 분비됐다. 그들은 사진을 보고 난 뒤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강하게 느꼈다고. 그것은 거의 일종의 목표의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고. 당신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선 다음 번에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훌륭한’ 결혼상대자와 정확히 일치하는 조건, 그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비법이 있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에게 매혹되는 걸까? 오랫동안 사랑이 ‘인류의 숙제’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파트릭 르무안은 자신의 매혹적인 저서 <유혹의 심리학>(북폴리오, 2005)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온갖 감각기관을 자극하며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때론 변신하고 때론 속임수를 쓰면서 일탈을 꿈꾼다. 이런 유혹의 심리는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르무안의 주장이다.

» 바람둥이들은 ‘터치’가 주는 효과를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원은 숙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터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씻지 말고 기다리시라”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카사노바나 돈 주앙 같은 바람둥이는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도 하지만, 타고난 매력을 주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타고난 매력을 갖춘데다,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으니 어떤 여성이 그의 앞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으랴!

남자들이 한눈에 반하는 여성들의 매력은 아름다운 외모에 크게 의존한다. 적당한 키와 적당한 크기의 가슴, 좌우대칭이 잘 이루어진 얼굴과 몸매, 매끈하고 환한 피부, 동공이 큰 눈과 붉고 도톰한 입술, 윤기 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이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매력적인 여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남성들이 줄기차게 반복해 적어낸 답들이었다.

그러나 <유혹의 심리학>은 주변에 남성이 끊이지 않는 여성은 ‘향기 전략’을 사용한다는 데 주목했다.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여성이 내뿜는 향기가 남성들을 유혹하는 데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일례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들을 후대 역사학자들이 분석하다가 나폴레옹이 그 편지들을 쓰게 된 동기를 알게 돼 크게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적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몇 달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용맹하고 혈기왕성한 나폴레옹은 요새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제 두 주 후면 도착할 테니 몸을 씻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우리나라에선 주로 씻고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번 상상해보시라, ‘적들을 향해 전진!’을 외치던 장수가 요새로 돌아와 씻지 말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암컷의 성적 향기는 남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최면적인 매혹’이라는 프로이트의 표현대로, 나폴레옹도 죽음의 전장에서 조세핀의 향기가 가장 그리웠던 모양이다.

매력적인 남성이 가져야 할 조건 역시 많은 여성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많다. 건강해야 하며, 키가 커야 하며, 어깨가 넓고 허리는 날씬해야 한다. 지적이어야 하며, 사회적 성공과 자기실현에 대한 야심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성실함 또한 중요한 조건이다. 또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여성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이런 걸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뭘 해도 성공하겠다!). 관대함과 배려는 남성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인데, 바람둥이들이 늘 밥을 사고 자주 선물 공세를 하는 것도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사회적 지위와 은행 잔고 역시 매력남의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런 조건은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꼽는 ‘결혼상대자의 조건’인데, 바람둥이들은 이 모든 요소를 실제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가지고 있다는 인상’은 주어야 한다. 그러한 가능성이 바로 여성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욕은 먹어도 실속은 챙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조건들 중에 ‘미모의 여성과 함께했던 과거’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왜 미모의 여성과 교제했던 과거 경험이 여성들에게 오히려 매력적인 남성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질까? 매력적인 여성을 대해본 경험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며(학습이론이랄까?), 다른 여성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그를 선택하는 데 대한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 바람둥이들이 욕은 먹을지언정 실속은 챙기는 모양이다!

몇 해 전, 미국의 어느 진화심리학자가 내게 ‘바람둥이 남성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알려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성 혹은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터치’를 얼마나 자주 하는가를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성의 터치에 민감하다. 모두가 경험했다시피, 스킨십은 남녀 사이의 친밀감을 빠르게 증폭시킨다.

남녀의 유혹적인 행동을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여성은 최초의 데이트에서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주로 목선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1분 이상 눈맞춤을 지속한다. 반면 남성들은 유머를 구사하려고 노력하며 눈맞춤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유도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나라마다 민족마다 스킨십에 대한 태도가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 행동심리학자가 카페에서 손님들이 보이는 행동양상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나라마다 스킨십의 정도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차이가 크더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 시간 동안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평균 180회 정도, 파리 사람들은 110회 정도 신체적 접촉을 한 반면,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 사람들은 2회 정도에 불과하더라는 것이다(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 접촉은 미국 사람들보다는 많겠지만 파리 사람들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더욱 심한 것은 영국 사람들인데, 특히 런던내기들은 상대방과 카페에서 대화를 하는 동안 절대 접촉을 안 한다는 것이 실험 결과였다. 그러니 영국에 가서 아무 여성에게나 친한 척 접촉하지 마시길!

 

사랑은 사랑하게 만드네

바람둥이는 원래 타고난 것인지, 스스로 학습하고 터득한 것인지에 각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적 특징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의 기원을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근사한 답을 가지고 있진 못하다. 그들이 생물학적으로 이성을 끄는 매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도 매력적인 행동들을 학습해 적용하더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다.

끝으로, 남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만한 바람둥이의 중요한 전략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을 보면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을 언급한 대목이 간간이 나오는데, 여기에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있다. 카사노바는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하면서 “여성은 자신이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저 여성을 (매번!)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일깨워주고 소중하게 대해주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여성들은 (원래 그렇지 않던 여성들도) 실제로 아름다운 존재로, 사랑받는 존재로 변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사랑은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가 제안하는 것은 이성과 대화할 때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상대방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이를 위해 공부를 할 필요도 있다. 상대방이 관심 갖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사랑스런 순간은 없다는 것이 희대의 바람둥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로봇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현재는 감정 이해가‘바퀴벌레’ 수준이지만 기계적으로 알고리듬화할 수 있으면 가능해

 

환경대재앙으로 인해 인간들이 지구를 떠나버린 뒤 지구에 홀로 남겨진 로봇 ‘월·E’. 그는 700년 동안 묵묵히 지구를 청소하며 지내다 문득 ‘인격’을 얻게 된다. 덕분에 호기심과 고독을 느낄 수 있게 된 월·E는 인간들이 탑승한 거대 우주선 엑시엄의 파견 탐사로봇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월·E의 감정표현을 이해 못하는 이브는 지구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열쇠가 월·E에게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우주선으로 급히 귀환하고, 그 뒤를 월·E가 쫓아 나서면서 은하계를 누비는 로봇들의 모험이 시작된다.

△ 윌·E(오른쪽)는 ‘700년 동안의 고독’ 끝에 감정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영화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 서서히 ‘아니요’에서 ‘예’로 바뀌고 있다.(한국 소니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제공)

2008년 여름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윌·E〉는 로봇공학의 오랜 숙제인 “과연 로봇은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도전한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이나 〈A.I.〉가 그렇듯, 이 영화도 언젠가 로봇은 의식이란 걸 가지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사랑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한다. 우리는 오직 ‘영화를 볼 때만’ 이 가정에 너그럽다.


누가 로봇과 사랑하고 싶겠냐고?

5년 전만 해도 “과연 로봇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절대다수는 어려울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최근 로봇공학자들이나 인지신경과학자들은 로봇의 사랑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가능할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카이스트에서 내 사랑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절대다수는 “로봇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론적 근거는 없다”고 대답한다(물론 카이스트 학생들이라서 이런 유물론적인 대답을 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것은 최근 들어 급속히 진행되는 ‘감정을 가진 로봇 개발’의 진척과 ‘사랑에 대한 뇌과학’의 성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듯싶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놔두고 왜 로봇을 사랑하겠느냐고? 로봇과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앞으로 로봇은 10년 내에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가정의 동반자나 학교와 병원의 도우미로 가까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로봇이 인간과 공생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외형이나 목소리를 흉내내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읽고 감정을 나누는 능력이 필요하다. 로봇의 ‘공감 능력’은 어쩌면 학습이나 기억 능력보다 로봇에게 더 절실히 요구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인간형 로봇 ‘아시모’나 ‘휴보’는 자연스레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들의 뇌는 거의 비어 있다. 그들이 쥐 수준의 뇌만 가져도 사회적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로봇공학자들은 감정을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고 심지어 인간처럼 느끼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로봇이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수준은 현재 딱 ‘바퀴벌레’다. 사람처럼 스스로 복잡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다양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데 만족할 만한 수준이란 얘기다. 얼마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과 컴퓨터공학과 교수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넥시’를 선보인 바 있다. 넥시는 다양한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비록 상황에 맞춰 알고리듬적으로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것이지만) 능력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간과 대화를 하거나 명령을 따를 때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얼굴 표정을 지으며 공감을 표현하는 로봇들이 부쩍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개발된 원격 진료 로봇 ‘RP-7’는 의사 얼굴이 담긴 모니터와 카메라가 탑재된 바퀴형 이동 로봇으로, 병원을 돌며 환자에게 다가가 진료를 하기도 하고 질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이 로봇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듯 모니터가 끄덕이며 환자의 질문에 반응해, 환자는 의사에게 직접 진료를 받는 느낌을 얻게 된다. 이런 작은 표현이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로봇공학자들은 로봇에게 감정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아직은 주어진 상황에 맞춰 알고리듬적으로 감정 표현을 할 뿐이지만 조만간 실제로 감정을 갖게 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다.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오는 ‘의식 있는 로봇’처럼 말이다.

