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위기의 한국 조선업

醉月 2010. 1. 25. 09:04

위기의 한국 조선업
최악의 수주 가뭄에 중국의 역습까지

 장창민│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cmjang@hankyung.com│    

한때 국내 조선업은 ‘달러박스’였다. 수출 호조로 달러가 너무 많이 들어오면서 원화강세 현상이 나타나 정부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조선업체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주가 뚝 끊기면서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수주 가뭄이 계속되면서 앞으로 2,3년 후가 더욱 두려운 조선업체의 현황을 짚어본다.<편집자>  

  

2009년 12월 최근 서울 계동 현대 사옥.

14층과 15층은 밤이 늦도록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해외영업본부 임직원들이 늦도록 퇴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상선이나 플랜트 수주 상담을 위한 전화 통화는 밤새 이어진다. 영업팀 직원들이 인터넷에서 선박 발주와 관련된 외신을 뒤적이는 일도 잦아졌다. 하지만 매번 수주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세계 조선 ‘빅3’를 차지하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형 조선업체 영업팀 직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만 쳐다봤다.

“입찰 공고 뜰 때가 지났는데….”

이곳저곳 살펴보지만 입찰 소식은 없고 불안한 뉴스만 눈에 띈다. 페트로브라스가 국정조사를 받고 있다는 얘기부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까지.

“이러다 올해를 넘기는 것 아냐?”

브라질발(發) 대형 호재를 기다리던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제 발주 소식을 기다리다 지쳐 포기했다. 수십조원짜리 초대형 수주를 터뜨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페트로브라스가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들면서 이마저 포기하는 형국이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이 이처럼 대형 발주 소식을 목을 빼고 기다린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달러박스’의 수주 가뭄

국내 조선업계의 2009년 선박 수주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대형 조선업체마다 연초에 세웠던 수주 계획의 5분의 1도 달성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은 2009년 초 166억달러 수주 계획을 세웠지만, 경비함 등 지금까지 고작 20억달러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각각 100억달러의 수주 목표를 세운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중공업은 6억8000만달러짜리 LNG-FPSO(천연가스 생산 및 저장시설) 한 척을 수주한 데 이어 얼마 전 크루즈선 건조에 진출하며 간신히 체면을 살렸다. 대우조선해양은 3억달러 상당의 여객선과 유조선을 몇 척 챙긴 게 전부다. STX조선해양도 최근 유럽 선사로부터 옵션 계약분을 포함해 탱커선 몇 척을 수주한 것이 2009년 실적의 전부다.

현대미포조선 한진중공업 등 중견 조선업체들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그동안 해양부문이나 특수선 등에서 수주 명맥을 겨우 이어왔지만 대부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생 중소 조선사들은 이미 문을 닫기 시작한 지 오래다. C·중공업 녹봉조선 진세조선 등은 기업회생절차(워크아웃)를 추진했지만 이마저 불투명한 형편이다.

1년 가까이 수주가 끊기면서 대형 조선업체들조차 단기 유동성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넉넉한 여유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온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흐름에도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는 것.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결제마저 늦춰지면서 현금성 자산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어서다. 조선업체들의 ‘돈 걱정’은 이미 실제 상황이 됐다. 언제쯤 수주 물꼬가 트일지도 불투명하다. 조선업을 둘러싼 금융환경은 점점 꼬여만 가고 있다.

보통 대형 조선업체는 후판(선박 건조용 강재) 구매비용 등으로 분기당 1조~2조원 이상의 신규 운영자금을 투입한다. 이 돈은 대부분 신규 계약을 따내는 즉시 수주금액의 20%에 달하는 선수금과 네 차례로 나눠 받는 중도금으로 스케줄에 맞춰 충당한다. 하지만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는 데다, 이미 수주한 선박의 건조대금 결제마저 발주사의 요청으로 늦춰지면서 단기자금 운영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대폭 줄어드는 반면 매출채권은 늘고 있다. 매출채권은 매출이 일어났지만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외상’을 뜻한다. 2008년 회사마다 1조~2조원대에 머물던 대형 조선업체들의 매출채권 규모는 4조~5조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바닥을 드러냈다. 2008년 하반기 이후 신규 수주가 사실상 끊기면서 선수금 유입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9월 말 4조원을 웃돌던 현금성 자산이 최근 1조원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현금성 자산도 같은 기간 바닥을 쳤다.

