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모르고 민족을 논하지 말며
… 선도를 모르고 인간을 논하지 말라
때는 조선조 선조 임금 재위 3년째 되던 해, 상감은 병조의 습진을 친열하겠노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습진(習陳)이라는 것은 무좀과 같은 피부병(濕疹)의 일종이 아니라 군대의 연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열병 분열 행진 진법 등의 군대의 훈련과정을 상감이 친열(親閱)한다는 것은 병조에 완죤히
시피액수(是疲厄愁--곧 피곤하고 재수없고 근심스러운 일)가 걸린 셈이었지요.
당시 조정의 영의정은 이준경(李浚慶)이었고 좌의정은 오리 이원익(李元瀷) 우의정은 권철(權轍)대감이었고,
병조의 판서는 이후백(李後白)이었다. 상감의 친열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오위도총부와 병조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으며 특히 병조의 판서인 이후백 대감은 손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바빴다.
왜냐하면 종전까지는 종이품의 관리가 친열의 총지휘관인 교열대장(敎閱大將)에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으나
이번엔 보통 때와 다르다고 늙다리 정승들이 제의해서 정이품 병조판서인 이후백이 직접 임명되었던 것이다.
친열을 완벽히 하기 위하여 병조의 인력 외에도 타부서에서도 인재가 할당되어 교열대장 밑에 배속되며 교열대장은 친열이
끝날 때까지 계엄사령관과도 같은 비상군권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교열대장 밑에 친열업무를 돕기 위하여 세 명의 종사관(從事官)이 뽑히게 되었으니,
종사관이라 함은 오날날의 비서관을 뜻하는 것으로 당대의 최고 인재가 선발되는 것이 관례이며 여기에 뽑히게 되면 그 유능함이
천하에 인정되어 출세가 보장됨은 물론 훗날의 정승판서감의 1순위로 지목되는 것이다.
병판 이후백 대감은 이조에서 관리들의 인사기록부를 넘겨 받아가지고 인물들을 점검하여 다음 세 사람을 지명하였다.
정언신(鄭彦信), 류성룡(柳成龍), 권율(權栗).
정언신과 류성룡은 4년전 문과에 급제한 문관이었고,
권율은 현임 우의정인 권철의 아들인데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으나 아버지의 줄이 워낙 튼튼한고로
남행(南行-과거없는 벼슬살이)으로 벼슬길에 올라 있었다.
이후백은 이들 세 사람이면 습진은 그만두고 실전을 한다 해도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하고 안심팍팍 근심뚝뚝하였으나 그러한 예측은 첫날부터 여지없이 개박살나고 말았다.
세 종사관이 하루종일 다니면서 해놓은 일이라는 게 보통 사람의 겨우 반 사람 몫이 될까말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백은 혀를 끌끌 차면서 탄식하였다. 이래서 먹물 먹은 것들한텐 뭔 일을 제대로 못 맡긴다니까!
당시 오위도총부라는 게 건국 200년 가까이 태평시대만 겪은 고로 군대의 기강이나 조직이 엉망한데다가 진창이었다.
오위의 어느 위를 보아도 결원이 많아서 편성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임시로 잡색군(雜色軍-집단적으로 관영 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반당(伴堂-고급관리의 시중드는 사람들)들을
몽땅 오위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하였으나 실제로 이에 응해 주는 고급관리들이 없었다.
친열을 엿새 앞두고 겨우 200명 남짓한 인원만이 편입되었을 뿐이었다.
강직하고 명철하며 결기가 강한 이후백 대감은 울화통이 터져서 세 사람의 종사관을 불러다 놓고 숨을 씩씩거리며 째려보다가 하인을
보내서 각부의 책임자들을 소환하고 친서를 보내고 독촉하였다. 그랬더니 당일로 천명으로 편입군이 증원되었다.
이후백은 세 사람에게 담박 호통을 쳤다.
너그들이 명색이 국가의 관리라고 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냐? 이건 무사안일의 표본이요 복지부동의 실례라 할 수 있다.
좀 더 창조적으로 적극적으로 일 좀 할 수 없겠냐 말이다.
