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의 바다를 건너가는 새로운 방법이 생겼습니다. 해상케이블카. 산을 오르지 않고 수평으로 바다를 건너가는 케이블카입니다. 싱가포르나 베트남에는 있지만, 수평의 케이블카는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못 봤던 것입니다. 여수해상케이블카의 운행시간은 오후 10시까지. 해가 진 뒤 밤늦게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도 나라 안에서 이것이 유일합니다. 쪽빛 바다의 그림 같은 풍경은 물론이고, 여수 밤바다의 야경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이달 초순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시험운행 중인 여수해상케이블카를 먼저 타봤습니다. 여수 바다를 케이블에 매달려서 쪽빛 바다 위를 날듯이 건너갑니다. 바닥이 투명 유리로 된 케이블카 안에서는 내내 발바닥이 간질간질했습니다. 돌산도에서 여수 오동도까지, 반대로 오동도에서 다시 돌산도까지…. 느슨한 케이블을 따라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기분이 마치 넘실거리는 옥빛 바다 위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도를 높이는 것만으로 바다와 포구는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해 질 무렵 낙조의 빛을 받은 돌산대교가 벌겋게 물들었고, 붉게 물든 바다 위로 만선의 어선 한 척이 느릿느릿 지나갔습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여수 바다의 저물 무렵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해가 넘어간 뒤 바다를 건너는 다리의 교각마다 불이 켜질 때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여수 밤바다의 경관도 이루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여수 일대의 빼어난 경관이야 새삼 다시 말할 게 없습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 위에서도, 바다를 마당으로 삼고 있는 절집에 올라서도, 펄떡거리는 바닷고기들을 좌판에 펼친 시장에서도 여수의 아름다움은 스며있습니다. 그런 선명한 아름다움을 눈높이를 달리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이제 막 높인 케이블카 위에서, 바다를 바짝 끼고 달리는 레일바이크에서, 물속 풍경을 잡아 가둔 아쿠아리움에서, 돌산도의 섬을 가위로 오려내듯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에서, 여수의 아름다움은 더욱 또렷하고 선명했습니다.
# 푸르게 펄떡이는 바다가 있는 곳…여수 전남 여수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곳이다. 여수란 지명의 내력은 자그마치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 때 나라 이름으로 쓰던 ‘고울 려(麗)’자가 이곳의 지명에 처음 붙여졌다. 그만큼 여수의 아름다움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남쪽 바다 여수의 빼어난 경관은 고려의 영토개편을 위해 파견된 관리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것이었다. 당시 선비들에게 여수는 금강산과 짝을 이룬 ‘판타지’였던 모양이었다. 금강산이 깊고 험준함으로 감히 손닿을 수 없는 판타지가 됐다면, 여수는 머나먼 거리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여겨졌다. 하기야 당시에는 ‘험준함’보다는 ‘멀다’는 게 더 아득한 일이었으리라.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 그는 ‘여수로 꽃구경 가자’는 글벗의 제안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마음을 짧은 시 한 편에 남겼다. “여수는 나라의 남쪽 끝/ 하늘처럼 멀어 꿈꾸기조차 힘이 드네./ 이 몸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 뿐인데/ 어찌 나오는 한숨을 참을 수 있으려나.” 지금이야 수도권에서 KTX편으로 3시간 30분쯤이면 닿는 곳이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대 여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길이었다. 고려 때라면 수도 개경에서 여수까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거리였을 것이었다. 여수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했던 이규보는 머나먼 거리에 질려 한숨만 내쉬었을 따름이었다. 지금도 여수까지는, 부산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하지만 그만한 시간쯤이야 넉넉히 내줄 만하다. 이즈음에는 종려나무 늘어선 남녘 쪽빛 바다의 이국적인 정취가 긴 시간을 보상한다. 바다가 차가워질수록 단단하게 맛이 드는 갯것들도 ‘불원천리’의 여정을 이끄는데 단단히 한몫한다. 내륙의 풍경이 모두 황량해지는 겨울의 초입이지만 여수의 남쪽 바다는 아직 바람이 따스하고, 상록림의 숲도 푸르다. 바다를 마주한 밭에는 일찍 심은 마늘의 초록빛이 일렁이고, 어촌 마을의 텃밭에는 단단한 땅에 실핏줄 같은 뿌리를 내리는 시금치며 배추 따위가 성성하게 자라고 있다. 여수는 계절이 지나는 속도가 더디다. 벌써부터 선혈 같은 꽃을 피운 해안도로의 동백을 보면 오히려 계절이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분명한 건 여수에는 늘 온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겨울 한복판의 뼈 시린 삭풍 속에서도 여수에는 푸르게 펄떡거리는 바다와 그 바다를 끼고 있는 초록의 언덕이 남아있다.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는 따스한 희망처럼….