   

  선박 건조 장면.

결국 대형 조선사들은 7년여 동안 이어온 무차입 경영을 사실상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상반기에 단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및 CP 발행을 단행했다. 2002년 회사채를 발행한 이후 지금까지 무차입 경영을 해온 현대중공업도 3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삼성중공업도 총 7000억원에 달하는 CP를 발행한 데 이어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추가 발행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조선 3사는 3~4년치 일감을 쌓아놓고 있어 중·장기적인 유동성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단기적인 현금 흐름은 신규 수주 실종으로 인해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시장에선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대표 조선사들이 이미 순차입으로 돌아선 것에 주목하고 있다. 조선업체가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회사채 공모 시장을 두드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약 2조8000억원 내외의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종합상사 인수 대금을 마련하려면 대규모의 외부 차입이 필요한 상태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이미 2009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각각 2130억원과 1703억원의 순차입으로 전환했다.

따라서 회사채 시장 참가자들은 조선 3사가 추가로 회사채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선 빅3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운용자금 자체를 대기도 쉽지 않은 상태”라며 “풍력 등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투자금과 일상적인 고정비용을 조달하려면 은행 차입과 회사채 발행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 인도 연기 및 발주 취소 사태 오나

국내 조선업계의 문제는 수주 가뭄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규 수주는커녕 글로벌 선사들의 잇따른 발주 취소 및 인도 연기 요구로 이미 받아놓은 물량을 지키기도 벅찬 상태가 됐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등 대형 조선회사에도 해외 선주들의 선박 발주 취소 또는 인도 연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대형 업체들은 미리 받아놓은 수주 물량이 많아서 당장 타격을 입을 우려는 적지만, 해운·조선 시장의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물론 국내 대형 조선사들 중 수주 취소 사실을 대외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주 취소 사례 공개는 주가와 유동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글로벌 선사들이 흔들리면서 우려가 실제 상황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 CMA CGM사가 채무불이행(모라토리엄) 선언을 검토하고 나선 게 대표적 사례다. CMA CGM의 부채 규모는 약 35억유로(한화 6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 회사의 회생을 지원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3위(약 100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인 CMA CGM이 만약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선박 발주를 취소한다면 국내외 조선·해운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CMA CGM으로부터 수주한 선박은 총 43척. 금액으로 따지면 총 50억달러 규모로 국내 전체 조선소의 한 달치 일감이다.

국내 대형 조선회사 중 CMA CGM으로부터 가장 많은 선박을 수주한 곳은 현대중공업으로 2010년까지 1만1356TEU급 컨테이너선 9척을 인도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만3300TEU급 8척, 삼성중공업은 8465TEU급 5척을 각각 수주했다. 현대미포조선은 로로선(자동차 운반선) 6척을 수주해놨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조선소와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물량을 합해 모두 15척이다.

문제는 CMA CGM이 시작이라는 점이다. CMA CGM이 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리면서 글로벌 해운업계에 연쇄 부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인 컨테이너 물동량 감소와 사상 최악의 해상운임 폭락 사태로 ‘빅3’ 해운사까지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스스로 출혈을 감수하면서 컨테이너 운임을 일정 수준 아래로 묶어두는 치킨 런 게임을 벌여온 후유증 탓이다.

출혈경쟁과 최악의 시황 침체가 맞물리면서 선두권 선사와 후발주자가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 선박금융회사인 로이드 펀드가 4억5880만달러 규모의 신규 선박 발주 물량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글로벌 해운회사들의 위기감은 더 높아졌다.