내일 퇴청 때까지 이천명으로 만들어 놓지 못하면 모두다 결곤(決棍-곤장)을 면치 못하리라.
이에 긴장한 세 사람은 나오면서 툴툴거렸다.
지꺼미! 사람이 일했나? 자리가 일한 거지.
닝기미! 그럼 신출내기하고 경험자하고 어떻게 같은가?
조또! 밀어 부치기만 하면 다 되는 건가?
참고로 말한다면 지꺼미(至去米)란 벼 중에서 알이 굵은 다수확 품종으로 뙤나라에서 개발한 것이고,
닝기미(吝氣米)란 양기가 많이 흡수되어 있다는 신품종 벼로 안남(베트남)에서 개발한 것이고,
조또(早稻)란 일찍 수확한다는 조생품종으로 게다국에서 대한 수출용으로 와세다(早稻田)대학 농대에 의뢰 개발하였기에
조도라 이름한 것이다.
세 사람은 골머리를 끙끙 앓다가 각부로 가서 병판대감이 보낸 서찰의 문구를 검토하여 보았다.
자기네들이 그토록 사정하여도 듣잖던 관리들이 아무리 병판대감이라지만 서찰 한 통에 고분고분해진 건 이상하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맞고 보낼래? 웃고 보낼래? 세 사람은 뛸듯이 기뻤다. 그래서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아항!…
이후백 대감은 세 사람을 보내고 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상대가 대장의 말을 들을 때하고 종사관의 말을 들을 때하고 이렇게 업무추진에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된기라. 여기에 생각이 미친 대감은 신임하는 군관 하나를 은밀히 불렀다.
장군관! 자네는 성씨 덕택을 톡톡히 본단 말이야.
자넨 장군도 아니지만 일단 부를래면 장군~~~ 이렇게 발음이 되니,
참! 그런거 보면 사람은 가문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지.
변씨 문중에서는 검사직을 시켜준 대도 한사코 마다하지.
대감! 왜 그러하옵니까?
변검사, 즉 똥이나 검사하기는 싫다는 거지.
고씨 문중에서는 추장직에 뽑혔는데도 사양했다지.
대감! 그건 또 어인 일이옵니까?
고추장이나 푸고 있기는 싫다는 거지.
그럼 대감마님! 양씨 문중에서는 계장자리는 줘도 안하겠구만요?
그렇겠지, 양계장이나 운영한다는 소리 듣기 싫겠지.
그럼 대감마님! 김씨문중에서는 치과병원은 개업 안하겠구만요?
암! 그럴거야, 김치과 김치과 하면 반찬가게인 줄 알테니까?
장씨들은 병원을 개업하면 손님이 하나도 안 온다잖아요.
그렇겠구나. 병을 고치기는커녕 장의사한테 장롑치루는 줄 알고.
박씨 문중에선 성균관 박사로 임명한대도 박박사 듣기 싫어 사양하고, 석씨 문중에선 석사에 임명한대도 석석사 듣기 싫어 안한다죠?
허허, 그 녀석! 너하곤 말빨이 달려서 농담을 못하겠구나
대감마님! 농담 따먹기는 그만하옵시고요… 소인을 부르신 용건은 무엇인지요?
흠! 역시 장군관이 내 맘을 잘 알아, 후에 큰 인물이 될거야.
자네는 내일부터 세 종사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나한테 보고하도록 하게. 눈치채지 않도록 은밀히 하여야 하네.
이 장군관의 이름은 외자로 만(晩)이고 호는 낙서(洛西)로 나중에 이괄의 난 때 도원수로 임명되어 반란을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공훈을 세우게 되는 바, 이 당시엔 병조의 일개 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군관은 다음날 세 종사관의 행동거지를 등청할 때부터 퇴청할 때까지 예의 감시하였다가 와서 보고하였다.
대감마님! 권종사는 본래 사람이 뚱하게 생긴 데다가 다른 두 분과는 출신이 틀리옵고
또 정종사와 류종사는 아무리 동년(同年 - 같은 해 과거급제)이라고는 하지만 나이가 십여세나 틀리옵는 만큼 피차 간에
언어수작은 별로 없어서 하루종일 주고받는 말이 열 마디를 넘기지 못하옵니다.
