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송철규 교수의 중국 고전문학_14

醉月 2010. 12. 4. 10:29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 공작동남비

남녀 간의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한 이야기 소재이다. 이 사랑은 기복과 파란, 갈등과 장애물이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지위, 경제력, 고부간의 갈등, 옛사랑, 병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야기꾼들은 이런 장애물을 잘 이용하여 사랑을 부각시킨다. 중국문학에는 그 긴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랑이야기가 전해진다. 앞에서도 중국의 민간 설화인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그런데 중국문학사에서 최고의 장편서사시로서, 디즈니의 만화영화 ‘뮬란(Mulan)’으로 잘 알려진 남북조시대의 ‘목란사(木蘭辭)’와 당나라 때 위장(韋莊)의 ‘진부음(秦婦吟)’과 함께 ‘악부3절(樂府三絶)’로 불리는 사랑가가 있으니 그 작품이 바로 동한(東漢) 말에 쓰인 ‘초중경의 아내(焦仲卿妻)’이다. ‘악부시’는 한대(漢代)에 수집된 민가의 총칭이다.
   
   시의 서문에는 ‘한말 건안(建安) 시기(196~220)에 여강부(廬江府)의 말단관리 초중경(焦仲卿)의 아내 유씨(劉氏)는 초중경의 어머니에 의해 쫓겨나지만 재혼하지 않기로 맹세한다. 그런데 친정에서 재혼을 강요하자 물에 몸을 던져 죽는다. 초중경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스스로 정원의 나무에 목을 매었다. 사람들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시를 지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즉 이 시는 사실에 근거하여 탄생한 비극적 러브스토리이다. 남북조시대 진(陳)의 서릉(徐陵·507~582)이 펴낸 ‘옥대신영(玉臺新詠)’에는 ‘고시위초중경처작(古詩爲焦仲卿妻作)’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고, ‘악부시집(樂府詩集)’에는 ‘초중경처’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시의 첫 구절인 ‘공작은 동남쪽으로 날아가고(孔雀東南飛)’로 제목을 대신하고 있다. 작가는 미상이다. 그럼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東漢末 3대 사랑가로 전해진 비극
   
   한말 건안(建安) 연간, 여강부(廬江府)에 초중경이라는 관리가 살았다. 그의 아내 유란지(劉蘭之)는 현명하고 지혜와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초씨 집안에 시집오면서부터 그녀는 매일처럼 ‘닭이 울 때 일어나서 베틀에 앉아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짰다(鷄鳴入機織 夜夜不得息)’. 그 와중에서도 부부 사이의 감정은 각별하였다. 그런데 초중경의 어머니는 봉건사상이 깊게 뿌리 박힌 시어머니였다. 그녀는 트집을 잡아 며느리를 흉보았으며 툭하면 일을 못한다고 구박하였다. 아울러 예절이 없다면서 없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녀는 결국 아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효성이 지극한 아들인 초중경은 그가 받은 봉건교육의 영향으로 어머니의 지시를 감히 어길 수 없었다. 그는 흐느껴 울면서 아내와 상의하여 잠시 친정에 돌아가 있다가 기회를 봐서 다시 데려오기로 하였다.
   
   그러나 난지는 시어머니에게 어떤 환상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냉정을 되찾고 시집올 때 가져 온 패물 전부를 기념이라며 남편에게 주었다. 다음날 닭이 울고 날이 밝자 그녀는 깔끔하게 단장을 하곤 시어머니에게 나아가 조용히 이별을 아뢰었다. 그녀는 차디찬 시어머니 앞에서 연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러나 작은 시누이와 헤어지면서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문을 나서 수레에 오르자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중경은 큰길까지 따라 나와 아내를 배웅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였다. 그리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였다. 난지는 이렇게 맹세했다.
   
   당신이 너럭바위이시라면, 이 몸은 한 가닥 부들갈대 되오리다. 부들갈대 실 모양 부드럽고 질기니, 너럭바위 든든히 흔들리지 마소서!(君當作磐石, 妾當作蒲葦; 蒲葦如絲, 磐石無轉移)
   
   남자는 반석처럼 든든히, 여자는 질긴 부들갈대처럼 그들의 애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난지가 친정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가엾게 여기었으나 오빠는 이를 수치로 여기고 재가를 강요하였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중매가 들어온 그 지역 태수의 아들에게 시집가겠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난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 중경은 말미를 얻어 급히 그녀를 찾아갔다. 그는 침통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신분이 귀해짐을 축하하외다. 너럭바위 넓적하고 두툼하여서 가히 천 년을 버틸 만한데, 부들갈대는 부드럽고 질기다 하나, 겨우 반나절뿐이구려. 그대는 나날이 귀해지시구려, 이 몸은 외로이 황천을 가오리다!(賀卿得高遷. 磐石方且厚, 可以卒千年; 蒲葦一時, 便作旦夕閒. 卿當日勝貴, 吾獨向黃泉)
   
   그러자 난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이 그런 말씀하시옵니까? 우리 모두 같은 처지로서 핍박 받아 이리 된 것을요. 저 또한 당신을 따르겠어요. 황천에서 만나요, 영원히…. 우리의 맹세 잊지 마세요.(何意出此言. 同是被逼迫, 君爾妾亦然. 黃泉下相見, 勿違今日言)
   