   

독일 최대 해운사인 하팍로이드는 정부의 대출 보증이 연기되는 등 유동성 위기가 가시화하자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다. 머스크는 2009년 상반기 컨테이너 부문에서 9억610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내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본사를 통합센터와 서비스부문으로 분할하고 본사 직원 중 100명을 감원했다.

특히 독일 해운회사인 클라우스 페더 오펜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 이 회사가 국내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은 총 44척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회사가 발주한 물량은 현대중공업 7척,삼성중공업 5척,대우조선해양 24척,대우조선 자회사인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8척 등이다. 세계 5위 컨테이너 선사인 독일 페더 될레 쉬파르츠사도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글로벌 선사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후폭풍을 국내 조선업계가 온몸으로 맞는 형국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아직까지는 무더기 발주 취소나 대금 미지급 등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수주 취소나 인도 연기 요청을 받지 않아서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이미 선수금과 중도금을 받았고 정부에 신청한 구제금융이 받아들여진다면 조선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조선업계의 위기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대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일부 인도 연기나 취소 요청이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국의 역습

세계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의 선박 건조용 도크.

수주 가뭄과 선박 발주 취소 등의 악재로 국내 조선업계가 움츠리는 동안 중국 조선업계는 역습에 나섰다. 세계 조선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한국 조선산업은 남아 있는 일감인 수주잔량 기준으로 2009년 11월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2000년 일본을 추월하며 정상에 오른 지 근 10년 만이다.

국제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09년 11월 기준으로 중국의 수주잔량은 5496만218CGT(표준화물선 환산t수)로 5362만6578CGT를 기록한 한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의 선박 수주잔량 점유율은 34.7%로 한국(33.8%)보다 1%포인트가량 앞섰다. 수주잔량은 전체 수주량에서 인도한 물량을 뺀 것으로,조선산업의 역량을 평가하는 통상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신규 수주량에서도 중국은 2009년 11월 말까지 270만CGT(52.3%)를 확보,164만CGT(31.8%)에 머문 한국을 따돌렸다.

근 10년간 수주잔량에서 1위를 지켜온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에 추격을 당한 것은 2008년 말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선박 발주가 끊긴 탓이다. 컨테이너선,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주력해온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중국 조선업계는 저가 전략을 앞세워 중·소형 벌크선 등을 꾸준히 수주해왔다.

물론 중국 내 해운사의 발주 물량이 대부분 자국 조선사에 집중된 탓도 있다. 중국보다 앞선 건조 시스템을 가진 한국 조선업계의 건조 속도가 중국보다 빠르고 인도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잔량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2009년 11월 말까지 인도량에서는 한국이 1281만CGT로 중국(879만CGT)을 크게 앞선 상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중국이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저가 수주를 통한 싹쓸이에 나섰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선박금융 지원은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경쟁력을 무력화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국영 수출입은행이 선박 12척을 발주한 이란 국영 해운사인 NITC사에 선가의 90%에 달하는 규모의 선박금융 지원을 약속하면서 물량을 싹쓸이했을 정도. 상하이조선과 다롄조선 등 중견 조선사 2곳이 32만DWT(재화중량t수)급 초대형 유조선(VLCC) 12척을 척당 1억달러에 수주하는 데 성공한 것.

