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알파걸 최씨 여인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송도에 살던 이생은 최씨 여인이 사는 집 앞을 지나다 시를 읊는 한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다. “홀로 비단 창 기대 수놓기 더딘데/ 온갖 꽃 핀 가운데 꾀꼬리 지저귄다/ 까닭 없이 몰래 봄바람 원망하고/ 말없이 바늘 멈춘 것은 그리운 바 있어서이지.”
여인 목소리는 담장에 기대선 채 그 목소리를 엿듣는 남성을 향해 적극적인 ‘대시’를 충동질한다.
“길가에는 누구네 백면 낭군인가/ 푸른 소매 큰 띠 수양버들 사이로 비치네/ 어찌하면 뜰 안의 제비 되어/ 구슬발 밀치고 비스듬히 담장 넘어갈까.”
여인 목소리가 뜰 안 제비처럼 날아올라 담장을 넘어 수줍은 청년 가슴에 내리꽂힌다. 이생은 백지에 시를 적은 뒤 기와조각을 매달아 던진다.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 부질없이 수심 겨운 속 붙들고 있으니 하루가 일 년 같아라.”
여성 메시지가 적극적인 구애였다면, 남성 메시지는 수동적 기다림이다. 얼굴도 못 봤지만, 편지 문체를 통해 이생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단박에 파악한 여인은 곧바로 데이트 신청을 해버린다. “그대는 의심하지 말고 해질녘에 만납시다.”
과연 이생이 해질녘 담장 앞으로 가보니, 여인은 두툼한 그네 끈에 대광주리를 매어 이생이 담장을 넘을 수 있도록 조처해놓았다. 이생은 그 끈을 붙잡고 담장을 넘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기뻤으나 정은 은밀하고 일은 비밀스러워 머리털이 곤두섰다.” 이생이 두려움에 떠는 동안 여인은 여유롭게 자리를 펴놓고 미소 지으며 처음 보는 남성 앞에서 시를 읊는다.
“복숭아나무 오얏나무 사이로 꽃은 무성히 피었고/ 원앙 이부자리에 달빛은 어여쁘기도 해라.”
이 아름다운 고백 앞에서 남성의 리액션은 무척이나 비굴하다. “뒷날 우리 사랑이 새 나가면/ 비바람 무정하게 불어닥치리니 또한 가련치 않은가.” 여인이 첫사랑의 기꺼움을 예찬하는 동안 이생은 ‘혹시 부모님이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용감한 여인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제가 비록 여자라도 마음이 태연한데 장부의 의기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뒷날 규중의 일이 새 나가서 부모님께서 저를 꾸짖고 책망하시면 제가 감당하지요.”
“뒷감당은 내가 한다”
자료 제공·한겨레아이들 ‘이생규장전’
뒷감당을 책임지겠다는 여인의 용기 앞에 이생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데이트에 임한다. 술과 안주, 시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만남이 무르익자, 이생 마음을 눈치 챈 여인이 먼저 제안한다. “오늘 일은 분명 작은 인연이 아니니 낭군께선 저를 따라가서 사랑을 이룹시다.” 그들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그러나 아들 출세만을 학수고대하던 이생 아버지는 이생이 밤마다 여인 방을 드나드는 사실을 알고 아들을 시골 농장으로 보내버린다. 몇 달이 지나도 이생이 돌아오지 않자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간 최씨 여인. 그녀 부모는 나날이 기력을 잃어가는 딸을 다그쳐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다. 그녀 부모는 적극적으로 혼담을 넣고, 이생 아버지는 계속 거절하면서 아들의 출셋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온다. 하지만 “결혼식 비용 일체를 우리가 대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자 그제야 결혼을 허락한다. 이생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생 아버지는 아들을 두고 열심히 주판알을 굴리는 동안 여인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통해 마침내 자기 사랑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꿈같은 행복은 잠시, 1361년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이들을 피해 도망치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이생은 무사히 도적을 피하지만, 아내는 도적에게 잡혀 겁간을 당할 위기에 처하고 만다. 작품에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생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손을 놓고 혼자 도망쳐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인은 도적 앞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다. “귀신같은 놈! 나를 잡아먹어라. 차라리 죽어서 시랑이(승냥이와 이리) 배 속에서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되겠는가?” 도적은 마침내 여인을 잔인하게 죽여 기어이 살을 발라낸다.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 이생은 텅 빈 옛집으로 돌아와 슬픔을 곱씹고 있었다. 그 순간 마치 꿈결처럼 익숙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아내였다. 이생은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 의심하지 않고 묻는다. “어느 곳으로 피했기에 목숨을 보전하였소?”
