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이야기: 어깨동무와 스미토모 사이
일본 기업의 산 역사인 주우가 한국어(?) 이 정도 읽어 내려온 독자들이라면 웬만큼 일본사투리를 한국어로 풀 수 있는 나름대로의 안목을 가지게 되었으리라고 믿는다. 혹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겠다고 학원을 몇 달 다니다가 포기한 분이나 독학으로 일본어 정복에 도전했다가 책 위에 먼지만 수북히 쌓아 놓고 있는 분들은 지금 그 책들을 꺼내 놓기 바란다.
외국어로 보던 일본어와, 이미 여러분의 언어중추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한국어를 200% 활용하여 일본어를 한국어의 일본지방 사투리라고 보면서 공부하는 것 같은 일본어인데도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지 한 번 느껴 보기 바란다. 사실 지금까지 일본어 교재 중에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어와 연관성을 논하면서 한국인 전용으로 만들어진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그동안 접했던 일본어 교재들은 대부분 한자를 모르는 구미인 용으로 큰 대 작을 소 의 한자교본부터 시작된 것을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것이거나, "그냥 외국어이니 암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회화책들이었을 것이다. 중급 일본어 수준이 되면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두 언어간의 유사성 속에서 이 책과 비슷하게 자음규칙과 모음규칙을 정리한 한자읽기 교본 등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외국어로서의 일본어를, 그것도 단순히 한자 읽기의 규칙만을 정리한 것이어서 일반 독자들 역시 필자처럼 오히려 상당히 헷갈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일 비교언어론쪽에서 정설화된 것들을 모아 여기에 정리한 일정한 한일 사투리 교환법칙들은 비단 한자뿐 아니라 일본어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골치를 썩히는 고유어의 요미가타까지 그대로 한글로 풀어 낸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의 뇌리 속에서 서서히 자라났을 일본어를 한글의 동경사투리로 보는 의식을 십분 활용하여 지금까지 다뤘던 '아침해'나 '해돋이', '샘물'보다 한걸음 더 나간 단어가 없겠는지 추리해 보자.
이미 소제목에서 눈치를 챈 분들도 있겠지만 일본의 또다른 대표적 기업 스미토모의 이야기다. 히타치만큼이나 일본의 기업명칭 중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의 하나가 바로 스미토모이다.
우리 어깨동무 할까?
해돋이 회사나 아침해 회사와는 격이 다른 오래된 회사가 이 스미토모사이다. 이 중 세계 최대급의 고로를 가지고 있는 스미토모 금속은 스미토모 그룹 안에서도 가장 오래 된 주력기업중의 하나이다. 스미토모 가문에서는 1590 년,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 년 전에 교토의 절거리 5번지에 조그만 동 제련방을 하나 만들어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 스미토모 집안은 16세기 후반 당시로서는 신기술이던 남만식 불기 제련법을 외국으로부터 도입하여 일본 광공업의 기반을 닦았다. 지금은 철강사업을 비롯 건설, 플랜트, 엔지니어링, 전자, 바이오 메디컬 사업 등 각종 첨단분야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 자동차의 배후에는 자동차에 필요한 경량형 자동차용 보디 강판을 만들어 낸 스미토모 금속이 있다.
철강생산량은 일본 내에서 3위에 그치고 있지만, 그 오랜 역사와 무수한 다른 방계 기업들로 인해 일본인들은 한국인의 포항제철 정도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이 소속되어 있는 가지마 안트라스 축구팀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또 하나의 기업이 스미토모 은행이다. 스미토모 계열사로 1895 년(명치 28 년) 창업된 이래 탄탄한 일본 엔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다가 86 년에는 유명한 골드만 삭스사에 투자한 것을 기회로 세계 금융 시장에도 활발히 진출하였고 88 년에는 파리증권거래소에, 그 이후에는 런던증권거래소에 각각 상장되기도 한 기업이다. 이처럼 일본의 대표적인 회사의 이름이자 언어상으로도 '스미(주)'와 '토모(우)'라는 전형적인 일본어가 결합된 이 회사의 이름이 한글의 일본 사투리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스미토모사 직원 몇 십만명 정도가 아니라 스미토모의 고향격인 시코쿠 섬 주민 전체가 뒤로 자빠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아침해에서 시작하여 하나씩 증명해 온 바와 같이 이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앞에 나온 간단한 단어들과는 달리 그 변화의 단계가 조금 깊어졌을 뿐이다. 우선 토모부터 살펴 보자. 토모는 우리 나라의 현대말인 동무와 1 대 1로 대응하는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다. 앞의 자음규칙에서 한글의 받침이 일본어에서는 그 다음 음절로 넘어가는 것('감사합니다'가 '가무사하무니다'의 식)은 알고 있을 것이므로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이해를 했을 것이다. '동무'의 영어표기는 'tong-mu'로서 맨 첫음절이 우리의 ㄷ(d)보다는 ㅌ(t)에 가깝다.
