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상

무학대사

醉月 2010. 12. 2. 13:17

<출처 : 한국불교신문>

 

세월의 강(1)

사람의 일생이란 것도 결국 흘러가는 세월의 강물 위로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


물방울이 모여 시내가 되고, 시내가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모여 바다가 되듯 시간이 흘러 하루가 되고, 하루가 흘러 달이 되며, 달이 흘러 세월이 된다 했던가?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일생이란 것도 결국 흘러가는 세월의 강물위로 잠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 뿐.
그렇다. 사람들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시 이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그라지고 말았는 지, 그 실상을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여느 사람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족적(足跡)을 남길래야 남길만한 가치조차 찾지 못한다.
뭇 중생의 삶이란 그렇고 그런 것. 이 세상 어느 누가 잡초처럼 살다 간 뭇 중생의 족적을 비문(碑文)에다 새기랴?
경기도 양주 고을 천보산 회암사(회암사)에는 자초 무학대사(自超 無學大師)의 공적을 기리는 ‘묘엄존자 무학대사비’가 있고, 그의 사리를 봉안한 부도탑이 세워져 있다. 따라서 장장 6백여 년이란 세월동안 비바람에 시달려왔음에도 그 비문에는 한결 같은 고승의 모습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선사의 도가 드높으셔서
쉽사리 생각할 바 아니니
선각의 맏아들이며
태조 임금 성조의 스승이셨다.

선사의 평소 생활은
때 묻지 않은 어린애 같으셨으나
안목을 갖춘 자와의 만남은
화살과 화살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았다.

바리때 하나 옷 한 가지도
겸손하게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이기로 짝할 사람 없으니
본래 지니고 있는 나의 성품이라

가거나 나아가되
선견(先見)에 구애받지 않고
하늘이 부처님의 수명을 내리니
70을 지나서 아홉 해를 더 살았네.

오실 때는 어디서 오셨는가?
햇살이 품 속으로 비추셨고
가실 때는 어디로 향하시는가?
서방정토 연화대 자리로다.

효성스런 제자들이
님의 행적을 표하려 하는데
두 가지 단단한 것 가운데서
돌 보다 좋은 것 없기에
이 명(銘)을 여기에 새겨서
영원한 뒷세상에 길이 가르치노라.

조선조 초기인 1405년에 세속 나이 79세로 무학스님이 열반에 들자, 비탄에 잠긴 3대왕 태종은 20여 년 간이나 대제학을 역임했던 당대의 명 문장가 변계량에게 상기문을 찬(撰)하게 했다.

무학대사.
성은 박이요, 이름이 자초(自超)이며 호가 무학(無學)이었던 그는 불교를 국가 경영의 기본 이념으로 삼았던 고려조 말기로부터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통치이념으로 삼고 출발하는 조선조 초기라는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실로 뜨겁게 살다간 큰스님이었다.
여느 스님이 승방에 앉아 자신의 구도수행이란 소승적 경지에 안주하기 십상이었다면, 무학은 몸소 현실정치의 중심부에 나아가 실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대승적 승려로 살다 갔으며 중생구제라는 신앙적 사명감을 호국정신으로 발휘, 이른바 새로운 왕조 건설의 산파역을 맡음으로써 역사적 사명을 다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학스님은 세속적인 명리(名利)에 눈이 먼 적이 없었다. 그는 불보살의 덕행을 잃은 적이 없었고, 출가정신(出家精神)을 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세속의 명리를 초월한 그의 마음 가짐과 실천적 행동은 훗날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당 유정으로 이어져 그들의 호국사상과 애민정신으로 꽃피어 났던 것.
다른 한편 무학스님은 조선왕조를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 왕사(王師)이기도 했으니 그의 고뇌 또한 남달랐으리라.

후기 고려조의 일반 대중은 농노적(農奴的)인 생활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논, 밭은 거의가 권신(權臣)들 소유였다. 그리고 중기 이후 고려조는 몽고군[원]의 말발굽 아래에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무학스님은 기진맥진 상태에 빠져든 고려왕조 후기의 승려였다.
1384년, 우왕 10년.
그 해 겨울에도 피폐한 고려땅을 집어 삼킬 둣 세찬 눈보라와 바람소리는 가난한 농가의 초가집 문풍지를 울려대고 있었다.
함경도 최하단 원산 이남의 안변에 있는 설봉산에는 승냥이도 많아서 그날 밤따라 배고픔을 하소연하듯 마구 울어대고 있었다.
“아이 추워, 이놈의 눈이 밤낮도 모르네, 올 겨울은 아예 눈 속에 파묻혀 살라는 거야?”
설봉산 기슭에 있는 토굴 속으로 소반 하나를 들고 기어 들어가며 젊은 스님 하나가 이렇게 중얼거렸지만 바람소리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제 구실을 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성인 서너 명이 기거할 수 있을 정도의 토굴 속에는 흡사 돌부처 그림자 같은 스님 한 분이 앉아 있었고, 바람결에 춤을 추는 호롱불 한 개만이 무서운 겨울밤의 어둠과 씨름하고 있었다.
토굴 입구로 불어 닥치는 바람과 추위를 몇 장의 헌 가마니로 막고 있었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젊은 스님은 소반을 내려 놓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좀전에 그 토굴 옆에 있는 바윗굴에서 저녁 공양을 지어 왔던 것이다.
시간은 마구 흐르고, 조악한 밥은 식어가고, 젊은 스님의 애간장은 시름없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돌부처 그림자같은 모습은 무학스님이었고, 소반을 들고 들어왔던 젊은 스님은 시봉승 원융이었다. 이미 환갑고개를 바라보는 세수 쉰여덟의 무학스님에게는 애시당초 시간의 흐름따위란 아무런 의미를 못 가지는 듯 했다. 그는 지금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큰 염원 속에 잠겨 있었다. 이를테면 중생들의 헐벗음과 중생들의 배고픔을 저혼자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원융스님이 몇 번이나 침을 삼키다 말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큰스님. 큰스님?”
“…….”
무학스님의 귀는 얼어붙어 있는 모양 같았다.
“큰스님, 큰스님, 또 선정 삼매경(禪定 三昧境)에 드셨습니까?”
“…….”
원융스님은 내친걸음이란 듯 목소리를 한층 더 올리면서 허풍까지 보탰다.
“어서 공양 드십시오, 큰스님. 아이고, 이거 바리때의 공양음식이 땡땡 얼어붙었습니다. 식을 대로 식어서 이건 음식이 아니라 얼음덩이가 다 되었습니다요.”
그러나 무학스님의 얼어붙은 귓바퀴는 내년 봄쯤에나 풀릴 것 같았다.
“아니 큰스님, 열반에 드셨습니까? 큰스님, 무학 큰스님!”
“허허허…… 이놈, 원융아, 내가 언제 귀먹었다 했더냐?”
놀랍게도 무학스님은 일순간에 일상의 자세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원융스님이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아, 네에, 스님. 아직 열반에 드신 건 아니시군요.”
“이놈아, 생사를 벗어나 해탈하기가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생사여일(生死如一)이라기에…….”
원융스님은 무학스님에게서 애정 어린 꿀밤 한 대쯤 얻어먹을 생각을 하고 일삼아 이렇게 씨부렁거렸다.
“하. 하. 하.”
무학스님은 원융스님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웃음을 헛날렸다. 원융스님은 토끼눈을 뜨고 무학스님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무학스님 얼굴 위에는 아련한 어떤 향수(?)가 어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무학스님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을 단숨에 뛰어 넘어 자신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중국에 있는 영암사에 도착해 있었다.


 

세월의 강(2)

“허허……. 이놈 이거 중은 안 되고 귀신 다 되었구만……. 그래, 원융이란 귀신은 저녁 공양을 했느냐?”

젊은 무학스님은 나옹스님을 모시는 중이었다.
배고픈 사람에겐 끼니때가 더디 돌아오지만 선정(禪定)에 빠진 스님에겐 끼니때가 금방 돌아오는 법.
젊은 무학스님은 참선 삼매경에 잘도 빠져 들었다. 그러니 공양 때가 될 때마다 시봉승들을 괴롭혔다.
어느 날이었다.
선정에 빠져 있다가 나옹 큰스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대 죽으셨는가? 무학이가 그만 해탈한 게야?”
순간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보니, 나옹스님의 미소가 눈 앞에 있었다. 무학스님도 싱긋 웃고 있었다.
“큰스님!”
원융스님의 목소리가 무학스님의 기억을 차단하려 들었다.
“저…….”
“무엇이냐?”
“돌아가신 나옹왕사께서는 육도를 벗어나 정말로 왕생극락(往生極樂)하셨을까요?”
“예끼 이놈! 그런 모양새를 분별하는 것 자체가 망상번뇌(妄想煩惱)인 게야, 그런데 네 놈은 왜 갑자기 나옹스님 이야기를 끄집어 냈냐?”
“히히히…….”
“대답해봐, 이놈아!”
“좀 전에 큰스님께서는 그 분 생각을 하신 것 아녜요? 큰스님께서 그 분을 그리워하는 표정을 전 알거던요.”
“허허……. 이놈 이거 중은 안 되고 귀신 다 되었구만……. 그래, 원융이란 귀신은 저녁 공양을 했느냐?”
“예에, 초저녁도 지나서 벌써 이경이 다 됐을 걸요. 이거 공양거리가 식어서 안 되겠습니다요, 밥이 아니고 얼음덩이 올습니다요.”
원융스님은 나물 된장국과 조밥에 쌀알 몇 개 섞인 듯한 바리때가 음식상이랍시고 마련된 그 소반을 들며 말을 이었다.
“다시 뎁혀 오겠습니다요.”
무학스님의 손바닥이 원융스님 손등을 덮었다.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개념치 마라. 밥이고 얼음이고 간에 대수겠느냐?”
“……하지만 이런 걸 드셨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떡합니까? 금새 다시 뎁혀 올리겠습니다요. 저는 귀찮지 않습니다.”

어느새 무학스님은 얼음덩이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일체유심(一切唯心)이거늘!”
무학스님은 ‘원융이 너 들어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원융스님도 신라 고승 원효의 생애를 알고 있었고, 그 분의 중심 사상이 바로 일체유심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삼라만상이 사람 마음 하나에 달린 것이란 말이 아니던가?
신라 문무왕 시절의 고승, 원효가 당나라로 구법(求法)길을 떠났는데, 어쩌다 길을 잃어 남양 부근의 한 고총(古塚)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고 했다. 밤중에 갈증을 느낀 원효가 부근을 더듬자 마침 물이 담긴 바가지 하나가 손에 잡혀 그는 맛있게 그 물을 마셨고, 아침에 깨어 보니 지난 밤에 마신 물은 식수가 아니라 해골 바가지에 담겼던 물이란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는 크게 깨달아(대오:大悟) 당나라 행을 중단하고 동행했던 의상과 헤어져 남긴 말이 바로 일체유심조였다고 했다.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은 지옥일 수도 있고, 마음 먹기에 따라 이 세상은 극락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되는데 무학스님은 시방 얼음 같은 밥덩이를 따뜻한 이밥으로 여기면서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 수가 있을 것인가?’
원융스님은 얼음덩어리를 아삭아삭 씹고 있는 무학스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 자신을 향한 의혹의 화살을 거듭 날리고 있었다.
‘얼음은 찬 것이고, 얼음을 씹고 보면 이가 시리고 식도며 위장까지 아리도록 싸늘해질 텐데……. 큰스님은 과연 마음 하나로 본능적인 그런 감각까지 통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나에게 일체유심조를 보이기 위해 저러는 것일까?’
토굴 바깥에서 나뭇가지 뒤흔드는 바람소리가 윙윙 들려왔다.
무학스님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바리때를 비우고 있었다.
“오늘 밤에도 많은 눈이 내릴 모양입니다. 큰스님!”
원융스님이 객쩍은 말 한 마디를 날렸다.
무학스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온 산이 하얀 눈 속에 푸욱 파묻혀 짐승들도 꼼짝달싹 못할 것 같은데요?”
“이놈아, 너는 우선 네 몸 건사나 잘 해라. 헛걱정 그만두고…….”
“히히히……. 저야 뭐 큰스님 슬하에 있는데요, 뭐!”
“원융아.”
이윽고 공양을 마친 무학스님이 나직한 어조로 시봉승 법명을 입에 올렸다.
“네, 큰스님!”
“소싯적에 내가 어느 해 겨울을 만나서 이런 노래 한 수를 생각해 봤는데……, 한번 들어보겠냐?”
“네에, 큰스님. 한번 들려주십시오.”
그러자 무학스님은 잠시 침묵 속에 휩싸였다가 나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모진 바람 천지를 휩쓸어 가도
푸른 산들은 더욱 고요하고
하얀 눈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으나
푸른 소나무는 오히려 더더욱 푸르구나.

원융스님은 금방 무학스님의 싯구가 나타내는 뜻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불어와도 청산은 끄덕없으니 대방부의 흔들림없는 고요한 기상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얀 눈 속에서도 푸른 소나무란 꿋꿋하고 높은 절개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큰스님. 방금 그 시 몇 살 적에 읊은 겁니까요?”
“…… 아마도 십여 세 남짓했을 때였지.”
“네에? 십여 세 때에?”
원융스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그는 서른 살이 넘어선 지금 나이에도 그토록 선명한 시를 지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아서였다.
아니, 소싯적의 무학이 읊었다는 그 시를 좀 더 확대 해석해 보자면 무학은 일찍이 자신의 운명(?)을 점쳤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1.세월의 강(3)

동네 훈장이 ‘자초는 신동이다’ 했으니, 소년 무학은 공인받은 신동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고려말의 시국은 그야말로 모진 바람이 천지를 휩쓸어가던 때가 아니였던가? 4백 년 왕조가 무너지고 바야흐로 새로운 왕조가 탄생되려 했으니…….
그러한 풍파 속에서도 무학스님은 한 사람의 큰스님으로 시종일관 했으니 그게 곧 푸른 산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하얀 눈이 가득찼다는 뜻은 천지가 개벽(새왕조가 들어섬)했다는 말과도 같은데, 푸른 소나무는 더더욱 푸르다니 천지가 개벽 함에도 불구하고 무학스님의 존재는 더더욱 높아졌다는 말과는 통하지 않았겠는가?
그러했다. 무학은 어린 시절부터 신동(神童)으로 불리워질 만큼 실로 총명했었다. 그는 나이 겨우 코흘리개 다섯 살 적에 동네 서당에 들어가 하늘천, 따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일 년 만에 논어, 맹자 등 사서(四書)를 죄다 땔 만큼 명석한 어린이였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에 있었던 일이었다. 훈장 집 마당 한구석에는 노송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그동안 무학소년의 총명함에 몇 번이나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던 훈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그를 다정스레 불렀다.
“자초야.”
“네, 스승님!”
무학소년이 두 눈을 반짝이며 훈장 얼굴을 올려 보았다.
“오늘은 말이다, 글 읽기는 그만하고 시 한 수 짓기로 하자구나.”
“좋아요. 시제(詩題)를 주세요.”
무학소년의 두 눈이 다시 빛났다.
훈장은 무학소년이 냉큼 시제를 달라는 말에 저으기 놀라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마당가에 서 있는 노송(老松)을 가리켰다.
“저 소나무를 시제 삼으면 될 것 같으냐?”
이렇게 말하면서 훈장은 무학소년이 모작시(模作時) 한 구절 쯤 지어 내리라 여기고 있었다. 한시(漢詩)중에는 유별나게 소나무를 주제로 다룬 작품이 많아 그런 짐작을 했던 것이다.
무학소년은 새삼스레 마당가에 서 있는 소나무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두어 번 눈을 깜짝거린 후에 붓을 들며 화선지를 당겼다.

푸르른 수염은
사내장부의 기사이요,
검붉은 갑주는
대장군의 몸뚱이로다.

이는 무학소년의 눈에 비친 소나무 모습을 표현한 시였는데, 흡사 바늘같이 꼿꼿한 소나무 잎을 어른들의 콧수염에 비유했고, 울퉁불퉁한 소나무 껍질을 갑옷에 비유한 것이었다.
훈장은 무학소년이 읊은 싯구를 내려 보다가 한 동안 말을 잃고 앉아있었다.
여섯 살 난 소년의 직관이나 표현으로 그 시를 평가하기엔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다음 날부터 그 동네 사람들 사이에는 우리 동네에 틀림없는 신동(神童) 하나가 태어났고, 그 신동의 이름은 자초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동네 훈장이 ‘자초는 신동이다’ 했으니, 소년 무학은 공인받은 신동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원융스님은 무학스님 곁에서 항상 막막함을 느끼기 일쑤였다. 자신을 간장종지쯤으로 친다면 무학스님은 장독이었고, 무학스님을 한 아름드리 소나무로 친다면 그 자신은 한 포기의 잡초로 여겨지곤 했다. 가늠이 불가능하니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원융아.”
그 해 겨울 어느 날 밤에도 무학스님이 차갑고 얼어터진 원융이란 시봉승의 두 손을 가만히 감싸 안으며 하산(下山)을 권했다.
“네, 큰스님!”
“너무 고생스럽지? 날 따라 시작한 토굴생활이 벌써 얼마야? 춘풍추우 7개 성상이구나.” “큰스님! 저더러 또 하산하란 말씀하실 참이죠?”
“이 엄동설한에 이 늙은이 혼자 이 곳에 두고서는 네 발길이 떨어지지 않겠지? 해서 말인데……, 내년 봄이 오거든 그만 이 설봉산에서 내려가도록 해라. 내려가서 새로 피어나는 꽃도 보고 새들 노래도 듣고 그래.”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큰스님!”
까닭은 알 수 없지만 원융스님은 무학 큰스님과의 이별을 버림받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그는 비록 깨치지는 못할지라도 무학스님의 시봉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려 들고 있었다.
“아니야, 나야 참선하느라 괜찮지만, 원융이 네 고생이 너무 심하구나.”
“큰스님, 소승은 끝까지 큰스님 뒤를 따르렵니다. 결단코 싫습니다. 다신 큰스님 곁을 떠나라는 하명(下命)만은 제발 하지 마소서.”
“나무관세음보살. 고맙고 고마운지고. 원융이 니놈 공덕이 수미산만큼이나 크고 높다니…….” 그날 밤따라 설봉산의 부엉이들은 무슨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이 밤 새워 울고 있었다.

2.부엉이가 우는 사연(1)


 굳이 일체유심조란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처해있는 입장에 따라 이 세상을 보고, 듣기 마련이었다.
엄동설한 한밤 중에 산 속에서 흘러 나오는 부엉이 울음 소리 또한 듣는 이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원융스님의 귀에는 그 해 겨울의 부엉이 울음 소리가 무척이나 처량하고 애닯게만 들렸다. 출가 이전 속가(俗家)에서부터 그의 귀에는 부엉이 울음 소리가 늘 그렇게 들려 왔었다. 아니, 지금도 가난한 일반대중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리란 확신을 버릴 수가 없었다.
“큰스님, 큰스님 귀에는 저 부엉이 울음 소리가 어떻게 들리십니까?”
어느 날 밤에 원융스님은 불쑥 이렇게 운을 띠며 무학스님의 얼굴을 직시했다.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 양식 떨어졌다 부엉. 땔나무 없다 부엉……, 그러면서 우는 것 같구나!”
무학스님은 엷은 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요, 큰스님.”
웬일로 원융스님이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없다니?”
“네에, 큰스님. 왜냐하면 소승의 귀에 그렇게 들리는데, 큰스님 귀에도 그렇게 들릴 리가 있을라구요.”
“이런 고얀 놈 봤나? 니놈과 나는 다 같은 고려중이 아니라더냐?”
무학스님의 이러한 일갈(一喝)에 원융스님은 그만 대꾸를 잃고 말았다. ‘니놈과 나는 다 같은 고려의 중이라’는 그 한 마디 말이야 말로 시대적 고뇌를 극명하게 함축했기 때문이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무학스님은 비원에 찬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빌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나라와 백성이 너무나 큰 어려움에 처해 있어 앞길이 보이지가 않는 때였다. 4백 년 고려 왕조가 바람 앞의 등불이었고, 백성들은 절망과 실의의 구렁텅이에 빠져 신음조차 내지를 수 없는 형국이었다.


 

2. 부엉이가 우는 사연(2)

무학스님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원융스님의 입에서 이성계 장군의 이름이 오르다니…….

 

만약 고려조의 터전이 광활한 중국 대륙이었다면 무학스님은 또 다른 비원을 세웠으리라. 다시 말하자면 중국이란 광활한 대륙의 동쪽 끝에 가까스로 매달린 고려이고 보니 고려라는 나라는 항시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에서는 중국대륙에서 일어난 세력들이 호시탐탐 고려조를 집어삼키려 들고, 동쪽 바다를 통해서는 왜국이 틈만 나면 노략질을 일삼으려 들었으니 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조정의 권세가들은 자신들의 가문이 누릴 부귀영화만을 추구하기에 바쁘지 않았던가? 백성들은 언제나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고…….
‘……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가지고선 안 되는 일인데…….’
무학스님은 어지러운 나라 형편을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었다. 때로는 산승이랍시고 토굴 속에 앉아 수행정진이나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향해서도 따가운 질책의 반문을 던지곤 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가? 아무리 부처님 모시는 불제자라 한들 나라가 없으면 절간이 어디 있고, 백성이 없으면 산승이 어느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몽고군이 이 강토를 짓밟고 불 사를 때 부처님이 모셔진 절간이라 인정사정 봐준 적이 있었고 왜구가 노략질을 하러 왔을 때 스님이란 신분을 인정해 주며 언제 한번 합장배례한 적이 있단 말인가?’
생각이 이렇게 방향을 잡자 무학스님의 귀에는 지난달인가 차를 구하러 하산했다 돌아와 두서없이 주절대던 원융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되살아났다.
“큰스님! 왜구들이 저렇게 설쳐대는 걸 보니 우리나라가 힘이 없고 백성이 죽을 지경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요. 글쎄,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왜구들이 바다를 건너 무시로 쳐들어와서는 백성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재물을 노략질하는가 하면 식구들 앞에서도 부녀자들을 강간하기도 하고 어린 처녀들은 배에 태워 납치해 가기도 한다는 겁니다요. 얼마 전에만 해도 저쪽 영흥만 바닷가로 왜구가 쳐들어 와서는 온갖 분탕질에 갖은 만행을 저질렀는데 고을 벼슬아치들이 제일 먼저 도망가 버리고 백성들만 억울하게 당했다는 겁니다요.”
“……큰스님.”
다 같은 고려중이란 말 한 마디에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던 원융스님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무엇이냐?”
“큰스님께선 이성계 장군을 알고 계세요?”
무학스님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원융스님의 입에서 이성계 장군의 이름이 오르다니……. 필시 심상치 않는 무슨 조짐이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무학스님도 아직 이성계를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런 토굴 속에 들어앉은 내가 이성계란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 무학스님은 원융스님의 입을 열게 할 요량으로 짐짓 시치미를 땠다.
“지난번 아랫마을에 내려갔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요. 이곳 동북면 백성들이 조정에다 상소를 올렸답니다요.”
“이놈아, 이성계 장군 어쩌고 하더니 조정에 상소라니?”
“예에, ‘우리 함경도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아가게끔 이성계 장군같은 명장 좀 보내주십시오’하는 상소를 올렸답니다요. 원산 앞바다 영흥만으로 쳐들어 왔던 왜구가 너무 무서웠나 봅니다요.”
“그랬구나! 이성계 장군이 명장이란 소문은 나도 들은 것 같다.”
“그렇죠? 헤헤헤……. 큰스님께서 이성계 장군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요.”
“이성계 장군은 본래 이곳 함경도 함주 태생이었지. 그 아버지 이자춘 공을 따라서 많은 군공을 세웠고…….”
“헤헤헤……, 그래서 그런지 이성계 장군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요. 너도 나도 ‘우리 장군, 우리 장군’하면서……. ‘우리 이장군만 이리루 오시면 왜구의 간담이 서늘해서 얼씬도 못할’거란 믿음이 확실했습니다요.”
“특히나 이성계 장군의 활솜씨는 천하제일이라더구나. 천하의 명궁…….”
무학스님의 이런 화답에 원융스님은 아랫마을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줏어 섬기던 이성계에 대한 경외감 들을 별 여과없이 토로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이성계 장군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요, 이름만의 장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벌써 이성계란 이름 앞뒤에는 신비하기까지 한 명성들이 붙어다닌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불가해한 능력을 지닌 인물을 초인시하기 마련이었다. 이성계는 이미 초인이 되어 있었다.
혹은 역으로 말해 몽고나 왜구 등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고려란 나라의 무기력한 능력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고려 백성들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어떤 초인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이성계가 나타났음에 어떤 기대감에서 그를 초인시하려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우리를 구원해 줄 인물로써 이성계 장군’이란 환상(?)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성계의 능력이란 활을 잘 쏘아서 백발백중의 명궁이란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성계의 활솜씨는 귀신도 범접할 수 없는 신궁(神宮)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타고 달리는 말은 귀신도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날쌘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성계에 대한 일화들은 구체적인 것이었기에 설득력을 가질 수가 있었다.

4년전 우왕 6년 가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성계가 전라·경상도 순찰사로 부임해 있을 때였다. 왜구는 동해 바다로 출현하는가 하면 남해 바다로 출현했다. 어차피 노략질을 일삼던 그들이기에 왜구들은 상대방[고려]의 허를 찾아 어디로든지 출현하곤 했던 것이다.
그 해 가을에는 왜구들이 남해를 통해서 여수쪽으로 침입, 지리산 줄기를 타고, 서남지방의 요충지인 남원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거친 바다를 상대로 생사를 건 생존투쟁을 일삼아 왔기에 잔인무도 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 당시 왜구들은 아지발도(阿只拔都)란 대장을 지휘자로 삼아 우선 전라도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초토화시켜 나갔다.
바야흐로 이성계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가을을 맞은 지리산은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건만 왜구들의 발길이 지나가는 고을은 피로 물들어 갔다.
이성계는 운봉 연재를 지나 황산이란 곳에다 진을 치고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구들은 인월천 냇가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경계심도 갖지 않은 채 혹자는 벌거벗은 몸을 인월천에 담그기도 했다.
이성계는 말없이 왜구들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여 명의 왜구들은 다시 대오를 정비하여 구불구불 뱀의 형상을 그리며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의기양양했고 안하무인이란 듯 거침없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은 거기까지 진군하면서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왜구들이 울려대는 꽹과리 소리가 지리산 골짜기를 뒤흔들었고, 그 소리에 놀라 달아나는 건 불쌍한 고려 백성들만이 아니라 지리산 산짐승들까지도 포함되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달아나고 볼 일이었다.
그의 곁에는 부하장수 퉁두란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퉁두란은 왜구의 진군을 노려보는 한편 이성계의 눈치도 살피는 중이었다.
일진광풍으로 가을 찬바람이 산골짝을 휩쓸며 지나갔다. 멀리 보이는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있었지만 가을걷이 서두는 농민은 그림자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퉁두란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벌써부터 이성계의 무슨 명령이 떨어질 법해서 기다리는 중인데 장군은 딴청만 부리는 듯해서였다. 실로 갑갑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이성계 휘하의 병사들도 손에 땀을 쥔 채 장군의 명령만 기다리며 몸을 숲 속에 묻고 있었다.
저만큼 떨어진 어느 곳에서 무엇에 깜짝 놀랐는지 장끼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며 꿩- 꿩 하고 울어댔다.
그래도 이성계는 요지부동이었다.
퉁두란이 스스로 긴장을 풀 속셈으로 투덜거렸다.
“이놈의 가을 산바람이 모질구만요. 말로만 듣던 지리산 바람 알아 모셔야겠습니다.”
그때였다.
이성계가 자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쉬를 표했다.


 

2. 부엉이가 우는 사연(3)

명장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를 화살 한 개로 쓰러뜨림으로써 천여 명의 왜구를 일시에 섬멸하는 전과를 올린 이 싸움이 바로 ‘황산대첩’이었다.

