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알싸한 절경 '경북 청송'

醉月 2021. 12. 19. 10:24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꼽히는 주왕산. 주왕산을 상징하는 바위가 ‘기암’이다. 기암을 비슷한 눈높이에서 가장 극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장군봉이다. 협곡 계단을 딛고 장군봉으로 오르다가 뒤돌아서 본 기암의 모습.



여행하기에, 혹은 여행지를 고르기에 가장 어려운 계절은 ‘겨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난도는 ‘눈 내리기 전까지’의 겨울 여행입니다. 그때는 모든 풍경이 황량하니 마땅한 여행지를 찾기 쉽지 않지요. 그런 때 딱 맞는 여행지로 꺼내어 놓는 곳. 경북 청송입니다. 푸른(靑) 소나무(松). 그 이름만으로 어쩐지 알싸한 박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청송은 차갑고 맑은 곳입니다. 주왕산의 기기묘묘한 암봉의 뼈대는 겨울에 더 잘 보이고, 주왕산 계곡 길도 시리고 추운 날에 더 고요합니다. 겨울에 달게 맛이 드는 사과가 있고, 차고 따가운 탄산 약수가 있으며 오래 끓인 닭백숙이 있고, 뜨끈한 온천이 있는 곳. 여기는 겨울에 맞춤한 여행지, 경북 청송입니다.


# 가장 압도적인 풍경…깃발 내건 바위

경북 청송의 대표 명소가 주왕산이라면, 주왕산을 대표하는 건 ‘기암(旗巖)’이다. 기암은 산 아래 절집 대전사 뒤쪽 산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 군(群)을 부르는 이름이다. ‘기이할 기(奇)’자를 쓰는가 싶었는데, ‘깃발 기(旗)’자를 쓴다. 주왕산에는 중국 당나라 때 주왕(周王)을 자처하던 주도란 사람이 역모를 꾀하다 실패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전설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기암에도 ‘주왕의 부하가 이 바위에다 깃발을 꽂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주왕이 실존인물이었다는 근거는 아무 데도 없지만 누군가 그 산에 숨어들어 상징처럼 깃발을 꽂는다면, 주왕산을 상징하는 기암 자리가 최선이었으리라.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으로 꼽히는 주왕산에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곳곳에 있는데, 기암이야말로 그중 가장 압도적이다. 기암은 또 주왕산에 다가섰을 때, 탄성과 함께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절경이기도 하다.

기암은 절집 대전사 앞마당에서 올려다본 모습이 가장 익숙하다. 산 아래서 보는 산정의 기암은 마치 그려서 걸어둔 병풍 그림처럼 보인다. 처음 가본다 해도 어쩐지 익숙하다. 어디선가 한 번쯤 사진으로 보았던 풍경이리라. 주왕산에서는 누구나 그 풍경을 본다. 산을 오르지 않아도 주왕산 들머리인 대전사 매표소 앞까지만 가도 고개만 들면 기암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사진 왼쪽은 주왕암 뒤편 직벽에 있는 주왕굴. 중국 당나라 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주왕산에 숨어든 주왕의 후손이 은거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오른쪽은 주왕 계곡의 거대한 바위 협곡 사이로 난 길. 길을 따라 협곡 안쪽으로 들어서면 수묵화에서나 봤음 직한 풍경이 비밀처럼 숨어있다.



# 장군봉에 오르다가 뒤돌아보다

매표소 얘기가 나온 김에 ‘매표’ 얘기 잠깐. 주왕산 아래 절집 대전사는 여느 절보다 바지런하다. 꼭두새벽부터, 그리고 밤늦게까지 주왕산 입구에서 입장료를 거둔다. 자판기처럼 생긴 키오스크에서 절집 입장료를 결제하는 기분이 좀 그렇다. 아, 입장료가 아니라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화재 관람료’다. 법당 불상 뒤의 탱화를 비롯한 몇 가지가 문화재 자료다. 그런데 보통의 관광객에게 그게 관심이나 있을까 싶다. 대전사 절집 마당에도, 법당 문짝에도 기도와 공양의 가격표가 걸려있다. 100만 원짜리 1000일 기도가 있고, 30만 원짜리 1년 기도가 있으며, 인등 켜는데 3만 원, 향불 공양을 하는 데는 1000원이다. 절집에 들르지 않고 산만을 목적지로 삼은 이들은 더러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사찰 입장에서도 뭐 사정은 있지 않을까.

주왕산 기암을 보는 자리가 대전사 앞마당 말고 또 있다. 기암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봉우리 장군봉이다. 장군봉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뒤로 돌면 거의 같은 눈높이에서 기암과 마주 설 수 있다. 계단이 곧 기암 전망대라 해도 좋을 정도다. 장군봉에서 보는 기암은, 아래서 볼 때와 전혀 다르다. 산 아래서는 기암이 산 정상에 얹힌 것처럼 보이지만, 장군봉에서 보면 산 어깨쯤에 기암이 있다.