일어의 '토모'는 영어로는 'tomo'로서, 우리말 'tong-m'에서 받침인 이응(ng)이 탈락하고 뒷 모음인 'o'가 'u'로 변한 것일 따름이다. 동무(한) ^25,135^ 도무('ㅇ' 탈락) ^25,135^ 도모^236,56^모음 변이(일)^23,356^. 우리말 동무와 일본어 '토모(tomo)'간의 상관관계는 이미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 의해 증명이 끝난 것이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다. '토모'라는 일본어는 '동무'라는 우리의 순 고유어로 풀렸으니 이제는 '스미'를 살펴보도록하자. 이 '스미'가 왜 우리말 살 주로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그러나 언어학을 전공할 사람이 아닌 바에는 이 '스미'역시 우리 현대어의 '삶' 혹은 '숨'에 해당하는 1 대 1 대응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
한국에서도 '삶'에서 'ㄹ'을 표기는 하지만 실제로 소리는 나지 않는 것처럼 삶 ^25,135^ 삼, 숨 ^25,135^ 스무 ^25,135^ 스미 식으로 대응한다고 풀면 되겠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직접 '숨(한) ^25,135^ 스미(일)'로 풀기도 한다. 그러나 '숨'은 현대 한국어에서 '생명'을 표현하는 단어로 바뀌었으므로, 우리말로 의역을 할 때 일부러 가장 가까운 연관관계가 있는 '삶'과 대응시켰다. '삶의 동무이든 숨쉬기 동무이든, 너무나도 한국적인 한국말의 동경 사투리가 되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아스라한 추억 속의 어린시절 동네 골목길이 연상될지도 모른다. "어깨동무 새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우리가 어깨동무 삶동무(혹은 숨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고 노래하면, 이를 들은 일본어를 조금은 아는 미국인들이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 숨동무(sum-tong-mu)의 자음 배열은 일본어의 sumi-tomo와 기가 막힐 정도로 똑같다." "당연하지. 우리말의 동경사투리인데." 이를 우리말로 의역하면 영락없는 어깨동무다. 혹시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상담을 하게 되는 일본, 그것도 스미토모 그룹의 친구가 있다면 농담을 걸어보자. "당신네 스미토모 회사의 이름이 우리말로 어깨동무인데 우리도 사업의 파트너로서 어깨동무나 할까" 이 한마디로 그와 평생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그쪽이 마음에 드는 이성이라면 더욱 더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다섯째 이야기: 어감으로 풀어 보는 일본섬 사투리
NHK에서 흘러나온 '광화문 연가'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고 딱딱한 쪽으로만 흘러버린 것 같으니 쉼터에서 조금 가벼운 주변의 이야기로 한숨 돌리고 가자. 필자가 일본어를 처음 배울 때의 일이다. 일본어가 외국어가 아니고 한국어의 일본섬 사투리, 혹은 동경 사투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들이 몇 차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도 10 년이 가까운 시점에서 업무를 위해서 3개월 내에 일본어를 마스터하라는 회사의 지시로 모든 것을 전폐하고 마치 절집에 고시공부하러 들어간 심정으로 동경대 근처의 센다기라는 하숙촌에서 3개월간 틀어박혔다. 그런데 도대체 단어는 외우고 외워도 왜 며칠만 지나도 그리도 하얗게 까먹게 되는지.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겪는 일본의 무더위는 왜 그리도 북쪽 본토에서 건너온 학승을 쪄대는지. 책 속의 일본어들은 한자로는 대강 뜻은 알겠는데, 도대체 이 한자가 이런 골치아픈 훈독이 되는지 의문이 끝을 모르고 있었다.
