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의 먼바다에 작은 섬, 손죽도가 있습니다. 그 섬에는 정겨운 돌담이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구불구불 이어진 마을이 있습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들이 집집마다 돌담으로 두른 마당을 근사한 정원으로 가꾸고 있는 곳. 계절마다 마을 길섶에 주민들이 심어 기르는 가을꽃이 만발한 곳. 손죽도에서는 주민들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게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습니다. 거친 바다 건너 누추한 외딴 섬의 주민들에게 어찌 이런 서정이 남아있을까요. 작은 섬들의 고립과 누추함, 나이 듦과 의탁할 데 없는 생계 등이 드리운 그늘이 깊지만, 여기 손죽도는 다른 섬들과는 다릅니다. 코발트빛 바다를 두른 훌륭한 해안경관도 그렇지만, 섬은 주민들의 체온이 따스한 구불구불한 돌담 골목과 정원에 심고 가꾸는 나무와 꽃들만으로도 밝고 따스합니다. 섬에 발을 디디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고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이 때문일 겁니다. 손죽도는 작은 섬이지만, 보여주는 경관이 여간 다채로운 게 아닙니다. 450여 년 전 섬사람들을 위해 피를 뿌려 목숨을 바친 이를 잊지 않고 기리는 역사가 있고, 섬의 잔등을 타고 한쪽 어깨를 바다에 적시며 걷는 근사한 탐방로가 있으며, 열흘 넘게 춤과 노래로 지새웠다던 화전놀이 풍류가 있습니다. 개교 85년이 된 섬 학교가 문 닫지 않은 채 세 명뿐이긴 하지만, 아이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운동장을 굴러다니고 있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그 섬에는 모든 순한 것이 모여 있습니다. 섬의 자연과 풍경도 순하기 그지없고, 어느결에 그 자연을 닮아버린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도시의 맹렬한 속도와 어지러운 관계 속에 몸과 마음을 다쳐 그저 ‘어디 먼 곳’을 여행의 목적지로 찾고 있다면 여기, 여수의 작은 섬 손죽도가 있습니다. 손죽도의 바다와 유순한 자연이, 그리고 돌담길에서도 발밑의 꽃을 살피며 느리게 걷는 섬사람들이 도회지에서 입은 웬만한 상처쯤은 능히 치료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 손죽도와 손대도. 그 이름에 담긴 뜻 전남 여수에서 뱃길로 1시간 20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한복판에 작은 섬 ‘손죽도(巽竹島)’가 있다. 본래 섬의 이름은 손대도(損大島)였다고 했다. 지금은 ‘부드러울 손(巽)’자를 쓰지만, 과거에는 ‘잃을 손(損)’자를 썼다. 한자 이름을 풀어보면 ‘큰 인물을 잃은 섬’이라는 뜻이다. 무슨 연유로 섬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손죽도에서는, 좀 따분할지 모르겠지만 역사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 섬 이름에도 그렇고, 섬 안 곳곳에 한 인물의 죽음의 자취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손죽도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뜻밖에도 철갑 옷을 입은 장수의 동상이었다. 이대원 장군. 약관의 나이에 지금으로 치면 해군 중령쯤 되는 벼슬 ‘만호’에 부임했던 그는, 1587년 손죽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구와의 전투에서 최후를 맞았다. 전투 중에 목숨을 잃었지만 실제로는 상급자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린’ 결과였다. 이 장군은 앞서 그해 1월 소록도 앞바다에서 벌인 왜구와의 첫 해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왜구의 침입에 경황이 없어 상급자인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보고하지 않고 출전을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장군이 공을 독차지했다고 시기하게 된 심암은 왜구가 손죽도를 점령하자 이 장군에게 야밤에 피로에 지친 100명의 군사만을 이끌고 출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날이 밝으면 군사를 더 모아 출전하겠다’는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이 장군은 손죽도로 향하며 ‘응원군을 거느리고 와달라’고 부탁했으나 사흘 밤낮으로 펼쳐진 전투에 응원군은 없었다. 왜구에게 붙잡힌 이 장군은 돛대에 묶여 갈고리로 찍히면서도 항복을 거부하다가 뭍으로 끌려 나와 살해당했다. 그가 마지막 순간에 손가락을 잘라 피로 썼다는 절명 시가 이렇다. “진중에 해 저무는데 바다 건너와 / 슬프다 외로운 군사 끝나는 인생 / 나라와 어버이께 은혜 못 갚아 / 원한이 구름에 엉켜 풀리지 않네.” 이때 그의 나이가 스물두 살이었다. 선착장에 세워둔 이대원 장군의 동상은 조악한 관광기념품처럼 투박하고 서툰 솜씨였다. 목숨을 던진 장수의 비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근엄하거나 위압적인 ‘관제(官製)’ 동상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마음이 갔다. 