 

영혼이 없어도 감정은 있다

‘로봇도 의식을 갖게 될 것이며 인간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과학자로, 미래전문가이자 문명비평가인 한스 모라벡 박사가 있다. 그는 로봇의 기억과 학습 능력, 주의집중 능력은 인간을 능가한 지 오래며, 조만간 그들이 의식과 감정을 갖게 될 것이며, 2030년 이전에 인간은 그들에게 지배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가 자신의 저서 <마음의 아이들>(1988)에서 처음 이런 주장을 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근거 없이 과격하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로봇의 머릿속에서 감정을 어떻게 생성해낼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며, 심지어 인간의 대뇌가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이센테니얼 맨’처럼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기꺼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는 로봇을 기대하는 것은 오직 영화 속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로봇공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 중에선 ‘감정도 기계적으로 알고리듬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인간의 감정이 대뇌에서 편도핵을 중심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됐는데(물론 아직도 멀었다!), 만약 언젠가 그 실체가 밝혀진다면 감정의 생물학적 토대를 그대로 컴퓨터 회로에 구현하는 일은 원리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신경전달물질은 전기신호로, 시냅스와 세포체는 작은 집적회로(IC)로 구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도 사랑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믿게 된 것이다(지난 칼럼에서도 지적했듯이, 사랑은 오히려 ‘감정’이라기보다는 ‘욕구’에 가까워서 더 구현하기 쉽다). 물론 아직은 여전히 ‘믿음’ 수준이지만.

만약 내게 인간이 로봇과 사랑에 빠질 날을 점쳐보라면 ‘2030년 이전엔 어렵다’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이미 미국에선 ‘섹스 토이’가 판매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섬세한 것이어서 매우 정교한 행동과 감정 표현을 요구한다. 로봇의 감정 표현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떨어지면 보고 싶어 못 견딜 것 같으며 섹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로봇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과 같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만큼 ‘엄청난 도전’이 될 것이다. 원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을 이뤄내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니, 언젠가는 로빈 윌리엄스만큼 매력적인 로봇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사랑을 책임질 수 있을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과연 인간은 로봇이 느낄 사랑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제목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지만 실제로는 ‘인공감정’(Artificial Emotion)을 주된 모티브로 다룬 영화 〈A.I.〉는 첫 장면에서 관객에게 바로 이 질문을 던진다. 외롭고 심심해서 자신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된 로봇을 만들게 된다면(이 영화에선 ‘메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더 이상 그들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면, 언제든지 숲에 버리거나 폐기처분해도 될까? 로봇에겐 사랑의 상처를 줘도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단언하건대, 우리는 2050년 어느 날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이 주제로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로봇과 인간의 공생은 오랫동안 우리의 화두가 될 것이다. 물론 그날의 사회자는 손석희 교수가 아니겠지만.

 

선물, 그 음험한 전략

진정 선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교환일까, 데리다는 왜 선물이란 불가능하다고 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은 것은 기원전 700년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것이지만, 아마도 그전부터 선물은 존재했을 것이다. 원시 조상들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코끼리뼈를 조각하고 들꽃을 꺾어 선물하지 않았을까?


곧바로 답례하는 것이 실례인 이유

그런데 선물은 진정 선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교환일까?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질문이냐고? ‘진정한 베풂’은 무엇이든 돌려받겠다는 계산이 깔리지 않은 행위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선물은 진정한 베풂일까, 아니면 교환행위일까?

» 선물은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이다. 영화 <색계>에서 이 대장(량차오웨이)은 장치아즈(탕웨이)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다. ‘시간 차이’를 둔 교환 행위인 선물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관계에 비극을 가져온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라 교환의 시작이며, 그것이 거저 주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우리가 거지에게 돈을 줄 때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주고받아온 것일까?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의 저자인 덴마크의 과학저술가 토르 뇌레트랜더스는 ‘구두’라는 하나의 제품이라 하더라고 선물과 상품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 판매는 판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거래를 하는 순간 볼일을 다 본 셈이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선물이 오가면, 그들 사이에 남는 것이 있다. 선물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초기’에 그토록 선물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결혼 30년차 부부들이 선물에 그토록 무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물은 관계를 형성한다.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애초에 선물이란 말 그대로 ‘논리적 모순’이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도입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선물 교환은 교환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 차이를 두고 교환을 하는 행위다. 그래서 베풂의 성격을 담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란 ‘비연속적인 베풂의 행위’인 셈이다.

어느 사회나 받은 선물에 대해 곧바로 답례하는 것은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례’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답례를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교환을 하는데, 그 시간 차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답례를 하면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라는 뜻이 된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생일에 선물을 했다면, 나는 그 답례를 내 생일 때 받게 된다. 그 사이에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면.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한 달이라는 시간 차이를 둔 것도 그 때문이다. 선물을 받으면 관계가 형성되고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생겨난다. 토르 뇌레트랜더스의 표현대로, 선물은 서로에 대한 지배력을 갖는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진 빚은 미래를 공유하고 우리를 한데 묶는다. 전세계적인 스케일에서 선물을 퍼나르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고는, 연인들은 그 자리에서 선물을 주고받지 않고 시간 차이를 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시작한다면 꽃, 오래됐다면 가방

연인들이 주고받는 선물에는 특별한 레퍼토리가 존재한다. 어느 온라인 쇼핑몰이 10대부터 50대까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한 결과, 여성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로 1위는 가방, 2위는 보석·액세서리, 3위는 지갑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반면 남성들의 경우에는 1위가 가방, 2위가 시계, 3위가 구두라고 대답했다. 그 밖에도 장미꽃, 향수, 화장품, 케이크, 의류, 넥타이, 벨트, CD 등이 인기 있는 선물용 제품들이다. 흥미롭게도 선물용 아이템은 전세계적으로 유사한 경향이 있다. 연인들끼리 돈을 주고받는다거나, 커피포트나 의자, 전등, 체육복 등을 선물하진 않는다.

왜 연인들의 선물에는 특별한 레퍼토리가 존재할까? 선물이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는 값비싼 신호라면, 두고두고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할 때 선물은 가치를 갖는다. 평소에 자주 보고 심지어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그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물건일 때 선물은 빛이 난다. 꽃은 그 자리를 빛내주지만, 가방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다(어버이날 부모님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돈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관계 형성에는 관심이 없다. 실용주의 노선이 최고다).

만약 당신이 연인에게 줄 선물로 고민하고 있다면, 꽃과 가방의 의미를 되새겨보시라. 처음 만나는 사이에선 꽃이 강한 인상을 남기며, 오래된 연인일수록 실용적인 아이템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싶다면, 이따금 꽃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너무 자주가 아니라면 여성도 기뻐할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은 여성에 비해 선물에 대한 반응이 크지 않다. 선물을 받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감동하지 않는 편이란 얘기다. 선물을 고르는 능력 또한 현저히 떨어지며,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을 즐기지도 않는다. 많은 연인들 사이의 불화는 여기서 비롯된다.

여성은 선물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길 원하는데, 남성은 선물에 마음을 담을 줄 모른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한국시리즈 티켓을 선물해주는 것처럼, 남성은 자신의 취미나 기호를 배려한 선물을 받고 싶어한다. 여성들은 남성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선물을 통해 읽고 싶어하는데, 남성들은 선물은 중요하지 않으며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대화가 안 될 수밖에.