정말 입에서 풀이 돋을 지경이옵니다. 그 세 분이 각각 책을 가지고 와서 온종일 그 책들만 들여다보고 있삽는데,
특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지런히 책장들을 뒤적이는 품이 마치 그 책 속에서 그 일을 해결할 묘리라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 책이 대체 무슨 책이던가?
정종사가 읽는 것은 <손자(孫子)>이옵고 류종사의 책은 <성리대전(性理大全)>이온 줄 알겠으나
권종사는 남의 눈을 피해가면서 보옵기 때문에 무슨 책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그가 혼자 책을 보고 있을 때 소인이 넌지시 앞으로 가서 보려니까 족제비 병아리채듯 후다닥 치우는데 얼핏보니
겉장에 삼국(三國)이라는 두자가 씌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 참. 실없는 사람들이로구만!
대감마님! 실없는 사람들이라면 봉제공장에 연락할깝쇼?
예끼!. 철없는 사람들이란 뜻이라네.
그럼, 포철에다 연락하면 되겠습니다.
장군관! 자네 개짖는 소리 자꾸 할건가?
옙! 진도에다 연락하겠습니다. 개짖는 소리 말라고요.
장군관! 이게 습진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일 북쪽 오랑캐나 바다 건너 게다국이 침입해 실제로 싸우는 판이었더라면 어찌될 뻔 했겠소?
옙! 인명은 얼마나 축이 나고 나라꼴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상상만해도 소름이 죽죽 끼치옵니다.
류성룡은 당대의 공자니 맹자니 하는 퇴계 선생의 수제자라니까 그저 성리대전이나 붙들고 죽을동 살동이고,
정언신은 현임 영의정 이준경 대감이 쌍피(정승감이자 장수감)라고 극구 칭찬하니 병서에 미친다고 하지만
그래 권율은 소설 삼국지 나부랭이나 읽고 있으면서 나라도 다스리고 외적도 막아낼 셈인가? 쯧쯧쯧…
떡잎이 놀놀한가요? 대감마님?
제 나라가 어떠한 역사를 거쳐 왔고 또 지금 어떠한 형편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야 무슨 일을 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요사이 젊은 것들이라는 것이 모두 세 종사관과도 같아서 우리의 것은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경이니
나라의 앞일이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도다.
예를 들면 우리의 창이나 타령은 한 곡조도 모르면서 팝숑이니 랩숑이니 하는 것은 수패루(數牌累)도 모르면서 끝까지 불러댄단 말씀이야.
그 랩숑이라는 것은 거꾸로 부르면 피가 부족하다느니 사탄을 숭배하자느니 한다는 가사가 흘러나온다는 것 아닌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고전소설은 고리타분하다고 하면서 단 한권도 안 읽으면서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은 열불나게 읽는다니…
조만간 개리포니아(開里浦尼亞)쌀로 튀밥 튀겨 먹을 놈들 아닌가?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
저희들은 배우려고 안하겠지만 내라도 억지로 갈쳐야겠다. 많은 사람은 못 가르친다 할지라도 우선 한둘이라도 갈쳐야겠다.
이후백 대감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을 하면서 세 종사관, 정언신 류성룡 권율을 깨우칠 작전을 세웠는 바…
… 양물을 흔들어 주면 계집이 즐겁고
… 천하를 흔들어 주면 백성이 즐겁다
상감의 친열을 나흘 앞두고 이대감은 세 종사관을 불렀다. 그리고 내일 습의(習儀=예행 연습)를 거행할 터이니
내일 새벽에 자기가 좌기(坐起=관리의 공식 집무)하기 이전에 반드시 먼저 와서 대령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런데 세 사람은 왜 먼저 와서 대령하라는지 영문도 모를 뿐만 아니라 또 좀 늦기로서니 그까짓거 대수냐 소수냐 잘못되야 분수
겠지 하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종사관 중에서 제일 선참에 도착하였다는 정언신이 병조에 들어와 보니 대장 이대감이 좌기하고 난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맨 꼴찌의 권율이 도착한 때는 홍영조의 뜀박질로 시오리는 족히 다녀올 시간이었다.
