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대구 영주'관광 두레'

醉月 2021. 6. 25. 19:02
지역 주민이 의기투합해 만든 여행사 ‘더 휴앤’의 여행상품 ‘무덤덤투어’에 참가한 여행자들이 대구 불로동 고분군의 초지에 앉아 지등(紙燈)을 만들며 지는 해를 감상하고 있다. ‘무덤덤’이란 투어의 이름은 고분을 의미하는 ‘무덤’에다 ‘덤’을 더 얹어 보여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관광두레’를 아시는지요. 관광두레는 주민공동체의 관광기업을 지원해 관광의 편익을 주민, 지역과 함께 나누자는 취지의 정부지원사업입니다.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이 사업이 지금까지 발굴한 주민사업체가 자그마치 624개입니다. 지역의 명소와 내력을 거기 사는 주민만큼 잘 알 수 있을까요. 지역 주민들이 주민사업체를 꾸려 내놓은 여행상품은 특별합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좀 덜 다듬어지기도 했지만, 지역 주민이 이끄는 여행에서는 이름난 관광지를 찾아가는 대단위 여행에서는 없는, 끈끈한 정과 유대가 느껴집니다. 게다가 여행자의 소비가 지역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이런 여행을 가능케 해주는 두 곳의 주민사업체를 찾았습니다. 한 곳은 지역 주민이 여행자를 안내하는 투어 상품을 내놓은 주민여행사. 그리고 또 다른 한 곳은 술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젊은 청년들이 의기투합한 양조장입니다.


1. 대구 ‘무덤덤투어’… 지역 주민이 소매를 이끌다


# 천연기념물 제1호가 대구에 있다

▲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대구의 도동 측백나무 숲. 기이한 바위벼랑에 측백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뿌리 내려 자란다. 문화재청의 허락을 받고 숲 안을 살펴봤다. ‘무덤덤투어’는 숲 밖에서 측백나무 숲을 본다.


국보 제1호는 남대문,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 그렇다면 천연기념물 제1호를 아시는지. 대구 동구에는 도동의 자그마한 산인 향산(香山) 절벽에 1000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자라는 숲이 있다. 그 숲이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건 1962년의 일이다. 그런데 실은,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처음 제1호 천연기념물이 된 건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의 일이었다. 그해 8월 27일 조선총독부는 관보를 통해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을 천연기념물 1호로, 또 경남 합천 용주면의 백조도래지를 천연기념물 2호로, 또 평안남도 맹산군의 만주 흑송(黑松) 숲을 천연기념물 3호로 각각 지정했다. 그러나 식민지 시절 운영되던 천연기념물 제도는 광복과 함께 흐지부지됐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광복 이후 한참만인 1962년에야 다시 시행됐는데, 그때 일제가 붙인 천연기념물 지정 번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측백나무 숲은 왜 천연기념물이 됐을까. 본래 측백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여기 대구를 비롯해 경북 영양과 안동, 충북 단양에서 잇따라 측백나무 숲이 확인되면서 한국도 원산지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영양에도, 단양에도 있는데 유독 대구의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이 된 건 대구의 측백나무 숲이 가장 남쪽에 있어서다. ‘측백나무의 남방한계선’이라는 식물분포학상의 가치로, 도동의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1호가 됐다는 얘기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천연기념물 제1호’의 지위를 측백나무 숲에 부여했던 건, 아마도 제 나라에 없는 측백나무가 숲을 이뤄 자라는 모습이 적잖이 신기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가파른 벼랑에서 측백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범상찮아 보이긴 하지만, 사실 식물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썩 감격적인 풍경은 아니다. 조선 초기 대학자 서거정이 ‘대구10영(大邱十詠)’ 중 제8경으로 이곳 ‘북벽향림’을 꼽았다지만, 그래 봐야 감회가 달라지지 않는다. 측백나무 숲 북쪽 절벽 중턱에 있는, 19세기 초 인근의 아홉 노선비들이 개최한 시회를 기념하는 정자 구로정도 천연기념물 숲이 출입통제지역인 데다, 들어간다고 해봐야 정자까지 가는 길을 숲 덤불이 휘감아 접근 불가다. 여기까지가 그냥 혼자 봐서는 그 매력을 잘 모르는 도동 측백나무 숲 얘기다.