대전사에서 기암이 바라다보이는 장군봉 자락까지는 4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 땀이 살짝 배기 시작할 때쯤이면 닿는 거리다. 잠깐만 수고를 보태면 장군봉을 오르는 협곡의 가파른 계단에 서서 뒤쪽으로 기암이 펼쳐지는 훌륭한 기념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른바 ‘인생 사진’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사진이다.


# 주왕계곡 따라 걷는 ‘좋은 길’

기암과 장군봉 얘기를 먼저 꺼냈지만, 주왕산에서 가장 이름난 코스는 계곡을 따라 용추폭포까지 다녀오는 주왕계곡 길이다. 이 길의 가장 큰 미덕은 유모차를 끌거나 구두를 신고도 불편 없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 순하다는 것. 걸으면서 거대한 바위산 협곡의 경관을 감상하는 맛도 훌륭하다. 주왕계곡은 가을 단풍이 빼어나 일찍이 관광명소로 알려졌지만, 인적 드문 겨울에도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제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서 고요하게 산책할 수 있다.

‘좋은 길’의 조건 중 하나가 ‘보상’이다. 걷기의 노고를 다 벌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답을 길 끝에 두면, 그 길은 누구나 걷고 싶은 길이 된다는 얘기다. 걷기 길을 만드는 이들이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고된 오르막길 뒤에 그에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왕계곡 길의 점수는 ‘만점’이다. 주왕계곡의 순한 길 뒤에 분에 넘치는 경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관이란 다름 아닌 용추폭포다.

주왕계곡 길에는 협곡을 이룬 거대한 암봉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연화봉, 시루봉, 병풍바위, 학소대, 급수대…. 바위 하나하나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기이한 경치를 빚어낸다. 용추폭포는 암봉이 이룬 좁은 협곡 너머에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작은 틈 사이로 들어가면 사방을 석벽으로 둘러친 비밀스러운 공간이 나오는데, 그 공간 안쪽에 용추폭포가 있다.


청송에는 9대에 걸쳐 자그마치 250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던 청송 심씨 집안의 고택인 송소고택이 있다. 사진은 송소고택 담장에 딱 붙어있는 한옥 카페 ‘백일홍’.



# 주왕계곡의 하이라이트…용추폭포

용추폭포는 삼단을 이룬다. 1단 폭포 아래 선녀탕이 있고, 2단 폭포 아래 구룡소가 있으며, 3단 폭포 아래에 폭호가 있다. 비밀스러운 협곡과 협곡에서 쏟아지는 폭포는, 다른 비슷한 곳을 떠올리거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인 경관을 만들어낸다. 무협지 속에 등장하는 배경이 이럴까. 상상 속에서만 구현이 가능할 것 같은 그런 경관이다.

주왕계곡 경관의 하이라이트는 더도 말고 용추폭포까지다. 더 올라가면 과거 2폭포와 3폭포로 불리던 절구폭포와 용연폭포가 있긴 하지만, 1폭포인 용추폭포에 비길 만한 절경은 없다. 주왕산을 찾는 이들이 십중팔구 용추폭포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이유다.

대전사에서 용추폭포까지는 ‘산책’ 수준이지만, 거기서 더 가면 ‘산행’이 된다. 용추폭포를 넘고 절구폭포, 용연폭포를 지나 금은광이를 거쳐서 장군봉을 오르는 11㎞ 남짓의 5시간짜리 코스가 주왕산을 대표하는 산행 코스다. 이 코스는 주왕산 아래 대전사에서 출발해 주왕산의 대표명소인 주왕계곡과 장군봉을 다 딛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 코스의 확장 버전인 ‘환종주’ 코스도 있다. 앞의 코스에다 주왕산의 주봉과 가메봉까지 끼워 넣었으니 산행 거리가 17.5㎞까지 늘어난다. 휴식시간을 포함해 7시간쯤은 잡아야 한다. 체력에 웬만큼 자신 있어야 도전해볼 수 있는 코스다. 겨울 여행이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걸을 건 없다. 5시간짜리 산행코스를 다녀오길 추천한다. 그냥 용추계곡까지 산책 삼아 왕복 1시간 남짓에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용추폭포까지만 갔다 돌아 나오겠다면 돌아올 때는 ‘주왕암 가는 길’ 이정표를 따라 내려오는 게 좋겠다. 협곡 한쪽 비탈면에다 놓은 길이어서 그 길을 걸으면 맞은 편 암봉과 함께 계곡의 물길과 내려다보인다. 주왕암은 1000년이 넘었다는 암자인데 사방이 산으로 막힌 ‘무협지적’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암자 뒤쪽에는 주왕이 숨어 살았다는 주왕굴이 있다. 동굴이라기보다는 ‘깊게 움푹 파인 자리’라는 게 더 맞는 곳인데, 주왕굴을 법당으로 조성하면서 입구 쪽을 발포수지로 뒤덮어서 깊은 동굴처럼 꾸몄다.


