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정여울의 古傳여걸_03

醉月 2013. 3. 12. 01:30

아들 셋 키워낸 억척 싱글맘 당금애기

정여울 문학평론가 ‘당금애기’ 공연 중 당금애기가 어머니와 재회하는 모습.

국내 입양아동의 90%는 싱글맘 자녀라고 한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124만 가구 이상이 싱글맘을 가장으로 두고 있다. 이들 싱글맘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물론 경제적 지원일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싱글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가족의 전폭적 응원이 아닐까. 남편이 없더라도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아이를 키운다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따뜻한 가족의 품. 그것이야말로 싱글맘의 든든한 의지처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서사무가 ‘제석본풀이’ 속 주인공 당금애기에게는 바로 그 가족의 응원이 끊겨버렸다.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만 자란 그녀가 싱글맘이 되자, 고명딸이던 그녀를 끔찍이도 귀여워하던 아버지와 오빠들은 노발대발하며 당금애기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당금애기 내 딸이야. 어여쁘구나 귀엽구나. 아무쪼록 잘 놀아라 잘 있거라.” 당금애기 아버지가 딸을 볼 때마다 주문처럼 읊조리던 대사다.

아들 9형제와 딸 하나, 10남매를 곱게 키우던 당금애기 부모에게 어느 날 갑자기 흉사가 닥친다. 간신들이 아버지를 모함해 귀양을 가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눈물을 흩뿌리며 집을 떠난 후, 어머니 역시 아버지 귀환을 비는 3년 기도를 드리려고 집을 떠난다. 당금애기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이때 서천 서역국 금불암에서 온 제석(석가여래)이 팔도강산을 구경하다가 당금애기가 눈물로 쓴 글귀를 발견한다. “월백설백천지백(月白雪白天地白)하니 산심야심(山深夜深)에 객수심(客愁心)이라.” 제석은 아름다운 문장과 글씨에 반해 그녀를 찾는다. 자신에게 쌀을 시주하면 부모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설득하는 제석에게 당금애기는 군말 없이 쌀을 시주하겠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온실 화초에서 밑바닥으로 추락

제석의 바랑에 쌀을 집어넣으려 하니, 바랑 밑이 빠져 쌀이 줄줄 샌다. 쏟아진 쌀을 비질해 담아주니, 비질한 쌀은 절대 안 받겠다면서 당금애기가 직접 쌀을 하나하나 젓가락으로 집어 담아줘야만 시주를 받겠다고 한다. 제석은 당금애기에게 자꾸 괴로운 미션을 제안하면서 계속 자신을 ‘신경 쓰이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밤이 되자 잘 곳이 없다며, 꼭 이 집에서 자고 가겠다는 제석의 빤한 술수. 얌전한 규수로 자란 당금애기는 ‘부모의 무사귀환’을 무기 삼아 온갖 사탕발림으로 자신을 설득하는 제석의 현란한 화술에 넘어가고 만다.

 

그날 밤 당금애기 꿈에는 온갖 에로틱한 상징이 총출동한다. “천상선관이 내려와서 구슬 세 개를 주기에 그걸 받아 보니, 몸두 곱고 빛두 좋아 손에 담뿍 쥐여두 보고, 입에 담뿍 물어두 보구, 옷고름에 넣어두 보고, 허리춤에 넣어두 보다 깨어 보니 꿈이더라.” 제석은 자기 이름과 주소를 밝히며, 언젠가 자신을 꼭 찾아오라고 당부하고는 당금애기 집을 떠난다. “나는 서천 서역국 금불암에 사는 중이오. 이름은 석가여래, 나이는 갑자생, 생일은 사월 초팔일 오시 탄생이니 잊지 말구 찾이시오.”

 

그날 밤 당금애기가 꾼 꿈은 바로 태몽이었다. 이후 제석의 약속대로 부모는 무사 귀환했지만, 딸의 임신을 알게 된 아버지는 안색을 싹 바꿔 그녀를 핍박한다. 아버지는 당금애기를 “당장 죽여버리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 오빠들도 노발대발하며 당금애기를 동생 취급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머니만은 “그다지 어엿버라 구여워라 하던 딸을 죽이랴구”라며 당금애기를 감싼다. “금수도 제 새끼를 제가 아니 죽이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내 자손을 내 손으로 살해하시렵니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구슬려 당금애기를 토굴에 숨긴다.

“당금애기 처량하도다. 후원별당을 버리구서 후원동산 토굴 속에 가서 누워 생각하니 기맥히도다. 그러나 저러나 한편 생각하니 편하기가 한량없다. 죽기 않으면 살기로다. 살기 않으면 죽기로다. 단지 두 가지 마음밖에 없으니 편하기가 한량없네.”

