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을 ‘엉금엉금’ 오르니 물만난 악어떼가 ‘우글우글’
▲ 악어산에서 내려다본 청풍호. 발아래로 월악산에서 내려온 능선의 긴 자락들이 마치 악어떼가 물을 마시러 나온 듯 펼쳐지면, 그제야 ‘악어산’이란 이름에 무릎을 치게 된다.
▲ 청풍호 주변에는 저마다 새잎을 내는 시기가 다른 수목들이 한데 어우러져 회화와 같은 풍경을 빚어낸다.
충주호. 제천 쪽에선 청풍호라고 부르는 호수에는 악어가 있고, 봉황도 있습니다. 뜬금없이 웬 악어와 봉황이냐고요? 다름 아닌 충주 월악나루 뒤편 월악산 자락의 ‘악어산’과 제천 청풍면의 ‘비봉산’을 일컫는 말입니다. 둘 다 해발 500m 남짓한 산인데 ‘악어산’은 정상에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진 호수에 잠긴 산자락이 마치 악어가 무리 지어 물을 마시는 모습과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비봉산’은 봉황(鳳)이 나는(飛) 형국으로 사방을 굽어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누구든 그 산에 오른다면 어찌나 그 이름이 잘 어울리는지, 절묘한 작명 솜씨에 저절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청풍호를 굽어보는 악어산과 비봉산, 그 두 곳에 차례로 올라 보고 얻은 깨달음. 그것은 호수의 정취를 가장 아름답게 빚어내는 게 다름 아닌 ‘높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악어산과 비봉산은 마치 청풍호의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골라내 일부러 빚어 쌓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 산 정상에 올라 첩첩이 겹쳐진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이 두 곳의 산 정상에 오르면 풍경은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악어산에서는 왼쪽부터 끝에서 시작해 고개를 끝까지 다 돌려야 그 장쾌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풍경의 시야각이 270도에 이르는 것이지요. 비봉산 정상에서는 아예 제자리에서 온전히 한 바퀴를 돌아야 호수를 다 볼 수 있습니다. 사방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든지 호수가 펼쳐진 까닭이지요.
청풍호가 있는 제천은 갖가지 매력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월악산의 거친 암봉과 그 산자락을 끼고 있는 송계계곡이야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그것 말고도 챙겨 봐야 할 곳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의림지 호반의 나무덱 산책길과 방죽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도 빼어날뿐더러, 터널이 뚫려 이제 쓰임새를 잃고 만 박달재를 ‘울고넘는 박달재’의 트로트 가락과 함께 구불구불 넘어가는 맛도 괜찮습니다.
청풍호를 끼고 피어나는 봄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올해 제천의 봄꽃은 어찌 된 게 순서를 잃고 뒤죽박죽 섞였습니다. 순서로 보자면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뒤를 이어 벚꽃이 피는 것이 마땅하지만, 올봄에는 진즉 져야 마땅한 산수유가 청풍면 쪽에서는 아직도 노란 꽃술을 달고 있고, 단양에서 학현마을 쪽으로 넘어오는 길 양쪽에 끝없이 심어진 매화는 이제서야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꽃눈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가장 늦게 피어나는 벚꽃은 봄비에 지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예부터 한약재의 집산지였던 제천에는 갖가지 약재가 쌉싸래한 향을 풍기는 약초시장이 여전히 성성하게 살아 있고, 관광객을 위한 한방명의촌까지 들어서 명실상부한 의료관광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청풍호의 호반길에 벚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화사한 봄날, 제천의 곳곳을 돌아봤습니다.