# 신성계곡 따라 펼쳐지는 지질명소

▲ 영평수석꽃돌전시관이 자랑하는 해바라기 문양의 꽃돌.


산이 있는데 물이 없을 리 없다. 청송에는 신성계곡이 있다. 주왕산의 이름값에 밀려 아는 이들이 적지만 신성계곡은 ‘청송 8경’ 중 당당히 ‘제1경’ 자리를 차지하는 명소다. 주왕산은 뜻밖에 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제7경’이다. 신성계곡은 낙동강의 지류인 길안천이 빚어낸 계곡으로 바위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정자 방호정에서 백석탄 계곡에 이르기까지 15㎞의 물길 구간을 부르는 이름이다.

신성계곡은 본래 여름철에 물놀이를 즐기는 행락지로 이름났지만, 겨울에도 물길이 깎아 만든 감입곡류와 단애 등 제법 볼 만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17년 청송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면서 조성한 지질 탐방코스 3개 중 하나를 이곳 신성계곡에 만든 이유다. 청송의 지질명소는 모두 24곳. ‘지질’이라면 무슨 어렵고 고리타분한 학술여행 답사지쯤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까마득한 벼랑이나 근육질의 암봉, 기암괴석, 폭포 등 청송이 가진 거의 모든 경관 명소가 전부 지질자원이다.

신성계곡 일대에는 독특한 지질 명소들이 즐비하다. 부남면 구천리의 병암 단애부터 정자 방호정 일대,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과 지소리의 만안자암 단애 등이 그런 곳이다. 병암 단애는 천변에 140m 높이의 까마득한 벼랑이 병풍처럼 서 있는 곳이고, 방호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조준도가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천변의 벼랑에다 지은 빼어난 정자다. 예로부터 이름난 명소였던 백석탄은 길안천 변에 아이스크림 스쿠프로 떠낸 듯한 기이한 모양의 회백색 바위들이 펼쳐진 공간의 지명이다. 백석탄의 기이한 바위는 작은 바위 구멍 안에 돌이 들어가 물살에 따라 돌면서 바위를 갈아내 점점 더 큰 구멍이 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 톡 쏘는 탄산약수의 청량함

‘청송’이란 지명에서 느껴지는 청량함은 어쩐지 청송에 있는 탄산약수를 마실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청송에는 달기약수와 신촌약수가 있다. 둘 다 철분 성분의 탄산약수다. 약수에 따로 계절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입안에서 따갑게 터지는 비릿한 철분 맛의 탄산약수는 차가운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탄산약수를 들이켜면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차고 맑은 물로 헹구어내는 듯하다.

달기약수는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낙향해 자리 잡고 살면서 수로공사 중 발견했다고 전한다. ‘달기’라는 약수 이름은 바위틈에서 ‘꼬르르’ 솟아나는 소리가 ‘달기’(‘닭이’의 사투리) 우는 소리와 비슷해서 붙여진 것이란 얘기가 있는데, 그보다는 약수터 일대의 옛 지명이 ‘달이 뜨는 곳’이라는 뜻의 ‘달기골’로 거기서 나왔다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이긴 한다.

약수는 한 곳이 아니다. 상탕, 중탕, 하탕, 신탕, 옥탕, 천탕, 장수탕 등 줄잡아 10여 개에 이르는 약수터가 계곡을 따라 1㎞쯤 이어져 있다. 어디든 차로 약수 앞까지 갈 수 있어 접근성이 좋다. 약수탕마다 성분의 함량이나 맛은 조금씩 다르다. 주민들이 ‘약수원탕’이라고 부르는 하탕과 상탕의 약수가 톡 쏘는 맛이 제일 강하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겨울철에도 물을 받으려면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지만, 이즈음은 어디에서든 바로 물맛을 볼 수 있다.

진보면의 신촌약수는 청송읍의 달기약수에 비해 접근성이나 명성에는 좀 밀리지만, 약수로 끓여내는 백숙만큼은 한 수 위다. 신촌약수 일대의 백숙식당 메뉴는 똑같다. 퍽퍽한 닭가슴살은 고추장 양념과 함께 다져 떡갈비처럼 구워 ‘닭불고기’로 내고, 닭다리는 녹두를 넣고 백숙으로 끓여내며, 날개는 구이로 낸다. 보통 약수터의 백숙집은 ‘마리당’으로 팔아 가격이 부담스러운데, 신촌약수 주변 식당들은 닭불고기에 백숙을 함께 내는 세트메뉴를 1인분에 1만5000원에 내놓는다.