 

선물 고르는 과정도 선물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연구해온 많은 과학자들은 선물이 때론 값비싼 불화의 신호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선물을 대하는 태도가 서로 다르고 선물을 고르는 취향이 서로 달라 불화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왜냐하면, 선물은 관계 형성을 위해 주고받는 것이기에 잘못된 선물은 관계 형성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선물에 대한 얘기를 평소 자주 주고받으며, 선물을 고르는 과정을 하나의 선물처럼 활용하라고 선물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선물을 함께 고르는 과정이 즐거우면 선물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간다. 특히나 상대방의 취향을 선물에 자연스레 담을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이자면, 반드시 카드는 상의해서 쓰지 말고 깜짝 선물로 줄 것. 마음을 담은 ‘긴 글’로 말이다. 카드를 고르고 쓰는 데에는 상의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

 

부부 사이 “니가 나를 알아?”

사전정보의 양이 많을수록 높아지는 ‘공감정확도’,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른다

 

“여보, 백화점 문화센터 아줌마들이 모여서 내 흉을 봤대지 뭐예요.”


아내가 당신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당신은 뭐라고 대꾸하는가?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든가, 혹은 “그러게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지 말라 그랬지?”라고 핀잔을 주진 않는가?

아내가 남편에게 이런 식의 말을 건네는 이유는 어떤 해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관심’과 ‘공감’을 얻기 위해서인데(혹은 공감만으로도 충분한데), 남편은 종종 이런 말을 질문이라 여기고 자신이 무슨 해답이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식의 대꾸는 때론 부부간의 불화를 유발하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당신 부부의 ‘공감정확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답은 필요없어, 공감이 필요해

» 부부간의 ‘공감정확도’는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읽으려고 노력할수록 높아진다. 벚꽃 아래 중년 여성들이 모여 남편에게 받은 메세지를 서로 비교해보는 한 통신회사의 광고. 부부의 공감정확도를 측정하는 실험과 비슷하다. (사진/ TBWA 제공)

우리는 함께 살거나 생활하면서 매 순간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춰 반응하고 행동해야만 적절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이처럼 타인의 관점에서 상상해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직감하는 것을 ‘공감’(empathy)이라고 한다. 공감 능력이야말로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능력이며,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이런 공감 지능이 사회적 리더가 되는 데 매우 필요한 능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더 공감을 잘하게 되는가? 공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학자인 미 텍사스대 사회심리학자 윌리엄 이케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해 2003년 <마음읽기-공감과 이해의 심리학>(푸른숲, 2008)이란 책을 출간해 미국에서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책에는 어떻게 사람들의 공감을 측정하는지와 부부간의 공감 능력에 대한 변화가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케스 교수는 설문조사가 심리학 실험의 전부였던 당시 연구 풍토에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행동 모니터링’ 기법을 처음 개발한 과학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실험 대기실에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실험은 공감 연구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실험 방법이 되었다.

그가 사용한 실험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실험자는 낯선 피험자들을 실험실로 초대한 뒤 ‘여러 개의 슬라이드를 보면서 평가하는 과제’를 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 작은 탁자 위에 있는 슬라이드 프로젝터를 가동하기 위해 스위치를 켠다. 그때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면서 프로젝터 전구가 터져버린다. 실험자는 당황하며 “새 프로젝터 전구를 가져와야겠네요”라고 말한 뒤 실험대기실을 떠난다. 실험자가 방을 나간 뒤 6분 동안 두 피험자는 함께 있게 되는데, 이 시간 동안 그들이 보인 상호작용은 몰래카메라로 녹화된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그들이 했던 말과 행동을 함께 보며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 같은지’ 유추하라고 질문한다(물론 몰래카메라 실험은 피험자들의 동의를 구한 뒤에만 연구에 사용한다).

보통 이런 실험을 하면, 이성 피험자와 함께 있는 경우 남성들은 웃음이나 몸동작, 눈맞춤 등의 시간이 여자들보다 짧고 그 빈도가 낮다고 한다. 피험자가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추측하는지를 나타내는 정도를 ‘공감정확도’(empathic accuracy)라고 하는데,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공감정확도가 더 높다고 한다(당연하겠지!).

이케스 교수에 따르면, 친구들끼리는 6분 동안 다양한 행동과 말을 통해 서로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공감정확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전 정보의 양’이라고 한다. 이처럼 공감에 필요한 지식은 대부분 매우 사적인 것이어서, 친밀한 관계에서 표현되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면서 얻게 된다. 이케스 교수는 ‘외부의 관찰’을 통해서 얻는 배경지식은 그 사람이 대략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데는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정보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해온 부부들은 사전 정보가 많을 테니 공감정확도가 높을까? 놀랍게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뉴질랜드의 심리학자 지오프 토머스와 그 동료들은 뉴질랜드 캔터베리 지역에 살고 있는 80쌍이 넘는 부부들을 초청해 인간관계 문제를 토론하게 하고 그 과정을 녹화했다. 녹화가 끝난 뒤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그들이 토론에서 경험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 결혼 기간이 길수록 공감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혼생활을 오래한 부부들은 최근에 결혼한 부부들보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추측하지 못했다.

 

모른다, 하지만 철석같이 안다고 믿는다

사회심리학자 클리퍼스 스웬슨과 그 동료들은 1981년 발표한 논문에서 이를 미국인 부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바 있다.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르며, 서로의 감정, 태도,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예측하는 정도가 더 떨어진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더욱 불행한 것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공감이해력이 감소된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으며 인정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아내와 남편을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부부들은 언제부터 서로에 대한 공감정확도가 떨어지기 시작할까? 충격적이게도, 대다수가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감소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학자 셸리 킬패트릭과 그 동료들은 신혼부부들을 3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결혼한 지 6개월이 된 시점보다 1년 반이나 2년 된 시점에서 부부의 공감정확도가 더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오래된 부부들은 친밀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진정으로 나누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에 근거해 잘못 이해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부부는 시간이 가면서 계속 변하는데, 그들 사이의 친밀한 의사소통이 줄어들면서 상대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줄어들고 결혼 초기에 형성된 서로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라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부정확해지고 고정관념처럼 굳어진다.

지오프 토머스와 그 동료들은 결혼한 첫해에는 부부들이 결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읽으려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잘 이해한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갖게 돼 서로의 말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관찰하려는 동기가 떨어지고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통의 화제가 줄어들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지속적으로 따라가며 이해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장기적인 결과로 결혼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감정확도가 전반적으로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들은 서로의 독특한 인지적·정서적·행동적 성향을 인식하고는 그에 반사적으로 적응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그러한 습관이 고착되면 부부들은 자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반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욕구를 고정된 방식으로 예상하고 행동할 것이다.

 

자녀의 자기 존중감도 높아지네

권태기는 부부간의 대화 단절과 소통 불능으로 시작되며 그 중심에는 ‘공감 저하’가 자리한다.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는 순간 부부는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한결같이 부부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읽을수록(또 그러기 위해 노력할수록) 결혼생활에 더 전념하고 적응하려 애쓰며, 결혼생활에 대해 훨씬 더 만족스러워했다고 보고한다. 게다가 자녀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부모의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부모의 자녀들보다 자기 존중감이 더 높았다고 하니, 공감 능력은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된다. 공감 지능, 이제 내 아내, 내 남편을 위해 발휘해보자.

 

이혼할지 알고 싶습니까? 15분만 투자하십시오!

정확도 90%인 존 고트먼 교수의 ‘이혼의 수학’… 당신은 배우자와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가

 

앞에 가는 차에 40대 남녀 커플이 타고 있다. 그들은 과연 부부일까, 아니면 불륜일까? 만약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부부이며, 서로 웃으며 대화를 자주 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불륜이다!

이 씁쓸한 농담의 메시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부부는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적인 대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때론 잘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능력을 ‘얇게 조각내기’(thin-slicing)라고 부른다. ‘얇게 조각내기’란 매우 적은 양의 경험 조각들을 토대로 이른 시간 안에 사람을 판단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능력을 말한다.


웃으며 대화를 한다면 불륜이다?