# 여수의 바다를 건너는 새로운 길 여수 경관의 중심은 여수항이다. 여수내륙과 돌산도 사이의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는 남쪽 바다를 대표하는 낭만적인 경관을 펼쳐 보여준다. 여수의 섬 돌산도와 여수 내륙의 자산 사이를 운행하는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여수의 구항과 신항의 바다를 잇는다. 돌산공원이 케이블카의 한쪽 끝이고, 다른 한쪽 끝은 오동도 쪽의 자산공원이다.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는 여럿 있지만, 수평으로 바다를 건너는 케이블카는 아시아에서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에 이어 네 번째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선보이는 것이다. 시험운행 중인 케이블카에 오르기 전에 먼저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프랑스 포마사가 제작, 설치한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케이블카’가 아니라 ‘곤돌라’다. 같은 회사가 대명비발디파크 스키장에 설치한 곤돌라와 비슷하다.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케이블카란 캐빈에 도르래를 달아 철선 케이블에 올려 굴리는 것이고, 곤돌라는 케이블에 고정된 캐빈을 줄을 끌어 이동하는 방식으로 운행한다. 그러니 붙박이 캐빈을 케이블에 매단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곤돌라’지만, 상대적으로 익숙한 명칭인 ‘케이블카’를 이름으로 삼았다. 케이블에 매달아 놓은 캐빈은 모두 50대로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그 하나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보통 케이블카이고, 다른 하나가 외관이 은색으로 칠해진 투명 강화유리 케이블카다. ‘크리스탈 캐빈’으로 이름 붙여진 투명유리 케이블카는 말 그대로 바닥이 투명한 유리로 마감돼있다. 바닥의 일부에 유리를 댔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바닥 전체가 투명한 유리다. 옅은 녹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어찌나 유리가 투명한지 공포심 때문에 어디다 발을 대야 할지 아찔했다. 곧 투명한 바닥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높은 고도로 바다 위를 지날 때는 허공에 떠 있는 듯해 공포심으로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졌다. 크리스탈 캐빈은 모두 10대인데 보통 캐빈은 8명이 정원이지만, 크리스탈 캐빈은 5명이 정원이다. 유리가 버티는 하중이 적기 때문일까 싶어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 유리 자체의 무게 때문이란다. 두꺼운 강화유리가 일반 철판보다 성인 3명쯤의 몸무게만큼 더 무겁다는 것이다. 일반 캐빈의 1인 탑승 왕복 요금은 1만3000원. 크리스탈 캐빈은 이보다 비싼 2만 원으로 책정됐다. 투명한 바닥이 주는 아찔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은 수의 관람객들이 탑승해 쾌적하게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크리스탈 캐빈이 훨씬 더 인기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 밤에 더 황홀해지는 여수의 바다
케이블카의 움직임은 매끄러웠다. 건너편 여수항 쪽의 종고산의 산세를 바라보며 고도를 높이던 캐빈은 첫번째 첨탑을 지나자 해 질 무렵이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는 자산 쪽으로 고도를 낮췄다. 캐빈은 직선으로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첨탑을 지날 때마다 늘어진 케이블을 따라 한참을 고도를 낮췄다가 다시 높이기를 반복했다. 최저 고도와 최고 고도의 높이 차이가 40m에 달했다. 시시각각으로 높이가 달라지니 풍경의 느낌도 달라졌다. 고도를 낮출 때는 발 아래로 지나는 어선과 화물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가, 고도를 높이자 거북선대교의 높은 교각이 발 아래로 펼쳐졌다.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여수포마사의 한 직원은 “캐빈을 타고 가는 동안 세 번 경관이 바뀐다”고 설명했다. 돌산공원에서 출발할 때를 기준으로 첫 번째 경관은 여수항 쪽의 종고산의 풍경이고, 두 번째 경관은 여수와 돌산 사이의 내만(內灣)의 바다 풍경이며, 세 번째가 오동도 일대와 여수엑스포 전시장 쪽의 경관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캐빈에서 만나게 되는 경관은 세 가지가 아니라 적어도 여섯 가지는 될 것 같았다. 돌산공원에서 출발한 캐빈이 오동도 옆의 자산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20분 남짓. 시험 운행 중인 캐빈을 바꿔가며 다섯 번을 탔다. 시간대마다 느낌이 전혀 달랐다. 특히 한낮보다 해 질 무렵의 경관이 훨씬 더 훌륭했다. 해는 돌산대교 쪽으로 떨어졌는데, 사위를 붉게 물들이며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캐빈에 앉아 바라보는 맛이 그만이었다. 저무는 해가 황금빛으로 빗기는 여수항의 경관에 감탄사가 터졌다. 사방이 투명한 데다 앞뒤로 눈높이쯤의 창을 열 수 있어 캐빈이 어느 쪽으로 운행하든지 낙조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해가 지자 여수항 일대의 야경이 창 가득 펼쳐졌다.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의 야간조명이 켜졌고, 장군도의 경관조명도 푸르게 빛났다. 연안여객선 터미널 부근의 바다는 빛으로 일렁였다. 여수항의 밤 불빛들이 낭만적으로 반짝였다. 이쪽 포구의 불빛과 저쪽 포구의 불빛 사이로 검은 바다 위를 반짝이는 조명을 단 캐빈을 타고 건너는 기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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