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닷없는 눈물에 당황하지 말자 방치해온 '나'를 돌아보라는 신호
- 40대 여성 전문가의 충고
40대에 ‘울보’가 된 남자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한다. 혼자 궁상 떨지 않기 위해 술자리에서 직장 후배나 친구들을 찾는다. 그러나 요새 젊은 직장인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치면서 도망가기 바쁘다. 친구들 중 상당수는 이미 젊었을 때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셔 의사에게 ‘금주 명령’을 받아놓은 상태다. “술 끊었다”며 사이다만 홀짝대는 친구들 보면 저절로 술맛이 떨어진다. 결국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보지만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괜히 다 큰 애들한테 “요새 별일 없니?” “여자친구랑은 잘돼가고?” 식의 질문을 던졌다가는 무시당하기 일쑤다. 오랫동안 방치한(?) 부인은 여자의 모습을 벗은 지 오래다. 애들 다 키워놓고 여유롭게 헬스와 에어로빅으로 단련된 그녀는 남편보다 힘도 세다. 내가 없어도 집안의 모든 시스템이 다 잘 돌아간다. 오히려 자신만 빠지면 집안이 더 잘 굴러갈 것 같다. 가장의 존재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말 울고 싶어진다.
무엇이 한국의 중년 남자를 그토록 우울하게 만드는 것일까. 첫 번째는 돈이다. 남자들은 대략 27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때 버는 얼마 안 되는 월급은 내집 마련하는 데 다 들어간다. 그 대출금을 갚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애들 사교육비가 나가기 시작한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연봉 6000만∼7000만원씩 받아도 60% 이상을 사교육비에 쏟아 붓는다. 그런데도 아내는 옆에서 툴툴댄다. 월급이 ‘쥐꼬리’라서 유학도 못 보낸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 사교육은 어학연수, 고시 뒷바라지 등 서른 살까지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녀들이 직장을 잡기도 전에 아버지가 은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와중에 노후 준비? 돼있을 리 만무하다. 한창 일할 나이인 55세, 56세에 퇴직해서 갈 데도 없다. 3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가장으로서 집안을 책임질 수 없다는 상황은 공포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놀았으면 말도 안 한다. 매일 새벽에 들어가 새벽에 나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주말도 없이 일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는데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게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된다.
그럴 때 주변에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낫다. 그러나 한국의 중년 남성들을 괴롭히는 두 번째 원인이 바로 사람이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는 의리, 우정이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옆에서 작은 정을 나누며 지켜봐 주고 응원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때는 그 사람들이 내 곁에서 일하는 직장동료, 거래처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냉정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일이 끝나면 사람도 같이 정리된다. 정신 없던 골프 스케줄도 현역 때 얘기지 은퇴하면 주말은 물론 평일 점심 약속도 안 잡힌다.
결국 곁에 남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따뜻한 가족애를 기대하긴 어렵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도 어색해 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바쁘다. 그동안 한국의 중년남자들은 가족들에게 가장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다. 알려준 적도 없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놀부심보다.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걸 귀찮아하지는 않았는지. 가족과 어울리는 것을 먼저 거부한 것은 결국 당신 자신이었다.
세 번째, 돈도 떠나고 사람도 떠난 뒤에 건강까지 잃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위가 뒤틀리고 술 먹으면 어느 순간 정신을 잃는다든가, 화장실에서 대장에 이상한 느낌이 들면 소름이 쫙 끼친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결국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기분이 들면서 한없는 우울의 늪으로 빠진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는 공포감, 무력감, 소외감의 표현이 결국 눈물이다. 스스로가 너무 애처롭고 불쌍해 눈물만 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현재 남성의 평균 수명은 85세를 넘어간다. 35년 동안 내내 울기만 하면 얼마나 추한가. 늦었다고 포기할 게 아니다. 어차피 남자는 서른 살 넘어야 철이 든다. 철들어 산 지 20여년 남짓인데 앞으로 35년 동안 못 바꿀 게 어딨나. 게다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우울할 일이 많아지지 청춘시절처럼 기쁜 일이 많지 않다. 중년은 행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슬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나이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인생을 180도 반전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첫 번째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고 오랫동안 방치해놨던 소중했던 것을 꺼내 써야 한다. 바로 가족이다. 직장 생활 하는 동안 아내와 자식들은 식솔에 불과했다. 파트너는 직장이나 거래처에서 찾았다. 그러나 비즈니스가 끝나면 파트너십도 끝난다. 85세까지 함께할 진정한 파트너는 아내와 아이들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지금이라도 그들과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축산업을 하다 은퇴한 우리 아버지는 칠순이 넘은 요즘 너무 행복해 보인다. 어떤 때는 사흘 동안 아파트에서 꼼짝 않고 엄마와 두 분만 있을 정도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산다. 부모님은 오랫동안 두 분이 지내는 걸 연습한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을 몽땅 데리고 여행하는 걸 즐겼다. 그곳에서 밤새도록 딸들과 수다를 떨었다. 명절 때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자식들과 함께 전을 부쳤다.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지금도 늙은 아버지와 어떻게 수다를 떨고 어떻게 재미나게 놀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서로의 근황이 너무 궁금해 매일같이 전화를 한다. 어차피 은퇴시점이 오면 휴대폰에 저장된 1000개의 전화번호는 쓸모없어진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평생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 ‘최고의 아군’부터 1순위로 챙기자.