» 부부의 대화를 분석해보면 그들이 이혼할지 어떨지를 알 수 있다.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부부는 상대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최소 ‘5대1’이지만, 불행한 부부들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텃밭을 일구다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귀농 부

갑자기 나뭇가지에서 뱀이 떨어진다면, 사람들은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길고 흐느적거리는 느낌’만으로 순식간에 옆으로 피하는 행동을 할 텐데, 그것이 바로 ‘얇게 조각내기’의 한 예다. 이런 능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발휘되는데, 첫인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쉽게 그리고 빨리 판단해버리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뉴요커>의 저널리스트 맬컴 글래드웰은 ‘인간의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 때론 매우 유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아 전세계적인 화제작 <블링크>(2005)를 출간한 바 있는데, ‘얇게 조각내기’는 그가 이 책을 쓰게 만든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가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얇게 조각내기’의 예로 존 고트먼 교수의 ‘이혼 연구’가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도 했던 히피 외모의 존 고트먼 박사는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수학을 전공한 뒤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회심리학자이다. 그의 전공 분야는 ‘부부관계’인데, 부부생활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과 위기를 상담해주고 화목한 가정생활으로 이끄는 조언을 해주는 것이 그가 주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여느 부부상담가와 다른 점은 수학의 엄격함과 정확성에 매료돼(수학을 전공한 과학자답게!) 매우 수학적인 방식으로 부부관계를 진단하고 이혼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시간 동안 남편과 아내가 나눈 대화만 분석해도 그 부부가 15년 뒤에 여전히 부부로 살지, 아니면 이혼을 하게 될지 여부를 95%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5분만 관찰할 경우에도 성공 확률은 무려 90%나 된다). 그는 지난 20년간 자신이 분석한 부부관계를 정리해 <결혼의 수학>(The Mathematics of Marriage, 2002)이란 책을 써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제목이 무시무시하다고?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혼의 수학’으로 하려 했으나 출간 직전에 ‘결혼의 수학’으로 바뀌어 출간된 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가 부부관계를 과학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고트먼 교수는 미 워싱턴대 캠퍼스 근처에 ‘애정연구소’를 설립해 오랫동안 부부상담을 해왔다. 고트먼 교수를 찾아온 부부는 작지만 안락한 방으로 인도된다. 그 방 안엔 사무용 의자 두 개가 약간 떨어져 놓여 있으며, 부부는 그 의자에 앉게 된다. 연구원들은 아내와 남편의 손가락과 귀에 전극과 센서를 붙여 심장 박동, 땀 분비량, 피부 온도 등을 측정한다. 의자 밑에는 요동감지계(jiggle-o-meter)가 달려 있어 몸의 작은 떨림이나 움직임도 측정할 수 있다. 몰래 놓인 비디오카메라 두 대는 두 사람의 대화와 행동을 매 순간 기록한다.

고트먼 교수는 그들에게 어떤 주제라도 좋으니 결혼 뒤 다툼거리가 되었던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라고 말하며 슬며시 자리를 피해준다. 그들은 15분 동안 카메라 앞에서 돈이나 섹스, 육아 문제, 일, 고부 갈등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모든 대화와 행동은 샅샅이 기록된다.

 

가장 심각한 요소는 ‘경멸’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존 고트먼은 1980년대 이후 3천 쌍이 넘는 부부를 상담하면서 커플들의 대화를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하고 분석했다. 맬컴 글래드웰의 <블링크>에 따르면, 표정에 나타나는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섬세히 기록하고 모호하게 들리는 대화의 편린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면 부부의 미래가 그림처럼 선명히 보인다고 고트먼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SPAFF(specific affect·명확한 감정)라고 이름 붙인 시스템을 개발해 부부가 대화 중에 표현할 법한 모든 감정을 20가지 범주로 표시했다. 예를 들어 혐오감은 1, 경멸은 2, 화는 7, 방어 자세는 10, 푸념은 11, 슬픔은 12, 의도적 회피는 13, 특성이 없는 것은 14 같은 식이다. 그는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매초마다 커플의 상호작용 때 나타나는 감정을 SPAFF 코드로 표현해 15분 동안의 대화를 남편과 아내별로 각각 900개씩 모두 1800개 수치의 열로 전환했다. 예를 들어 ‘7, 7, 14, 10, 11, 11’이라고 표기했다면, 이는 6초간 이 부부는 잠시 화를 낸 뒤, 이내 평정을 찾고, 잠깐 방어 자세를 보이다가, 이윽고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동시에 부부의 몸에 부착된 전극과 센서는 남편이나 아내의 심장이 언제 두근거렸는지, 체온은 언제 상승했는지, 언제 몸을 움직였는지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SPAFF 결과와 합쳐 이 부부가 대화를 할 때 대화와 행동에서 나온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복잡한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고트먼은 자신의 결혼 방정식을 통해 어떤 부부관계의 비밀을 밝혀낸 것일까? 고트먼이 쓴 <결혼의 수학>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부부는 대화를 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자신들만의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불행한 부부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우선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부부를 관찰해보니, 서로 대화를 할 때 상대에 대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최소 ‘5 대 1’은 되더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불행한 부부들은 부정적 감정의 비율이 40%가 넘었다.

 

대화 내용보다 태도가 중요

게다가 불행한 부부들은(이들 중 상당수는 15년 내에 이혼을 했다!) 방어적 자세, 의도적 회피, 냉소, 경멸 등이 대화에서 자주 발견됐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요소는 ‘경멸’이었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이(또는 둘 다) 상대방에게 경멸의 감정을 보일 경우 그들의 결혼은 심각한 적신호를 보인다고 판단해야 한다. 두 번 이상 눈알을 빠르게 굴린다거나,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거나, 무시하는 말을 내뱉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거나 항상 긴장하게 만드는 환경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고트먼 박사는 지적한다.

방어적인 태도도 좋지 않은 신호다. ‘그래, 하지만’ 화술을 사용해, 동의하는 것 같지만 이내 되받는 말투를 자주 사용하는 부부들은 오해의 골이 깊었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차라리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화’를 자주 드러내는 부부는 티격태격할지언정 이혼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지적한 대목도 흥미로운 결과였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세상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서로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는 말로 시작하지만, 고트먼은 불행한 부부에게도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통상적인 상식과는 달리) 부부 갈등이 심화되는 것은 부부간에 문제가 된 대화 내용 자체보다도 그런 대화를 나눌 때 부부가 보이는 태도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대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지가 부부 사이에선 매우 중요하며, 대화 태도는 그들의 내면적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숨길 수 없는 지표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결혼생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부부들은 논쟁적인 대화를 나눌 때에도 서로 장난을 치거나 웃으며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그러나 불행한 부부들은 논쟁을 할 때 유머러스하게 대화하는 법을 잘 몰라 사소한 말다툼을 심각한 싸움으로 치닫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남편 혹은 아내와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고, 대화를 하며, 말싸움을 끝내는가?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하는 방식 말이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왜 사람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일생에 도움 안 되는 꽃다발 선물 공세를 취하는 걸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신이 처음 장미를 만들었을 때 ‘사랑의 사자’ 큐피드는 이 아름다운 꽃을 보자마자 반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입맞춤을 하려고 입술을 살포시 꽃에 가져갔다. 그러자 꽃 속에 있던 벌이 깜짝 놀라 자신의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콕 쏘고 말았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신 비너스는 벌에 쏘여 아파하는 큐피드가 안쓰러워 벌을 잡아 침을 빼낸 뒤 장미 줄기에 침을 꽂아두었다. 이것이 장미 가시의 신화적 유래다.

이처럼 장미의 가시는 나도 모르게 향기를 맡고 싶고 입맞춤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하다. 가시가 돋친 꽃이기에 그것을 얻었을 때 더욱 기쁜 것 또한 장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아마존 돌고래의 구애 물건

» (사진/연합/ LEHTIKUVA/ MARJA AIRIO)

장미에 얽힌 신화에 따르면, 장미꽃 색은 원래 흰색 한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여러 신들의 장난(혹은 실수)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다양한 색들이 물들게 됐다. 어느 날 큐피드의 실수로 엎지른 선주(仙酒)가 흰색 장미에 묻어 붉은색으로 물들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빨간 장미의 탄생 비화다. 장미 중에서도 빨간 장미의 꽃말은 ‘열정적이며 아름다운 사랑’인데, 이것은 사랑의 신인 큐피드가 엎지른 술방울로 인해 ‘붉게 타는 열정의 색’으로 변했다고 해서 붙은 꽃말이다.