“장군님. 적들은 코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데 구경만 하실 참입니까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퉁두란이 너스레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아우도 한번 잘 살펴 보시게. 저쪽 선두에서 올라오는 자가 왜놈 장수임이 분명하겠다?”
그러고 보니 이성계는 그간 왜놈 장수를 찾고 있었던 모양.
“저 맨 앞에서 말을 타고 거들먹거리는 저자 말씀입죠?”
“그래. 꼴이 필시 대장놈 같잖은가?” 이성계의 싸늘한 시선에 불꽃이 일고 있었다.
“물론 그렇습니다요. 갑옷에다 투구에다 흑마까지 타고 으스대는 꼴이…….” “저자를 해치우자는 게야, 저자를! 그러고 나면 나머지 것들이야 오합지졸로 화하지 않겠는가?”
이성계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저자를 어떻게 해치울 생각이십니까요, 장군?”
“화살이 있지 않은가?”
“장군님, 저자 몸 어디에 화살 한 개 꽂힐 데가 있다고 그러십니까요? 보십시오. 저렇게 온통 몸뚱이에 철갑을 하지 않았습니까요? 머리통엔 투구를 푹 눌러 썼고……, 두 다리까지 갑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럼 어쩌잔 말인가? 저자를 두고만 보잔 말인가?”
“…….”
퉁두란으로서는 대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칼을 들고 접전, 적들의 목을 벨 궁리만 하고 있었다.
“아우는 화살로 저자 대가리에 얹혀 있는 투구를 맞추시게!”
“투구라뇨?”
“화살 한 개로 저자의 투구를 명중 시키라니까. 왜, 자신없어?”
“그런 것쯤이야 문제 없습니다요.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지……?”
“다음 번에 일어날 일은 나의 몫일세. 나는 화살 하나로 저놈의 목구멍을 맞힐 작정일세.”
“저자의 목구멍을 맞히다뇨?”
퉁두란은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가 쉬 다물지를 못했다. 이성계의 활솜씨가 어느 정도라는 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해 왔지만 지금 이 시간의 각오만은 영 믿기지가 않았다.
“오늘은 내 기어이 저놈의 목젖을 따고 말 걸세. 자, 자, 시위를 당기시게. 지체할 시각이 없네. 얼른!”
“좋습니다. 그럼 장군께서도 준비를 하십시오.”
“물론일세!”
사실 퉁두란으로서야 놈의 투구를 맞히는 일이란 새삼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독수리가 참새 한 마리를 잡을 때도 혼신의 정력을 쏟아야 한다는 무인으로서의 정신무장이 철저하던터라 화살을 시위에 거는 순간, 그의 두 눈에도 불꽃이 일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성계와 퉁두란, 두 사람은 어금니를 악물고, 각자 한 개 씩의 화살을 시위에 걸어서 힘껏 잡아당기며 아랫배의 숨을 끊었다.
푸르릉…… 딱!
푸르릉…… 악!
전광석화라고 했던가?
두 사람의 작전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어 일순간에 왜장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아지발도는 불시에 날아든 두 개의 화살에 맞아 아악- 하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마상에서 굴러 떨어져 붉은 피를 콸콸 쏟으며 죽어갔던 것이다.
삽시에 지휘관을 잃은 왜구들은 이성계의 예상처럼 혼비백산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때를 놓칠 이성계가 아니었다.
“공격하라! 왜구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씨를 말려라.”
이성계의 이런 공격 명령에 아군의 함성이 지리산 자락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명장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를 화살 한 개로 쓰러뜨림으로써 천여 명의 왜구를 일시에 섬멸하는 전과를 올린 이 싸움이 바로 ‘황산대첩’이었다.
이 황산대첩 이후 이성계의 명성은 더더욱 올라갔던 것이며 그의 활솜씨는 가히 신궁이란 평을 듣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마치 전설처럼 이런 이야기도 퍼져나갔다.
그날 퉁두란이가 먼저 쏜 화살이 아지발도의 투구를 맞히자 아지발도는 지리산 산바람이 거칠어서 투구가 벗어지는 줄 알고 ‘아, 이노무 지리산 바람 세구나’하며 입을 벌렸다. 바로 그 찰나에 이성계가 날린 화살 한 개가 아지발도의 주둥이로 들어가서는 영락없이 놈의 목젖에 콰악 꽂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성계는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어쩌면 전세를 너무나 기적적으로 역전시킨 것이기에 ‘황산대첩’에서는 수많은 일화를 남겨두려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도 전라북도 남원시의 운봉읍 비전리에 가면 붉은 빛이 나는 바위들이 눈에 띄는데 인근 주민들은 그 바위들의 붉은 빛깔은 ‘황산대첩’ 당시 아지발도가 흘린 새빨간 피가 물든 흔적이라고들 했다. 이른바 ‘피바위’ 전설인 것이다.
한편 그날의 그 통쾌한 승리를 기리는 ‘황산대첩비’가 조선조 때에 전장 현장에 세워진 바 있었는데, 최근세사(最近世史)에 이르러,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자기네의 치욕적인 사적지라 하여 철저히 훼손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비문 글자를 깎아내고 비석을 두세 토막으로 파괴시켜 버렸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새롭게 단장 된 비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가까이에는 일제에 의해 토막나고 마멸되어 버린 옛 황산대첩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3. 이성계의 안변행(1)

전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고려말 백성들에게 이성계는 어느덧 우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가난보다 더 무섭고, 질병보다 더 참혹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일반백성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성계란 믿음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성계 장군 만세!”
“도원수 장군 만세!”
당시 이성계는 어느 고을로 가더라도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환영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성계가 부임해서 버티고 있는 한 백성들은 안심을 하고 잠을 청할 수가 있었기에 그러했다.
“오, 이제 우리 함경도 백성이 살아나게 되었구만. 이성계 장군이 드디어 우리 함경도 도원수로 온다니……. 암, 다행이고 말고!”
“암, 바다 건너 저 왜구들이 이젠 우리 바닷가에 얼씬도 하지 못할 걸세.”
무학스님이 아직도 설봉산에 머물러 있을 때 이성계가 함경도 도원수가 되어 현지 부임차 내려왔을 때 함경도민들의 환호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원산 앞바다 영흥만 깊숙이 왜구들이 쳐들어 와 한바탕 분탕질을 한 직후였기에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이성계를 열렬히 환영했다.
이른바 문하찬성사 이성계 장군이 동북면 도원수가 되어 함주로 들어가는 길에 안변 고을을 지나던 중이었다. 그는 함주의 동해 바닷가에 이따금 출몰하는 왜구를 치고자 군사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가는 중이었고, 듬성듬성 혹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가집 지붕 위로는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변평야를 가로 지른 남대천의 푸른 냇물에는 석양빛이 어렸다.
동네 개들이 놀라 컹컹 짖기도 했다.
석양을 머금은 남대천의 푸른 냇물을 바라보면서 백마 위에 몸을 맡기고 있던 이성계가 갈색 말을 타고 동행하는 퉁두란을 건너 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퉁두란이가 어디 놀러 갔는가? 왜 이렇게 조용해?”
“여기 있습니다요, 도원수 나리.”
“아니, 호형호제 하기로 맹세한 지가 언젠데 무슨 도원수 나리야?”
“도원수 나리, 지금은 공무 수행 중입니다요.”
“공무 수행 중이라? 그렇다면 나도 공무를 수행해 볼까? 오늘은 이곳 안변에서 숙영했으면 하는데,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발진토록 합시다. 퉁두란 장군의 생각은 어떠신고?”
“도원수 어르신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요. 날도 저물어 가고 오늘은 행군을 너무 많이 해서 군사들도 피로할테니……. 그렇게 하시지요.”
퉁두란이 이성계의 얼굴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이성계의 얼굴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포근함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3. 이성계의 안변행(2)


그러면 그렇지!
퉁두란은 짐작되는 바가 있어서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이성계는 속내를 스스로 내비쳤다. 퉁두란이 짐작했던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상하지? 여기 함경도 지방은 언제 와도 늘상 눈 앞에 삼삼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단 말이야, 포근한 어미 품 속에 안긴 듯.
그야 장군을 낳아주고 길러 준 탯자리이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 왜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더욱 반가운 법이라 하지 않습니까요? 허허허.
퉁두란은 비대한 몸집에 어울리는 걸죽한 웃음을 허공에 날렸다.
그래서 그런게지. 허허허. 난 여태 그런 것도 몰랐으니. 하하하.
이성계도 호방한 웃음을 흩날리며 퉁두란의 웃음과 조화를 이뤄주고 있었다.
때마침 이성계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이 백마가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허허, 이놈의 군마도 쉬어 가자는구만.
퉁두란, 일명 이지란.
때로는 이성계의 아우로 활약했고, 때로는 그림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퉁두란 장군은 원래 여진족의 후예였다. 그는 금패천호() 아라부화()의 아들로 부친의 직위를 세습하여 천호가 된 무장이었는데, 일찍이 공민왕 시절 부하를 이끌고 고려로 귀화하여 명실공히 고려인이 된 인물이었다.
활솜씨로 말하자면 이성계와 막상막하라 불리어 질 정도였으며, 심지가 굳어 이성계와 한번 형제지의()를 맺은 인연을 끝까지 고수한 사람이기도 했다. 마치 실과 바늘처럼 그는 이성계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 훗날 조선왕조 개국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그날 밤 안변 들녘의 젖줄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남대천 냇가 여기저기에는 군졸들의 막사가 점점이 널려 있었다. 파란 달빛이 군졸들의 막사를 포근히 감싸안자 힘들고 고달픈 행군에 지친 병사들은 일시에 잠들고 말았다.
이성계와 퉁두란은 초병들의 근무자세를 점검하기도 하고, 어느 막사 안으로 들어가서는 곤히 잠들어 있는 부하 병사들의 잠자리도 고쳐주는 등, 덕장으로서의 자애로움을 발휘한 다음 지휘소 군막으로 되돌아 왔다.
도원수 나리, 녹차 한 잔 하시지요.
퉁두란은 우람한 체격에 걸맞지 않은 몸짓으로 이성계에게 따끈한 녹차 한 잔을 권했다.
이성계는 말없이 퉁두란이 건네주는 찻잔을 받아들 뿐이었다.
.
퉁두란은 직감적으로 이성계의 표정에 서린 비애감을 보았다.
또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요, 형님?
마음이 아프네, 마음이. 이성계는 녹차로 몸을 축이며 습기 찬 어조로 중얼거리듯 했다.
.
한뎃잠 자는 젊은 병사들을 바라 볼 때마다 너무 애처롭단 말일세. 겨우 식은 주먹밥 한 덩이 얻어 먹고 하루 종일 강행군한데다 또 풍찬노숙이라니. 불시에 남쪽지방으로 달려 내려 갔다가 이번에는 또 이렇게 북쪽으로 치달아 올라가야 하고. 그야말로 남북 풍진이지 뭔가? 북쪽에는 오랑캐요, 바다 건너에선 왜구들이 호시탐탐. 그놈들 등쌀에 바람 잘 날 없는 나라꼴이라니.
결코 새삼스런 푸념이 아니어서 퉁두란도 이성계의 그 감상적인 기분을 다 알고 있었지만 그날 밤따라 장군의 심사가 너무 울적한 것만 같아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라 왕실이 무능력한데다 조정 대신들과 귀족 토호들은 썩을대로 썩었으니.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지만 백성들은 현재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천지개벽이 일어나야 한다는 거죠.
천지개벽이라니?
하늘이 폭싹 내려 앉아 왕실이 망하든지. 백성이 살아남든지 양단간에 말씀입니다.
퉁두란은 두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로 씹어뱉듯 말을 높혔다.
허허, 일 낼 소리!
백성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나라 왕실이 무슨 왕조란 말씀입니까? 이른 봄 감꽃이 필 때 쯤이면 수많은 백성들이 풀뿌리 나무 껍질로 풀떼죽 쑤어 먹기 바쁘고, 겨울도 오기 전부터 그놈의 도토리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성계는 애써 자제력을 발휘해서 퉁두란의 직설적인 감정표출에 편승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소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요, 형님. 현재 백성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도선국사가 은밀히 전해 주었다는 음양도참설에 의하자면 나랏님이 거하시는 개경은 이미 그 기세가 끝났다고도 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 민심이 공연히 지어낸 말도 아닌 것 같단 말씀입니다요.
이성계는 깊은 한숨 한 번 내쉬는 일로 퉁두란의 심정에 화답을 보냈다.
 자, 밤이 깊었네, 아우님. 우리도 이젠 한숨 눈을 붙쳐야지. 그래야 내일 말을 탈 것 아니겠는가?
끝내 이성계는 퉁두란을 다둑거려 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주무십시오.
아우님도 잘 주무시게.
이렇게 퉁두란을 자기 막사로 돌려 보내고 혼자가 되어 잠자리에 몸을 맡겼지만 이성계는 쉬 잠들지를 못했다. 웬만하면 나른하기 마련인 봄밤이라 졸음이 몰려 올만도 한데 밤이 깊어갈수록 그의 정신은 오히려 또렷또렷 맑아지기만 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무슨 풀벌레 울음 소리 같은 게 가냘프게 들리기도 했다.
군막 틈새로 파란 달빛이 흘러들어 오기도 했으나 이성계의 눈 앞에는 칠흑같은 어둠의 장막만이 드리워져 있는 듯했다.
너무나 어둡구나, 너무나! 이게 바로 암흑칠야가 아니라더냐? 나라의 앞날은 암담할 뿐이고, 백성들의 내일이 이래서야 어쩐단 말인가?
이성계는 몸을 뒤척거리며 한숨을 토했다.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이어 봤지만 계속되는 건 절망과 어둠의 장막뿐이었다.
 내 나이도 이미 불혹의 마흔 고개를 지나 갓 쉬흔 살이 아닌가? 지천명()의 나이가 쉰이라고 했는데 하늘은 과연 나에게 무슨 운을 내렸는고?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무엇이며 이룩해 놓은 것은 또 무엇인고? 십여 세 약관의 나이에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님을 따라 싸움터에 나선 이래 춘풍추우 40여 성상. 전장의 병진 속에서 잔뼈가 굵어진 이내 몸뚱아리도 이젠 한계를 느꼈는지. 검었던 내 머리에 희끗희끗 찬서리라니.
아닌게 아니라 이성계는 지나온 생의 전부를 전장에서 불태웠을 뿐이었다. 전장이란 바로 약육강식이란 최악의 비정한 논리만이 통용되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영흥의 쌍성총관부를 쳐서 원나라 세력을 몰아 내는 전공을 세웠고, 홍건적의 난을 평정했는가 하면, 덕흥군의 반란도 진압한 바 있었다. 그리고 경상전라도 곳곳에 창궐했던 왜구를 물리쳐 혁혁한 무공을 세우기도 했다.
남대천 냇가에서 야영을 하던 그날 밤에 이성계는 그야말로 어쩌다 살풋 잠이 들었는데, 풋잠이 든 그날 새벽녘에 꿈을 꾸었던 것이다.
수많은 장닭이 한꺼번에 홰를 치며 울음소리를 길게 내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떤 낡고 썩은 초가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허름한 고가가 일시에 와르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어느 순간 천장에서 떨어진 서까래 세 개가 장군의 등어리에 철썩 내려앉아, 급히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채로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때 밖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이 떨어지면서 오색 꽃잎이 춤을 추듯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가 또한 걸음을 내딛자 어디선가 거울 한 개가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리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며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괴이한지고, 별 요상스런 꿈을 다 꿨구나.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헌 집이 무너지고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졌고 사방에서 꽃잎이 흩날리고 왠 거울이 산산조각으로 깨지고.
이성계는 봄날의 개꿈이려니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상하게도 그 꿈의 내용이 또한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되어 그 꿈 생각을 쉽게 뿌리칠 수도 없었다.
꼬끼오.
멀리 떨어진 민가에서 홰를 치며 새벽 닭이 울고 있었다.
 벌써 새벽이란 말인가?
이성계는 할 일도 없었지만 막사를 벗어나 남대천 냇가로 발길을 옮겼다. 희뿌연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어려 있었다. 바야흐로 먼동이 트려는지 새벽 하늘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가는 중이었다.

 

3. 이성계의 안변행(3)
그래, 설봉산. 거기 가면 토굴이 하나 있고 그 토굴에는 큰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셔. 그 어른이 신승()이야!


막사를 벗어날 때 초병() 하나가 깜짝 놀라 웬일이냐고 했지만 이성계는 그 초병에게 모른 척하라 일러두기도 했다.
이른 새벽녘이라 냇가에는 아직 사람들의 그림자가 없었다. 이성계는 남대천 냇가의 모래톱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작정이었다. 얼음 녹은 물이라 차겁게 느껴졌지만, 대신 너무나 맑아 보였다.
이성계가 그렇게 한동안을 걷다말고, 문득 발길을 멈추어 섰다. 어디선가 빨래 방망이 소리가 들려오질 않았겠는가?
아니, 이 꼭두새벽에 누가 무슨 놈의 빨래를 한다는 겐가?
묘한 호기심에 사로 잡힌 이성계는 천천히 방망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큼 가다보니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반석들이 까만색을 띄우고 냇물 속까지 죽 깔려 있어서 빨래터로서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좀 더 다가가 자세히 빨래하는 여인을 지켜보던 이성계는 다시 한 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빨래를 하고 있는 여인은 뜻밖에도 젊은 아낙네가 아닌 백발의 할머니가 아니겠는가?
어흠!
이성계는 헛기침을 해서 인기척을 내주었다. 그러나 꼬부랑 할머니는 인기척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냇물로 그저 열심히 빨래질만 할 뿐. 이성계는 불현듯 그 할머니가 안쓰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느 전란에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된 여인이 죽지 못해 이날까지 구차한 생명을 부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이런 꼭두새벽에 손수 찬물에 손을 담그고 빨래까지 하시다니.
느낌으로 보아 할머니는 이성계의 인기척과 더불어 위안의 말도 들은 듯 했지만 그따위 잔소리는 듣기 싫다는 듯 방망이질만 계속 하려 들었다.
.
할머니, 제 말씀이 싫으십니까?
그때였다. 지금까지 이성계의 얼굴을 단 한 번도 흘겨본 적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할머니 입에서는 장군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장군은, 꼭두새벽 댓바람에 어찌 여기까지 나오셨는가?
이성계의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끼쳤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 얼굴 표정에는 신기()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예에?
 간밤에 꿈을 꾸셨던 모양인지?
아니? 이성계는 백발 노파의 뜬금없는 소리에 다시 놀랠 수밖에 없었다.
무당인가 보다! 이성계는 퍼뜩 그런 결론을 떠올렸다. 노파는 다시 태연한 모습으로 방망이질만 계속할 뿐이었다.
 할머니, 간밤에 제가 꿈을 꾼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성계는 자세를 낮추며 할머니의 다음 말을 기대했다.
길몽인 게야!
길몽이라뇨?
허허허, 이제 보니 할머니께선 예삿 어른이 아니신가 보군요?
이성계는 저 할머니는 무당이란 자신의 결론에 더더욱 확신을 해가면서 선웃음을 날렸다.
웃을 일이 아니야!
할머니는 신이 오른 무당이 함부로 내뱉듯이 위엄있는 어조를 잃지 않았다.
웃을 일이 아니면요, 할머니?
그러자 할머니는 힐끗 이성계의 얼굴을 한번 올려다 본 다음 팔을 뻗어 먼 산 봉우리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산! 아직도 희끗희끗 잔설이 남아 있는 저 산!
네. 그 산은 설봉산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설봉산. 거기 가면 토굴이 하나 있고 그 토굴에는 큰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셔. 그 어른이 신승()이야!
신승이라뇨?
도통한 스님!
아, 네에.
그 신승을 찾아가서 한번 물어 보시게나. 간밤의 꿈자리가 무슨 뜻인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멀리서 말 울음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은 이성계를 태우고 다니는 백마의 울음소리였다.
아니, 저놈이 왜 저렇게 울지? 고삐가 풀린 건가?
이성계는 얼른 발길을 돌렸다.
저런! 장군의 군마가 얼른 설봉산엘 가자는 게지. 미련하긴!
이성계는 등 뒤에서 중얼거리는 노파의 소리를 듣고 기가 막혀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이었을까? 할머니의 모습이 감쪽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가만! 지난 밤에 내가 잠을 설쳐서 이런 겐가? 이성계는 새삼 큰 눈을 부라리며 방금 할머니가 앉았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할머니도 빨랫감도 방망이도 사라진 그곳에는 여전히 차갑고 거울같이 맑은 냇물만 소용돌이 치며 콸콸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음-.
무엇에 흘렸다가 제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이성계는 얼마간 멍한 표정이 되어 한동안 그 냇가에 못 박힌 채 사방을 휘 둘러보고 있었다.

같은 날 설봉산 토굴 속.
큰스님. 오늘 새벽 차향은 기가 막힙니다요. 어서 한 잔 드소서!
새벽 예불을 마친 다음이었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원융스님은 그날 새벽에도 정성들여 차를 달여 왔다.
오냐, 원융이 너도 한 잔 마시자꾸나!
무학스님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무척 가벼운 듯했다. 두 스님은 차분한 자세로 앉아 차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차를 마시는 그 시간도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역시 시간이 정지되는 듯했다.
까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학스님은 못 들은 것 같았는데, 원융스님의 귀에는 분명 들린 것이다.
저 놈의 미물이 멍청하긴!
원융스님이 무심코 투덜거렸다.
왜?
저 까치 소리 말씀입니다요. 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 온다는데 이런 심산궁곡에 있을 법한 일입니까요? 헤헤헤.
원융스님이 헤픈 웃음을 흘리자, 웬일로 무학스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서면서 염불을 하려 들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비로소 원융스님은 마른 침을 두어 번 삼킨 다음에 입을 열었다.
큰스님, 한 말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요?
말해 보거라!
원융스님은 마른 침을 한번 더 삼킨 다음 서둘러 말을 이었다.
오늘은 큰스님께서 참 요상합니다요. 이른 새벽부터 토굴 안을 손수 소제하시고, 그리고 머리도 감으시고, 멱도 감으시고, 목욕재계로 말씀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요?
알아 들었다. 하지만 원융이 너는 몰라도 되는 일!
제가 알면 큰 일 난단 말씀입니까요?
뭐 큰일까지야 나랴만.
그럼 좀 일러 주십시오, 큰스님. 궁금해서 병이 날 지경입니다요.
멀리서 귀한 손님이 찾아 올 것 같느니라. 그 아니 반갑겠느냐?
이런 산중 토굴에 손님이라뇨?
허허허, 토굴이 어때서? 구경차 산중 토굴로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자고 찾는 것인데.
헤헤헤,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껏 누구 한 사람 찾아 온 적 있습니까요, 지나가는 약초꾼이나 땔나무꾼밖에는.
원융스님은 다른 일이면 몰라도 그 토굴 속으로 귀한 손님이 올 것이란 무학스님의 예견만은 가당찮은 것으로 치부하려 들었다. 따라서 원융스님의 눈에 무학스님이 싱거운 사람으로 비칠 공산이 컸다.

원융아, 우리 내기 하랴? 심심풀이 삼아서.
내기요?
그래, 어느 한 분. 귀인께서 이곳에 당도하실 게다.
귀인이라뇨, 큰스님?
그래애. 그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귀인 한 사람이 오늘 안으로, 해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당도하실 게야.
무학스님의 표정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만일 아무도 아니 오시면요?
허허허, 그때는 니놈 대신으로 내가 공양을 짓고 설거지도 하고 땔나무도 장만해야지. 그리고 원융이 너는 참선 공부에 들어가고 말야.
큰스님께선 점을 치셨군요.
간밤에 별자리를 읽었느니라.
천기를 보셨다구요? 나무관세음보살.

 

4. 거인들(1)

바로 그때였다.
토굴 바깥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말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어디서, 말울음 소리 아닙니까요?
원융스님은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도 무학스님에게 들은 바 있어 긴가민가한 모양이었다.
나가 보거라. 귀인께서 당도하신 모양이다.
무학스님은 평상시의 어조로 명을 내렸다.
예에, 큰스님.
원융스님은 가마니 출입문을 밀치고 토굴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실안개 감도는 설봉산 자락을 내려다보니 저 밑 산기슭에 낯선 백마 한 마리가 서 있었으며, 훤출한 키의 무장 한 사람이 듬성듬성 갓 피어나기 시작하는 진달래꽃 숲을 헤치면서, 토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과연 귀인인가 보다.
원융스님은 옷깃을 여미며 난생 처음 보는 그 무장을 맞을 채비를 했다.
이윽고 귀인(?)이 원융스님 앞에 당도했다.
어서오십시오. 어디서 오신 뉘신지?
원융스님은 합장배례를 하며 그를 맞았다.
큰스님 안에 계십니까?
계십니다만, 큰스님은 참선정진 중에 계십니다.
원융스님은 자기 자신의 호기심을 더해서 최소한 낯선 무장의 정체라도 파악하려 들었다.
음, 그럴테지. 매우 송구스럽고 외람된 말씀이나 안에 계시는 큰스님께 여쭈어 주시게. 무인 이성계가 스님을 뵙고자 이렇게 찾아왔노라고.
그 순간 원융스님은 토끼눈이 되었다. 그 유명한 이성계 장군을 직접 만나 뵙다니.
아니, 그 유명하고 지체 높으신 성자() 계자() 도원수 이장군님께서 말씀이오니까?
그렇소이다, 스님.
아, 네. 장군님!
하고 원융이가 몸을 막 돌리려던 참이었다. 토굴 속에서 무학스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원융아, 손님을 안으로 뫼시어라!
예. 예에, 큰스님. 헤헤헤.
이리하여 당대의 두 영웅 이성계 장군과 자초 무학스님은 설봉산의 토굴 안에서 첫대면을 하고 독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무학스님은 이성계라는 인물이 신흥 무장세력의 으뜸으로 장차 고려의 병권을 한 손에 거머쥐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무인인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성계는 토굴을 수소문해서 찾아오는 동안 그곳에는 무학 큰 스님이 수도정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무학스님이라하면 보우국사 태고화상과 나옹왕사 혜근 큰스님 뒤를 이어 장차 불교사상계와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될 인물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합장배례로 수인사를 마친 두 거인은 어두컴컴하고 습기 찬 토굴안에서 우선 차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상견례()를 마쳤다. 그들 두 사람은 이렇게 만나뵈어 반갑다는 말 한 마디로 번잡스런 말들을 죄다 물리친 상태였다.
원융이는 나가 있거라!
무학스님은 당장 이성계가 불시에 토굴까지 찾아 온 연유를 말하게 했다. 그는 공무에 바쁜 사람이 아니겠는가?
예, 큰스님!
원융스님이 눈치를 채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무학대사께서 이 산 속에 계실 줄은 까맣게 몰랐습니다. 찻잔을 받쳐들며 이성계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존경심을 내비쳤다.
부처님 제자로서 수행이나 할밖에 더 있겠습니까? 허허허.
무학스님도 어깨를 낮추며 맞장구를 쳤다.
이곳 토굴에 거하신 지가 오래되신 모양입니다 그려.
내년이면 10년 가까이 될 겝니다.
이성계는 생전 처음으로 말로만 들어 왔던 스님들의 수행처로서의 토굴을 찾아와 본 셈이었다. 가히 몸서리가 처질 만큼 극소화된 공간이었다. 어쩌면 생명부지 그 자체마저 의심스러울 정도의 생활도구들만이 눈에 띄었다. 아니 말을 타고 수많은 군졸을 거느리고 산이면 산, 들이면 들을 바람처럼 질주하며 살아왔던 이성계로서는 10년이 아니라 단 열흘도 그런 좁은 공간 속에서는 칩거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도()라!
이성계는 비로소 스님들이 추구하는 도의 경지가 과연 높고 귀한 것이구나 하는 느낌에 젖어들었다.
장군께서 이렇게 빈도를 찾아주신 뜻은?
무학스님은 이성계가 주삣주삣하면서 차마 말문을 터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망설임을 제때 포착했던 것이다.
예, 진솔하게 말씀드립지요, 대사님!
그제서야 이성계는 느닷없이 이 설봉산을 토굴까지 찾아오게 된 경위를 실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간밤의 꿈자리가 마음을 흔들기는 했지만 속으로 그냥 삭일 생각이었는데, 꼭두새벽에 남대천 냇가에서 노파를 만남으로써 결과 여하간에 이렇게 스님을 찾아 뵐 수밖에 없었노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설봉산 토굴 속에 다른 분이 아닌 무학스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나서는 지난 밤의 꿈자리가 결코 허망한 개꿈이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이 들더란 말도 덧붙였다.
무학스님은 이성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으나, 간밤의 꿈 내용밖에는 관심을 두려하지 않는 듯했다.
이야기를 마친 이성계가 무학스님의 얼굴만 응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가로 놓였다.
그러니까.
어느 사이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무학스님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헌 집이 무너져 내렸으며,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지고 나오다가 사방에서 흩날리는 꽃잎들하며, 거울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버리는 꿈을 꾸었다는 말씀?
웬일로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들려준 꿈의 내용을 일일이 한번 더 되짚어 보기까지 했다.
그렇습니다, 큰스님!
드디어 토굴 속에는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이성계로서는 무학대사의 해몽에 무조건 승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심리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무학대사의 말 한 마디에 자신의 운명이 판가름날 것만 같은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성계는 다시 한 번 뜻밖의 결과와 맞닥뜨려야만 했다.
무학스님이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정중한 자세로 합장을 한 다음 이성계에게 극진한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나무관세음보살. 문하찬성사 이성계 장군께 빈도 하례드리옵니다.
아니, 무학대사께서. 이 어인 뚱딴지 같은 일이십니까?
당황하다 못해 이성계도 엉거주춤 일어나 무학스님을 향해 합장 자세를 취했다.
장군님. 소승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이곳저곳에서 여러 집 닭들이 한꺼번에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장군께서 높은 자리에 오르실 징조입니다. 대개 닭 울음 소리란 깜깜한 어둠을 깨뜨리고 새 날의 새벽 광명을 알리는 희망과 기쁨의 소리가 아닙니까? 또.
무학스님의 어조는 사뭇 떨리고 있었다.
이성계는 숨을 죽였다.
낡고 썩은 초가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그 자리에 헌 집을 뜯어 내고 새 집을 다시 짓는다는 뜻입니다. 화가위국(), 사사로운 집이 변해서 나라가 되는 것입지요.
그런 다음 무학스님은 잠시 눈을 감고 머뭇거렸다. 무엇을 주저하는 듯했다.
그 다음은 또 무엇입니까?
이성계의 목소리에도 얼마간 흥분기가 섞여 있었다.
장군께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진 형국, 그게 무엇입니까? 한자()로 임금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랏님인 임금왕!
비로소 이성계의 몸에서도 경련이 일고 있었다.
임금왕()자라고? 등에 짊어진 서까래 세 개가, 그래, 그 그렇긴 하구만. 듣고 보니 임금왕 자야!
이성계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리고 꽃이 떨어지면 반드시 열매를 맺어 결실을 이루는 법. 세상만사 화려하게 꽃만 피우면 뭘 하겠습니까? 반드시 결실을 이루어 열매를 맺어야지요.
그렇다면 거울은 왜 깨어졌습니까?
장군께서 왕의 자리에 오르시자면 어찌 한두 사람의 거울만 깨어지겠습니까? 헌 거울이 깨져 버리자면 시끄러운 소리가 날밖에,,,

 

4. 거인들(2)

지난 밤을 뒤척인 까닭도 결국은 기울어가는 고려의 국운 걱정 때문이 아니였던가?


