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잡는 귀신 이야기 중국판 전우치전, 종규전전(鐘馗全傳)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귀신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이 있다. 서양에서는 드라큘라가 대표적인 캐릭터이고 한국에서도 도깨비를 비롯하여 여러 귀신이 등장한다. 중국에서도 많은 요괴와 귀신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의협심이 강한 긍정 인물로 민중의 사랑을 받는 귀신이 있으니 그가 바로 종규(鐘馗)이다. 중국에도 수많은 귀신과 신선이 존재하지만 종규는 지금까지도 일반인에게 잊혀지지 않고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 일러스트 한규하
종규전전(鐘馗全傳)은 ‘종규에 관한 모든 이야기’라는 뜻이다. 종규의 캐릭터는 그림을 매개로 하고 백성을 위해 의협심을 발휘한다는 면에서, 귀신과는 연관이 없지만 전우치와 많이 닮아 있다. 전우치전은 최근 영화로 재창조되어 관중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였다. 전우치의 귀신 잡는 콘셉트는 퇴마사 이야기를 다룬 한국의 ‘퇴마록’과 비슷하다. 퇴마록은 1990년대에 이우혁이 쓴 판타지소설로 빅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당 덕종 때 선비가 주인공
종규는 다혈질의 성격에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악한을 극히 혐오하는 선한 마음씨를 갖고 있어 강렬한 대비를 보여준다. 민간 전설과 각종 문학 작품으로 그려진 종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당 덕종(德宗·재위 779~805) 연간에 종규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거센 수염이 가득하여 추한 외모를 갖고 있었으나 재주와 무예가 출중하였다. 과거시험이 임박하자 종규는 장안으로 올라갔다. 수도의 번화한 모습에 거리를 배회하다가 점집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자를 놓고 점을 본다. 점쟁이는 그의 이름이 구(九)와 수(首)로 이루어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금이 9월이니 이번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를 할 것이나 10일 안에 큰 화를 겪게 될 것이니 근신하라고 이른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종규는 며칠 뒤 시험장에 나가 주어진 논제에 대해 일필휘지로 답을 쓰고 나온다. 이날 시험의 총감독관은 한유(韓愈)였고, 부감독관은 육지(陸贄)였다. 이들은 종규의 답안지를 보고 글재주에 감탄하며 그를 1등으로 선발한다. 한유의 소개를 듣고 종규를 궁궐로 불러들인 덕종은 종규의 추한 외모를 보고는 불쾌해져 이렇게 추한 사람이 어떻게 장원이 될 수 있었느냐며 힐난한다. 한유가 여러 사례를 들어 인재를 평가함에 있어 외모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됨을 강조하였지만 덕종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그때 간사하고 아첨에 능한 재상 노기(蘆杞)가 덕종에게 종규 대신 다른 사람을 선발할 것을 제안한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종규는 화가 치밀어 노기를 때려눕힌다. 덕종은 궁궐을 어지럽힌 죄로 종규를 체포할 것을 명하였다. 순간 종규는 궁궐을 호위하던 장군의 허리에서 칼을 빼어들어 억울함을 외치고는 목을 베어 자결한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덕종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기를 유배지로 보내고 장원급제의 예를 갖추어 종규를 후하게 장사지낸다. 이어 구마대신(驅魔大神)에 봉한다. 지옥에 간 종규는 함원(含怨)과 부굴(負屈)장군을 조력자로 삼고 내하교(奈何橋)를 지키던 귀신을 박쥐로 둔갑시켜 길잡이로 삼아 악귀들을 소탕한다. 악귀 소탕으로 큰 공을 세워 옥황상제로부터 ‘익성제사뇌정구마제군(翊聖除邪雷霆驅魔帝君)’에 봉해진다.
-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종규에게는 두평(杜平)이란 친구가 있었다. 과거시험이 다가왔지만 형편이 어려운 종규는 장안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의 사정을 알고 있던 친구 두평이 돈을 마련하여 종규에게 건넨다. 은혜를 갚으리라 약속한 종규는 장안에 올라가 장원으로 급제를 했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자결한다. 두평은 억울하게 죽은 종규의 사체를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고 후에 귀왕(鬼王)이 된 종규가 여러 귀신들을 이끌고 그믐날 집으로 돌아와 여동생을 두평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귀신 잡는 종규의 이야기는 당대 여조(廬肇)의 ‘당일사(唐逸史)’에 최초로 등장한다. 여조는 843년에 진사가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북송시대 박물학자 심괄(沈括·1031~1095)의 ‘몽계보필담(夢溪補筆談)’에도 종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종규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시대 배경은 당 개원(開元) 연간으로서 현종(玄宗)이 여산(驪山)을 다녀온 뒤 병이 들어 한 달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밤 현종은 귀신들이 양귀비의 자향낭(紫香囊)과 현종의 옥피리(玉笛)를 훔쳐 궁궐을 소란케 하는데 파란 도포를 입은 커다란 귀신이 힘 센 팔뚝으로 귀신들을 잡아 두 동강을 낸 뒤 잡아먹는 꿈을 꾸다. 정체를 묻자 귀신은 자신이 무과에 급제하지 못한 선비로서 종규라고 하며 폐하를 위해 천하의 요괴를 제거하겠노라 맹세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현종은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현종은 유명 화가인 오도자(吳道子)를 불러 종규의 초상을 그리게 한 뒤 각 대신들에게 나눠주며 귀신을 잡는 자들에게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 선포하였다. 이때부터 종규는 전문적으로 악귀를 잡는 신령이 되었다. - 곧은 기개·강직한 성품으로 그려져
종규에 관한 문학 작품으로는 명대 잡극 ‘경풍년오귀료종규(慶豊年五鬼鬧鐘馗)’와 명대 소설 ‘종규전전’, 청대 소설 ‘참귀전(斬鬼傳)’과 ‘평귀전(平鬼傳)’이 있다. ‘참귀전’의 저자는 연하산인(煙霞散人)이고 ‘평귀전’의 저자는 운중도인(雲中道人)이라고 적혀 있으나 필명으로 여겨지고 정확한 작자는 알려지지 않는다.
당대 왕인후(王仁煦)가 지은 ‘절운(切韻)’에도 종규는 신의 이름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사실 종규에 관한 전설은 당 이전인 육조시대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처럼 종규는 각종 귀신을 잡는 역할 이외에도 곧은 기개와 정직한 품성의 소유자로 그려졌다. ‘종규전전’에서 옥황상제가 미녀로 유혹했으나 종규는 쇠와 돌처럼 흔들림이 없었다고 하였고 정직하고 어질며 재능이 뛰어나다고 묘사하였다. 따라서 중국 민간에서는 시대가 거듭될수록 종규를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상징으로 삼아 무한한 사랑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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