그 하숙방에 유일한 가구다운 가구이자 유일한 가전제품이 하나 있었다면 하루종일 반송을 하는 텔레비젼이었다.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은 뉴스에서 일반 프로그램까지 한국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방송을 하는데 학업의 무료함을 달래고 일본어 듣기를 하루라도 빨리 마스터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때도 작은 소리로나마 텔레비전을 틀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밤의 일이었다. TV에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대중가요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그것이 나중에는 '미소라 히바리'라는 유명한 가수의 '강물이 흘러 가듯이'이라는 제목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으나, 겨우 일본어 공부 2개월째로 접어 든 초보 중의 초보로서는 그것이 어떤 노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찡하는 감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아아 가와노 나가레노 요우니(아 강물이 흘러가듯)." 흘러가는 그 가사들이 일본어에 아직 초보였던 필자의 의식으로는 뜻을 모르는 단어의 나열에 불과했음에도, 조각조각 어슴프레 들어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필자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그 노래의 말뜻을 그대로 인식하며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논리보다 무의식이 한국어와 일본어라는, 인위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벽을 먼저 뛰어넘은 결과였겠지만, 당시에는 그냥 "일본인들의 감정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은가 보다"하는 정도로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가 3개월 되었을 때 이상한 일이 또 일어났다. 업무상의 필요 때문에 국제면허를 가지고 동경 시내 지리를 익히기 위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뉴스라도 들으려고 NHK를 틀었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좋아했던 이문세의 노래가 방송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착각은 불과 몇 초뿐. 자세히 들어 보니 이문세와 너무도 음색이 비슷한 일본가수가 분명히 일본어로 부르는 노래였는데, 운전 중에 얼핏 듣기에는 영락없는 광화문 연가였다. 이때도 "한여름에 공부를 너무 하다 보니 약간 맛이 간 모양"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북한 뉘앙스의 일본인 아나운서 그런데 바로 그 주부터 본격적인 NHK 뉴스 듣기 연습에 착수했는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 여자 아나운서의 뉴스 내레이션을 몇 번이고 듣고 이를 독해한 후 따라하는 연습이었는데, 원고 없이 처음 들은 NHK 여자 아나운서의 억양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억양이었다.
어디서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정치부에서 중앙청, 외무부와 통일원을 출입할 때, 남북대화 사무국에서 당시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던 비밀사항이던 북한 평양방송을 원문대로 듣고 기사를 작성하곤 했는데, 전혀 다른 일본의 아나운서 억양이 이전에 들었던 북쪽 아나운서와 너무도 유사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상한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동경생활 1 년쯤 지났을 때, 완전히 머릿속에 한국어와 일본어가 언어학적으로 바이랭귀지(bi-language)로 자리잡아 직독직해를 하는 정도까지 됐는데, 이번에는 가끔 급할 때 머릿속에서 서로 외국어 사이어야 할 한국어와 일본어의 구분이 때때로 애매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서 오신 분들과 일본손님들간의 동시통역을 진행하다 보면 논의가 매우 진지하고 속도가 빨라지는 경우 그 자리에서 메모없이 한국손님의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손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일본손님의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손님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핑퐁 게임 같은 장면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때 처음에는 이같은 순서를 틀릴 이유가 없고 통역도 잘 진행되는데, 논의가 한참 진행되다 보면 급하다 보니 한국손님에게 일본어로, 일본손님에게 한국어로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 가끔 일어나곤 한다. 물론 시간이 급하고 템포를 잃다가 한두 번 발생한 일이라 손님들이 의식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이 책에서 정리하고 있는 주제를 위해 자료를 수집해 가는 동안 너무도 쉽사리 풀렸다. 일본어 '아이으에오' 한글식으로는 '가갸거겨'를 배우면서도,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한 것은 '가와노 나가레노 요우니'라는 노래가사 속의 일본어들이 우리 옛말의 동경 사투리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와(kawa)'는 우리말 (karam)에서 ㄹ(r), ㅁ(m)이 탈락하고 모음이 ^4,5,3456,5,5,3456,26^(한) ^25,135^ 가라무 ^25,135^ 가라 ^25,135^ 가와(일)가 변해 된 것이다. '^^36,36^의'라는 뜻을 가진 '노(no)'도 우리의 '의'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사이고 '나가레'는 우리말 '흐름', '요우니'는 '양태로'라는 한글과 그대로 대응하는 것이니, 그대로 우리말의 동경사투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NHK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억양이 북한 아나운서의 억양과 비슷하게 들린 것은 옛 고구려유민들이 넘어 온 곳은 일본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레 놀랄 것도 없고, 향가를 만들었고 일본어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원형인 이두조차 원효대사의 자제분(설총)이 정리한 작품이니 이런 모든 것들이 현재 일본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호리우치 다카오의 노래를 이문세의 음색과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호환성을 갖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자라나거나, 혹은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동시통역사분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은 적이 있는데, 그들 중에도 상당수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지면상 생략한다. 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의 발생원인은 단 하나다. 컴퓨터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버전(판)만 다르지 두 언어가 실은 같은 MS-DOS(고대^36,36^중세 한국어) 상의 호환파일이므로 다를 수가 없다 하겠다.