남자의 비겁함 일깨운 사랑
정말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발언 아닌가. 그러나 여인은 이생을 원망하지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백한다. 자기는 이리와 시랑 같은 놈들에게 정조를 빼앗기지 않았다고. 절의는 소중하되 목숨은 가벼웠다고. 귀신이 되어서까지 여기에 찾아온 이유는 당신과 맺은 소중한 약속을 잊지 않아서라고. 이전에 맺은 맹세를 결코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라고.
이생은 아내 안내로 양가 부모 유골까지 무사히 수습해 장사지내고, 더는 벼슬을 구하지 않은 채 소박하게 아내와의 사랑만을 가꾸며 살아간다. 인간사에 관심이 없어진 이생은 친척이나 지인에게 길흉사가 있어도 문을 걸어 잠근 채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꿈같은 나날이 지난 뒤 여인은 자신은 이제 이승 사람이 아니라 저승 명부에 오른 사람임을 고백하면서 떠날 때가 됐음을 알리며 통곡한다. 그제야 자신의 모든 비겁함, 우유부단함, 무책임함을 깨달은 이생은 아내를 붙잡는다. “차라리 당신과 함께 구천에 갈지언정 어찌 하릴없이 홀로 남은 생을 보전하겠소?” 이생은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며 애원하지만, 저승 명부에 이름이 오른 영혼을 인간 힘으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사랑하다 보면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더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왠지 손해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 쓰라린 아픔을 참고 오래 사랑하다 보면,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결국 후회 없는 사랑의 축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최씨 여인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의 가없는 용기와 축복으로써 ‘조금 덜 사랑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겁함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쓰라린 전쟁 상처 달래준 ‘구원의 여신’
박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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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박씨 부인은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한 여걸로 기억된다. 추한 외모로 시집온 아내를 첫날밤부터 거들떠보지도 않던 남편.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아름다워지자 뒤늦게 아내에게 홀딱 반한 남편이 그녀를 융숭하게 대접하는 이야기가 흥미를 자극한다.
그러나 박씨 부인은 스스로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인물은 아니다. 그녀가 정말 자신의 흉측한 외모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예뻐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추할 때나 아름다울 때나 늘 행동이 똑같다. 그녀의 외모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쪽은 남편 이시백과 시댁 사람들이지, 그녀는 아니다. 그녀는 조용히 자기 재능을 갈고닦아 집안을 일으키고 나라 환난을 막는 데 평생을 바친다. ‘박씨 부인이 이렇게 애를 쓰는 동안 세상 남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박씨 부인은 비루먹은 것처럼 보이는 초라한 말을 ‘천리마’로 키운다. 그녀가 쓴 문장은 이태백과 겨뤄도 뒤지지 않으며, 바느질 솜씨도 뛰어나 하룻밤에 시아버지 조복(관원이 조정에 나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을 능수능란하게 지어낼 정도다. 그녀 성품과 재능을 인정하는 사람은 시아버지뿐이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박대하고, 하인들과 노복들조차 그녀를 대놓고 무시한다.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부탁해 집안에 자신이 머물 거처를 따로 마련한 뒤 ‘피화당(避禍堂)’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런데 이 이름 자체가 슬픔을 자아낸다. 말 그대로 ‘화’를 피하는 공간. 온 집안 식구의 냉대와 질시를 피해 잠시 시름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의 진가는 남자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큰 환난, 즉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발휘된다. 그녀는 온갖 나무를 무성하게 심어 피화당 주위를 감쌌는데, “이후 불행한 때를 만나면 저 나무로 화를 면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전쟁이 코앞에 닥쳤을 때도 위기를 모른 척하던 남자들과 달리, 평화 시 만반의 준비를 갖춰 위기 시대에 대비한 것이다.