실로 기 막히는 순간이었다.
담대한 무학스님이 아니고서는 그토록 엄청나고 무서운 파천황()의 말을 입에 담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이성계는 모골이 송연해지면서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 내리고 뒷통수를 솜방망이로 한 대 얻어 맞은 듯 아득하기만 했다.
비록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세자 책봉 이전에는 감히 꿈을 꾸거나 넘보아서도 절대 안 되는 게 바로 보위가 아니었던가?
아니옵니다, 대사님. 시제 큰스님께서는 무엇인가를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까짓 꿈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헛 것일 뿐이지요. 그 같은 생각은 대역죄입니다. 천하의 대역죄고 말구요. 대역무도입니다. 언감생심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을.
나무관세음보살!
아무 소리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대사와 내가 잠시 헛소리를 주고 받은 것쯤으로 치부하겠습니다.
그러자 무학스님의 형형한 눈빛이 당혹감에 떨고 있는 이성계를 꿰뚫어 쏘아보고 있었다. 이성계는 자신의 몸이 지글지글 타 들어가다 못해 찢어지고 있는 듯한 고통 속을 헤매이고 있었다. 무학스님의 해몽이 그럴 듯해서만도 아니였다.
늙은 노파가 장군님을 예까지 인도하신 일 또한 예사롭지 않은 일. 소승이 감히 한 말씀 하자면 이제 누군가가 나서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다시금 반석 위에 세워 놓을 때입니다. 이성계는 순간적인 직감으로 어쩌면 자신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덫에 걸려 버린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 자고로 임금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일진데. 시방 하늘이 내려주는 명을 이 몸이 받고 있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관세음보살. 천기()를 누설해선 아니되는 것. 감히 말씀드리자면 빈도는 장군에게 천기를 누설하였음입니다. 하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부디 삼가고, 만사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4백 년 고려왕실은 그 국운이 다한 것입니다. 지금의 고려는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등불이며 서산마루에 걸린 낙조입니다. 그렇다면 새 나라 새 세상이 기필코 와야 합지요. 이 나라 이 강산과 피폐한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면.
이성계는 무학스님이 더 이상 설파()하지 않더라도 그 스님이 하고자 하는 말이나 뜻을 죄다 알 수 있었다. 지난 밤을 뒤척인 까닭도 결국은 기울어가는 고려의 국운 걱정 때문이 아니였던가?
문제는 하필이면 왜 내가 점지되어야만 했느냐 하는 그 점에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 그는 몹시 두렵고 무서웠던 것이다.
어느 새 이성계의 입 안은 바싹 타들어가 침이 말랐고, 일삼아 굳게 쥔 손이 후들후들 떨렸으며, 두근두근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이 막혔다.
그런데다 무학스님이 못을 박듯 한 마디 더 던졌다.
이장군께서는 모쪼록 대자대비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하늘의 정하심에 따르도록 하소서.
이성계는 한시 바삐 그 무서운 정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사님! 소관은 지금 시시로 출몰하는 저 왜구를 소탕키 위해 함주 땅으로 북상하고 있는 중이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남정북벌에 동서남북으로 공의 노고가 많으십니다. 이장군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이구요. 이성계는 무학스님이 덧붙인 뒷말로 인해 가슴이 뜨금함을 느꼈다.
이장군이 아니고서는 안 되는 일이라니.
부끄럽습니다, 대사님. 그렇다면 언제 다시 대사를 찾아뵈올 수 있을런지요?
허허허,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들녘에 자라는 풀 한 포기라도 속세의 인연이 아니면 서로간에 맞닥뜨릴 수 없는 일인데 무얼 그리 염려하십니까, 장군?
장차 오래오래 두고두고 대사님의 친절한 가르침과 영명하신 지도를 받고자 하옵니다.
인연이 닿는다면 그렇게 되겠지요.
외견상으로 볼 때 당대 두 거인의 만남과 헤어짐은 너무나 가벼고 단순한 것이었다. 이성계가 토굴을 찾아와 차 한 잔 마시고 뒤돌아선 일이 전부라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그들은 생사를 초월한 차원에서 천기를 떠올렸고, 국운을 논했으며, 왕()을 화두()로 삼은 셈이었다.
예, 원융아, 원융이 밖에 있느냐?
무학스님과 이성계가 토굴 속에 있을 때, 원융스님은 솥을 걸어둔 바위굴 속에 가 앉아 있었다. 두 거인들의 화두가 과연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이 일어 좀이 쑤시기는 했지만 그들의 말을 엿듣기 위해 차마 토굴가에서 기웃거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학스님의 호명을 듣고 원융스님이 쫓아왔다.
도원수 장군께서 산을 내려가신다. 저 아래까지 장군님을 모시도록 해라!
하념마소서, 대사어른!
이성계가 오른손을 내저었다.
장군님, 이렇게 가까이서 장군님을 뵙게 되었으니 소승은 거듭거듭 광영이옵니다. 헤헤, 어서 가시지요!
이윽고 이성계가 하산을 했을 때, 무학스님은 한참 동안 합장배례를 하고 있었다.
무학스님과 이성계가 설봉산 토굴 속에서 대좌()했던 이 때로 말하면 1384년 우왕 10년의 일이었으며, 전라도 남원땅 지리산에서 왜장을 사살, 황산대첩이란 전공을 세운 지 만 4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로부터 8년 뒤에, 이성계는 고려를 허물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여 태조가 되었던 것이다.
훗날 이성계는 그 설봉산 토굴터에 석왕사()란 절을 창건하고 5백나한을 모시는 등 큰 불사를 일으켜 무학스님에게 크나큰 빚을 갚았던 것이다. 석왕사란 절 이름이야말로 곧 태조 이성계의 왕자() 꿈을 해몽했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설봉산에서의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와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고 낡은 고려를 뒤엎어서 5백 년 조선 왕조의 창업을 마련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한편 큰 인물일수록 많은 전설을 남기는 법.
태조 이성계와 무학스님의 첫 상봉이 과연 언제 어디서냐하는 설에 대해서도 이론()이 분분하기 짝이 없다.
이를테면 풍수지리상이 전설에 의하자면 무학스님은 나옹화상과 함께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 공의 묘자리를 손수 잡아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조 개국 이후 이자춘은 환조로 추존되었을 뿐만 아니라, 함경도 함흥땅에 있는 이자춘의 묘자리가 정능명당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것.
그렇다면 이자춘 공이 과연 언제 유명을 달리 했던가? 바로 공민왕 10년 서기 1361년이었다. 그러니까 무학스님이 설봉산에서 임금 왕()자를 해몽했다는 때로부터 무려 23년 전이다. 그런데 그 23년동안 이성계와 무학스님의 인간관계 행적은 실제로 전무한 상태였다. 따라서 함흥 정능의 명당론은 두 거인의 밀접한 인간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후세의 사람들이 꾸며낸 견강부회()일 것이다.
더구나 또 다른 풍수전설에 의하자면, 무학스님께서는 이자춘 공에게 아들 이성계의 출생을 예언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불과 여덟 살. 어린 여덟살짜리 무학스님이 이성계의 출생설을 예언했다니. 한마디로 이성계의 족보의 신비화와 신격화를 위한 엉터리 조작설이었던 것이다.

 

5. 천기(天氣)(1)


설봉산? 뭐 호랑이라도 한 마리 잡으셨습니까?
호랑이? 허허허. 호랑이가 아니고, 귀인 한 분을 만났네.


그 날 아침에는 퉁두란도 정해진 시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어인 일로 간밤의 꿈자리가 무척 뒤숭숭했던 것이다.
수만 명이 왜구가 몰려오고, 그들과 맞붙어 대패()라도 하려나.
그는 이런 방정맞은 예감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나이 탓인 게지!
그는 잠자리에서 뛰쳐 나와 몸통을 비틀고 팔다리 운동을 하면서 새로 맞이하는 오늘에 맞설 기운을 모으려 들었다.
그리고 그는 아침 인사차 이성계가 거했던 막사로 갔다가 텅 비어 있는 그의 잠자리를 발견했다.
아니, 나도 모르게 아침 일찍 어디로 가신 게야?
퉁두란은 뒤숭숭했던 간밤의 꿈자리 뒤끝이라 괜히 또 불길한 예감에 사로 잡혀 입맛을 쩍쩍 다셨다.
초병들에게 물어보아도 이성계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성계 장군이 안 계시니 그 분이 하실 일을 대신해야 할 사람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퉁두란은 병사들을 기상시켜 서둘러 행군준비를 독려했다.
그런 일을 해나가면서도 그는 이성계의 행방이 오리무중임에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이성계의 명성은 너무나 자자해, 어느 고을에 주둔을 하고 보면 그 고을 토호나 유지들은 성심껏 그를 모시고 후한 대접을 하려 든 예가 많았다. 그러나 이성계는 원칙적으로 사사로운 대접을 받으려 들지 않았다.
그때가 어느 해 여름이었던고?
퉁두란은 불현 듯 어느 해 여름에 있었던 눈물 겨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막사 안에서 퉁두란과 이성계는 심심파적으로 장기를 두고 있었다. 퉁두란이 이성계가 부른 외통수 차()장에 걸려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데, 주둔지 경계 한 곳에서 소란스러움이 일더니 한동안 그칠 줄을 몰랐다. 초병의 목소리도 들렸고, 아낙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은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님,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장이나 받고 나가게나.
나갔다와서 이 장을 살려 높겠습니다.
이 장을 살려놓고 나가 보라니까!
그때 병사 하나가 들어와 바깥이 소란스런 경위를 보고했다.
그래, 무슨 일인고?
이성계가 묻자 사병이 자초지종을 털어 놓는데 듣고 보니 기가 막혔다.
어느 아낙이 이성계에게 드리고 싶다며 소반 위에 밀가루로 빚은 칼국수 한 그릇을 얹어 왔는데, 초병이 그걸 받는 건 군율을 어기는 일이라며 아낙네에게 돌아가라고 하자 그 아낙네는 그냥은 못 돌아가겠다며 버틴다는 것이었다. 아낙네는 이건 칼국수가 아니라 정성이요, 존경심인데 무슨 군율이 백성들의 정성과 존경심을 뿌리 칠 수 있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그 아낙네 말이 맞구먼!
이성계의 그 말 한 마디로 인해 얼굴도 모르는 아낙네가 빚은 칼국수 소반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칼국수 한 그릇이 놓인 소반을 받아놓고 이성계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뚝뚝 흘렸던 것이다.
물론 이성계는 그 칼국수를 먹지 못한 채 친필로 감사의 편지 한 장을 담아 아낙네의 소반을 되돌려보냈다.
그 칼국수 아우가 먹고 기운을 내서 차장이나 받으라고.
이성계는 퉁두란에게 이런 명만 내렸다.

이성계가 안변천으로 돌아왔을 때, 퉁두란은 군사를 발진시킬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고 있었다.
어느덧 반나절은 되어버린 시각이었다.
그런데 퉁두란의 눈에 비친 이성계의 얼굴빛은 너무나 이상했다.
우리는 또 북쪽으로 발진을 해야겠지?
이성계는 퉁두란의 얼굴을 대하면서 대뜸 이런 소리만 했다.
필시 무슨 일이 있긴 있었는데?
퉁두란은 이날따라 이성계에게 너무나 낯설게 느껴져서 조반은 드셨느냐, 어디갔다 오셨느냐 하는 등의 극히 일상적인 물음조차 던질 수가 없었다.
어제 저녁 장군께서는 내일 날이 밝자마자 행군하기로 작정하셨는데 지금 시각은 반나절이나 되었으니 어찌된 일이냐 식의 질문은 더더욱 할 수가 없을 만큼 이성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네, 장군님!
사병들 점호는 마쳤는가?
네, 이상 없습니다.
음, 함주 백성들이 목을 빼고 기다릴 텐데, 좀 늦었지. 내가 어디를 좀 다녀오는 바람에.
이성계는 사병들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퉁두란의 보고를 접하고서야 한숨을 돌리듯 얼마간 여유를 내비쳤다.
퉁두란이 그제서야 그 연유를 따지고 들었다.
장군님, 한말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구료.
그러자 퉁두란은 활을 쏘듯 궁금증이란 과녁의 중심부를 향해 살을 날렸다.
꼭두새벽에 어디를 가셨더랬습니까? 아무 말씀도 아니 주시고?
으음. 그럴 일이 있었소!
이성계는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살짝 몸을 피하듯 말꼬리를 돌리기만 했다.
아무리 찾아도 뵐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숙위()를 했던 군졸들한테 물어봤지만 눈만 멀뚱멀뚱 꿀 먹은 벙어리 꼴이고 말씀입니다.

이성계가 마음을 사리자, 퉁두란이 다시 너스레로 역공을 감행했다.
사실은 숙위를 하던 군졸들을 잡아 족칠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이놈들아, 네놈들은 장군님을 잃고서도 어찌 그리 무사태평으로 잠이나 처자빠져 잘 수 있느냐하구요.
물론 이성계는 짐작하고 있었다. 적어도 퉁두란에게만은 최소한 궁금증이라도 풀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아닌말로 퉁두란이 토라지는 날이고 보면 이성계 자신의 마음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을 일이었다.
산에 좀 갔다왔네.
아니, 산엔 왜요? 뜬금없이?
퉁두란은 기어코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의 일면을 여실히 나타냈다.
저쪽 산에, 설봉산!
설봉산? 뭐 호랑이라도 한 마리 잡으셨습니까?
호랑이? 허허허. 호랑이가 아니고, 귀인 한 분을 만났네.

 

5. 천기(天氣)(2)

 

이성계가 임금의 운명을 점지 받았다는 사실은 혼자만이 간직해야 한다는 약속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물론이고 여타 피붙이에게도 감히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귀인이라뇨? 그 산 속에 절세 미인이 살고 있었습니까?
예키, 이사람. 못하는 소리가 없구만. 전장에 나가는 마당인데.
산 속에서 귀인이라니 아귀가 맞지를 않는단 말씀입죠.
아우가 한 번 맞춰 보시게나.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났겠는가?
산신령이라도 뵈었습니까?
산신령? 하하하 그래애. 비슷한 분이었네. 흡사하단 말씀이야.
헤헤, 산신령님도 아니고, 그렇다면 사람귀신인 모양인데?
그래. 도를 깨치신 어른이니까 사람귀신이고 말고. 허허허, 산 속에서 수도하고 있는 도인을 만나신 모양이군요.
자네가 족집게로 알아 맞췄네. 영락없이 그러하이. 허허허, 나는 오늘 새벽에 설봉산에 계시는 무학대사를 만나 뵈었네. 이만하면 됐는가?

이성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어 그들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봄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색 군기()를 앞세우고 이성계와 퉁두란은 말을 탄 모습으로 나란히 걸어 가면서, 길다란 병사들의 행렬을 이끌기 시작했다.
무학대사라, 무학대사라면 나옹 큰스님의 제자이신데, 형님이 무슨 일로 그 분을 뵈었을까? 형님이 그 분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면 나도 알았을 텐데.
행군을 하는 데도 퉁두란의 머리 속에는 자꾸만 의문 부호가 날아와 박혔다. 어느 틈을 찾았는지 퉁두란은 마상대화()를 시도하려 들었다.
장군님, 무학대사라면 연전에 열반에 드신 나옹화상님의 수제자 아니십니까?
나도 그 무학스님이 설봉산에서 참선 중인 줄은 몰랐었네. 천만 뜻밖이었어.
말을 하다보니 이성계는 퉁두란의 궁금증을 다시 한 번 부풀린 셈이었다.
연변 들판에 나와 있던 농부들이 이성계의 행렬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요, 장군님?
뭐가 그래서인가?
무학대사님이 그 곳에 계시는 줄을 몰랐는데, 어떻게 그 분을 별안간에 찾아가 뵐 수가 있었으며.
있었으며?
무슨 말씀을 나누셨느냔 말씀입니다.
아아, 아닐세. 말씀은 무슨 말씀!
소인이 알아서는 아니되는 일이오이까? 이 아우도 알아서는 안되는 일?
퉁두란은 오금을 들이박듯 토라지는 척했다.
으음. 아무 일도 아니라네. 처음으로 가까이서 만나 뵈었으니 수인사하고 겨우 몇마디 나눴을 뿐이라네.
그러자 퉁두란은 불퉁한 표정이 되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성계도 가슴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렁뚱땅 몇 마디 말로써는 퉁두란을 납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우님 입에 거미줄 쳤구만!
이성계가 미소를 보내며 침묵을 깨트렸다.
소인 대단히 섭섭합니다요. 장군님 모신 이래 소인 퉁두란이가 모르는 일이 한 가지나 있었습니까? 이제부터 한 마음 한 뜻으로 살지 말고, 두 마음 두 뜻으로 살아가십시다, 장군님!
비대한 몸짓을 가진 퉁두란이 마치 철부지처럼 앵돌아져 투정을 부리듯 하니 이성계도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긴요. 오늘 새벽에 일어나 보니 장군님이 딴 사람으로 돌변했는 걸요. 마음이 실리지 않은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제가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러했다. 퉁두란을 납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사실을 고백하는 길뿐이었다. 사실을 덮어두고서는 피차간에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이성계가 간직한 사실은 화약보다 더 무서운 폭발력을 지닌 하늘의 비밀이었으니.
이성계가 임금의 운명을 점지 받았다는 사실은 혼자만이 간직해야 한다는 약속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물론이고 여타 피붙이에게도 감히 발설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퉁두란!
네에!
너무 야속타 생각 말게. 아무리 야속해도 겨울 산 속의 얼음은 녹지를 않는 것일세. 아무리 야속해도 겨울에는 저 참꽃이 피어나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일세. 암, 봄이 되야 저렇듯 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나는 거지. 아우님이 당장은 궁금증을 접어 두시게. 내 약조를 함세. 언젠가 때가 되면 내가 죄다 털어놓겠네. 오늘 내가 자네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한 까닭. 그래서 말일세만, 역시 귀중한 게 믿음인 걸세. 아우님이 형을 믿어만 준다면 그만인 걸세.
이성계의 이런 말에 퉁두란은 가까스로 마음을 돌렸다. 그는 이성계의 진심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굳이 알고 싶지가 않습니다요, 하하하. 군 행진은 별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그 행렬이 어느 산모퉁이를 휘돌아 갈 때, 사소한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행렬이 가야할 길을 앞서 나아가 사위를 살피는 전초병에게서 수상한 사람 둘을 발견했다는 전갈을 접했던 것이다.
전초병의 보고에 의하면 저 앞에 있는 야산 꼭대기 노송 아래에 어찌 보면 거렁뱅이 같고 어찌 보면 승려 같기도 한 두 사람이 서있는데, 그들의 태도가 매우 수상쩍어 보인다는 것.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한 눈에 이쪽을 살펴 볼 수가 있는 위치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 사람들의 거동은?
퉁두란이 바싹 긴장하며 전초병에게 되물었다.
네. 처음에는 무슨 바윈가 했습니다요. 노송 아래 큰 바위 옆에 서서 두 손을 앞에 모우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우리 행렬을 지켜보려 들었습니다요.
그때 이성계는 펏뜩 그 분들은 무학스님과 시봉하시는 분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군님, 필시 우리를 정탐하는 놈들 같습니다요.
정탐꾼?
그렇죠. 우리 군세를 몰래 살펴서 왜구와 밀통하는 놈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장군님. 이 삶이 모처럼 활솜씨 한번 발휘해 보겠습니다요. 화근이 될만한 건 미리 싹부터 잘라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아니야, 아니야, 그 사람들은!
이성계는 오른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아니면?

 

5. 천기(天氣)(3)


관세음보살. 빈도는 천기를 이야기하고 있음이오. 천기를 누설해선 안 되오. 대자대비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하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부디 삼가하고 만사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강산과 피폐해진 백성을 위해서.


그 사람들 모습이 스님이 합장을 하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했겠다? 모르기는 해도 우리를 잘 알고 있는 스님네가 우리들의 무운장구를 기원해 주고 있을 게야.
이성계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장군님 추측이 틀린다면요?
퉁두란은 그날따라 이성계의 태도가 이전 같지 않아 몹시 불안하기까지 해서 토를 달았다.
내가 언제 틀린 추측이 틀린다면요?
퉁두란은 그날따라 이성계의 태도가 이전 같지 않아 몹시 불안하기까지 해서 토를 달았다.
내가 언제 틀린 추측을 했던가?
그렇긴 합니다만.
퉁두란은 마지못한 듯 승복의 자세를 취했다.
전초병! 전초병은 뒤따르는 병사들에게 전달하여라. 스님 두 분이 우리들의 무운을 빌고 있으니, 절대로 그 분들을 해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이성계의 명령은 즉각 전 병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전초병의 보고는 사실이었다.
솔숲이 우거진 야산 능선 위에 서 있는 노송 아래 바위 틈새에는 거뭇거뭇한 모습으로 두 스님이 합장배례를 하고 서 있었다. 사냥개 눈을 가진 전초병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모습이 사람의 모습인지 아니면 늘 거기 서 있는 바위 모습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운 위치였다.
순간 이성계는 무학스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관세음보살. 빈도는 천기를 이야기하고 있음이오. 천기를 누설해선 안 되오. 대자대비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하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부디 삼가하고 만사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강산과 피폐해진 백성을 위해서.
이성계는 마음속으로 화답을 하려 들었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하늘의 명이라면 제 어찌 감히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이 사람의 야욕이나 헛된 망상이 그런 꿈을 꾸게 된 건 아닌지 그게 매양 두렵습니다.

이성계의 추측은 사실과 같았다.
병사들의 행렬을 지켜보며 합장배례를 올렸던 두 사람의 스님은 무학스님과 원융스님이었다.
그들은 이성계가 이끄는 부대의 행진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들의 무운을 빌어 주었다.
이윽고 부대 후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들이 간 방향의 하늘 위에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큰스님, 큰스님!
무심한 산새 소리만 요란한 솔숲 속에 아직도 합장한 모습으로 바위처럼 서 있는 무학스님을 보다 못해 원융스님이 잠든 이를 깨우듯 소리쳐 불렀다.
무슨 일이냐?
무학스님이 나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성계 장군님의 부대가 사라졌습니다요.
그러냐? 그렇다면 우리도 움직여야겠구나!
네. 큰스님!
비로소 그들의 발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야산에는 노란 산수유 꽃도 많았고 진달래 꽃도 많았다.
아니, 큰스님! 왜 그 길로 접어 드십니까요?
그들이 산을 내려 왔을 때였다. 무학스님이 설봉산 토굴로 향한 길을 마다하고 반대편 길로 접어 들고 있었다.
이 길도 한번 가 보자꾸나!
설봉산으로 아니 가시려구요?
설봉산이 그리 좋으면 니놈은 그리 가거라!
헤헤헤.
원융스님은 그제서야 무학스님이 설봉산에서의 참선수행을 끝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장장 9년 만의 하산이었다.
헤헤헤. 울긋불긋 펄럭이는 깃발하며 이장군님 군대가 근사하고 멋있었습니다요. 아주 믿음직스럽고, 큰스님께선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래. 병사들의 대오가 정연하고 엄숙해 보이더구나. 그래서 군기가 엄정하고 사기도 드높아 보였고.
어쨌거나 무학스님은 이성계 장군 부대를 한번쯤 넌즈시 살펴보고 싶어했었다. 무인 이성계의 사람 됨됨이와 그 그릇의 크고 작음도 가늠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요, 큰스님. 전 좀 전에 식은 땀께나 흘렸습니다요. 전초병이랬나. 부대 맨 앞에서 사위를 살피던 병사들 있었잖습니까? 그 병사들 눈에 저희가 들킨 것 같았거던요. 그래서 전초병 중의 한 사람이 이성계 장군에게 가서 뭐라고 보고할 때, 그때 만약 이성계 장군님이 수상해 보이면 없애라는 명령 한마디만 내렸다면 저희는.
저희는?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죽어 갔을 것 아닙니까?
죽을까봐 겁이 났단 말이냐?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이놈아, 아니긴 뭐가 아니란 말이냐? 나도 죽을까봐 겁이 나서 오줌까지 쌌구만!
에이, 거짓말 마세요, 큰스님. 제가 봤는데요, 큰스님은 편안한 모습이던걸요.
네가 헛 것을 본 게지! .
원융스님은 입을 악다물었다. 무학스님이 힘 하나 안 들이고 아무렇게나 척척 대답하기 시작하면 헷갈려서 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두 스님은 한동안 묵묵히 봄 길을 걷고 있었다. 원융스님은 그냥 무학스님의 꼬리가 되어 따라 가고 있는 셈이었다.
큰스님!
왜?
저, 이성계 장군님이 아시기나 했을까요?
물론 아셨을 게다. 원융스님은 또 깜짝 놀라 두 눈을 깜빡거렸다. 무학스님의 대답이 너무 앞서 나왔으니 말문이 막힌 꼴이 된 것이다.
큰스님. 큰스님께선 제가 무엇을 물어 보려 들었는지.
알아, 이놈아!
헤헤헤.
내가 대답해 봐? 니놈 이렇게 묻고 싶었지? 저 이성계 장군님이 아시기나 했을까요? 저희가 합장배례하고 무운을 빌어 준 일.
네에, 스님!
좀 전에 니놈 이런 생각을 했었지? 와, 우리 큰스님 도사 다 되셨네.
헤헤헤.
원융스님은 새삼스레 자신의 존재란 건 무학이란 부처 손바닥 위에 올라앉은 원숭이 꼴이란 걸 깨달았다.