청풍호를 굽어보는 악어산과 비봉산, 그 두 곳에 차례로 올라 보고 얻은 깨달음. 그것은 호수의 정취를 가장 아름답게 빚어내는 게 다름 아닌 ‘높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악어산과 비봉산은 마치 청풍호의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골라내 일부러 빚어 쌓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 산 정상에 올라 첩첩이 겹쳐진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맛은 그야말로 최고였습니다. 이 두 곳의 산 정상에 오르면 풍경은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악어산에서는 왼쪽부터 끝에서 시작해 고개를 끝까지 다 돌려야 그 장쾌한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풍경의 시야각이 270도에 이르는 것이지요. 비봉산 정상에서는 아예 제자리에서 온전히 한 바퀴를 돌아야 호수를 다 볼 수 있습니다. 사방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든지 호수가 펼쳐진 까닭이지요.
청풍호가 있는 제천은 갖가지 매력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월악산의 거친 암봉과 그 산자락을 끼고 있는 송계계곡이야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그것 말고도 챙겨 봐야 할 곳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의림지 호반의 나무덱 산책길과 방죽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도 빼어날뿐더러, 터널이 뚫려 이제 쓰임새를 잃고 만 박달재를 ‘울고넘는 박달재’의 트로트 가락과 함께 구불구불 넘어가는 맛도 괜찮습니다.
청풍호를 끼고 피어나는 봄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올해 제천의 봄꽃은 어찌 된 게 순서를 잃고 뒤죽박죽 섞였습니다. 순서로 보자면 매화와 산수유, 그리고 뒤를 이어 벚꽃이 피는 것이 마땅하지만, 올봄에는 진즉 져야 마땅한 산수유가 청풍면 쪽에서는 아직도 노란 꽃술을 달고 있고, 단양에서 학현마을 쪽으로 넘어오는 길 양쪽에 끝없이 심어진 매화는 이제서야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꽃눈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가장 늦게 피어나는 벚꽃은 봄비에 지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예부터 한약재의 집산지였던 제천에는 갖가지 약재가 쌉싸래한 향을 풍기는 약초시장이 여전히 성성하게 살아 있고, 관광객을 위한 한방명의촌까지 들어서 명실상부한 의료관광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청풍호의 호반길에 벚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화사한 봄날, 제천의 곳곳을 돌아봤습니다.
▲ 비봉산 정상의 널찍한 나무덱에 올라서 내려다본 청풍호 모습. 이곳에 오르면 사방으로 월악산, 금수산의 영봉은 물론이고 구담봉, 옥순봉을 유유히 돌아온 유람선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발아래 양평리, 도곡리의 밭들이 마치 조각보를 이어 붙인 듯하다.
▲ 의림지의 물 위에 설치된 호반길. 신록을 틔운 버드나무가 낭창거리는 길이다.
# 청퐁호에 잠긴 산자락 … 악어가 물 마시는 형상
제천 월악산의 능선이 낮아지다가 청풍호 월악나루 쪽에서 살짝 일으켜 세운 봉우리쯤에 ‘악어산’이 있다고 했다. 근래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어찌 이름이 악어일까. 산의 이름은 대개 그 봉우리의 형상을 본떠 붙여지게 마련. 그러나 산자락 밑에서 올려다본 악어산 봉우리는 여느 산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악어’라는 것일까.
악어산이란 이름에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은, 그 산의 정상에 딛고 난 뒤다. 해발 500m 남짓한 산이지만, 정상까지는 40분 정도면 넉넉히 가닿게 된다. 간혹 가파른 구간이 있어 숨이 턱까지 차오르긴 하지만, 산행 거리는 본격 등산이라 하기엔 다소 싱거울 정도. 그러나 정상에 올라서면 그만한 수고로움으로 보상받기 미안할 정도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악어산을 오르는 구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다. 가파르게 경사면을 차고 오른 뒤 부드러운 소나무 숲 능선길로 접어들면 선명한 진달래꽃의 빛깔이 옷이며 손에 묻어날 것만 같다.