연인들은 언제부터 장미꽃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속삭였을까? 내 사랑을 받아달라며 장미꽃 다발을 건넨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역사적 문헌에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이 ‘구애의 선물’로 꽃을 주고받은 역사가 매우 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는데, 얼마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영국 남극탐사팀의 토니 마틴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돌고래를 관찰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얻었다. 사람들이 데이트를 할 때 연인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듯, 돌고래들도 장차 짝이 될 상대에게 구애하기 위해 선물을 선사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들은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6천 마리의 돌고래를 3년 동안 관찰한 결과, 약 220마리의 돌고래들이 맘에 드는 짝에게 구애 물건을 선사하는 광경을 관찰했는데, 그들이 주로 선사한 선물은 진흙이나 잡초 또는 나뭇가지였다고 한다. 이런 선물들이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수컷들이 성적인 과시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물처럼 꼭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진흙이나 나뭇가지처럼 상징물을 선사하는 특징이 돌고래 같은 동물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보도한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특히 아마존강 유역의 돌고래들이 다른 지역의 돌고래들보다 선물 공세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진흙이나 나뭇가지 같은 구애물을 열심히 선물한 수컷들이 교미에 성공할 확률이 높고, 교미의 성공적인 결과인 새끼들을 가질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이었다.

돌고래와 인간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사뿐히 건너보면 “사람들이 왜 사랑을 고백할 때 삶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꽃다발 같은 선물 공세를 취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남자들은 연인에게 생필품이 아닌, 한순간 근사하게 보이는 꽃다발을 기꺼이 선사할 만큼 자신의 경제적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결혼 뒤 자식을 함께 기꺼이 키울 ‘자상함’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특히나 당신이 진화심리학을 믿는다면 이 해석이 그럴듯하게 들릴 것이다.

 

맹맹한 코에 자극적인 장미향

최근 사회심리학자들은 성관계 같은 깊은 관계를 맺기 전에는 꽃다발 같은 실용적이지 않은 선물이 유용하지만, 결혼을 약속하거나 결혼한 뒤에는 꽃다발 선물이 덜 반갑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것 역시 꽃다발은 ‘성적인 과시행동’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최근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왜 빨간 장미가 최고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럿거스에 위치한 뉴저지주립대학 연구팀은 다른 선물보다도 장미꽃 다발을 선물받은 사람들이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미소’가 가득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꽃다발은 대개 기쁜 날에 주고받는 것이어서, 꽃다발을 선물받은 사람들은 이를 통해 지난날의 즐거운 경험과 기억을 떠올리게 돼 미소를 머금는다는 것이다.

이때 장미의 향기도 한몫을 한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장미 향기의 주성분인 게라니올과 모노테르펜 등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화학물질인데,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느끼게 하는 페로몬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최근 보고되고 있다. 장미꽃 향기는 우리를 침착하게 해주며 성적인 흥분을 유발하는 성분도 포함돼 있다(그래서 장미꽃의 향기는 스트레스나 불안을 줄이고 우울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치료 목적으로도 활용된다).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 즐거운 기억과 장미꽃 특유의 향이 행복한 분위기를 유발해 프러포즈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아직은 추정일 뿐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빨간 장미의 ‘붉은빛’은 선물을 받은 사람의 마음에 더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전할 때 노랑이나 흰색, 또는 분홍색의 장미꽃보다는 빨간 장미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빨간 장미의 꽃말이 왜 ‘열정적인 사랑’인지를 과학자들이 증명한 셈이다.

특히나 대기오염으로 꽃향기가 귀해질 미래엔 장미꽃 다발의 위력이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미국 버지니아대 환경과학과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150여 년 전에 비해 대기 중에 꽃향기가 90%나 감소했다고 한다.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다가 자동차가 배출하는 배기가스에 의해 분자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가까운 예로, 얼마 전만 하더라도 계절마다 꽃향기가 도시를 가득 메우지 않았던가!). 자동차에서 배출된 산화질소는 햇빛을 받으면 분해돼 오존을 만드는데, 꽃향기에 오존이 결합되면 꽃향기의 분자가 파괴되면서 냄새를 잃게 된다. 이런 이유로 19세기 중반 평균 1km 이상 날아가던 꽃향기는 오늘날 도심에서 200∼300m밖에 날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꽃향기를 평소 맡지 못하는 도시인들에게 꽃다발 선물은 앞으로 더욱 자극적인 선물이 될 전망이다.

 

수요일에 비가 내리면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선물해야 하는데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 비가 와서 감성적인 모드에 젖어 있을 때 사랑하는 연인에게 빨간 장미꽃을 선물하면, 맑고 깨끗한 대기에 장미꽃 향기가 그윽하게 퍼져 행복한 감정이 유발되면서 성적 과시 행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수요일이냐고? 최근 사회학자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주일 중 가장 우울한 요일이 (월요일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수요일’로 나타났다. 가장 우울한 날, 사랑하는 연인에게 빨간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가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지게 된 원동력인 모양이다.

 

그것은 부메랑처럼 휘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교>의 해부학은 사실일까? 한 과학자가 성교하는 사람을 MRI 기계에 넣고 촬영해보았는데…

 

오랫동안 꿈꿔왔으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지나친 긴장으로 허둥대며 허무하게 끝나버린 첫 섹스의 순간. 여자친구와 나눈 생애 최고의 섹스, 그 절정. 한 달에 200번도 넘게 섹스를 하던 신혼의 단꿈. 이제는 섹스가 일상이 돼버린 40대의 그윽한 부부 관계. 몸은 버거워도 마음은 20대 못지않은 60대의 섹스. 평생 살면서 2580번이나 한다는 섹스의 순간, 우리 몸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황홀한 순간, 오르가슴의 전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 펙 반 앤델 박사는 현대의학을 동원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이 사실인지 검증에 나섰다. 다빈치의 <성교>(오른쪽)과 펙 반 앤델 박사의 MRI 사진들.


남자에겐 ‘장소’만 있으면 된다?

섹스의 순간 체내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반응을 연구하여 섹스의 실체를 파헤치는 성생리학 분야는 매우 중요한 분야임에도 실험이 어렵고 체내 반응 측정이 쉽지 않아 오랫동안 정체돼왔다. 그러나 그 역사는 매우 깊으며 최근 들어 뇌영상 기법과 체내 생리적 반응 측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다.

성생리학적 연구가 과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만든 논문 한 편이 있다. 그 기원은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물리학, 천문학, 의학, 공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해부학에도 조예가 깊어서 여러 동물들과 심지어 인간의 정밀한 해부도를 그리기도 했는데, 1493년에 그린 <성교>(copulation)라는 해부도는 남녀가 성행위를 하고 있을 때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정밀하게 데생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다빈치가 그린 이 해부도는 정확한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은 과학자가 있었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의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 그는 한 동료 학자가 유명 가수에게 발성 연습을 시킨 뒤 입 모양과 혀의 위치, 목 모양을 정확히 알기 위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냈다. 성교하는 장면을 MRI로 찍어서 다빈치의 해부도가 사실인지 비교해보자! 그로부터 8년 뒤인 1999년 12월8일치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는 그가 촬영한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MRI 영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도 <성교>가 나란히 실린 논문이 발표됐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7년 동안 TV광고까지 동원해 실험에 참여해줄 부부 8쌍을 모았다. 그가 했던 실험은 듣기만 해도 엽기적이다. 발가벗은 두 남녀를 지름 50cm밖에 안 되는 원통 모양의 MRI 촬영기 속에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성행위를 하게 한 뒤 발기된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삽입된 모습을 단층 촬영했다. 물론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 절대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며, 실험에 관한 모든 지시사항은 둘만 있을 수 있는 대기실에 인터컴을 설치해 전달했다.

그럼에도 실험은 쉽지 않았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남성들은 긴장이 되어 도무지 발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City Slickers, 1991)에는 “남자가 섹스를 할 땐 이유는 필요치 않다. 그저 ‘장소’만 필요할 뿐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데, MRI 촬영기 안은 예외였나 보다.