오직 시아버지만 내 편
시집온 후 3년 내내 남편 냉대로 마음고생을 한 박씨 부인은 어느 날 친정에 다녀오고, 도술에 능한 친정아버지로부터 “이제 네 액운이 다 끝났다”는 말을 듣는다. 못생긴 것을 넘어 거의 그로테스크한 괴물 형상을 해 남편마저 멀어지게 했던 그녀 외모는 그날 밤 허물을 벗고 눈부신 여신급 미모로 변신한다. 이때부터 박씨 부인의 소임은 가정을 지키고 윤택하게 하는 것을 넘어 나라를 구하는 일로 확장된다. 천기를 읽은 박씨 부인은 청나라 군사의 침입을 미리 이시백에게 알려주고, 이시백은 박씨 부인의 말을 조정에 전한다.
그러나 간신 김자점의 선동과 술책으로 조선은 청나라 침입에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김자점의 논리는 “박씨는 요망한 계집”이므로 “국가 대사를 아이 희롱같이” 여인의 말만 듣고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왕은 박씨 부인의 현묘한 재능을 익히 알아 그녀의 말을 경청하려 했지만 이미 여론을 장악한 김자점을 당해낼 수 없다.
여성이 직접 조정대신 회의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말 한마디에 조정 전체가 뒤흔들리는 장면은 흥미롭다. 작자 미상의 ‘박씨전’은 남성들이 실패해버린 전쟁, 그 역사의 오점을 여성 힘으로 ‘다시 쓰기’ 하려는 민중 욕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역사적 실패를 되돌릴 수 있는 길은 없다. 하지만 문학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더는 그렇게 당하고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미래를 위해 과거 역사를 ‘고쳐 쓰기’ 할 수 있는 ‘환상성’이라는 특권을 사용한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최악의 현실 속에서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기리려고.
피화당의 의미 변화
더는 남편 등 뒤에서 조언하는 일에 만족할 수 없던 박씨 부인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청나라 장수 용골대와 대적한다. 박씨 부인이 용골대, 용울대 등 청나라 장수를 무찌르는 장면은 홍길동이나 전우치가 적들을 물리치는 방식과 흡사하다. 바로 ‘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환상적 전투다. 여기서 도술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실현하려는 대안적 상상력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실제로 정치나 전쟁에 참여하기 힘든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는 모험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여기서 피화당의 공간적 가치가 빛을 발한다. 피화당은 이제 박씨 부인의 어엿한 베이스캠프가 된다. ‘한낱 여자’에게 당한 것을 참지 못한 용골대는 무서운 기세로 피화당을 선제공격한다. 박씨 부인은 옥화선을 쥐고 불을 붙인 뒤 적들을 공격해 청나라 군사는 타죽고 밟혀죽고 도망치느라 아비규환을 이룬다. 이때 거대한 숲처럼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피화당은 이 가공할 화공작전의 무기가 된다. 박씨 부인은 마침내 남성들이 실패한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는 구원의 여신이 된 것이다.
피화당은 박씨 부인의 개인적 은신처로 시작해 전쟁 베이스캠프로 거듭나고, 전쟁에서 가장 먼저 버려지는 여성들의 피난처가 된다. 전쟁이 발발하자 박씨 부인이 가장 신경 쓴 것은 여성들의 안전이다.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동안, 여성들은 목숨뿐 아니라 정조를 위협받았다. 그들이 정조를 지키려 목숨을 버리고 ‘열녀’가 되면, 살아남은 아이들은 전쟁고아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여성에게 가장 심한 욕설로 통하는 ‘화냥년’은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한 말로, 비극적인 역사를 상징한다.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여성을 남성은 다시 아내로 받아주지 않았다. 임금조차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된다”며 사대부를 권면했지만, 남성은 너도 나도 앞다퉈 새로운 여인과 재혼했다. 박씨 부인은 단지 청나라 장군을 제압하는 강력한 여전사가 아니라, 그녀처럼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던 수많은 여성의 삶을 치유하는 상상의 구원자가 아니었을까.
“오랑캐 장수들이 장안의 재물과 부인들을 잡아갈 새 잡혀가는 부인네들이 박씨를 향해 울며 슬프다, 우리는 이제 가면 생사를 모를지니, 언제 고국산천을 다시 볼까 하며 대성통곡했다.”
그 어디서도 피난처를 찾지 못한 민중의 ‘최종 병기’는 활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줄 환상 속 ‘피화당’이 아니었을까. 피화당은 단지 남성 횡포에서 도망치기 위한 피난처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한 여성성의 힘, 즉 배려와 보살핌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자료 제공·휴이넘 출판사 ‘박씨부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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