또 하나, 40대부터 꼭 빼놓지 않고 관리 들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몸이다. 가뜩이나 우울한데 거울 속의 축 처진 엉덩이와 늘어진 뱃살을 보면 없던 우울증도 생긴다. 남자의 몸은 60세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달라진다. 60대에도 적당한 근육이 잡히면 굉장히 젊어보이고 자신감이 생긴다. 거울을 보면 자신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몸 관리는 60대부터 하면 늦다. 40대부터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 젊었을 때는 명함이 몸매를 커버해주지만 은퇴하면 몸매가 그대로 자신의 명함이 된다.
마지막으로 중년 남자들은 나를 기쁘게 할 ‘또 다른 나’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아는 중소기업의 한 임원은 7년 전만 하더라도 ‘단물이 쏙 빠진’ 무기력한 50대 중년이었다. 그러나 뜻한 바가 있어 색소폰을 배운 뒤부터는 인기만점의 멋쟁이가 됐다. 회사에서 지친 나를 위로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란다. 요즘에는 그처럼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도전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살사댄스를, 누구는 동양화를 배운다. 회사에서 매일 소모되는 나 이외에 ‘기특한 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중년이 되어서도 활력있고 신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울하거나 슬플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고시 공부하듯 오랫동안 준비한 사람에게 가는 선물이지, 기적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초가을 밤, 갑자기 두 볼에 눈물이 툭 떨어진다 해도 놀라지 말자. 누군가 볼까 두려워 움츠러들 것도, 주책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칠 일도 아니다. 이건 하나의 시그널일 뿐이다. 오랫동안 나를 방치했다는 신호. 이제부터라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때가 됐다는 고마운 신호 말이다.
눈물 쏟으며 상담실 노크…40대가 과반
'한국 남성의 전화' 르포
아내가 바람 피워서…이혼하자는데 어떻게 하나…
회사선 위태위태, 집에선 찬밥…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한국 남성의 전화’ 사무실.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빼꼼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자는 약간 헝클어진 곱슬머리에 여러 번 빨아 입어 색이 바랜 녹색 티셔츠, 낡은 남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른 또래 직장인들은 한창 일할 시간이었지만 남자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남자가 어색한지 주변을 쭈뼛쭈뼛 둘러보자 기다리던 이옥이(59) ‘한국 남성의 전화’ 소장이 다가갔다. “김철현(가명)씨군요. 잘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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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남성의 전화’를 찾은 한 중년 남성이 이옥이 소장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photo 김승완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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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한 부부관계, 불만 없어 보였던 아내, 번다고 나 무시했다” 갑자기 이혼 요구
이 소장과 마주한 자리에서 김철현씨는 눈물을 보였다. 두 눈에 그렁그렁 맺힌, 아래로 흐르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눈물이었다. 김씨는 이 소장과 단둘이 마주한 자리에서 지난 1년간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어엿한 개인사업자였다고 했다. 남부럽지 않은 경제력 덕분에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곧잘 다녔다.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아내와의 사이도 원만했다’고 김씨 스스로 생각했다. 아내는 결혼생활 중 단 한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아내가 자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으리라고 김씨는 굳게 믿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몰아 닥치면서 김씨의 사업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김씨는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자금을 마련했고, 마지막 수단으로 현재 살고 있는 집을 내놓기로 했다. 아내 명의로 해놓은 집이기에 아내 의견이 필요했다. 아내도 그러자고 선뜻 동의했다. 그런데 김씨가 집을 팔고 계약금을 받자 갑자기 아내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내는 느닷없이 김씨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다.