   
   봉건 윤리도덕에 죽음으로 맞서
   
   중경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리곤 텅 빈 방에 돌아와 긴 탄식을 하더니 목숨을 끊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졌다. 한편 난지는 결혼식 날이 되어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어둑어둑 황혼이 내려 깔리고, 고요하고 고요한 해시(亥時)가 되자’ 그녀는 마침내 ‘치마를 휘어 감고 비단신을 벗은 후에, 맑은 연못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이 소식을 듣고 중경도 ‘영원한 이별임을 확신하고는, 정원의 나무 밑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동남쪽 가지에 목을 매었다’. 그래서 난지의 변함없는 사랑에 보답하였다. 이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부부는 무정한 봉건 도덕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실제로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평가되는 이 이야기는 1785자에 달하는 장편 서사시로서 시인의 감정이 절절이 배어 있다. 그래서 작가의 사랑과 증오가 이야기의 전개와 인물의 성격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독자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난지의 형상으로서, 핍박 받는 위치에 있었으나 조금도 비굴함이 없이 시종 차분한 모습으로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울러 선량함과 현숙함, 깊은 애정 등이 그의 형상을 더욱 풍부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에 초중경은 다소 연약하여 남자다운 강건함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지금도 안휘성 일대에서 줏대가 없는 남자를 일컬어 ‘초이(焦二)’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또한 봉건적 예의도덕에 대해 죽음으로 맞섬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초중경의 어머니와 유란지의 오빠는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인 사랑을 무시하고 가족의 이익과 체면을 중시하는 봉건시대의 권력과 폭력을 대변한다. 초중경의 어머니와 유란지의 오빠에 대해 시인은 비판의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인정 없는 말과 행동을 통해 증오의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사실 초중경과 유란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든 사상을 배제하고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내세운 한대 사회에서 부모의 명은 거역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런 봉건 윤리도덕에 맞설 수 있는 길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초중경과 유란지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시인은 또 ‘시경’ 비흥(比興)의 수법을 사용하여 사건의 전개 중 틈틈이 서정적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아울러 나열·과장·대비·기탁 등의 수법을 자연스럽게 운용하여 수준 높은 문학적 기교를 보여주었다.
   

▲ 공작동남비 상상도. 몸을 던지는 초중경의 아내.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 사람은 화산(華山) 자락에 합장되었다.
   
   동쪽과 서쪽에 소나무와 동백나무를 심고, 왼쪽과 오른쪽에 오동나무를 심어, 가지와 가지가 서로 덮어 얽혀지고, 잎사귀와 잎사귀가 서로 닿게 되었다. 그 사이로 두 마리의 새가 날아드니, 이름하여 원앙이라. 고개 들어 마주 보고 울어 예면서, 검은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東西植松柏, 左右種梧桐. 枝枝相覆蓋, 葉葉相交通. 中有雙飛鳥, 自名爲鴛鴦, 仰頭相向鳴, 夜夜達五更)
   
   이처럼 낭만적인 결말은 두 사람의 정신이 영원이 변치 않음을 상징하고 있다. 신비한 상상 속에는 백성의 아름다운 소망과 깊은 동정의 마음이 잘 함축되어 있다. ‘원앙’은 사실과 달리 예부터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였다. 또 가지와 가지가 서로 얽혀있는 것을 일컬어 ‘연리지(連理枝)’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용어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이밖에도 ‘비목어(比目魚)’와 ‘비익조(比翼鳥)’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다. 즉 각각 몸이 반쪽 밖에 없어 항상 짝을 이루어야 온전히 헤엄치거나 날 수 있다는 물고기와 새로 소중한 인연을 상징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초중경과 유란지의 애틋한 사랑을 기리는 마음에서 작품의 결말을 이처럼 신화적이고 낭만적으로 이끌었다.
   
   
   안휘성 화이닝현 관광명소로 부상
   
   ‘공작동남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전통극과 현대극에서 단골 소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현재 유명가수로 활동 중인 투홍강(屠洪剛)이 동명의 타이틀로 노래를 불렀으며, 연주곡과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계속 각광받고 있다. 2009년 10월에는 유명 여배우인 쑨페이페이(孫菲菲) 주연의 36부작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져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공작동남비’ 이야기의 발생지로 알려진 안휘(安徽)성 화이닝(懷寧)현과 첸산(潛山)현은 덕분에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화이닝현은 748년에 시선(詩仙) 이백이 머물며 공작묘를 둘러보고 남긴 시로 유명해진 곳이다. 화이닝현에는 초중경과 유란지의 합장묘가 있는 곳을 ‘공작원(孔雀園)’이라는 공원으로 만들어 그곳에 공작대, 망작정(望雀亭), 난지교(蘭芝橋) 등 관련 건축물을 지어놓았다. 2008년에 화이닝현에서는 관련 영상물 제작을 돕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공작동남비 영상물기지’를 만들어 중국 각지와 해외에까지 홍보하고 있다. 이곳 영상물기지에는 ‘공작동남비’에 나오는 주요 장소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 한나라로 되돌아 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라고 한다. 중국중앙방송국(CCTV)에서는 바로 이 영상물기지에서 TV시리즈 ‘공작동남비’를 촬영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초중경과 유란지는 봉건 예교(禮敎)의 강압에 못 이겨 죽음으로 사랑을 지키려 하였다. ‘공작동남비’는 이처럼 사랑을 이루지 못한 모든 연인과 부부들에게 바치는 헌시이다. 현대에도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는 연인과 부부들이 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가정을 이루길 포기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결혼하여 힘겨운 현실을 이겨내고 황혼을 바라보며 두 손을 맞잡는 노부부들이 더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연인과 부부를 위한 헌시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