정상에 닿기 전에는 빽빽한 소나무 숲이 시선을 가려 좀처럼 호수가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정상에 서면 비로소 청풍호를 바라보는 시야가 탁 트인다. 발아래로 호반도로가 지나고, 그 위쪽으로 산자락의 낮고 긴 능선들이 앞다퉈 청풍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악어가 물을 마시러 나온 형국이다. 악어산이란 이름이 산의 형세가 아니라, 그 산에 들어 내려다보는 풍경을 따서 붙여진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이름 그대로 청풍호의 호반은 우글우글 악어로 가득하다. 바다로 치자면 리아스식 해안과 비슷한 셈인데, 가는 능선의 자락이 호수를 들고 나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장쾌하게 27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을 대하면 처음에는 무엇부터 봐야 할지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가 호반의 마을이며, 초록으로 반짝이는 밭, 호수에 떠 있는 작은 배들에 하나하나 시선이 가닿게 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잘라낸 부분의 풍경들은 저마다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손꼽히는 비봉산
악어산과 견줄 만한 제천의 산이 바로 비봉산이다. 비봉산은 청풍호 쪽으로 불쑥 내민 땅에 솟아 있는 해발 531m의 산이다. 이 산의 비범함을 가장 일찍 알아본 것은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었다. 동호인들은 지난 2006년부터 무거운 장비를 등에 지고 이 산에 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바람이 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어찌 그 이유 때문만일까. 아마도 그들은 비봉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빼어난 경관에 매료됐음이 틀림없겠다.
비봉산은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50분쯤이면 넉넉하다. 등산로는 청풍면 연곡리의 자그마한 절집 봉정사 쪽이나 신리마을 쪽으로 나 있다. 신리마을에서 차고 오르는 길이 1.1㎞로 가장 짧지만, 봉정사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편이 더 낫다.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편히 오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광의리 쪽에서 임도를 따라 해발 240m 부근까지 차를 타고 오르면 패러글라이딩업체에서 설치해 놓은 컨테이너가 있고, 그곳에 정상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 있다.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장비를 싣거나 타고 오르는 모노레일인데, 말이 모노레일이지 경운기 동력장치와 비슷한 엔진이 앞에 달린 다소 허름해 보이는 탈것이다. 급경사를 차고 올라 정상까지 닫는 데는 10분 남짓이면 된다.
모노레일은 당초 동호인들이 이용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일반인들에게도 5000원의 요금을 받고 운행하고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50~60도가 넘는 등판 각도를 오르면 스릴이 넘친다. 다만 어린이나 노약자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노레일이 닿는 비봉산 정상에는 530㎡(약 160평)의 널찍한 나무덱이 설치돼 있다. 덱은 패러글라이딩 활강을 위해 스키장 슬로프처럼 경사가 져 있다. 덱 끝의 벼랑에 서면 엄청난 고도감에 발가락이 간질간질해진다. 덱 위에 올라서면 그 빼어난 경관에 탄성부터 지르게 된다. 풍경의 스케일이 커서 단지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덱에 서면 청풍호 전체의 모습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월악산, 금수산은 물론이고 첩첩이 이어진 봉우리와 그 능선들이 발목을 담그고 있는 청풍호가 펼쳐진다.
사방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건 다 호수다. 동남쪽으로는 구담봉, 옥순봉을 돌아온 유람선이 유유히 물살을 헤치고 있다.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는 서쪽의 발아래에는 봉긋하게 호수 쪽으로 내민 양평리 도곡리의 밭들이 조각보를 이어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다. 잘 단장된 덱은 그저 그 위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쉽다. 발아래 호수를 바라보면서 일광욕을 하거나 도시락이며 보온병에 차를 담아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겠다.