 

6. 민심(1)

이성계 장군께서 다음 난리를 맞아 싸우다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는 꿈을 꾸었나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백전백승의 명장인 이성계 장군도 다음 난리 평정에서는 참패를 당하시거나. 원융스님으로서는 그런 식의 가상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무장으로써 이성계는 불패를 모르고 승승장구 해왔으니 더 이상 무슨 길몽을 기대하랴 싶었던 것이다.


무학스님과 원융스님은 쉬엄쉬엄 걷고 있었다. 걷다가 목 마르면 샘물을 찾아 갈증을 해소하고, 걷다가 또 허기를 느끼면 눈에 띄는 민가를 찾아가 합장배례하고 요기하는 식이었다. 고려는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이므로 승려에 대한 대우가 아직은 높았다.
그러나 무학스님의 마음 한편은 무겁기만 했다. 헐벗고 가난한 백성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연민의 정이 되살아났고, 왕실의 무능함과 부패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성계가 이끄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깝고 안쓰러움을 느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있는 병사들이건만 배불리 못 먹이고 제대로 입힐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헌 집인 게야, 헌 집!
한 마디로 무학스님은 고려 왕조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도 찾을 길이 없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낡고 썩어서 빗물이 줄줄 새는 헌 집이라면 그걸 마땅히 헐어내고 새 집을 지어야 하는데, 어느 누가 그런 큰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성계, 이성계, 이성계가?
무학스님은 이성계를 진작부터 마음에 둔 바 있었다. 때마침 설봉산에서 그를 만나 해몽까지 해주게 되어 마음이 더욱 기울고 있었지만 헌 집을 뜯어내고 새 집을 짓는다는 그 일이 너무나 막중해서 자꾸만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최영 장군이면 어떨까?
무학스님은 이성계보다 앞서 있는 최영 장군에 대해서도 웬만큼 알고 있었다.
아니야, 그 분은 너무 깊이 왕실과 인연을 맺은 분이야. 왕실처럼 너무 늙었어. 문제는 헌 집을 허무는 게 아니라 새 집을 짓는 것이 아닌가?
무학스님은 나른한 봄 햇살을 받고 걸으면서도 내심 치열한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이랴, 낄낄! 이랴, 이랴!
농부가 늙은 암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눈여겨 보니 늙은 암소는 밭갈이가 힘이 부치는지 농부의 채근이나 고삐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물거리기만 했다.
농부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혼자 궁시렁거렸다.
야, 이놈 소야, 너 믿고 있다가는 파농하겠다. 다음 장날에 당장 팔아 치워야지 안 되겠어!
무학스님은 고개를 끄득였다. 기()가 다한 소만 믿고 있다가 농사를 망치면 일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법.
큰스님!
저 혼자 무슨 생각에 빠져 한동안 잠잠하던 원융스님이 무슨 일로 또 말을 걸었다.
무학스님은 힐끗 고개를 돌려 원융스님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속에서 가만히 보니 원융스님의 모습이 까실까실하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제발 이제 그만 속가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일었다.
무슨 일이냐?
한 말씀 여쭤도 되겠습니까?
두 말씀이라도 여쭤보시거라!
저.
원융스님이 뜸을 들였다.
.
이성계 장군님께서 큰스님을 찾아 뵙고.
무슨 말씀이 오갔느냐고?
무학스님이 앞질러 주었다.
네에!
뭐랄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좀 했느니라!
소승이 알아서는 안되는 일입니까요?
그런 건 아니고, 이장군이 무슨 꿈 얘기를 늘어 놓으며, 날더러 해몽을 해달라는 게야!
꿈 해몽을 말씀입니까? 그래서, 이장군님께서는 그 험한 산골짜기까지 찾아오셨더랬습니까요?
원융스님은 좀체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두 눈알을 굴렸다.
듣고 보니 심히 요상하고 별난 꿈을 꾸셨더구나!
별난 꿈이요, 큰스님?
니놈도 궁금해졌냐?
이장군님께서는 대체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요?
그러자 무학스님이 버럭 큰소리를 내질렀다.
에끼, 이놈! 주장자로 니놈 대갈통을 내려칠까 보다!
원융스님은 순간적인 반사 행동으로 두 손을 들어 머리통을 싸쥐며 엄살을 부렸다.
아이고, 아이고 큰스님. 제가 실언을 했사옵니다.
허허허.
무학스님의 웃음 소리와 대갈일성()에 놀란 듯 산길 숲속에 숨어 있던 장끼 한 마리가 푸르륵 허공 속으로 날아 오르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음, 저기 날아가는 저 꿩을 니놈이 잡아 오너라. 그럼 내가 자세히 일러 주마!
꿩은 잡아서 뭣에 쓰게요, 큰스님?
또 배가 고프고 시장하잖냐? 불 피워 놓고 오붓하게 구워 먹자꾸나. 꿩고기가 닭고기보다 더 맛있단다.
무학스님은 천진스레 입맛까지 다셔 보였다.
에이, 큰스님도.
뭔지는 나 모르겠고, 니놈이 저 꿩을 못 잡아 오겠다면 나도 그 분 꿈 이야기를 너한테 들려 주지 못하겠구나!
그만두십시오, 큰스님. 남의 꿈 이야기 듣겠다고 저도 살생까지는 못하겠습니다요.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도 원융스님의 표정 위에는 섭섭함이 묻어나 있었다.
원융아!
무학스님의 목소리가 다시 평상심에서 울려 나왔다.
네!
그 분의 꿈 이야기, 아직은 아무한테도 발설 못하겠구나. 머잖아 원융이 너한테는 일러 줄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 나무관세음보살!
네!
원융스님은 혼자 미루어 이렇게 짐작했다.
이성계 장군께서 다음 난리를 맞아 싸우다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는 꿈을 꾸었나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백전백승의 명장인 이성계 장군도 다음 난리 평정에서는 참패를 당하시거나.
원융스님으로서는 그런 식의 가상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무장으로써 이성계는 불패를 모르고 승승장구 해왔으니 더 이상 무슨 길몽을 기대하랴 싶었던 것이다.
원융스님이 혼자 이런 생각에 젖어 걷다 보니 무학스님이 어느새 오 리 길이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큰스님. 큰스님!
원융스님은 뜀박질을 해서 무학스님의 뒤를 밟아야 했다.
어느 때 보면 무학스님의 몸과 마음은 자유자재 허공 중에서 노니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지난 9년 동안의 수행 정진으로 말미암아 그는 보다 높고 넓은 무심()의 경지를 달통하신 것 같았다.
그들의 앞길에 개울 하나가 가로 놓여 있었다. 냇물이 맑아 버들치와 피라미 같은 민고기가 한가롭게 유영하는 모양이 훤히 비쳤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긴 했지만 원융스님이 볼 때 무학스님이 건너뛰어 가기엔 무리일 것 같아 보였다.
큰스님! 제 등에 업히십시오.
무학이 두 다리는 엇다 쓰려고?
큰스님이 건너가시기엔.
건너다 넘어져도 익사하진 않을 것 같다.
하며 무학스님은 징검다리를 건너 뛰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익숙해 깜짝 놀라 도리질을 했다. 장장 9년간이나 토굴 속에서 정좌를 했던 사람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원융스님이 징검다리를 건너다 발을 비끗해 물에 빠졌다.
쯧쯧쯧! 니놈이 내 등을 탈 걸.
무학스님은 계속 걸어가려고만 했다. 뒤따르던 원융스님이 땀을 흘리다못해 지쳐 버릴 지경이었다.
큰스님, 저희는 지금 어디로 행하고 있사옵니까?
산속 중의 운수행각()을 너는 모르느냐?
그래도 그렇습지요. 우리가 가는 길은 남향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물 따라 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좋지 않으냐?
세상만사 천하태평이라면야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마는.


 

6. 민심(2)

이성계 장군께서 다음 난리를 맞아 싸우다가 부상(?)이라도 당한다는 꿈을 꾸었나보다. 그것도 아니라면 백전백승의 명장인 이성계 장군도 다음 난리 평정에서는 참패를 당하시거나. 원융스님으로서는 그런 식의 가상밖에 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무장으로써 이성계는 불패를 모르고 승승장구 해왔으니 더 이상 무슨 길몽을 기대하랴 싶었던 것이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무학스님이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쳤던 탓인지 원융스님도 은근히 나라 걱정을 하는 듯했다.
누가 세상이 천하태평 아니라고 하더냐? 왜구들이 이따금 노략질을 하지만 이성계 장군이 잘 막아 주고 있질 않느냐?
민심이 흉흉합니다요. 민가에서 떠도는 소문들을 들었는데 시제 왕실은 그 기운이 쇠했다는 말 뿐이었습니다요.
.
그러면서 머잖아 천지가 개벽할 거라면서, 큰스님. 그런 예언들이 참말로 맞아 떨어지는 거 아닙니까요?
대체 누가 그런 소리들을 하더냐?
도참비기설()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그러던데요? 고려 왕씨 운세는 이쯤에서 끝날 거라구요.
민심이 천심이니 민심이 떠난 왕조라면 볼장 다 본 게지!
원융스님은 모처럼 무학스님이 자기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을 해주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원융아.
네!
시방 니놈은 어디로 행하고 싶으냐?
큰스님 따라, 소인도 발길 닿는 대로이죠. 뭐.
허허, 니놈이 이제 늙은이를 놀리기까지 하기냐? 내가 앞서 했던 말을 따라서만 하다니.
저도 압니다요.
니놈이 알다니? 니놈이 뭘 알아?
시방 큰스님이 찾아 가시는 절요.
안다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이냐?
양주에 있는 회암사죠.
뭐라구? 양주에 있는 회암사? 내가 왜 그 절로 가고 있다더냐?
왜냐하면 연전에 나옹왕사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에 큰스님께서는 찾아뵙지 못하지 않았습니까요?
허허, 참선 수행은 내가 했는데 도는 니놈이 먼저 텄나보다. 양주에 있는 절이 회암사인 줄을 니놈이 먼저 알고. 이놈이 족집게 귀신이 되었구나!
헤헤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토굴 중 9년이면 족집게 귀신이 되나봐요, 큰스님!
악의 없는 두 스님의 허허로운 웃음이 강원도 산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고려말의 대선사요, 무학스님의 직계 스승이었던 나옹 혜근스님은 우왕 2년 서기 1376년 5월에 세상을 떠났었다.
당시 무학스님은 설봉산 토굴에서 참선 수행 중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때에 나옹선사의 입적 소식을 접하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나옹 큰스님의 다비식까지 끝난 다음에야 원융스님을 통해서 귀동냥으로 비보를 접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옹선사는 워낙 그 명성이 높았으므로 풍문으로 그의 열반 소식이 방방곡곡으로 전해졌기에, 양식 구하러 아랫마을에 내려 갔던 원융스님의 귀에까지 전해졌던 것이다. 또 원융스님은 그때까지만해도 무학스님과 나옹스님과의 관계에 대해 그 깊이를 모르고 있던 중이었다.

헤어진 뒤 따로이 헤아릴 곳 있나니 뉘라서 그 속마음의 현모함을 알리요. 뭇 사람들이 아무리 옳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대가 공겁전()을 꿰뚫었다 하노라.
이제 무학스님은 나옹 큰스님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회암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아니, 무학스님은 나옹선사를 친견()하려 황해도 해주에 있는 신광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무학스님이 신광사 경내로 들어서자 그를 본 대중들이 무학스님을 알아보면서 저희들끼리 쑥떡거리기 시작했다.
음.
무학스님은 당장에 자신을 향한 뭇 스님네들의 시선이 꼬갑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나옹선사 아닌 다른 대중들 중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자기를 반길 것 같지 않다는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 당시 딴엔 내노라하는 스님이라면 누구나 나옹선사에게 인정을 받고, 가능하다면 그의 법통()을 이어 받고자 애를 쓰던 중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옹선사에게 인정만 받고 보면 당장 큰스님 행세를 할 수가 있는 입장들이었다.
따라서 거의 한 평생을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던 나옹선사였지만 그 나옹선사가 잠시만 머무는 절이라면 당장 수많은 납자()들이 몰려들어 그를 에워싸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옹선사는 웬만한 스님네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터놓고 마음을 열어 주려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옹선사는 무학스님에게만은 분에 넘치는 마음을 전해주곤 했었다. 스님네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나옹선사 앞에서라면 무학스님은 절로 시샘의 대상이 되어 있었던 것.
수많은 눈총을 받아 가며 가까스로 나옹선사 앞에 나아가 예를 올린 무학스님은 차 한 잔 비우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었다.
그때 나옹선사가 무학스님의 두 손을 꼬옥 잡으며 조용히 일러 주었다.
무학스님은 내 뜻을 아시겠는가? 할 일 없고 어리석은 중들이 아심()을 일으켜서 시시분분하고 망설()들이 많아. 해서 법을 전하는 징표로서 가사와 바리때를 주기 보다는 내가 이렇게 게송()으로 몇 자 적어주는 것이니 훗날에 이르러 아무런 의혹이 없기를 바라는 바네.
그 날 무학스님은 나옹선사에게서 게송 한 수를 받을 수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큰스님!
여느 스님들과는 달리 무학스님은 나옹선사의 인정을 두려워하는 편이었다.
만약 무학스님이 그릇이 적고 속좁은 인물이었다면 이리 오래전부터 내가 바로 나옹선사의 법통을 이은 고승이오하고 떠벌려도 좋을 기회는 그 밖에도 더러 있었다.
그렇다.
신광사 친견 3년 전인 1358년 공민왕 7년의 일이었다. 고국을 떠나 중국 천지를 떠돌며 도를 구하기도 하고 도를 전하기도 했던 나옹선사께서는 1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천성산 원효암에 머물고 있었다. 나옹선사의 귀국 소식을 접하고, 그 이듬해 여름 장마비에 젖어가며 무학스님이 그를 찾아가 뵈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 미소를 띄우며 무학스님에게 불자()를 건네 주기도 했었다.
또 나옹선사가 공민왕의 왕사가 되어 전라도 승주고을 송광사에 잠시 머물러 계실 때였다. 그때도 나옹선사는 사람을 시켜 가사와 바리때를 무학스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이렇듯 나옹선사는 제자인 무학스님에게 깊은 신심과 따뜻한 애정을 베풀어 주었고, 언제나 간절하며 자상하였다.

함경도 최남부인 안변에서 경기도에 있는 양주까지는 꽤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강원도 북부의 산길을 가로질러 걸어야 했다.
무학스님과 원융스님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새들이 둥지로 날아들 준비를 하는 시간이면 낯선 절이나 암자를 찾아가 객승 노릇을 하며 피로한 몸을 뉘였다.
물론 대부분의 절간에서는 무학스님을 알아 모시고자 했다. 그들은 단 하루 밤이지만 무학스님을 가까이 모시게 된 인연을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무언가 귀가 번쩍 뜨일 법어 한 마디라도 듣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무학스님은 가벼운 입놀림을 하려 들지 않았다.
무학스님은 안변을 떠난 지 열흘 뒤에야 양주 회암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학스님이 도착하자, 회암사의 원무스님은 긴 출장길에서 돌아온 집안 어른을 받들어 모시듯 대단히 반가워 했다. 원무스님은 나옹선사와 무학스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 회암사의 주인은 무학스님이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고맙소, 원무스님. 이제 나도 나옹 큰스님에게 예를 올려야겠소.
소승이 안내 하리다.
아닙니다.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무학스님은 심지어 원융스님이 뒤따르는 것까지 마다했다.

 

7. 나옹선사(1)


생각을 하려드니 살아 생전에 대했던 나옹선사의 인자한 위의()와 다정한 목소리가 벌써 십수 년 세월 저편이었다. 아니 십수 년 세월 저편에 가있던 나옹선사의 모습이 금방 눈 앞에 나타나 주기도 하였다.


먼저 무학스님은 회암사 보광전 대법당에 들어가 예불을 올렸다. 그새 회암사에 무학스님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무학스님은 회암사의 전 승려들이 받들어 모셔야 할 분으로 무슨 밀령이 전파되었는지 법당을 나서는 무학스님과 마주치는 스님네들은 정성을 실어 합장배례를 하려 들었다.
무학스님은 나옹선사의 부도탑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 및 비석 등은 절의 북쪽 언덕에 잘 모셔져 있었고, 산비둘기 한 무리가 부도 주위 잔디밭에 앉아 놀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나옹선사의 부도 앞으로 가서 예를 올리고 거대한 탑비를 향해서도 머리 숙여 합장배례를 했다.
산비둘기 떼는 무학스님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끼리 다정스레 어울리고 있었다.
생각을 하려드니 살아 생전에 대했던 나옹선사의 인자한 위의()와 다정한 목소리가 벌써 십수 년 세월 저편이었다.
아니 십수 년 세월 저편에 가있던 나옹선사의 모습이 금방 눈 앞에 나타나 주기도 하였다.
나옹선사는 부처님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무학대사의 두 손을 조용히 보듬어 잡아주고 있었다.
가만히 비문을 올려다 보니 비석은 불과 3년 전에 세운 것으로 글은 한산군 목은 이색이 지었고, 글씨는 권중화로 씌여 있었다.
그대 주머니 속에 또 하나 별천지가 있음을 내가 아는 바이니, 동서간에 마음대로 삼현의 법()을 쓰시오. 어떤 이가 그대에게 참선하는 뜻을 묻거든, 그놈의 면상을 후려치고 다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오, 허허허.
귀에서 쟁쟁하게 나옹선사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나옹선사가 중국 서산의 영암사란 절에 있을 때였다. 무학스님이 먼저 고려로 돌아가려고 하직 인사를 올리니 나옹선사께서 게송으로 전송했던 목소리였다.
무학스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나옹선사의 모습은 대개 중국에 머물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학스님이 나옹선사를 처음 만난 곳이 바로 중국에서였다. 무학스님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중국 연경에 도착, 불법을 구하기 시작했었다. 그 당시 법원사에는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화상이 머물러 있었고, 그와 더불어 나옹선사도 거기 있었다.
무학스님보다 5년 앞서 중국으로 건너 간 나옹선사는 지공화상의 법을 이어받아 그 도와 학식이 원나라 황제의 귀에 들어 갈 만큼 높고 넓어, 황제의 주선으로 광제선사의 주지가 되어 개당법회를 설하는 등 이미 위명()을 드날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무학스님은 법원사에서 지공화상을 만나 법을 구하면서 자연스레 나옹선사를 만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역 만 리 중국 땅에서 같은 고려인으로 만났으니 나옹선사와 무학은 절로 가까워 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밤에 무학스님이 나옹선사의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실 때였다. 무학스님은 나옹선사로부터 예기치 않았던 말을 들을 수도 있었다.
무학스님!
네. 스님!
그대의 도행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온지?
이제는 나라와 창생을 위해 장차 스님의 할 일이 더욱 크고 많을 것 같소!
?
우리 스님의 법기()를 가만히 보아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단 말이오.
그래도 무학스님은 나옹선사가 하려는 말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나옹선사가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했다.
스님은 나처럼 한낱 산승에 머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스님, 소승에게 그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나라와 창생을 구하는 길이라면 구간지옥인들 마다하리까?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라면 감히 지장보살님의 원력을 따르고자 할 따름입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스스로를 낮추시고 지옥까지 들어가 죄 지은 중생들을 제도해 주시는 그 크나큰 지장보살님의 원력 말씀입니다.
고맙고 고맙구랴. 그래요. 스님. 사람이 얼굴을 서로 안다는 이가 천하에 가득하다 해도 마음을 서로 알아보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 것 같소? 스님, 이제 그대와 나는 한 집안 식구이니 곧 우리는 일가()인 것입니다. 하하하.
나무관세음보살.
맑고 따사로운 5월의 바람이 불어와서 산비둘기들의 머리 솜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나옹선사 탑비 앞에 서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아직도 중국 연경의 법원사에 머물러 있었다.
큰스님, 큰스님!
만약 원융스님이 다가서며 큰소리로 부르지 않았다면, 무학스님은 나옹선사 탑비 앞에서 돌부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슨 일이냐?
무학스님은 소스라치는 반응으로 원융스님에게 되물었다.
한산군 어른께서 오셨습니다요.
뭐야, 목은이!
그렇사옵니다. 큰스님이 회암사에 도착했단 소식을 듣기 바쁘게 달려 오셨다고 했사옵니다.
오, 목은이!
무학스님이 돌아서며 내려다보니 이색이 저만큼 떨어진 법당 앞 마당에 서 있었다. 그는 무학스님과 눈길이 마주치자 반가운 미소를 빙긋짓고 있었다.
목은 이색.
그는 당대의 뛰어난 성리학자로 예문관 대제학과 대사성 등 유학자로서는 최고의 벼슬살이를 두루 역임했으며, 한산군이란 그의 작위였다.
그리고 그는 무진생으로 무학스님보다는 한 살 아래였지만, 서로 상대를 존경하면서도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내는 가까고도 오랜 친구 사이였다.
오! 어서 오시게나, 목은.
무학스님은 합장배례로 반가움을 나타냈다.
아이고,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대사. 대사를 모처럼 대하고 보니 두 눈이 번쩍 띄입니다그려. 하하하.
이색의 웃음 소리에 놀란 듯 산비둘기들이 후루룩 날아들 갔다.
동감이외다, 목은. 허허허. 그새 아우님은 무탈하셨는가?
그럼요. 그럼. 그래 설봉산에서는 언제 내려 오셨습니까?
한 열흘됐나 봅니다.
나는 다시는 우리 대사를 못 뵙는가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
스님은 이런 오탁악세()에서 계실 어른이 아니니 그만 설봉산 생부처가 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겁니다.
허허, 이런 무례한 양반을 봤나?
아, 아닙니다. 토굴에서 9년 정진이란게 어디 쉬운 일이랍디까? 해서 스님은 그만 서방 연화대로 직행했으리라 여겼다는 말씀이지요. 곧바로 성불을 하고 득도를 해서. 허허허. 목은, 자넬 여기 두고 내가 혼자 어딜 간다고? 그럴 리가 없지요.
그럴 리가 없다뇨?
내 어찌 아우님 손을 놓칠 수가.
예끼! 나는 공자님을 모시는 유생입니다. 부처님이 나같은 선비 유생을 알아나 볼려고요?
부처님이 목은을 모른다? 원융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무학스님과 이색 옆에 낮은 자세로 서 있던 원융스님은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렇습니다요, 어르신. 공자, 맹자님도 어르신을 잘 아시겠지만 부처님도 한산군 어르신을 잘 아실 것입니다. 나옹선사 탑비명을 어른께서 쓰셨으니까요.
하하하, 일이 또 그렇게 되는구먼!
물론 회암사 승려들 중에서 이색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고, 이색이 당대에 얼마나 큰 비중으로 군림하고 있는 지를 모를 이도 없었다.
대가람 회암사에 무학스님과 이색이 들어 와 있으니 이젠 거 이상 기다려 모실 분은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덧 서쪽 하늘에 새빨간 저녁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둥지 찾아 날아가는 새 떼들의 지저귐만이 더욱 요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무학스님과 이색은 회암사 뒷산 중턱 바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절로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이런저런 세상사를 논하는 중이었다. 그 곳에서는 회암사의 웅장한 규모와 아름다운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들은 회암사의 웅장한 규모에 몇 번이나 감탄을 거듭했고, 중국에서도 보기 드문 장관임을 연거푸 확인했다.

 

7. 나옹선사(2)


초생달이 회암사의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보광당 법당의 낭랑한 독경소리도 어느새 그치고 추녀 밑에 매달린 풍경만이 산사의 밤 정막을 깨뜨릴 뿐.


나옹선사께서는 너무 큰 일을 하신 게야. 저토록 엄청난 중창불사를 일으키다니. 암, 몸과 마음이 온전했을 리 없지. 결국 당신의 세수()를 줄이신 게지!
이색은 무학스님을 의식하지도 않은 채 혼자 중얼거리듯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너무 무리를 하셨어요. 관세음보살!
세속 나이 쉰일곱 해라니, 너무 짧았는데. 회갑도 못 넘기시다니. 하실 일은 또 좀 많이 남겨 놓았던가요?
두 사람은 착잡한 기분에 젖어 있었다. 나옹선사를 향한 그리움이 일종의 안타까움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무학스님이 끈끈한 기분을 뿌리치듯 말머리를 돌렸다.
아우님도 글 짓느라 애 많이 썼더구만. 저기 스님 비문에다가 저쪽 지공화상님의 비문하며, 또 당신이 <회암사 수조기>까지. 역시 조정에는 아우님만한 문장가가 없다는 말씀이겠지만.
허튼 소리! 어쩌다 그리 된 걸 가지고, 허허허.

오늘날의 양주 회암사는 그 자취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절터는 폐허가 되었으며, 곳곳에 초석만 남아 있을 뿐.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능히 회암사의 규모를 상상해서 그릴 수 있는 문헌이 남아 있으니, 그것이 곧 이색이 지은 <천보산 회암사 수조기>이다.
그 <회암사 수조기>를 참조해 보면 회암사는 절집이 무려 262칸이나 되고, 15척이 되는 불상이 일곱 분이며, 관음보살상이 10척이라 했으니 가히 그 규모와 장관이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지난 1980년대에 펴낸 <화엄사지>란 책자에 나타나 있는 회암사도 이러했다.

회암사는 고려말 지공선사가 개기하고 나옹선사가 중창한 이래, 조선왕조에 있어 2백여 년 간 최대의 사찰로서, 지공나옹무학의 세 분 화상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곳이오. 과거 한 때는 팔도총림의 숭앙 도량으로써 우리나라 근대 불교의 법통을 이어 온 불교 성지였다.