중국 조선사 2곳이 국내 조선업체들을 가뿐하게 따돌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 국영 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이 배를 발주한 NITC사에 선수금도 아닌 전체 배 값의 대부분을 오히려 선주에게 대출해줬다. 당시 중국 조선사들이 제시한 선박 수주 가격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제시한 수준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선박금융을 앞세워 선주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중국 정부가 조선산업 육성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제시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 수출산업 최고의 ‘달러 박스’로 꼽혀온 조선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중국의 추격으로 세계 1위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대형 선박 발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양적인 면에서 중국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 선박 건조량 및 생산시스템 면을 고려할 때 위기로 받아들일 단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고부가가치 선박건조 기술과 납기 준수 등에서는 중국의 실력이 아직 한국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급속히 위축된 글로벌 대형 선박 발주가 재개될 경우 한국 조선업계의 1위 재탈환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한국 조선산업 기술력의 80% 수준에 근접한 중국에 양적인 면에서 추격을 허용한 것은 분명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라면서도 “중국 조선업계는 선박 건조 과정에서 품질과 기술 경쟁력의 척도로 꼽히는 ‘납기일 준수’가 안 될 정도로 격차를 보이고 있어,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2010년이 더 걱정

그러나 세계적인 발주량 감소 추세 속에서 저가 수주 전략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이 더욱 속도를 내 국내 조선업체들의 타격은 더 커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업계는 아직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지만 세계 해운경기가 장기 불황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적어도 2010년까지는 수주 가뭄이 해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있어서다.

이 같은 양상이 지속될 경우 ‘수주잔량 감소→중국과의 출혈경쟁→채산성 악화→구조조정 돌입→산업경쟁력 약화’라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는 최근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및 지원방안’을 발표, 신용위험평가에서 C(워크아웃 대상),D(퇴출 대상)등급을 받은 8개 중소 조선사가 수리조선소나 블록공장 등으로 사업을 전환하면 지원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조석 지경부 성장동력실장은 “8개 조선사는 현행 사업으로는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이들 기업이 과거의 블록공장 등으로 사업을 재전환하는 길을 터주는 게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선박펀드가 선박을 매입할 때 투자하는 구조조정기금의 비율을 최고 60%로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지원책이 조선업 전반의 위기감을 잠재우진 못하고 있다. 이미 증권업계는 국내 조선사들이 외부차입에 나설 수 있고 치열한 가격 경쟁에 노출됐다며 2010년 조선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유지했다. 중도금 납입 지연이 심각하고 2007년 이후 고가에 수주한 선박의 인도 연기가 여전할 것으로 내다봐서다.

 

수급도 비우호적이다. 우리나라 주력 선종인 컨테이너선이 심각한 공급 초과 상태에서 2010년과 2011년 공급 증가율은 10%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조선사들은 이미 생존을 위해 선종(船種) 구분 없이 가격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브라질과 중국, 러시아 등이 자국 건조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에 국내 조선사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형 조선업체들도 ‘돈이 안 된다’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특수선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처지가 됐다. 중·소형 조선사 몫이라고 제쳐뒀던 선주들도 하나둘 챙기기 시작한 것.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을 따지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며 “요즘엔 병원선 급수선 등 아프리카 오지에 주로 쓰이는 중·소형 선박 시장까지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장섭 조선협회 부회장은 “예전만큼 회복되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및 풍력 등 신사업 확대로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립기업 최초 100억달러 수출 달성한 대우조선해양
Vision 2020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비상하라!

구자홍│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기세에 밀려 많은 군사를 잃었던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이에 이순신은 휘하의 판옥선(板屋船) 24척, 협선(狹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을 이끌고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했다. 이때 원균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70여 척의 전선을 모두 잃고 겨우 6척(판옥선 4척, 협선 2척)으로 합세했다.

1592년(선조 25년) 5월7일 낮 12시경.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해서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게 맹렬히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의 결과 아군은 별 피해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큰 전과를 올려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이어 합포(合浦·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적선 5척, 다음날 적진포(赤珍浦·통영시 광도면)에서 적선 11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두산백과사전 ‘옥포해전’