신촌약수 인근에 청송군에서 지은 야송미술관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한국화가 야송 이원좌 화백의 그림을 전시한 곳인데,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수묵화가 있다. 전지 400장을 붙여 만든 높이 6.3m, 길이 45.6m 화폭에다 그린 ‘청량대운도’다. 이 그림 한 장을 걸기 위해 청송군은 웬만한 체육관 크기의 2층짜리 전시장을 지었다. 그림 앞에 서면 ‘압도’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굵은 붓질로 그려낸 거대한 산과 운해, 소나무의 기운찬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그림 아래쪽에는 2년 전 세상을 뜬 이 화백이 청량대운도를 그리기까지의 이야기를 ‘도화기(圖畵記)’로 적어놓았다. 그만한 크기의 종이를 깔 수 있는 공간을 찾기까지 이야기며 대나무에 붓을 묶어서 스케치하는 과정까지 상세하게 써놓았다.


# 영원히 지지 않는다…청송 꽃돌

경북 청송의 특산품은 사과다. 청송사과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 단단한 과육에 신맛과 단맛이 빈틈없이 꽉 차 있다. 큰 일교차와 토질을 비결로 말하지만, 그런 곳이 어디 청송뿐일까. 청송사과는 1월쯤에 가장 맛있다.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냉장상태로 보관하면 그때쯤 단맛이 최고조로 올라온단다. 잘 믿기지 않는 얘기다. 지금보다 더 맛있어지는 게 가능하다고?

사과에다 댈 건 아니지만, 청송의 특산품 중에는 ‘꽃돌’도 있다. 꽃돌이란 말 그대로 ‘꽃문양이 새겨진 돌’이다. 꽃돌은 일반적인 수석과 다르다. 수석은 형태나 색감, 질감 등이 독특한 자연석이라면, 꽃돌은 원석을 자르고 깎고 갈아서 만든다. 수석이 ‘발견하는 것’이라면 꽃돌은 ‘만드는 것’인 셈이다. 수집가 입장에서 보면 수석은 ‘줍는 것’이고, 꽃돌은 ‘사는 것’이다. 줍든 사든 수집품에서 수집가의 안목이 드러나는 건 비슷하다.

청송은 꽃돌의 국내 최대 산지다. 돌의 꽃무늬는 지금으로부터 7000만 년 전, 바위틈으로 마그마가 스며들었다가 급속하게 식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청송에서 꽃돌이 처음 발견된 건 40여 년 전이다. 진보면 괴정리 일대에 폭우가 내려 바위가 굴러내렸는데, 깨진 바위의 절단면에서 희한한 무늬가 발견된 것이 시초였다. 괴정리에 꽃돌 원석을 캐는 노천광산이 개발됐고 여기서 캐낸 원석으로 다양한 꽃돌이 생산됐다. 그러나 이제 원석은 고갈된 상태. 광산도 문을 닫았다. 꽃돌이 귀해지면서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청송 꽃돌에 새겨진 문양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국화, 해바라기, 카네이션, 구절초, 목단, 매화…. 어찌나 문양이 섬세한지 비슷한 모양의 꽃 종류로 꽃돌을 분류하고 있을 정도다. 주왕산 입구의 주왕산관광단지에 청송 수석꽃돌박물관이 있다. 수석과 함께 다양한 문양의 꽃돌을 전시해놓은 공간이다.

진짜 크고 화려한 청송 꽃돌은 달기약수에서 멀지 않은 청송읍 부곡리의 영평수석꽃돌전시관에 있다. 경북 안동 출신의 수석 수집가가 사재를 털어 문을 연 곳인데, 평생 수집한 수석과 꽃돌의 화려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이곳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선명한 해바라기 문양이 찍힌 꽃돌. 색감부터 형상까지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를 빼닮았다. 입장료를 받는 곳이긴 하지만 방문을 권하는 건, 돈을 내면 어쩐지 더 찬찬히 보게 되기 때문이다.


■ 은거의 공간이 느림의 명소로

송소고택이 있는 경북 청송의 덕천마을은 조선 개국 이후 고려에 대한 절의로 두문동에 은거했던 심원부의 후손이 600여 년 동안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온 청송 심씨의 본향이다. 덕천마을에는 송소고택을 비롯해 초전댁, 찰방공종택, 송정고택, 창실고택을 비롯해 세덕사, 벽절정, 소류정 등 오래된 고택이 마을 곳곳에 있다. 이런 연유로 덕천마을이 있는 파천면과 이웃 부동면은 2011년 국내에서 9번째 국제슬로시티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