# 월악산 우뚝 솟은 암봉 … 웅장함에 감탄
제천에서 명소가 몰려 있는 곳이 월악산으로 드는 입구가 되는 한수면 일대다. 제천의 명산이라면 단연 월악산. 아기자기하기로는 금수산이 꼽히지만 산세의 웅장함만큼은 월악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월악산의 우뚝 솟은 암봉들이야 산자락을 타 넘는 본격 등산객들의 차지겠지만, 산자락 아래 덕주공주가 세웠다는 덕주사와 사자빈신사지석탑쯤은 차로도 쉽게 가닿을 수 있다. 덕주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월악산 중턱의 마애불이 됐고,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반대편 포암산 아래 미륵리사지에서 석불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사자빈신사지석탑은 ‘사자빈신사’라는 이름의 절집이 있던 터에 세워진 탑이다. 절집의 이름은 대개 세 글자인데 ‘사자빈신사’는 다섯 자.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동물을 말하고, 여기다가 ‘급할 빈(頻)’에 ‘빠를 신(迅)’을 쓴다. 부처가 설법을 하는 순간이 사자가 포효하면서 기운을 뻗는 순간과 같다고 해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었으리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의 자비를 나타내는 정신통일의 경지를 불가에서 ‘빈신사지삼매’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터다. 석탑에는 2층 기단에 4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서 있고, 그 가운데 비구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앉은 석불이 들어서 있다. 그 모양이 다른 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해 문외한의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 한수면의 송계계곡 일대는 낮은 기온으로 꽃이 늦어 이번 주말에 가더라도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제천의 명소로 의림지가 있다. 워낙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가 보지 않고서도 마치 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의림지야 보통 저수지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호반 산책을 위해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저수지둑의 소나무 숲 산책로도 좋고, 한쪽 호수 위에 나무덱을 설치해 놓은 산책코스도 운치 있다. 의림지 위쪽의 송림공원을 함께 코스에 넣는 것도 좋다.
제천·충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제천에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제천이나 남제천나들목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 그러나 그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감곡나들목으로 나와서 좌회전해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박달재터널을 지나 제천에 닿는다. 이쪽 길을 택하는 것이 고속도로 요금을 아끼고 시간도 10분쯤 절약할 수 있다.
묵을 곳
제천에는 수준급 숙소들이 많다. 그중 청풍호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풍리조트’(043-640-7000)가 가장 추천할 만하다. 낭만적이기로는 ‘이에스리조트’가 으뜸이지만, 회원이 아니면 숙박할 수 없다. 이 밖에 청풍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길의 학현마을에 운치 있는 민박집들이 곳곳에 있다. 제천에서 특별한 체험을 원한다면 봉양읍 명암리의 ‘한방명의촌’을 숙소로 잡는 것이 좋겠다. 한방명의촌에서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방 건강검사와 기수련, 한방 피부마사지 등을 묶어 1만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단 10명 이상 단체만 이 가격이 적용된다. 음식점으로는 약선음식 전문인 ‘순채랑’(043-652-9931)이 가장 이색적이다. 각종 약재로 건강에 이로운 음식들을 내놓는다.
제천 월악산의 능선이 낮아지다가 청풍호 월악나루 쪽에서 살짝 일으켜 세운 봉우리쯤에 ‘악어산’이 있다고 했다. 근래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어찌 이름이 악어일까. 산의 이름은 대개 그 봉우리의 형상을 본떠 붙여지게 마련. 그러나 산자락 밑에서 올려다본 악어산 봉우리는 여느 산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악어’라는 것일까.
악어산이란 이름에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은, 그 산의 정상에 딛고 난 뒤다. 해발 500m 남짓한 산이지만, 정상까지는 40분 정도면 넉넉히 가닿게 된다. 간혹 가파른 구간이 있어 숨이 턱까지 차오르긴 하지만, 산행 거리는 본격 등산이라 하기엔 다소 싱거울 정도. 그러나 정상에 올라서면 그만한 수고로움으로 보상받기 미안할 정도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악어산을 오르는 구간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다. 가파르게 경사면을 차고 오른 뒤 부드러운 소나무 숲 능선길로 접어들면 선명한 진달래꽃의 빛깔이 옷이며 손에 묻어날 것만 같다.