대우조선해양 조선소는 임진왜란 첫 승전지인 경남 거제시 옥포만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흔히 ‘옥포조선소’라 불린다. 거제도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 옥포만은 바람이나 태풍의 영향을 적게 받아 배를 짓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1973년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옥포만에 건설 중이던 조선소를 1978년 대우그룹이 인수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의 전신인 대우중공업이 탄생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 당시 순환출자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채권단이 제시한 5년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2년여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8년 한해 11조746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 1조316억원, 순이익 4017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118억달러의 영업실적을 기록해 3년 연속 100억달러 이상 수주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에는 수주 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했지만, 일찌감치 수주해놓은 물량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2009년 11월30일 서울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46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대우조선해양은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 등 여러 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대기업이 수상한 전례는 있지만, 조선과 해양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기업이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82년 1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대우조선해양은 3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00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이테크 고부가가치 선박의 대명사인 LNG선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건조해 전체 시장의 32%를 점유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운항되는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의 20%를 건조하는 등 세계적인 기술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웅장한 옥포조선소

서울 서대문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옥포조선소까지의 거리는 약 411㎞. 자동차로 5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김해공항에서 가더라도 육로를 이용하면 자동차로 2시간 가까이 가야 한다. 창원 마산을 지나, 고성과 통영을 거쳐 거제까지 143㎞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 조선소가 배를 짓기에 최적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보니, 조선소를 방문하려는 이들에게는 교통이 다소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외 선주 등 국내외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김해공항에서 옥포조선소까지 전용 헬기를 운항하고 있다.

2009년 12월9일 오전 9시40분. 김해공항 계류장 우측에 있는 헬기장에서 옥포조선소로 향하는 대우조선해양 헬기에 탔다. 프로펠러 돌아가는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떠오른 헬기는 곧바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렸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남해 바다가 나타났다. 10분 남짓 남쪽으로 내려가자 웅장한 옥포조선소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조선소는 삼면에서 산이 바다를 감싸안은 듯한 옥포만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소 상공으로 진입하자 골리앗 크레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소에는 900t급 골리앗 크레인 2대와 3600t급 해상 크레인 2대, 그리고 축구장 8개 넓이의 100만t급 드라이 도크 등 초대형 최신 설비들이 즐비했다. 약 429만㎡(130만평)의 드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조선소는 일단 그 규모면에서 보는 이를 압도했다.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건조를 주문한 외국 선주들의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는 ‘Trust Hall’ 1층에서 회사 소개 비디오를 잠시 본 뒤 자동차를 타고 조선소를 둘러봤다. 걸어서 조선소를 돌아보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나절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조립된 블록을 이어 붙이면 거대한 상선이 완성된다.

새로운 노사문화의 상징

트러스트 홀 바로 앞에는 ‘그랜드 블록 숍’이 우뚝 서 있다. 2008년까지만 해도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의 주차장으로 사용됐지만, 2007년 수주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노사합의를 통해 증설한 공장이다.

공장 안내를 맡은 홍보2팀 김형식 차장은 “그랜드 블록 숍은 새로운 노사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이라며 “노사가 한발씩 양보해 대우조선해양의 생산능력을 높여 함께 발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선소는 ‘투쟁’의 대명사처럼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른바 ‘골리앗 투쟁’이 가능한 곳이 조선소 아니던가. 그랜드 블록 숍은 선박의 각 부분 조각이 조립돼 블록으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각자 따로 존재하던 부품이 모아져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랜드 블록 숍은 첨예하게 대립했던 노사가 과거 대결구도를 딛고 이제는 상생 발전의 파트너로 새로운 관계에 들어섰음을 웅변하는 듯했다.

제1도크로 향하는 조선소 곳곳에는 절단 작업을 마친 판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고, 조립된 블록을 운반하는 차량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하나의 상선이 만들어지는 데 들어가는 철판의 수는 대략 1만개로 비행기에 들어가는 철판 수보다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우조선해양은 고유의 생산방식에 따라 손실을 최소화하는 라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신 IT 기술을 기반으로 전사 네트워크를 이용해 설계에서부터 생산, 인도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을 전산시스템으로 관리, 운영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외국 조선업체보다 선박을 빨리, 그리고 더 잘 만들 수 있는 비결이 효율적인 생산 공정 관리에 있는 셈이다.