일본어는 서울 표준어의 동경 사투리 방언 혹은 사투리도 마찬가지다. 언어학적으로는 사투리를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 지역에 따라 발음, 의미, 어휘, 음운, 어법 등이 표준말과 다른 말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정의 가운데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라는 대목은 국경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즉 어느 언어나 어느 지방, 계급층에서만 국한되어 쓰이는 말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럽통합의 예에서 보듯 나라의 개념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없어지고 글로벌화할 다가오는 21세기에도 또 다시 '한 나라의 언어 중에서'라는 표현은 의미가 없어진다. 서울 표준말과 제주도 방언이 다른 정도보다 서울말과 동경말이 더 비슷하다면 서울말을 표준어로 쓰는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동경말은 딱 떨어지는 서울말의 동경 사투리이다. 길게 남북으로 늘어서 있는 섬나라인 일본 열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남쪽의 오키나와 고유어와 북쪽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족의 고유어는 아^36^예 어족자체가 틀릴 정도로 서로 다른 말이다.
단지 같은 나라 혹은 같은 일본이라는 인위적인 국적경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오키나와 말과 홋카이도 말은 방언관계에 있고, 훨씬 비슷한 한국말과 일본말은 서로 외국어 관계라는 것은 엄청난 논리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는 우리도 이같은 인간이 만든 의식의 감옥 속에서 살아왔지만 이것은 앞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이러한 유사성을 일본어는 한국어의 일본 사투리라고 이 책에서처럼 딱부러지게 정의한 논문은 아직 없었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 글을 읽는 이 순간부터 더 이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심이 말보다는 다른 쪽에 있거나, 참지 못해 이 책의 뒷부분을 미리 읽어 본 독자들은 이 말 뜻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3 년이면 우리의 일기장 첫줄마다 올라 붙게 될 2000 년, 21세기는 이른바 글로벌 시대이다. 인간이라는 지구의 붙어사는 고등생물들이, 그것도 현대에 들어와 자기들의 정치적 혹은 역사적인 편의에 의해 규정지은 개념일 뿐인 국경이나 나라의 개념은 더 이상 현재와 같은 개념으로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오히려 아무런 국경도 없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이 강하게 불어 동해상에서 표류하게 되면 며칠 후에는 현재의 큐슈지방 후쿠오카 언저리에 닿곤 했던 1--2천년 전의 그 원래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격이다.
말은 살아있는 박물관 이쯤되면 독자들 중에는 일본을 거꾸로 본다면서 왜 자꾸 복잡해 보이는 말 이야기나 기업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이 있을지 모른다. 역을 그런 궁금증을 갖고 계신 독자들을 위해 일단 말에 대해 조금 설을 풀어 보자. 많은 언어학자와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통해 지적하듯, 이상하게도 말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강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의,식,주 등 인간생활의 다른 모든 기본적인 요소는 다시 만들 수 있고 고쳐지기도 하지만, 어릴 적에 한 번 붙어버린 말투와 억양은 평생토록 변하지 않는다.