정상에 닿기 전에는 빽빽한 소나무 숲이 시선을 가려 좀처럼 호수가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정상에 서면 비로소 청풍호를 바라보는 시야가 탁 트인다. 발아래로 호반도로가 지나고, 그 위쪽으로 산자락의 낮고 긴 능선들이 앞다퉈 청풍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악어가 물을 마시러 나온 형국이다. 악어산이란 이름이 산의 형세가 아니라, 그 산에 들어 내려다보는 풍경을 따서 붙여진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이름 그대로 청풍호의 호반은 우글우글 악어로 가득하다. 바다로 치자면 리아스식 해안과 비슷한 셈인데, 가는 능선의 자락이 호수를 들고 나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낸다.
장쾌하게 27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경을 대하면 처음에는 무엇부터 봐야 할지 시선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다가 호반의 마을이며, 초록으로 반짝이는 밭, 호수에 떠 있는 작은 배들에 하나하나 시선이 가닿게 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잘라낸 부분의 풍경들은 저마다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 패러글라이딩 명소로 손꼽히는 비봉산
악어산과 견줄 만한 제천의 산이 바로 비봉산이다. 비봉산은 청풍호 쪽으로 불쑥 내민 땅에 솟아 있는 해발 531m의 산이다. 이 산의 비범함을 가장 일찍 알아본 것은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었다. 동호인들은 지난 2006년부터 무거운 장비를 등에 지고 이 산에 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한 바람이 부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어찌 그 이유 때문만일까. 아마도 그들은 비봉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빼어난 경관에 매료됐음이 틀림없겠다.
비봉산은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50분쯤이면 넉넉하다. 등산로는 청풍면 연곡리의 자그마한 절집 봉정사 쪽이나 신리마을 쪽으로 나 있다. 신리마을에서 차고 오르는 길이 1.1㎞로 가장 짧지만, 봉정사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편이 더 낫다.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편히 오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광의리 쪽에서 임도를 따라 해발 240m 부근까지 차를 타고 오르면 패러글라이딩업체에서 설치해 놓은 컨테이너가 있고, 그곳에 정상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이 있다.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장비를 싣거나 타고 오르는 모노레일인데, 말이 모노레일이지 경운기 동력장치와 비슷한 엔진이 앞에 달린 다소 허름해 보이는 탈것이다. 급경사를 차고 올라 정상까지 닫는 데는 10분 남짓이면 된다.
모노레일은 당초 동호인들이 이용하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일반인들에게도 5000원의 요금을 받고 운행하고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50~60도가 넘는 등판 각도를 오르면 스릴이 넘친다. 다만 어린이나 노약자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모노레일이 닿는 비봉산 정상에는 530㎡(약 160평)의 널찍한 나무덱이 설치돼 있다. 덱은 패러글라이딩 활강을 위해 스키장 슬로프처럼 경사가 져 있다. 덱 끝의 벼랑에 서면 엄청난 고도감에 발가락이 간질간질해진다. 덱 위에 올라서면 그 빼어난 경관에 탄성부터 지르게 된다. 풍경의 스케일이 커서 단지 ‘아름답다’고 하기보다는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덱에 서면 청풍호 전체의 모습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월악산, 금수산은 물론이고 첩첩이 이어진 봉우리와 그 능선들이 발목을 담그고 있는 청풍호가 펼쳐진다.
사방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리건 다 호수다. 동남쪽으로는 구담봉, 옥순봉을 돌아온 유람선이 유유히 물살을 헤치고 있다. 패러글라이더가 이륙하는 서쪽의 발아래에는 봉긋하게 호수 쪽으로 내민 양평리 도곡리의 밭들이 조각보를 이어 놓은 것처럼 펼쳐져 있다. 잘 단장된 덱은 그저 그 위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쉽다. 발아래 호수를 바라보면서 일광욕을 하거나 도시락이며 보온병에 차를 담아 오래도록 머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겠다.