김형식 차장은 “중국이 값싼 인건비로 무장해 조선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아직 우리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며 “수많은 공정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길이 531m에 달하는 제1 도크에서는 두 대의 배가 동시에 조립되고 있었다. 앞에 있는 배는 선체가 모두 완성된 형태로, 뒤에 있는 배는 절반만 만들어진 채로 블록이 조립되고 있었다. 이른바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최초로 시도한 ‘Tendem 공법’이다. 조선업계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으로까지 칭송받는 이 공법은 이제 웬만한 조선소에서 모두 따라 하고 있을 정도로 그 효용성이 입증됐다.

생산관리팀 강승우 이사는 “도크의 길이가 충분하기 때문에 두 대를 동시에 건조할 수 있다”며 “마무리 작업을 거쳐 앞에 있는 선박을 내보내고 나면, 뒤에 있는 선박을 앞으로 이동시켜 선체를 완성하고, 곧바로 뒤쪽에서는 새로운 선박을 조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박 한 척을 건조하다보면 소요되는 인력이 공정마다 달라, 어느 때는 많은 사람이 투입되고, 또 다른 공정에서는 인력이 남는 불균형이 생기는데, 두 척을 동시에 건조하면 인력을 고르게 안배해 효율적으로 도크를 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우조선해양은 효율적인 생산 공정관리로 선박을 더 빨리, 더 잘 만들 수 있다.

LNG선의 대명사

IMF 외환위기 당시 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할 만큼 위기를 겪기도 했던 대우조선해양이 빠른 시일 내에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LNG선 등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꾀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상선 한 대의 가격이 8000만달러에서 1억달러 정도 할 때, LNG선은 1억6000만달러에서 2억달러로 두배 가량 비싸게 가격이 형성돼 있었다.

경영전략팀 안호균 부장은 “상선 건조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제품 브랜드 전략을 편 것이 바로 LNG선에 대한 투자였다”며 “고난도를 요하는 고부가가치 분야인 LNG선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기술 개발과 함께 선투자를 했던 게 적중하면서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크아웃 졸업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은 ‘LNG선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며 재기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난이도가 높은 대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부장은 “우리 회사는 2012년까지 조선과 해양을 중심으로 재도약하고, 2020년에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며 “이를 위해 기존의 조선해양 중심에서 해양플랜트와 에너지 사업 분야로 사업 영역 확장을 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은 현재 30~40% 수준이지만, 향후 50~60%로 그 비중을 차츰 높여나간다는 것.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서 해양플랜트 분야에 대한 전망은 더욱 밝아졌다. 과거 대륙붕에서 석유와 가스 등을 캐냈다면, 해양플랜트선이 건조되면서 이제는 심해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안 부장은 “광구개발에 지분투자를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우리 회사의 미래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광구개발로 유전이 발견되면 설비를 발주하게 될 텐데, 그때 우리 회사가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First, Fast, Formula

풍력과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분야는 대우조선해양이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신성장동력 분야다. 모터를 돌려 만들어낸 에너지가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력을 얻는 상선의 운항 원리를 정반대로 한 것이 바로 풍력발전이기 때문이다. 즉 바람의 힘으로 프로펠러를 돌려 여기서 생기는 에너지로 모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게 풍력발전의 원리다. 대형 상선의 강력한 엔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풍력발전을 위한 우수한 기술과 설비를 이미 갖추고 있는 셈이다.

남상태 사장은 “조선과 해양산업 분야의 시장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며 “기존에 우리 회사에서 잘해왔던 분야를 응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풍력발전”이라고 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은 ‘업계 최고(First) 수준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고, 일하는 방식을 빠르게(Fast) 전환하며, 회사의 규정과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Formula)하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F1 전략’을 수립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F1 전략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은 공격적인 시설 투자와 기술 개발에 주력했고, 세계 최초로 블록의 대형화를 통해 건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한 ‘링타입(Ring-type) 블록 탑재 공법’을 개발했다.