투박한 동상에서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섬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섬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사당 충열사에 걸어둔 조악한 장군의 영정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선착장의 동상은 섬 남쪽에 세워진 진짜 동상을 모사한 것이다. 경기 평택에 사는 이대원 장군의 후손들이 1990년 섬 남쪽에다 가묘를 쓰고 비석과 동상을 세우고 해마다 3월이면 숭모제를 올리고 있다. 이대원 장군이 처참한 죽임을 당하자 손죽도 주민을 비롯한 일대의 섬마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심암의 태도에 분개했다. 송강 정철의 큰아들 정기명도 ‘녹도가’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이런 민심이 조정으로 전달돼 전라좌수사 심암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압송된 뒤 죽임을 당했다. 임진왜란 한 해 전인 1591년 심암의 후임으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에 부임하면서 ‘큰 인물을 잃은 곳’이라는 뜻으로 손대도란 이름을 붙여줬다. 여기까지가 ‘지봉유설’에 실려 전하는 ‘손대도’란 이름의 내력이다. # 섬마을 돌담 골목과 정원에 피어난 꽃 손죽도는 100여 호 남짓의 인구 180명에 불과한 작고 고즈넉한 섬이다. 마을 앞으로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 빼어난 풍경을 빚어낸다. 먼바다의 섬답게 마을 앞의 바다는 투명한 청색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는 희고 단단했다. 찰랑거리는 파도가 모래 위에 그린 선을 따라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 청량해졌다. 손죽도의 진짜 보물은 마을 안에 따로 있었다. 먼저 돌로 지은 담 얘기부터. 섬마을에는 거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이 흔한데, 이곳 손죽도에서는 유연하게 굽은 골목을 따라 집집마다 둘러놓은 돌담이 무슨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더 놀라웠던 건 해풍 쑥을 재배하거나 김 양식으로 생계를 잇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손죽도 주민들이 집집마다 훌륭한 정원을 꾸며놓았다는 것이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일까. 제법 너른 마당을 거느린 집들은 정원을 울창한 난대림의 숲으로 가꿨고, 손바닥만 한 정원을 가진 집도 마당에다 나무와 꽃을 심었다. 지금 섬마을의 정원마다 가을꽃들이 그득하게 피어 있다. 분재를 가꿔 내다 놓은 집도 있고, 동백만 모아서 심어둔 정원도 있다. 손죽도에는 집 마당에도, 길섶에도, 묵은 밭에도 온통 꽃들이다.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보는 일이 즐거운 건 이 때문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끼고 이어지는 골목의 돌담 벽에다 누군가 플라스틱 홈통을 반을 잘라서 화분처럼 길게 꽂아 놓고 거기다가 채송화꽃을 심어두었다. 누가 거기 꽃을 심었을까. ‘누구 솜씨냐’는 질문에 섬사람들이 마침 지팡이를 짚고 골목을 들어서던 방광남(64) 씨를 가리켰다. “젊어서부터 꽃을 좋아했다”던 방 씨는 “섬 할머니들이 보고 좋으라고 심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손죽도 마을에서 꼭 봐야 할 곳이 초도초등학교 손죽분교다. 초등학교 건물은 마을 주민들이 80여 년 전쯤 건너편 산자락에서 바위를 깨서 손수 지게로 져 날라서 지어낸 것이다. 한쪽 벽을 돌로 붙여 우람하게 지어낸 건물이 학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단하다. 손죽분교의 전교생은 모두 3명. 작년까지는 학생이 1명 뿐이어서 폐교위기까지 몰렸지만, 올해 2명이 입학하는 바람에 전교생이 3배로 늘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방풍림을 두르고 있는 운동장 구령대 쪽에는 회칠이 벗겨진 ‘독서는 마음의 양식’‘체력은 국력’의 구호를 받침대로 삼은 책 읽는 소녀상과 횃불 든 소년상이 나란히 서 있다. 운동장 한쪽에도 유관순 의사와 정재수 효자상, 이승복 어린이의 낡은 동상이 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다. # 탐방로에서 만난 땅 이름에 무릎을 치다 손죽도 마을 뒤쪽의 숲에는 훌륭한 탐방로가 있다. 선착장 뒤쪽에서 출발해 가파른 나무덱 길을 올라 초지의 언덕과 해안의 기암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3㎞ 남짓의 산책로다. 아찔한 벼랑을 끼고 이어지는 길에서는 코발트빛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바람이 섬의 잔등을 타고 넘는 초지의 들판에서는 마을 뒤쪽의 반초섬과 소거문도 너머 먼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의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길에 세워진 세 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그 자리마다 보여주는 풍경이 서로 다르다. 