김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이혼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었던 아내였다. “무슨 소리냐”고 묻자 아내는 “더 이상 당신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동안 당신이 돈 좀 번다고 날 무시했던 것 때문에 평소 내가 갖고 있던 불만이 정말 컸다”며 “잔금을 다 받고 나면 돈을 반반 나눠서 각자 제 갈 길 가자”고 말했다. 아이들도 데려가겠다고 했다. 부부 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김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김씨는 이옥이 소장에게 “난 아내와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어깨를 들썩였다. 이 소장은 “아내가 왜 본인에게 불만을 갖게 됐는지 잘 생각해보고 아내가 섭섭해하는 부분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김씨에게 ‘남편들을 위한 집단프로그램’ 참여를 권하고, 가능하면 아내를 설득해 ‘부부 상담집단프로그램’에도 함께 나가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최종 잔금을 받을 때까진 3개월이나 남은 거 아니냐”며 “그 동안 가족들이 무얼 원했는지 깨닫고 태도를 바꾸면 아내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김씨를 위로했다.‘한국 남성의 전화’ 설립 14년째 무료상담, 화 연 3000건… 방문자도 하루 5~7건
사단법인 ‘한국 남성의 전화’. 지난 1995년 설립된 이곳은 한국 남성들의 고민과 불만을 접수하고 상담해주는 곳이다. 설립 14년째를 맞은 지금까지 모두 3만건이 넘는 상담을 진행했다. 현재도 연간 3000여건의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평균 5~7건의 방문상담과 10여통의 전화상담이 접수된다. 이곳에서 일하는 상담원은 모두 3명. ‘한국 남성들의 눈물’에 귀 기울여주는 이들 상담원은 공교롭게도 30~50대 ‘여성’이다. 아내나 가족과의 관계로 힘들어하는 남성들을 위로하려면 여성 상담원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의 전화’는 이옥이 소장의 20년 상담 인생이 느낀 ‘남성 상담의 절실한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다. 교회에서 상담 봉사활동을 하던 이 소장은 1990년 ‘가족상담센터’를 세워 본격적인 부부 상담에 나섰다. 이곳에서 이 소장은 부부 문제와 가족 문제를 의논하러 온 상담자의 60%가 남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훨씬 더 쉽게 상처받고 예민하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고 했다. 이 소장에게 상담을 하러 온 남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문제를 밖에다 얘기하기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고, 이 때문에 상처가 더 깊게 곪아 있었다.
이 소장은 ‘남자들을 이대로 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한국 남성의 전화’를 설립했다. 내심 ‘남자들이 얼마나 상담 받으러 오겠어…’라 생각했지만 설립 직후 1년 동안 무려 2000여명의 남성이 이곳에 다녀갔다. 이 소장은 전화상담을 면담상담으로까지 확대하고 ‘남편들을 위한 집단프로그램’과 ‘부부 집단프로그램’ ‘아버지교실’ 등 상담·치유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상담을 받으러온 남성과 그 아내를 위해 총 12~15회 과정으로 운영했다. 전화·면담상담과 프로그램 참여는 모두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1997년 IMF 금융위기가 터지자 ‘한국 남성의 전화’의 수요도 함께 폭발했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아내에게서 이혼당한 남성, 경제력이 없다고 집에서 쫓겨난 남성, 가족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남성 등 수많은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이 눈물 고인 얼굴로 ‘한국 남성의 전화’를 찾았다. 처음엔 “사무실에서 누가 들을까 창피하다”며 점심시간을 틈타 조심스레 공중전화에서 얘기하던 남자들도 점점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IMF 전후로 남성들에게 새로운 고통도 찾아왔다. 남자들이 경제력을 상실하고 여자들이 생활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전에 없던 ‘아내의 외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외도’ ‘바람’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남편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남자들과 어울리다 늦게 들어오는 아내 때문에 속을 끓였고 이런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다 결국 버림받았다. 자식들도 더이상 ‘못난’ 아버지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결국 남성들은 눈물바람으로 ‘한국 남성의 전화’의 문을 두드렸다.-
- ▲ 협의이혼 절차를 밟기 위해 가정법원을 찾은 부부들. photo 조선일보 DB
40대 50%, 30대 30%, 50대 20%… 젊은층 늘어, 외도 등 부부문제가 대부분… 매맞는 남편도
‘한국 남성의 전화’를 찾는 이들 가운데 50% 이상은 40대다. 그 뒤를 30대(약 30%), 50대(약 20%)가 잇고 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50대 남성이 2위를 차지했는데 최근 30대 남성들의 고민 상담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젊은 아내의 이혼 요구가 잦아지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젊은층에까지 내려오면서 ‘위기’를 맞는 연령층도 대폭 내려간 것이다. 하지만 그중 ‘40대’는 가장 눈물 많고 고민 많은 ‘확고한 1위’ 연령층이라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40대란 나이는 참 묘합니다. ‘경계선’에 가장 가까이 있는 나이거든요. 40대면 사실 직장에서 제일 불안정한 때죠. 위로 더 진급하느냐 아니면 밖으로 아예 나가느냐. 직장에서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하게 되고 가족들에게서 점점 멀어지죠.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 40대 남자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마지막’ 연령층이에요. 평소 아내의 소망이나 힘든 점은 나 몰라라 외면하다가, 정작 자기가 힘들고 가족이 필요할 때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거죠.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니 아이들도 아빠를 무시하고, 전 가족한테서 따돌림 당하고, 이를 참지 못했다 이혼으로 번지고…. 결국 혼자 고립되는 거예요.”
