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 <34> 장시 ② 잉탄 상칭고진
중국 도자기의 본향 징더전(景德鎭)에서 잉탄(鷹潭)까지 기차로 2시간 이동한 후, 시내버스로 다시 1시간 남쪽으로 달리면 상칭고진(上清古鎭)이다. 남방 도교인 정일도(正一道)의 본산이다. 북방의 전진도(全眞道)와 함께 양대 산맥이다. 도관이 참 많지만 중국인이 본토 종교라고 생각하는 도교 발상지는 많지 않다. 시안에 있는 전진도의 조정 중양궁(重陽宫)과 함께 잉탄의 천사부(天師府)는 도교를 대표하는 도관이다. 룽후산을 따라 흐르는 루씨허 강변에 자리 잡은 천사부를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천사부 담장 길을 따라간다. 대문 밖에는 중화도도(中華道都), 안에는 도교조정(道教祖庭)이란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선명하고 붉다. 대문을 지나 의문(義門)에 이르면 곧바로 옥황전이다. 문을 지키는 신이 수두룩하다. 육선삼도(六扇三道), 문짝이 여섯이고 통로가 셋이다. 가운데 문짝은 진경과 울지공이 지킨다. 이 둘은 전국 대문마다 걸린 문신(門神) 중 약 80% 이상 차지한다. 나머지 문짝에도 넷이나 더 있다. 여섯 모두 수나라 말기와 당나라 초기 장군이다. 수양제의 숙부 양림과 진경 장군의 사촌 나성 역시 소설 속 인물이다. 정교금과 단웅신은 실존 인물이다. 진경과 울지공이 그렇듯 신으로 등극한 인물은 역사의 기록과는 다르다.
진경과 울지공은 당 태종 이세민의 부하 장군으로 공신이다. 소설 서유기에 등장하면서 문신으로 환생했다. 옥황대제가 용왕에게 사형을 명령한다. 용왕은 이세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이세민의 부하인 위징이 저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세민은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어겼고 용왕은 밤마다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진경이 문을 지키자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 낮과 밤을 나눠 울지공도 지킨다. 화공이 두 장군의 용모를 문에 붙였다. 지극히 흥미를 끌기 위한 캐스팅이다. 인기 스타는 도교라는 드라마가 늘 관심을 가지는 주인공이다. 2,000년 동안 도교는 언제나 수많은 역사와 전설, 신화 속 인물을 용광로처럼 잡아먹었다.
옥황전에 앉은키 9.999m인 옥황대제가 눈을 부릅뜨고 있다. 소수점 세 자리까지 딱 맞춰 제작했다니 정밀기계로 재보고 싶어진다. 옥황대제의 전체 이름은 무지하게 길다. 쉼표도 없어서 한번 읽으려면 호흡이 딸릴 정도다. ‘호천금궐무상지존자연묘유미라지진옥황대제(昊天金闕無上至尊自然妙有彌羅至真玉皇上帝)’다. 소수점 이하 스무 자리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번 읽고 그냥 머리에서 지운다. 천계에 거주하는 옥황대제는 천지만물을 주재한다. ‘공사가 다망’해 수식어가 많다. 옥황전 앞 향로도 새롭게 보인다.
가운데 앉은 옥황대제를 금동(金童)과 옥녀(玉女)가 협시한다. 옥황전에 입실할 만한 전설의 주인공이다. 천계에 총명하고 정직한 금동과 예쁘고 착한 옥녀가 살았다. 옥황대제는 순결하고 고요한 빙천설지(冰天雪地)를 좋아해 인간 세계를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천계에는 1년에 한 번 생일이 되면 속세로 내려갈 수 있는 룰이 있다. 금동은 정월 십오일 속세로 내려와 얼음 천국을 녹였다. 분노한 옥황대제는 인간 세상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 계획이었다. 옥녀도 윤시월 이십구일에 속세로 내려갔다. 금동과 옥녀는 인간과 상의해 기막힌 생각을 끄집어낸다. 정월 보름날 홍등을 밝히고 폭죽을 터트리기로 했다. 옥황대제는 인간 세계에 이미 불이 났다고 생각해 방화 부대를 철수시켰다. 옥황전에 함께 있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용 두 마리가 기둥을 휘감고 오르는 만법종단(萬法宗壇)이 보인다. 우주의 온갖 법도를 관장하는 제단이다. 동한(東漢) 말기 장도릉이 쓰촨에서 도교의 원류인 천사도(天師道)를 창시했다. 조천사(祖天師) 장도릉은 남하해 룽후산에 이르러 30여년 간 초가를 짓고 수행했다. 말년에는 다시 쓰촨 허밍산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도교의 최고 지도자, 교주라 할 수 있는 천사(天師)는 황제처럼 아들에게 세습된다. 장형과 장로가 2대와 3대 천사를 이었다. 4대 천사 장성이 룽후산으로 회귀해 지금에 이르렀다.