# 주민여행사의‘무덤덤투어’

도동 측백나무 숲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불로동 고분군이 있다. 대구 불로동 일대 야산 능선을 따라 고분이 늘어선 곳이다. 고분에 누가 묻혔는지 자료나 기록은 없다. 그저 삼국시대에 대구 일대를 지배하던 세력의 무덤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고분군에는 크고 작은 고분 214기가 있다. 지름 20m가 넘는 거대한 고분부터 보통 묘지만 한 것까지 크고 작은 고분이 구릉을 따라 이어진다. 도시 변두리에서 이렇듯 죽은 자의 거대한 공간이 어떻게 섬처럼 여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도동 측백나무 숲과 불로동 고분군은 그곳이 가진 진짜 매력을 여행자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심한 여행자의 눈으로는 측백나무 숲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해 보이는 숲으로, 불로동 고분군은 도무지 거기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공간으로만 보인다. 공간의 가치와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들춰보고, 그곳이 가장 특별해 보이는 시간을 겨눠서 찾아가야 비로소 그곳의 매력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도동 측백나무 숲과 불로동 고분군 여행을 돕는 여행상품이 있다. 관광두레가 지원하는 대구의 주민여행사 ‘더 휴앤’이 진행하는 ‘무덤덤투어’다. 더 휴앤은 지역의 주민여행사다. 대구대에서 관광교육론 등을 강의하는 겸임교수 장영화(49) 씨가 대표를 맡고 전직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산림치유지도사, 평범한 주부 등 주민 4명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이들은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여행’을 기치로 직접 코스를 짜서 여행상품을 만들었다. 습지여행, 갓바위 여행, 야간여행 등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여행상품이 바로 ‘무덤덤투어’다. ‘무덤덤’이란 이름은 불로동 고분군을 의미하는 ‘무덤’에, ‘덤’을 보태는 여행이란 뜻에서 붙였단다.

무덤덤투어는 반나절 일정의 투어다. 오후 서너 시쯤 시작해 도동 측백나무 숲과 불로동 고분군을 방문하는데, 그 사이에 나무를 깎아 목기 소품을 만드는 장인과 함께하는 편백나무 주걱 만들기 체험도 진행한다. 투어를 마친 뒤에 불로시장의 명물인 푸짐한 무침회로 저녁 식사를 하는 일정도 있다.

무덤덤투어는 여행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보아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가이드로 나선 장 대표는 불로동 고분군이라는 오래된 무덤이 여행자에게 주는 이중의 의미를 설명했다. 고분에서 느낄 수 있는 1000년 전의 역사와 시간의 깊이, 그리고 고분의 유연한 선들이 그려내는 독특한 미감에 대한 얘기다. 주민여행사의 안내로 고분군을 함께 걸으며 펼쳐지는 경관과 감상을 이렇게 하나하나 쪼개서 설명해주니 여행자의 감각이 스펀지처럼 살아난다.

무덤덤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저물녘 불로동 고분군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주민들과 함께 커피를 나누고 지등(紙燈)을 만들며 마주하는 노을이다. 늦은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부드럽게 고대인의 주검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1000년 동안 무덤 위로 지나갔던 저무는 시간을 헤아려보면 자못 아득하다. 이런 감상에 젖어있노라면, 여기까지 여행을 안내해준 좋은 안내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 경북 영주 주티스트… 청춘이 익어 술이 되다


사진 왼쪽은 관광두레 주민사업체 ‘주티스트’의 이사이자 만수주조 대표인 이보영 씨. 오른쪽은 주티스트를 이끌고 있는 대표 이기백 씨. 지역의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창업한 주티스트는 지역 특산물인 사과로 만드는 탄산 약주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 속의 막걸리는 만수주조에서 생산하는 제품이다.



# 술이 이끄는 여행… 만수주조

경북 영주에 ‘만수주조’가 있다. 영주 막걸리를 빚는 술도가다. 시골에 있는 그만그만한 주조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규모가 크다. 의외인 건 또 있다. 만수주조가 막걸리를 빚기 시작한 게 이제 11년밖에 안 됐다는 것. ‘시골 마을의 작고 오래된 막걸리 술도가’를 생각했는데, 정반대다.

다음은 이보영(47) 만수주조 대표로부터 들은 양조장의 내력. 만수주조는 4년 전에 돌아가신 이 대표의 아버지가 2010년 창업했다. 50년 넘게 식품유통 사업을 해온 아버지는 말년에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창업 당시 부친의 나이가 진작 은퇴하고도 남을 ‘일흔넷’이었으니, 집념과 열정이 어땠으리라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술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아버지 필생의 마지막 사업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늦은 나이’라고 말렸지만, 술을 좋아하시는 데다 평생의 사업경험을 토대 삼아 좋은 술을 만들고 유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아랑곳하지 않으셨지요.”

도시에서 생활하던 이 대표는 아버지가 벌인 양조장 사업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딸에게 이것저것 의견을 묻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매사를 늘 자신의 고집대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평소 술에 관심도 별반 없었다. 그러다가 덜컥 아버지가 병을 얻어 쓰러졌고, 급기야 양조장을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됐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대표는 팔을 걷어붙였다. 여기까지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의해 발목이 붙잡혀 이 대표가 양조장으로 끌려 들어오게 된 사연이다.