다행히도 이 실험을 위해 신이 준 선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비아그라’다. 8쌍의 부부 중 7쌍이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MRI 촬영기 안 좁은 공간에서 성행위에 성공했다. 이 논문의 공동저자인 산부인과 의사 윌리브로드 웨이마르 슐츠의 전언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비아그라가 필요 없었던 유일한 한 쌍은 거리에서 애크러뱃을 하는 곡예사 부부였다고 한다. 이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연(?)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이 실험도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춰져 있던 기다란 음경의 뿌리

이 연구팀이 얻은 MRI 영상에 따르면, 다빈치의 그림은 틀렸다고 한다. 우선 다빈치는 정액이 뇌에서 척수관을 타고 내려와 분비되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천하의 다빈치도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정액은 뇌에서 분비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엉터리 해부도를 그린 것이다.

더욱 새로운 사실은 질 내에 삽입된 남자 성기의 모양이다. 정상 체위(미국에서는 정상 체위를 ‘성직자 체위’라고 부른다)로 섹스할 때 질에 삽입된 남자 성기 모양은 의학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여서, 1933년 해부학자 디킨즈는 음경과 크기가 같은 유리관을 여성의 질에 삽입해 질 속의 음경 모양을 유추한 그림을 그려 해부학 교과서에 싣기도 했다. 다빈치는 질 내에서 남자의 성기를 일직선 모양으로 그린 반면, 디킨즈는 S자 모양으로 휘어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나 실제로 촬영해보니 성행위 때 음경은 질 내에서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 있었으며,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20°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성기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논문이 성행위에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에 MRI 촬영이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나는 몇 해 전 이들의 연구를 <파퓰러 사이언스>라는 과학잡지에 상세히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글을 읽고 전자우편을 보내온 독자들이 꽤 많았다. 이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성기가 휘어 있지 않고 직선 모양인데 그것이 상대방의 성적 만족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어서 이 질문에 대해 과학적인 대답을 해줄 수는 없었는데, 그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휜 정도가 성적 만족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답해드렸다.

어쨌든 이 연구팀 덕분에 섹스할 때 남자 성기의 모양이 어떻게 되는지 새롭게 알게 됐고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면 8년 동안 계속된 실험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도 짐작이 가지만, 이 실험 결과를 보도한 유럽의 신문들은 기사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고 있다. “세상에, 참 별 실험을 다 하네!”

그 뒤 이 연구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황당하고 엽기적인 연구 결과만을 모아 소개하는 잡지인 <믿을 수 없는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에 소개돼 더욱 유명해졌다. 두 달에 한 번씩 발행되는 이 잡지(www.improb.com)는 최근 발표된 엽기적인 실험들과 과학계의 황당한 뉴스만을 모아 전해주고 각 분야 최고의 걸작들을 뽑아 노벨상이 시상되는 10월에 ‘엽기노벨상’(IgNobel prize·‘무시할 만한, 불명예스러운’이라는 의미의 ignoble을 음차해 만든 상)을 시상하는데, 2000년도 최우수 의학상으로 이 연구가 선정됐다. ‘재현할 수 없는 실험, 혹은 재현해선 안 되는 실험’이라는 수상작의 조건에 잘 맞아떨어지는 실험이라는 선정 이유와 함께.

 

재현 불가능한 혹은 재현해선 안 되는…

생리학자 윌리엄 마스터스와 버지니아 존슨은 성생리학이라는 학문의 근간을 이루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과학자로 손꼽힌다. 그들이 쓴 <인간의 성반응>이란 책은 지금도 이 분야에서 고전으로 일컫는 입문서다. 재기발랄한 글쓰기와 뒤통수를 치는 소재 발굴로 ‘과학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메리 로취의 신작 <봉크>(파라북스, 2008)에는 그들의 연구 업적이 자세히 소개돼 있는데, 이들의 실험은 펙 반 앤델 박사의 실험을 능가한다.

그들은 수년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커플들을 실험실에 불러 섹스를 하게 한 뒤, 체내(특히 페니스와 질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봉크>에 따르면, 그들은 피험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실험 건물에 아무도 없는 밤늦은 시각 또는 주말에 실험을 했다. 피험자들 중 몇몇은 배우자나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사람과 섹스를 했지만, 그중 일부는 낯선 사람, 그것도 스스로가 고른 게 아니라 마스터스와 존슨이 배정해준 낯선 사람과 섹스를 했다고 한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실험이 과연 실험윤리위원회(IRB)를 통과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물론 이들은 모두 실험 전에 성병 검사를 받았다).

이 실험에서 마스터스와 존슨 연구팀은 황홀한 섹스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이 이 순간 발견한 황홀한 섹스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내용은 다음 이 시간에. 휘리릭~~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를 수 있을까

30%는 자극만으로 오르가슴이 가능하다는 마스터스·존슨의 실험은 그후 어떻게 반박되었나

 

흥분한 남자가 오랜 피스톤 운동 뒤 2억 개의 정자가 담긴 2cc의 정액을 여자의 질 속에 방출하는 순간, 여성의 몸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황홀한 섹스의 순간, 그들의 몸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성교>(copulation)는 사실 해부도가 아니라 상상화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 황홀한 순간 여성의 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혹: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예술과 섹스’ 런던 전시회에 걸린 파블로 피카소의 <에로틱 신> (사진/REUTERS/ TOBY MELVILLE)


10㎝를 42분 만에 볼트처럼 달리다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병원 생리학자 펙 반 앤델 박사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1999년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기 안에서 남녀가 섹스하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를 <영국의학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성행위를 하고 있는 남녀의 MRI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보고했는데, 그 결론이 바로 다빈치의 <성교>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MRI 영상에 따르면, 성행위 때 음경은 질 내에서 부메랑 모양으로 휘어 있었으며, 삽입된 음경은 삽입되지 않은 음경의 뿌리 부분과 120°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피부 속에 감춰져 있던 음경의 뿌리가 성기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차지한다는 사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지난번 칼럼이 나간 이후, 독자들로부터 ‘황홀한 순간’에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여성의 질에서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오르가슴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이 부메랑 구조와 관련이 있는 걸까?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오르가슴의 실체가 무엇인지 왜 궁금하지 않겠는가? 이 호기심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과학자다.

고환에서 74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낸 정자들은 약 20일 동안 부고환과 정관을 통과하며 정관 말단 팽대부에 저장된다. 그러다가 섹스의 순간 피스톤 운동과 함께 여성의 질로 방출된다. 정자의 크기는 0.05mm. 꼬리 길이가 90%를 차지하는 이 올챙이 모양의 정자들은 사정 뒤 75~90%는 질 안에서 바로 죽고, 나머지만 자궁경관까지 간다. 정자의 전진 속도는 분당 3mm 정도. 사정된 정자는 자궁까지의 8cm를 27분 만에 도달하고, 여기서 다시 난자가 있는 나팔관까지의 10cm를 42분 만에 도착한다. 따라서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위해 나팔관까지 18cm를 여행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은 약 70분. 이 길이는 정자 몸 길이의 3천 배나 되지만, 약 29.5일 동안 천천히 만들어진, 정자보다 8만5천 배나 큰 단 하나뿐인 난자와 결합하기 위해 2억 마리의 정자들은 ‘자메이카의 총알’ 우사인 볼트만큼 맹주한다. 여성은 평생 500~1천 개 정도의 난자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던 윌리엄 마스터스는 버지니아 존슨이라는 여성 조수와 함께 생식생물학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남녀가 섹스를 하는 동안 질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은 피스톤 운동을 하는 페니스 카메라, 일명 ‘성교기계’를 만들어 인공성교 실험을 했다. 남자의 성기 모양으로 생긴 길쭉한 카메라가 질 안에서 피스톤 운동을 하게 해 질 속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이 기계는 ‘수백 차례의 완성된 성반응 주기’를 촬영했고 이 연구는 질의 윤활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섹스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를 정리한 <봉크>(파라북스, 2008)의 저자 메리 로취에 따르면, 일반인들도 ‘골반경’이란 걸 사용하면 누구나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물론 여성이거나 여성과 함께 작업을 해야겠지만). ‘스쿨 오브 원’(School of one)이란 단체에서 판매하고 있는 이 장치는 자궁이나 질의 변화를 컴퓨터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삽입형 비디오카메라다.

 

오르가슴에 오른 30%의 메커니즘?

