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술, 멋

전남 영암 월출산

醉月 2010. 5. 11. 08:29

절벽 위 ‘무소유 암자’… 산과 하나되네

전남 영암 월출산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월출산 노적봉 아래 아슬아슬 매달린 암자 상견성암. 조선후기 문인화가 이하곤은 호남지방을 여행하고 지은 기행문 ‘남유록’에 남긴 시에서 상견성암을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린 절’이라고 했다.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영암 사람들은 이곳에서 보는 열사흘 달이 뜨는 모습이야말로 ‘월출산 최고의 풍경’이라고 했다.
전남 영암에 대해 말하자면, ‘달(月)’을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암에서는 모정마을의 운치 있는 정자 풍영정 위에도, 선암마을의 초가지붕 위에도 희고 맑은 달이 떠오릅니다. 달이야 다른 곳에서도 매양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영암에서 만나는 달은 어쩐지 다른 곳에서 보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한 번이라도 영암 땅에서 흥건한 달빛에 몸을 적셔본 적이 있다면, 그곳의 달이 더 밝기도 하거니와 정취도 남다르다는 것쯤은 금방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영암의 달을 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월출산입니다. 어둠에 잠긴 월출산 암봉 뒤편에서 달이 떠오르면, 영암의 들판에는 희고 맑은 달빛이 가득 고여 출렁거립니다. 사실 월출산은 영암을 대표하지만, 월출산이 온전히 전남 영암의 것만은 아닙니다. 월출산의 4할쯤은 전남 강진의 땅인 탓입니다. 그럼에도 ‘강진의 월출산’ 대신 ‘영암의 월출산’으로 꼽히는 것은 비단 점유 면적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영암이 월출산의 서쪽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월출산을 중심으로 보자면 강진은 동쪽에, 영암 땅은 서쪽에 있어 ‘월출(月出)’, 즉 달이 솟는 모습은 산의 서쪽인 영암에서만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같은 산이라도 ‘보는 자리’에 따라 ‘달이 돋는 산’이 되기도 하고, ‘달이 지는 산’이 되기도 한다는 깨달음이 새삼스럽습니다.

사실 월출산만큼 ‘보는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산도 드물지 싶습니다. 영암의 들녘에 우뚝 솟은 월출산은 가까이 다가서 보면 기기묘묘한 암봉과 힘찬 능선에서 단단한 뼈와 근육질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반대로 멀리 물러서 보면 가로막는 다른 능선이나 산자락의 간섭도 없이 들판 너머로 월출산의 전신이 통째로 눈앞에 펼쳐진답니다. 월출산에 들어 근육질 암봉에 비밀처럼 숨겨진 암자에 오르고, 그 산 아래 고즈넉한 옛 마을을 찾고, 더 멀찌감치 물러서 건너편 산 능선의 차밭까지 찾아갔던 것은, 거리를 좁혀가며, 혹은 넓혀가며 월출산을 만나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바로 월출산 아래 마을들이었습니다. 월출산 자락의 마을에는 농촌의 피폐와 개발의 삽날에 다 잊혔다 여겼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성성하게 살아있었습니다. 둥싯 떠오른 달빛의 정취에 이끌려 살랑살랑 봄바람 속에서 옛 마을의 돌담을 따라 산책을 나선 길. 교교한 달빛과 함께 이따금 멀리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따라왔습니다. 골목길의 서너 굽이를 돌았을 때 담 안쪽의 낡은 고택의 마당에 환하게 핀 꽃을 달고 있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달빛을 받아 희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밝은 달 아래 돌담 너머로 번지는 그윽한 매화향기. 아, 그야말로 완벽한 봄 밤이었습니다.

파릇파릇 물결너머 소리없이 솟구친 산자락
‘달의 고향’ 전남 영암
전남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백룡산 자락의 덕진 차밭에서 내려다본 모습. 차밭 너머로 운암의 들녘이 마치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멀리 월출산이 그 바다 위에 섬처럼 떠있다.