‘당금애기’ 공연 중 당금애기가 토굴에서 아들 셋을 낳는 장면.

호의호식하며 고생 모르고 살아왔던 당금애기는 졸지에 싱글맘이 됨으로써 세상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살다가 이제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이 들자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는 경지. 그녀는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된다. 아버지 몰래 토굴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사랑에 힘입어 당금애기는 아들 셋을 한꺼번에 낳아 열심히 키운다.

 

세 아들이 자라 아버지를 찾자 당금애기는 그제야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아들들은 먼저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당당히 따진다. “나는 딸이 없는 사람이라 외손도 없단다”고 주장하는 외할아버지에게 당금애기 아들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머(너무)허셨지요. 어찌 사람을 토굴에 몇몇 해를 살구신단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이 나라를 누리고 계신 왕이라면서, 그다지 하시면 백성들이야 더욱 말할 것 있습니까?” ‘오직 내 말만 들어야 진짜 딸’로 인정하는 아버지, ‘내 말을 거역하면 딸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매트릭스에서 당금애기는 자기 힘으로 탈주한다.

 

천신만고 끝에 가족 상봉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명산대천 금불암을 찾아가서 보니, 제석이 홀로 도를 닦으며 염불을 외고 앉아 있다. 세 아들을 모른 척하며 염불만 외는 제석을 보자 그녀는 눈물이 핑 돈다. “너무하시는구려. 무슨 품앗이요? 앙갚음이요? 분명히 내가 살아 여기까지 찾아오느라고 고생을 얼마쯤 하였는지 모르겠어요? 그 아이들을 낳아서 칠년 동안 고생한 생각을 하여서두 그다지 못하리다.”

그제야 당금애기와 세 아들을 알아본 제석은 자신의 무심함을 뉘우치며 자식들을 껴안고 당금애기 손을 맞잡는다. “칠 년 동안 고생 많이 하셨구려. 그 죄는 모든 죄가 내 죄로다. 용서하시오.”

 

구전되는 지역마다 결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천신만고 끝에 상봉한 가족은 신성을 부여받아 인간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당금애기로서는 자신을 딸로 받아주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 아버지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세 아들을 무사히 키우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기적이었다. 이 이야기의 감동은 고통을 견뎌낸 당금애기의 ‘고요함’에서 흘러나온다. 심리학자 프리츠 쿤켈은 “끝없이 고통 받는 사람을 끌어낼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했다. 어떤 고통은 혼자서 견뎌내야만 한다.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기적이 만들어지는 시간, 영혼의 마그마가 조용히 들끓는 시간이다.

 

 

총각 → 진짜 남자 → 행복한 남자 만들기 우렁이각시

정여울 문학평론가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

천생연분이란 무엇일까. 옛사람보다 훨씬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헤어지는 현대인에겐 어쩌면 천생연분이란 단어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한 사람만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 사람만을 향한 지속적인 열정’을 진심으로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워한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전통사회와 달리 자유롭게 연애하고 헤어지는 현대인의 사랑을 ‘플라스틱 러브(plastic love)’라고 불렀다. 여기서 플라스틱은 ‘조형 가능한, 변형 가능한, 언제든 맺었다 풀 수 있는’ 정도의 의미다. 무한한 선택지를 갖게 된 현대인은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사람들은 첫눈에 반해 평생 이어지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완벽한 상대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 속 천생연분이란 그렇게 ‘겉보기에 완벽한 커플’보다는 아무도 모르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닐까. 진정한 천생연분은 결혼식날 밝혀지는 게 아니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처럼 노년기에 증명되는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천생연분 요건이란 ‘서로를 위해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는가’로 결정되는 게 아닐까. 그 기다림의 의미를 아름답게 증명하는 이야기가 바로 ‘우렁이각시’다. ‘우렁이각시’에는 대단한 영웅이나 비범한 위인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이 한때 지향하던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다.

 

땅에서 들려오는 여인 목소리

조실부모하고 혼자 살아가는 외로운 총각이 있었다. 그는 밭에서 곡괭이질을 하면서 시름에 차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 어떻게 찾어야 하느냐? 내가 이 밭을 이뤄서 농사를 져 가지고 누구허고 먹고살 것인고?” 그러자 놀랍게도 땅속에서 어여쁜 여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허고 먹지, 누구허고 먹어?”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또 한 번 혼잣말을 해봤다. “이 땅 이뤄서 누구허고 먹고 살 것인고?” 또다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허고 먹지, 누구허고 먹어?”

