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이 빼어난 부산 영도의 카페 ‘카린’ 5층 옥상 루프톱. 이곳에서는 부산항대교 너머 북항 일대와 중앙동 등 구도심은 물론이고 황령산과 장산, 오륙도까지 부산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도시는 욕망의 공간입니다.
크기와 높이로, 도시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팽창하는 도시와 날로 높아지는 마천루가 그걸 증명하지요.
욕망으로 구축된 도시의 화려한 공간은,
그 반대편의 가난하고 구차한 풍경과 대비를 이룹니다.
욕망은 화려하고 뜨거워 보이지만,
그 이면은 때로 황량하고 허망합니다.
화려한 여행과 누추한 일상과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밤은 도시의 피로에 젖은 일상과
칙칙한 콘크리트 풍경을 어둠으로 쓱쓱 지워버립니다.
그렇게 어두워진 자리마다 휘황한 불빛이 켜지지요.
낮에는 복잡하고 무질서했던 도시가
마술처럼 화려한 불빛으로 물듭니다.
그런 풍경을 보러 부산에 다녀온 길입니다.
도시의 이면을 모두 다 지워버리는,
그래서 산복도로 누추한 골목마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하게 마주할 수 있는 부산 여행.
이름하여 ‘부산으로 가는 야경여행’입니다.
#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밤
▲ 위 사진은 수영강 리버크루즈를 운항하는 20인승 쌍동선 요트. 아래는 야경 촬영 명소로 널리 알려진 해운대 ‘더베이101’ 인근 주차장. |
여기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일까.’ 저마다 꼽는 곳이 다르다. 해운대 해변을 말하는 이도 있겠고, 태종대 풍경을 주워들은 이도 있겠으며, 오륙도가 바라다뵈는 경관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겠다. 해 질 녘 다대포의 경관이나 맑은 날의 이기대 산책로를 꼽는 사람도 적잖으리라. 이번에는 두 번째 질문이다.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언제일까.’ 이번에는 답이 같다. 밤(夜). 그렇다, 부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밤’이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는 많다. 아니, 이렇게 바꿔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도시는 야경이 아름답다.’ 도시 야경은 다 근사하지만, 부산 야경은 특별한 데가 있다. 우선 도시가 크다는 것. 도시의 규모가 클수록 건물도 크고 높아 야경은 더 화려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부산 야경이 특별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다’에 있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이만 한 도시가 바다를 끼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부산의 검은 밤바다는 먹처럼 빛을 지워버리기도 하고, 휘황한 도시의 불빛을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처럼 더 화려하게 비춰 내기도 한다. 부산이 야경으로 첫손 꼽히는 도시인 이유다.
부산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어디서든 자리를 펴면 훌륭한 야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정작 부산사람들은 야경에 심드렁하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항구도시에서 밤마다 늘 봐온 풍경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도 부산사람이 자랑하는 야경명소가 있다면, 그냥 믿어도 좋다. 바닷가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일상인 이들이 칭찬하는 곳이라면 얼마나 훌륭할까 말이다.
# 충청 출신 가이드에 최고 야경을 묻다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과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부산을 찾아오는 외국인 개별여행자 전문가이드이자 로컬트래블랩 이도연(34) 기획팀장에게 안내를 맡겼다. 부산에서 사는 그는 충남 예산 출신이다. 자기 것은 오히려 자기가 잘 모르는 법. 부산사람이 아니어서 그는 부산을 ‘더 잘 본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기면서 그가 근무하던 여행사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 외국인 대상 랜선 여행 등의 시장을 개척하며 겨우 살아남긴 했지만, 서른 명이 넘었다는 직원은 사장과 그를 포함해 딱 3명만 남았다. 남은 직원들도 월급이 크게 줄어 생활이 말이 아니다.
일이 줄어든 만큼 시간 여유가 생겼다는 그는 빈 시간이면 부산의 조망명소와 카페를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뛰어난 조망장소나 경관이 훌륭한 카페를 발견하면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에 넣는다. 개인적으로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여행이 다시 시작될 때를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뒤지고 뒤져 찾아낸 명소로 데려간 여행자가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는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소위 ‘분위기 좋은 카페’는 취향의 영역이에요. 국적별·개인별로 반응이 모두 달라요. 하지만 훌륭한 야경은 누구나 다 좋아해요.” 몇 주 동안 자료를 뒤지고 사진을 검색하고 전화를 하면서 야경명소 후보로 정리해둔 자료를 다 던져버리고,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부산 야경명소’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부터는 그와 함께, 혹은 따로 찾아간 야경과 조망명소에 대한 이야기다.