황룡사 9층석탑은 세월이 지나면 없어 질 수 있어도 신라의 향가 속에 살아있는 옛 신라말들은 지금 우리의 현대 한글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숨쉬고 있다. 세계인들이 부지런히 찾아오는 서울은 신라어의 서라벌의 변형이 아닌가 서라벌에서 '라'와 'ㅂ'이 떨어져 나가고 모음 '어'가 '우'가 되었을 뿐이다. 신라어를 아르헨티나 말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의당 고대 한국어로 분류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름들은 다 한자화하고 외래어화해도, '서울'이라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단어 만큼은 몇 천년 동안 비슷한 발음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른 모든 문화유산들, 특히 유형적인 건물이나 무덤이나 유물들은 일정한 세월이 지나면 결국 소멸되어 없어지지만, 유독 언어 만큼은 마치 DNA속에서 선천적으로 유전된 형질인 것처럼 조금씩 변형은 되지만, 원래의 의미와 그 형태를 지니면서 전승되고 있다. 마치 시대와 유행의 변화에 따라 옷만 갈아입은 것일 뿐 그 속의 몸은 하나인 것과 같으니 식이다.
이 법칙은 일본열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의 지명과 역사를 다룬 다음장에서 증명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 도래인이 건설한 옛 식민지인 6--7세기의 일본열도에는 당시에 어떤 언어가 있었겠는가.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왕인 박사를 통해 한자만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아니고, 일본인들이 한자를 읽는 방법, 즉 요미가타라고 하는 것까지도 실은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례가 바로 '반야바라밀다심경'이다. 이 경전은 불교의 주기도문 격으로 불자라면 어느 집회에서나 외우는 경전에 만큼 경전인 만큼 그 읽는 방법(요미가타)은 정밀하게 전수되어 왔다.
다른 생활어나 전래된 고유어도 아니고, 존엄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옮겨 적어 놓은 경전이니 함부로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격하고 정교한 발음 주석이 붙어 있어서 지금도 스님들은 그 옛 경전 그대로를 읽는데, 그 당시에 비해 격식이 조금 달라지고 발음이 조금 현대화된 것을 제외하고는 일단 발음 주석대로 경전을 읽는다는 점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가운데 현대화된 일본의 한자발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고어식의 발음이 많다는 것이다. 요컨데 이 경전의 한자발음이 한국식의 한자발음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반야바라밀다심경은 '관자재 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시.'로 시작하는데 일본의 경전 읽기도 비슷해서 '칸지자이보사츠 코신 바느야바타미츠타시' 정도의 발음으로 소리가 난다. 흥미를 느끼는 분은 일본 절에 들러 일본 스님들이 이 경전을 읽을 때나, 읽는 방법이 적힌 경전을 구하거나 혹은 녹음테이프 등을 구해서 읽어 보시기 바란다. 금새 우리 발음과의 대단한 유사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대 일본어의 원형(prototype)이 당시 점령군이자 통치계급이며, 개발형 식민주민이었던 고대 한반도인들의 언어, 즉 고대 한국어이다 보니 현대 일본어에서도 그 원형이 그대로 남게 된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이야기: 동경 표준어는 제주도 사투리의 사투리?
혜은이의 '감수광'과 '이키마스까' 사이 이야기가 소프트해진 김에, 보다 우리에게 친숙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 혜은이라는 가수의 '감수광'이라는 노래를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신세대들을 위해 첨언하면 '감수광 감수광 날 어이헐렌 감수광(가십니까 가십니까 나는 어떻게 하라고 가십니까)'라는 제주도 사투리를 가사에 넣어 히트했던 70 년대 애창가요 중 하나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이 말의 제주도 사투리를 더 정확한 표기로 하면 감수강은 '감수가' 혹은 '감수까' 영어로 'kam-su-ka'로 표기할 수 있다. 여기서 풀어볼 문제는 일본어의 '이키마스까'다. 초급 일본어를 이수한 정도의 일본어를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문장이다. 한국말로 "가십니까?" "갑니까?"에 해당하는 일본어다.