자네들이 장령(將令)을 알기를 손톱 밑에 때같이 알던가 아니면 거지 발싸개처럼 아는 모양이구만?
어디 내일은 꼭 내가 좌기하기 이전에 와서 대령하도록 하게. 습의는 내일로 물려서 시행하겠네.
세 종사관이 다소 늦었기로 습의를 연기해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그렇게 연기함으로써 책임관계를 분명하게 하였다.
그 이튿날 세 종사관은 완죤히 쫄아가지고 한만(閑漫)히 방심하였다가는 예기치 못한 액을 당할지도 모르겠다고 잔뜩 켕겨서 일찍 일어났다. 닭이 세 홰를 칠 때였다.
각기 집을 나서서 먼동이 채 트기도 전에 일제히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미 대장은 벌써 좌기하고 앉았다가 노기등등한 눈으로 그들을 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간담이 녹는 듯 하고 콩알만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대들이 군법을 알기를 오뉴월 버선짝으로 아는가? 아니면 칠팔월 쉰밥으로 아는 건가? 군법은 호랑이라는 말 모르는가?
어디 하루 더 여유를 주는 것이니 내일은 어떤 일이 있든지 나보다 먼저 오렷다. 습의는 다시 하루 연기하겠네.
세 종사관은 코가 댓자나 쑥 빠져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하루 종일 어떻게 보냈는지 얼얼한 가운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청하자마자 집으로 정신없이 직행하였다.
장군관은 이대감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껄껄거리면서 웃었다.
대감마님! 마님의 수법이 황석공(黃石公)의 수법과 진배없습니다.
예끼! 이 사람아. 황석공의 수법이란 게 도대체 뭔가?
아이고, 대감마님의 시치미는 알아 드려야 한다니까!
글씨, 난 황석공의 수법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으니 설명 좀 해보게나, 잘 아는 자네가…
이거 병판 대감마님 앞에서 아는 체 해야 하니, 공자 앞에서 문자 쓰기가 되겠군요.
아무렴 어떤가, 번데기 앞에서 주름도 잡는 거지. 경우에 따라선.
초한지(楚漢誌)에 보면 박랑사에서 창해군 범발장사와 더불어 진시황 암살에 실패한 장량이 하비로 도망가서 지낼 때
다리에서 이상한 노인을 만나지요.
신발을 다리 아래로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장량에게 주워 달라는 거예요.
주워다 주면 떨어뜨리고, 주워다 주면 떨어뜨리고,
이거 누구 똥개 훈련시키는 건가. 암만해도 싸이코 영감을 잘못 만난 모양이군.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꾹꾹 참고 무려 다섯번을 그러고 나니, 그 노인 한다는 야그가…
요즈음 젊은애들 치곤 참을성이 있고 싸가지가 됐군. 아가야!
천하라는 건 한 사람을 죽인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흔들어야 얻어지는 거란다. 라는 묘한 말을 남기고 시장쪽으로 걸어가는 겁니다.
여기서 장량의 머리에 쵸쿠전구가 번쩍하면서 이 노인이야말로 보칠산과 같은 난세를 구할 이인(異人)임에 틀림없다.
라는 생각이 든 거지요. 얼른 쫓아가서 그 노인의 가랑이를 붙잡고 사부님! 한 수 갈쳐 주십시오. 하고 매달렸죠.
그러자 그 노인은 매정하게 놔라! 한 벌밖에 없는 바지다. 하고 뿌리친 겁니다.
사부님! 제 단벌바지라도 벗어 드리겠사옵니다. 천하를 흔드는 법을 갈쳐 주시옵소서. 하면서 얼른 바지를 벗었지요.
이렇게 바지를 벗어 줄 정도의 지극한 정성을 교포지정(交袍之情)이라 한다죠?
이때 장량이 속에 입고 있던 팬티가 노팬티였다죠. 자연산 통가죽색으로 누리끼리 빛나는...