부산 영도에 카페 열풍을 불러온 신기산업은 영도에만 3개의 카페를 냈는데, 그중 하나인 ‘신기숲’이다. 유리창 밖의 초록 숲이 마치 걸어놓은 그림처럼 보인다. |
# 다리가 보이는 자리가 야경명소
먼저 부산 야경을 찾아 나서기 전에 알아야 할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이 팀장은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명소는 ‘다리가 보이는 자리’”라고 했다. 부산에서 야경 좋기로 이름난 다리로 광안대교, 남항대교, 부산항대교, 이렇게 셋을 꼽았다. 왜 다리일까. 그러고 보니 다리가 보인다는 건 바다가 보이는 자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가 권한 곳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고 나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교각마다 휘황하게 불을 밝힌 다리는 그 자체로도 화려했지만, 바다를 건너가면서 정적인 풍경에 자연스럽게 생동감과 속도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어두운 바다 위를 지나가는 화려한 다리가 평면적인 경관에 힘과 역동감을 불어넣었다.
오랫동안 부산에서 아름다운 야경으로 첫손 꼽히던 다리는 광안대교였다. 바다를 건너는 유연하게 휘어진 다리가 길기도 하거니와 광안리 해변을 끼고 해운대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보는 경관도 빼어나다. 수영강 리버크루즈를 타면 광안대교와 수영강 주변의 고층 아파트가 그려내는 환상적인 야경을 만끽할 수 있다. 화려한 야경의 불빛 사이로 미끄러지듯 고요하게 항해하는 리버크루즈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낭만적이다.
그런데 지금 부산사람들은 야경명소로 부산항대교를 더 쳐준다. 2014년 개통했으니 ‘새로운 다리’인 데다 다리 위에서는 영도 일대와 부산의 구도심, 그리고 감만부두의 풍경을 다 볼 수 있다. 광안대교 주변의 밤풍경이 늘어선 마천루의 불빛으로 미래도시 풍경처럼 느껴진다면, 부산항대교 주변 야경은 한마디로 ‘부산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허름한 배 수선소부터 하역작업으로 불을 밝힌 감만부두, 산복도로를 따라 들어선 비탈진 산동네 불빛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얘기다. 여기에 광복동과 남포동 일대의 휘황한 도시 불빛이 더해진다.
배 위에서 마천루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수영강 리버크루즈. |
# 영도에서 파노라마 야경을 보다
부산항대교와 일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명소가 영도 청학동에 있다. 부산항대교와 바다 건너 북항 일대를 마주하는 봉래산 턱밑에 전망카페 ‘신기산업’이 있다. 신기산업은 철제 사무용품을 비롯해 다양한 선물과 기념품을 만드는 회사.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서 만든 회사 사옥 한쪽에다 사원 복지를 위해 커피숍을 열었다가 시쳇말로 ‘대박’이 나서 사옥 전체를 회사 이름을 딴 카페로 개조하고 회사와 공장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카페 신기산업에서는 멀리 북항 일대의 바다와 구도심부터 황령산, 장산을 거쳐 오륙도의 풍경은 물론이고 발아래로 비탈을 따라 올라오는 허름한 주택가 골목 풍경까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낮에 보면 좀 어수선한 듯하지만, 어둠이 누추한 풍경을 다 지우는 밤에는 산동네의 가로등 불빛과 부산항대교와 바다 건너 도심에 환하게 켜지는 불빛이 환상적인 야경을 보여준다. 신기산업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영도 일대에 전망카페 붐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하늘을 찌르는 인기에 힘입어 신기산업은 영도에 두 개의 카페를 더 냈다.
이 팀장은 그러나 신기산업보다 그 아래쪽에 있는 ‘카린’을 추천했다. 카린은 1992년 지어진 상가주택을 통째로 스칸디나비아풍의 레트로 분위기로 개조해 문을 연 대형 카페다. 신기산업보다 바다가 더 가까우면서도 풍경의 규모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카린에서 보는 야경은 파노라마 같은 느낌이다. 층마다 다양한 느낌으로 인테리어를 해놨는데, 조망에 집중한다면 바다 쪽으로 길게 낸 통창이 인상적인 4층과 루프톱 특유의 개방적인 느낌의 5층 옥상이 압도적이다.
야경이나 조망은 날씨가 관건이다. 대기가 탁하거나 비라도 내리면 낭패다. 이 팀장은 그럴 때 가볼 수 있는 곳으로 신기산업이 운영하는 또 다른 카페 ‘신기숲’을 추천했다. 유치원 자리를 카페로 개조한 곳인데, 길게 낸 창으로 솔숲의 청량한 기운을 맡을 수 있는 옥상의 야외자리까지 갖추고 있다. 화려한 야경을 보여주는 카페가 마음을 들뜨게 하는 반면, 이곳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신기숲은 아이들과 반려동물 출입을 금지하고 있고, 와이파이도 일부러 설치하지 않았다.
이즈음 부산에서 새로운 명소로 각광 받고 있는 곳이 기장이다. 기장의 오션 뷰 카페 효시로 알려진 카페 겸 레스토랑 ‘로쏘’. |
# 초량동 마을이 빼앗긴 바다 경관
이 팀장은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초량동의 비탈진 산동네에 산다. 그쪽에도 야경명소가 있지 않을까. 그는 “예전에 근사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북항 르네상스’를 구호로 내세운 북항 일대 개발사업으로 산동네 바다 조망을 가로챈 6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두 동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6·25전쟁 피란시절 형성된 부산 산동네 얘기를 해보자. 부산 구도심에서 뜨거운 삶의 기억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있을까. 남포동도, 자갈치시장도, 국제시장도, 산복도로가 지나가는 산동네도 전쟁과 피란에 포획돼 있다. 왜 안 그럴까. 인구 47만 명 남짓이던 부산 인구는 전쟁 직후 몰려든 피란민들로 인해 100만 명을 넘겼다. 도시 인구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었으니 인프라는 태부족이었다. 산자락이 판잣집으로 뒤덮였다. 도무지 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가파른 비탈에까지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심지어 비석을 담으로 쓰고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기도 했다.