초생달이 회암사의 밤을 지켜주고 있었다. 보광당 법당의 낭랑한 독경소리도 어느새 그치고 추녀 밑에 매달린 풍경만이 산사의 밤 정막을 깨뜨릴 뿐.
무학스님과 이색은 나옹선사가 생전에 기거했던 강월헌 방 안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강월헌이란 나옹선사께서 거처했던 절방으로 당신이 이름을 붙힌 당호였다.
훗날 무학스님도 이곳 회암사에서 말년을 보냈는데, 그는 당호를 계월헌이라 부른 적이 있다. 아마 그 숨은 뜻을 새겨보면, 나옹선사를 깊고 넓은 큰 강이라 부르자면 자신은 쫄쫄 흘러가는 작은 개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 되리라. 시내 계()자 계월헌이란 결국 스스로의 몸을 낮춘 의미가 아니겠는가?
봄의 풀벌레 울음 소리와 풍경 소리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큰스님, 원융입니다.
청자로 빚어진 주전자에 찻물을 담아든 원융스님이 강월헌 방문 앞에서 고했다.
오냐, 기다리는 중이었다.
원융스님이 조용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와 차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자, 심심한데 차나 또 마실밖에. 안 그러신가?
좋지요, 좋아! 물이 좋아 그렇겠지만 회암사 차맛은 일품이니까요.
무학스님과 이색은 찻상을 중심으로 반듯한 몸가짐을 하며 마주 앉았다.
원융스님이 두 사람 앞에 정성껏 차를 따라 올렸다.
자, 드십시오, 어르신!
원융스님이 이색의 찻잔을 먼저 채웠다.
고마우이, 스님! 내 듣자하니 큰스님을 시봉하느라 고생이 많았더구만!
고생은 무슨. 스스로 찾아나선 길인 걸요 뭐.
하긴 그렇지만.
그때 무학스님이 원융스님을 물리치려 들었다.
원융이 넌 내려가서 쉬도록 해라. 밤이 이슥하지 않았느냐?
무학스님은 뭔지는 모르지만 이색이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다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는 오늘 밤 여기서 유하실 의향이십니까?
원융스님은 이색의 잠자리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그럴 생각이라네. 허허허. 설마 큰스님이 날 이 방에서 내쫓기야 할려구?
허허, 고이한지고! 아까는 또 잠 좀 재워 줄 수 있겠느냐고 통사정을 하더니만.
헤헤헤, 잘 알겠습니다요. 그럼 편히 쉬십시오. 목탁소리 들리면 오겠습니다.
원융스님은 잠자리를 볼 때 무학스님이 목탁으로 자기를 불러 달란 말을 남기며 그 방에서 물러났다.
무학스님과 이색은 한동안 쌉쌀한 차향만 즐기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들이 살아 온 각각의 여정으로 보자면 무학과 이색은 도저히 한 봉우리가 될 수 없는 두 개의 거봉이다. 한 사람은 불교계의 거인이요, 또 한 사람은 성리학의 거목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자면 그 당시 성리학자들은 고려의 국운이 쇠한 까닭을 불교숭상에서 기인한다고 믿어오던 터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성리학적 통치철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때이기도 했다.
자, 차나 드시게.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는가?
무학스님이 넌지시 채근질을 했다.
내 한 가지 묻겠는데 대답해 주시겠는가, 무학?
이색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모를 일은 대답 못하고 아는 일이라면 대답 못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병진년 봄에.
하고 이색은 말을 뚝 끊었다. 무학스님이 기억을 더듬을 여유를 주는 모양이었다.
.
이 곳 회암사에서 낙성회를 크게 베풀 적에.
무학스님은 지긋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나옹선사께서는 자네에게 글을 띄워, 선사님의 수좌자리를 맡아 달라고 부르셨다는데.
.
왜 오지를 않았는가?
이색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이 그런 시선이라면 능히 사람의 속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나는 설봉산 토굴 속에 있었네!
그 말은 선사의 글을 못 받았단 말인가?
받긴 했었네!
그런데?
.
그런데?
나무관세음보살!
무학스님은 입을 열기가 무척 구차하다는 표정 속에 잠기며 염불을 했다.
선사께서 일임하실 수좌의 소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건 무학스님이 잘 아실테지. 결국 제자들 중에 수장의 자리를 책임지라는 뜻이 아니였던가? 좀더 엄격히 말하자면 선사의 법통을 무학스님이 이어 달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고.
무학스님은 이색의 정면 공격에 맞대응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일지 않은 듯했다.
나는 산을 내려올 수가 없었네. 수행정진 중이었으니까!
그건 겉으로 내세우는 핑계일 테고.
내가 선사를 뵈올 때마다 주위가 너무 시끄러웠어요. 이런 저런 일로 해서.
그것 또한 전해 들어 알고 있음이야. 암, 나도 잘 알고 말고. 선사의 어리석은 제자들이 서로 눈치싸움을 하고 스님을 시샘했던 것도 사실이지!
허허허. 그만 하면 내 처지를 십이분 이해하실 텐데 그래? 아니야, 아니라구. 그런 성대한 낙성회에 스님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스님 흉중에 뭔가 다른 뜻이 있었을 게야. 필시 있고말고.
시방 소승을 추달할 셈인가?
이색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단호한 어조로 재차 말문을 열었다.
나는 지금. 스님의 속뜻을 헤아려 보고자 함일세. 가슴 속에 묻어 둔 깊은 사념. 왜 자네가 그런 자리를 거절하고 오시지를 않은 건가? 막말로 나옹선사의 수좌로 인정받고 싶어서 병이 났던 스님 대중네가 수두룩한데.
그제서야 무학스님의 어조에 비감이 서렸다.
내가 끝내 나타나지 않으니까. 스승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겼다더군. 많이 관함이 많이 퇴함 못하다. 임제나 덕산도 수좌자리를 역임하지는 않았느니라. 편안한 방에서 살게 하라.

 

8.목은 이색(1)

 

회암사의 봄밤이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부엉이 울음소리도 끝이 났고,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도 숨을 죽이고 있어 산사의 밤은 더욱 고요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강월헌을 밝힌 촛불만이 무학스님과 이색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 당시 무학대사는 고려말의 세상사를 무척 객관적인 눈으로 직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따지고 들자면 설봉산의 토굴 생활 9년도 좀 더 냉정한 눈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고려를 바라보고자 함에서 비롯되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그의 눈에는 나옹선사 불사() 역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나옹선사의 회암사 중창 불사를 위한 깊은 공덕심과 큰 뜻을 모르지는 않으나, 선사께서는 너무 서둘렀던 것이다. 국고는 바닥나 있고, 나라의 기틀도 흔들릴 뿐만 아니라, 백성은 피폐할대로 피폐한 마당에 그토록 엄청난 대불사를 일으킨다는 사실 자체가 실인즉 어불성설이 아니었던가?
공민왕이 죽은 노국공주를 위해서 그 능묘를 단장하고, 사사로이 혼전과 영전을 짓는 등 백성과 나라를 온통 나락으로 몰아붙인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무학스님이 신음을 토하듯 중얼거렸다.
나옹선사께서는 너무 무리를 하셨던 게요. 해서 심신이 온통 고달퍼지셨고. 아까 아우님이 지은 그 선사님의 비문에서도 이런 말이 있지 않았소? 조정으로 탄핵하는 상소가 빗발쳤노라고, 백성들은 굶어죽어가는 데 절만 거창하게 지어서 뭣에 쓰겠느냐 뭐 그런 소리가 아니였을까?
사실이 그러했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적었지요. 회암사는 도성과 고을에 너무 가까워서 사내와 아낙네들의 왕래가 밤낮 없이 너무 잦습니다. 그리하여 불공차로 생업을 폐하는 자까지 있으니 이를 금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대신들이 이렇게 평했노라고.
나무관세음보살.
해서 주상께서는 하는 수 없이 선사에게 저 남쪽 영원사로 옮겨가도록 어명을 내리셨던 게야.
그건 선사님을 귀양 보낸 것이지요.
실로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
이색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나옹선사는 무리한 회암사 중창 불사의 강행으로 스스로의 명을 재촉한 셈이었다. 그의 비문으로 새겨진 글을 보아도 그러했다.

때마침 선사께서는 환후가 계셨는데 죄인을 태우는 수레가 산문을 나서자 몸소 조도꾼을 이끌고 죽은 시체가 나가는 열반문을 통해 나가시니 대중이 모두 깜짝 놀라고 어리둥절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그러자 나옹선사께서는 대중을 돌아보시면서 말씀하셨다.
애쓰거라, 애쓰고 더욱 노력하라.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말라. 내 발걸음은 여흥에 이르러 멈출 것이니라.
그러니까 나옹선사께서는 그 길로 한강가에 이르러 배를 얻어 타고는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이렛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그리고 병들고 지친 몸으로 먼 뱃길에 시달리면서 가까스로 여주 신륵사에 당도했다. 그러나 나옹선사를 모시는 호송관이 또 재촉했다. 어서 빨리 길 떠나자 성화같이 독촉을 해댄 것이었다.
그것 어렵지 않노라, 서둘지 말거라. 내가 가리다. 아암, 내가 가고 말고.
나옹와사 혜근 큰스님은 이렇게 말한 다음 홀연히 속세를 등졌다.
1376년 우왕 2년 5월 15일. 진시에 여주 신륵사에서 적연히 열반했으니 세속 나이 쉰일곱에 법랍 37년이었다. 때에 고을 사람들이 바라다보니 영롱한 오색채운이 산꼬대기를 덮었으며, 선사의 다비를 마친 뒤에 영골 사리를 씻어 낼 적에는 하늘에 구름이 없었는데도 그 둘레 사방 수백 리 안에만 깨끗이 비가 내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혜근 큰스님 나옹선사의 정골사리는 여주 신륵사에 있고, 비석과 부도는 양주 회암사에 있게 된 것이었다.

회암사의 봄밤이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부엉이 울음소리도 끝이 났고,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도 숨을 죽이고 있어 산사의 밤은 더욱 고요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강월헌을 밝힌 촛불만이 무학스님과 이색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무학스님과 이색 두 사람은 그날 밤 잠을 아예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불현듯 무학스님이 소리내어 웃었다.
허허허.
무슨 생각에 웃으시는가, 무학?
지공화상의 얼굴이 눈에 선하구만!
아, 스님은 처음 중국에 들어 가서 지공화상부터 만났다고 했었지?
지금 돌이켜 보자면 나도 참 맹랑한 놈이었지. 법원사에 계신다는 소문만 듣고 젊은 애가 무턱대고 그 분을 찾아갔다구. 합장배례하고 큰 절을 세 번 넙죽 올린 다음 벌떡 일어나서는 내가 말했었지. 스승이시여, 먼 길 와서 화상 어르신의 참 모습을 뵈옵나이다.
그러자 지공화상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배타고 오셨는가, 육로로 걸어서 왔는가? 신통으로 왔는가?
지공화상의 그 물음에 무학스님이 냉큼 이렇게 답했다.
신통으로 달려왔사옵니다. 큰스님!
신통이라고? 어디 그 신통을 나한테 내보이거라!
예. 어르신.
그런 다음 무학스님은 또 다시 지공화상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서 두 손 합장하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긴 침묵.
이윽고 지공화상의 대갈일성이 떨어졌다.
에끼, 이놈. 고려국 사람들은 모조리 쳐 죽여야겠구나, 하하하.
묵묵히 무학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색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들인가?
허허허.
말하자면 그게 선문답()이라는 겐가?
그런 것도 같고.
스님. 이 사람은 선문답을 알지 못하니 내가 알아 들을 수 있게끔 설명을 좀 해 주게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선()이 아니라네.
음.
하하하.
사실이 그러하다. 선()의 경지는 관념 밖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사람들은 무학스님과 지공화상의 선문답을 이렇게 해석하기도 했다.
무학스님이 신통을 내보인 두 손 합장과 단정히 서 있는 모습은 곧 사람의 마음 작용이 신통이란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그리고 지공화상이 고려국 사람들은 모조리 쳐 죽이겠다하고 소리친 말은 젊은 스님 무학의 빼어난 선지에 감탄한 뜻이라고.
물론 무학스님보다 5년 앞서 지공화상을 찾아 왔던 젊은 승려 나옹의 신앙적 경지까지 포함해서 지공화상은 경이와 찬탄을 함께 표현했던 것.
그러면, 지공화상이 대갈일성으로 할()을 한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이색이 접어둘 건 접어두고서라도 얼마간은 궁금하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러나 곁에 있던 다른 스님네들 눈이 휘둥그래졌지. 하늘같이 여겨서 좀체 범접할 수 없었던 지공화상의 인가를 내가 당장 받아냈으니.
쯧쯧쯧! 그렇던 위인이 그래 내일 모레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이 꼴이라구? 흐흠. 상기도 성불 못한 채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젊은 시절이나 깨씹고?
물론 이색은 농조로 무학스님을 골려보는 것이다.
목은이 이놈! 주장자로 내려칠까보다. 허허허.
허허허.
두 사람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런데 웃음 끝에 무학스님이 살펴보니 이색의 얼굴에 어두운 수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래, 그건 그렇고. 요즘 조정 형편은 어떠신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일. 주상께서는 점차 총명을 잃어가고 계시니, 국사는 뒷전이고 그저 사냥길에 가무음곡으로.
이색의 대답은 무학스님의 예상과 거의 일치하고 있었다.
주상의 보령이 너무 어리신 탓 아닐까, 겨우 스무 살 남짓!
그래도 10여 년 전 즉위 하실 때는 괜찮았어요. 할머니께서 어린 주상을 엄히 훈계하고 뒤에서 국사를 보살폈으니.
당시 주상은 고려왕조 32대 임금 우왕이었다. 공민왕이 대궐 침실에서 벽신 홍윤과 내시 최만생 등에게 불행하게 시해되자, 우왕은 불과 열 살이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공민왕의 어머니이자 할머니가 되는 명덕태후께서 우왕의 뒤를 돌보게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명덕태후는 천성이 엄하고, 인자하여 어린 손자 왕을 늘상 훈계하고 바른 길로 보살펴서 그런데로 대과 없는 국사를 돌보게 했었다.
그랬는데 지난 4년 전 태후가 승하해 버리자, 우왕은 그만 방종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고려의 운명의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았건만 그는 나라 걱정은 접어 둔 채, 날마다 노래와 춤으로 유희의 세월을 보냈으며 걸핏하면 사냥길로 궁녀와 무작위로 아녀자들을 끌어 들여, 음탕한 도색질만 일삼기 시작했던 것이다.
관세음보살.

 

8.목은 이색(2)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란 바를 정(正)자 올바름이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올바름이란 또 무엇인고? 올바름이란 곧 위민(爲民)이 아니겠는가?


“그뿐만도 아녔지. 대신 이인임 이하 염흥방과 임견미 등등 권신들의 전횡과 탐학(貪虐)이 끝이 없어요. 주상이 자기네를 신임한다는 핑계로 서로서로 요직이나 탐하고 앉아서 무고한 백성들을 향한 횡포만 일삼으니……. 매관매직에……. 정직한 신하들을 오히려 무고하고, 힘 없는 백성들의 토지와 노비를 강탈하는 등 실로 나라의 앞날이 한심지사일세!”
“최영 같은 노대신은 무얼하고?”
듣다말고 무학대사는 울컥 분노가 치민다는 듯 최영을 거론하며 치받았다.
“그 어른도 내일 모레 70을 바라보는 고희 아니겠는가? 게다가 주상께서 사사건건 멀리하고 힘을 실어 주지 않는데. 그 어른인들 무엇을 어떻게 하랴? 그래도 포은 같은 신하가 있어서 내가 덜 외롭다고나 할까?”
“옳아, 포은 정몽주…….”
무학스님은 9년간이나 산에 숨어 있다 나온 사람답게 비로소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포은이 요참에 조정을 위해서 큰일을 한 가지 해치웠지. 큰 공을 세운 게야.”
“무슨 일을 했는데?”
“지난 여름 7월인가 포은이 명나라에 들어 갔었네. 그러니까 성절사로서 명나라 연경에 가서 우리와의 껄끄러운 외교관계를 어느 정도 반듯하게 회복해 놓고 돌아온 걸세. 가령 해마다 우리가 보내야하는 세공 액수를 적당히 줄인 데다 5년간이나 우리 측에서 보내지 않았던 세공액도 탕감해 버리고 말씀이야. 포은이야말로 명신이고말고.”
무학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색이 다시 한숨을 토하듯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원나라가 멀리 북쪽으로 쫓겨가고 명나라가 들어서서 우리와의 관계가 조금 나올까 싶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니, 나라가 힘이 부치고 왕실이 약하니…….”
무학스님은 넌지시 떠보듯 이성계란 이름을 입에 조심스레 올려 보았다.
“이성계 장군은 어떤가?”
“이성계?”
이색이 일순 긴장하는 빛을 띄웠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단한 무인이지. 야심도 만만하지 않아 보이고……, 시제 조정 안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점차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어요.”
이색의 눈은 정확했다. 이성계의 신흥 무장세력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들의 세력을 ‘새로운 세력’으로 분류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성계라고 한다면 저 북방 변경 함경도 지방에서 자라난 무인계급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 무공을 세우면서 점차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뿌리를 내리고 시나브로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어찌 보면 4백 년 고령의 고려에 세대교체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이고, 이성계야말로 세대교체 바람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고려왕실의 힘을 보수 수구세력이라 한다면 이성계 일파의 세력은 신진 개혁세력이었다.
“이성계가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휘하에는 신진 사류들이 많이 모여 들어요. 특히나 패기 발랄한 유생들이…….” “유생들이?”
“왜 자넨 싫으신가? 공자, 맹자 받드는 팔팔하고 젊은 선비들이…….”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닐세. 내가 먹물 옷을 입었다고 너무 그렇게만 몰아붙이진 말게나.”
“이를테면 정도전을 비롯해서 윤소종, 권근, 남은 등등 쟁쟁한 친구들이 이성계들과 의기투합을 하고 있다고!”
“아니, 그 사람들이라면 자네의 성리학 계통 문도들이 아닌가?”
“그건 그래. 내 문하생들이지. 허나 내가 지금 무슨 할 말 있겠는가? 그들도 이젠 자기 앞가림은 각자 알아 할 나이들인데……. 코흘리개 새끼도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고 각자 다 장성을 해서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야 가만히 두고 지켜볼 밖에, 허허허…….” 무학스님은 이색의 웃음 소리에서 까닭모를 공허로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명문장가 이색도 어느 새 뒷방 늙은이로 자처하려는 듯해서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려라는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그의 손을 떠나 있다는 뜻이리라.
어디선가 새벽닭이 울고 있었다.
“아니, 벌써 새벽닭 울음 소리 아닌가? 허허, 모처럼 대사를 만나서 회포를 풀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구만.”
그런데 그 새벽닭 울음 소리는 무학스님에게 또 다른 소리를 연상케 했다.
그것은 헌 집 무너지는 소리였다. 이제 낡고 썩은 헌 집 속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오는 이성계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무학스님의 회암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광전 법당에 나아가 새벽예불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의 하루 일과는 대개 강월헌에서 이뤄졌다.
이색은 회암사에서 하룻밤을 더 묵었다. 그는 혼자 가람 경내를 거닐며 산란한 마음을 식히려는 듯 했다.
이색이 회암사를 떠나던 날 아침, 무학스님은 아침공양을 마치고 강월헌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뒷산 숲 속을 혼자 거닐던 이색이 강월헌으로 다가왔다.
“날세. 들어가도 되겠는가?”
“들어오시게!”
방 안에 들어선 이색은 심기 불편해 보인다는 듯이 무학스님을 향해 한 마디 툭 던졌다. 무학스님의 머리 속에는 이성계의 존재가 자꾸만 맴돌고 있었다.
“뭣을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시는가?”
“으흠,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것도…….”
무학스님이 시치미를 떼려들었다.
“토굴생활 9년 끝에도 성불을 하지 못해 한이신가?”
“무슨 그런…….”
“허허허.”
무학스님은 이색이 무슨 눈치를 채고 흉중을 짚어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은!”
“여기 있네!”
“서까래가 썩고 빗물이 줄줄 새면 어떻게 한다?”
무학스님은 도끼로 장작을 쪼개듯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었다.
“서까래를 갈아야지, 물론!”
“한쪽 기둥이 썩어서 흔들거리면?”
“그 기둥도 바꿔야지, 뭐!”
“기둥도 썩고 서까래도 낡고 헐어서 그놈의 헌 집이 만신창이라면?”
“헌 집이 만신창이? 대사, 자네 시제……? 자네가, 나한테 뭣을 묻고 싶으신가?”
목은은 무학스님이 하고 있는 말의 뜻을 금방 이해했지만 일삼아 몸을 사리려 들었다.
무학스님이 이제 목은의 목덜미를 나꿔채듯 했다.
“새 집을 다시 지을 수도 있을 게야, 안 그래, 목은?”
“아니, 이젠 또 새 집까지?”
“그래. 헌 집이 아닌 새 집!”
“이런! 이런 엉뚱한 위인을 봤나? 허허허. 갑자기 헌 집이니, 새 집이니!”
이색은 능청스런 웃음을 흘렸지만 실인즉 노골적으로 꽁무니를 빼려 들었던 것이다.
“들어보시게, 목은!”
무학스님은 이색의 손목을 잡아끌 듯 말했다.
“듣기 싫어요, 우리 대사께서 긴 토굴 생활을 했다더니 어찌 되신 것 아닌가?”
“허허, 이놈 형님이 시방 농짓거리 하는 줄 아나? 자, 들어봐! 자네가 받들어 모시는 공자님께서도 무엇이라 했던고? 정이 정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정사란 바를 정(正)자 올바름이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올바름이란 또 무엇인고? 올바름이란 곧 위민(爲民)이 아니겠는가? 착하고 어진 백성을 받들고 위하는 것이 곧 올바름이요, 나라를 다스리는 떳떳한 큰 길이란 말씀이야.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고 백성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 백성의 아픈 상채기를 어루만져 주고…….”
“허허, 누가 성인의 그런 말씀도 모르고 살까?”
무학스님은 내친 걸음이란 듯 숨가쁘게 말을 이었다.
“우리 불가에서는 자비를 앞세우고, 자네의 유가에서는 어질 인(仁)자 인을 앞세우지 않는가? 허나 그 본 생각은 똑같은 게야. 모든 것이 중생을 위하자는 목표이며, 그 수단이자 방편일 뿐. 나랏님은 백성을 자식같이 어여삐 여기시고, 백성 또한 나랏님을 부모님처럼 공경하여 받들어 모시고. 그러니까 오로지 중생만을 위하는 온갖 것이 정경대도인 게야. 나랏님도, 왕실도, 이 넓디 넓은 땅덩어리도, 저 푸르른 하늘까지도.”
“음!”
이색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냈다. 그로서는 무학스님의 말을 안듣느니만 못한 꼴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도 무학스님이 가리키는 길을 볼 수가 있었고, 그 길이 바른 길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서는 자신이 없는 듯 했고, 먼저 두려움이 앞을 가로 막는 듯 했다.
아니, 그는 무학스님이 제시하는 길이 그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길인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차마 그로서는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색의 입은 굳게 닫혀 버렸다. 그는 귀까지 닫고 싶은 듯 무학스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 인듯 홀연히 회암사를 떠나갔다. 어쩌면 그는 스님의 입에서까지 그런 소리를 듣게 되어버린 당시의 실정(失政)이 개탄스럽기만 했다.


 

9. 회암사의 봄(1)

무학스님으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맹장(猛將)으로서의 이성계의 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전투란 건 결과가 드러나기 이전엔 절대 안심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이색이 훌훌 떠나가 버리자 무학스님은 지긋이 두 눈을 감고 앉았다. 이따금 나옹선사가 읊조리던 시가가 떠오르는지 그는 혼자 소리 내어 읊조리기 시작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원융스님이 찻물을 준비해 강월헌으로 들어와도, 무학스님은 개의치 않고 시가만 읊조렸다.
이윽고 무학스님이 눈을 뜨고 원융스님을 건너보았다.
“헤헤헤. 소승도 나옹선사께서 지으신 그 시를 좋아하는데요.”
“아무렴. 혜근스님께서는 누구나 좋아할 선시(禪詩)를 많이 지으시고 글씨와 그림 솜씨 또한 발군이셨지.”
무학스님은 또 두 눈을 감으며 나옹선사와 마주했다.
“무학스님 당신은 진작에 불성을 깨치셨어. 허나 내가 가만히 그대의 심지를 꿰뚫어보니 그것으로 끝이 난 게 아니오.”
“무슨 황공하신 말씀을?”
“내 말씀을 귀담아 들어보구료. 내가 이렇게 넓고 넓은 중원 땅에 와서 산천을 두루 유력하면서 배우고 깨달은 점인데 말씀이야, 저 삼황오제로부터 왕실의 종사가 수십 수백 번을 바뀐다 해도 중생은 그대로 중생이요, 백성은 언제나 백성이었소. 마치 어느 한 왕조의 종묘사직이 뜬 구름처럼 흘러가도 산천은 의구하듯이……. 종사는 변하고 바뀌어도 중생은 살아남아야 하고 또한 살아서 영원히 이어지는 법. 불제자의 발원이 무엇입니까?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아닌가? 중생이 없으면 왕조가 어느 자리 어느 곳에 붙박힐 수 있겠소? 우리가 뭇 중생의 마음 자리를 다스리는 것도 막중하지만……. 지치고 찌든 백성도 돌볼 줄을 알아야 해요.”
“큰스님. 어인 분부이십니까?”
“나 같은 선승(禪僧)은 그서 선승일 뿐. 우리 스님은 다르게 보입니다. 허허허. 대장부로서의 할 일이 장차 더 있을 게요. 나 같은 사람은 처음부터서 그런 그릇이 아니오만. 무학 그대는 필시 다를 게요. 아암, 다르고 말고. 아마도 먼 훗날 장래에 가서는……. 나무관세음보살.”
곁에 있던 원융스님은 무학스님이 또 선정에 빠진 줄 알고 큰소리로 깨우려 들었다.
“큰스님. 차가 너무 식겠습니다요.”
그러자 무학스님도 원융스님 목소리만큼 높은 어조로 꽥 소리쳤다.
“이놈아, 어디 누가 먹보라더냐?”
“헤헤헤…….”
“오냐, 너도 한 잔 마셔라!”
무학스님은 모처럼 손수 원융스님의 찻잔에 차를 따르기도 했다.
“예, 큰스님.”
원융스님은 두 손으로 찻잔을 받쳐들었다.
무학스님은 차를 마시면서 속으로 곰씹어 보고 있었다.
‘그래. 비록 왕조의 종사가 수십 번 수백 번 바뀐다 해도 중생은 그대로 중생이요, 백성은 언제나 백성인 게지. 피폐하고 고통받는 중생 하나 추스릴 힘과 능력도 없는 왕실을 어떻게 왕실이라 부를 수가 있겠는가?’
불현듯 이색이 남긴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성계 장군.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단한 무인이지. 야심 또한 만만하지 않은 것 같고, 시제 조정 안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점차 눈에 띄게 부상하고 있어요.’
때마침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가 일삼아 인기척을 내느라 헛기침하는 소리를 원융스님은 들었지만 무학스님은 듣지를 못한 것 같았다.
“큰스님. 밖에 누가 오신 모양입니다요.”
“나가 모셔라!”
무학스님은 흡사 어떤 이가 오겠다는 약속이라도 해둔 것처럼 태연스레 명을 내렸다.
“네. 큰스님!”
원융스님은 쪼르르 바깥으로 나섰다. 강월헌 앞마당에는 웬 젊은이가 우뚝 서 있었다.
원융스님은 합장배례를 올린 다음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예. 저는 이방원이라고 합니다. 대사님께서 여기 회암사에 주석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ㅍ.”
원융스님은 당장 이방원의 위풍에 기가 질렸다.
“큰스님이 계시기는 합니다만, 어인 일로 오신 분인지…….”
“대사께서는 아실 겝니다. 이 사람은 문하찬성사 성자 계자 이성계 장군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대사 어르신을 뵙고자 개경에서 달려 왔습니다.”
“아, 네. 큰스님에게 여쭈어 보겠습니다.”
원융스님이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방 안에서 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원융아, 손님을 안으로 뫼시거라!”
“네!”
원융스님은 이방원을 안내했다.
“자, 방으로 오르십시오.”
“감사합니다.”
무학스님은 청년 방원의 방문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무슨 인연이기나 한 것처럼…….
방원은 무학스님 앞에서 세 번 큰 절을 올리고 난 다음, 단정히 꿇어앉았다. 무학스님은 방원을 이윽히 바라보면서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비록 키는 크지 않으나 장부다운 호걸풍으로 날카로운 눈매와 다부진 입술하며 딱 벌어진 어깨의 힘줄 등이 그의 숨은 야망과 의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이윽고 방원의 입이 열렸다.
“큰 어르신을 이렇게 우러러 뵙게 되니 한평생의 광영이옵니다. 소생을 어여삐 여겨 주시옵소서.”
“젊은이가 몇 살?”
“예. 정미생(丁未生)으로 올해 열여덟이옵니다. 소생은 다섯째이오며 2년 전에 문과에 급제했고, 현직은 밀직사 대언으로 있사옵니다.”
“그래. 남달리 숙성하고 영특해 보이는구만!”
“부끄럽습니다. 어르신!”
방원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서 책잡힐 일은 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만한 나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객기 따위를 전혀 발견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 차부터 한 잔 들지. 내가 따라 드림세!”
“감사합니다.”
방원은 두 손으로 공손히 찻잔을 받쳐 들었다.
“찬성사 어른께선 기별이 있었고?” 무학스님은 궁금하던 터라 이성계의 근황이 알고 싶었다.
“예. 아버님으로부터 수 일 전에 하서를 받았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이번에 또 함흥땅에 쳐들어 온 왜구 일당을 깨끗이 소탕하시고 상감께 승전보를 올리셨다 하옵니다.” 무학스님으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맹장(猛將)으로서의 이성계의 능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전투란 건 결과가 드러나기 이전엔 절대 안심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허허허. 경하할 일이로다. 이성계 장군은 과연 명장인 게야. 암, 나라의 기둥이고말고.”
때마침 방원의 입에서 뜻밖의 전언이 새어 나왔다.
“아버님 하서에 이르시기를 안변 설봉산에서 대사를 뵐 수 있어 기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재일우의 만남 같았다면서.”
“아니, 저런 저런? 천재일우의 만남이라니. 너무 과분하신 말씀인게야! 오히려 나 같은 늙은이가 장군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었지!”
“소생 또한 스님을 뵙고자, 언제나 그 날을 학수고대 하였사옵니다. 그런데 스님이 어디에 계시는 지를 소상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버님께서 이 늙은이를 만나보도록 당부하셨다는 겐가?”
“아니옵니다, 스님! 소생이 무례를 무릅쓰고 당돌하게 찾아뵌 것이옵니다. 소생의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고맙고 반가우이! 허허허.”