통념과 달리 이 소장은 “남자들의 고민은 대부분 가족과의 불화에서 온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받는 업무 스트레스가 가정으로 옮겨오면서 부부 갈등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한국 남성의 전화’에 접수된 상담 통계를 보면 전체 1790건 가운데 70%는 아내의 이혼 요구와 아내의 외도 등 ‘부부·가족문제’로부터 온 고민이었다. 아내의 이혼 요구로 고통 받는 남편이 692건으로 가장 많았고 아내에게서 매를 맞는 남성도 전체의 10%인 162명에 달했다.-
- ▲ 중년 남성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자녀 때문에 더 큰 소외감을 느낀다. photo 조선일보 DB
고민 털어놓을 곳도 없어… 여성보다 약자, 소 가족과 대화 많이 해야 왕따 안 당해”
이 소장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훨씬 더 ‘약자’”라고 말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주변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그런 ‘소통의 통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가족 문제나 부부 문제는 ‘남자들 세계’에서 일종의 ‘금기어’이기 때문에 갈등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또 경제력이 떨어진 뒤 여성들은 여전히 당당하게 살 수 있지만 남성들은 그야말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고 했다.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한 후 큰 상처를 받는 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울고 있는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에게 이 소장은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이 소장은 “상투적인 말 같지만 평소 아내·아이들과 대화를 자주 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이걸 너무 못해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자꾸 자초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연애할 때처럼 뭔가 대단하게 아내에게 하라는 게 아니다”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그 어떤 가족도 자기 집 가장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상담소에 오는 분들 얘기는 대개 비슷해요. ‘내가 그동안 누굴 위해서 일했는데 아내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나’ ‘자식들이 이젠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대화를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가족들이 이젠 내게 밥 먹자는 소리도 안 한다’… 다들 외롭다고 얘기하지만 이런 문제는 ‘부부 간 대화’와 ‘가족 간 대화’로 모두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 상담소에 찾아오는 분들은 ‘중년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분들이지만 뒤에서 남 몰래 울고 있는 중년 남성분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40대 남자분들도 이젠 혼자 가슴앓이 하지 마시고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시간을 내서 함께 대화해보세요.”
/ 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
남편은 간데없고 눈물 많은 수다쟁이만…눈물과 성호르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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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애경 WE 클리닉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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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를 둔 중년 여성이라면 연애시절 누구보다 남자답던 ‘애인’이 그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들의 곁엔 친한 언니처럼 수다에 맞장구를 치고 음식 맛을 거들며 아줌마들 모임에 자연스럽게 따라나서는 남편만 있다. 이쯤 되면 ‘우리 남편은 오간 데 없고 언니만 남았어요’라는 한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생리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면 한숨이 쏙 들어갈 것이다.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되면서 남과 여는 서로 다른 동물임을 알게 된다. 20대에 접어들면 연약한 여자를 지켜주고 싶고, 듬직한 보호자가 돼줄 남자가 믿음직스러워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고 기능은 약해진다. 특히 여성은 벼락처럼 일시에 찾아온 폐경과 함께 여성호르몬인 에스테로겐의 수치가 줄어든다. 이때부터는 아이를 가질 수 없고 피부는 탄력을 잃으며 잠이 잘 오지 않는 등 다양한 갱년기 증상을 겪게 된다. 반면 남자는 어느 한 시기라고 정할 수 없이 서서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감소한다.