2009년 9월에는 성인 남자 200만명을 한꺼번에 바다에 띄울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부유식 도크 ‘로얄 도크 Ⅳ’를 건설했다. 이밖에 선상에서 바로 LNG를 기화해 이용할 수 있는 LNG 재기화운반선(LNG Regasfication Unit·LNG-RV)과 해상 풍력터빈 설치 선박 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선박 건조는 물론 플랜트 건설과 신기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왔다.

대우조선해양은 F1 전략의 성과에 힘입어 2009년 13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세계 1위의 조선해양기업으로 올라섰다. 또한 업계 1위에 만족하지 않고 2010년부터 2020년까지 F2 전략을 가동, ‘토털 솔루션 제공 종합 중공업 그룹’으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은 사업구조 혁신을 통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력을 높이는 한편 △투자 및 사업개발 △통합설계 △제조 등 각 분야에 필요한 역량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밖에 연관사업의 다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효율적인 자원 재배치를 통해 신규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터뷰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우리의 미래를 함께 건조해갑시다.’
대우조선해양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남상태 사장의 인사말은 그가 어느 회사 CEO인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79년 대우조선공업에 입사하면서 대우조선해양과 처음 인연을 맺은 남 사장은 30년 동안 한우물을 파온 정통 대우조선해양맨이다. 남 사장과의 인터뷰는 2009년 12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대우조선해양빌딩 접견실에서 이뤄졌다.

-제46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한 것이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7년의 일입니다. 그로부터 32년 만에 우리 회사가 독립회사로는 최초로 ‘100억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습니다. 30여 년 만에 우리나라가 얼마만큼 발전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 지분(대우조선해양은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정부 지분이 가장 많다)이 많다보니 대우조선해양을 일컬어 ‘주인 없는 회사’라고 얘기하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낸 비결이 뭔가요.
“우리 회사는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이 많은 회사죠.(웃음)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직원들이 일치단결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직원 스스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자부심으로 뭉쳐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한 한국 조선업체가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조선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무엇보다 조선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막 조선업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일본이 조선 분야에서는 최강국이었습니다. 그때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제품을 우리나라가 만든 배로 우리나라 해운회사가 운송토록 하자’는 대원칙을 세웠고, 조선업을 적극 육성했습니다. 대학마다 조선공학과가 개설돼 조선 전문 인력을 양성한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한국이 배를 만드는 것은 세계 최고인데 아직 해운 분야만큼은 세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이 해운까지 겸할 생각은 없습니까.
“해운업은 경기 변동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소외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접 해운업까지 하면 우리 고객(선주)과 경쟁해야 하는 모순이 생깁니다. 해운업을 하는 것보다는 조선업을 통해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를 잘 살릴 수 있는 연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풍력발전입니다.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리를 거꾸로 적용한 것이 바로 풍력발전입니다.”

-향후 한국 조선업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인류가 재화를 생산하는 한 조선업은 유지될 것입니다.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면 할수록 실어 나를 배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지구온난화로 해수면도 조금씩 넓어진다고 하고요.(웃음) 앞으로 조선업 분야에서는 기술집약적 시장이 열릴 것으로 봅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심해에서 채굴할 수 있는 드릴선을 수주해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대륙붕과 같은 얕은 바다에서 원유를 채굴해야 했지만 이제는 기술이 발달해 해저 1500m 이상 파 들어가 원유를 캐낼 수 있습니다. 조선업 자체에 대한 전망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새롭게 열릴 기술집약적 시장에 대비해 얼마나 경쟁력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어떤 회사로 키워가실 계획입니까.
“조선해양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발판 삼아 2020년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중공업 그룹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산업이 중요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제조업이, 그 가운데서도 중공업 분야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후방 연관효과가 크고, 산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고용 문제에서도 중공업은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