 

9. 회암사의 봄(2)

 

이성계 부자를 대했던 무학스님은 연(緣)이려니 했다. 여느 사람들이라면 그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우연 같은 걸 느낄테지만, 무학스님은 그들과의 만남을 필연에 의한 연이려니 하면서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무학스님은 어느 일순 젊은 방원에게서 섬짓한 생각과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직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저돌성과 냉혹함이 엿보였고, 강력한 결단력과 패배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한 패기 등이 전해졌던 것이다.
동시에 무학스님은 젊은 날 자신의 모습 일부를 마주 대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기도 했다.
무학스님 또한 열여덟 젊은 나이에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가 송광사를 찾아갔으며, 그곳에 주석하시는 소지선사께 큰절을 올린 다음 구족계를 받지 않았던가?
그때 소지선사는 이렇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출가를 생각했는고?” 무학스님은 평소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죽고 사는 생사의 일은 크고 불법은 만나기 어려우므로 도를 얻고자 집을 나섰습니다.”
패기에 찬 젊음 탓이었으리라.
무학스님은 이내 송광사를 떠나 또 용문산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혜명국사와 법장국사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용문산 부도암에서 한동안 정진하기도 했다. 다시 그는 진주 길상사로 자리를 옮겨앉아 한 철 동안 안거에 들기도 했다. 그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그리하여 1352년 공민왕 원년이 되었을 때, 무학스님의 나이 어언 스물 여섯이 되어 있었고, 그의 몸은 묘향산 금강굴에 놓여 있었다. 묘향산 금강굴에서 그야말로 생사를 초월한 1년 반의 정진을 하던 끝이었다.
이윽고 새벽 이슬에 연꽃잎이 떠지듯 무학대시의 입에서 깨달음의 노래[오도송:悟道頌]가 터져 나왔다.

밝고 밝은 영물이
분명히 눈 앞에 있구나
고요한 밤
한 둥근 달 맑은 빛이
삼천대천 세계에 두루 비추는구나.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 얼굴이요
맑은 달 맑은 바람은
그 누가 주인인가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라
온 세계의 티끌 마다에
부처님 몸뚱이로세.


이렇게 묘향산 금강굴에서 득도(得道)한 스님은 바람처럼 그 해 가을에 중국 원나라 연경으로 떠나며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화상을 법원사에서 만나 뵙고, 법천사와 서산 영암사에서 나옹선사를 만나고…….

이방원이 이성계의 아들이라면 무학스님은 과연 누구의 아들이었을까?
무학스님은 합천군 대방면에 해당되는 삼기현에서 태어났고, 속성은 박씨였으며 아버지 함자는 인일이었고, 어머니는 고성 채씨였다. 그의 아버지 박인일은 숭정문하시랑에 추증되기도 했다.
예로부터 큰 인물에게는 그에 걸맞는 탄생설화가 있기 마련.
무학스님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어머니 채씨가 어느날 밤 붉게 타고 있던 태양이 별안간에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신기한 태몽을 꾸고 태기를 얻어 1327년 충숙왕 14년 정묘 9월 스무날에 무학스님을 출산했다.
이 탄생설화는 무학대사 비문에 씌여있는 ‘붉게 타고 있는 햇빛설’인데 어머니 채씨가 참외를 주워 먹는 태몽 끝에 무학스님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도 따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충청도의 서산 고을 읍지에도 또 다른 무학대사 탄생설화가 실려 있다.
왜구들은 서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서산고을 앞 해안으로 잦은 출현을 했다. 관군들이 왜구들을 격퇴하지 못하게 되면 바닷가 백성들이 사생을 결단, 그들과 대적을 하기 마련.
물론 그들에게 패하고 보면 참혹한 꼴로 죽어가거나 욕을 보거나 그들의 포로가 되는 수밖에 없었고…….
바야흐로 무학을 잉태한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왜구들의 포로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구들에게 끌려가던 그들 젊은 부부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 어찌어찌 되어 서산 앞바다에 하나의 점처럼 떠있는 간월도에 도착, 숨을 죽이고 살게 되었다.
그들 부부는 간월도의 무성한 갈대로 삿갓을 만들어 팔아 연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느날 무슨 일로 어머니가 관가에 끌려가는 중 학돌재에 이르면서 산기를 느끼고 옥동자를 낳게 되었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 어린 핏덩이를 길가에 버려두고 관가에 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관가에서 풀려나 어린 핏덩이를 버렸던 곳으로 숨가쁘게 달려 갔다.
그랬는데 어머니는 신비스런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다섯 마리의 학이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갓난 아기 핏덩이를 감싸고 따뜻하게 보호하고 있었던 것.
그리하여 무학스님의 본래 한자 이름은 없을 무자(無)가 아닌 춤출 무자, ‘무학(舞鶴)’이라고 학돌재 전설은 말하기도 한다.

방원은 돌아갔다. 그는 무학스님에게 변함없는 지도편달을 바란다는 뜻을 남기고 서둘러 말을 타고 회암사를 등져갔다.
이성계 부자를 대했던 무학스님은 연(緣)이려니 했다. 여느 사람들이라면 그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우연 같은 걸 느낄테지만, 무학스님은 그들과의 만남을 필연에 의한 연이려니 하면서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회암사에도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만약 조정만 튼실하고 백성들이 태평성대만 구가하고 있다면 마냥 봄꽃놀이에 취해도 좋을 그런 계절이었다.
꽃들은 행여 이 봄을 놓칠새라 온 산을 물들여 가고, 새들 또한 가는 봄이 아쉽다는 듯 산골짝을 뒤흔들며 제 멋대로 울고 있었다.
다만 스님만은 흘러가는 계절을 이윽히 바라보며, 조용한 모습으로 강월헌 안에 앉아 있었다.
이치를 깨닫고 보면 가는 세월이 아쉽다고 눈물 흘릴 일도 아니며, 다가 오는 세월이 낯설다고 몸을 떨일도 아니지 않는가?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은 봄바람에 몸을 맡겨 울고 있었다. 목어(木魚) 또한 허공 속을 헤엄치듯 한들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원융스님이 헐떡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급한 김에 숨이 차도록 뛰어서 강월헌 앞에까지 왔다가 무학스님에게 꿀밤을 먹을까봐 숨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큰스님, 큰스님. 방 안에 계시옵니까? 큰일이 일어났사옵니다. 큰스님!”
딴엔 냉정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서 말하려 했지만 원융스님은 화급하기 짝이 없는 자기 감정을 제대로 억누르지 못했다.
“웬 호들갑이냐, 사람이 진중하지를 못하고. 들어와서 얘기해라.” “예!”
원융스님은 방 안으로 들어가 조심을 하느라고 했지만 방문 닫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누가 죽기라도 했냐, 이놈아? 니놈 숨부터 꼴깍 끊어지게 생겼구나.”
“큰스님. 드디어 나랏님께서 명을 내리셨다고 하옵니다. 거국적으로 군사를 일으키실 모양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막연하게 무학스님은 ‘그때’가 온 것 같다는 직감에 사로잡혔다.
“예, 큰스님. 그리하여 군병을 모집한다는 방이 방방곡곡에 나붙었사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국 사찰에도 어명을 내리시어 젊은 승려들로 하여금 승병을 조직, 출정을 서둘라는 분부이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전국적으로 승병을 조직해야 한다면, 국란이라도 발생했다는 말이더냐?” “예, 큰스님!”
무학스님은 처음 원융스님의 호들갑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었으나 점차 그의 흥분에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아서였다. 적어도 승병까지 조직해야 할 일이라면 예삿일일 수가 없었던 것.
“자초지종을 들은대로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연고라더냐?”
“저, 명나라 대국을 치기 위해서 우리 군사가 요동정별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요. 그러니까 북쪽 압록강을 건너 만주의 요양성을 정벌하고 명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이겠지요. 요동을 정벌해서…….”
“요동을 정벌한다?”

 

9. 회암사의 봄(3)


무학스님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이미 생사를 초월해서 살고 있는 스님의 입장에서야 새삼 불안하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만 중생의 모습만이 안타깝게 비쳐올 뿐…….


무학스님은 꿈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기가 막혔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도 알아야겠지만 그 전에 나부터 알아야 하는 데 고려는 나를 모르고 상대만 깔보는 듯했다.
“관세음보살. 지금이 어느 시절이라고 군사를 일으킨단 말인고? 천부당 만부당 하고말고.”
그때가 1388년 봄이었다. 역사의 물굽이는 그 해 봄을 분수령으로 잡아 새로운 세계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낡고 병든 고려 왕조에 이어 새로운 조선왕조와의 갈림길이 된 고갯마루가 그 해 봄에 생겨났던 것.
그렇다.
고려의 요동정벌 정책은 결국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란 역사적 사건을 유도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위화도 회군이란, 어명을 받들고 만주땅의 요동정벌을 위해서 출정했던 고려국 군사가 말머리를 개경으로 돌리는 반역의 거사였다. 물론 위화도 회군의 주모자는 군사령관이었던 이성계였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무슨 까닭으로 어명을 어기고 근무지를 이탈, 수도인 개경을 점령하고 왕위를 찬탈하려 들었단 말인가?
“큰스님, 큰스님! 어디로 가시옵니까?”
원융스님을 통해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설 것이란 소식을 접한 스님은 방에서 일어나 신발도 제대로 신을 겨를 없이 마당 한가운데로 내려섰다.
“알 것 없느니라. 원융이 너는 따라 나서지 말고 여기 있거라.”
“행선지만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큰스님!”
“일단 개경으로 들어가 보련다!”
무학스님은 황망히 길을 떠났다.
개경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 이는 무학스님만이 아니었다.
이성계도 말 잔등에 채찍을 휘두르며 개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밀약이라도 한 것처럼 이성계의 마음과 스님의 마음이 일치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좀 전에 황해도 봉산에 있는 임금의 사냥터에서 왕을 친견하고 분노와 허탈감에 빠졌던 것이다.
우왕이 젊은 나이이긴 하지만 명색이 상감인데, 어찌 큰 나라와의 전투를 마치 사냥터에서 날짐승 잡기마냥 그토록 가벼이 볼 수 있었는지.
“장군은 과인의 말을 들으시오. 과인이 차제에 명나라의 요양성을 치려고 합니다. 여기 계시는 원로 대신 최영 장군과도 깊이 숙의한 끝에 과인이 내리는 어명입니다. 경은 마땅히 온 정성과 온 힘을 다해 과인의 뜻을 이뤄주기 바라는 바이오.”
우왕이 이런 말을 했을 때, 이성계는 속으로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다.
‘그건 불가한 일입니다, 마마. 고려가……, 허약한 우리가 감히 명나라를 향해 칼을 빼들다니요?’
하지만 이성계는 우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유 여하 간에 장군의 몸으로 어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 뿐만 아니라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개진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조정 어전회의 석상이라면 몰라도 우왕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본 뒤에 명령만 하달하는 식이 아니었던가?
개경의 자택으로 돌아오자 백마가 긴 울음을 토해냈다. 방원이가 가슴 조이며 기다리다가 맨발로 뛰어 나와 이성계를 맞이해 주었다.

10. 난세별곡(1)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방원은 정벌군의 선봉장은 아버지가 되리란 짐작을 금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니만치 당장 암담한 심정에 사로잡혔다.
“아버님, 돌아오셨습니까? 어서 안으로 드소서.”
“오냐.”
백마의 울음소리에 부인 한 씨도 대문 밖으로 나와 남편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녀로서는 지아비가 또 어떤 어명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 상태였다.
방원이 아버지의 마음을 읽기나 한 것처럼 서둘러 한 가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아버님. 무학대사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뭐라? 무학대사께서?”
역시 이성계는 반색을 하였다.
“그렇사옵니다.”
“그래, 대사님 모시기에 소홀함은 없었느냐?”
“네, 아버님. 아버님을 만나고자 먼 길을 찾아오신 큰스님께 소홀함이라뇨?”
이성계는 순간적이지만 불안한 표정을 지우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나무관세음보살”
마당까지 나와서 이성계를 기다리던 스님은 그를 대하기 바쁘게 합장부터 하였다.
“아, 대사 어르신.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밤 안으로 회암사로 찾아가 볼 생각이었습니다.”
“허허허. 그럴 것 같아 빈도가 이렇게 찾아 온 것이지요.”
무학스님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이미 생사를 초월해서 살고 있는 스님의 입장에서야 새삼 불안하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만 중생의 모습만이 안타깝게 비쳐올 뿐…….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정해 앉자, 뒤이어 찻상이 들어왔다. 부인 한씨는 정성을 모아 차 한 잔씩 바친 후에 조용히 물러나 주었다. 방 안에는 이성계와 무학스님만이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차만 들었다.
이윽고 이성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사님께서도 소식 들었나 보군요.”
“물론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아니 될 말씀인데 화살이 시위를 떠나 버린 것 같으니…….”
“장군께서 기필코 그 화살을 막아 내셔야 합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백성들은 어이하고 어려운 나라 살림살이는 어떻게 하려고……?”
“이를 말씀이니까, 대사님. 해서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
방원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와 저만큼 떨어진 웃목에 자리잡고 앉았다. 이성계는 그의 의견도 듣고 싶은 지 물리치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 수천 명의 왜구와 전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건 나라의 장래와 국운이 걸린 문제입니다. 아직은 때가 너무 이르다니까요.”
스님이 비장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성계의 시선이 아들에게 향하며 ‘네 의견이 어떠냐?’는 눈치를 띄웠다.
“그렇지만 조정에서는 아무도 드러내놓고 반대 의향을 말할 처지가 아니니…….” 방원이 조심스레 운을 뗏다.
무학스님의 시선도 방원을 향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지난번 공산부원군 이자송 어른이 요동정벌 계획에 반대를 하시다가 권신 임견미 일당으로 몰려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고 또한 젊은 선비 하윤 대감도 불가 의향을 내비쳤다가 엊그제 양주 땅으로 유배되었고…….”
나이에 비해 방원은 조정의 사정도 밝았다.
“관세음보살. 그럼 목은이나 포은 같은 대신들은……? 그들의 생각이라면 상감도 귀 기울여 줄텐데……?”
“제가 아는 한 그 어르신들도 금번의 북벌계획은 옳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데……?”
“…….”
알기는 하지만 차마 발설만은 못 하겠다는 듯 방원은 묵묵부답이었다.
무학스님의 시선이 이성계에게 되돌아갔다.
이성계도 내키지 않는다는 듯 조용히 침묵만을 지키다가 넌지시 운만 땠다.
“상감께서는 사냥터까지 최영 장군을 대동하고 계시더군요.”
무학스님은 단번에 무모한 북벌계획의 주창자가 최영임을 알아차리고, 많은 원로 대신들의 반대의견을 최영이 묵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10. 난세별곡(2)

그날 밤 무학스님은 이성계의 눈시울에 고이는 물기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눈물을 씻어 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물줄기는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무학스님이 직사포를 쏘아붙였다.
“원로대신 최영 장군이 망녕나신 게로구만! 저 멀리 몽고 들판으로 쫓겨난 원나라, 그 원나라 오랑캐떼는 떠받들면서……. 원나라라면 이미 20년 전에 중원에서 쫓겨났건만!”
“사실이 그러합니다, 대사어른!”
방원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니, 무학스님의 직설이 숨통을 틔워준 것 같았다.
“조정의 정황이 그러하니 젊은 주상께서는 더욱이 다른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성계가 사뭇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토하듯 말했다. 방원이 퉁명스레 다시 내뱉었다.
“최장군 고집이 너무나 세십니다요. 막중한 국사인데 당신 혼자서 독단하고 계십니다요. 모든 일을 어르신 멋대로…….”
이성계가 방원을 나무랬다.
“방원이는 가만 있거라. 어르신들 앞에서……!”
그러나 방원은 불같이 치미는 노기를 주체할 길 없다는 듯이 입을 놀리려 들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님? 익히 아버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조정 중신들 사이에 공론이란 것이 없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최영 장군 혼자만의 생각이 처음이자 끝이 아닙니까? 주상께서도 그 어른 눈치 살피기만 바쁜 실정 아니옵니까?”
끝내 이성계가 화를 발끈냈다.
“허허, 이 이놈 말버릇 하며! 주둥이를 꿰맬까보다!”
“나무관세음보살.”
“황공스럽습니다, 스님. 소인을 용서하소서!”
방원은 아버지를 대신하듯 무학스님에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하긴 이성계로서도 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캐캐묵은 옛이야기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근자 최영의 위세는 위험수위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그 해 3월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명나라에서는 자기네 요동백호 왕득명이란 자를 사신으로 고려에 보내면서 철령위의 설치를 일방적인 공식통보 형식으로 기정사실화하려 들었다.
철령위란 함경도 철령 지역에서부터 만주 요양성까지 줄을 긋고, 명나라가 자기네의 국경 방위를 위해 70여개 소의 병참 군영을 설치하고, 그 안의 모든 땅을 자기 나라에 복속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니까 함경도 북부 일부 지방과 압록강 서쪽의 옛 우리 고토를 점령하겠다는 국토침략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하기야 말썽이 난 그 영토는 중국과 고려와의 국경지대로 양국에 끝없는 분쟁의 불씨를 안은 곳이었다. 예로 선왕인 공민왕은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영흥의 쌍성총관부를 쳐 없애고, 압록강 서쪽의 8첨을 되찾아 오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었다. 사실상 우리의 옛 영토였지만 백여 년 간이나 저들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던 영토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명나라 안정을 되찾고, 힘이 생기니까 그 영토를 자기네 것이라 우기면서 다시 저희들 지배하에 두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해온 셈이다.
물론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저들의 주장을 어불성설이라 말할 수 있다. 또 감정적으로 말하더라도 저들의 주장 앞에서는 이가 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을 때 나라간의 분쟁이란 되도록 피할 수밖에 없는 일. 나라간의 세력다툼은 그 냉혹함을 어디에다 비길 수가 있으랴.
이렇게 본다면 요동정벌을 주장하는 최영의 생각은 너무 이상에 치우쳐 있거나 감정만을 앞세운 꼴이 되는 셈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좀 더 기다리며 때를 보자는 이성계의 주장은 냉정한 현실론을 앞세운 꼴이 되었다.
방원이 자리를 뜨지 않아 세 사람은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어려운 세상사를 논하고 있었다. 무학스님만 그 자리에 없다면 한 씨는 주안상을 올릴 테지만 스님이 머무는 방에 차마 주안상은 올릴 수가 없어 차와 다과만으로 야참을 대신했다.
어느덧 그들의 의견은 거의 일치했다. 의견의 일치를 보면서도 그들은 다함께 벽을 느끼고 있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번 출병만은 막아야 합니다. 백성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필시 아깝고 불쌍한 생명들이 많이 다칠 것이며 재물의 손괴는 물론, 자칫 하다간 나라가 결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잘못하다간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것이고, 한 품고 죽은 귀신들이 눈도 못 감고 구천을 떠돌게 될 것입니다. 빈도라고 해서 왜 대의의 옳고 그름과 명분의 떳떳함을 모르겠습니까? 물론 요동은 우리 땅입니다. 마땅히 되찾아야 합니다. 허나 지금은 그럴 때가 절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훗날을 도모해야 합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와신상담 절치부심이란 말을 하면서도 무학스님은 자신을 잃고 있었다. 고려라는 나라의 기강이 너무 해이해진 까닭이었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와신상담 절치부심 해야 할 주체가 쾌락에 빠져 비틀거리는 형국이니 말이다.
“스님의 말씀이야말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천만 번 옳으십니다. 아버님, 제 생각은 이 일을 막으실 분은 아버님밖에 없다고 사료됩니다.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 방에 들어 온 것입니다.”
“으흠!”
이성계는 신음을 토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요동정벌4불가론’이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아니, 그는 한낱 신하된 도리로 눈물을 흘리며 주상 앞에 나아가 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하, 통촉하옵소서. 지금 이제 오늘의 군사를 일으키심은 네 가지의 불가함이 있사옵니다. 첫째는 작은 나라로써 대국을 치려는 것이 그 잘못이요, 무더운 여름철에 대군을 움직이려고 함이 그 둘째요, 온 나라 군사를 한데 모아 원정에 나서게 되면 저 왜구들이 그 틈을 타서 남쪽 지방에 준동하게 될 것이니 그 셋째요, 지금은 마침 장마철이라 노교가 풀리고 군졸 사이 역병이 발생할 것이 뻔한 이치이니 그 네 번째 불가함이옵니다. 마마, 부디 어명을 거두시고 다시 한번 깊이 통촉하소서.’
“내가 주상께 간하면 주상께서도 그 당장은 머리를 끄득이시며 내 말을 옳게 여기십니다.”
하며 이성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요?”
무학스님이 다그쳤다.
“주상이 나중에 최영 장군을 따로 인견하시고 나면 또 생각이 바뀌십니다.”
“주상의 정견이 없음입니다. 그저 최영 장군의 눈치 살피기만 바쁘시니.”
방원이 한심하다는 말했다.
“그렇다면 최영 장군께 이장군이 직접 말씀해 보셨습니까?”
무학스님도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왜 아니 했겠습니까? 은밀히 찾아 뵙고 담판하듯 말씀드렸지요.”
“그랬더니만?”
“꿀먹은 벙어리로 요지부동이십니다.”
“…….”
“최장군은 명분론만 붙들고 앉아 승산 없는 전투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4불가고 5불가고 간에 이기면 그만이란 투이십니다. 꿈을 꾸듯이…….”
하다가 이성계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나라고 왜 명나라를 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저놈의 철령위 설치문제 하나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실 저 명나라의 뻔뻔스럽고 무리한 이번 사건에 대해서 가장 분노하고 통탄해야 할 자가 바로 본인입니다. 나는 선왕이신 공민왕의 큰 뜻을 받들어서 저 압록강변과 동북면 지역을 아니 가본 데가 없습니다. 골골이, 처처이……. 그러니까 내 군마의 말발굽이 흙먼지 일으키면서 그 땅을 내달렸으며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수많은 병사들도 그곳에서 다치고 피 흘리면서 많이도 죽어갔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아버님 따라서 영흥의 쌍성총관부를 칠 때도 그랬으며, 저 여진족의 호발도 군대를 사로잡고 내가 공략해서 뺏아낸 오로산성 등등. 온갖 짓이 시방도 내 눈 앞에 선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우리 조상의 옛 땅을 원나라로부터 되찾아 냈던 것이지요. 저 오랑캐로부터 장장 백여 년 만에. 그런데 이번에는 또 명나라가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며 뻔뻔스럽고 음흉하게 다시 지배하겠노라고? 오, 통탄스런지고. 아니 될 말입지요. 절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없습니다. 왜 내가 그런 것을 모르겠습니까? 나 이성계가 어디 바보란 말입니까?”
그날 밤 무학스님은 이성계의 눈시울에 고이는 물기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눈물을 씻어 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물줄기는 도도히 흘러가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하릴 없이 회암사로 되돌아왔다.

 

10. 난세별곡(3)

 

이상하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간 이성계가 이끄는 군사가 참가하는 전투라면 무조건 ‘이성계 장군의 승리’라는 확신이 앞서곤 했는데, 왠지 이번 전투에선 그런 확신이 생겨나지를 않았다.


며칠 후, 이성계는 밀려오는 큰 물줄기를 혼자 힘으로 가로 막아 보겠다는 심정으로 우왕 앞에 나아가 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심정은 비장하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했다.
“그래, 무슨 할 말이 있는고?”
우왕은 지난 밤에도 주지육림 속을 헤매인 듯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마마, 부디 통촉하소서. 수문하시중 이성계가 간절히 아뢰옵니다. 전하께서 반드시 요동정벌의 대계를 이룩하고자 하신다면 그 때를 바꾸소서. 신이 살펴보건대 출사의 시기를 다시 정하심이 가할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오는 가을철을 기다려서 출사토록 하소서. 그때는 오곡백과 무르익고 들판에 나락과 곡식이 풍성하여 대군의 먹거리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진군함이 좋을 것이며 시기 또한 늦지 않을 줄로 압니다. 지금은 내일모레 무더운 여름과 장마철을 눈 앞에 두고 있어 군사를 움직일 때가 못 되옵니다. 전하, 비록 우리가 요동의 어느 한 성을 빼앗는다 해도 바야흐로 장마가 들면 군사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이 진퇴유곡의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군병의 사기가 떨어지고 군량미 또한 끊어지게 될 것이니, 이는 오직 화를 자초하는 결과가 될 뿐이옵니다. 전하, 나라와 백성의 환난과 불행이 여기서 비롯될까 심히 두렵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소서, 마마…….”
이성계의 목소리는 하늘도 움직일 것만 같이 절실했으나, 우왕은 멀뚱멀뚱 건성으로 듣기만 했다.
우왕의 귀는 오직 최영의 목소리 쪽에만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역사의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나 있었으며,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진 다음이었다.
1388년, 우왕 14년 4월 열여드렛 날. 석가 탄신일인 4월 초파일의 봉축 열기가 채 식기도 전인데 요동정벌의 대군이 마침내 평양성을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북쪽을 향한 진군의 나팔소리는 하늘 높이 울려 퍼졌고, 군마들의 소리 또한 초여름날의 신록을 소스라쳐 놀라게 했다.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고, 수많은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성계의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러나 전쟁터로 나아가는 장군이 부정적인 감정이나 불길한 마음 따위를 내비칠 수도 없는 일.
“퉁두란 장군, 준비 다 됐는가? 우리도 발진토록 하세!”
“네. 장군님!”
이성계가 군마에게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이성계를 등에 실은 백마가 전에는 하지 않던 일을 했다. 출발 신호로 박차를 가했는데 웬일로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내뿜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말을 움직이면서 퉁두란은 이성계의 말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불길한 징조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성계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해서 백마가 울어주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다시 박차를 가했다.
이윽고 땅이 움직이듯 대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스물 다섯 살의 젊은 임금 우왕과 일흔 세 살 백발의 최영이 개경에서 평양까지 올라와 대군을 격려하고 그들의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우왕은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삼고, 조민수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임명해서 요동성을 함락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었다.
“최장군, 우리 병력이 얼마나 된다고 했소?”
우왕은 그제서야 최영에게 아군의 현황을 묻고 있었다.
“네. 좌우군 합해서 4만이요, 군속이 일만이며, 군마가 2천 필 가량입니다.”
최영은 흰 수염을 바람결에 맡긴 채 우왕이 알아듣기 쉽게 대략적으로 병력 현황만 보고했다.
당시 출정군의 정확한 군세는 좌우군 숫자가 합계 38,830명이요, 이에 따르는 군속이 11,634명이요, 군마가 21,681필이었다.
“이 정도 군세면 안심할 수 있겠소?”
그제서야 우왕은 전쟁을 실감한 듯 다소 불안한 기색을 띄웠다.
“그까짓 요동 정벌에 10만 대군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중원 전체를 빼앗자는 것도 아닌데…….”
“…….”
“우군도통사 이성계 장군이나 좌군도통사 조민수 장군이나 하나같이 명장이요, 맹장들 아닙니까?”
최영은 이성계나 조민수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우왕의 가슴 한편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이성계의 요동정벌 불가론을 무조건 묵살했기 때문이었다. 듣고 보면 그의 주장이 그럴 듯했지만 최영의 고집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
“요동 땅을 되찾긴 해야겠지만…….”
우왕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북녘하늘에 먹구름이 일고 있었다.