마스터스와 존슨은 페니스 카메라를 이용해 인공성교를 하는 동안 질 안의 변화를 관찰해 그전까지 전혀 알 수 없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우선 페니스 카메라가 피스톤 운동을 하는 동안 질 안에선 윤활작용이 일어났는데, 섹스 때 질이 축축하게 젖는 이유는 샘에 의한 분비작용이 아니라 질 내의 모세관 벽에서 스며나오는 혈장에 의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그전까지 그걸 정확히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마스터스와 존슨은 실험 뒤 피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플라스틱 성기를 이용한 인공성교기를 이용했던 여성들의 70%는 단순한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하진 않았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실험에 참가한 여성 중 30%는 카메라의 피스톤 운동만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피스톤 운동에 의한 여성의 오르가슴,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마스터스와 존슨의 페니스 카메라 실험은 우리에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었을까?

우리는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 자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피스톤 운동이 어떻게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마스터스와 존슨은 많은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진 못한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실험을 통해 얻은 영상으로 유추한 결론은 남성의 성기가 질 안으로 들어와 진동운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진 않지만, 남성의 성기가 소음순을 끌어당기고, 소음순이 당겨지면서 클리토리스를 끌어당긴다는 것이었다.

1984년 콜롬비아의 한 과학자 그룹이 마스터스와 존슨의 추론에 의문을 제기했다. 당겨지는 소음순이 여성 오르가슴의 실체는 아닐 것이라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콜롬비아 칼다스 의대 의사이자 성과학 교수인 헬리 알사테 박사와 그의 동료인 심리치료사 라디 론도뇨는 성매매 여성 16명(실험 참가를 위해 그들에게 1인당 16달러씩을 지불했는데, 이 금액은 당시 콜롬비아에서 성매매 여성이 받는 돈의 몇 배나 되는 액수였다고 한다)과 여권주의자 32명(무보수)을 실험실로 불러 질의 성감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은 좀더 단순했다. “조사자가 손을 씻은 다음, 윤활제를 바른 집게손가락을 피험자의 질 속에 넣고 양쪽 질벽에 체계적으로 마찰을 가한 뒤에 질벽과 일정한 각도를 이룬 채 질의 하반부에서 상반부로 진행하면서 중·강 정도의 압력을 주기적으로 가했다”고 논문은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피험자들이 경험하는 오르가슴이 연구자가 손가락으로 찌르는 동작으로 인한 당김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소음순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비슷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결론은 플라스틱 성기의 피스톤 운동은 결코 대부분의 여성들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할 수 없으며(다시 말해 마스터스와 존슨의 연구결과는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소음순을 당기는 것만으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되지도, 오르가슴에 도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뒤 메리 로취는 마스터스와 존슨을 인터뷰하려 했지만, 마스터스는 이미 죽었고 버지니아 존슨은 접촉을 꺼렸다.

 

또 다른 결론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과학실험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런 연구는 인간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고 불감증과 같은 질환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서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는 클리토리스가 자극받아야 하지만, 남성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만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페니스의 기계적인 피스톤 운동 자체는 클리토리스를 자극할 수 없다는 사실은 남성들에게 좀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며, 그것은 결코 포르노에 나오는 슈퍼 남녀의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섹스’로는 배울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5살짜리도 사랑에 빠진다

소꿉놀이부터 말뚝박기까지,
성적인 표현을 흉내내고 어른들의 구애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아이들

1960년 미국의 팝가수 폴 앙카가 부른 ‘퍼피 러브’(Puppy Love·강아지 사랑)는 17살 또래 청소년들의 가슴 앓는 사랑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퍼피 러브’라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은 밤마다 울면서 상대에 대한 애끓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섬원 헬프 미, 헬프 미 플리즈”(Someone help me, help me please)라고 절규하는 대목에선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지 가슴에 와닿는다.

퍼피 러브, 캐프 러브… 모두가 사랑이에요

» 청소년 시기의 사랑을 낮춰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채 16살도 안 된 주인공들은 죽음만이 갈라놓는 진지한 사랑을 잘 보여준다.

‘퍼피 러브’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을 낮춰 일컫는 말이지만, 최근 심리학자들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이 어른들의 사랑과 비교해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며 어른 못지않게 진지하다고 주장한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도 청소년들의 사랑을 ‘캐프 러브’(Calf Love·송아지 사랑)라고 폄하했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16살도 채 안 된 청소년들의 사랑이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진지한 사랑임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청소년기의 연애관계 발전>이라는 책의 편집자이자 심리학자인 캔디스 페이링 박사는 청소년의 남녀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구애 행동들이 그대로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구애 행동을 하기도 하고, 성관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성적으로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들은 자신이 미래에 ‘좋은 남편’ 혹은 ‘좋은 아내’가 될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학교 교육이라는 성적 억압 속에서 그들은 은밀히 어른들의 사랑을 흉내내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짝사랑에 애가 끓고, 배려하며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과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동발달심리학자들에 따르면, 3∼6살 아이들만 해도 부모나 선생님, 혹은 다른 어른들이나 또래 친구들에게 애정을 얻기 위해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행동을 한다. 유행가에 맞춰 섹시한 춤을 추기도 하고, 미소가 주는 막강한 힘을 이용하기도 한다. 엄마·아빠에게 자신의 애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며, 성적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모호하게나마 성적인 표현을 흉내낸다.

사랑에 빠진 정도를 설문으로 측정하는 ‘패셔네이트 러브 스케일’(Passionate Love Scale)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미 하와이대학 심리학과 일레인 햇필드 교수는 114명의 남자 어린이와 122명의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상 _____를 생각한다”라는 질문을 4∼6살 어린이들에게 던졌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_____ 안에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햇필드 교수는 “5살 어린이도 사랑에 빠진다”고 확신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통해 아빠와 엄마 역할을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왕자와 공주 역할을 통해 로맨스를 학습하고 꿈꾼다. 미 미네소타대학 심리학과의 앤드루 콜린스 교수는 이 시기에 하는 소꿉놀이는 어른이 됐을 때 근사한 사랑에 빠지고 결혼생활을 잘하기 위해 시도하는 역할극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의미 있는 연습 활동이므로, 그들에게 소꿉놀이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7∼12살에 이르면 아이들의 성적 표현이 좀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괴롭히거나 운동장에서 서로 ‘잡기 놀이’를 하는 것은 모두 성적 행동의 어린이 버전이다(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때 흔히 하는 ‘말뚝박기’는 아마 그 정수에 있는 놀이일 것이다). 미 버클리대학 배리 손 교수는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적인 의미를 담은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986년 배리 손 교수는 802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또래 집단에서 하는 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은 서서히 동성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주된 대화는 이성에 대한 얘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경험상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초등학교는 대부분 남녀공학이지만 그들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모여 노는 것을 즐기며 서서히 ‘이성에 대한 낯가림’을 하지만, 동성 집단에서 주된 이야기 소재는 ‘이성’이라는 것이다.

 

아들의 첫경험은 아빠에게 물어봐?

그러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내용은 매우 달랐다. 남학생은 좀더 노골적인 언어 표현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며 성적 영역을 넓혀간다. 더 심한 표현, 더 노골적인 표현들을 ‘시도’해봄으로써 사랑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반면 여학생들은 이 시기에 성적 환상에 깊이 빠진다. 이성에 대한 환상을 구체적으로 형성하며 멋진 남자와의 근사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니 이 시기에 여학생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능력과 배려를 갖춘 쿨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력, 재력, 열정 따위는 이 시기엔 안 통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춘기 시절엔 이성과의 만남을 처음 시도하게 된다. 서툴게나마 소개팅이나 미팅을 하기도 하고, 교회 오빠를 만나기도 하고, 학교 선후배와 가벼운 척 진지한 만남을 시도한다. 그들의 만남은 어설픈 행동으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이성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운다.