남녀 고유의 성호르몬이 감소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았던 다른 성호르몬의 기능이 크게 부각된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서는 전에 보이지 않던 남자다움이, 남성에게서는 어색하기만 한 여성스러움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다. 용기백배에 목소리도 우렁찬 주부들은 시비가 붙으면 팔 걷어붙이고 싸우는 데 앞장선다. 하지만 남편은 어떤가. 언제부턴가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찔끔거리던 남편을 보면 마누라 치맛자락 뒤에 숨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줄어든 용기만큼 수다는 늘어난다. 마누라 동창모임에 같이 따라가는 남편들은 ‘마동남(마누라 동창 남편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사실 남자들이 마음껏 울지 못하는 원인의 절반은 여성 탓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얘기는 접어두더라도 남자는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진짜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의 우울과 슬픔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안팎의 압력 탓에 남자들의 우울증은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중년 남성의 우울함은 생리적인 호르몬의 감소와 가부장적 전통사회에서 내려온 교육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중년 여성의 우울증이 문제로 대두되지만 드러나지 않은 남성의 우울증 역시 심각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남편은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노화가 오면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남성들을 이해하고 감싸줘야 할 사람이 바로 마누라들이다. 마음은 점점 여려지고 힘도 약해져 집안에서 큰소리도 못 치는 남편에게 이젠 힘을 좀 실어 주는 게 어떨지. 희로애락을 같이한 ‘동지’를 넓은 마음으로 감싸는 것이 ‘남자다워진’ 마누라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도 달라져야 한다. 남성갱년기 증상이 생리적으로 자연스러운 고민임을 알고 혼자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 남성의 변화는 뒤집어 생각해 보면 둥글고 모나지 않은 자상함을 무기로 가슴을 닫았던 아이들에게도, 멀기만 한 아내에게도 친근한 남편이 될 좋은 기회다.
변화된 남녀의 새로운 성 역할은 가족에게 또 다른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터득한다면 나이 드는 것도 결코 서러운 일이 아니다. -
울지도 못하는 불쌍한 우리
문화심리학적 분석
김정운 명지대 교수·문화심리학
대한민국 남자들은 법적으로 못 울게 되어 있다.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소변 본 적이 있는 이들은 모두 안다. 소변기 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맥락상 소변기에 가까이 붙어 일을 보라는 이야긴데, 어찌 ‘소변을 흘리는 일’과 ‘눈물을 흘리는 일’이 같은 차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기막힌 한국적 발상이다.
울지 못하면 일찍 죽는다. 정말이다. 우리의 눈물에는 ‘카테콜라민’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섞여 나온다. 슬퍼서 울 때만 그렇다. 매운 고추를 먹고 흘리는 눈물에는 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안 섞여 있다. 내 감정이 이입된 눈물만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밖으로 배출한다는 이야기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배출되지 않으면 온몸 곳곳에 쌓여 결국에는 암이 되고 혈관을 막아 뇌경색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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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중년들은 울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웃지도 못한다. 기뻐도 그 기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입꼬리가 처져 있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한국남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입꼬리를 내린다. 그것도 아주 꽉.
입꼬리를 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볼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으려는 것이다. 볼의 근육은 웃을 때 움직이는 근육이다. 인간의 긍정적인 정서는 볼의 근육을 통해 표현된다. 반면 이마의 근육은 부정적인 정서를 표현할 때 움직이는 근육이다. 그런데 한국남자들의 이마 근육은 갈수록 섬세하게 발전하지만, 볼의 근육은 퇴화된다. 입꼬리를 애써 내려 못 움직이게 막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쁨을 표현할 능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타인의 긍정적인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도 동시에 사라진다.