11. 위화도 회군(1)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섰다는 소식은 전국 방방곡곡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옛 국토를 회복하고, 명나라의 콧대를 꺽어 고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절실한 희망사항이었지만, 당장 먹고 살기조차 힘든 민초들의 입에서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오기도 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가족들은 잠을 설치다 못해 왕실을 향해 원망의 하소연을 일삼았고…….
한마디로 당시의 민심은 요동정벌을 ‘무모한 도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절대 왕권시대였으니 그저 제발 내 아들, 내 남편이 무사히 귀향하기만을 기원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학스님과 원융스님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회암사의 보광전 법당에서 예불을 올릴 때도 요동정벌에 나선 군사들의 무운장구만을 빌었으며, 승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고려 군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무사히 귀환하기만을 기원했다.
때 아닌 오월장마가 계속 되었다. 회색빛 하늘에서 쉬임없이 쏟아지는 구질구질한 장마비는 스님의 심사를 더더욱 답답하고 울적하게 만들었다.
“관세음보살!”
무학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이 없는 한 고려가 요동정벌에 성공할 수 없으리란 염려를 견지하고 있었다.
이상하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간 이성계가 이끄는 군사가 참가하는 전투라면 무조건 ‘이성계 장군의 승리’라는 확신이 앞서곤 했는데, 왠지 이번 전투에선 그런 확신이 생겨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내심을 어느 누구에게 발설할 수도 없는 일.
“아이고, 성가시고 지긋지긋한 비. 한여름도 아닌데 이 무슨 날씨입니까요? 큰스님께서는 이전에도 이런 오월 장마비를 보셨습니까?”
강월헌에 앉아 열린 문 밖을 내다보고 있던 원융스님이 두 눈 지긋이 감고 돌부처처럼 앉아 있는 무학스님을 향해 군소리처럼 가벼운 물음을 던졌다.
“…….”
무학스님은 대꾸를 하려 들지 않았다. 원융스님의 물음을 받고 생각해 보니, 오월 장마비를 본 것도 같고 본 적이 없는 것도 같았다.
원융스님은 스님의 심정을 꿰뚫어 보면서 일삼아 짖궂은 질문을 다시 던지듯 했다.
“북쪽 저 압록강에도 이런 구중중한 비가 오실까요, 큰스님?”
“글쎄다.”
“비 내리고 춥고 하면 군사들 고생이 많겠습니다요. 마음껏 싸울 수도 없을테고. 헤헤헤……. 이성계 장군님도 속이 타겠구만요.”
원융스님은 끝내 이성계란 이름까지 들먹거리며 스님을 자극했다. 그는 스님의 침묵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 그래도 무학스님의 입은 열리지가 않았다.
“큰스님. 백성들은 말이 많습니다요. 원망 소리도 많고…….”
비로소 무학스님의 두 눈빛이 ‘왜냐’는 뜻을 담고 원융스님을 향했다.
“그럴 수밖에요. 얼마되지도 않는 군사를 일으켜 대국을 치겠다니. 마치 버마재비가 굴러오는 수레바퀴에 대드는 꼴이라는 말들입니다요. 자기 힘도 분수도 모르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당랑거철(螳螂拒轍)인 게야, 당랑거철!”
무학스님은 원융스님이 당랑거철이란 고사를 일깨워 줘 고맙기까지 했다. 제나라 때 장공이 사냥을 나가는데 버마제비가 두 앞 발을 들고 수레를 멈추려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미약한 제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는 무모함을 빗대는 이 말이 고려가 요동정벌에 나서는 형상과 어슷버슷했던 것이다.

 

11. 위화도 회군(2)


어명을 받아 읽던 이성계의 얼굴빛이 침통하고 어둡게 변했다. 아니 그는 그 어명 속에서 노욕에 찌든 최영의 얼굴을 떠올렸으며, 그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었다.


모처럼 스님이 자기 말에 맞장구를 쳐주자, 원융스님은 신이 난다는 듯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뿐만도 아닙니다요. 옛날처럼 댕기머리에다 옷은 호복으로 갈아입도록 조정에서 명을 내렸다고 했습니다요. 과거 원나라 때 오랑캐 같은 복색으로, 그래야만 명나라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것이 일어난다면서요. 헤헤헤. 백성들이 너도 나도 코웃음 칩니다요, 큰스님. 꼭 어린애 장난같이 싱겁고 우스운 얘기지요. 조정에서는 세월이 거꾸로 흘러 가고 있다니까요.”
“허허, 그 놈의 주둥이 함부로 나불 댈거냐?”
스님이 호통을 치자, 원융스님은 머쓱해지면서 자신이 도를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사죄했다.
“아, 예. 큰스님, 잘못 했습니다요.”
“니놈 말을 듣다보면 내가 귓구멍이라도 씻고 싶은 심정이다.”
무학스님은 차라리 잊고 싶어 했던 말들을 원융스님이 일깨워 주워서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 우리 조정은 재주가 많아서 흘러가는 냇물을 거꾸로 돌리고 있지. 차라리 원융이 니놈이 대신 정승 노릇 하는게 더 낫겠다. 어리석고 가소로운 인생들…….’
그때 개구리 한 마리가 마당으로 뛰어들어 무학스님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 평양을 출발한 요동정벌군은 그 해 5월 초이랫날에 압록강의 가운데 있는 위화도란 섬에 무사히 도착, 진을 쳤다.
그러나 처음부터 병사들의 사기는 드높지 못했고, 눈치껏 대오를 이탈, 도망치는 군졸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도망가는 병사가 잡힐 경우에는 사정없이 참하겠다는 군령을 엄히 내렸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는 일이었다. 도망치려는 군사들의 마음이란 건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부모처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ㅂ고 죽고 싶다는 각오들을 한 것이었다.
게다가 압록강 유역에도 비가 계속 쏟아져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따라서 위화도의 군사들은 오도가도 못하는 진퇴유곡에 빠진 형세가 되어 버렸다.
‘이 일을 어찌한다? 이 일을?’
이성계는 바다로 변해 가는 강물을 지켜보면서, 망망대해 속에 유배되어 버린 듯한 막막함에 젖어들었다.
아무 말도 못하면서 두꺼비처럼 두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살펴보아도 별다른 대책이 생겨나질 않았다. 사기 드높아 승리를 확신하는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에 임해도 불안감을 떨치기는 어려운 법인데 ‘과연 승산이 있을까’하는 회의감에 빠진 병사들을 지휘해서 전투를 할 생각을 하니 더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생각다 못해 이성계는 우왕에게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다시 한번 요동출병의 부당함을 밝히면서 군사를 돌이킬 수 있도록 윤허해 달라는 내용을 썼다.
‘마마. 신등이 부교를 놓고 압록강을 건너려 하니 때아닌 장대비가 내리고 강물이 불어나서 첫 여울에서 빠져 죽은 자가 수백 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더는 나아갈 수가 없어서 지금 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에 머물러 있사옵니다. 그리하여 헛되이 군량미만 축내고 있으니, 장차 요동성에 닿으려면 그 사이에 큰 내들이 많아서 건너기 어려울 것 같사옵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략한다는 일은 종사와 생민의 몫이 아닌가 합니다. 하물며 요즘은 장마철인지라 활은 물기를 머금어 풀리고, 갑옷은 물에 젖어 무거워서 군사와 말이 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억지로 휘몰아서 굳게 지키고 있는 저들의 성채로 진군하게 되면 서로 싸워도 필승을 기할 수가 없으며, 공격을 해도 그 성채를 반드시 빼앗는다고 장담할 수 없사옵니다.
이런 어려운 정황에 만일 군량미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면 그때는 꼼짝없이 진퇴유곡이 되고 말 것이니, 장차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바라옵건대 전하께옵서는 군사를 돌이키도록 어명을 내리시어 이 나라 백성의 소망을 부디 저버리지 마옵소서.’
이성계의 글월은 사실 그대로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최영의 고집만은 이성계의 글월이 좀체 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우왕의 마음여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대가 개경에서 왔다고?”
“그렇사옵니다, 장군.”
어느 날 이성계는 위화도 군막 안에서 내시 김완의 방문을 맞이했다.
“그래. 무슨 내용을 가지고 왔는고?”
김완은 품에서 어명이 적힌 글을 꺼내 올렸다.
어명을 받아 읽던 이성계의 얼굴빛이 침통하고 어둡게 변했다. 아니 그는 그 어명 속에서 노욕에 찌든 최영의 얼굴을 떠올렸으며, 그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가 있었다.
‘잔소리 금나하고 빨리 진군하시오. 악천후를 피하려 들지말고 이용하란 말이요, 이용. 어디 우리에게만 악천후가 되는 것이오? 저들도 악천후 속이 되지 않느냐 말이요. 이장군! 기회가 자주 오는 것이 아니오. 요동정벌의 숙원을 이번 기회에 꼭 풀어야 한단 말이오. 우리 생전에 그걸 보고 가야 하지 않겠소?’
이성계는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김완을 손짓으로 돌려보냈다.
빗소리가 더더욱 요란해졌다. 압록강 건너 요동땅이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았다.
‘아니야. 하늘이 우리 편이 아니라니까!’
이성계는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다.
“장군님 계십니까?”
눅눅하게 비에 젖은 목소리를 던지며 퉁두란이 그의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성계의 대답은 들을 생각도 않고 급하게 말을 이었다.
“도통사 어른! 군졸들이 또 도망쳤습니다요. 이제는 몰래 뗏목까지 만들어 가지고 강을 건너 줄행랑을 칩니다요.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
그래도 대답이 없자 퉁두란은 힐끗 이성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근심거리가.”
“여기 앉으시구료, 아우님!”
퉁두란이 조심스레 의자에 몸을 실었다.
“…….”
“조정에서는 다른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까?”
“아무리 구구절절한 상소를 올려도 대답은 매 한 가지일세!” 사실 퉁두란은 내시 김완이 그곳으로 오간 걸 알고, 반가운 소식이나 들으려나 하고 달려왔던 것이다.
“젠장. 우리가 무슨 거짓말이나 하고 잔꾀나 부리는 것으로 아는 모양이죠? 무심하고 답답한 어른들. 이러다가는 멋지게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압록강 물귀신이 되고 말겠습니다요.”
퉁두란은 노골적으로 불퉁거렸다.
“우선 이 장마비가 그쳤으면 좋으련만……. 부처님께 그거나 빌어보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염불도 속마음이 편해야죠. 어디 염불인들 제대로 되겠습니까요?”
“무슨 그런 허튼 소리?”
“그건 그렇고……, 하나둘 설사병을 앓는 병사들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염려했던 대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설사병이라니! 그렇다면 정말 큰 일 아닌가? 역병이라도 도는 날이면, 이 일을 어찌할고!”
“속수무책이죠 뭐. 젠장, 너 죽고 나 죽고 아니겠습니까요? 허허허…….”
퉁두란이 기가 막히다 못해 선웃음을 뿌렸다.
“퉁두란, 웃을 일이 아닐세. 무슨 대책을 세우도록 해야지!”
“대책이라뇨?”
퉁두란은 두 눈을 부라렸다.
“장마와 홍수에다가 설사 돌림병까지……. 아비지옥 아닌가?”
별안간 퉁두란이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압록강 위로 끊임없는 장마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윽고 무슨 결심이 선 듯 퉁두란이 나직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장군님. 대책 한 가지 말씀 올릴까요?”
“무슨 대책! 대책이 있다면 주저말고 말해 보시게!”
“그러나 놀래지는 마십시오.”
“내가 왜 놀래나?”
“그러고 또 소인더러 꾸지람도 하지 마시구요.”
“이 사람. 무슨 뜸이 그렇게 길어?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일세.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해 보시게.”

 

11. 위화도 회군(3)


“저기 설봉산 토굴을 찾아가면 큰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셔. 그 어른이 도승이야, 그 도승을 찾아가서 뵙고 물어보시게나. 간밤의 꿈자리를.”  안변천에서 설봉산 토굴을 일러주던 노파의 모습이 노리에 스쳤다. 그러자 연이어 무학스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들려왔다.

숨가쁘게 여기까지 말하던 퉁두란은 또 다시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성계도 이번에는 채근질하려 들지 않았다.
“형님. 이런 생각 저 혼자 해본 것은 아닙니다요.”
“…….”
“오늘 아침나절에 부하들 몇이 날 찾아왔었습니다요.”
“그래서?”
“그러니까 저쪽 동북면 출신 장졸들이지요. 지금까지 장군님 따라 함께 싸워 왔던 바로 그자들말입니다.”
“그자들이?”
비로소 이성계의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다짜고짜 나한테 하는 말이, 차라리 이런 판세라면 우리네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향땅? 저 함경도말씀인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옆으로 빠져 옛 고향땅으로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화전밭이나 일구고…….”
“음, 그래서 아우님은 뭐라고 말했나?”
“말씀을 더 들어 보십시오. 함경도 장졸들 이야기는 자기네만 떠나지는 않겠답니다. 우리들 모두가 다 함께…….”
“우리들 모두가?”
“그렇습니다, 도통사 어른! 차마 장군님을 여기 두고 자기네만 떠날 수는 없는 일이며……. 장군님을 꼭 모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요. 그러니까 말씀을 아니들어 주시면 억지로라도 모시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까짓 위화도 섬에서 개죽음 당하느니 그게 백 번 옳다는 뜻이었죠.”
퉁두란의 시선에는 불꽃이 일어 있었다.
“그래. 허나 나도 어쩔 바를 모르는 일!”
이성계는 한숨을 토하듯 중얼거렸다. 주하 장졸들의 진솔하고 뜨거운 마음씨에 새삼 가슴 찡한 아픔과 감동이 밀려왔지만, 달리 할 말이란 게 없었던 것이다.
그날은 그쯤에서 두 사람이 헤어졌다. 이성계는 퉁두란을 통해서 병사들의 불평불만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족했다.
그랬는데 날이 갈수록 병사들의 동요가 눈에 띄게 고조되어 갔다. 아무리 봐도 장대비로 변해 있는 장마비가 쉬 그칠 것 같지도 않았다.
이틀이 지나자 퉁두란이 다시 이성계의 군막으로 건너와 좀더 강도 높게 저번에 했던 말을 반복하려 들었다.
이윽고 이성계가 역정을 냈다.
“아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게야? 누구 맘대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게야? 우리가 누구네 사병(私兵)들이란 말이냐?”
그러자 퉁두란도 목소리를 높였다.
“통도사 어른! 군사들의 불평불만도 절대 무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보십시오. 밤낮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강물은 홍수처럼 불어나는데, 부대 안에서는 설사병이 번져 생난리들이 아닙니까요? 그러니 이놈의 위화도 섬 구석에서 물귀신이 되느니 고향에나 돌아가 편히 죽겠다는 것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함경도 출신 장졸들은 통도사 어른을 위해서 그런 말씀을 하는 거구요.”
“어명을 어기고 군문을 떠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 행동은 반란이요, 반역 행위란 걸 몰라서 그러는가?”
“누가 그런 걸 모릅니까요?”
퉁두란의 어조도 완강하기만 했다.
“아는데?”
“사세부득이란 말씀입니다.”
“사세부득이라면? 아니 그렇다면 함경도 친병들이 날 보쌈질이라도 해서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인가?”
“장군께서 거느리는 친병들이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는 충정 아니겠습니까? 결국 나랏님이 우리 사정을 몰라 주는데 무엇을 더 바라고 무엇을 위해 더 주저할 필요가 있겠느냔 말씀입니다.”
“음…….”
이성계는 비통한 신음을 토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성계 장군의 친병’이란 이른바 당시 힘께나 쓰는 장수나 권문세도가들이 저마다 사사로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私兵)들을 말하는 것이다. 대개 2백여 년 전 최충헌의 무신정권 시절부터 그러한 사병제가 유행되었는데, 그 사병제의 폐해와 부정은 결국 고려왕조를 병들게 한 또 하나의 크나큰 원인이 되기도 했다.
퉁두란은 이성계가 심각한 고뇌와 번민에 빠진 모습을 지켜 보다 말고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군사가 앞으로 더는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돌아설 수도 없는 일이니, 이성계의 마음 고생은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아, 이럴 경우 스님이라도 가까이 계셨으면.’
이성계는 그 누구에게 묻고 싶어졌던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떡하면 좋으냐고.
“저기 설봉산 토굴을 찾아가면 큰스님 한 분이 살고 계셔. 그 어른이 도승이야, 그 도승을 찾아가서 뵙고 물어보시게나. 간밤의 꿈자리를.”
안변천에서 설봉산 토굴을 일러주던 노파의 모습이 노리에 스쳤다. 그러자 연이어 무학스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 들려왔다.
“빈도는 천기를 이야기하고 있음이오. 천기를 누설해선 안 되오. 대자대비 부처님의 뜻 받들고 하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면서 부디 삼가고, 부디 매사를 튼튼히 하시기 바랍니다. 4백 년 고려는 그 국운이 다했어요. 바람 앞에 가물거리는 등불이며 서산마루에 걸린 낙조입니다. 이 나라 강산과 피폐해진 백성을 위해서…….”
이성계는 군막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고려왕실이 무너지려고 요동정벌 계획을 수립했던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이성계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늘이 자기에게 정해준 때가 왔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던 것이다.
퉁두란은 여전히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로서는 할 일도 할 말도 더 이상은 없었다.
“이럴 때 대사가 곁에 계셨더라면…… 그 어른이 뭣이라고 말씀하시겠는가?”
이성계는 헛일삼아 퉁두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 어른이 무슨 말씀을 하다뇨? 부처님이나 모시는 스님에 불과한데…….”
퉁두란은 ‘느닷없이 왠 스님을 찾느냐’는 식으로 투덜거렸다.
그때였다. 군막 밖에 몰려온 병사들이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온 모양으로 목청껏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도통사 어른! 돌아가십시다!”
“이런 판국에 우리가 왜 싸웁니까?”
“함경도로 가십시다, 도통사 어른! 돌아가십시다!”
“이런 판국에 우리가 왜 싸웁니까?”
“함경도로 가십시다, 도통사 어른! 죽더라도 함경도로 가서 죽읍시다, 도통사 어른!”
“위화도를 떠납시다. 위화도에서 물귀신 될 수 없는 일이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십다, 도통사 어른!”
이성계는 기가 막힌 듯 퉁두란에게 나직히 말을 걸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노릇이란 말인가? 나 이성계 휘하의 병사들이 감히…….”
“보십시오, 장군님. 내 말이 헛소리가 아니질 않습니까? 장군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저 병사들이 저렇게 나올 때는 죽을 각오들을 한 것입니다요. 이러다가는 무슨 큰 일 벌어질 것 같습니다요.”
이성계가 군막 밖으로 나섰다. 그곳에 몰려 온 병사들은 하나같이 빗물이 흥건하게 고인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병사들은 비에 흠뻑 젖어 있었으며, 이성계도 금새 비에 젖었다.
군막을 나설 때 이성계는 ‘이런 발칙한 것들’하고 혼내줄 심산이었으나, 막상 비에 젖은 병사들의 꼴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일어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돌아들 가거라, 돌아들 가. 도통사 어른이 너희들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다.”
어느 틈에 군막에서 나와 있던 퉁두란이 이성계를 대신해서 병사들에게 한 마디 했다.
이성계는 말없이 군막 안으로 돌아섰다. 까닭모를 눈물이 그의 눈시울에 어렸다. 그날 따라 병사들이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던 것이다.


 

11. 위화도 회군(4)

그날 밤 무학스님은 회암사 뒤뜰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두커니 있었다. 흡사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밤하늘이었다. 그토록 구중중하던 장마비가 언제 내렸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밤하늘은 실로 청명하기만 했다.


그날 사건 이후 병사들 사이에는 이성계가 군대를 돌이켜 함경도로 향할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했던 이성계의 침묵을 병사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혹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 결과이었다.
이윽고 그런 소문은 바람에 날리듯 좌군도통사 조민수 장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뭐라구? 이성계 장군이…….”
조민수가 창황망조하여 이성계의 군막 안으로 달려왔다.
“이장군! 어이 된 영문입니까? 장군이 함경도로 떠나 버리면 뒤에 남은 우리들은 요동벌 귀신이 되란 말씀이시오?”
“아직은 결정된 바 없소이다, 좌통사!”
“차라리 그렇다면 함경도로 나아갈 것이 아니고, 도성으로 내려가야지요.”
 이성계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함경도가 아니고 어디라구요?”
“도성 말씀입니다. 개경성으로!”
“개경성?”
“그렇소!”
조민수의 목소리는 너무도 또렷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좌통사?”
“회군을 결행한다는 말씀이외다.”
“회군이라면?”
“말머리를 돌리자는 것이오, 말머리를! 그렇잖소, 이장군? 상감이 계시는 대궐과 최영 장군이 버티는 개성으로 말머리를 돌리자니까요.”
“좌통사! 그 말씀이 진심입니까? 아니면 나를 떠보자는 말씀입니까?”
“이장군! 지금 떠보고 자시고 할 겨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행동을 함께 하십시다. 이장군과 내가 손만 잡았다하면……, 까짓거…….”
이성계는 자신도 모르게 조민수의 두 손을 덥썩 잡았다.
“장군! 고맙소! 잘 아시다시피 나는 몇 차례나 상감께 상소를 올린 바 있습니다. 이번 일은 매우 부당하고 심히 적절치 못한 어명이라고……. 그런데도 주상께서는 미처 깨닫지를 못하고……, 최영 장군께서는 고집만 피우셔서……. 해서 우리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사를 그르치고 있는 나쁜 무리들의 책임을 묻고, 불쌍한 백성을 편안하게 하지 않을 수 없음입니다. 오로지 나라와 사직의 안위가 우리들 어깨에 매달려 있어요.”
드디어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의 결단을 내린 셈이었다. 높디 높은 장대끈이자 아슬아슬하게 외로운 백척간두(百尺竿頭) 높이 서서, 그는 온몸을 던져서 스스로 선택하고, 그의 인생을 걸어 다가올 운명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이성계는 그 해 5월 스무이튿 날 압록강 가운데의 섬 위화도에서 남쪽 개경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위화도에 둔을 친 지 꼭 보름만의 회군이었다.
그리하여 역사의 물굽이는 이성계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12. 큰 별 하나(1)

 ‘개경을 향한 진군!’이란 이성계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병사들 중에는 어명에 반하는 회군이 무슨 의미를 뜻하는가를 아는 자도 있었고, 단순한 귀향쯤으로 여기는 순진한 자들도 있었다.
“와, 회군이다, 회군!”
낯선 북녘으로 달리던 때와는 달리 말들도 남행길이 더 신난다는 듯 바삐 움직여 주었다.
‘운명인 게지, 운명!’
이성계는 비장한 결심을 몇 번이나 하다말고 모든 일의 결과는 하늘에 맡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들 군대가 회군을 개시하자,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장마비는 뜸해졌으며, 어둡게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들도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장군님, 보소서. 하늘도 우리 편인가 보옵니다.”
퉁두란이 말을 걸었다.
그러나 이성계는 처벅처벅 걷고 있는 말등에 몸을 내 맡긴 채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퉁두란도 입을 꾹 다문 채 한동안 말등에 몸을 맡겨두고 있었다.
“퉁두란! 지금 자네 심정은 어떤가?”
이번에는 이성계가 퉁두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판사판입니다. 까짓거 죽느냐 사느냐죠 뭐!”
퉁두란은 느긋한 배포를 내보였다.
“그렇지 뭡니까? 장군께선 이미 칼집에서 칼을 뽑으셨는데…….”
“그래. 앞으로 실패란 없어. 또 있어서도 안 되고 말고……, 자넨 지난 날처럼 변함없이 내 곁에서 날 도와 주시기 바라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백골난망이로소이다.”
험한 산길을 만나자, 그들의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나란히 말을 걷게 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윽고 길이 넓어지자 이성계가 또 말을 이었다.
“퉁두란!”
“네. 장군님!”
“언젠가 여진족 호발도란 놈을 길주평야에서 대파할 때……, 그때 일 생각 나시는가?”
“물론 잊을 수가 없는 일이죠. 벌써 십 년 전 일이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 왜 자네 자당께서 세상 떠나셨던 일, 그 무렵에 때마침 자네는 모친상을 당해서 북청에 내려가 있었잖았어? 노모께서 사시던 집에.”
“예. 그랬습니다. 그러자 장군께서는 북청까지 친히 문상을 위해 찾아오셨잖습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지간히 무례했으며, 자네 또한 어지간히 다혈질이었어. 상복을 입고 있는 자네더라 내가 이렇게 말했을 걸. ‘퉁두란 미안하오. 나라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판에, 그대가 상복 입고 집에서 세월만 보내서야 쓰겠소? 그 삼베옷 벗어던지고 날따라 호발도를 치러 가십시다. 돌아가신 자당께서도 아마 용서해 줄게요’ 그리해서 자넨 두 말 않고 당장 상주 옷 벗어 던지고 나를 따라나서 주었지!”
“허허허, 그때 장군님의 간곡하신 말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반듯해야 가정도 있는 일 아니냐는 말씀.”
“그때 참으로 고마웠네. 자네가 그렇게 선뜻 따라나서 주어서 내가 용기를 얻고 호발도 놈을 때려잡을 수가 있었지. 하하하…….”
실로 오랜만에 이성계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무학스님은 회암사 뒤뜰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두커니 있었다.
흡사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밤하늘이었다. 그토록 구중중하던 장마비가 언제 내렸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밤하늘은 실로 청명하기만 했다.
‘오, 이 무슨 조화련고?’
무학스님은 혼잣말로 경이로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님은 깜짝 놀랄 일을 목격했던 것이다.
도성이 있는 서북쪽 하늘가에 불덩이같이 생긴 꼬리달린 큰 혜성 하나가 난데없이 나타나더니 주위에 있는 뭇별들을 마구 집어삼키질 않겠는가?
‘저런! 저런 괴이한지고……. 오, 바야흐로 큰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나무관세음보살!’
혼잣말로 스님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뭇별들을 집어삼키던 큰 혜성은 또 금방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음!”
스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날 새벽 일찍 무학스님은 예불을 마치기 바쁘게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원융스님이 모를 일이란 듯 자꾸 스님의 눈치만 살폈다.
“도성에 좀 다녀오마!”
무학스님은 이런 말 한 마디로 원융스님의 궁금증을 풀어주려 들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결과만 낳았다. 그 말 한 마디는 원융스님의 궁금증을 더 부풀렸던 것이다.
전시중이라 민심이 흉흉한 데다, 별야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판이었으니 무학스님이 느닷없이 길을 떠나려 함에 원융스님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큰스님 모시고 저도 동행하면……."
원융스님은 죽으나 사나 스님 곁에 있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니다. 니놈 갈 곳이 못되는 곳이다.”

 

12. 큰 별 하나(2)

 

‘좌도통사 조민수와 우도통사 이성계 등은 군신의 대의를 저버린 자라 그 관직을 삭탈하는 바이며, 이들 반역을 꾀하고 있는 장수들을 잡아오는 자에게는 비록 그 신분이 보잘 것 없고 천한 노비일지라도 나라의 관직을 주고 또한 많은 상금을 내릴 것이니라.’