피란시절 부산에서는 물 한번 길으러 가려면, 변소 한번 가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는 아귀다툼이 일상이었다. 집세가 밀렸다고 싸웠고, 물을 얻으려다 주먹다짐이 일어났다. 우물과 변소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다툼은 때로 증오가 됐다. 가뭄이 계속되자 ‘북녘 사람들이 내려와서 그렇다’며 굿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왔건만, 그 시절 부산에서는 ‘사는 게 전쟁’이었다. 판잣집은 점점 더 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 더 불편해졌지만, 조망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지금처럼 부산항 주위에 건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영도다리 말고는 이렇다 할 다리도 없었지만, 그래도 바다를 굽어보는 풍경은 훌륭했다.
초량동 일대는 피란민에 의해 만들어진 산동네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 중 하나다. 산동네는 여전히 살기 불편하지만, 그래도 이웃과 나누는 ‘끝내주는’ 조망이 적잖은 위안이 돼주던 곳이었다. 그런데 고르게 나눠서 누려온 바다 경관도 이제 끝났다. 신기산업과 카린이 있는 영도의 청학동 일대도 고층 아파트 개발계획이 세워져 있다. 개발이 이뤄지면 초고층 아파트가 평당 가격 순서로 바다 경관을 나눠 가지게 될 것이니, 영도의 루프톱 카페의 야경은 그때까지 누릴 수 있는 한시적인 풍경인 셈이다.
# 흰여울길 골목의 고즈넉한 밤풍경
영도에는 ‘흰여울길’이 있다. 흰여울길은 흰여울마을의 골목길이다. 골목 한쪽은 낡고 오래된 집의 담과 창문이고, 다른 한쪽은 푸른 바다다. 바꿔 말하면 흰여울길은 한쪽으로는 이 비탈진 곳에 실핏줄 같은 골목길 끝까지 들어와 살았던 이들의 가난하지만 눈물겨웠던 삶을, 다른 쪽으로는 그들이 기대고 살았던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다. 이즈음 젊은이들에게는 그저 낭만적인 카페와 그 카페가 바라보는 파스텔 톤 바다 사이로 이어지는 요즘 말로 ‘힙’한 골목이다. 아니, 어쩌면 변덕스러운 젊은 여행자들은 이미 다른 유행을 좇아 이 골목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흰여울길은 좁다. 마을 뒤쪽 언덕으로 버스가 다니는 절영로가 나기 전까지 이 골목은 영도다리를 건너와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부산 출신이 아니어도, 바닷가 도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더라도 흰여울길에서는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마을 이름에서 따온 카페 ‘피라’도 있고 서점 겸 카페 ‘여울책장’을 비롯해 ‘소소한 흰여울’ ‘구름에’ ‘캔버스다락’ 등의 세련된 카페도 있다. 울긋불긋 벽화도 그려져 있지만, 오래전 누추하고 고단했던 삶까지 다 가리지는 못했다.
흰여울마을은 다른 부산의 레트로 공간과는 달리 ‘지속가능’한 곳이다. 의지나 정책에 따른 긍정적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입지 때문이다. 바다에 딱 붙은 지형 탓에 마을은 아파트 따위로 개발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상점이 들어서고 벽화가 그려져 가꿔지긴 했으되 마을 자체는 옛 모습 그대로다. 마을 전체가 축 늘어진 듯 기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까. 관광객은 늘어나고 있다지만, 그래 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는 마을 주민들은 북적이는 관광객이 성가실 따름이다. 골목에 들어선 카페와 상점들도 무허가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그래서일까. 해가 지고 골목에 하나둘 불이 켜질 무렵 흰여울마을의 야경은 다른 부산의 야경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어쩐지 쓸쓸하고 고즈넉하다. 흰여울길의 밤풍경을 꼭 봐야 하는 이유다.
■ 夜景보며 커피 한 잔
부산 로컬트래블랩여행사 이도연 팀장으로부터 부산 최고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빼어난 조망의 카페 목록을 요청했다. 다음은 그가 적어준 부산 최고의 야경 카페다. △부산항대교 전망카페: 신기산업, 카린, 카페드220V △부산역 근처 산복도로 전망카페: 산복도로370, 히든 플래닛, 초량1941 △수영강 전망카페: 오후의 홍차, 더 박스, 그루토 카페 △광안대교 전망카페: 카페 일주일, 로즈랜드, 카페 오뜨. LP 음악을 들려주는 간판 없는 카페 ‘산복도로370’과 루프톱에서 해운대 마린시티의 마천루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후의 홍차’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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