강진쪽 월출산 아래 월남마을. 돌담을 끼고 동백 매화, 살구꽃, 산수유꽃들이 만발했다.
 
 
# 월출산 선경, 노적봉 아래 상견성암에 들다

길이 희미해지면서 암자는 산밑 사람들에게 곧 잊히고 말았다. 월출산 도갑사의 산내암자 상견성암. 도갑사에서 대웅보전 뒷길로 들어 대숲을 지나고 홍계골을 따라 조릿대와 굴참나무 울창한 숲길을 걸어 오르길 40여분쯤. 노적봉의 험준한 바위 아래 상견성암이 아슬아슬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까지 느껴지는 깊은 산중. 암자 앞 돌확의 석간수가 더없이 맑고 차다. 홀로 암자를 지키며 정진하던 범종 스님은 출타 중이고, 바람 한자락이 암자 앞의 대숲을 흔들다가 처마끝의 풍경을 댕그랑거린다.

월출산 이쪽 자락에는 도갑사의 암자 상·중·하견성암이 있었다. 세 곳 모두 아담하고 짜임새 있게 지어진 암자였으나, 1948년 빨치산의 근거지가 된다고 해서 죄다 불태워지고 말았다. 그리곤 가장 기(氣)가 세다는 높은 자리에 앉은 상견성암만이 새로 지어졌다. 새로 지어진 암자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 암자 안에는 책도 한 권 없다. 암자 아래 도갑사에서 마주친 범종 스님은 “산중에 들어 글을 닦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일이니 책이 무어 필요하겠느냐”고 했다.

속세와 가장 멀리 물러나 있는 곳. 상견성암은 오로지 앉은 자리만으로도 맑고 정갈한 기운이 배어 나온다. 누군가 득도를 했다면 그 장소는 바로 이런 곳이지 싶을 정도다. 어디 풍경뿐일까. 1000년을 헤아리는 깊은 시간의 저편에서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수행자들이 이 암자를 거쳐 갔을까. 도갑사의 월우 스님은 “전남 곡성 태안사의 조실스님이었던 청화 스님도 3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묵언정진했다”고 전했다.

암자 바로 앞 벼랑의 바위에는 구한말, 영암 하씨 문중에서 새겼다는 글귀가 남아있다. ‘천봉용수(千峰龍秀) 만령쟁호(萬嶺爭虎)’. 풀어보자면 ‘천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만개의 계곡은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 듯하다’는 뜻이겠다. 이에 앞서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이하곤도 이곳 암자를 찾았다가 시를 한 편 남기기도 했다. 암자의 툇마루에서 따스한 봄볕을 쬐며 붓과 한지를 들고 아름다운 풍경을 좇았을 남다른 안목의 그가 남긴 시 구절을 읽어본다.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린 절 / 흔들흔들 구름끝에 걸려있네 / 고승은 고고하고 뛰어남을 좋아하여 / 나뭇가지 끝을 걷듯 처신하네 / 초연히 속세를 벗어나 / 새집같은 거처에 산다네 / 청초하게 외길을 가니 /유랑하는 이 몸에겐 까마득한 길일세….

# 영암의 너른 들녘의 바다에 아름다운 섬 하나

기암괴석이 툭툭 불거진 월출산은 그 장쾌한 바위의 절경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월출산을 찾은 이들은 대개 주르르 펼쳐지는 암봉을 따라 구름다리를 건너 천황봉까지 오르지만, 어쩌면 월출산은 멀리 물러섰을 때 비로소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멀찍이 물러나서 보는 월출산의 모습이 특별한 것은 다른 아무것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통째의 산의 형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이름난 산들은 멀리 뒤로 물러나서 보자면, 첩첩이 앞을 가로막은 봉우리에 가려져 버리지만, 월출산만큼은 그렇지 않다. 월출산은 영암의 들녘 어디서 바라보더라도, 산이 일어서는 능선 아래부터 높이 암봉이 치솟았다가 다시 눕는 산자락을 하나의 선으로 이을 수 있다.