문법책에는 '이크(가다)'라는 동사원형의 조동사 마스의 의문문인 '마스까'를 만나 'i'형으로 변해 '이키마스까'가 되었고 한국어로 "갑니까"라는 뜻으로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다. 대체 왜 '행(갈 행)'자를 '이'라고 읽는지, 왜 '마스까'가 '^36,36^입니까'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선생님에게 이유를 물으면 "외국어니까 그냥 외워라"는 답을 들어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다른 해석과 접근을 하려 한다. 우선 이키마스까를 영어로 풀어보자. 'iki-ma-su-ka'. 그리고 이것을 머릿속에서 오려서 위칸의 'kam-su-ka'와 겹쳐 보자.
한국의 제주도 방언: ka-m-su-ka 가^36^ㅁ^36^수-까 일본어 표준말: iki-ma-su-ka 이키^36^마^36^스-까
뭔가 핑 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의 직감 그대로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일본사람들에게는 '마그도나르도'다. '감수까'라는 제주도 사투리를 일본사람들이 들었을 때 어떤 음절로 인식하고 어떻게 발음할까. 카무스까(ka-mu-su-ka)다.
즉 '가다'라는 한국어 표준어, 보다 엄밀히 말해 서울 중부지방 방언의 어간 '가'는 변하지 않고 그냥 제주도 방언 속에도 남아 있고, 이에 해당하는 일본어 '이키(iki)'만 다를 뿐 어미는 양쪽이 놀랄 만큼 똑같다. 이 '이키'라는 말에도 고대 한국어가 숨어 있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에 풀어보자. 일본쪽에서야 다른 말을 할 수 있겠고, 식민지 시절 한때는 순진한 조선민중에 대해 마치 자신들이 한반도를 지배한 민족이었다는 식민사관을 주입시키곤 했다.
이것은 마치 일본 일왕들이 자신들의 조상신인 한신을 모시고 궁중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근본을 밝혔던 동경대학의 역사학자 구메 구니다케 교수가 1891 년 자신의 논문 때문에 황국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고 동경대학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것과 차원이 같다 하겠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위에서 증명됐듯, 우리 한국인에게 일본어의 '^36,36^입니다'라는 뜻의 어미 '마스'는 제주도말의 일본식 방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들 일본인들은 참으로 예의 바른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끝마다 '부탁합니다'는 뜻의 '오네가이시마스'를 빠뜨리지 않는다. '미안합니다'는 '스미마셍'은 '마스'의 부정형 '마셍'을 쓰고 있다. '않습니다'는 우리말처럼 'ㄴ'음절을 추가해, 부정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N(n)발음으로 부정을 나타내는 것은 영어의 NO처럼 다른 구미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참으로 인간의 언어는 오묘한 부분이 있다. 이런 말뿐 아니라 우리도 '^36,36^입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쓰게 된다. 이렇게 일본말을 하는 일본인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이상 쓰게 되는 '마스'가 한국 제주도의 사투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일본어는 한국어의 동경 사투리'라는 말이다.
'마스'뿐 아니라, 일본어가 우리 제주도 사투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어서 오십시오'라는 뜻의 '이랏샤이마세'다. 일본을 방문하거나, 순 일본식으로 경영하는 일식집에 들어갔을 때, 수십 번은 듣게 되는 소리가 '이럇사이마세'다. 자주 그 가게를 이용하는 단골손님이 되면 줄임말로 '이랏샤이'라고 친근하게 인사를 받게 된다. 이 '이럇사이마세'도 완벽하게 제주도 사투리로 분해^5,23^해석되는 제주도말의 일본 사투리다.
한국의 제주도 방언: irusi-masi 이르시^6,3^마시 일본어 표준말: irashai-mase 이랏샤이^6,3^^마세
우선 '이랏샤이+마세'로 끊어 보자. '마세'는 사전에도 공손의 조동사 마스의 명령형으로 경어 동사에 붙어 '^36,36^하십시오' '하세요'의 뜻으로 쓰인다. 마스가 제주도 사투리이니 이것도 당연히 제주도 사투리의 원형(prototype)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제주도에서는 '하세요'의 뜻, 혹은 '하십니까'라는 경어 의문문의 뜻으로 윗분에게 '마시' 혹은 '마슴'이라는 말을 쓴다. '경헌가마슴?'하면 '그런가요?' '그러십니까'라는 뜻이 되고, '어떵 허렌 마시?'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는 뜻이 된다. 일어의 '마세(mase)','마센(masen)'과 제주도 사투리의 '마시(masi)','마슴(masum)'은 모음 하나만 다르고 몇 백년이 넘도록 그 원형에 가깝게 서로 발음되어 왔다는 것은 실로 신기에 가깝다.