그리하여 총각은 덧없기 그지없던 농사일에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 목소리를 들으려고 더 열심히 일한 것이다. “오늘은 내가 안 가르쳐주고 앞으로 한 사흘간 있어야 자세히 가르쳐줄 테니께 꾹 참고 일이나 허시오.” 그녀 목소리는 성급하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흘 후 그가 밭을 갈던 흙 속에서 웬 우렁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총각은 괴이하게 여기며 이 우렁이를 집에 있는 물항아리 안에 고이 모셔놓았다. 총각이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누군가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려놓았다. ‘누굴까?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따스한 밥상을 차려놓았을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정성스레 차린 밥상이 자신을 기다리자, 총각은 자기 집을 몰래 엿보기로 했다. 숨어서 지켜보자니, 물항아리에서 어여쁜 색시가 나와 솥을 싹싹 닦고 밥을 앉히더니, 밥이 다 되자 상을 차린 후 물항아리 속으로 텀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다음 날 총각은 밥을 다 하고 물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색시 손목을 꽉 붙들고는 같이 살자고 조른다. 그런데 우렁이각시는 또 한 번 기다리라고 한다. “사흘만 기다리면 당신이 안 붙잡아도 당신과 부부지간이 될 것인게 그러지 말고 일이나 부지런히 허시오.” 사흘 후 두 사람은 드디어 부부 연을 맺고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지만, 일단 여기까지 ‘우렁이각시’가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은 바로 ‘기다림의 소중함’이다. 진짜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호기심을 참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우렁이각시만큼 뛰어난 남편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

여성에게도 기다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그마한 우렁이가 진짜 여자로 거듭나려면, 웅녀가 마늘과 쑥만 먹고 동굴에서 수련한 것 같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 가르침,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행동에 이름표를 붙이지 않는 겸허함이다. 현대인은 누군가 알 수 없는 사람이 선행을 했을 때 “우렁이각시가 다녀갔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몰래 한 선행은 옛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인 주인공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다. 자기 성과를 과시하지 않고, 그저 누군가가 그런 멋진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은 두 사람이 결혼한 이후에 나타난다. 그것은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총각이 절세미인을 얻어 행복하게 산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을 원님이 그녀를 탐했다. 아름다운 연인이나 아내를 권력자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는 ‘춘향전’뿐 아니라 ‘도미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하, 조놈에게는 너무 과하다. 저놈을 뺏어다가 내 소첩으로 삼어야겄다.” 권력을 휘두르는 원님은 남편을 불러 “네 아내를 내게 주라”고 요구하고, 힘없는 남편은 이대로 아내를 빼앗기는 게 아닐까 걱정돼 앓아눕는다.

 

 

그러자 아내가 묘책을 내놓는다. “안 준다고 허쇼. 안 준다고 허쇼. 그러면 원님이 장기를 두자고 헐 것이오.” 남편은 하소연한다. “하, 이 사람아, 내가 장기를 못 두는디 장기를 두면 자네를 뺏길 것 아닌가.” 아내는 모든 계책에 대비한다. “내가 시킨 대로 허시오. 장기를 두는데 물론 당신 보고 먼저 두라고 헐 것이오. 아, 그럼 ‘어른께서 먼저 두셔야죠’하고 그 원이 한 수를 딱 둔 다음에 쪼그마한 쉬파리가 하나 올 것이오. 와서 그놈이 딱 앉았다가 요리 폴짝 날으면 그 파리 앉은 데만 놓으시오.”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장기를 뒀고, 우렁이각시 화신인 쉬파리 도움으로 원님을 보기 좋게 이겨버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원님은 이번에는 또 다른 내기를 청했다. 말 한 필을 줄 테니, 그 말을 타고 큰 강을 한달음에 뛰어넘는 데 성공하면 우렁이각시를 빼앗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우렁이각시는 또 다른 묘책을 내놓았다. 원님이 주는 말이 아니라, 비루먹은 당나귀 같은 못생긴 말을 골라 뛰라는 것이었다. 그 병든 말은 물론 아내 영혼이 깃든 말이었다. 그렇게 남편이 원님을 보기 좋게 이기니, 원님은 할 수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니 마누래는 하늘에서 낸 마누래다. 할 수 있느냐, 그대로 잘살어라.”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가난한 총각은 아내를 지키려고 강한 남자가 되고, 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 ‘우렁이각시’는 한 여성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승리한 이야기를 그렸지만,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고 자신의 성격도, 운명도, 능력도 더 멋지게 바꾼 한 남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료 제공·훈민출판사 ‘우렁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