원 세조 쿠빌라이가 36대 천사 장종인을 ‘사한천사(嗣漢天師)’로 책봉했다. 동한 시대 발원한 도교를 정통으로 계승했다는 칭찬이다. 천사부는 사한천사부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도교가 창립된 이후 정일도 종단은 크게 넷으로 난립했다가 천사부로 통합된다. 정일종단에서 만법종단으로 개명했다. 이때부터 만법종단은 명실상부한 도교의 조정으로 자리매김한다.
만법종단 문을 들어서면 바로 갑자전이다. 천간과 지지에 따라 60년을 순환하는 육십갑자를 관장하는 태세신(太歳神)을 봉공한다.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며 대장군이라 부른다. 대장군마다 부르는 이름이 꽤 길다. 1961년 출생한 사람은 신축태세양신대장군(辛丑太歳杨信大將軍)을 찾아 기원하면 된다. 당연하게도 대장군마다 봉공함이 놓여 있다. 갑자를 원진(元辰)이라고도 부른다. 베이징에 있는 전진도 도관인 백운관에 원진전이 있다. 60명이나 되는 대장군이 전각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모든 인간의 길흉화복을 틀어쥐고 있다고 생각하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법종단은 삼청전(三清殿)이다. 전각 앞마당에 세운 향로가 유난히 화려하다. 도교의 최고 지위를 천존(天尊)이라 부른다. 모두 셋이다. 옥청ㆍ상청ㆍ태청이라 줄여 부른다. 추상적 관념인 ‘도’의 상징이며 직관할 수 있는 신이다. 태청도덕천존(太清道德天尊)은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불리며 노자가 그 화신이다. ‘도덕경’을 모든 경전의 왕이라 칭송한다. 삼청 아래 사어(四御)는 천존을 보좌한다. 옥황대제, 중천자미북극태황대제(中天紫微北极太皇大帝), 구진상궁천황대제(句陳上宫天皇大帝), 승천효법후토황지기(承天效法后土皇地祇)다. 셋은 황천(皇天)에 상주하고 후토는 대지에 머문다. 토황대제라고 하지 않고 후토라 부른다. 황제 부인을 황후라 하듯 후토는 여신이다. 넷 중에서 후토를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염이 없다.
만법종단 동쪽은 천사가 거주하던 사택이었다. 지금은 천사전이다. 조천사 장도릉을 두 제자인 왕장과 조승이 협시한다. 평생 동고동락하며 수행했고 함께 우화(羽化ㆍ신선이 된다는 뜻으로 사망을 달리 표현한 말)했다. 역대 천사 62명이 삼면을 차지하고 도열해 있다. 거의 2,000년을 세습하고 꾸준히 종교로서 지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육십갑자보다 많은 천사다.
천사전 뒤에 삼성당(三省堂)이 있다. 종단을 대표하는 천사에게 엄격한 자기 규율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겼다. ‘반성’이라니 유학자 저택에나 있을 법한 이름이 아닌가?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의 본적지인 장완에 있는 장첸고거가 삼성당이다. 청나라 말기 유생이자 교육자다. ‘논어’가 훈육한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하루 세 번 반성하는 자세가 천사에게도 필요했다. 도교는 유교와 불교를 다 흡수한다. 유불선 융합을 주도한 도교다운 발상이다.
삼성당은 조천사 중 30대와 43대 천사를 봉공한다. 1100년 송나라 휘종 시대 장계선은 13살 나이로 30대 천사를 계승한다. 허정(虚靖)이란 호를 하사 받는다. 신동으로 알려졌고 부적의 영험한 능력을 세상에 알렸다. 휘종에게도 부적을 상납해 유명하다. 삼성당에도 온 사방에 부적이 붙어 있다. 한자보다 복잡하고 아리송하다. ‘천기누설’은 도사의 몫이지 백성은 그저 부적일 뿐이다. 1380년 명나라 영락제는 장우초를 43대 천사로 책봉했다. 도교 경전을 집대성한 ‘도장(道藏)’을 편찬했다. 역대 천사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났다.