탐방로의 정점은 마지막 전망대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 뒤에 만나게 되는 봉화산이다. 바위 정상이 아니라 바로 그 아래 바람을 타지 않는 자리에다 봉수대를 만들었다는데, 벼랑에 걷는 길을 내면서 그만 그 자취가 훼손되고 말았다. 대신 봉수대를 재현해 놓았다는 돌무더기가 영 어설프다. 봉수대 위로 바위를 딛고 서는 자리가 있다. 마을 쪽의 시야는 가리지만 섬 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바위를 딛고 오르는 자리가 위험하다며 여수시의 담당자가 표지판을 아예 뽑아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딛고 올라보니 이 정도라면 그럴 것까지 뭐 있을까 싶다. 손죽도에는 섬 곳곳에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땅이름이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짚어보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우선 주민들의 이름이 지명에 자주 등장한다. ‘온엽이네 묵전’은 온엽이라는 이름의 주민이 묵혀놓은 밭자리를 이르는 이름이다. 온엽뿐만 아니라 ‘선애네 밭넘’도 있고, ‘순열네 밭밑’도 있다. 섬 안의 비슷비슷한 지형을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었으리라. 무릎을 쳤던 건 ‘독 보듬고 돈디’라는 지명이었다. 험한 바위 사이로 이어진 길을 가려면 ‘돌을 안고(보듬고) 돌아가야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목넘 옆걸음’은 목 너머의 바위길이 좁아서 옆걸음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턱을 바위로 눌러 몸을 지탱하고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고 건너야 한다는 뜻의 ‘택걸이’도 압권이다. 배가 거기 어디쯤 바위에 걸렸던 모양이어서 붙여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배 찡긴디’란 지명은 또 어떤가. 듣는 것만으로도 험한 해안 지형이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 이름들이다. 줄곧 마을 뒷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지지미재를 거쳐 마을로 내려온다. 지지미재는 섬사람들이 삼월 삼짇날에 꽃전을 부쳐 먹으며 잔치를 벌였던 자리다. 마을 주민들은 잿마루에서 1주일 넘게 밤낮을 쉬지 않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화전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1920년대 신식 어구가 들어오면서 기계화된 어업이 성행했던 손죽도는 그때만 해도 부자섬이었다. 1940년대 손죽도에는 중선망으로 고기를 잡아내는 신식 배가 70여 척에 달했을 정도였다. 300가구에 500여 세대가 북적이며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지지미재에서 펼쳐졌다던 화전놀이는 얼마나 흥겨웠을까. 지지미재에 번듯한 정자를 하나 지어놓은 섬사람들은 올봄에는 예전의 떠들썩한 화전놀이를 재현해보겠다고 했다. 화전놀이를 하는 날에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전처럼 북적이는 잔치가 됐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다. 섬에 노인들만 남은 지금도 손죽도 섬사람들에게는 풍류의 추억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섬 주민들이 정성스레 정원을 다듬고 또 길섶에다 꽃을 심어 가꾸고 있는 것들도 다 이런 풍류, 혹은 전통 때문이 아닐까.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손죽도에는 숙박업소는 없고 민박집 손죽민박(010-9875-3626)과 부두민박(010-9336-1153) 딱 두 곳 있다. 여름이면 마을 앞의 손죽 해수욕장을 찾는 피서객을 대상으로 늘 손님을 받지만 여름 성수기가 지난 뒤에는 미리 연락을 해서 영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섬 안에 식당이 없어서 민박을 예약하면서 식사까지 부탁해야 한다. 해물이 넘쳐나는 곳은 아니지만 톳이나 김 따위로 차려내는 토속적인 섬 밥상을 받을 수 있다. 맛집을 찾겠다면 여수로 나가는 편이 낫다. 여수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구백식당’(061-662-0900)은 서대회로 이름났지만, 이즈음은 아귀탕과 삼치구이가 더 낫다. 칼칼하게 끓여낸 아귀탕도 좋지만, 별미는 삼치구이다. 한창 제철을 맞은 삼치 중에서 큼지막한 놈으로 한 토막을 주문과 동시에 구워내는데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맛은 나무랄 데 없지만 서대회, 아귀탕, 삼치구이가 모두 1만2000원으로 인근 식당보다는 좀 비싼 편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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