바지까지 벗은 장량의 성의에 감복한 노인이 그의 건들건들하는 양물(陽物)을 흔들어 보면서
고놈! 강(强) 장(壯) 대(大)의 3박자를 골고루 갖추었으니 장갈들면 계집들이 홀라당할 것이요,
군왕을 모시면 현신이 될 것이고, 선도를 닦으면 신선도 될 수 있으리로다.
모름지기 사내란 양물도 잘 흔들어야겠지만 천하를 흔드는 비법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를 진정 배우고자 한다면 닷새후 해뜨기 전 다리 건너편 오동나무 밑으로 오라 고 말하곤 사라지죠.
신기한 점은 양물도 다리 사이에 있지만 고목(오동나무)도 다리근처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뒤에 덧붙인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아가야 양물을 잘 흔들면 계집이 즐겁고 천하를 잘 흔들면 백성이 즐거운 법이란다.
닷새 후 아침에 나무 밑으로 가니 노인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아이가 어른을 기다리게 한다고 벌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야단만 직사하게 맞지요.
다음날 꼭두새벽같이 나갔으나 역시 노인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노인은 장량을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이렇게 야단쳤다죠.
오동나무 열매는 언제나 동실동실하고
보리곡식 열매는 언제나 맥실맥실하고
보칠산은 선도에 언제나 독실독실한데
장량놈은 천하를 놓고도 느실느실한가.
정신이 번쩍 든 장량은 다음 날은 아예 그럼 좋다 하고서 그만!!! 맞다 맞어 그 노인이 황석공이다.
장량에게 태공병서(太公兵書)를 전해주는...
자네는 뙤나라의 역사에도 상당히 정통하구만. 자네의 그 명석한 화이바엔 못 따라가겠어.
자넨 틀림없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될거야. 인재 하나 키운다는 게 정말 너무너무 힘들어.
앞으로 이 땅에 큰 난리가 있을 것이고 그때를 대비하여 지금 인재를 길러 놓지 않으면 종묘사직을 온전히 보전하기가 어려워.
그렇다면 대감마님! 저 세 종사관이…
그렇다네. 저들 세 사람이 앞으로 닥쳐 올 난세를 헤쳐나갈 이 나라의 기둥이요 대들보들일세.
이번에 단단히 깎아놓지 않으면 기둥은커녕 이쑤시개도 못 될 것이여.
대감마님의 혜안(慧眼)이 놀라울 뿐이옵니다.
자네는 이미 나의 의중을 간파하였으니 절대로 발설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누설하면 자네의 혀를 뽑을 것이여.
다시 이튿날 세 종사관은 첫닭이 울 제 집을 나서서 세 홰를 막 칠 적에 도착하였다.
오늘이야 설마 자기네가 먼저 왔거니 하고 염려없이 안으로 들어섰던 것이었다.
그러나 대청 한가운데는 등불이 휘황하게 대낮같이 걸리고 그 아래로는 군관들이 왔다리갔다리 하는 게 아닌가!
대장은 벌써 좌기하고 종사관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장령을 알기를 조까치 아는 저런 무엄한 죄인들을 당장 잡아 엎으라.
대장의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장(羅將)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세 종사관의 상투를 풀어 헤치고 맨땅에 꿇어 앉혔다.
너희들 귓구멍의 귀지를 후비고 단단히 들어라! 군법에 의할 것 같으면 장령을 단 한번만 어겨도 효수를 하는 법이어늘
너희는 연 사흘을 계속해서 장령을 어겼다. 막중한 습의를 이제는 연기할 수 없는 바 내일은 바로 친열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친열이 끝나는 대로 군문에서 참하여 저자에 효수하겠노라. 그 동안은 옥에 가두어 두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체 면회를 금한다.
이 죄인들을 압령하여다가 옥에 가두어 두어라.
이 소문은 삽시간에 각 관청을 한바퀴 뺑돌아서 온 도성 안에 쫘악 퍼졌다.
장차 효수당할 사람이 하나도 아니며 셋인데다가 그것도 보통 사람 노가리상같은 인물이 아니라 당대의 한다하는 명사로서
하나는 현임 영상의 애제자요 또 하나는 퇴계 선생의 수제자이고 마지막 하나는 현임 우상의 맏아들이 아닌가.