천사부 후원은 영지원(靈芝園)이다. 영지원은 장도릉이 고통받는 백성을 치유하기 위해 선약(신선이 만든다고 하는 장생불사의 영약)을 재배하던 장소다. 두 마리 용이 구슬을 어루만지는 쌍룡희주(雙龍戲珠)는 황제 지위를 상징한다. 황제 시대가 아니니 버젓이 세웠다. 영험한 기운이 느껴진다. 붉은 담장과 팔괘문, 장생을 상징하는 학과 소나무, 사슴과 불로초가 살아 숨 쉬는 듯 생동감이 발산된다. 팔괘문을 지나 돌아보면 대련이 걸렸다. 팔괘함우주(八卦涵宇宙)와 쌍룡위건곤(雙龍衛乾坤)이다. ‘우주를 포용하는 팔괘’ ‘건곤을 수호하는 쌍룡’,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만물의 총체를 우주라 하고 음양으로 움직이는 세계를 건곤이라 한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명나라 만력제가 하사한 종전(宗傳)이 있다.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벽성(碧城)도 있다. 천사부의 많은 편액 중 이렇게 간단명료한 찬사는 없다. 종전은 계승의 의미를 담았고 벽성은 신선이 거주하는 지방이다. 벽성 편액 아래 관복을 입은 초상화 허정공은 30대 천사다. 선학이 날아다니고 용은 구름을 뚫고 태양을 삼키려 한다. 목덜미에는 팔괘를 그렸다. 천재는 단명한다고 했던가. 부적으로 세상을 구제하려던 장계선 천사는 아쉽게도 30대 중반에 요절했다.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황제의 부름을 받아 부적으로 치유했던 천사다. 세상은 비운의 주인공을 가만두지 않는다. 소설 ‘수호지’에 캐스팅된다.
천사부에서 관광차량을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대상청궁(大上清宫)이다. 웅장한 2층 전각 아래가 입구다. 장도릉이 동한 시대에 수행했던 장소다. 당시에는 천사초당이라 불렸다. 4대 천사가 룽후산으로 회귀한 후에는 전록단(傳錄壇)이라 했다. 송나라에 이르러 상청정일궁이 됐다. 청나라 강희제는 대상청궁 편액을 하사했다. 그 어느 도관에서도 보지 못한 ‘대’ 자가 붙었다. 역대 천사가 신선을 향해 제사를 봉공한 장소다. 바위에 새긴 선령도회(仙靈都會)는 천사들에 대한 찬사다.
영성문(欞星門)을 통과하면 팔괘와 태극이 그려진 광장이다.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막다른 길에 전각이 하나 나타난다. 녹음이 우거지고 공기도 맑다. 곧추선 향불에서 연기가 오르고 문을 봉쇄한 부적에게 시선을 옮긴다. 나무에 살짝 가렸지만 복마전(伏魔殿)이다. 복마전, 한국의 정치판이나 언론도 자주 쓰는 말이다.
장도릉이 도교를 창건할 때 이교도 수령을 압송해 가둔 전각이었다. 요괴가 지닌 마성을 짓누르고 있었다. 원나라 말기의 작가 시내암은 소설 ‘수호지’ 1편에 장천사와 홍태위를 등장시킨다. 송나라 인종 시대 태위 홍신이 복마전에 왔다. 장천사가 없는 틈을 타 고집을 부려 복마전의 요괴를 모두 탈출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열린 문으로 세상으로 나간 요괴 숫자는 ‘108’이었다. ‘백팔번뇌’만큼 작가 시내암은 양산박 호걸을 생각했다. 실제 역사와 시간대가 차이가 나지만 민간에서는 소설 속 장천사를 30대 천사로 여긴다. 그만큼 서민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천고 이래 묻어둔 깊은 빗장이 일단 열렸으니(千古幽扃一旦开),
앞으로 홍신이 잉태한 재앙의 근원이 드러나리라(洪信从今酿祸胎)!
복마전 안을 살짝 들여다봤다. 거북 등에 올라탄 비석, 아무리 봐도 뜻 모를 부적을 보고 또 본다. 장천사는 수호지 2편에도 등장해 시 한 수를 짓는다. 시내암은 홍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비석에 새긴 부적인 용장(龍章)과 봉장(鳳章)이 무용지물이 됐다. 마귀를 짓누르고 있던 비석을 열었다고 질책한다. 처음과 마지막 행만 봐도 섬찟하다. 홍신은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덜덜 떨며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디 정치 뿐이겠는가? 복마전 빗장을 열고 재앙을 부르는 사람에게 ‘홍신의 환생’이라고 훈계하면, 홍신이 누군 줄도 모르는데 소용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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