# 월악산 우뚝 솟은 암봉 … 웅장함에 감탄
제천에서 명소가 몰려 있는 곳이 월악산으로 드는 입구가 되는 한수면 일대다. 제천의 명산이라면 단연 월악산. 아기자기하기로는 금수산이 꼽히지만 산세의 웅장함만큼은 월악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월악산의 우뚝 솟은 암봉들이야 산자락을 타 넘는 본격 등산객들의 차지겠지만, 산자락 아래 덕주공주가 세웠다는 덕주사와 사자빈신사지석탑쯤은 차로도 쉽게 가닿을 수 있다. 덕주사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달래며 월악산 중턱의 마애불이 됐고,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는 반대편 포암산 아래 미륵리사지에서 석불이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사자빈신사지석탑은 ‘사자빈신사’라는 이름의 절집이 있던 터에 세워진 탑이다. 절집의 이름은 대개 세 글자인데 ‘사자빈신사’는 다섯 자.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동물을 말하고, 여기다가 ‘급할 빈(頻)’에 ‘빠를 신(迅)’을 쓴다. 부처가 설법을 하는 순간이 사자가 포효하면서 기운을 뻗는 순간과 같다고 해 이런 이름이 지어진 것이었으리라.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의 자비를 나타내는 정신통일의 경지를 불가에서 ‘빈신사지삼매’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터다. 석탑에는 2층 기단에 4마리의 사자가 늠름하게 서 있고, 그 가운데 비구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앉은 석불이 들어서 있다. 그 모양이 다른 탑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해 문외한의 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여기에 한수면의 송계계곡 일대는 낮은 기온으로 꽃이 늦어 이번 주말에 가더라도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제천의 명소로 의림지가 있다. 워낙 널리 알려진 곳이어서 가 보지 않고서도 마치 가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의림지야 보통 저수지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호반 산책을 위해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 저수지둑의 소나무 숲 산책로도 좋고, 한쪽 호수 위에 나무덱을 설치해 놓은 산책코스도 운치 있다. 의림지 위쪽의 송림공원을 함께 코스에 넣는 것도 좋다.
제천·충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제천에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제천이나 남제천나들목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 그러나 그보다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감곡나들목으로 나와서 좌회전해 38번 국도를 따라가면 박달재터널을 지나 제천에 닿는다. 이쪽 길을 택하는 것이 고속도로 요금을 아끼고 시간도 10분쯤 절약할 수 있다.
묵을 곳
제천에는 수준급 숙소들이 많다. 그중 청풍호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풍리조트’(043-640-7000)가 가장 추천할 만하다. 낭만적이기로는 ‘이에스리조트’가 으뜸이지만, 회원이 아니면 숙박할 수 없다. 이 밖에 청풍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길의 학현마을에 운치 있는 민박집들이 곳곳에 있다. 제천에서 특별한 체험을 원한다면 봉양읍 명암리의 ‘한방명의촌’을 숙소로 잡는 것이 좋겠다. 한방명의촌에서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한방 건강검사와 기수련, 한방 피부마사지 등을 묶어 1만5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단 10명 이상 단체만 이 가격이 적용된다. 음식점으로는 약선음식 전문인 ‘순채랑’(043-652-9931)이 가장 이색적이다. 각종 약재로 건강에 이로운 음식들을 내놓는다.
절정을 넘어서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잎은 무엇으로 쓸어야 할까. 그 꽃잎을 쓰는 데 맞춤한 빗자루가 있다. 이름하여 ‘꽃빗자루’다. 충북 제천에는 60년 동안 빗자루를 만들어 온 이가 있다. ‘광덕 빗자루공예사’를 운영하는 이동균(70·사진)씨. 이씨가 만들어 내는 수수 빗자루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힌다.