'이랏샤이'는 우리말 '이르심'정도로 대응시키면 되겠다. 모음은 조금씩 사투리가 섞여 있어도 자음이 똑같고 어미 '마세', '마시'가 같은데 사투리 관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앞으로는 일본식당에 들어가서 '이랏샤이마세'를 들으면, 그 말뜻을 그대로 제주도 사투리로 인식해도 좋고 시간이 남으면 그 집주인에게 그것이 제주도 사투리임을 알려주자. 일본인들의 입버릇인 '마스'와 '마세'가 제주도 사투리라는 말을 듣고 이번에는 일본 열도 1억 2천만 인구가 모두 뒤로 넘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인데 어쩌랴. 이불 수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일본은 좋은 시장이 될 것이다. 적어도 뒤로 넘어져 머리 깨지는 사람이 없도록 해줄테니.
'이이쟈나이'와 '좋잖아' 말 이야기만 너무 길어진 것 같고, 다른 장들도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말 많은 말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매듭지을까 한다. 학문적으로, 그리고 보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것이고, 이같은 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 본고의 원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의 여행을 통해 일본과 접하면서 발휘하게 될 여러분의 상상력을 위해서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겠다.
그 하나는 주지하다시피 우리말과 일본어의 습관이 너무도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토대로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한국어와 비슷하거나 혹은 비슷하게 추리될 만한 일본어들을 찾아보면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캡이다'라는 요즘 학생들의 은어를 예로 들어보자. '아주 좋다, 최고다'는 뜻인데, '캡틴(대장)'이라는 영어 '^36,36^이다'를 붙여 형용사화 했다.
일본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는 '마그루'라는 말이 있다. '마그'는 '맥도널드 햄버거'의 준말로, 직역하면 '맥도널드에 가다'이다. 반대로 '모스 버거집에 가다'는 '모스루'이다 "배고픈데 뭘로 할까"는 "좋아. 그런데 마그할까, 모스할까"는 이런식이다. 가장 일상생활에 밀접한 외래어는 놀랄 만큼 빨리 수입해 그대로 쓴다. 그러나 그 조동사나 어미 등은 부모로부터 유전된 그 언어를 그대로 쓴다. 이 습성을 한일간에 국경이 없던 그 시기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될까. 적어도 앞에 붙는 외래어나 유행어는 당시에도 비슷하게 변하고 없어지고 했을 것이다.
한국의 향가나 일본의 만엽집도 당시에만 유행하던 은밀한 유행어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일종의 대중가요이기에 1천년 이상 지난 후세의 감각으로는 해석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요즘의 H.O.T 등등의 가수 이름을 1천년 후 자손들이 다른 아무런 자료없이 들으면 어떤 해석을 내릴까. 기상천외한 해석들이 쏟아질 것이다. 결국 위로부터 유전된 언어의 핵심만 남아 유전되고 원형이 보존됐다.
마스(masu)같은 조동사나 어미, 아침해나 스미토모처럼 나중에 회사이름으로 유전된 가문의 성씨,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보듯 경전 읽는 법 등 시대가 바뀌어도 후대가 감히 바꿀 수 없는 부분에 한글의 일본 사투리는 그대로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그 중 하나의 예로 '이이쟈나이'라는 일본어를 들고 싶다. 이것도 감수광 비슷하게 '좋다'라는 일본 고유어 '이이'와 '쟈나이'의 결합인데, '쟈나이'는 '데와나이(^36,36^이 아니다)'의 준말이다. 여기서도 '이이'라는 형용사와 '좋다, 좋은' 간의 촌수는 조금 멀어 보인다. 그러나 '쟈나이'는 똑떨어지는 우리말 '^36,36^잖아'다. '^36,36^잖아' 자체가 '^36,36^이(하)지 않다'는 말의 준말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다, 아니다'는 말의 기본이며 영어로 말하면 be 동사 격인 너무도 중요한 말이다. 앞의 형용사 '좋다', '나쁘다'는 루트가 다른 지방어가 붙을 수 있어도, 말의 기본이 되는 골격은 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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