우리나라에선 덜하지만, 미국에서 이 시기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임신과 성병이다. 미국에선 많은 학생들이 이 시기에 처음 ‘성적 접촉’을 경험하며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의 설문조사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첫 경험 시기가 빨랐으며 청소년 시기에 성관계도 훨씬 더 자주 갖는다고 한다. 한 예로, 캐나다 앨버타주 아동병원의 신경심리학자 트리시 윌리엄스 박사는 1959명의 미국 청소년들을 조사했는데, 11∼13살 청소년들 중에서 약 2%가 성관계를 경험했고 그들의 경우 가정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첫 경험 시기를 앞당기더라는 결과를 얻었다. 부모가 자녀를 폭력적으로 대할수록 자녀의 성적 행동이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직 그 원인은 정확히 모르고 있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메디컬리서치 연구소에서 5천 명의 남녀에 대해 그들의 첫 성관계 시기를 조사한 사례다. 조사 결과 아들의 첫 경험 나이가 아버지의 첫 경험 나이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남자들 중 72%가 아버지의 첫 경험 시기와 일치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오늘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한번 확인해보시라)? 그에 비해 여성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심리학자 웬디 매닝이 2005년에 했던 설문조사에서는 청소년들의 75%가 자신의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응답했고 60% 이상의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과 우발적인 성관계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낯선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때는 섹스 전에 “술을 마셨다”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으며, “성관계시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경우도 많았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흉내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만, 우리는 그들이 상대방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어른이 되고서야 후회할까

2008년 1월 <타임>의 특별호 ‘로맨스의 과학’에서 티파니 샤플스 기자는 로맨스를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우리의 로맨스 데뷔 무대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청소년들은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로맨스 데뷔 무대를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은밀히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통계이긴 하지만, 80%의 사람들은 18살 이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이성’을 만난다. 풋풋한 짝사랑일 수도 있고, 가슴 아픈 첫사랑일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명쯤 갖는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그때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하는 데 서툴렀고, 상대방을 그다지 배려하지 못했으며, 때론 지나친 성적 욕망에 시달렸으며,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왜 우리는 늘 어른이 되고 나서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해야만 할까? 앞으로는 다음 세대들이 이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사랑의 기술을 친절히, 섬세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55살은 돼야 진짜를 안다

관계가 성숙되고 믿음이 넘쳐나는 나이 든 부부일수록 만족한 성생활을 즐겨

요즘 ‘황혼의 로맨스’가 큰 인기다.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종영한 한국방송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80이 넘은 나충복 할아버지(이순재)와 안영숙 할머니(전양자) 사이의 뜨거운 연애는 황혼의 로맨스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그들은 극중에서 청춘남녀 못지않게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며 뜨거운 키스를 하는 장면까지 선보였다.

‘황혼의 로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70대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만화가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연극으로 공연되는가 하면, ‘본격 노인 개그만화’를 표방하며 노인들의 성생활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만화가 윤태호의 <로망스>도 신문 연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출연진 평균 나이가 61살인 뮤지컬 <러브>도 노인의 사랑을 그려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노인의 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

기혼여성 90% “섹스리스는 남자 책임”

‘황혼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중 걸작은 단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이다. 노인들의 사랑을 이처럼 아름답고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60대의 음반 사업가인 해리(잭 니컬슨)는 젊은 여성만을 골라 사랑을 나누는 희대의 바람둥이다. 그가 어느 날 자신에겐 더 이상 사랑의 열정이 없다며 집필에만 몰두하는 극작가 에리카(다이앤 키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에서 애틋한 장면 중 하나는 그들의 힘겨운 섹스 장면. 섹스 도중 심박수가 너무 늘어나 심장마비에 걸릴까봐 걱정하고, 혈압 측정 장치의 매뉴얼이 잘 안 보여 안경을 찾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안쓰럽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은 훼방꾼 키아누 리브스도 막을 수 없다!

‘황혼의 로맨스’에 대해 의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그들의 사랑이 결코 젊은이들의 사랑 못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노인들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들의 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며 몸에선 어떤 변화들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노인들의 뇌가 사랑에 빠졌을 때 도파민의 분비량이 젊은이들에 비해 어느 정도 되는지, 성적 욕망을 자아내는 아드레날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아직 진지하게 그들의 ‘사랑’을 연구한 적이 없는 것이다.

노인들의 ‘사랑’에 대해 연구가 크게 부족한 반면, 노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인들은 성관계 횟수가 젊은이들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거나 성생활을 아예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에 실시된, 60살 이상의 고령자 남녀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생활하는 경우 54%의 부부가 성적 접촉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며 독신생활을 하는 경우에는 7%만이 성적 접촉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배우자가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남성이 1%, 여성은 14%였으며, 자신이 성관계에 대한 관심이나 능력이 없어졌다고 응답한 경우는 남성이 15%, 여성은 10%였다. 또 자신이 성적으로 무능해졌다고 대답한 것은 남성이 29%인 데 비해,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고령자 부부가 성교를 그만두게 되는 나이는 언제일까? 미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은 평균 68살, 여성은 60살이라고 한다. 또한 기혼남성의 약 60%, 기혼여성의 90%가 ‘성교를 하지 않게 된 책임은 남자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추세는 최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비아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크게 개선되고 있다. 최근 스웨덴 고센버그대학의 닐스 베크만 박사 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는 70대 독신 남성은 지난 30년 사이 30%에서 54%로, 여성은 0.8%에서 12%로 급증했다.

미 시카고대학이 여성 1550명과 남성 14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57∼85살 남성 중 68%는 최근 1년 사이 최소 1번 이상의 섹스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42%. 재미있는 것은 이 수치가 여성 쪽에서 더 많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인데, 특히 나이 든 여성들 중에 성관계를 원하는 이의 수는 늘고 있으나, 성관계가 가능한 같은 나이대의 남성을 찾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노인 성생활의 증가 추세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간호학과 대학원생 이창근씨가 서울에 거주하는 65살 이상 노인 1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19.5%가 현재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며, 빈도는 월평균 1.37회인 것으로 조사됐다. 빈도는 한 달에 1번인 경우가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두 달에 1번(4명), 한 달에 2번(4명), 한 달에 3번(2명), 일주일에 1번(1명), 1년에 2번(1명) 순이었다. 현재 성생활을 하지 않는 노인의 경우,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가진 평균연령이 남성의 경우 63.1살, 여성의 경우 57.4살로, 전체 평균이 61.3살이었다.

 

마지막 성관계 나이 61.3살

흥미로운 것은 ‘멋있는 이성을 보면 여전히 좋고 흥분되는가’라는 질문에 남자 노인의 84%, 여자 노인의 14.3% 가 ‘그렇다’라고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여성은 덜한 반면 남성은 아직도 멋있는 이성에 반응했다.

성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통계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는데, 성생활에 대한 전체적 인지도를 나타내는 ‘성생활 인식도’의 경우, 남자 노인은 자아 존중감과 자아 성취감에, 여자 노인은 자아 성취감과 현실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02년 70대 노인들의 ‘왕성한’ 성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 <죽어도 좋아>가 개봉돼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당시 영화는 노인도 젊은이 못지않은 성욕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노인의 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성에는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미 텍사스주립대학의 교수진들은 ‘왜 당신은 섹스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 참가한 2천 명은 ‘당신은 성생활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 56%와 여성 57%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질문의 내용을 약간 바꿔 ‘당신은 성관계를 충분히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56%의 여성과 68%의 남성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텍사스대의 파이퍼 슈월츠 박사는 “55살에 이혼하고 난 뒤 가장 훌륭한 성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55살 이후에 섹스를 진짜로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현명한 젊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성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배우자와의 관계가 성숙되고 믿음이 넘쳐나는 나이 든 부부일수록 만족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 칠레 노인들은 매우 행복한 시절을 맞았다. 칠레의 로프라도시에서는 노인들에게 ‘비아그라’를 공짜로 나눠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프라도시장 곤잘로 나바렛은 ‘삶의 질 향상에 활발한 성생활이 필수’라는 취지로 시민들에게 비아그라를 나눠주겠다고 발표하고, 1500명 노인들에게 한 달에 4정 정도 발기부전 치료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칠레는 앞으로 다른 지역에도 같은 조처를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우리나라도 지지율을 50%쯤으로 올릴 수 있는 정책으로 ‘보건소에서 비아그라 나눠주기’를 권하는 바이다). 성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나라마다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황혼의 로맨스’를 끝으로, 지난 1년6개월 동안 연재됐던 사랑학 실험실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서부터 80대 노인들의 ‘황혼의 로맨스’에 이르기까지, 이 연재 칼럼은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때론 노골적으로, 때론 냉정하게 전했다. 사랑에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노력을 열정적으로 수행해온 과학자들 덕분에 이 칼럼은 탄생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노력은 우리의 사랑을 더욱 현명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특별한 사랑

지난 30년 동안 사랑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간결하다. 우리는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와 뇌’라는 생물학적 기관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를 제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현명한 사랑에 눈을 뜰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임에도 온 인생을 통해 매번 남다른 색깔의 사랑을 펼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무엇보다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