한양성은 때아닌 난리가 나 버린 것이었다.
종사관들의 가족들이 애를 태우는 것은 물론 그의 절친한 친구들까지 모두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셋을 살려야 한다고 자담하고 나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며 이리 청을 넣고 저리 청을 넣고 싸돌아다니는 사람이
수십명이나 되는 통에 모든 관청의 업무가 마비가 될 지경이었다.
관청이 이 정도였으니 여염집에서는 오죽 했으랴.
주막마다 장거리마다 두사람만 모이는 곳이면 이것이 화제가 되고 주제가 되어서 야단법석이었다.
그래서 이때 나온 유명한 말이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리 청 저리 청…
말죽거리 무청…
입달기는 조청…
세도당당 강청…
속쓰릴땐 속청…
계집맛은 금청…
많은 사람들이 쑤군거렸다.
이 판서가 정말 죽일까요? 아니면 혼만 내 주고 용서할까요?
그건 군법을 모르고 씨부렁거리는 소리여.
군법이란 게 얼매나 무서운가 하면 앉으라고 하는 것을 섰기만 하였어도 장령을 어긴 죄라고죽일 수가 있는 것이여.
막말로 조지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하는 게 군법인겨. 게다 이 판서가 어떤 사람이여. 한다면 하는 사람 아닌가.
그러니께 그 사람 자손이 400년 뒤에 사헌부 대사헌 겸 의정부 영의정 감이 나올끼여.
이름하여 창회라고. 그때 세상 사람들이 그럴꺼여. 와! 자기 선대 할아버질 닮아 못말리는 사람이라고.
창회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여. 상왕(上王)의 부정부패를 조사한다고 질의서를 일해 태상왕과 노가리 상왕에게 들이민 사람 아닌가,
또 현임대왕에게도 법과 권한을 존중 안한다고 사직상소를 올리고 미련없이 떠나갔다가 대왕이 몸소 사과를 하자 돌아온 사나이 아닌가.
이번에 세 사람은 아라써국에서 예친(芮親)이 오고 아무러케국에서 구린돈(具隣敦)이 와서 예구(芮具)봐쥼쇼,
에구봐쥼쇼 하고 사정해도 못 살아날 거여. (에구봐쥼쇼라는 말의 어원이 이렇게 생기게 됨).
이판서가 본래 소갈머리가 없고 고집머리가 세서 큰그릇이 못되거든.
군법으로 세사람을 죽이기야 할 수 있겠지만 그 뒤를 어찌 감당할려고 뒤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세 사람이 틀려먹었어. 새로 나온 사람들이라 경험도 없고 조심성이 너무 없었어.
그래 남의 막하에 있으면서 장령을 세 번씩이나 어기다니. 죽고 싶으면 무슨 짓을 못해!
이렇게 왈가왈부 중구난방 횡설수설 갑론을박 여차저차 구구잡설 시끄러웠다.
영의정 이준경 우의정 권철 이하의 모든 고위관리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로지 병판 이후백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안 보는 척 시선을 깔고 코끝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남의 심중을 파악한다는 말에 코치(=꼬끝)보다 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이 멋지다고 아무러케국놈들이 나중에 허락도 없이 훔쳐가서 coach… 라고 표기했다는 낭설이 있다.
아무튼 모두들 말은 못하고 똥끝은 타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입만 벌리면 속타는 연기가 폴폴 나고 엉덩이에서는 똥끝 타는 냄새가 펄펄 끓어올랐다.
… 역사를 통하여 민족혼을 깨닫고
… 선도를 통하여 자유혼을 찾는다
세 종사관의 운명을 두고 세간에서 구구하게 떠들 때 의정부의 삼공육경(三公六卿)들도 어째야 좋을지를 모른 채
오직 이후백의 눈치만을 살폈다. 주장(主將)이 제 막하를 군법으로 다스린다는 데는 그 어느 누구도 간섭하고 나설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군법대로만 집행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영의정 이준경 대감은 슬그머니 서찰을 써서 이후백에게 보내었다.