이 대표는 손수 술빚기의 기초부터 배워가며 일했다. 3년쯤 운영해보니 일은 손에 붙었지만, 성취감이 문제였다. 스스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즐기는데, 양조장에 틀어박혀 술만 빚어야 하는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다. 양조장의 사업적 한계도 느껴졌다. 술에 관한 한 소비자들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가 마시는 술을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았다. 호기심으로 한두 병을 먹어보게 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은데, 마시는 술을 바꾸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 농촌의 청년들이 회사를 차리다

양조장의 미래를 고심하던 이 대표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만수주조를 단순히 술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관광과 체험을 접목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가공산업, 3차 서비스업과 융합해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이른바 ‘6차 산업’으로의 도약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2014년 지방자치단체와 농촌진흥청 등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체험관광의 기반을 만들어 술빚기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체험을 전담할 ‘발효체험학교 띄움’이란 소기업을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띄움은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며 농촌교육 농장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광객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여행사와 협력, 술빚기 체험 프로그램을 영주관광상품으로 연계해 제법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다 이 대표는 지역 청년들과 손을 잡았다. 함께 ‘주티스트’라는 지역 주민이 주인이 되는 회사를 창업했다. 주티스트란 ‘술 주(酒)’자에 ‘아티스트(Artist·예술가)’를 결합해 만든 이름인데,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일 탄산 약주를 개발하면 달아줄 브랜드이기도 하다. 주티스트는 관광공사에서 지원하는 관광두레 사업의 주민사업체가 됐다. 지역의 문화관광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뽑힌 셈이다.

관광두레에 대한 지원은 지자체나 여느 정부기관의 지원과는 결이 좀 다르다. 시설 투자나 하드웨어에 대한 지원보다는 운영역량을 키워주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테면 주티스트가 새로운 술을 개발한다면 비용을 지원하기보다는 이름난 술 전문가나 경험 많은 문화기획자로부터 조언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이런 시골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전통주 전문가나 문화기획자를 섭외하고 만날 수 있겠느냐”며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진짜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지원과 전문가 조언 등으로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사전에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 도시와 농촌, 주민과 여행자가 만나다

주티스트는 전 직원이 4명이고, 4명이 모두 이사다. 이 대표의 주티스트에서 직함도 이사다. 주티스트 대표는 따로 있는데, 대표이사와 다른 두 명의 이사는 모두 시골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30대 초반 젊은이다.

이기백(33) 주티스트 대표는 2016년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영주로 귀촌해 농사를 짓다 지역사회에서 농촌체험마을 사무장 일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주티스트에 합류,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의 본업은 논 두 마지기와 700평의 블루베리 농사. 전통문화대학교 문화재 학과를 졸업했는데, 술 개발이나 술빚기 체험 프로그램을 영주에 산재한 문화재 명소 관광과 연계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나머지 두 명은 동갑내기인 조승주·염지현(31) 이사다. 이들은 영주에 캠퍼스가 있는 동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동기동창으로, 요양복지보호사와 보호가 필요한 어르신을 연결해주는 일을 본업으로 한다.

주티스트가 관광두레 주민사업체로 지정돼 지원받는 사업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탄산 약주의 개발과 판매’다. 영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주재료로 탄산이 들어간 젊은이 취향의 약주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약주 개발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술과 인문, 그리고 문화 콘텐츠의 결합이다. 단순한 제품 개발이 아니라 개발하고, 생산하고, 함께 마시고, 여행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많다. 더불어 농촌 지역에서 청년 정착의 모델을 보여주고 싶은 포부도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건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의 콘텐츠’다. 지난해 11월 만수주조에서 열린 파티 ‘주책전(酒冊煎)’이 바로 그런 행사였다. 주책전은 말 그대로 ‘술과 책이 함께하는 축제’다. 양조장에 모여 술을 마시고, 책을 얘기하고, 음악 공연을 감상하며 유쾌하게 치러졌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막걸리 제조 키트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술 만들기 강좌도 공유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주티스트는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고, 주민과 여행자가 교류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살짝 귀띔하자면, 이들이 여행자들과 어떠한 관계를 원하는지는 만수주조에서 인기리에 진행하고 있는 발효체험학교의 막걸리 빚기 체험에 참여해보면 알 수 있다. 체험에서는 술을 빚는 방법이나 기술 교육보다는, 사는 얘기와 여행 얘기가 주를 이룬다. 다른 곳의 체험 프로그램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이런 교류와 공감으로 맺어진 관계는 체험이 끝나고 난 뒤에도 오래 이어진다.

지역 주민의 역량 강화를 목표로 출범한 관광두레의 성과는 결국 지원 대상의 경제적 성공 여부로 계측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관광두레가 지원하는 주민사업체가 지역에 불어넣고 있는 희망이다. 이런 희망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지역주민과 여행자들의 유대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외지인의 여행이 로컬의 이득으로 돌아가고, 로컬의 진정한 환대로 여행자가 행복해지는 긍정적 순환. 이런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지역에 있다. 그리고 그런 지역을 여행하고픈 여행자들도 있다.


■ 주민여행사는 왜 필요할까

과거에는 한 지역에 관광객이 늘면 지역경제가 저절로 발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외부 자본이 관광수익을 밖으로 가져가면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주민 소외다. 또한 이 못지 않게 심각한 건 관광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자본은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미련 없이 철수한다. 지속가능한 관광은 관광두레가 주민사업체를 지원하는 까닭이자, 여행자들이 자신의 소비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