그중 압권의 전경을 선사하는 곳이 바로 덕진 차밭이다. 차밭은 월출산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백룡산 자락에 들어서 있다. 호남다원(한국제다)에서 운영하는 차밭은 3만여평으로 그다지 넓지 않은 편. 일본 야부다기종의 차나무를 심은 보성 일대의 차밭과는 달리, 이곳의 차는 키가 작은 토종이다. 덕진 차밭은 웬만해서는 찾아가기 어렵다. 관광지가 돼버려 촘촘한 이정표가 서 있는 보성의 차밭과는 달리, 이곳 차밭은 이정표는커녕 가까이 다가서도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알려주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구릉에 들어선 차밭의 정상에 올라서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경치가 펼쳐진다. 영암의 운암리 들판이 마치 바다처럼 활짝 열린다. 봄으로 충만한 영암 땅은 지금 너른 들판이 초록빛으로 짙어가고 있다. 그 초록의 바다 너머로 월출산이 마치 섬처럼 떠있다. 차밭 아래 송석정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이 소매를 붙들고 “월출산 자락에 안개가 끼는 이른 새벽에 다시 와보라”고 했다. 그 풍경을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들어선 낮의 풍경도 이럴진대, 이른 아침 월출산 아랫도리에 안개라도 감기는 날에는 그 아름다움은 어떨까.

# 월출산 자락 고즈넉한 옛 마을의 돌담길

월출산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자리가 상견성암이고 멀리 물러서 보는 자리가 덕진 차밭이라면, 그 중간쯤의 자리는 월출산 아랫자락의 마을을 들 수 있겠다. 월출산이 마을과 한데 어우러진 풍경으로 보자면 영암 쪽보다는 강진 쪽이 더 훨씬 더 낫다. 강진 쪽 월출산 등산로가 있는 경포대 쪽에서는 월출산의 정상부근의 뾰족뾰족한 기암이 펼쳐지는데, 암봉을 둘러치고 있는 그곳에 바로 성전면 월남마을이 있다.

월남마을이란 이름은 폐사가 되고만 고려말의 절집 ‘월남사지’에서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 절집에 붙여진 ‘월남(月南)’이란 이름은 ‘달의 남쪽’, 혹은 ‘월출산의 남쪽’을 뜻하는 것이겠다. 월남마을 한가운데, 옛 월남사 터에는 잘 생긴 석탑이 월출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자라는 돌담 옆으로 선 석탑은 웅장하면서도 간결한 자태가 어찌나 빼어난지 가슴이 다 뭉클할 정도다.

월남사지에는 진각국사 탑비와 석탑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손대지 않은 주변의 너른 터에는 옛 절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옛 담의 흔적이었을 돌과 기와편이 흩어진 빈터에 함석지붕을 이고 옛 절터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는 누추한 민가들을 돌아보노라면 덧없이 스러진 옛 시간이 진하게 느껴진다.

여기다가 월출산 자락의 차밭이 흘러내린 자리에 온통 꽃 대궐을 이룬 월남마을의 봄 풍경도 놓칠 수 없다. 마을은 구불구불 돌담들이 골목을 잇고, 그 돌담을 따라가다 보면 떨어진 꽃들이 바닥을 붉게 물들인 동백나무를 만나기도 하고, 돌담 너머 매화며 살구나무가 활짝 피어난 운치 있는 풍경도 펼쳐진다. 강진의 월남마을뿐만 아니라, 영암 쪽에서도 운치 있는 정자와 초가집을 거느리고 있는 영보정 마을이나 송석정마을, 선암마을 등에서도 낡았으되 아련한 정취로 가득한 봄 풍경을 만나볼 수 있다.