강직하고 청렴하기로 소문난 영상이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아무튼 영의정 이준경 대감이 청탁을 넣는 서찰을 쓰기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공전절후(空前絶後)하며 유일무이(有一無二)한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었다. 우의정 권철 대감은 더구나 자기의 맏아들이 관련된 사건이라 공적 사리와 사적 정리를 담은
꽤 긴긴 서찰을 보냈다. 그 사연이 얼마나 긴지 지금까지 조선조 역사에서 가장 긴 서신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비수(瑞備手)가 개떡같기로 악명이 자자한 로우텔(LOWTEL)의 롱래타(籠來打) 배수토 5(排秀討五)에 선정되었더라.
각설하고 이후백은 친열 전날 당일만으로 얼마나 많은 서찰을 받았는지 서찰 가장 많이 받기 배수토 5에 뽑힐 지경이었더라.
그러나 이후백은 단 한통도 뜯어보지 아니하고 방석 밑에 다 쓸어 넣어버렸다. 그런데 서찰 속에는 뇌물로 돈도 들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덮은 방석이라는 뜻의 돈방석 이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다는 미확인 고향의 전설도 있더라.
물론 믿으면 복받고 말면 벌받는 전설이기는 하지만…
이판서는 단지 두 정승에게만 상급자에 대한 의례로서 삼가 높은 가르치심을 받들겠노라 하는 간단한 사연의 답장을 보내었는데,
답장을 초조히 기다리던 두 정승은 이렇게 간략한 내용을 읽고는 더욱 노심초사해진 바,
주변의 사람들이 무슨 내용이냐고 재우쳐 묻는 말에 맥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전해진다. 음! 노… 사… 연… 이었어.
그런데 의정부의 삼정승 가운데 유일하게 편지를 보내지 아니한 정승이 좌의정 오리 이원익 대감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기실 세 종사관은 조정 대신들의 중망을 한몸에 받고 있던 터수라
누구라도 구명의 방책을 생각하던 차이고 끈만 닿으면 이후백에게 청을 넣는 참인데 좌상으로서 오불관언하고 있는 오리 대감
의 의중을 아무도 짐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였다.
좌상과 영상 우상의 사이가 어긋난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가만히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전혀 좌상 오리대감의
의중을 간파할 수가 없게 되자 이런 말이 새롭게 생기게 되었다. 음! 오… 리… 무… 중… 이여.
그리하여 속내를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 오리무중(五里霧中-오리대감은 무중력 상태다)이라는 말이
이때 생기게 되었다는 낭설이 파다했다.
뒷날 세 종사관이 구명된 후 사람들이 어찌하여 좌상으로서 인명을 구하는데 잠잠하였는가 하고 술좌석에서 물었을 때
오리 대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여 다시 한번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고 한다. 음!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여…
습의하는 날부터 때 아닌 가을비가 부슬부슬 소리도 없이 부산정거장처럼 내리더니 친열하는 날은 제법 한 줄금을 했다.
오위의 군사들은 물독에 빠진 생쥐들처럼 되고 관리들도 꼴사납게 되고 구경하러 나온 백성들도 그렇게 많지 못하였다.
따라서 선조 임금의 흥심도 그만 깨져버려서 친열은 의외로 속히 끝났다.
친열이 끝난 후에도 군사들을 호궤(군사를 배불리 먹여 위로함)하느라고 또 며칠을 바쁘게 지낸 교열대장 이후백은
사흘째 되던 날 비로소 세 죄인을 불러냈다.
너희들을 아까운 인재라고 해서 살려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국가에 유용한 인재라면 한번쯤 용서하여 살려주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재인지 아닌지 내가 똑똑히 확인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 책 한 질을 닷새에 능히 외우는 사람은 인재로 간주하여 살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을 것을 각오하라.