무학스님은 갈길이 바쁘다는 듯 서둘러 천보산 회암사를 뒤로 하고 개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길가의 풀숲 이슬이 스님의 장삼자락을 촉촉하게 적셨다.
‘필시 나라 안에 큰 이변이 일어날 조짐이었어.’
무학스님은 지난 밤의 광경들을 떠올리며, 잔뜩 불안해 했다. ‘요동정벌에 나섰던 고려군이 역으로 명나라 군에게 대패를 하려나’하는 생각도 들었다가, 장마 뒤를 이어 찾아오기 마련인 무슨 괴질이라도 창궐해서, 무고한 백성들이 횡액이라도 당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것도 아니라면 또 어느 바닷가에 수많은 왜구가 몰려와 선량한 고려인들을 도륙하려나 하는 걱정도 꼬리를 이었다.
뭇별들을 집어삼키는 큰 혜성의 의미가 결코 길조는 아닐 것만 같았다. 큰 혜성이 나타나 뭇별들을 토해냈다면 모르지만.
‘그렇다면…… 무슨 변이 생겨날 것인가?’
무학스님은 그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으며, 자신이 먼저 어떤 징조를 발견한다면 적극 막아보겠다는 결심까지 굳히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말울음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머잖아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말 한 마리가 스님 시야로 들어왔다.
무학스님이 범원리를 지나고 파주 문산을 거쳐서 임진강 나루터를 향해 가던 길이었다.
‘파발마인 게지!’
스님은 자기 앞으로 질주해 오는 말의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한 쪽 갓길로 몸을 바싹 붙여 주었다.
그런데 달려오던 말이 무학스님 앞에서 큰 울음 소리를 내면서 우뚝 멈춰섰다. 그와 동시에 웬 젊은이가 말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이게 누구야?’
스님이 상대방의 신원을 파악하기도 이전이었다. 말에서 뛰어내린 젊은이가 먼저 합장배례로 예를 올렸다.
“큰스님. 시생 방원이옵니다.”
“오, 이방원 선비가?”
스님도 그를 반가워했다.
“그래, 어디로 그렇게 바삐 가시는 길인가?”
스님은 반가움과 동시에 궁금증도 지녔던 것이다.
“네. 시생은 지금 대사님을 뵙고자 회암사로 달려가는 길이었습니다.”
“뭐야?”
“그런데…… 도중에 이렇게 대사님을 뵙게 되었으니 천만 번 다행한 일이옵니다.”
“늙은이 역시 도성으로 행하는 길이었어요. 해서 자네라도 한번 만나볼가 하는 생각으로. 자넬 만나면 답답한 심사가 좀 풀리려나 하고…….”
“그렇다면 잘 된 일이옵니다, 대사님!”
“그러기…….”
하면서 무학스님은 찬찬히 방원의 얼굴 표정을 뜯어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방원도 무엇에 쫓기고 있는 얼굴 표정이었다.
“그래, 도성에는 별고 없고?”
무학스님이 넌지시 물어보자, 방원은 사위를 경계하는 눈빛을 굴리더니 목소리를 은밀한 쪽으로 모우며 이렇게 대답했다.
“도성은 잠잠한데, 저쪽 압록강변에서 큰 일이 일어났다고 하옵니다.”
“압록강?”
“아버님께서 회군 중이시란 말씀입니다.”
“아뿔사, 관세음보살!”
무학스님은 순간 무슨 방망이로 뒤통수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현기증을 느꼈다.
“어르신, 저로서도 아직 상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사옵니다. 그저 아버님이 군사를 몰아서 남쪽으로 내려오고 계시다는 것밖에는. 그러니까 말머리를 돌려 도성으로 향했다는 정도이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벌써 도성 안에는 흉흉한 소문이 자자하고, 민심 또한 뒤숭숭하기 짝이 없습니다요. 대사님, 무슨 짐작이 가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스님은 비로소 ‘때가 왔구나’ 싶었지만 한동안 망설였다.
“대사님!”
방원이 갑갑해 죽겠다는 듯 재차 스님의 대답을 요구했다.
무학스님이 입을 열었다.
“놀래지 마시게나. 그것이 하늘의 뜻인지도 몰라!”
“하늘의 뜻이라뇨?”
“자네는 아직은 모를 걸세! 알 것도 없고!”
그러자 방원이 큼지막한 글자로 씌어있는 방문(榜文) 한 장을 품안에서 꺼내어 펼쳐 보였다.
“보십시오, 스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방이 지금 곳곳에 나붙어 있습니다. 골목골목과 저자거리 곳곳에.”
무학스님은 방원이 펼쳐 보이는 방을 들여다보다 말고, 자신의 심증을 더욱 확실하게 굳혀갔다.
방문의 내용인즉, 요동정벌에 나섰던 좌우도통사 조민수와 이성계 두 장군이 위화도에서 회군했다는 사실을 알린 다음, 그들 두 장군을 반역의 괴수로 지칭한 것이었다.
‘좌도통사 조민수와 우도통사 이성계 등은 군신의 대의를 저버린 자라 그 관직을 삭탈하는 바이며, 이들 반역을 꾀하고 있는 장수들을 잡아오는 자에게는 비록 그 신분이 보잘 것 없고 천한 노비일지라도 나라의 관직을 주고 또한 많은 상금을 내릴 것이니라.’
그랬다. 고려 조정에서는 가차 없이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대역죄로 다스릴 것을 선언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성계로서는 모든 운명을 걸고 조정과 승부를 겨뤄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결론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무학스님과 방원은 임진강 나루터에서 조금 떨어져 호젓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초여름의 햇살이 신록의 대지 위를 포근히 감싸안고 있었다. 방원이 타고 왔던 말은 느티나무 숲 한 구석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다.
푸르른 임진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묵묵히 그 임진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멧새들은 격량의 역사와는 무관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방원이 새벽을 헤치며 자기를 찾아나선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조정에서 절대적으로 신임하던 이성계가 그간 천하무적의 명장으로 그 위세를 떨쳤는데, 어느 날 하루 아침에 그를 반역의 괴수로 낙인 찍고 말았으니, 그 아들인 방원의 가슴이 그 얼마나 경악하고 불안에 떨었을까?
“대사님! 아버님께서는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으로의 일이 걱정스럽고 두려울 뿐입니다. 시생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종잡을 수도 없고.”
방원은 마치 점쟁이에게 자기 아버지와 자신의 운명을 헤아려 달라는 투로 말했다.
“나무관세음보살!”
“북쪽으로 말을 달려 아버님 군영으로 찾아가 뵈어야 도리가 아닐런지요?”
“그럴 것까지 없을 게야!”
스님은 우선 방원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들었다. 화급하거나 큰 일 앞에서는 우선 냉정을 되찾고 볼 일.
“그렇다고 이렇게 불안과 걱정 속에서 우두망찰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부인께서는 안전하시겠는가? 혹 관아에서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집에 남은 시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야 어머님 이하 가솔들을 우선 성밖으로 피신시켜 놓았습니다. 안전한 곳을 물색해서…….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될 겝니다.”
“열백 번 잘한 일!”
“아마도 아버님께서는 저를 믿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스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버님 때문에 혹여 욕보시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들고……. 그러고 아버님 회군 소식도 한시 바삐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 같고 해서 이렇게…….”
“고맙고 고마우이. 그리고 아버님 걱정은 아니 해도 될 게야!”
“무슨 근거에서 하시는 말씀이옵니까?”
“모르긴 해도 임금께서 대궐의 창고를 열어 금붙이와 비단을 풀어 군졸을 모은다 해도 겨우 기십 명 아니면 기백 명쯤 모여들 걸세. 모여들 그놈들도 겨우 창고 지키는 종놈들이나 시정의 불량잡배들 일 것이고……. 그렇다면 아무리 내노라 하는 최영 장군인들 어쩌겠는가? 마음만 가진다고 해서 대세를 거스릴 수 있을 것 같은가?”
방원은 어금니를 불끈 깨물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비장한 각오가 서려 있는 방원의 눈빛을 건너보다 말고 섬짓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 나이의 젊은이로서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기민한 판단력과 행동의 결단성이 놀라웠던 것이다.
물론 스님으로서도 그 당시의 방원에게서는 가까운 미래에 그가 정몽주를 격살하고, 두 번의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끝내는 제왕의 자리로 나아갈 젊은이란 사실을 점 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런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따로 없었다. 그가 이성계의 아들이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스님은 방원을 도와주고, 그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12. 큰 별 하나(3)

 

아, 내가 고려를 버렸는가, 고려가 나를 버렸는가? 불과 여드레 전에만 해도 고려의 우도통사 이성계였는데 지금은 반역자가 되어 있다니…….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회군을 시작한 이성계가 평양을 거쳐 도성 밖 근교에 도착한 때는 그해 6월 초하룻날이었다. 위화도에서 여드렛 만에 개성까지 달려온 셈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개경은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했다.
이성계가 숭인문 밖 산대암에 진을 치고 눈 아래로 펼쳐진 도성을 내려다 보았다. 대궐이 자리잡고 앉아 있는 송악산의 푸른 산봉우리들도 나른한 여름 햇살에 감싸여 있었다.
‘아, 내가 고려를 버렸는가, 고려가 나를 버렸는가? 불과 여드레 전에만 해도 고려의 우도통사 이성계였는데 지금은 반역자가 되어 있다니……. 고려가 나를 품에 안을 팔을 못 가졌던 탓인가, 아니면 내 마음 속에 고려를 향한 충성심이 없었던 탓인가?’
비로소 이성계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헷갈리면서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했다.
그의 곁으로 조용히 퉁두란이 다가섰다. 그는 힐끗 이성계의 얼굴을 건네보고선 착잡한 그의 심정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형님!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퉁두란은 조정에서 내렸던 우도통사란 이성계의 관직을 일부러 무시하고 ‘형님’이란 호칭을 사용해서 이성계를 불렀다. 실로 묘한 일이었다.
조정에서 이성계에게 내렸던 관직을 삭탈했기에 퉁두란이 그 관직명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계는 퉁두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혼자만의 깊은 감회 속에 잠겨 있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퉁두란! 저쪽으로 송악산을 한번 보시게! 송악산이 별로 높진 않으나 숲들이 울창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산이 아니겠는가?”
“형님, 새삼스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송악산을 처음 대하시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형님. 우린 그저 저 송악산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도적놈과 나쁜 무리들을 때려잡을 궁리만 하면 되는 겁니다.”
이성계와 퉁두란의 절묘한 관계는 여기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성계가 비감에 젖고 감상적인 감정에 젖어 들자 퉁두란은 일 삼아 거친 무인풍으로 나섰던 것이다.
“옛날 홍건적 난리 때가 떠오르는구만. 그 시절에도 성 안에 있는 붉은 도적떼를 몰아내기 위해 이렇게 나는 성 밖에 서 있었는데…….”
퉁두란은 잠자코 있었다. 보아하니 이성계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호형호제하는 사이지만 이성계 본인이 아닌 담에야 어찌 그의 마음 속을 죄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때는 외적이었는데…….’
이성계는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회상에 잠기듯 했다.
그 시절 홍건적은 10만이나 되는 숫자로 뭉쳐서 압록강을 건너와 하루 아침에 도성을 함락하고 말았었다. 선왕 공민왕은 허겁지겁 경상도 땅으로 파천하였고…….
머리에 붉은 수건을 눌러 쓴 홍건적들은 마치 잔혹의 극치를 보여 주듯 살인과 약탈, 방화에 강간 등으로 도성을 온통 피로 물들이고 잿더미로 만드는 참상을 연출했었다.
그러나 정세윤과 최영 등이 부랴부랴 군사 20만을 모아 도성 수복을 위한 탈환 작전에 나섰다.
그때 새파란 젊은이였던 이성계는 스스로 2천여 명의 친병을 거느리고 멀리 함경도로부터 번개처럼 개성으로 달려와 최영과 합류했었다.
‘그때는 외적이었는데……, 오늘 나는 나라와 백성을 병들고 좀먹게 하고 있는 내적과 싸우러 와 있구나!’
이성계의 입에 쓴 침이 고였다. 어쩌다 최영과 반대입장이 되어 버렸단 말인가?
“그때 내 나이 스물일곱인가 됐을 게야. 손꼽아보니 옛날 이야기로구만!” “홍건적 난리 때 형님께서는 가장 용맹을 떨치셨노라고 소문 들었습니다요. 그러니까 제 일착으로 입성에 성공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우셨다죠?”
“젊은 나이에 물불 가릴 게 없었던 게지. 오직 도적떼한테 나라와 백성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일념밖에는……. 허허허. 그때 나는 저기 보이는 북동쪽 성채를 넘어서 쳐들어 갔었네. 그랬더니만 장년이셨던 최영 장군께서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네. ‘과시 소문대로 젊은 명장이로다. 장차 나라와 사직을 위해 가일충 진충보국하길 바랄 뿐이네’ 하시고…….”
최영과 이성계.
이성계가 압록강 위화도에 머물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고려란 역사의 이름을 가진 한 배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서열도 분명한 사이였다.
이성계는 최영의 20년 연하가 되는 새까만 후배이다. 따라서 그간 이성계는 노장 최영을 도와서 많은 무공을 세우기도 했었다. 불과 4개월 전인 정월달에만 해도 그들 둘은 서로 힘을 합쳐서 권신 이인임과 염흥방, 임견미 일당을 주살, 왕실의 권위를 세워준 바 있었다.
그리고 황해도 서해 지방에 출몰한 왜구를 맞아 최영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에도 이성계가 나아가 그를 도와 승전으로 전세를 뒤집기도 했었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은 극과 극의 또다른 운명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념과 노선을 달리한 탓이라고나 할까? 최영은 수구 보수세력의 수장이라면, 이성계는 신진 개혁세력의 대명사로 부상되어 있었으니…….


 

13. 대결(1)


이윽고 최영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군막 앞에서 백발을 휘날리며 군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이성계와 퉁두란의 눈에 띄였다.
“저기 최장군이 서 계시는구만. 퉁두란, 자네도 보이는가?”
퉁두란은 대답하지 않고, 서둘러 공격하기만을 원했다.
“한시라도 공격명령을 내리시죠, 형님! 더 이상 지체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숭인문으로 나아갔던 유수만 부대도 패하여 돌아왔고, 선의문쪽을 맡았던 좌군도 실패했습니다. 이제 믿을 곳은 우리 뿐입니다.”
“서두를 것 없네. 염려마시게. 나 이성계가 누구인가? 내가 저까짓 오합지졸을 해치우지 못할 것 같은가?”
이성계의 눈에 보이는 최영 휘하의 군졸들은 가소롭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훈련도 부족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군졸들을 지휘하고 있는 최영의 모습에 연민의 정과 인생무상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시대와 역사는 이미 백발의 그를 뒤로 하고 있는 듯 했다.
만약 이성계가 주장했던 요동정벌 4대 불가론을 최영이 못 이긴척 수용해 주었더라도 그는 여전히 그의 수하에 있었으리라.
‘관세음보살. 빈도 생각은 이번 출병만은 막아야 합니다. 결단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백성의 고달픔과 나라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예요. 지금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무모합니다. 이 나라 백성과 중생들이 불쌍해요. 해서, 국운과 백성의 안위가 걸린 문제입니다.’
이성계는 무학스님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요동정벌 4대 불가론이란 자신의 주장에 당위성을 되찾곤 했다. 그러니까 그는 스스로를 백성의 편에 두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의 백성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었던가? 대부분의 백성들은 요동정벌이란 명분을 이해는 하면서도 ‘지금은 그 적절한 시기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접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려 들었다. 일단은 지긋지긋한 전쟁의 비극을 피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가 만만하게 보일지라도 여전 대국임에는 틀림없는 일로 막상 명나라와 전쟁이 붙었다 하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를 일이 아니었던가?
그도 그럴 것이 백성들은 몽고군들과 자그만치 30여 년 동안이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계속해 보았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젊은이는 무조건 전쟁터로 내몰렸고, 뒤에 남은 백성들도 군량미 조달에다 산성 등을 쌓아야 하는 부역 등에 시달리느라 허리펴고 편안한 잠 한번 제대로 못 자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 당시의 기록에 의하자면 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접하고 저 멀리 함경도 지방의 동북면 백성과 만주의 여진족까지 앞다투어 이성계 진영으로 달려 왔으며 그 숫자가 일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했다.
물론 이런 기록들은 훗날 승자가 된 이성계의 편에서 기록된 사료들이므로 위화도 회군을 미화하기 위한 정치적 조작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전쟁을 원하고 있지 않았던 게 확실했던 것이다.
퉁두란의 성화가 빗발치고 있었지만 이성계는 좀체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고 질질 시간만 끌고 있었다.
퉁두란은 처음에는 이성계의 깊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안달을 냈다가 비로소 긴가민가 이성계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었다.

 

13. 대결(2)

 

이윽고 최영은 대궐 안 팔각전에서 이성계 휘하 병사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고립무의(孤立無依) 신세가 되어 두 눈을 내리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성계가 도성 밖에 진을 친 지 사흘째가 되던 날 밤. 전령의 뒤를 이어 말을 탄 방원이 이성계가 거하는 군막 앞에 도착했다.
“아버님. 소자 옳습니다.”
“오냐, 들어오너라.”
전령의 안내로 방원은 군막 안으로 들어와 말없이 아버지에게 예를 올렸다.
이성계는 손짓으로 전령을 내보냈다.
“앉거라.”
모처럼 두 부자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마주 대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듯 그들 부자는 피차간에 사사로운 안부 따위는 묻지도 않았으며, 애써 귀띔하려고도 들지 않았다.
“그래, 목은 선생이랑 무학대사는 만나봤으렸다?”
“예에. 아버님 하교를 받기 전에도 만나뵈었고…….”
하다가 방원은 어조를 바꾸어 보고하듯 말했다.
“무학대사님은 현재 도성 바깥 연복사란 절에 계시옵니다. 아버님께 하고자 하시는 뜻은 중생의 피를 많이 흘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모쪼록 같은 군사끼리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 하셨으면…….”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차일피일 시각을 지체하고 있지 않느냐? 상감께서 최영 장군을 파직하시도록!” “……”
방원이 어금니를 불끈 깨물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더 이상 시각을 지체하실 필요가 없을 줄 아옵니다, 아버님!”
“무슨 일이냐니까?”
“네. 목은 어르신께서 상감님을 독대하셨사옵니다. 그 자리서 목은 선생이 주상께 최영 장군의 파직을 간했으나……, 상감께서는 벌벌 떨기만 하시고 과인은 모르겠다는 말씀만 거듭했다 하옵니다.”
“저런 어리석고 용열한…….”
방원이 이성계의 노기를 더더욱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그러고는 주상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성계가 군사를 풀고 성 안으로 들어오면 저간의 모든 죄는 용서하시겠다면서…….”
“그만! 그만!”
이성계는 용수철에서 튕기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전령, 전령! 전령은 냉큼 가서 퉁두란 장군을 불러 오너라!”
쏜살같이 퉁두란이 이성계의 면전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장군나리?”
“더이상 기다릴 까닭이 없어진 것 같소. 당장 군사를 풀어 성을 함락하시오.”
비로소 이성계의 공격명령이 떨어진 셈이었다.
“와, 공격이다, 공격! 도성을 공격하라, 최영을 잡아라!”
이성계 휘하의 병사들로서 도성공략에 회의를 품었거나 ‘어쩌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승리는 자신들의 편이며 역사의 물줄기 또한 자기들 편에 속한다는 확신들에 차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성계를 위해서라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자세로 전투에 임했다.
따라서 최영의 병력은 애시당초 이성계 편의 적수가 될 수 조차 없었다.
파죽지세라고 했던가?
이성계로부터 공격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성난 파도처럼 도성 안으로 몰려들었고, 최영의 진영은 그야말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추풍낙엽이요,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꼴이 되어 버린 최영 진영의 병사들은 저마다 제 한목숨 부지하기에도 바빠 쥐구멍을 찾아가듯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형님, 이거 너무 싱거운 전투 같습니다.”
퉁두란은 전투를 지휘하면서 웃음까지 흘리는 여유도 보여주었다.
확실히 최영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지 못한 늙은이 꼴이 되어 있었다. 백발노인의 몸으로 마음만 청춘이었던 셈이었다. 혹은 명분만 뚜렷하면 힘과 승리는 늘 자신의 편이 될 것이란 안이한 생각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최영은 대궐 안 팔각전에서 이성계 휘하 병사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고립무의(孤立無依) 신세가 되어 두 눈을 내리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성계 병사들은 비록 적장(?)이지만 최영에게 깍뜻이 예를 올렸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장군. 이성계 장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노라. 앞장을 서시게!”
백발이 성성한 최영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다. 따라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꿋꿋하고 의연한 모습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성계가 백마에서 뛰어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이성계를 향해 허리를 굽혀 예를 올렸다.
이성계의 시선과 최영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 시선에는 증오나 원망 혹은 분노 등의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할 뿐…….
뚜벅뚜벅 걸어오던 이성계가 우뚝 발걸음을 멈추어섰다.
사위가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팔도도통사 어른, 이번 사태는 나의 본의가 아니올습니다.”
이성계는 머리를 약간 숙여 보이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승자요, 장군! 늙은 내가 패자일 뿐…….”
“…….”
“따라서 패자인 나로서는 할 말이 없소!”
최영과 이성계는 흡사 한 판 바둑을 두고난 사람들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 받듯 했다.
4백 년 고려의 결말은 너무나 싱겁게 끝나가고 있었다.
“노대신께서는 대의를 거역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이끌었으며, 백성의 괴로움과 슬픔을 외면하여 그 원성이 하늘에 사무쳤소이다.”
“장군, 말씀하지 않아도 다 알겠소. 모든 책임이 늙은 나에게 있소이다. 부디 주상전하를 잘 보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 마지막 부탁이오.”
이성계는 최영의 부탁이란 게 너무 구차하다고 느껴졌는지 몸을 뒤돌리며 싸늘한 어조로 마지막 인사를 던졌다.
“부디 잘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백전노장 최영도 끝내 모든 패장들이 걸어가야만 했던 비참한 행로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경기도 고양땅에 유배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뿐 아니었다. 어리석고 음란했던 고려 32대 우왕은 중전 영비와 함께 강화섬으로 쫓겨나야 했는데, 중전 영비가 바로 최영의 딸이었으니 고려 왕조의 몰락은 최영 일가의 철저한 몰락과 운명을 같이했던 것이다.
아니, 이성계의 회군이 성공을 했지만 고려의 명맥은 당분간 간신히 남아있었다.
아홉 살 난 우왕의 아들을 보위에 앉히고, 그를 고려 33대 임금 창왕이라 불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홉 살짜리 창왕에게 무슨 권한과 힘이 있었으랴.
바야흐로 천하대세는 이성계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창왕은 명목상의 허수아비였을 뿐.
일이 이렇게 풀리자 이른바 식자들은 다시 한번 고뇌에 찬 결단들을 강요받기에 이르렀다.


 

13. 대결(3)


그날 밤에도 무학스님은 회암사의 강월헌에 앉아 있었고, 이성계의 회군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안은 이색이 그곳에 당도해 있었다.
이색이 먹구름 가득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천하권세가 이성계 장군 한 손에 모아져 있으니…….”
“…….”
무학대사는 조용히 앉아 염주알만 굴리고 있었다.
“언젠가 내가 대사한테도 얘기한 적 있었지? 이성계 장군은 가볍게 볼 수 없는 무인이며 야심만만한 위인이라고……. 으음, 이제 확실히 기억나는구만. 자네가 설봉산에서 9년 정진을 마치고 내려와서 비로 이곳 회암사로 왔을 때야. 그래, 그때 대사가 내게 먼저 물었것다. 이성계 장군이 어느 정도 되는 무인이냐고.”
“목은 자네가 이장군을 잘 좀 도와줘야 할 게야.”
“못 도와줄 것도 없지. 허허허. 지난번 요동 출병의 일만해도 그랬지. 포은과 나는 출병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구. 또 이번에 어리신 창왕을 모신 일만 해도 그래요. 좌통사 조민수 장군과도 서로 의론해서 정한 일이니까!”
“…….”
무학스님은 문득 이색의 생각이 한참 멀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색이 더더욱 분명한 어조로 해명하려 들었다.
“자고로 어느 한 사람의 손아귀에 너무 많은 권세가 집중되는 일은 경계해야 할 일인즉!”
스님은 이색을 끌어안을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인제사 아우님 자네에게 실토를 하면…….”
“실토를 하면?”
“사실은 설봉산 토굴 속에 있을 적에 내가 이장군을 한번 만나본 적이 있었어요.”
“뭐……, 뭣이라고?”
“놀라긴?”
“이렇게 엉뚱한 사람 봤나? 그런 얘기를 이때까지 나한테 숨기다니…….”
“동네방네 소문 낼 이야기가 못 되었거던!”
“한데?”
“그때 이장군이 무슨 꿈 한 자락을 들고 와서 해몽을 부탁했었네.”
“꿈 해몽을?”
무학스님은 촛불에 비친 이색의 얼굴을 정시하면서 시침 뚝 따고 말을 이었다.
“낡고 썩은 헌 집이 꿈 속에 무너져 내리고 서까래 세 개를 그 곳에서 짊어지고 나왔다는 게야.”
“서까래 세 개? 그래서 어떻게 해몽을 하셨나?”
이색은 그 꿈이 얼마나 무서운 뜻을 담고 있는지를 아직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생각나는 데로 얘기해 줬지 뭐. 허허허…….”
“이 사람……, 웃지만 말고…….”
“시간이 좀 더 흐른 다음에 말해 주겠네!”
“무슨 천기라도 된단 말인가?”
“나 같은 땡중이 천기를 어떻게 아누?”
“이런 답답한 대사 봤나? 9년간 수행을 했다면서……, 사람 궁금하고 답답하게 하는 재주만 익혔구만. 젠장, 이야기를 꼭지만 떼다가 마는 사람이 어딨어?”
“관세음보살, 목은 이놈아. 하하하!”
그 순간 이색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옳아, 그래서 그날 밤 헌 집이 어떻고 새 집이 어떻고 서까래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난데없이 끄집어내었구나!”
이색은 혼자 곰곰이 곱씹어보고 있었다. 그날 밤에 무학스님은 ‘기둥이 썩어가지고 서까래도 낡고 헐어서 그놈의 헌 집이 만신창이라면’하고 물었었다.
그리고 나서 그날 밤 무학대사는 ‘새 집을 다시 지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도 말했었다.
순간 이색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무학스님은 천지개벽을 바란다는 뜻을 가진 게 아니란 말인가? 그러고 또한 천지개벽의 주인공으로 이성계를 점치고…….
생각의 방향을 그편으로 잡고 보니, 무학스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더욱 분명해졌다.
이색의 목소리에 진한 역겨움과 노기가 서렸다.
“이런 불학무도한 중놈 같으니라구. 결국 4백 년 종사를 뒤집어 엎겠다는 거 아닌가?”
“이봐, 목은, 목은!”
한번 발끈한 이색의 어조는 사뭇 누그러질 줄 몰랐다.
“듣기 싫다, 싫어. 명색이 대사라면서…… 날벼락 맞을 생각만 하고 있다니……. 이런 대명천지에 날벼락을 맞을 생각을…….”
“가만, 가만, 목은!”
“말씀을 삼가시게. 그까짓 말 따위는 아니 들은 것으로 하겠네. 대신 그런 이야기 두 번 다시 입 밖으로 내지 말게! 내가 용서할 수 없을 테니…….”
“그럼 우리 포은을 불러서 한번 물어 볼거나?”
“포은에게?!”
“그래애!”
“포은이야말로 자네 면상을 후려칠 걸세. 더불어 같은 자리에 앉지도 않을 것이고…….”
“관세음보살!”
무학스님은 이색에게서 금새 두터운 벽을 느꼈다. 이른바 고려에 대한 이색의 뜨거운 충정을 읽을 수도 있었다.
“거듭 하는 말이지만 오늘 밤의 이야기는 내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목은 자네가……, 이렇게 성깔만 부릴 일이 아니라 이 어리석은 중 생각을 끝까지 좀 들어보라고. 아무리 산승이라지만 생각조차 없을까봐?”
이색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부처님 잘 받들고 성불할 생각이나 하시게!”
“이런, 이런 어리석은 사람!”
“누가 누구더러 어리석다 하는겐가?”
무학스님이 이색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늙은 이 산승의 생각인즉슨, 은감이 불원(殷鑑不遠)인게야!”
“뭐라? 은감불원? 허허, 점입가경이로구만. 이 친구 무학대사! 머리가 불시에 어떻게 되신 것 아닌가?”
바야흐로 무학대사는 ‘은감불원’이란 말로 왕조 교체의 당위성을 설파하려든 것이고, 이색은 천부당 만부당이라며 펄쩍 뛴 것이었다.
‘은감불원’. 옛날 은나라가 정사를 펼치는데 거울로 삼아야 할 점은 멀리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하나라의 어리석은 임금 걸왕에게 있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남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나라와 은나라는 서로 변화와 혁명으로써 왕조가 바뀌고 새나라를 건설한 바 있었다.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왕은 은나라한테 망하고 은나라의 어리석고 무능하며 음탕했던 주왕은 주나라 무왕에게 역사의 자리를 내주었다.
무학스님은 고려를 이성계에게 내주어야 마땅하다는 논리를 펼친 셈이었다.
“이봐, 이색. 성깔만 부리지 말고 내 말에 귀 기울여 봐. 시방 나는 특정인 이성계를 두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야. 고통받는 중생과 피폐해진 백성 하나 제대로 추스릴 능력도 없고 힘도 없을뿐더러, 장래도 희망도 없는 왕실을 저대로 두고, 언제까지나 이어가자는 겐가?”
이미 이색에게 무학스님의 말은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왕실이 제수했던 벼슬살이를 해왔던 이색이 어느 한순간인들 왕실이 무너짐을 꿈이나 꿀 수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