영암·강진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광산나들목으로 나와 13번 국도를 따라 나주 영산포를 지나면 영암읍에 이른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가서 2번 국도를 타고 학산에서 818번 지방도로로 갈아타도 영암에 당도한다. 월출산자락의 암자 상견성암 가는 길은 이른바 ‘비지정등산로’로 닫혀있다. 그러나 등산로 입구에는 이쪽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친절한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도갑사 쪽에 미리 양해를 구해 오르는 방법이 있다.

묵을 곳 & 먹을 것

영암에서는 전통한옥에서 묵는 것이 좋겠다. 군서면 모정리 모정마을의 월인당(061-471-7675)은 장작을 때는 전통한옥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안주인이 손님들에게 정성껏 풀을 먹인 이불을 내준다는 것. 풀을 먹여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덮고 설설 끓는 구들장에 누워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구림마을에는 안용당(061-472-0070) 대동계사(010-5054-3680) 등 한옥민박이 있다.

영암의 먹을거리라면 단연 낙지. 학산면 독천리 일대는 낙지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독천은 한때 포구였던 곳. 간척이 이뤄지면서 바다를 멀리 물러나 버렸지만, 아직도 낙지 음식으로 내놓는 식당 40여곳이 모여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다. 읍내의 대양가든은 6000원짜리 백반정식이 제법 푸짐하다. 월출산 도갑사 입구에는 산채정식이나 비빔밥을 내놓는 식당들이 몰려 있다.
 

“산중서 얻은 지혜가 뭐냐구요? 그저 산길 걷듯 살자는 것이죠”

상견성암 정진 중인 범종 스님 

“적막감과 고독함을 일부러 찾아나선 산중의 삶입니다. 아무것도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전남 영암의 월출산 노적봉 아래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산중 암자 상견성암에 칩거하며 1년 3개월째 정진 중인 범종 스님. 마침 그는 막 암자에서 내려와 도갑사로 내려와 있었다. 암자에서 내려온 것이 꼭 한달만이라고 했다. 그는 왜 하고많은 선방을 다 마다하고 깊은 암자 상견성암에 홀로 든 것일까.

“불현듯 젊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고기 없는 연못에 백로가 되겠다’는 생각이 발길을 이쪽으로 이끌었습니다. 번잡함이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마음껏 정진하기 위한 장소를 찾다가 암자에 들게 됐지요.”

그가 상견성암에서 올라서 홀로 정진하기로 작정한 것은 1000일. 아직 절반도 채 못 채웠지만 그는 “아마 작정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고 했다. 홀로 있는 암자에서의 생활이지만, 그는 잠자는 3시간을 빼고 깨어 있는 시간은 모두 정진에 나선다. 그에게는 산중암자의 고독한 생활이 수행을 넘어 생활이 된 듯했다.

월출산은 이른바 ‘기(氣)’가 세다고 알려진 산. 그중에서도 상견성암은 기가 가장 강하게 흐른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어떤 스님이 분명히 상견성암 암자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아슬아슬한 바위벼랑이어서 혼비백산에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그러나 범종 스님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다들 ‘기가 센 터’라고 하지만, 그곳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그 기운의 정체도 달라진다는 것이란 얘기다. 무당이 있으면 무당의 기가, 참선을 하면 참선의 기가 승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암자는 1000년의 시간을 건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이 암자를 거쳐 간 수많은 이름없는 수행자들의 기운이 느껴져서 더 좋다”고 웃었다.

도갑사에서 상견성암까지는 산길로 40여분. 그러나 범종 스님은 “1시간30분은 걸린다”고 했다. “쌀이며 부식을 다 배낭에 지고 오르니 발걸음이 뒤처지는 모양”이라고 했더니, 그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암자에 오를 때나 절집으로 내려올 때도 되도록 천천히 산길을 걷는다고 했다. 스님에게 “산중의 삶에서 얻은 지혜를 저잣거리의 사람들에게도 나눠달라”고 했더니 스님은 “세상사는 이치도 산길을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스님은 “항시 ‘한 생각’을 가지고 생각의 근원을 들여다보라”고 했다. 되도록 천천히 산길을 걷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