이렇게 말하면서 경국대전(經國大典) 한 질씩을 내주었다. 사또(使道)의 처분대로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각각 책을 받아가지고 옥 속으로 들어갔다. 비교적 나이가 젊고 총기도 있는 서애 류성룡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나이많은 정언신이나 총기없는 권율까지도 죽기 살기 까무라치기로 외웠다. 경국대전은 모두 여섯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첫권 첫줄부터 끝권 끝줄까지 닷새만에 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닷새 뒤 심사날 서애 류성룡도 더듬거렸으며 나머지 두 사람은 빼먹는 곳도 많았다. 이후백은 또 한번 세 죄인을 내려다 보면서,
닷새 동안에 책 여섯 권도 못 외우는 것들이 무슨 인재랄 수가 있는가? 그러고도 너희들이 살기를 바란단 말이냐?
아이고, 사또.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한번만 기회를 더 주시면 확실하게 외우겠습니다.
정말이냐? 그럼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터이니 이번에는 이 책 한 질을 외우도록 하여라.
시(詩)나 문(文)은 빼뿔고 큰 대문만 외우도록하여라.
이렇게 말하면서 한 사람 앞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한 질씩을 내주었다.
세 사람은 또 각각 책을 받아 가지고 옥 속으로 돌아갔다.
책 권수가 전번보다 많았지만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여기 달렸기에 결사적으로 필사적으로 외웠다.
정언신과 권율이 줄줄 외울 정도였으니 류성룡이야 얼음판 위에서 바가지 타듯이 쭈욱 외워 버렸다.
그제서야 이후백은 세 사람을 마루 위로 올라오라고 한 다음 이렇게 훈계하였다.
이번 일은 첫째 법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만 둘째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 것도 알리기 위한 것일세.
자네들이 지금은 날 무척 꼽게 생각할 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깨달을 날이 있을 걸세. 나의 처사가 뜰은 사람은 말하게.
뜰다니요, 지당합신 말씀입니다.
세 사람은 그저 죽을 고비에서 빠져나온 것만 다행이라 고개를 숙이고 진정으로 심복한다는 태도까지 지어 보였다.
그후 권율이 늦게 과거에 급제해서 당상관에 오르고, 정언신 류성룡이 계속해서 정승이 된 것은 모두 이후백이 작고한 뒤의 일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승이 된데에는 열흘 동안 옥 속에서 집중적인 공부를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그것이 이후백 덕분이라고는 생각할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선조 25년 게다국이 조선을 침략하여 7년간이란 긴 전쟁이 터지게 되었다.
이 때, 평소 주둥이로만 애국하고 조선 것은 혼자 다 아는 척 하던 선비와 관리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서 열받은 백성들은 이들을 비꼬는 다음과 같은 동요를 지어 불렀단다.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오데가
구름 타고 날랐나
땅굴 파고 숨었나
애국애족 혼자 하던 아새끼들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눈물 땀물 다 빨아먹고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잡히기만 해봐라 아 조지야요
백성들 맘은 너덜너덜 걸래가 됐시유
오데로 갔나 오데로 갔나
콩가루 됐네 콩가루 됐네
알짜배기 없시유
껍데기만 남았시유
충군충성 혼자 하던 자슥놈들
콩가루 됐네 콩가루 됐네
뼈골 등골 다 빼어먹고
콩가루 됐네 콩가루 됐네
딸랑이만 남았시유 두쪽이야요
우리들 믿음 콩알콩알 콩가루 됐시유
콩가루 됐네 콩가루 됐네.
전쟁이 터지자 실상 그네들은 어느 고을에서 군사를 몇 명 담당해야 하고 어느 고을에 식량이 얼마나 비축되어 있고
심지어 어느 고을에서 어느 고을로 빠져야 길이 가까운 지 하는 면단위 행정조차도 졸도 모르는 생판 깡무식쟁이들이었다.
그래서 졸도 모르고 면장질 한다 는 말이 이때 생기었다.
그때 조정은 부랴부랴 류성룡을 도체찰사에 임명하고 권율을 도원수에 임명하여 게다군을 막아내게 함으로써 사직을 보전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전쟁 수행의 어려운 업무를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옥 속에서 읽었던
경국대전과 동국여지승람의 힘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이후백이야말로 진정 이인이었으며, 나라일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또 진국으로 후진을 키울 줄 아는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 후로 명사들이 감옥에 가게 될 때는 서책을 갖고 가서 열심히 독서하는 습속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는 모두 이때 부터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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