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술이 사람을 삼킨다

醉月 2008. 9. 2. 08:22


  세상에서는 독작을 하는 사람을 모주꾼이나 변변치 않은 주객으로 비웃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작을  하는  사람  나름대로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평생을 살아 오는  동안 슬플때나 괴로울 때면 으레 자작으로 시름을 달래는 버릇이 생겼다.
  조용하고 아늑한  곳에서 자작을 하노라면 마음에  안개처럼 끼었던 불안이나 괴로운 심사가  서서히 누르러지며,

때로는  도연한 기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관용대도의 금도를 자득하기도 한다.
  술기운이 몸에  스쳐 중추와  말초의 혈관을 도도히  누비고 순환하는 사이에 어느덧 취기에 의한  졸음이 와서 잠자리에 들면 

스스로 수신이 찾아들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간단히 자작을 하고 이튿날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한결 상쾌해지고 밥맛도 제대로 난다. 

그러나 울화가 치밀어 자작 과음을 한  이튿날에는 고역을 치르기도 한다.


  또 어쩌다 오랜만에 친한 벗과 만나거나 무관한 주석에 어울려 권커니 잣거니 대작을 하다보면 거나하게 취기가 돌고,

서로의 기고가 만장해지면 말수가 늘고, 흥에 겨운 육자배기나  유행가라도 한가락 뽑을 정도에  이르면 벌써 취기는 그 문지방을 넘어

두보가  '음중팔선가' 중에서 이백을 두고  노래한 이른바 주중선의 경지에 이르고, 여기서 더  지나치면 사람이 술을 마신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삼켜버린 상태의  주탄현상이 일어난다.  주탄이란  말은  법화경에 있는 말로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삼킨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명정,손수  상태에 빠져  버리는 수도 있다, 

이렇게 곤드레  만드레 고주망태가  되어 곯아떨어진  이튿날에는 명치가  쓰리고 아플 정도의 숙취로 고생을 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과음한 것을  후회하고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성화를 하고 바가지를  긁는 아내에게 이제  술을   끊어야겠다는  맹세를  하건만  그것은   작심삼일이요, 

허울좋은 넋두리에 불과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듯, 친구들 등쌀에 이틀이 멀다하고  다시 한 잔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근  20년전 언젠가는  술의 범절을  모르는 얼간이들을  비꼬아 주국헌장이란 너절한  만필을 지상에  발표하여 짓궂은  친구들로부터

주당  당수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들은 일이 있고 보면, 아마도 나는 그때가 가이 대가급(?)에 속하는 주객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이와  근력은 어쩔수  없는 것인지, 요즘의  주량은 옛날에 비해  거의 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줄어든 형편이다.
  흔히  약간 돌거나  살짝 미친  노이로제 환자에게  당신은 미쳤다고  한다면, 제가 과연  광인이라고 긍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게다.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  수다를 떠는  취객에게 당신은 취했다면  과연 고개를 끄덕여 취했노라고  정직하게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성싶다. 또  술처럼  진실한 물건도  없다.  술에  취하면  평소의  사상이나  불만  등이  거울처럼  비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라는  라틴어 속담이 있다. 곧 술속에 진리가 있다는 뜻이다.

술이나 마시며 흉금을 탁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자 할  때 흔히 이 말을 쓴다.

이  말은 로마 시대의 과학자  프리뉴스가  쓴  '박물지:  historia   maturalis'  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나라 속담의 취중진담에 방불한 말이다.


  또  술을  마시는 법도를  보면  지역사회의  풍습이나 사회계층, 

또는  주객 나름의 교양이나 취향에 따라 각기 특유의 타입이 형성되고 있음을 본다.
  목로나 살롱  등에 홀로 앉아 독작을  즐기는 형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술이든 닥치는 대로 남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덮어놓고 퍼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고주형, 

은근히 즐기는 애주형,

마실 줄 알면서도 애써 안 마시려드는 금주형,

돈이  아까워 못 마시는 엄살형, 아예 소주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중독형 등이 있다.
  또 맥주만을 마시는사람, 탁주만을 마시는사람, 소주나 고량주 또는 양주 같은 독주가 아니면 아예 술로 치지 않는 부류의 사람도 있다. 

대개 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간경변이나 동맥경화증 같은 만성질환에 잘 걸리는 듯하다.
  주량과 주질에  대한 기호는  술에 대한 내성과  체력에 좌우된다지만 옛부터 주유별장이란  말이 있다. 

즉,  대주객은 창자가  따로  있다는 뜻으로,  주량은 체구의 대소에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술과는  전혀 인연이 먼 부류의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밀밭에만 가도  취한다는  사람이다. 

술에 대한 일종의 특이체질이다. 정확히  말해서 알코올에  대한  히스타민  체질인  것이다. 

주기가  몸속에  조금만  들어가도 부작용이 일어나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덜덜 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토하고 설사하는 과민형도 있다.
  술버릇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음을 본다. 술을  마셨다면 몇 잔도 안 마시고 주정을  부리는 형,  주비형,  고성방가형,

접시를  받쳐들라  하여  옥경을  꺼내 과시하려는 노출증, 술  따르는 여성을 괴롭히는 사디즘 등의 별의별  기형이 다 있다.


  '열하일기'를 보면  중국에 갔던 우리나라 사신이  술 마시는 범절에서 망신을 당한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중국 상류사회의 신사들과  교환을 하는데 그들이 술을  조그만 잔으로  잔을 빨듯  홀짝홀짝 마시는 품새가  시답지 않은지라

큰  주발을 가져오라  하여 거기에 가득  채워 쭈르륵 한숨에  들이켰겠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찬탄이나  칭송은커녕, 

비웃음을 당하였는데  '그것은 술을 즐기며 마시는 게 아니라 논에 물을 데는 것이다' 라는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옛날 독서청공을  하는 문사나  선비들이 마시는 술은  청아한 분위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백의  '장진주'를 보면  호탕하고 방일한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쏟아져  바다에 들지만 되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대자연의 대범한  섭리를 내걸고  오직 술에 장취하여 만고의 시름을 잊자고 했다

  도연명의  '만가시'를 보면  오직 살아  생전의 한은  마냥 술을  마시지 못한 것이라 했다.
  송강 정철  선생의 '장진주',  가사를 보면 "한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무인이나  장수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예나  이제나 호탕하게 마셨던 모양이다.


  치주안족사란 말이  있다. 치주란 큰  잔에 가득 차도록  따른 술이란 뜻이다.
'치주안족사'란  한잔  술은  사양하고  말   것조차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십팔사략에 나오는 말로 번괘가 항우에게 한  말이다.

요즘에는 술꾼들이 억지로권하는 자을 받아 마실 때 혹은 권할 때 흔히 쓰는 문자다.
  이 지구 위에는  술을 무르는 미개인의 족속도 있다지만,

심산에  원주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술을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있어왔다고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그러나  술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감에 있어  필요선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필요악의 구실도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망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옛부터 불위주곤이니 주유병이란 말이  있어 왔다.  '불위주곤'이란  술 때문에  곤경을  겪는  일을 하지  밀라는 뜻이요,

'주유명' 이란 술은 무기와 같다는  뜻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도리어 몸을 해친다는 충고의 말이다.
  더욱이  현대에  와서는  술의  제조법과  종류가  다양해짐에  따라  가짜가 난무하고, 

누룩으로 빚은  순수한 곡주는  거의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가짜로부터 받는 술의 공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만천하 주객들에게 정녕 수난기가 닥쳐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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