“빗자루라고 다 같은 게 아니지요. 수수 빗자루 중에서는 장목이 최고이고, 그 아래로 황목이, 그 밑으로는 늘목과 목탁이 있어요. 장목으로 만든 빗자루는 수십년을 써도 늘 새것 같지요.”
장목은 시골 사람들이 흔히 ‘나이롱작목’이라 부르는 한성수수를 말한다. 수입산 수수품종인데 끝이 가늘면서도 부드럽고 탄성이 있어 빗자루로 엮으면 한눈에도 여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다. 이 품종은 수수가 많이 여물지 않아 아예 수확을 하지 않고 오로지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심는다. 최고의 재료답게 장목으로 만든 빗자루는 한 개에 7만원을 호가한다.
이씨가 처음 빗자루를 만든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유독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촌비(전통빗자루) 엮는 것을 배워 재미 삼아 하나둘씩 엮기 시작했다. 이씨의 빗자루 엮는 솜씨를 신기해 하던 마을 어른들은 급기야 수수를 꺾어다 주면서 빗자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군에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빗자루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세월이 좋았지요. 빗자루를 안 쓰는 집은 없었으니까. 촌비를 엮어 내면 부리나케 팔려 나갔어요. 그런데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오고 중국산이 밀려들면서부터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 됐지요.”
빗자루를 만들던 이들은 다들 일을 접었지만, 이씨는 정반대로 ‘고급화’를 택했다. 색실을 넣고, 털실을 짜서 빗자루 끝에 모자를 씌우고, 수수대를 더 촘촘히 이었다. 이씨가 만든 빗자루는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지만, 무엇보다 정성껏 색실을 감아 모양을 낸 그 모습이 빼어나다. 오죽하면 ‘꽃비’란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씨는 “인간문화재가 됐으면 하는 꿈이 있다”며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들이 뒤를 잇는데, 인간문화재가 된 뒤에 다 물려주고 갈 것”이라고 했다.
“빗자루라고 다 같은 게 아니지요. 수수 빗자루 중에서는 장목이 최고이고, 그 아래로 황목이, 그 밑으로는 늘목과 목탁이 있어요. 장목으로 만든 빗자루는 수십년을 써도 늘 새것 같지요.”
장목은 시골 사람들이 흔히 ‘나이롱작목’이라 부르는 한성수수를 말한다. 수입산 수수품종인데 끝이 가늘면서도 부드럽고 탄성이 있어 빗자루로 엮으면 한눈에도 여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다. 이 품종은 수수가 많이 여물지 않아 아예 수확을 하지 않고 오로지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심는다. 최고의 재료답게 장목으로 만든 빗자루는 한 개에 7만원을 호가한다.
이씨가 처음 빗자루를 만든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유독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촌비(전통빗자루) 엮는 것을 배워 재미 삼아 하나둘씩 엮기 시작했다. 이씨의 빗자루 엮는 솜씨를 신기해 하던 마을 어른들은 급기야 수수를 꺾어다 주면서 빗자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군에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빗자루를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그때만 해도 세월이 좋았지요. 빗자루를 안 쓰는 집은 없었으니까. 촌비를 엮어 내면 부리나케 팔려 나갔어요. 그런데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오고 중국산이 밀려들면서부터 생계를 걱정할 지경이 됐지요.”
빗자루를 만들던 이들은 다들 일을 접었지만, 이씨는 정반대로 ‘고급화’를 택했다. 색실을 넣고, 털실을 짜서 빗자루 끝에 모자를 씌우고, 수수대를 더 촘촘히 이었다. 이씨가 만든 빗자루는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지만, 무엇보다 정성껏 색실을 감아 모양을 낸 그 모습이 빼어나다. 오죽하면 ‘꽃비’란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씨는 “인간문화재가 됐으면 하는 꿈이 있다”며 “후계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아들이 뒤를 잇는데, 인간문화재가 된 뒤에 다 물려주고 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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