그래서 한국 중년남자들의 삶이 갈수록 허전한 것이다. 자신의 기쁨을 표현할 수도 없고, 타인의 기쁨을 공유할 능력도 없는데 어찌 삶이 재미있을까. 독일의 심리학자 한스 요하임 마츠는 이 현상을 ‘감정정체(Gefuehls-Stau)’라고 정의한다. 러시아워 때 자동차가 꽉 막혀 꼼짝 못하는 것처럼 감정도 꽉 막혀 버리는 현상이다. 감정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슬프면 울어야 하고, 기쁘면 웃어야 한다. 이는 살아있다는 증거다. 감정정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생명이 단축되는 결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전체가 집단적 분노, 적개심, 공격성에 시달리게 된다. 무엇보다 ‘차이’와 ‘다름’에 대한 관용이 사라진다. 정서적 공감보다는 오직 논리적 옳고 그름만을 따지게 되는 까닭이다. 내 생각과 다르면 바로 적이 된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곳곳에 둥둥 떠다니는 이 분노와 적개심의 실체는 바로 감정정체다. 뭔가 잘못된 것은 모두 안다. 그런데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 정서적 불감증은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다. 한 개인은 결국 역사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난 질곡의 역사가 각 개인의 마음에 뿌리 깊은 상처를 남겨놓은 것이다. 각 개인의 기쁨, 슬픔의 감정은 역사적·사회적 과정의 산물인 것이다. 이를 문화심리학에서는 ‘정서의 사회문화적 구성(socio-cultural construction of emotion)’이라 한다. 현재 50·60대의 젊은 시절에는 오직 먹고사는 문제뿐이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기에 새벽종이 울리면 뛰어나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혀야 했다. 개인은 없었다. 우리만 있었다. 어찌 개인의 사치스러운 감정이 가능했을까.
그들의 후배인 30·40대 또한 역사의 질곡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의 젊은 시절 내내, 먹고사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와 싸워야만 했다. 경제성장이라는 과실을 얻기 위해 참고 견뎌야 했던 민주화를 얻어내야 했던 것이다. 가슴 뛰는 대학의 축제는 투쟁의 장이 되어야 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면 서로 만지고 싶어 어쩌지 못하는, 그런 가슴 뛰는 사랑은 ‘프티 부르주아’적 허영일 뿐이었다. 대신 ‘동지적 사랑’을 해야 했다. ‘학우여’를 외치는 순간 바로 끌려가야 했던 남자친구의 옥바라지를 해야 하고, 서로 투쟁의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야 하는 동지가 되는 것이 먼저였다. 슬퍼서 우는 눈물은 진짜가 아니었다. 최루가스에 흐르는 눈물이 진짜 눈물이었다.
그땐 그랬다. 이렇게 험한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이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자가용도 있고, 작은 집이지만 내 이름으로 등록된 집도 장만했다.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고,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에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고독하다. 바깥에서는 입꼬리를 내리고, 권위와 위엄으로 치장하지만 혼자란 느낌뿐이다. 술을 마시며 아무리 정치인 욕을 해봐도 공허하다. 땅값 오른 이야기, 주식 이야기도 이젠 지겹다. 그러나 달리 할 이야기가 없다. 서로 어제 한 이야기, 하고 또 한다.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한다. 결국 노래방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노래를 돌아가며 부르며 모임은 끝이 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오지만 집에서도 혼자다. 아내나 아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혼자 남겨진 거실 한구석에서 이 땅의 중년들은 훌쩍거린다. 자꾸 훌쩍거린다. 별로 슬프지도 않은 연속극을 보면서 훌쩍거린다. 신문의 슬픈 영화배우의 사망기사를 읽으면서 훌쩍거린다. 이렇게 잠깐, 아주 잠깐 그 뿌리 깊은 감정정체에서 풀려나기도 한다. 아, 그러나 이들은 이내 눈물을 훔친다. 혹시 아내나 자식들이 볼까 무서운 까닭이다. 그리고 아주 궁색하게 입을 크게 벌려 애써 하품을 한다. 슬퍼서 운 것이 아니다. 하품 때문이다. 여전히 이 땅의 중년남자는 울면 안되기 때문이다. 눈물은 오줌처럼 흘려서는 안되는 까닭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이 땅의 중년들은 침대 한구석에 웅크려 허벅지 사이로 양손을 끼우며 잠을 청한다. 그리고 그 편안하고 오래된 감정정체로 다시 깊숙이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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